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학교니까! 라임 청소년 문학 15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김윤수 옮김 / 라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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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점 아름다운 이야기가 끌린다. 너무 어둡고 마음 아픈 이야기는-그것이 대개의 사람들이 겪는 실제라고 할지라도-이제 피하고 싶다. 간접적이라도 그렇게 힘들게 생활하는 청소년들을 만날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일까. 한때는 현실을 무시한 아름다운 이야기에 대해 삐딱한 시선으로 보곤 했는데, 나도 나이가 든다는 증거인가 보다.

 

  첫 번째 이야기를 거의 다 읽을 때까지 이것이 단편인지 몰랐다. 페이지가 많이 남았는데 이야기가 거의 결말을 향해 가서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세 개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 단편모음집이었던 것이다. 첫 번째 이야기인 <약속의 장소, 약속의 시간>을 읽으며 마음이 따스해지는 것을 느꼈다. 물론 처음에는 전학생 유가 말도 별로 없고 행동도 민첩하지 못하며 연약한 모습이라 약육강식의 교실 법칙에 의해 타깃이 되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 특히 육상부에 제멋대로인 듯한 도모히코가 최신 게임을 갖고 있는 유의 정체를 알게 되었으니 더 위험해지리라 예측하며 마음 아플 준비를 하고 읽었는데 전혀 반대라 편하게 읽었다. 아니, 아름다운 이야기라 멋진 가을을 마음껏 즐기며 읽었다.

 

  두 번째 이야기의 마치는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이야기 하지 못해 고치고 싶어한다. 중학교에 올라가서 고치겠다고 마음먹지만 학급임원을 선출하는 상황에서 또 다시 다른 사람의 의견에 휩쓸리고 만다. 미나미는 반장이고 자기주장이 확실해서 둘의 갈등상황이 벌어지는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이 역시 기우였다. 오히려 서로의 비밀을 공유할 정도로 친해지고 심지어 네 명이 여름방학 동안 과제를 열심히 하며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긴다. 또한 우유부단하고 소극적인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마치가 서서히 변한다. 이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학교는 성적과 친구관계가 걱정되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변화 가능성이 있고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마지막 이야기는 모호해서 몇 번을 다시 읽었다. 내용이 아니라 인물들의 관계도가 모호하다. 잇페이가 고등학교 영화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여주인공을 섭외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주변 인물들을 살펴볼 수 있다. 가만히 살펴보니 잇페이 부모님은 아마 첫 번째 이야기에서 주인공이었던 도모히코가 아닐까 싶다. 중학교때 육상부를 했고 공부를 그다지 못했으며 친구와의 약속 때문에 약을 개발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미래에서 온 유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미하루를 구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서 우미노는 두 번째 이야기와 겹쳐지는데 이름이 다르다. 그래서 다시 읽어보고 이름을 찾아보았지만, 없다. 동일한 인물이건 아니건 상관없으니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학생이라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 학교. 그런 학교생활이 마냥 즐겁기만 한 학생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그곳에 적응하고 지내야 한다. 적응하기 힘들 만큼 어려운 문제만 없다면 아이들은 나름대로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고 결국 성장하게 된다. 마치나 잇페이처럼. 세 이야기가 관통하는 지점은 친구가 아닐까 싶다. 남을 위해 희생하는 정도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함께 하는 것, 그것은 비단 학생들 뿐만 아니라 인간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미래에서 온 유가 그래도 학교에 다니길 잘 했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다. 세 편의 잔잔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아이들이 조금씩 성장해가는 모습이 아름답다)가 이 가을을 풍요롭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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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대 50 라임 청소년 문학 11
S. L. 파월 지음, 홍지연 옮김 / 라임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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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선과 악으로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일이 있으며 옳은 선택이란 과연 무엇인지, 혹은 옳다고 단정할 근거가 무엇인지 애매한 경우가 있다. 일례로 고기를 좋아하는 나는 채식주의자를 존경하지만 내가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특별한 의지와 신념을 가지고 채식주의를 고집하는 사람에게 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은 참으로 생각없고 야만적인 사람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내 기준에서 보자면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채식주의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일 뿐이다.

