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운, <법구경 마음공부>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집착은 무서운 것이며, 위험한 것이다. 쇠에서 나온 녹이 쇠를 삭히듯이 사람은 자신의 집착으로 자기 스스로를 망치고 있다. 비구들은 어떤 공양물이든 풍족하기를 바라지 말고, 집착해서는 안 되느니라.”(89쪽)


수행자가 집착(번뇌)으로 인해 자신을 망치고 있으니, 집착을 버리라는 뜻이다. 이 게송이 세간에 던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법구경》 제42번 게송에서도 ‘상대방이 주는 피해보다 매우 심각한 것은 자신의 그릇된 마음’이라고 하였는데, 모두 같은 의미이다. 외부의 적으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일어난 분열로 자신이 파괴되는 법이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파스칼도 “불행은 자기 자신에게서 만들어진다”라고 하였다.(89~90쪽)


니체도 같은 말을 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다.


“그러나 그대가 마주칠 수 있는 최악의 적은 언제나 그대 자신이다.”(110쪽)


책을 읽다 보면 표현만 다를 뿐, 뜻이 같은 문장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2.












무라카미 하루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하루키의 소설이다. 나는 왜 이렇게 두꺼운 책을 읽기 시작했던가 하고 조금 후회를 했다가 다음과 같은 시적 분위기가 풍기는 문장이 많아 후회를 하지 않게 되었다. 


너는 그런 사정을 띄엄띄엄 조각내어 들려준다. 오래된 코트 주머니에서 너덜너덜해진 무언가를 하나씩 꺼내놓는 것처럼.(28~29쪽)


너는 남색 교복 재킷에 마찬가지로 남색 플리츠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리본이 달린 흰색 블라우스, 흰색 양말에 검은색 슬립온 슈즈. 양말은 온통 하얗고 신발은 얼룩 하나 없이 깨끗했다. 친절한 일곱 난쟁이가 날이 밝기 전에 정성껏 닦아준 것처럼.(30쪽)


방은 따뜻하고 조용하다. 시계가 없어도 무음 속에서 시간은 흘러간다. 발소리를 죽이고 담장 위를 걸어가는 야윈 고양이처럼.(39쪽)


사랑이나 연애 같은, 요컨대 내면적인 마음의 움직임을 대놓고 글로 쓰기 시작하면 나 자신이 점점 막다른 골목으로 몰릴 듯한 기분이 들어서다.(41~42쪽)


그래도 그림자는 조금 저항했지만 곧 문지기의 억센 힘을 당해내지 못하고 내 몸에서 벗겨져나가, 힘을 잃고 옆 나무 벤치에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몸에서 분리된 그림자는 생각보다 훨씬 볼품없었다.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낡은 장화처럼.(66쪽)


453쪽까지 읽었는데 다음의 문장이 시적 분위기가 압권이다. 


훗날 고야스 씨는 자신이 왜 일상적으로 스커트를 입는지 친절하고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첫째로는, 이렇게 스커트를 입고 있으면, 네, 왠지 내가 아름다운 시의 몇 행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서랍니다.”(268쪽)

 



3.













 시요일 엮음,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오늘 뽑은 시..........


화양연화(花樣年華)

                                                                      김사인


모든 좋은 날들은 흘러가는 것 잃어버린 주홍 머리핀처럼 물러서는 저녁 바다처럼. 좋은 날들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새나가지 덧없다는 말처럼 덧없이, 속절없다는 말처럼이나 속절없이. 수염은 희끗해지고 짓궂은 시간은 눈가에 내려앉아 잡아당기지. 어느덧 모든 유리창엔 먼지가 앉지 흐릿해지지. 어디서 끈을 놓친 것일까. 아무도 우리를 맞당겨주지 않지 어느날부터. 누구도 빛나는 눈으로 바라봐주지 않지. 


​눈멀고 귀먹은 시간이 곧 오리니 겨울 숲처럼 더는 아무것도 애닯지 않은 시간이 다가오리니 


​잘 가렴 눈물겨운 날들아. 

작은 우산 속 어깨를 겯고 꽃장화 탕탕 물장난 치며 

슬픔 없는 나라로 너희는 가서 

철모르는 오누인 듯 살아가거라. 

아무도 모르게 살아가거라.(64~65쪽)




4. 

