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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책은 기본적으로 성장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듯해서 그동안 읽었던 책 중에서 좋았던, 그래서 마구마구 추천해주고 싶은 책을 뽑았다. 때로는 작품성에 우선순위를 두기도 하고, 때로는 주인공들의 아름다운 마음과 열정에 마음이 끌려서 뽑기도 했다.

1. <구덩이> 

감탄에 감탄을 하며 읽었던 책. 지인은 남편이 이 책을 읽고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혼자만 읽었느냐고 했단다. 혹자는 추리소설에서는 이런 형식의 글이 많다고, 그래서 그처럼 감탄할 필요는 없다고 하지만 어쨌든 난 너무 감탄하며 읽었다. 아무런 설명없이 구덩이만 파는 아이들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이야기, 그리고 여러 인물이 나오지만 결코 아무도 헛되이 존재하지 않는 치밀한 구성력에 어찌나 감탄을 했던지. 여기서는 인물 뿐만 아니라 가방 하나 양파(였던가? 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 하나도 그냥 지나쳐서는 안된다. 그러면서 결국 주인공은 성장했다. 이 책 읽고 루이스 새커의 팬이 되었다.
 

2. <바다 바다 바다> 

    내가 살았던 배경과 너무 상경한 바다를 배경으로 해서 처음엔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느라 애를 먹으며 읽었지만 역시나 읽고 나서 샤론 크리치의 팬이 되었다. 이 작가의 특징은 주인공의 시선을 벗어나는 범위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 독자가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끝까지 궁금하게 만든다. 주인공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한 다음 결정적인 순간에 터트리는 기발한 구성! <두 개의 달 위를 걷다>에서도 그랬다. 계속 도대체 엄마는 어디로, 왜 간 걸까 궁금하다 못해 나중에는 원망하며 읽었는데 의외의 사실이 드러난다. 그러면서 눈물이 왈칵! 어떤 이는 <바다 바다 바다>보다 <루비 홀러>가 더 재밌다고도 하는데 난 이 책 <바다 바다 바다>가 더 재밌었다.
 

3. <내 남자 친구 이야기>, <내 여자 친구 이야기> 

 내 아이에게 남자 친구, 혹은 여자 친구가 생긴다면 이런 친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책이다. 두 개의 이야기를 서로 다른 인물이 서술하고 있다. 한 권에서 교차하며 두 인물의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지만 이 책은 완전히 별개의 책으로 되어있다. 어느 것을 먼저 읽어도 상관없고 한 권만 읽어도 된다. 그러나 두 개가 같은 시공간에서 일어난 일을 다룬 이야기라는 사실을 안 독자라면 한 권만 읽을 수가 없을 것이다 . 피에르의 음악에 대한 열정이 부럽고 멋졌다. 그러면서 수잔을 위해 그토록 힘겨운 연주를 준비하는 모습은 어찌나 감동적인지. 실존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섞여 있어서 여기서 언급되는 음악가의 음악을 찾아 들으며 감상하기도 했다.
 

4. <엄마가 사라진 어느 날>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사라진다면 아이들의 마음은 어떨까. 특히 아이들에게 엄마의 존재는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말도 없이 사라진다면? 그것도 아무 문제없이 잘 살고 있었는데 말이다. 말도 안 된다고? 그렇지만 우드로의 엄마는 그랬다. 우드로는 엄마가 사라져서 이모집에서 살게 되며 사촌인 집시와 많은 시간을 보낸다. 둘은 서로의 상처를 감추려고 무진 애를 쓴다. 그러나 상처는 무조건 감춘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드러내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진실을 깨닫는다. 이런 책들은 그냥 사건을 따라가고 인물의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인물들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작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교묘하게 인물에게 투영시킨다. 그래서 잘된 작품이라고 하는가 보다. 
 

