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럼포의 왕 로보 - 세상을 바꾼 한 마리 늑대 이야기
윌리엄 그릴 글.그림, 박중서 옮김 / 찰리북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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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가 '세상을 바꾼 한 마리 늑대 이야기'다. 그래서 행복한 결말을 기대했으나 역시나 아니었다. 커다란 그림책 판형에 80여 페이지라 묵직한 책이다. 1학년 꼬마가 반납하며 재미있었다는 혼잣말에 혹 해서 읽었다.

 

1862년 뉴멕시코 주를 시작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미국이 형성되는 과정이 만화처럼 작은 그림으로 이어져 있다. 첫 페이지 설명에는 그 당시에는 늑대가 자유롭게 돌아다녔지만 유럽인 정착민들이 나타나면서 동물들의 서식지에 변화가 생겼다는 글이 있지만 그림은 원주민들이 이주민(유럽 정착민)들에 의해 쫓겨나는 그림이다. 그래서 혹시 늑대가 원주민을 의미하는 단어일까 살짝 의심하고 다음 페이지를 읽었으나 다음부터는 진짜 늑대에 대한 이야기다.

 

회색 늑대 무리를 이끌고 커럼포 계곡을 누비는 늙은 로보는 영리하고 용감하다.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오면 목장과 농장 주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들의 가축 떼가 공격당할 것을 암시하는 울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로보가 죽기를 바란다. 또한 누군가가 죽여주기를 바라며  현상금을 건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사냥꾼이라도 로보에게는 못 당한다. 그만큼 로보가 영리하기 때문이다.

 

이때 어니스트 톰프슨 시턴이 나타난다. 그렇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시턴 동물기'의 그 시턴이다. 동물의 특징을 관찰하고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 시턴이 사냥꾼이라니. 원래 시턴은 정교한 관찰화를 그리는 데 도움이 됐기 때문에 사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단다. 로보를 사냥하기 위해 나선 시턴은 몇 번의 실패 끝에 로보를 생포하기에 이른다. 시턴이 로보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동물의 습성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시턴은 로보를 잡기 위해 궁리하면서 동시에 로보가 단지 먹이를 얻기 위해 농장의 가축을 습격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람들이 숲을 점령하면서 늑대들의 서식지가 줄어들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로보를 잡았지만 로보는 물과 먹이를 모두 거부하고 이튿날 죽는다.

 

'이 일은 내 인생에서 하나의 전환점이었다고.'고 회상할 정도로 로보의 죽음은 시턴이 변하는 계기가 된다. 이 후 시턴은 두 번 다시 늑대를 죽이지 않았다고 한다. 머지않아 시턴은 <커럼포의 왕, 로보>를 썼고 늑대 종과 큰 위기에 처한 미국의 야생을 보호하는데 남은 생을 바친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시턴은 로보의 죽음 이후의 시턴이었던 것이다. 

 

주인공이 시턴이 아니라 로보였기에 읽는 내내 로보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안타까웠다. 마지막에 로보가 잡힐 때는 혹시 달아나지 않을까, 신기한 힘으로 탈출하지 않을까 기대도 해보았다. 그러나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로보를 담담하게 그리는 작가와 자연을 자연으로 바라보는 시턴의 시선과,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독자의 현실이 얄미웠다. 로보는 죽어서 세상을 바뀌게 만들었다. 시턴이라는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은 로보에 대한 이야기이자 시턴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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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는 위대한 해적 알이알이 명작그림책 42
다비드 칼리 글, 마우리치오 A. C. 콰렐로 그림, 박우숙 옮김 / 현북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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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튼튼한 산 같기만 했던 아빠가 어느 순간 내가 돌봐드려야 할 만큼 쇠약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자식의 마음은 슬프기도 하고 감사하고 죄스런 마음일 것이다. 그런 순간순간을 느낄 때 철 드는 것이라고 말하겠지.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 한 가지는 고등학생 때인지 대학생 때인지로 기억되는 어느 추운 겨울날 약속이 있어 버스타러 가는데 아버지는 경운기를 끌고 나무하러 가는 모습이다. 엄마와 동생과 나는 따스한 방에서 뒹굴고 있다가 약속이 있어 나가던 차였다. 시골의 겨울은 농한기라고 하지만 당시만 해도 나무를 땔감으로 쓰는 시절이라 아버지는 겨울에도 쉬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무엇 때문에 추운 겨울에도 낮잠 한번 주무시지 않고 그렇게 일을 했을까. 아니 쉬고 싶다거나 하기 싫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셨을까. 아버지의 숙명을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자식에게 하는 것도 그렇다. 이래서 내리 사랑이라는 것일까. 그 겨울에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철이 조금 들었던 듯하다. 그 전까지만 해도 부모로만 보다가 그때 처음으로 개인으로서 아버지를 생각했다고나 할까.