돈이 우선시 되는 세상에서 돈이 되지 않는 일로 즐거움을 누릴 줄 안다면 복된 사람이 아닐까 한다. 돈이 되지 않는 일이란 가령 시를 읽는다든지 좋은 문장을 필사하는 것과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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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4-05-24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늘 돈이 되지 않는 자원봉사를 하고 왔고, 매일 드라마만 보다가 이제 겨우 정신차려 다시 책을 손에 들고 있답니다 ^^
김사인 시인의 시는 근래 제가 읽고 리뷰 올린 앤드푸 포터의 책 <사라진 것들>과도 통하네요. 책을 읽다보면 표현만 다를 뿐 이라는 말씀, 맞는 것 같아요.
 




1. 부처의 가르침















부처님 당시에 ‘끼사고따미’라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아장아장 걸을 무렵 아기가 그만 죽고 말았다. 자기 아이가 죽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던 여인은 죽은 아이를 안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아이를 살려달라고 애걸했다. 사람들은 점점 미쳐가는 그 여인에게 부처님을 찾아가 보라고 권했다. 그래서 여인은 부처님을 찾아가 눈물을 흘리면서 사랑하는 내 아이를 좀 살려달라고, 죽은 아이를 끌어안고 간청하였다. 

그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무도 죽은 적이 없는 집에 가서 겨자씨를 얻어오시오.”라고 한다. 이에 여인은 희망을 안고 죽은 아이를 안은 채 집집마다 두드리면서 물었다.

“혹시 이 집에 돌아가신 분이 있습니까?”

“돌아가신 분이요? 얼마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요.”

“아, 그래요?”

또 다른 집에 가서 “혹시 이 집에 누구 돌아가신 분이 있습니까?” 물으니 이번엔 “얼마 전에 내 조카가 죽었는데요.” 한다. 

- 원영, <이제서야 이해되는 불교>, 77~78쪽.


* 이 여인은 아무도 죽은 적이 없는 집에서 겨자씨를 구할 수 있었을까? 


** 이 여인은 부처님이 자신에게 어떠한 가르침을 주시려고 했는지 알게 되었다. 어떤 가르침이었을까?


(부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맞혀 보십시오. 답은 맨 아래 7번에 있습니다.)



  

2. 행사가 많은 5월

5월인 이 달은 행사가 많은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처님 오신 날, 게다가 나의 결혼기념일이 있는 달이며 두 애의 생일이 있는 달이다. 


결혼기념일에 남편에게서 꽃을 받았고, 어버이날을 기념하여 가족이 외식을 했으며, 스승의 날을 기념하여 친구들과 만나 은사 님을 모시고 다섯이서 식사를 했고, 부처님 오신 날은 절에 갔다 왔다. 또 뭐가 남았나? 아이들의 생일이 남아 있다. 




3. 영화 모임

그저께는 영화 모임에서 제출하라는 영화 리뷰를 써서 이메일로 보냈다. 모임 구성원들이 4월에 회의를 거쳐서 5월에 보기로 정한 영화는 ‘69세’였다. 69세의 여성이 29세의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다. 구성원들은 각자 넷플릭스를 통해 시청하고 한 달 후에 만나 이 영화에 대해 두 시간 동안 얘기를 나누고 5일 안에 리뷰를 간단히 써서 제출한다. 만날 때마다 다음에 볼 영화를 정한다. 영화 모임은 월 1회, 구성원은 9명. 독서 모임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4. 하루에 3천 보 이상 걷기

‘하루에 3천 보 이상 걷기’의 밴드에 가입했다. 가입자는 걷기 운동을 하고 나서 걸음 수가 나와 있는 스마트폰 화면을 캡처하여 밴드에 올려야 한다. 인증 숏(인증 샷은 규범 표기가 아님)이 뭐라고 이 밴드에 가입한 날부터 걷는 날이 많아졌다. 많이 걸으면 피로를 느껴 오히려 병이 날 수 있으니, 내 체력으로 매일 걷는다면 4천~5천 보가 적당할 것 같다. ‘하루에 3천 보 이상 걷기’의 밴드이지만 1만 보 이상의 기록을 보여 주는 인증 숏을 찍어 올리는 사람이 많다. 



 


5. 시 필사

하루에 시 한 편을 골라 필사하여 사진을 찍어서 밴드에 올리는 걸 계속하고 있다. 내가 매일 하지 않으니 어제가 겨우 41일차였다. 그래도 시 41편을 필사했다니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오늘 뽑은 시..... 