 

한때 한창 이슈가 되었던 동물 실험도 나로서는 어떻게 판단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화초를 기르다 보면 가지가 너무 위로 자라기 때문에 제대로 균형이 안 잡혀서 예쁘질 않아 화원에 물어보면 가지치기를 해 줘야 한단다. 그래서 큰 맘 먹고 가지치기를 하려다 문득 깨닫는다. 과연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가지를 마음대로 잘라도 될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한 것을 뿐이지 않을까라는 생각 말이다. 이처럼 식물에 대해서도 배려(?)를 하면서 동물에 대한 것은 잘 모르겠다. 그것으로 인해 과학과 의학이 발전했기 때문에. 이것은 다분이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것이 또한 내 한계라는 것도 잘 안다.

 

이 책은 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길버트가 사춘기라서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고, 그래서 사사건건 반대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길버트의 부모는 지나치게 자식을 온실 속에서만 키우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이 나라도 그렇구나라며. 어느 나라나 부모 자식간의 갈등은 비슷한 모양이라는 생각도 들면서.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방향은 좀 다르게 나아간다. 길버트가 순전히 반항으로 시내에 나갔다가 환경보호론자인 주드 형을 만나면서 길버트의 반항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길버트가 주드 형을 만났을 때는 공원에 있는 나무를 못 베게 하는 것이었지만 그 다음에는 동물을 보호하는 일을 하고자 한단다. 실험실에서 고통받으며 수단으로 쓰이고 있는 동물들을 다음 목표로 하고 마침 길의 아버지가 그 실험실 연구원이었던 것이다. 길이 처음에는 주드 형을 돕는 일이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일이자 자신도 어떤 큰 일을 해낸다는 뿌듯함에 적극 협조하지만 마침 부모님에게 자신이 태어나게 된 경위를 듣고는 갈등한다.

 

소설은 작가가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해 가든 옳고 그른 방향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적어도 작가가 지지하는 방향은 정해져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는 있지만 보편적인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길버트는 처음에 동물이 학대받으며 실험에 이용되고 있다는 주드의 이야기를 듣고 그 현장을 고발하고자 적극 가담하지만 직접 그 현장을 본 후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주드가 그 동물들을 풀어주려고 한다니까 자기 아버지가 실험하는 동물은 빼돌리려고 한다. 주드의 말대로 자기 한테 적용할 때와 남에게 적용할 때가 달랐던 것이다. 물론 주드의 말이 곧 작가의 말이기는 하지만 작가가 여기서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했다고 생각한다. 주드의 편도, 길버트의 편도 들지 않음으로써 딜레마 상황을 잘 빠져 나갔지만 다른 실험용 동물은 사라진 반면 아버지의 쥐만 남도록 하면서 길버트의 생각을 그대로 실천에 옮겼다. 즉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내가 하는 건 괜찮고 남은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길버트의 행동들이 분명 잘못된 것이고 책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셋은 그냥 덮고 만다. 그에 대해서는 어떠한 이야기도 하지 않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과연 이것이 진정한 해결책일까. 잘못을 해도 아버지가 그늘이 되어주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하는 듯해서 영 불편했다. 길버트의 온갖 반항과 동물에 대한 일시적인 감정은 단지 가족의 화합을 위한 도구였던가. 뭐,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하지만 그것이 길버트의 변화를 이야기 하기에는 부족했다. 작가가 좀 더 소신을 가지고 이야기를 이끌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작가는 사회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가족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기 위해 제목도 이렇게 지은 것이겠지만 책이란 그 당시의 사회를 담고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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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칠드런 - 2014 제8회 블루픽션상 수상작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76
장은선 지음 / 비룡소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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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이야기지만 결코 미래가 아닌 과거의 이야기. 그러나 상황 설정으로 보나 과학의 발달 정도를 보면 분명 미래다. 단, 미래의 선택받지 못한 청소년들의 이야기라는 점. 그렇다면 과거, 그러니까 현재 중년 세대들이 고등학생이었을 때, 그들의 생활은 미래의 선택받지 못한 잉여들의 생활이나 마찬가지로 비참했다고 볼 수 있다. 이유없이 맞아야했고 이유가 있으면 더욱 맞아야 했으며, 아직 어른(그래야 비로소 인간으로 대우받는다.)이 아닌 청소년이라고 불리는 시기에 겪어야 했던 온갖 부당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만 그것을 결코 '과거'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멀지 않은 미래일 뿐.