 

이 책 <우리 아빠는 위대한 해적>도 내가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궤적을 따른다. 이 책의 주인공은 훨씬 어린 나이에 철이 들었다는 점만 다르다. 주인공의 아빠는 일하러 멀리 떠났다가 여름에만 2주 정도 머문다. 아빠는 집에 오면 주인공에게 갖가지 모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해적으로서 했던 모험 이야기를. 그 이야기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고 다양한 사건들이 등장한다. 그러다 아홉 살 여름에 아빠는 오지 않고 전보가 도착한다. 엄마는 말 없이 주인공을 데리고 아빠에게 간다. 해적인 아빠를 보러 가려면 배를 타야 하는데 기차를 타고.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만난 아빠는 지금까지 알고 있던 아빠가 아니다. 그리고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날'이기도 하다.

 

해적으로 모험을 한 줄 알았던 아빠가 사실은 타국의 광산에서 석탄 캐는 일을 했던 것이다. 물론 그동안의 이야기는 모두 거짓이었고. 주인공은 아빠를 사랑하긴 하지만 거짓말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다 어느 날 지하실에서 아빠의 모습을 보고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바다로 나가고 싶어했으나 돈을 벌기 위해 광산으로 가야만 했던, 그래서 자신의 꿈은 이야기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광산이 문을 닫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고 후 처음으로 간 광산에서 진정으로 아빠를 이해하게 된다.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그동안 아빠가 들려주었던 모험 이야기에 등장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물이 있는 바다가 아니었을 뿐 광산은 그들의 희망호였고 동료를 집어삼킨 바다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제야 인정한다. 아빠는 해적이 아닌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아빠에 대한 시선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책이다. 거짓말 했다고 따지지 않지만 이해하지 못해서 느껴지는 거리감이 독자에게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아빠에 대한 오해가 풀렸을 때 사랑과 감동이 더 배가되었을 것이다. 이때 사랑은 주인공의 아빠에 대한 감정이요, 감동은 주인공이 아빠를 이해하는 깊이에 대한 것이다. 독자는 어느 순간 주인공이 되었다가 다시 빠져나와 독자가 되는 두 가지 경험을 한 셈이다. <피아노 치기는 지겨워>나 <적>에서 만났던 다비드 칼리는 유쾌하게 비판하는 작가라는 인상이었던 데 반해 이 책은 인생의 깊이와 세상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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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지공주와 봉투왕자 사계절 그림책
이영경 지음 / 사계절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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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지와 봉투의 차이가 뭘까. '옛날 옛날 어느 작은 나라에 비닐봉지와 종이봉투가 오순도순 모여 살았어요.'로 시작되는 이야기로 보아 여기서는 비닐봉지, 종이봉투로 둘을 구분한다. 솔직히 읽는 내내 봉지와 봉투가 확실하게 자리를 잡지 않아 헷갈렸다. 그래서 비닐봉지를 되뇌이며 봉지는 비닐이고 봉투는 종이라는 사실을 계속 주지시켜야했다.  

 

사이좋게 지내던 봉지들과 봉투들은 어느 날 서로를 헐뜯기 시작하다 결국 두 나라로 갈라지고 만다. 그런데 여기에 봉지판 로미오와 줄리엣이 등장한다. 봉지공주와 봉투왕자가 서로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림을 보면 봉지공주는 한복처럼 빵빵하게 부풀린 봉지로 표현했고 봉투왕자는 편지봉투 모양으로 표현했다.  