뻘 같은 그리움

                                                문태준


그립다는 것은 당신이 조개처럼 아주 천천히 뻘흙을 토해 

내고 있다는 말


그립다는 것은 당신이 언젠가 돌로 풀을 눌러놓았었다는 

얘기


그 풀들이 돌을 슬쩍슬쩍 밀어올리고 있다는 얘기


풀들이 물컹물컹하게 자라나고 있다는 얘기 








6. 시간만 보내며 살 수는 없다

야망 같은 것은 없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뭔가 붙잡고 살지 않으면 그냥 시간이 가고 그냥 늙을 것만 같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늙는 일만 남은 것 같다. 그래서 글쓰기의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자 시간을 아껴 쓰려 한다. 시간이 소중해지는 이유다. 그러면서도 인생의 허망함, 부질없음이 느껴질 때가 있어 야망을 품고 살되 안달복달하지 않으려 한다.

 


 


7. 답

그제야 여인은 깨닫게 된다. 죽음에 당면한 것은 자신의 가정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죽었고, 현재도 죽어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난 후, 그녀는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은 물론, 자기 삶에 대한 태도까지 달라졌다. 더 이상 육신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 원영, <이제서야 이해되는 불교>, 78쪽.


부처님이 “아무도 죽은 적이 없는 집에 가서 겨자씨를 얻어오시오.”라고 했으나 ‘아무도 죽은 적이 없는 집’은 찾을 수 없었기에 여인은 겨자씨를 얻어 올 수 없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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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4-05-17 2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5월이 되어서 그런지, 오늘 오후에 지나가면서 보니까 담장에 장미가 예쁘게 피었어요. 벌써 그런 계절이 되었는데, 바빠서 대충 사느라 잘 모르고 지나가네요. 나무들은 초록색이고 빛이 닿을 때마다 반짝이는 것 같은 좋은 시기입니다.
시간은 점점 더 빠르게 가는 것 같아서, 불안하고 더 가치가 커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시간도 소중하다는 것을 생각하려고 하고요. 늘 바쁘다는 말을 조금 덜 써야겠다고도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페크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4-05-18 10:05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 님, 굿모닝!
기후변화로 꽃이 빨리 피기도 하고 빨리 지기도 했는데 그래도 장미는 5월에 볼 수 있어 좋았어요. 5월의 장미, 는 변함이 없는 것 같아서요. 여러 봄꽃이 다 지고 난 뒤 장미꽃이 보이니 다시 새 봄을 맞은 기분이 듭니다.
님도 주말 잘 보내십시오. 고맙습니다.^^

stella.K 2024-05-20 2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올리신 건 알았는데 오늘에야 읽게 됐네요.ㅠ
오래된 부부들 결혼기념일이라고 선물하고 그러지 않는가 본데
언니는 금슬이 좋으시네요. 부러운데요?
좋은 계절에 결혼하시고 출산도 하셨는데 아무래도 5월은 좀 버겁죠? ㅎㅎ
저도 뭐라고 붙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긴합니다.

페크pek0501 2024-05-24 13:21   좋아요 1 | URL
이해합니다. 어떻게 올린 글마다 바로 읽을 수 있겠어요. ㅋㅋ
금슬이 좋다기보다 그냥 무난하게 사는 것 같습니다. 남편이 착하답니다. 이혼도 의욕과 열정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배우자를 학대하거나 폭행하지 않는 한, 부부들 대부분은 그럭저럭 사는 것 같아요.
붙들 게 없이 살면 어떤 허전함이 있는 것 같아요. 이것은 배우자도 자식도 채워 줄 수 없는 것이죠.^^

yamoo 2024-05-23 15: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이 인상깊네요^^

그나저나 사진 풍경이 정말 좋네요. 계절감을 만끽할 수 있는 사진들 같아요. 좋은 계절에 혼인하셨네요.

