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하기 좋아하는 말 더듬이 입니다 - 2014년 뉴베리 아너 상 수상작 마음이 자라는 나무 6
빈스 바터 지음, 김선영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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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면 무슨 이야기인지 대충 짐작이 가는 동화다. 뭐, 말더듬는 아이가 처음에는 위축되고 자존감이 낮았다가 노력해서 극복한다는 이야기겠거니 짐작할 만하다. 그런데 작가 소개를 읽어보니 자전적인 이야기란다. 그러면 이때부터 관심이 조금 더 가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훈계조 내지는 교훈조로 흐를 가능성이 큰데 자전적인 이야기라면 그럴 가능성이 조금 줄기 때문이다. 즉, 처음부터 약간의 프리미엄을 안고 읽기 시작했다. 게다가 2014년 뉴베리 아너상을 받은 작품이라니 일단 작품성은 인정받은 셈이니 즐길 일만 남은 셈이다.

 

읽을 때는 몰랐는데 이 글을 쓰기 위해 주인공의 이름을 말하려다 보니, 생각이 안 난다. 그래서 찾아보니 '나'로만 나왔을 뿐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타자기로 치고 있다니 자기 이름을 직접 거론할 일은 없을 테고 보모는 작은 신사라고 불렀으니 이름이 나올 이유가 없다. 그러고 보니 자신의 이름에는 발음하기 어려운 'ㅂ'이 두 번이나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본명을 그대로 사용하는가 보다. 여하튼 바터는 그냥 보았을 때는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지만 입을 여는 순간 다르게 본다. 왜냐하면 심하게 말을 더듬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을 시켰는데 이처럼 심하게 더듬으면 계속 들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중간에 끊을 수도 없고 난감하긴 하겠다. 그런 사정을 알기에 바터는 더욱 신경을 쓰고, 그럴수록 말을 더욱 더듬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래도 바터에게는 래트라는 친구가 있다. 말더듬는 것을 그대로 인정해 주고 이름을 바꿔 불러도 신경쓰지 않는 그런 친구다. 래트가 방학에 할아버지댁에 놀러가는 사이에 바터가 대신 신문배달을 해주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바터가 던진 강속구에 입술이 터진 래트에게 뭔가 해주고 싶어 대신 신문배달을 하게 된 것인데 이것이 결과적으로 바터에게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다.

 

말더듬는 증상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두려워하고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는 것은 더더욱 싫어하던 바터가 신문을 배달하며 만나는 사람과 서서히 우정을 쌓아가는 이야기가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특히 스피로 아저씨와의 만남은 바터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집안 거실을 가득 메운 책을 보고 지적 갈증을 느끼게 해주었고 보다 깊이 사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멘토가 된다. 워싱턴 부인은 이제 막 어린 티를 벗고 청소년으로 접어드는 시기에 뭔지 모를 감정을 느끼게 해주지만 결국 인간에 대한 연민을 넘어 누군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게 만든다. 신문 대금을 받으러 갈 때마다 TV만 쳐다보고 있어 TV보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폴이 사실은 청각장애인이라 독순술을 배우느라 그랬던 것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겉으로 보이는 것만 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그렇다고 신문배달 하며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라티 아저씨 때문에 가정부 맘과 바터가 죽을 뻔한 일도 있었지만 그 또한 바터에게는 인생의 좋은 경험이 된다. 가정부는 백인 아이와 같이 있을 때 버스 앞자리에 앉을 수 있다던가 동물원에 갈 수 있다는 것으로 보아 이 글의 시대적 배경이 아직 인종차별이 법적으로 사라지지 않은 시기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주인공은 그런 제도에 대해 살짝 의구심을 갖기 시작하지만 더 이상 나아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 책의 주제를 벗어나니까.

 

주인공은 말더듬는 것을 고치지는 못했지만 극복해서 신문 기자로 활동했고 지금은 지역신문사를 운영하고 있단다. 아마 신문 배달을 하며 겪었던 일이 현실을 인정하고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 싶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이며 그때 경험했던 다양한 일들이 바터의 내면을 튼튼히 받쳐주었다는 것을, 신문 배달을 했던 4주가 지난 후 바터가 부쩍 성장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책을 다 읽어도 제목과 맞지 않는 듯해서 원제를 보니 'Paperboy'다. 나중에 보니 표지에도 적혀 있다. 그제서야 내용과 제목이 맞춰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읽으면서 우리와 다르다는 생각을 했던 부분이 있다. 바로 바터의 현재 아버지가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대처하는 방식이다. 우리네 드라마나 동화에서 흔히 보이는 반응을 생각했는데 전혀 의외다. 아마 우리 동화 같았으면 그것이 하나의 큰 사건이 되어 방황하다 결국 화해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바터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방황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의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며 고마워한다. 사건의 축에도 못 끼는 것을 보며 또 한번 문화차이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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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6-05 2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느낌 좋은 글이네요. 읽어봐야겠어요

봄햇살 2015-08-17 10:55   좋아요 1 | URL
표지는 좀 촌스럽지만 내용은 좋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