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자연사 박물관 미래그림책 10
에릭 로만 글 그림, 이지유 해설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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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림책을 무척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처음에는 아이에게 읽어주기 위해 그림책을 선택했다가 이젠 내가 아이들보다 더 열광하는 매체가 되어 버렸다. 간략한 글과, 글을 단순히 보조하는 수단이 아니라 글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거기엔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삶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글이 아예 없는 그림책은 어떨까. 당연히 훨씬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단지 책장을 넘긴다고 해서 그 많은 이야기들이 독자에게 말을 거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대화란 주고 받는 것을 의미하듯이 그림책을 볼 때도 독자가 책에 말을 걸어 가며 마음을 열고 바라볼 때에만 책도 독자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다 보여준다. 그렇지 않고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서는 절대 많은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이 그림책이며 그 중에서도 특히 글자 없는 그림책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글 없는 그림책에 빠지는지도 모르겠다. 덮었던 책장을 펼 때마다 새로운 것을 느끼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자연사 박물관이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자연사 박물관이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졌었다. 겉표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공룡의 눈과 얼굴만으로도 아이들은 충분히 매력을 느낄 것이다. 어딘가 신비감이 느껴지는 것 같으니까. 이제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첫 번째 그림이 나오는 장면은 벌써부터 특이한 모습을 보여준다. 창문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그림이다. 창틀로 나뉘어진 유리창 문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단순히 밖의 풍경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한 칸의 그림은 아래 칸의 그림과 시간차를 보여준다. 어떤 새가 나뭇가지에서 날아내려와 어느 집으로 향해 날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번개가 쳐서 으스스한 느낌을 자아낸다. 무심코 책장을 넘기면 각 장면이 연속된 것이라는 걸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나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그리고 드디어 제목이 나오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려 한다. 박물관 안에서 공룡 뼈들만 앙상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을 무심코 바라보는 새. 그 새는 박물관 이곳 저곳을 날아다니며 여유를 부리고 있다. 날카로운 공룡 이빨 위에도 겁없이 앉아 있다. 그 눈망울은 얼마나 똘망똘망한지 모르겠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기 같은 눈동자다. 호기심에 가득차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 모습 같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다시 번개가 친다. 그 번개불 때문에 벽에는 무시무시한 그림자가 생긴다. 원래 공포영화에서도 이런 장면이 제일 무서운 법이다. 무언가 사건이 일어날 것만 같은 암시를 주는 번개. 과연 새에게는 무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일까. 화석처럼 굳어 있는 박물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겠냐만 혹 모르는 일 아닌가. 

그렇다. 만약 계속 새가 박물관을 돌아다니는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그림책이었다면 이처럼 재미있게 보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랬다면 칼데콧 아너 상을 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 후엔 정말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새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시간도 마치 새를 따라 흘러가는 듯하다. 왼쪽은 화석이 된 현재라면 점점 오른쪽으로는 책의 여백이 없어지며 색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어디 그 뿐인가. 공룡도 서서히 살을 갖추기 시작한다. 두 페이지 가득 공룡이 그려져 있고 왼쪽은 뼈만 앙상하게 있고 오른쪽은 완전히 살아있는 공룡의 모습을 하고 있는 부분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영화 <미이라>에서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영원한 생명을 원했던 악당이 다른 사람의 피와 살로 자신의 형태를 갖추어가는 모습이 연상된다. 좀 끔찍하긴 하지만.

그리고 그 다음엔 환상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하늘을 유유히 날고 있는 새와 익룡이 보인다. 하늘? 언제 하늘이 있었지. 분명 새는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는데 말이다. 이처럼 그림책에서 환상적 요소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는 훌륭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작은 새는 아무리 익룡이 쫓아와도 유유히 날기만 한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자신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듯이. 하지만 새는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이 아니다. 공룡이 갑자기 목을 드는  바람에 놀라서 방향을 바꾸다 그만 어느 무시무시한 공룡입으로 돌진하고 만다. 그 순간 작은 새의 표정은 또 어떤가. 그리고 이어진 그림. 푸르죽죽한 먹구름이 두 페이지 가득하고 공룡은 입을 다물었는데 거기엔 깃털이 날리고 있다. 그럼 작은 새는... 천방지축 날아다니더니만 결국 일을 내고 말았구나. 공허한 하늘이 그걸 의미하는 것일까. 아마도 아이들은 여기서 순간 멈칫할 것이다.

하지만 다음 장을 넘기면 탄성이 절로 난다. 아, 작가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가장 아슬아슬한 순간을 작가는 능청스럽게 빠져나가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아니, 작은 새가 빠져나간다고 해야 하는 것인가? 앞부분에서 왼쪽이 현재이고 오른쪽으로 갈수록 살아있는 과거였다면 이젠 반대로 왼쪽이 과거가 되고 오른쪽이 현재가 된다. 점점 입체적이었던 공룡이 뼈만 앙상한 화석으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여러 공룡들이 화석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하나라도 놓칠까 봐 보고 또 보게 된다. 게다가 환상으로 들어간 동안 페이지에 여백이 하나도 없었던 반면 이제 다시 여백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여백 하나에도 대단한 의미를 두고 존재하도록 장치한 작가의 세심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새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날아가 버리지만 이미 독자들의 마음 속에는 대단한 놀이가 펼쳐진 후다. 그리고 더이상 박물관은 단순히 움직이지 않는 화석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그런 장소가 아니다. 그곳도 살아있는 역동적인 공간이다. 한바탕 신나게 환상 속에서 놀고 나와서는 휴 하고 길게 숨을 쉰다. 그러면 마음에 쌓여 있던 모든 것이 말끔히 날아가는 기분이다. 글은 하나도 없었지만 이 모든 것을 그림이 이야기해 주고 있다. 만약 여기에 글이 있었다면 내가 느꼈던 이 많은 것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을까. 글쎄, 단언컨대 결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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