맞아요. 나이가 들면 뭔가 붙잡지 않으면 시간이 허망하게 빠져나가고 모든 것이 부질없어 진다는 생각이 지배합니다. 그래서 뭔가 집중할 꺼리를 만들어 놔야해요. 저는 그나마 그림을 시작하게 되서 너무 만족하고 있습니다..ㅎㅎ

페크pek0501 2024-05-24 13:25   좋아요 0 | URL
요즘 불경 서적을 봅니다. 의외로 재밌습니다.
꽃보다 더 예쁜 것이 나뭇잎의 빛깔이 아닌가 싶어요.
친정어머니를 보니 늙을수록 붙들고 사는 것이 꼭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 - 휠체어 위의 유튜-바, 구르님의 유쾌하고 뾰족한 말 걸기
김지우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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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장애인이며 유튜버로 활동하는 20대 여성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장애인들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려면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알고 나면 몰랐던 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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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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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아비인 서점 주인이 (입양한) 아이를 키우면서 달라져 간다. 섬에 있는 서점을 무대로 스콧 피츠제럴드, 플래너리 오코너 등 외국 작가들의 실명이 등장하며, 특이한 방식으로 흥미 있게 전개된다. 만점을 주고 싶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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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인 ‘세계 책의 날’을 맞이하여 알라딘에서 ‘내 인생 네 권’의 이벤트를 진행 중이어서 나도 참여해 보기로 한다. 


내가 읽었던 천 권 가까이 되는 책 중에서(과장해서 말함.) 최고의 책을 어떻게 네 권만 뽑으란 말인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현재 생각나는 최고의 책 네 권으로 정하고 나니 뽑는 게 쉬워졌다.  


나의 인생 네 권은 다음과 같다. 


서머싯 몸, <인간의 굴레에서 1> · <인간의 굴레에서 2>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정희진, <정희진처럼 읽기>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 서머싯 몸, <인간의 굴레에서 1> · <인간의 굴레에서 2>















두 권을 합해 천 쪽이 넘는 분량의 소설이지만 긴 시간을 들여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사색적인 문장이 많아 사색적인 글을 쓰는 것에 대해 내가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색적인 문장에 반해 내가 서머싯 몸의 광팬이 되어 버리기도 했다.  


자신의 의지가 자유롭다는 환상 : 크론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은 자신의 의지가 자유롭다는 환상을 너무 철썩같이 믿고 있어. 그래서 나도 그걸 쉽게 받아들이고 마네. 나는 내가 자유로운 행위자인 것처럼 행동하지. 하지만 어떤 행위가 이루어질 때는 우주의 모든 힘들이 저 영겁에서 함께 작용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 분명해. 내가 할 수 있는 어떤 행위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지. 그건 필연이니까. 선한 행위였다 해도 난 공적을 주장할 수 없고, 나쁜 행위였다 해도 난 비난받을 수 없네.”

- 서머싯 몸, <인간의 굴레에서 1>, 351쪽. 


⇨ 이 글과 비슷한 글을 어디서 본 것 같았다. 그리고 생각해 냈다. 에리히 프롬의 저작에서 봤다는 것을.


우리 결정의 대부분은 실제로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우리에게 암시되는 어떤 것이다. 결정을 내린 것이 자기 자신이라고 믿을 수는 있어도, 실제로 인간의 결정 행위는 인간이 두려운 고립감이나 생명, 자유, 안락함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위협에 내몰렸을 때 타인의 기대에 보조를 맞추는 것에 불과하다.

-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168쪽.


⇨ 두 개의 글이 공통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어떤 행위를 하기로 결정할 땐 자신의 의지로만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스마트폰을 구입하는 일조차 여러 가지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단지 그것이 필요해서라기보다 남들이 다 사니까 나도 뒤처질 수 없다는 생각, 고립되기 싫다는 생각, 최신의 기술을 자랑하며 유혹하는 광고 등 여러 가지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구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자신의 의지로만 스마트폰을 구입하는 게 아닌 것이다.


참고로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1941년에, <인간의 굴레에서>가 1915년에 발표된 것이니 서머싯 몸이 먼저 썼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이 책은 도스토예프스키, 히틀러, 휴즈, 샤피로, 루터, 칼뱅, 그린, 발자크 등을 비롯한 많은 저술가들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인상 깊은 책이었는데 오래전에 읽어서 다음 사진으로 대신한다. 


목차가 있는 페이지에 중요한 글이 있는 쪽수를 적어 놓았다.  





3. 정희진, <정희진처럼 읽기>













이 책은 페미니즘의 고수로 유명한 저자가 79권의 책에 대해 쓴 서평집인데 서평 한 편, 한 편에 좋은 글이 담겨 있다. 특히 다양한 시각으로 책을 읽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 이 책의 강점이다. 


‘다양한 시각’이란 무슨 말인가? 이에 대해선 다음 글이 설명이 될 것 같다.


