편식 대장 냠냠이 - 잔소리 없이 편식 습관 고치기 인성교육 보물창고 7
미첼 샤매트 지음, 신형건 옮김, 호세 아루에고 외 그림 / 보물창고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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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편식이 좀 심하다. 본인이 편식한다는 걸 알기에 이 책을 보더니 의미있게 다가왔는지 혼자서 보더니 다시 읽어달란다. 아니 노골적으로 읽어달라는 것이 아니라 은근슬쩍 나를 떠본다. 뭐 읽어줄 책 있지 않냐고. 어차피 나도 읽어봐야 할 거라면 아이에게 읽어주는 것이 낫겠다 싶어 모처럼 인심 한번 썼다. 

그래도 그림책을 꽤 보았고 뒤에 숨어 있는 의미도 잘 파악한다고 믿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며 혼란스러웠다.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내가 생각한 이야기 전개방식과 달라도 너무 달랐으니 그럴 수밖에. 혹시나 나중에는 엄마 아빠 염소가 아기 염소의 편식 습관을 고치기 위해 일부러 그랬다는 말이 나올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지금까지 보아온 그림책은 대부분 그랬는데...

역설이라는 말이 이럴 때 적절하게 쓰이는 말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몸에 좋은 음식을 부모가 권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반대의 것을 권하니 어리둥절하다. 급기야 냠냠이와 부모가 중간 지점에서 타협을 하고 결국은 부모의 뜻대로 되었으니 성공한 것이다. 어떤 것이든 좋아하는 것만 먹을 수는 없다. 여기서는 그것을 적절한 비유와 방법을 이용해서 알려주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의 글 작가는 원래 주식 투자 전문가였다고 한다. 아기염소가 아들의 코트를 물어뜯는 것을 보고 이 이야기를 지었단다. 배경색이 모두 생략된 채 하얀 바탕에 간단한 그림으로 표현된 그림은 깔끔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약간은 허전함이나 밋밋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글씨체라도 색다른 것으로 했으면 훨씬 재미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인성교육을 목적으로 한 그림책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무조건 그림책에 큰 의미를 두고 접근하려는 습관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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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만큼 땅만큼 너를 사랑해
데이비드 밴 뷰런 지음, 팀 원스 그림 / 세상모든책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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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주제는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뻔한 결말과 뻔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과 그들의 직업만 살짝 바뀌어서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그런 것에 열광하는 것일까. 마찬가지로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그림책의 주제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 상당히 많다. 또 그런 사랑을 주제로 한 책은 내용도 비슷하고 전개 방식도 비슷하다. 등장인물만 바뀌어서-때로는 토끼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곰이 되기도 한다.-이야기를 풀어갈 뿐이다.

은은한 파스텔 톤의 그림은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책 내용은 특별할 것도 없다. 엄마 곰이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그 만큼 너를 사랑한다는 말을 끝없이 되풀이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매번 말을 하는데도 왜 지루하거나 식상하다고 느껴지지 않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엄마곰에게 내 마음을 대입시켜서 읽기 때문일 것이다. 바다가 깊으면 그 깊이 만큼 사랑하고 태양이 눈부시면 그 눈부신 만큼 사랑하고... 곰이 가는 어떤 곳이든, 곰이 보는 무엇이든 아기곰에 대한 사랑을 느끼지 않는 때가 없다.

온화한 표정의 엄마곰과 귀여운 아기곰을 보는 것만으로도 평화롭고 그들에게서 사랑이 느껴진다. 엄마곰은 하루를 보내는 내내 아기곰에 대한 사랑을 읊는다. 그 어떤 부모가 자식에게 그런 사랑을 느끼지 않을까. 아마 아이들은 그것까지는 느끼지 못할 것이다. 단지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구나를 느낄 뿐이겠지. 특별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그림이 펼쳐지는 것도 아니지만 참 편안해지는 책이다. 유아들에게 이 책을 읽어주면 엄마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포근함을 느낄 것 같다. 비슷한 그림책을 많아 봐왔는데도 이런 책을 보고 또 아이를 생각하는 걸 보니 인간 세상에서 부모 자식간의 사랑은 역시나 변하지 않는 주제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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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쟁이 나나 모두가 친구 10
치엔 인 지음, 임지영 옮김 / 고래이야기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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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동생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혼자이다시피했다. 그리도 지금의 내 아이들은 동성이 아닌 이성이라 동생이 큰 아이를 따라하려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주위의 동성 형제들을 보면 그런 경우가 많다. 특히 언니 친구들이 왔을 때 동생을 끼워주지 않으면(대개는 그러니까) 동생은 더 쫓아다니며 훼방을 놓곤 한다.

이 책의 주인공 나나가 보기에 언니는 무엇이든 잘 하는 만능재주꾼이다. 그림도 잘 그리고 요리도 잘 하고... 그러나 무엇보다 더욱 부러운 때는 언니 친구들이 놀러왔을 때다. 지금까지 평범했던 집이 신기한 세상으로 변하니까. 거실에서 언니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는 나나의 표정에는 호기심과 부러움이 그대로 나타난다. 특히 한쪽 구석으로 치우쳐서 작게 그려진 나나의 모습에서는 소외감이 드러난다. 물론 언니들이 끼워줄 때도 있다. 말 잘 듣는 조수가 필요하거나 친구 중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역할이 있는 경우에 말이다. 그 때의 나나 표정이란.

