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기울이면
샬로트 졸로토 지음, 김경연 옮김, 스테파노 비탈레 그림 / 풀빛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샬로트 졸로토와 스테파노 비탈레가 짝을 이루어 펴낸 책이 꽤 있다. 대개 그림책에서는 글 작가보다 그림 작가를 더 잘 기억하는데 이상하게 졸로토의 경우는 반대다. 이 작품의 경우도 그림 작가인 스테파노 비탈레라는 이름보다 샬로트 졸로토라는 이름으로 먼저 기억되니 말이다.  

샬로트 졸로토는 <토끼 아저씨와 멋진 생일 선물>로 칼데콧 상을 받았다. 사실 칼데콧 상은 글 작가가 아닌 그림 작가에게 주는 상이므로 샬로트 졸로토가 받았다기 보다 모리스 센닥이 받았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샬로트 졸로토가 받았다고 여긴다. 물론 글 작가가 아무런 역할을 안 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모리스 센닥의 입장에서는 좀 억울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이렇게 샬로트 졸로토가 그림 작가보다 전면에 나오는 이유는 아마도 작가로서 샬로트 졸로토의 역할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죽하면 샬로트 졸로토 상이 제정되었을까. 그러니 이 책이 스테파노 비탈레의 책이라기 보다 샬로트 졸로토의 책으로 기억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싶다. 

난 왜 이 책을 보면 여름밤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내용에서는 계절을 암시하는 그 어느 것도 나오지 않는데. 게다가 아이가 입은 옷을 보면 긴 팔이니 여름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별빛이 반짝이는 것을 반딧불이로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외국 그림책에서 반딧불이가 많이 나오니까 반짝이는 것을 보고 별 생각없이 반딧불이를 연상했나 보다. 

여하튼 은은하고 따스한 그림과는 달리 내용은 어둡다. 그렇다고 가라앉았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아빠를 그리워하는 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면 가라앉은 것이 맞지만 엄마의 설명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직접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설명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이것이 시가 아닌가 착각할 정도다. 그래서 샬로트 졸로토의 이름이 먼저 떠오르는 것일까. 

속표지를 넘기고 마주치는 그림은 마치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미술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나조차도 그의 그림을 한 번 보고 이름을 기억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주었기에 그와 비슷한 그림이 나오면 마그리트라고 생각한다. 확신할 수 없기에 '연상시키는'이라는 다소 한 발 물러선 표현을 쓴 것이다. 하지만 첫 장면이 나오면 마그리트라고 거의 확신할 수 있다. 꼭 그의 그림에서 나오는 모습이니까. 아무래도 그림책을 제대로 보려면 그림 공부 먼저 해야겠다. 

한 장면 한 장면이 모두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인 책. 그래서 자꾸 보게 되는 책. 거창한 이야기가 들어 있거나 전개가 빠르지 않지만 마음 속에 무언가를 남기는 그런 책이다. 시와 그림을 함께 감상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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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oiafg 2011-07-21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왜케 시가 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