 

문도새벽이 어느 사립고등학교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새벽은 이미 인간으로서의 대우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시간적 배경이 멀지 않은 미래로 설정되었지만 이 고등학교 울타리 안에서만큼은 과거와 지나치게 흡사하다. 다만 새벽의 입을 통해 간간이 들려주는 등록아동들의 삶으로 미루어 밖은 과학이 발전한 미래가 맞다는 것을 짐작할 뿐이다. 이미 인간의 수명을 통제하게 되면서 죽는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에 인구를 강하게 통제하고 아이를 키우려면 엄청난 세금을 물어야 한단다. 즉 돈 있는 사람만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나 법을 어기는 사람이 있게 마련인지라 그렇게 몰래 키우다 들켜서 수용시설로 오게 된 아이들을 헤이하이즈라고 부른다지. 문도새벽의 부모님은 어느 날 갑자기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졸지에 이런 학교로 오게 된 것이다. 사람의 수명까지 통제하게 되는 미래에서도 불의의 사고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좋은 유전자만 골라서 물려받았기 때문에 시험에서 간단히 1등을 할 수 있는 새벽과 달리 이오는 정말 열심히 해서 일등을 한다. 새벽이 학교에 갔을 때 유일하게 호의적이었던 이오는 마음이 좋기 때문이 아니라 가진 자의 여유 때문이었다는 것을 새벽은 나중에야 안다. 일등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성인으로 나갈 자격을 얻을 수 있으므로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생성된 자신감이 아니라 결과에 의해, 타의에 의해 얻어진 자신감은 그만큼 위험하다는 사실을 이오를 통해 보여준다. 새벽이 별다른 노력도 없이 1등을 하자 너무 쉽게 무너져버리는 이오를 통해서.

 

새벽은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말도 안 되는 감옥같은 학교를 바꾸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밖에 있는 사람들이 과연 그들의 현실을 모르기 때문에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것일지 의문스럽다. 이미 사회는 가진 자들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선택받지 못한 이삼류 시민들에게는 오로지 1등만 제대로 된 성인 자격이 주어지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분명 새벽과 그 친구들이 비인간적이고 말도 안 되는 현실을 고치기 위해 애쓰고 결국 그렇게 될 것을 암시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미래가 결코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청소년들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래도 새벽의 앞날은 적어도 지금보다 나아질 수도 있겠다. 세상은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진보하고 있으니까. 물론 잠시 후퇴하기도 하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어쨌든 좋은 방향으로 나아지는 것은 틀림없다.

 

새벽과 그 친구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 저렇게 비인간적이고 비열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싶다가도 문득 그것이 지금 중년 세대들이 거쳤던 삶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헛웃음이 나온다. 아차, 그들이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살았었지.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 사회에서 윽박지르고 억압해도 어느 정도 통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금 청소년들은 적어도 그때 보다는 아주 조금 나아졌으리라 믿고 싶다. 아직도 오로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기는 하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 않을까. 아니, 그럴 것이라고 자기 최면을 걸어 본다. 부디 지금의 청소년들은 이 이야기에 공감하지 않기를, 부모 세대가 들려줬던 이야기라고 여기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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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아이들 라임 청소년 문학 8
다마리스 코프멜 지음, 김일형 옮김 / 라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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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읽고 나면 순간 할 말이 없어진다. 등장인물 중 누구를 비난할 수도 없고 이야기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라고 회피할 수도 없으니까. 피해자는 있는데 특정 가해자는 존재하지 않는 그런 것. 그래서 사람들은 간혹 '너희들이 인생을 열심히 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어른으로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 사회적 문제이고 그런 사회를 만든 것은 그런 말을 하는 어른이니까.

 

