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시간에 따라 변했다. 한때는 연봉이 많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잘 사는 것 같았다. 한때는 좋은 배우자를 만난 사람이 잘 사는 것 같았다. 나이를 먹고 나니 취미를 가지고 즐기는 사람이 잘 사는 것 같다.
직업과 취미가 일치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사람이기에 뭇사람들의 부러움을 산다. 노래를 부르는 걸 좋아하는 가수라든지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하는 화가, 또는 빵을 만드는 걸 좋아하는 제빵사가 이에 속하겠다. 그 다음으로 직업과 취미가 다르지만 취미로 즐거움을 얻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도 취미가 없는 사람들의 부러움을 산다.
누구나 살면서 정신적으로 또는 육체적으로 삶의 고단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 취미를 가지고 있다면 고단함을 잊고 즐거움 속으로 빠져들 수 있으리라. 나의 경우 독서가 그렇다. 책은 나를 유년 시절에 뛰놀던 마당으로 데려가기도 하고, 지식인의 내면세계로 데려가기도 하고, 조용하고 한적한 섬으로 데려가기도 한다. 그 어느 쪽도 나는 다 좋아한다. 책이 주는 즐거움을 느끼며 산다는 건 행운의 별을 가슴에 품고 사는 일이다. 책을 살 때마다 설레고 첫 장을 펼칠 때마다 설레기 때문이다. 책은 잡념과 걱정을 없애 주는 장점이 있기도 하다. 만약 내가 독서의 즐거움을 배우지 못했다면 지금보다 잡념이 두 배로 늘어나고 지금보다 쓸데없는 걱정이 두 배로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독서를 좋아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는 걸 얘기해야겠다. 처음부터 책을 읽는 게 재밌는 사람도 더러 있겠지만 대체로 책이 재밌는 걸 느끼는 지점에 이르려면 독서에 투자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적어도 이삼십 권의 책을 읽어 봐야 책에 완전히 매료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삼십 권의 책을 선택할 땐 자신이 좋아할 수 있는 내용으로 고르는 게 좋다. 책 대신 악기를 예로 들어 설명할 수 있다. 바이올린을 처음 켜게 되면 아름다운 소리가 나지 않고 굉음이 난다. 듣기 좋은 소리를 내기까지 훈련의 시간이 필요하다. 훈련의 과정을 거쳐 듣기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을 때 비로소 바이올린 연주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악기도 책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으려면 훈련이 필수라는 말이다.
무엇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다방면으로 배워야 한다. 자신이 어떤 것에 관심이 있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알기 위해서다. 직업 선택에 유리하기 위해서만 공부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취미로 삼을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도 공부가 필요하다. 어떤 이에겐 책이, 어떤 이에겐 음악이, 어떤 이에겐 운동이 행복한 삶을 향유하는 수단이 될 수 있겠다. 이밖에도 요리, 뜨개질, 등산, 낚시, 바둑 등 찾으면 얼마든지 있다.
“아는 사람은 그것을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이것은 논어에 나오는 구절이다. 아는 것보다 좋아하는 게 낫고 좋아하는 것보다 즐기는 게 낫다는 뜻이니 즐길 줄 아는 자야말로 가장 높은 지점에 이른 사람이겠다.
집 밖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 식구들과 같이 있는 시간을 제외하면 나 혼자 집에서 보내야 하는 빈 시간이 있다. 책과 함께 살지 않았다면 그 빈 시간을 무엇으로 채웠을까 생각해 본다. 책을 즐길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행복한 사람은 혼자서도 지루해 할 겨를 없이 빈 시간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이라고 깨닫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후기)
이 <생활칼럼>은 어떤 글을 읽고 소재를 얻어 쓴 글이다.
바로 다음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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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이미 게이코 씨의 고양이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갑자기 로스트로포비치와 음악 교사들의 문답이 떠올랐다.
“모든 사람이 프로 음악가가 될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많은 아이들에게 작곡 공부를 시킬 필요가 있을까요?”
이런 질문을 받은 세계적 첼로 연주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분명 작곡을 배운 아이들 대부분은 의사나 상점 주인이나 엔지니어나 가정주부가 되겠죠. 하지만 그들은 작곡되어 연주되는 작품의 확실한, 그리고 훌륭한 청중이 되어 적확한 비평가로 성장할 것입니다. 작품을 더욱 깊고 예리하게, 그리고 풍부하게 향유하는 즐거움이 그들의 인생을 채워 줄 것입니다.”
- 요네하라 마리, <대단한 책>, 4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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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이란 책을 흥미롭게 읽었는데 이 책에서 이런 글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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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자기 삶을 흔드는 모멘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 힘은 다양한 데서 오는데 그게 한 권의 책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일 수도 있고, 한 장의 그림일 수도 있고, 한 곡의 음악일 수도 있습니다. 또 이렇게 잊지 못할 장소일 수도 있고요. 그 책을 보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알았기 때문에, 그 그림을 알았기 때문에, 그 음악을 들었기 때문에, 그 장소를 만났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눈뜨게 되고 한 시기를 지나 새로운 삶으로 도약하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그런 모멘텀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늘 깨어 있다고 한다는 말과도 같을 겁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깨어 있고 바깥을 향해서도 열려 있어야 하는 것이죠. (···)
혹 그와 같은 뭔가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면 천천히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내가 알고자 하는 마음조차 없었던 것은 아닌지, 깨어 있으려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 한동일, <라틴어 수업>, 215~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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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은 라틴어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지 않고 인생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사색적이고 품격 있는 글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대단한 책>은 독서광으로 유명한 저자가 쓴 독서일기와 서평으로 나누어 구성되어 있다. 독서를 많이 한 사람의 글은 어떠한지 감상할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