5. <너도 하늘말나리야>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6학년 아이들의 심리를 잘 묘사했다. 게다가 지금처럼 동화와 청소년 소설이 쏟아지기 훨씬 전에 이금이 작가는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 보며 아픔을 바라보았다. 다양한 환경에 있는 아이들을 골고루 보여줌으로써 어떤 상황이든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제는 우리 어린이문학에서 스테디셀러가 된 작품, 그러니 교과서에도 실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책도... 

  다양한 형식과 다양한 주제로 꾸준히 새로운 작품을 내놓는 작가가 <나도 하늘말나리야>의 후속작인 <소희의 방>을 내놓았단다. 이금이 작가의 책은 참 따스해서 아픈 현실조차 아름답게 바라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건 아마 내가 시니컬한 작품을 좋아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취향을 떠나서 이 작가의 책을 읽고 나면 깊은 내공이 느껴진다. 아, 역시 이금이 작가구나하고 말이다. 항상 현재 여기에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들여다 보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공감하며 읽는다. 이번에 나온 책은 과연 어떤 이야기일까 무척 궁금하다. 아니,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갈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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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이라던가 보수적이라고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물론 사전적 의미를 들이밀 수는 있겠지만 정형화된 틀을 싫어하는 관계로 그 보다는 내가 느끼는 대로 이야기하고 싶다. 역사를 보면 언제 어디서나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가치관이 대립하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같은 마음일 수 없고, 또 그래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그토록 치열하게 대립하는 것일까. 뭐, 그건 내가 걱정하거나 고민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기에 그냥 넘어가야겠다.

가끔 생각한다. 현재를 사는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일까. 성공을 위해서, 혹은 더 근사한 말로 스스로 만족한 삶을 살고 싶어서라고 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주류가 되고 싶어서가 아닐런지. 그렇다면 나는? 글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서 주류가 되고 싶기도 하지만 그럴 자신도 능력도 없거니와 남을 짓밟고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 영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그냥 마음 편하게(비록 속은 끓을지라도) 비주류로 살기로 했다. 

그래서일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니 대개 비주류였던 사람들이다. 체 게바라, 노무현 그리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 또 그들의 공통점은 제 명대로 살지 못했다는 점이다. 물론 죽은 원인은 제각기 다 다르지만. 소로는 젊은 나이였더라도 병으로 떠났지만 나머지 둘은 자살(노무현)과 타살(체 게바라)이었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난 권위적인 것을 무척 싫어한다. 그것이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으나 크면서 더욱 확실하게 드러났다. 어렸을 때는 시골에서 넉넉하지 않은 살림을 꾸려가는 가정의 맏딸이라는 제약 때문이었는지 모범생으로 '생활'했다. 학교에서는 공부 잘하고 선생님한테 인정받는 그런 학생이었다. 집에서는 집안일 잘 도와주고 공부도 알아서 잘 하는.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알려주는 대로만 했으니 어느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정된 공부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부모님이 모두 권위적이거나 억지로 내 삶을 조종하는 분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신기하다. 만약 부모님이 권위적인 것을 앞세우는 분들이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그렇게 고분고분한 모범생으로 자랄 수 있었을까. 모르긴 해도 엄청난 반감을 품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동생도 나와 비슷한 성향인데 의견 일치를 보는 부분이 바로 그거다. 권위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잘 자랐다는 것.

대학교를 졸업할 즈음 다른 친구들은 대기업에 취업한다고 열심일 때 난 일부러 중소기업을 기웃거렸다. 대기업의 그 권위적인 분위기가 정말 싫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생각이었지만... 여하튼 그 정도로 난 권위적인 것을 싫어했고 여전히 싫어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유교의 가부장적인 문화로 어디서나 권위주의가 득실거린다. 권위와 권위주의는 엄연히 다르다. '아버지는 권위가 있다'는 말과 '아버지가 권위주의적이다'라는 말은 의미가 전혀 다르다. 권위는 있어야 하고 지켜야 하지만 권위주의는 그다지(전혀 필요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필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 권위주의가 도처에 깔려있으니 내가 현실에 품는 감정이 좋을 리 없다.