토머스 해리스의 ‘대중 소설’ <양들의 침묵>을 예로 들어보자. 이 책은 ‘범죄 스릴러’로 읽을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그 책을 여러 권의 다른 책으로 읽는다. 범죄와 지식의 관계, 범죄자의 지적 매력, 식인의 의미, 동성애 코드, 선악의 대치보다 지적 친밀성이 우선하는 관계, 현대 범죄 패턴의 변화, 말하기가 인간을 자살로 이끌 수도 있다는 점, 말과 죽음의 관계 등 열 권 이상의 책으로도 읽을 수 있다.

- 정희진, <정희진처럼 읽기>, 20쪽.


⇨ 자신이 읽지 않은 책에 대한 서평을 읽는다면 자신이 몰랐던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하겠고,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서평을 읽는다면 자신의 시각과 다른 사람의 시각을 비교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하겠다.


예전에 영화 ‘밀양’을 봤는데 이것의 원작이 이청준 저, ‘벌레 이야기’라는 소설임을 알았다. <정희진처럼 읽기>에 ‘벌레 이야기’에 대해 쓴 서평이 있다. 그중 일부다. 


나는 용서가 저주보다 바람직한 가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해자의 권력은 자기 회개와 피해자의 용서를 같은 의무로 간주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45쪽) (...) 나는 용서와 평화를 당연시하는 사회에 두려움을 느낀다. 2차 폭력의 주된 작동 방식이기 때문이다.

- 정희진, <정희진처럼 읽기>, 45쪽.


⇨ 이런 글을 쓰려면 고정 관념과 편견을 얼마나 깨야 하는 걸까?


좋은 글이란 독자로 하여금 고정 관념과 편견을 깰 만큼 새로운 무엇을 보여 주는 글이거나, 만약 새롭지 않다면 새롭지 않은 무엇에 대해 새롭게 해석하는 글이거나 둘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영양가가 있는 글이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겠다.






4.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나의 애독서 중 하나다. 애독서인 만큼 밑줄이 그어져 있는 구절이 많다.  


그러나 그대가 마주칠 수 있는 최악의 적은 언제나 그대 자신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10쪽. 


⇨ 자신이 자기 삶의 주체자가 아닌가. 도박에 빠지는 것도, 범죄나 패륜을 저지르는 것도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하는 게 아닌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특수한 경우에만 한할 뿐, 대체로 스스로 행동한다. 그러므로 자기 인생을 망치게 하는 것은 자신이다. 


자기 인생만 망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식을 가장 사랑하면서도 자식의 인생을 망치게 하는 부모가 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지나친 간섭과 지나친 교육열이 오히려 자식의 인생을 망치게 된 예를 우리는 종종 보아 왔다. 부모 자신의 적은 ‘자식에 대한 지나친 간섭과 지나친 교육열’이었다는 말이다. 


”최악의 적은 언제나 그대 자신“이다. 이 문장을 정치인들이 꼭 읽었으면 한다. 나라를 위해 일하겠다고 나섰다면 자신이 어떤 이득을 얻으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전 세계를 통틀어 쿠데타나 전쟁을 일으킨 자들은 나라를 위해서 한 게 아니라 자신의 추악한 권력욕과 탐욕에 의해서 한 것이 아닐까 의심이 간다. 최악의 적은 니체가 말한 대로 자신일 수 있으니.... 


이때 누군가가 다시 속삭이듯 내게 말했다. “가장 조용한 말이 폭풍우를 몰고 오며, 비둘기 걸음으로 오는 사상이 세계를 움직인다.

-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62쪽.


⇨ 떠들썩한 곳에서 위대한 사상이 나오지 않는다. 위대한 사상은 비둘기 걸음처럼 남모르게 조용히 전해지는 것. 사람들이 처음에 지지하지 않았던 사상이 나중에 세계를 움직인 적이 많지 않던가. 


니체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우나 이 책을 아낀다. 나의 고정 관념을 깨게 하는 글이 있고, 표현 방식을 배울 수 있는 글이 있으며, 사색에 잠기게 하는 글이 있어서다. 이런 글들을 만나면 연필로 밑줄을 긋는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다 보면 읽는 이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시’를 읽는 것 같다. 이 책을 내 맘대로 해석하며 읽었다는 점을 밝혀 둔다. 다시 말해 내가 니체의 글을 잘못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게 중요한 건 니체의 책을 읽고 내가 단상을 적어 보는 일이었다. 나로 하여금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책이므로. 