 

봉투왕자가 봉지공주를 만나러 가는 중에 봉지나라가 봉투나라를 공격하고 만다. 딱풀로 봉투나라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풀칠을 해댄 것이다. 사랑하는 봉지공주를 만나러 가던 봉투왕자는 그 소식을 듣고 나라로 되돌아가 열심히 싸운다. 싸움을 이길 즈음 궁지에 몰린 봉투왕자는 그만 물에 빠지고 만다. 종이가 물에 닿았으니 이제 끝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봉투왕자를 기다리던 봉지공주가 떠내려오는 봉투왕자를 보고 구해주려고 하나 봉지는 바람이 빵빵해서 봉투를 잡을 수가 없다. 과연 봉지공주는 어떻게 했을까. 

 

그림 분위기는 <아씨방 일곱 동무>와 비슷하지만 내용은 웃음을 참을 수 없게 현대적이다. 게다가 어린이 책에서 표준어를 써야 한다는 상식을 깬다. 그런데 싸움(전쟁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약하다.) 후 두 나라의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도리가 없다. 게다가 왜 싸웠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갑자기 싸웠고 왕자가 물에 떠내려가서 시선이 거기로 옮겨지고, 끝이다. 뭔가 이야기가 이어지다 만 기분이라 당황스럽다. 솔직히 전체적인 서사로 보자면 뭔가 부족하다. 그러나 읽는 동안 웃음은 확실하게 보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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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나의 채소밭 - 2018 볼로냐 국제 어린이 도서전 라가치 상 수상작
소피 비시에르 지음, 김미정 옮김 / 단추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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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도 얼마 없고 그림도 단순한 그림책이다. 그러나 책장을 한 장 한 창 넘길 때마다 마음이 푸근해지고 넉넉해지는 기분이 든다. 저자는 어린 시절 방학 때 매주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갔던 것을 토대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흔히 이야기에는 절정이 있어야 한다지만 여기기에는 절정이 없다. 아니, 있긴 하다. 그러나 두근거리며 어떻게 됐을까 기대할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책을 다 읽었을 때 '좋다'는 느낌이 절로 든다.

 

주인공은 매일 아침 집을 나와 학교에 갈 때 동일한 곳을 지나간다. 어떤 때는 잡초만 무성하게 있기도 하고 어느 순간 잡초가 사라지고 흙이 드러나고, 그 다음에는 고랑이 생긴다. 무언가 작은 싹이 올라오기도 한다. 그 사이에 바람이 세게 불고 비가 와서 밭에 나가지 못하는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라는 걸 나중에 이해한다. 

 

주인공이 학교 가며 만나는 밭의 모습이 나오고 다음에는 '나는 몰랐어요.'로 시작하며 밭을 밭답게 하기 위해 누군가가 수고하고 있다는 걸 알려준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바로 시장에 갔을 때 알레나 아주머지 밭에서 나온 것들을 만나는 부분이다. 물론 그 전에 밭에 있던 것들이 모두 사라졌다며 걱정하던 장면 다음에 나와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즉, 이 부분이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내 안에 숨겨져 있던 감성 때문인지 농사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 전에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 보니 당연한 건 하나도 없고 누군가가 애를 써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는 중이다. 점점 문명화되는 사회에서 그런 부분을 등한시하는 현재의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나저나 우리도 직접 재배한 것을 바로 판매하는 직거래가 활성화되어야 서로 윈윈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게 일상이 되는 날을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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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바와 사자 세트 - 전2권 야쿠바와 사자
티에리 드되 글.그림, 염미희 옮김 / 길벗어린이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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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녀 위니>를 읽다 보면 거무칙칙했던 위니의 집이 화사한 색깔로 바뀌는 걸 보며 어린이들이 그 책을 좋아하는 이유를 절로 알게 된다. 그렇다면 흑백 그림책은 어떨까. 글도 없고 흑백인 셜리 휴즈의 <높이 더 높이>를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면, 그림의 색과 호불호가 필요충분조건은 아닌 듯하다. 그럼에도 어린이보다는 어른이 흑백 그림책을 좋아하는 것만은 틀림없다.