그러던 차에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권위주의를 무너뜨렸다. 아니, 무너뜨리려고 노력했다. 비록 권위까지 버리는 바람에 나중에 부메랑이 되어 본인이 피해를 보았지만. 나는 그의 시도에 박수를 보냈고 그 한 가지로도 좋아할 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줄곧 비주류 인생을 살다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웬만한 사람이라면 그 정도 되면 약간은 주류 흉내라도 내고자 할 텐데 그는 안 그랬다. 오로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옳다고 생각하는 길만을 고집했다. 여기서 대통령으로서 그의 공과를 평가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그를 얘기하는 것이다. 나는 그가 좋다. 신념을 지키고자 애썼고 다른 사람을 돌아볼 줄 아는 그런 마음이 좋았다. 비주류로서 자신이 겪은 아픔을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기에. 그러나 지금 그는 없다. 내가 누군가의 죽음을 이토록 슬퍼하고 안타까워했던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로 슬펐다. 

<체 게바라 평전>

 맨 처음 어떻게 체 게바라를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워낙 얼굴이 많이 알려져서 은연중에 이름이 낯익었는지도 모르지. 그보다 먼저 차(茶)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언젠가 남편이 회사에서 누가 줬다며 티백으로 된 차를 가지고 왔다. '마테 차'란다. 향이 어찌나 진하던지 가뭄에 콩 나듯이 먹곤 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가 바로 그 마테 차가 나오는 것이다. 어찌나 기쁘던지. 체 게바라가 천식 때문에 마테 차를 즐겨 마셨다는 사실을 알고 괜히 반가웠다. 별 것 아닌 걸 가지고 연결시킨다고 할 지도 모르지만 그렇게라도 체를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의사였지만 여행 도중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그들을 외면할 수 없어 혁명의 길로 뛰어든 체. 그 정도는 많은 사람들이 걷는 길이다. 그렇게 혁명을 해서 정권을 잡는 사람들이 있지 않던가. 정권을 잡지는 않더라도 모종의 역할이라도 하는 사람들은 많다. 물론 체 게바라도 처음에는 혁명 정부에서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일을 했다. 그러나 사람의 심리란 권력에 한번 맛을 들이면 빠져나오기 힘든 게 대부분이다. 또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사람은 순순히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예를 보지 못했다. 그러니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생각이 달랐을 것이라는 점은 안 봐도 뻔하다. 결국 체 게바라는 누릴 수 있는 권력을 포기하고 그를 필요로 하는 민중에게 돌아갔다. 어찌 보면 결과가 뻔히 보이는데도 그 길을 택하다니...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닌가 보다. 

체 게바라가 비주류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의사로 살았다면 주류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 길을 버리고 험난한 혁명가의 길을 걸었으니 비주류라고 해도 되지 않을런지. 내가 체 게바라를 좋아하는 이유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끝까지 걸었다는 점이다. 마치 노무현처럼. 우리나라에서는 그의 잘 생긴 외모를 마케팅에 이용한다지.

<월든>

 내 고향은 아주 한적한 시골이다. 지역적으로는 용인이지만 강원도 오지 보다 더 심하다. 그 곳에 저수지가 두 곳 있는데 한 쪽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라 으슥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상하게 그 곳이 좋았다. 해도 일찍 지기 때문에 산책하기도 안성맞춤이었다. 

이 책 <월든>을 읽으며 그 저수지가 떠올랐다. 물론 월든 호수와 우리 동네 저수지는 크기부터 비교가 안 되겠지만 책을 읽는 내내 그 저수지가 연상됐다. 오죽하면 그 곳에서 소로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뭐, 실제로 그렇게 살라면 자신은 없다. 모든 것을 자급자족할 자신도 없거니와 거기서 혼자 지낼 자신도 없다. 그러나 현실이 너무 버거울 때 어딘가로(그 저수지가 가장 먼저 생각나긴 한다.) 도피하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소로도 분명 비주류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단다. 대학을 졸업했으면 근사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다닐 것이지 왜 직접 만든 초라한 옷을 입고 다니느냐며 외면받았던 것이다. 심지어는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숲에 가서 이야기를 해줄라치면 부모들이 아이를 못 나가게 했다지. 그러나 그가 살던 동네에는 훗날 <작은 아씨들>을 쓴 루이자 메이 올컷이 살고 있었단다. 그녀는 소로우로부터 모종의 영향을 받았을 게다.