결국 언니가 만든 팬케이크를 칭찬하는 모습을 본 나나는 자신도 만들기로 한다. 주방을 온통 난장판으로 만들고 자기 머리도 엉망으로 만들면서까지 열심히 만들었는데, 결과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다. 아니 오히려 식탁 밑으로 숨을 만큼 형편없다는 소릴 듣는다. 그러나 이웃집 아주머니의 한 마디에 용기를 얻은 나나는 이제 더이상 언니들을 따라하지 않는다. 스스로 자기만의 놀이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옆집에 나나보다 어린 여자아이가 이사오면서 이젠 나나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언니 노릇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을까. 특히 마지막 장면은 웃음을 머금게 한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풀어가느냐는 전적으로 작가의 역량일 것이다.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소재를 가지고도 참 재미있게 풀어낸 글과 그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풍부한 표정의 나나를 보면 지금 나나의 마음이 어떤지 금방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림을 따라가며 보는 재미 또한 톡톡히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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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자연사 박물관 미래그림책 10
에릭 로만 글 그림, 이지유 해설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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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림책을 무척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처음에는 아이에게 읽어주기 위해 그림책을 선택했다가 이젠 내가 아이들보다 더 열광하는 매체가 되어 버렸다. 간략한 글과, 글을 단순히 보조하는 수단이 아니라 글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거기엔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삶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글이 아예 없는 그림책은 어떨까. 당연히 훨씬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단지 책장을 넘긴다고 해서 그 많은 이야기들이 독자에게 말을 거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대화란 주고 받는 것을 의미하듯이 그림책을 볼 때도 독자가 책에 말을 걸어 가며 마음을 열고 바라볼 때에만 책도 독자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다 보여준다. 그렇지 않고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서는 절대 많은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이 그림책이며 그 중에서도 특히 글자 없는 그림책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글 없는 그림책에 빠지는지도 모르겠다. 덮었던 책장을 펼 때마다 새로운 것을 느끼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자연사 박물관이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자연사 박물관이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졌었다. 겉표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공룡의 눈과 얼굴만으로도 아이들은 충분히 매력을 느낄 것이다. 어딘가 신비감이 느껴지는 것 같으니까. 이제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첫 번째 그림이 나오는 장면은 벌써부터 특이한 모습을 보여준다. 창문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그림이다. 창틀로 나뉘어진 유리창 문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단순히 밖의 풍경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한 칸의 그림은 아래 칸의 그림과 시간차를 보여준다. 어떤 새가 나뭇가지에서 날아내려와 어느 집으로 향해 날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번개가 쳐서 으스스한 느낌을 자아낸다. 무심코 책장을 넘기면 각 장면이 연속된 것이라는 걸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나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그리고 드디어 제목이 나오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려 한다. 박물관 안에서 공룡 뼈들만 앙상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을 무심코 바라보는 새. 그 새는 박물관 이곳 저곳을 날아다니며 여유를 부리고 있다. 날카로운 공룡 이빨 위에도 겁없이 앉아 있다. 그 눈망울은 얼마나 똘망똘망한지 모르겠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기 같은 눈동자다. 호기심에 가득차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 모습 같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다시 번개가 친다. 그 번개불 때문에 벽에는 무시무시한 그림자가 생긴다. 원래 공포영화에서도 이런 장면이 제일 무서운 법이다. 무언가 사건이 일어날 것만 같은 암시를 주는 번개. 과연 새에게는 무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일까. 화석처럼 굳어 있는 박물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겠냐만 혹 모르는 일 아닌가. 

그렇다. 만약 계속 새가 박물관을 돌아다니는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그림책이었다면 이처럼 재미있게 보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랬다면 칼데콧 아너 상을 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 후엔 정말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새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시간도 마치 새를 따라 흘러가는 듯하다. 왼쪽은 화석이 된 현재라면 점점 오른쪽으로는 책의 여백이 없어지며 색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어디 그 뿐인가. 공룡도 서서히 살을 갖추기 시작한다. 두 페이지 가득 공룡이 그려져 있고 왼쪽은 뼈만 앙상하게 있고 오른쪽은 완전히 살아있는 공룡의 모습을 하고 있는 부분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영화 <미이라>에서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영원한 생명을 원했던 악당이 다른 사람의 피와 살로 자신의 형태를 갖추어가는 모습이 연상된다. 좀 끔찍하긴 하지만.

