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감수성이 없는지라-특히 시는 더욱 더-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의미하는 바를 깨달은 게 그다지 오래 되지 않았다. 아마도 아이 키우면서 나를 되돌아보고 끊임없이 자문할 때였던 것 같다. 아니면 야생화에 빠져서 도감을 필수품처럼 들고 다니던 때였나? 이름의 의미에 대해 가장 많이 인용할 때가 야생화의 이름을 알 때와 전혀 모를 때의 차이로 설명을 해서 마치 내가 그런 경험을 한 것처럼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인생에 대해 조금은 깊게 생각할 때였다. 물론 그 전에도 시가 가지는 의미는 '알고' 있었다. 그야말로 알고 있었을 뿐이다. 어떤 사실을 알고 있는 것과 내가 그것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 예를 들어 많은 물리법칙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확장시켜 적용하지는 못하는 것처럼 그 시도 내게 그랬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의미가 내게 다가왔을 때의 기분이란. 

그 때의 기분은 마치 이 책에서 트리샤가 어느 순간 글을 읽고 그것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머릿속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느낌이었다고 하는데 내가 그랬다. 그냥 어느 순간 시의 의미가 내게 다가왔다고나 할까. 

  이 책을 봤을 때 <꽃>이 생각났다. 이 책의 주인공인 할머니는 이름을 지어주기를 좋아하지만 모든 것에 이름을 지어주지는 않는다. 자기보다 오래 사는 것들에게만 이름을 지어준다(그러다 보니 거의 무생물이다). 심지어 곧 떨어질 것 같은 문에는 이름을 지어주지 않는다. 전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오래 살다 보니 그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 차츰차츰 떠나는 것을 보고 다시는 그런 아픔을 겪고 싶지 않아 그런 것이다. 일종의 자기 방어인 셈이다. 

어느날 강아지가 찾아오지만 할머니는 밥을 줄지언정 이름을 지어주지 않는다. 그리고 돌려보낸다. 그렇게 여러 달이 지난 어느날 갑자기 강아지가 보이지 않자 할머니는 강아지를 찾아나선다. 그러나 이름을 모르기 때문에 설명을 할 수가 없다. 그 순간 할머니는 깨닫는다. 친구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자신에게 남겨진 게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름을 떠오리는 순간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고 온갖 추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강아지에게 이름을 지어주기로 한다. 러키라는 이름을. 물론 그 후로 강아지와 함께 산다. 

이름이 단순히 어떤 것을 명명하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이야기이면서 누군가가 먼저 떠났다고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이 이야기는 초등 4학년에게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림책 판형이고 글에서 어느 정도 이야기해 주기 때문에 두 명의 아이들과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할머니는 주로 어떤 것에 이름을 붙여주었어?"

"자기보다 오래 사는 것에."

"왜 그랬을까?"

"자기보다 먼저 죽으면 슬프니까."

아이는 의외로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사실 책을 많이 읽었던 큰 아이에 비해 둘째는 만화책만 보는지라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게다가 말주변은 왜 그리 없는지. 그래서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그 부분을 직접 보여주려고까지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다만 다른 친구는 아직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인용하진 못하기 때문(어렸을 때 몽골에서 왔다.)에 약간의 설명을 해줬다.

또 둘째는 강아지를 처음 키울 때 생각이 났는지도 모른다. 갓 태어난 강아지를 처음 데리고 왔을 때 제일 먼저 걱정한 것이 죽을 때였으니까. 지금도 가끔 강아지를 보며 죽을 때를 생각하며 두려워한다. 그러니 할머니 심정에 충분히 공감이 갔나 보다.

"그럼 할머니가 나중에 강아지를 기르기로 한 이유는 뭘까?"

"먼저 죽더라도 완전히 잊혀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서, 강아지도 꼭 자기 보다 먼저 죽는다고 이름을 안 붙일 필요는 없으니까."

뭐, 대충 이런 의미로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두 녀석에게 자기에게 이름이 없다면 어떤 기분이냐고 물었더니 무시당하는 기분일 것 같고 쓸쓸할 것 같단다.

이렇게 간단하게 첫 번째 수업을 마쳤다. 남자 아이라 그런지 표현력도 부족하고(그런데 맘 잡고 쓸 때 보면 아주 못 쓰지는 않는다.) 글 쓰는 것도 어설퍼서 그냥 두면 안되겠다는 경각심에 시작한 수업이다. 이제부터 조금씩 조금씩 해나가야지. 너무 부담주지 말고 재미있으면서도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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