시민불복종이라고 이름 붙여진 연설을 하지만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다가 그가 죽은 한참 후에야 인정받았고 지금은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거론한다. 소로는 체제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반대하지 않는다. 옳은 것은 지지하되 잘못된 것은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문득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이 생각난다. 

인생을 짧고 굵게 살았던 비주류들. 왜 나는 그들에게 이토록 끌리는 것일까. 아마도 옳은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지만 그들처럼 행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동경하는 것은 아닐런지. 또는 그들도 분명 비주류지만 그것을 핑계로 안주하지 않았기 때문에 존경심을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난 뛰어난 인품과 능력을 가졌음에도 단지 비주류라는 이유 때문에 주류로부터 배척받는 사람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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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에 대한 책을 보고 리뷰를 쓰려는데 갑자기 비슷한 책을 꽤 많이 봤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그것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리뷰 쓰는 것을 미루고 우선 똥에 관련된 책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특히 어린이책에서는 똥에 관련된 책이 유난히 많은데 인간의 본능에 해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창작으로 접근한 책도 있지만(사실 이것은 너무너무 많아서 정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해 보인다.) 그 보다는 과학적으로 접근한 책을 살펴봐야겠다.

1. 똥 과학 박물관

이 책을 보다가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처음 보는 출판사의 책인데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다. 다양한 동물의 똥에 대해 이야기해 주기도 하고 똥을 처리하거나 이용하는 방법에 대한 것도 나온다. 또한 태국에서는 코끼리똥으로 종이를 만들기도 한단다. 너무 깔끔한 오소리는 그것 때문에 여우에게 집을 빼앗기기도 한단다. 여우가 의도적으로 오소리 집 주변에 똥을 여기저기 누면 오소리가 냄새를 참지 못하고 집을 떠나는 것이다. 반면 자기의 똥을 먹는 동물도 있다. 그렇다고 지저분한 동물이기 때문은 절대 아니다. 거기에도 다 지혜가 들어있다. 내용이 깊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흥미를 끌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되어 있다.

2. 화석이 된 흔적 똥
 
전에 이 책을 읽고 썼던 리뷰를 인용한다.

보통의 화석은 처음부터 중요하게 여겨졌으나 똥화석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히 처음부터 거기에 주목하고 중요하게 생각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어른들은 질색을 하지만 아이들은 무척 좋아하는 주제인 똥.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똥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시기를 연구하고 생활을 유추하는 하나의 학문임을 당당히 밝힌다. 처음에는 그냥 평범한 (이미 다 알고 있는)이야기를 펼쳐갈 거라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몰랐던 내용이다. 즉 똥화석을 점잖은 말로 표현하면 분석(糞石)이란다. 한자를 보니 당연한 얘기다. 그러나 이렇게 알려주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그리고 똥화석을 비롯해 발자국이나 알 같은 것은 흔적 화석이라고 한단다. 이렇게 처음부터 예상을 빗나간 내용으로 흥미를 끌었다. 

여기서는 똥화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야기하기도 하고 똥화석으로 알 수 있는 것에 대해 설명도 한다. 게다가 각 장의 끝에는 똥화석 전문가를 한 명씩 소개하고 있어서 귀한 정보가 되었다. 사실 똥화석이 있으면 그것을 연구하는 사람이 있는 게 당연하건만 이렇게 똥화석 전문가라고 이름붙일 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생각지 못했다. 하긴 고기생충학자도 있다는데, 뭐. 이런 많은 사람들 덕분에 우리가 지금 많은 것을 즐기고 누리는 것일 게다. 여하튼 너무 당연한 생리적 결과물인 똥화석을 통해 이렇게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보면 주변에 무심히 지나칠 것은 하나도 없다는 '상식'을 다시금 깨닫는다.