그리고 그 다음엔 환상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하늘을 유유히 날고 있는 새와 익룡이 보인다. 하늘? 언제 하늘이 있었지. 분명 새는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는데 말이다. 이처럼 그림책에서 환상적 요소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는 훌륭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작은 새는 아무리 익룡이 쫓아와도 유유히 날기만 한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자신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듯이. 하지만 새는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이 아니다. 공룡이 갑자기 목을 드는  바람에 놀라서 방향을 바꾸다 그만 어느 무시무시한 공룡입으로 돌진하고 만다. 그 순간 작은 새의 표정은 또 어떤가. 그리고 이어진 그림. 푸르죽죽한 먹구름이 두 페이지 가득하고 공룡은 입을 다물었는데 거기엔 깃털이 날리고 있다. 그럼 작은 새는... 천방지축 날아다니더니만 결국 일을 내고 말았구나. 공허한 하늘이 그걸 의미하는 것일까. 아마도 아이들은 여기서 순간 멈칫할 것이다.

하지만 다음 장을 넘기면 탄성이 절로 난다. 아, 작가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가장 아슬아슬한 순간을 작가는 능청스럽게 빠져나가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아니, 작은 새가 빠져나간다고 해야 하는 것인가? 앞부분에서 왼쪽이 현재이고 오른쪽으로 갈수록 살아있는 과거였다면 이젠 반대로 왼쪽이 과거가 되고 오른쪽이 현재가 된다. 점점 입체적이었던 공룡이 뼈만 앙상한 화석으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여러 공룡들이 화석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하나라도 놓칠까 봐 보고 또 보게 된다. 게다가 환상으로 들어간 동안 페이지에 여백이 하나도 없었던 반면 이제 다시 여백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여백 하나에도 대단한 의미를 두고 존재하도록 장치한 작가의 세심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새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날아가 버리지만 이미 독자들의 마음 속에는 대단한 놀이가 펼쳐진 후다. 그리고 더이상 박물관은 단순히 움직이지 않는 화석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그런 장소가 아니다. 그곳도 살아있는 역동적인 공간이다. 한바탕 신나게 환상 속에서 놀고 나와서는 휴 하고 길게 숨을 쉰다. 그러면 마음에 쌓여 있던 모든 것이 말끔히 날아가는 기분이다. 글은 하나도 없었지만 이 모든 것을 그림이 이야기해 주고 있다. 만약 여기에 글이 있었다면 내가 느꼈던 이 많은 것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을까. 글쎄, 단언컨대 결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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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에게 잡혀간 호랑이 - 저승이야기 우리 문화 그림책 12
김미혜 글, 최미란 그림 / 사계절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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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에서 호랑이가 등장하는 게 꽤 많다. 그래서 어떤 때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처음 시작한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로 끝을 맺는 경우도 있다. 오래전에 교육방송에서 유아를 위한 인형극을 하는데 호랑이가 나오는 온갖 옛이야기는 다 모아서 해 주는 걸 보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책도 만만치 않다.

해님달님의 못된 호랑이로 시작한다. 그것도 앞의 오누이가 어떠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다짜고짜 수수밭으로 호랑이가 떨어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람들이 그 소리에 놀라 달려와서 죽은 호랑이를 보는 표정은 얼마나 웃기던지. 어른들은 무서워하거나 겁에 질려 있는 반면 아이들은 가까이서 호랑이를 '관찰'하며 웃고 있다. 역시나 어디에서든 아이들은 아이답다. 한편 오른쪽 위쪽에선 저승사자가 구름을, 아니 말인데... 어쨌든 뭔가를 타고 달려온다. 달려온다는 표현에 맞게 말을 그리긴 했는데 그렇담 하늘에서 말을 타고 온다는 걸 어떻게 표현할까 궁금했다. 사실 처음에 구름은 보질 못한 상태에서 먼저 말이 보였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말과 구름을 함께 적절히 조화시켜서 둘에 대한 의문을 해소시켰다.

저승에 가서 옥황상제 앞에 있는 호랑이와 그 뒤에 있는 많은 대왕들 그림은 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그림이다. 이 이야기 자체가 바로 절에 있는 '시왕도'라는 그림으로 표현된 것을 모티브로 했기 때문이다. 죄를 많이 지은 호랑이는 결국 온갖 지옥으로 끌려다니며 고초를 당하다가 다시 호랑이로 태어나라는 명을 받는다. 반면, 후반부에 나오는 호랑이는 나무꾼을 형님으로 모시고 그 형님의 어머니를 자기 어머니처럼 모신 착한 호랑이가 나온다. 당연히 그 호랑이는 죽어서 앞의 호랑이와 마찬가지로 저승에 갔지만 착한 행실이 드러나 사람으로 태어난다. 

호랑이의 살아서 삶도 대비되지만 죽어서의 삶도 완전히 다르다. 저승이라는 곳... 우리 아이도 가끔 묻는다. 진짜 저승이 있느냐고. 하지만 그 누구도 알 수 없기에 정확히 대답해 줄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중간에는 호랑이 이야기가 전부 차지하고 있지만 그것보다 가장 앞에 나오는 할머니와 손주 이야기와 마지막에 나오는 둘의 이야기를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아마도 나쁜 호랑이가 아이들이 상상하기에도 너무 끔찍한 벌을 받는 것에 움츠러들었다가도 맨 마지막에 나오는 아이의 깜찍한 말을 읽으면 그동안의 모든 것이 사라질 것 같다. 어른인 나도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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