 

  흑백 그림책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한동안 흑백 그림책을 만나지 못하다가 <야쿠바와 사자>를 보고 한 눈에 반했다.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온통 검은 한 면에 글이 있다. 검은 배경에 얹혀 있는 글이 아니라 오로지 글을 위해 존재하는 검은 면. 아주 잠깐, 잉크가 걱정될 정도로 까맣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축제가 열리는 마을의 모습은 경건하다. 문득, 만약 색상이 화려한 그림이었다면 엄숙하고 경건한 이 축제의 분위기를 표현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선이 굵고 윤곽이 뚜렷하지 않은 남자들의 모습, 숲을 마주보고 있는 소년의 모습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이 부족은 혼자 사자와 맞서는 용기를 보여야만 전사가 될 수 있단다. 흔히 그렇듯, 주인공 소년 야쿠바는 무척 용감해 보인다. 야쿠바에게 이런 종류의 과제는 식은 죽 먹기처럼 보이지만 누구나 짐작하듯이 어떤 시련이 닥칠 것이다. 그러니까 이야기가 두 권이나 있겠지.

 

  그렇다. 정작 사자를 맞닥뜨렸지만 그 사자는 이미 싸우고 왔기 때문에 지쳐서 야쿠바는 쉽게 사자를 잡을 수 있다. 그런데 사자의 깊은 눈동자는 소년에게 애원하는 것이 아니라 야쿠바가 스스로 선택하도록 말을 건다.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를. 책에서는 사자의 생각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야쿠바의 마음임을 알 수 있다. 어차피 마을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야쿠바가 용맹한 사자와 힘겹게 싸웠는지, 다친 사자와 쉽게 싸워 이겼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결과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야쿠바에게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 야쿠바는 선택을 해야 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뛰어난 남자로 인정받는 대신 비겁하다는 자기 안의 목소리를 안고 살아가느냐, 스스로 고귀한 마음을 가진 어른이라고 여기지만 무리 안에서 무능력한 남자로 살아가느냐 그것이 문제다. 그런데 야쿠바는 그다지 망설이지 않는다. 이른 아침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망설임 없이' 마을로 향한다.

 

  비록 야쿠바는 스스로 떳떳하고 뿌듯할지라도 마을에서의 위치는 그런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아니, 야쿠바도 그런 것을 바라지 않는다. 모든 것을 혼자 감내할 뿐이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전사가 된 친구들과 달리 야쿠바는 가축을 지키는 일을 맡는다. 그야말로 하찮은 일을. 그리고 1권에서는 이렇게 끝난다.

 

"마을의 가축을 습격해 오던 사자들의 발걸음이 끊긴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이 한 문장의 의미를 야쿠바 마을 사람들은 몰라도 독자들은 안다. 그렇다면 2권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당연히 사자와 연관된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2권에서 드디어 사자의 이름이 나온다. 키부에. 사자 무리의 우두머리인 키부에는 자신들의 무리를 위해서 사냥을 해야만 한다. 문제는 전에 없던 가뭄으로 인해 먹을 것이 없다는 것, 그래서 야쿠바의 마을로 내려가야만 한다는 사실이 키부에를 망설이게 한다. 여기서는 키부에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냥 있으면 무리를 지키지 못하는 무능한 대장이 되는 것이고 마을로 내려가면 야쿠바와의 신뢰를 깨트리는 것이다. 과연 키부에의 선택은 무엇일까.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지, 신뢰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한데 우리는 너무 남을 의식하고 사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보통의 우리들 같은 마음이었다면 결코 야쿠바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야쿠바는 진정 용기 있는 소년이다. 마찬가지로 키부에는 한 번 보여준 신뢰를 절대 깨트리지 않고 위기를 잘 극복한 현명한 사자였다. 야쿠바의 말처럼 둘은 친구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 책은 반드시 두 권을 함께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2권 마지막 장을 읽을 때의 그 뭉클함을 결코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몇 번을 읽어도 같은 뭉클함이 느껴진다. 아이들에게 이 책을 권해 줄 때 끝까지 읽으면 엄청 감동적이라는 밑밥을 깐다. 그리고 반납할 때 반드시 어땠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대개 감동적이었다거나 재미있었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내가 느끼는 것처럼 안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야쿠바와 키부에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끼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해본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책을 펼쳤는데 덮을 때 이런 기분을 느끼면 그 날은 하루 종일 행복하다.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의 행복함이 아직도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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