3. 야! 발자국이다

한창 세밀화(원래 이 단어는 잘못되었다며 어떤 명칭을 쓰던데 잊어버렸다.)가 대세일 때 나왔던 책이다. 동물의 똥을 직접 보는 것처럼 그려져 있어 무척 흥미로웠다. 게다가 모임에서 행사를 할 때 출판사에서 이 실물 자료를 전시해줘서 아주 흥미롭게 봤던 기억이 난다.

하얀 눈이 내린 겨울산에서 만날 수 있는 야생동물의 흔적을 따라가면서 만나는 똥도 보여준다. 육식동물인 여우는 가끔 잡아먹은 초식동물의 털이나 뼈도 나온다는데 정말 그랬다.

4.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책. 어린 시절에 이 책을 안 보는 아이가 있을 정도로 유명한 책이다. 어느 학교에서는 6학년에게 책을 읽어주는데 가장 반응이 좋았던 책이란다. 단순히 똥을 싼 범인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각 동물의 똥 모양을 너무 정확히 표현했다. 염소 똥을 까만 새알 초콜릿 같은 염소똥이라고 했던가? 그 새알 초콜릿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만 그걸 먹어 본 사람이라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5. 똥 냄새 나는 책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재를 다루고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아니, 똥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똥에 대한 이야기로 끝난다. 그야말로 다양한 동물의 똥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가득 들어있다.

고양이나 개, 비둘기에 대한 것은 주변에서 많이 보니까 그렇구나하고 넘기지만 공작이나 뱀의 똥 이야기는 새롭다. 그러고 보니 뱀은 똥을 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건만 보는 것만으로도 징그러워 그 외의 것은 생각하질 않았던 것이다. 방귀 냄새에 비해 오히려 똥 냄새는 구수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는 스컹크나 뉴질랜드에만 사는 키위새에 대한 것 등 미처 생각지도 않았던 동물의 '똥'을 보여주고 들려준다.

뼈까지 씹어 먹기 때문에 똥이 하얗다는 하이에나, 먹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달팽이 이야기도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똥이 마려울 때 어떻게 하면 되는지와 안 나올 때 어떻게 하면 되는지까지 이야기한다.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그거'에 대한 이야기군. 덕분에 여기에도 전부 '그거' 이야기밖에 없다. 내 참, 리뷰가 이렇게 똥 이야기만 하긴 처음이네. 그래도 아이들은 무척 좋아하는 책이다.

6. 지렁이가 흙똥을 누었어

이 책은 지렁이 똥에 대해서만 나오지만 그래도 똥을 과학적으로 다룬 책이라 끼워줬다.

이 책은 나오기 전에 그림 작가인 이태수 작가로부터 지렁이 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더욱 궁금했다. 작가가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로 옮겼는데 그 전에 이 책의 그림을 어느 정도 그려놓았었다고 한다. 그런데 시골로 가서 살펴보니 지렁이 똥이 아주 다양하더라는 것이다. 결국 그림을 다시 그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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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적 감수성이 없는지라-특히 시는 더욱 더-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의미하는 바를 깨달은 게 그다지 오래 되지 않았다. 아마도 아이 키우면서 나를 되돌아보고 끊임없이 자문할 때였던 것 같다. 아니면 야생화에 빠져서 도감을 필수품처럼 들고 다니던 때였나? 이름의 의미에 대해 가장 많이 인용할 때가 야생화의 이름을 알 때와 전혀 모를 때의 차이로 설명을 해서 마치 내가 그런 경험을 한 것처럼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인생에 대해 조금은 깊게 생각할 때였다. 물론 그 전에도 시가 가지는 의미는 '알고' 있었다. 그야말로 알고 있었을 뿐이다. 어떤 사실을 알고 있는 것과 내가 그것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 예를 들어 많은 물리법칙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확장시켜 적용하지는 못하는 것처럼 그 시도 내게 그랬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의미가 내게 다가왔을 때의 기분이란. 