* 내 서재에서 옮겨 와 작성한 글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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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4-27 18: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서머싯 몸과 정희진을 꼽는 사람이 많더군요. 저는 게을러서 매번 읽기를 놓치고 있네요. 유념해서 분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페크pek0501 2024-04-27 18:47   좋아요 3 | URL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 를 읽고 사색적인 문장을 쓰는 법을 배웠어요. 배웠다고 해서 제가 잘 활용한 것은 아니고요, 그렇게 써야겠단 방향은 잡을 수 있었어요.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많이 됐지요.
그렇게 댓글을 써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나이에 함부로 이벤트에 끼는 게 아니었는데... 피로해서 후달달~~~ㅋㅋ

stella.K 2024-04-27 20:20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페크pek0501 2024-04-28 11:09   좋아요 0 | URL
다음부턴 백자평이나 써야 할 듯...ㅋㅋ

서니데이 2024-04-27 2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서재의 인생네권에서는 서머싯몸이 한권쯤 있을 것 같았는데, 맞았네요.
그렇지만 책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책이었어요.^^;
잘 읽었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고, 좋은 밤 되세요.^^

페크pek0501 2024-04-28 11:11   좋아요 1 | URL
서머싯 몸의 책은 거의 읽었고 다 좋았어요. 사색적인 문장이 많은 게 인간의 굴레~라서 그걸 뽑았네요.
제가 서재에 올린 글 보면 아마 가장 많이 인용한 책이었을 듯싶네요.
서니데이 님도 휴일, 잘 보내세요.^^

호시우행 2024-04-28 06: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책들 읽어셨네요. 대학시절, 차라투스트라를 끼고 다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ㅎㅎ

페크pek0501 2024-04-28 11:12   좋아요 0 | URL
차라투스트라~를 대학시절에 알지도 못한 1인입니다. 놀기 바빴거든요.
그런 대학시절을 보내셨다니 부러운 걸요..^^

blanca 2024-04-28 0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머싯 몸이 현역 작가라면 알라딘 서재 보며 흐뭇했을 것 같아요. <인간의 굴레에서> 다시 읽어보고 싶고 니체 책도 페크님 덕분에 꼭 읽어야겠다 결심하고 갑니다

페크pek0501 2024-04-28 11:15   좋아요 0 | URL
ㅋㅋ 흐뭇했겠지요? 팬이었다는 건 글쓰는 사람으로서 기쁜 일이죠.
니체 책은 모든 글이 다 좋다고 볼 순 없어요. 이해가 안 가는 글, 시시한 글도 많아요. 그래도 블랑카 님이 읽으시면 좋은 구절을 많이 발견하실 듯합니다.
그나저나 참 오랜만의 방문이십니다. 넘 반가웠다는...^^

새파랑 2024-04-28 1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의 글을 읽고 <인간의 굴레에서> 를 꺼냈습니다~!!
선택하신 책들이 쉬워보이지 않습니다만 뭔가 아우라가 있습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목차 메모를 보니 이 책을 정말 좋아하신다는게 느껴집니다~!!

페크pek0501 2024-04-28 12:33   좋아요 1 | URL
하하~~ 저도 새파랑 님의 글을 보고 윌리엄 트레버를 꺼냈답니다.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책들에 깔려 있더라고요.
요즘 엉뚱하게도 2024 신춘문예 당선소설집을 읽고 있어요. 스터디 모임에서 다루는 책이라서요. 신참 작가들의 관심사를 읽을 수 있어 흥미롭습니다.
요즘 쌓여 있는 책이나 읽자, 하고 구매 금지, 하고 있으나 공동으로 읽어야 할 책은 매달 있으니 아예 안 살 순 없네요. 새파랑 님처럼 부지런해야 독서 진도가 팍팍 나가는 건데... 저도 분발하겠습니다.^^

페넬로페 2024-04-28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생네권, 저도 정말 정하기 어려웠어요.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를 페크님께서 여러 번 언급하셨는데 그만큼 좋은가 봐요.
꼭 읽어 보겠습니다^^

페크pek0501 2024-04-29 22:02   좋아요 1 | URL
인간의 굴레는 줄거리도 재밌지만 사색적인 문장이 많아서 좋았어요. 재독하고 싶은 책 중 하나예요.^^