마르시우도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고아원에 맡겨졌고 거기서도 노력을 하든 하지 않든 힘든 생활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아이를 낳고 책임도 지지 않는 마르시우의 엄마도 문제지만 그런 상황이 될 때까지 사회에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게다가 고아원에서의 열악한 환경에 대해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다. 단지 아이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거리의 아이들보다는 너희들이 낫다고 착각하는 어른들이 있는 한 바뀌기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작가가 거리의 아이들을 소재로 글을 쓰기 위해 직접 상파울루에 찾아갔다가 그곳의 참상을 목격한 뒤 브라질에서 10년 간 생활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어느 정도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고 여겨도 될 것이다. 어쩌면 작가 소개를 먼저 읽고 책을 읽었기 때문에 책을 읽고 나서 그 나라 고위 관리자들 혹은 힘 있는 사람들에게 화가 났다.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고 정치가 안정되었다면 적어도 이 정도는 아닐 것 아닌가. 하긴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보면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마르시우는 비록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지만 의지가 곧고 굳기 때문에 나중에는 어떻게든 괜찮은 사회인으로 자리잡으리라 기대한다. 고아원에서 도망쳐 나와 거리의 아이가 되었을 때도 범죄가 될 만한 일에는 손도 대지 않는 걸 보며 계속 그러길 간절히 바랐었다. 그런 상황에서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져드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텐데 마르시우는 그래도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조차 부당한 압력에 굴하지 않는 걸 보니 소설의 주인공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그런데 자립해서 어느 정도 기반도 닦고 인정도 받았는데 가구공장에서 저녁마다 클럽에 가서 술 먹고 불성실해지는 걸 보며 마르시우가 자신을 잃어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특별히 나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초심을 잃은 것 같아서. 그토록 어려운 상황도 잘 이겼는데 왜 이제 정신을 못 차리느냐 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파울루로 가서 새로운 삶을 살기로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가진 돈을 몽땅 잃어버리고 다시 예전처럼 거리의 아이가 될 뻔한다. 하지만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만나 다시 희망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아마 마르시우라면 충분히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거리의 아이들이 되어 부랑자가 된 동생들도 제대로 된 길로 이끌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다시 뜨듯이 동생들은 내일 다시 찾아가서 진심으로 설득하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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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과수원을 지키는 소년 라임 청소년 문학 9
윌리엄 서트클리프 지음, 이혜인 옮김 / 라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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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뱅크시의 작품을 살펴보다 발견한 분리장벽 그림. 낡은 장벽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 마치 장벽 구멍으로 바다가 보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곤 한다.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장벽이라는 사실을 잠시 망각한 채 공사장 울타리 정도로 생각하고 멋지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다 그것의 실체를 깨닫는 순간 암담한 현실로 돌아온다.

 

  사람들이 아무리 뭐라 그래도 꿈쩍 않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며 기가 막히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런 책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조금 위안이 되고 약간의 희망이 보이는 듯하다. 다만 그들에 의해 씌어진 책이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이 쓴 책이라는 사실이 씁쓸하지만 말이다. 흔히 피해자의 눈으로 그려지는 이야기는 많아도 가해자의 눈으로 그려지는 이야기는 찾아보기 쉽지 않은데 이 책은 가해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피해자의 모습이라 인상적이었다.

 

  팔레스타인인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조슈아는 엄마와 함께 팔레스타인 사람을 극도록 경멸하는 리브 아저씨를 따라 이스라엘 정착촌인 아마리아스에서 살게 된다. 한창 사춘기이기도 하지만 뭔가 자신의 신념과 맞지 않는다는 느낌 때문인지 조슈아는 리브 아저씨와 사사건건 부딪친다. 비록 조슈아 아버지가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죽었지만 아버지의 평소 행동을 보면 개인의 신념과는 무관한,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총을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집에서는 절대로 군복 입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리브 아저씨는 정반대의 사람이니 조슈아가 싫어하는 것도 당연하다. 사실 나중에는 결국 화해하고 함께 살게 되지 않을까 짐작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조슈아는 우연히 땅굴을 발견해서 이웃 마을이자 원수와 같은 나라인 팔레스타인으로 넘어가지만 위기에 처한 조슈아를 구해준 팔레스타인 소녀를 직접 보고 나서 가치관에 혼란을 느끼기 시작한다. 수도 없이 들었던 말, 분리 장벽 저편에는 우리를 내쫓고 죽이려고 하는 원수가 산다는 그 말이 과연 사실일까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곳에서나 변화의 시작은 작은 의심이 아닐런지. 자신을 도와준 릴라 가족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마리아스에 있는 릴라네 올리브 과수원을 잘 가꾸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일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철저히 세뇌된 새아버지 같은 사람들은 절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조슈아를 도와주다 크게 다친 릴라 아버지를 위해 결국 팔레스타인으로 몰래 들어갔다 나오다가 척추에 손상을 입어 하반신 마비가 되고 만다.

 

  과연 조슈아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그곳에 얼마나 될까. 어느 곳이나 올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있겠지만, 공격 받을 팔레스타인 땅을 구경하기 위해 언덕에 올라가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리브 아저씨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꼬인 매듭을 풀 날이 올런지 모르겠지만 조슈아와 같은 사람이 차츰 늘어가기를 기대한다. 그들 내부에서 이런 목소리가 나온다면 더욱 좋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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