그 때의 기분은 마치 이 책에서 트리샤가 어느 순간 글을 읽고 그것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머릿속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느낌이었다고 하는데 내가 그랬다. 그냥 어느 순간 시의 의미가 내게 다가왔다고나 할까. 

  이 책을 봤을 때 <꽃>이 생각났다. 이 책의 주인공인 할머니는 이름을 지어주기를 좋아하지만 모든 것에 이름을 지어주지는 않는다. 자기보다 오래 사는 것들에게만 이름을 지어준다(그러다 보니 거의 무생물이다). 심지어 곧 떨어질 것 같은 문에는 이름을 지어주지 않는다. 전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오래 살다 보니 그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 차츰차츰 떠나는 것을 보고 다시는 그런 아픔을 겪고 싶지 않아 그런 것이다. 일종의 자기 방어인 셈이다. 

어느날 강아지가 찾아오지만 할머니는 밥을 줄지언정 이름을 지어주지 않는다. 그리고 돌려보낸다. 그렇게 여러 달이 지난 어느날 갑자기 강아지가 보이지 않자 할머니는 강아지를 찾아나선다. 그러나 이름을 모르기 때문에 설명을 할 수가 없다. 그 순간 할머니는 깨닫는다. 친구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자신에게 남겨진 게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름을 떠오리는 순간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고 온갖 추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강아지에게 이름을 지어주기로 한다. 러키라는 이름을. 물론 그 후로 강아지와 함께 산다. 

이름이 단순히 어떤 것을 명명하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이야기이면서 누군가가 먼저 떠났다고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이 이야기는 초등 4학년에게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림책 판형이고 글에서 어느 정도 이야기해 주기 때문에 두 명의 아이들과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할머니는 주로 어떤 것에 이름을 붙여주었어?"

"자기보다 오래 사는 것에."

"왜 그랬을까?"

"자기보다 먼저 죽으면 슬프니까."

아이는 의외로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사실 책을 많이 읽었던 큰 아이에 비해 둘째는 만화책만 보는지라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게다가 말주변은 왜 그리 없는지. 그래서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그 부분을 직접 보여주려고까지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다만 다른 친구는 아직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인용하진 못하기 때문(어렸을 때 몽골에서 왔다.)에 약간의 설명을 해줬다.

또 둘째는 강아지를 처음 키울 때 생각이 났는지도 모른다. 갓 태어난 강아지를 처음 데리고 왔을 때 제일 먼저 걱정한 것이 죽을 때였으니까. 지금도 가끔 강아지를 보며 죽을 때를 생각하며 두려워한다. 그러니 할머니 심정에 충분히 공감이 갔나 보다.

"그럼 할머니가 나중에 강아지를 기르기로 한 이유는 뭘까?"

"먼저 죽더라도 완전히 잊혀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서, 강아지도 꼭 자기 보다 먼저 죽는다고 이름을 안 붙일 필요는 없으니까."

뭐, 대충 이런 의미로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두 녀석에게 자기에게 이름이 없다면 어떤 기분이냐고 물었더니 무시당하는 기분일 것 같고 쓸쓸할 것 같단다.

이렇게 간단하게 첫 번째 수업을 마쳤다. 남자 아이라 그런지 표현력도 부족하고(그런데 맘 잡고 쓸 때 보면 아주 못 쓰지는 않는다.) 글 쓰는 것도 어설퍼서 그냥 두면 안되겠다는 경각심에 시작한 수업이다. 이제부터 조금씩 조금씩 해나가야지. 너무 부담주지 말고 재미있으면서도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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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자가 그닥 많지 않은 서재. 

별로 관리도 안 하고 그냥 리뷰만 올린다.  

당근 다른 사람과의 교류도 없다. 

다른 서재를 둘러볼까 생각하다가 눈에 띄는 다른 게 있으면 그거 하느라 싹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헌데 며칠 전에 갑자기 방문자가 엄청나게 찾아왔다. 

그 후로 예전보다 훨씬 많은 방문자가 찾아온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왜 이리 궁금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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