그레이스 2024-04-28 15: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유로부터의 도피 👍👍👍

페크pek0501 2024-04-29 22:04   좋아요 1 | URL
제목으로 봐선 재미없을 것 같은 책인데 읽다 보면 흥미롭죠.👍👍👍

물감 2024-04-30 2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뒤늦게 이벤트 소식 듣고 저도 부랴부랴 참여했습니다 ㅎㅎㅎ
요런 기획 참 재밌어요. 종종 해주면 좋겠어요. 다른 분들의 취향도 볼 수 있고요 ^^
역시 페크님과 서머싯 몸은 바늘과 실이군요 ㅋㅋㅋ

페크pek0501 2024-05-04 11:42   좋아요 1 | URL
물감 님의 서재에 다녀왔어요. 다른 분들의 책 취향을 본다는 게 저도 흥미롭습니다.
서머싯 몸의 광팬이죠. 소설의 줄거리보다 더 재밌는 게 그 안에 담겨 있거든요.^^

서곡 2024-05-01 1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인간의 굴레 조아하는 부분이 있는데 함 찾아봐야겠습니다 오월 잘 시작하시길요 ~~~~~

페크pek0501 2024-05-04 11:44   좋아요 1 | URL
댓글이 늦었습니다. 인간의 굴레, 같은 팬이시네요. 밑줄을 많이 쳐 놓게 되는 소설이라 재독할 만하죠.
5월엔 행사가 많아 바쁜 달이네요. 우리집은 애들의 생일도, 결혼기념일도 다 5월에 있어서 더 바쁜...
행복한 5월을 보내시기를...^^^

서곡 2024-05-04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팬이라기엔 많이 부족하고요 ㅎㅎ 네 5월 건강하고 즐겁게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24-05-04 12:45   좋아요 1 | URL
5월은 푸른 풍경이 아름답지요. 세상은 점점 삭막해지는데 날씨는 태평하네요.서곡 님도 즐~거~웁~게~보내십시오..^^

희선 2024-05-06 0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은 책에서 네 권 고르기 힘들 듯합니다 한권이 아니어서 다행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네 권을 생각해 보고 그 책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을 듯하네요


희선

페크pek0501 2024-05-08 12:21   좋아요 1 | URL
맞아요, 힘들어요. 그래서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그냥 골랐어요. 고르고 나서 다른 분들이 뽑은 책들을 보니
죄와 벌, 스토너, 위화의 인생 등 좋았던 책들이 생각났어요. 뒤늦게. 다음에 또 한번 이런 이벤트가 있다면 다른 책을 뽑을 듯요.^^

2024-05-11 17: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5-16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24-05-14 16: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페크 님의 인생 4권...저도 모두 읽었던 책들이라 엄청 반갑네요..ㅎㅎ 이론서는 자유로부터의도피 한 권이네요. 저도 프롬 무척 좋아해서 2010년까지 번역되어 나온 책은 모두 읽고 소장하고 있습니다. 프롬의 책 중 단연 발군은 <인간파괴성의 해부>이고 가장 중요한 책은 <그자신을 위한 인간>이라고 저는 봐요. 왜냐하면 <그 자신을 위한 인간>이 이후에 출간된 <인간의 마음> <소유냐 존재냐> <자유로부터의 도피> <사랑의 기술> 등의 이론적 기반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물론 프롬을 가장 유명하게 한 책은 <사랑의 기술>과 <자유로부터의 도피>라고 할 수 있죠.ㅎㅎ

인간의 굴레...사실 아직 2권은 못 본 상태라서 2권을 완독해야 뭔가를 말할 수 있을 듯해요. 화가를 주제로 한 책은 요즘 모두 읽고 리스트화하고 있어요. 그 중 가장 유명한 책이 인간의 굴레라고 알고 있으요~~^^

페크pek0501 2024-05-16 12:52   좋아요 0 | URL
저는 두 권만 읽었어요. 사랑의 기술을 먼저 읽고 나중에 자유로부터의 도피, 를 읽었어요. 둘 다 탁월하죠.
화가를 주제로 한 유명한 소설은 서머싯 몸의 <달과 6팬스>죠.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쓴 거예요. 제가 예전에 올린 리뷰가 있습니다. 아마 야무 님은 화가를 모델로 쓴 소설에 흥미를 느낄 듯합니다. 반가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