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운, <법구경 마음공부>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집착은 무서운 것이며, 위험한 것이다. 쇠에서 나온 녹이 쇠를 삭히듯이 사람은 자신의 집착으로 자기 스스로를 망치고 있다. 비구들은 어떤 공양물이든 풍족하기를 바라지 말고, 집착해서는 안 되느니라.”(89쪽)


수행자가 집착(번뇌)으로 인해 자신을 망치고 있으니, 집착을 버리라는 뜻이다. 이 게송이 세간에 던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법구경》 제42번 게송에서도 ‘상대방이 주는 피해보다 매우 심각한 것은 자신의 그릇된 마음’이라고 하였는데, 모두 같은 의미이다. 외부의 적으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일어난 분열로 자신이 파괴되는 법이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파스칼도 “불행은 자기 자신에게서 만들어진다”라고 하였다.(89~90쪽)


니체도 같은 말을 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다.


“그러나 그대가 마주칠 수 있는 최악의 적은 언제나 그대 자신이다.”(110쪽)


책을 읽다 보면 표현만 다를 뿐, 뜻이 같은 문장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2.












무라카미 하루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하루키의 소설이다. 나는 왜 이렇게 두꺼운 책을 읽기 시작했던가 하고 조금 후회를 했다가 다음과 같은 시적 분위기가 풍기는 문장이 많아 후회를 하지 않게 되었다. 


너는 그런 사정을 띄엄띄엄 조각내어 들려준다. 오래된 코트 주머니에서 너덜너덜해진 무언가를 하나씩 꺼내놓는 것처럼.(28~29쪽)


너는 남색 교복 재킷에 마찬가지로 남색 플리츠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리본이 달린 흰색 블라우스, 흰색 양말에 검은색 슬립온 슈즈. 양말은 온통 하얗고 신발은 얼룩 하나 없이 깨끗했다. 친절한 일곱 난쟁이가 날이 밝기 전에 정성껏 닦아준 것처럼.(30쪽)


방은 따뜻하고 조용하다. 시계가 없어도 무음 속에서 시간은 흘러간다. 발소리를 죽이고 담장 위를 걸어가는 야윈 고양이처럼.(39쪽)


사랑이나 연애 같은, 요컨대 내면적인 마음의 움직임을 대놓고 글로 쓰기 시작하면 나 자신이 점점 막다른 골목으로 몰릴 듯한 기분이 들어서다.(41~42쪽)


그래도 그림자는 조금 저항했지만 곧 문지기의 억센 힘을 당해내지 못하고 내 몸에서 벗겨져나가, 힘을 잃고 옆 나무 벤치에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몸에서 분리된 그림자는 생각보다 훨씬 볼품없었다.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낡은 장화처럼.(66쪽)


453쪽까지 읽었는데 다음의 문장이 시적 분위기가 압권이다. 


훗날 고야스 씨는 자신이 왜 일상적으로 스커트를 입는지 친절하고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첫째로는, 이렇게 스커트를 입고 있으면, 네, 왠지 내가 아름다운 시의 몇 행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서랍니다.”(268쪽)

 



3.













 시요일 엮음,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오늘 뽑은 시..........


화양연화(花樣年華)

                                                                      김사인


모든 좋은 날들은 흘러가는 것 잃어버린 주홍 머리핀처럼 물러서는 저녁 바다처럼. 좋은 날들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새나가지 덧없다는 말처럼 덧없이, 속절없다는 말처럼이나 속절없이. 수염은 희끗해지고 짓궂은 시간은 눈가에 내려앉아 잡아당기지. 어느덧 모든 유리창엔 먼지가 앉지 흐릿해지지. 어디서 끈을 놓친 것일까. 아무도 우리를 맞당겨주지 않지 어느날부터. 누구도 빛나는 눈으로 바라봐주지 않지. 


​눈멀고 귀먹은 시간이 곧 오리니 겨울 숲처럼 더는 아무것도 애닯지 않은 시간이 다가오리니 


​잘 가렴 눈물겨운 날들아. 

작은 우산 속 어깨를 겯고 꽃장화 탕탕 물장난 치며 

슬픔 없는 나라로 너희는 가서 

철모르는 오누인 듯 살아가거라. 

아무도 모르게 살아가거라.(64~65쪽)




4. 

돈이 우선시 되는 세상에서 돈이 되지 않는 일로 즐거움을 누릴 줄 안다면 복된 사람이 아닐까 한다. 돈이 되지 않는 일이란 가령 시를 읽는다든지 좋은 문장을 필사하는 것과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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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4-05-24 15: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늘 돈이 되지 않는 자원봉사를 하고 왔고, 매일 드라마만 보다가 이제 겨우 정신차려 다시 책을 손에 들고 있답니다 ^^
김사인 시인의 시는 근래 제가 읽고 리뷰 올린 앤드푸 포터의 책 <사라진 것들>과도 통하네요. 책을 읽다보면 표현만 다를 뿐 이라는 말씀, 맞는 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24-05-25 11:17   좋아요 0 | URL
나인 님, 반갑습니다. 자원봉사를 하시다니 훌륭하십니다. 저는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 급식을 위해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어요. 점심시간에 가서 아이들의 식판에 밥과 반찬을 퍼 주는 일이었죠.
사라진 것들, 저도 읽고 싶어 장바구니에 담아 놨는데 아직 구매하지 못했어요.
지금 친정에 가야 해서 나중에 그 리뷰를 읽어 보러 가겠습니당^^

모나리자 2024-05-25 16: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잘 지내셨지요~?!
좋은 책 많이 읽으시고 글쓰기도 많이 하셨군요.
성공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를 돌아보고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라는 말이 적으신 내용과
일치하는 듯합니다. 행복도 불행도 모두 자신이 창조하는 거라지요.
하루키의 신간, 그것도 아주 두꺼운 책을 읽으면서 보람을 얻으신 듯합니다.
남은 5월 잘 마무리 하시길요.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페크님.^^

페크pek0501 2024-05-28 11:09   좋아요 2 | URL
모나리자 님, 오랜만이십니다. 반가워요. 제 눈에 안 보이길래 서재 활동을 쉬고 있는 줄 알았어요. 제가 북플로 새 글을 보거든요. 좋은 책이라기보다 독서 모임에서 한 달에 두 권 읽는 거라 열심히 따라가고 있었죠.
요즘 제 마음을 사로잡는 말이 있어요.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이라는 말이에요. 자기 기분이 나쁘다고 남에게 함부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경우가 있잖아요. 가족 간 부부간 친구 간에 조심할 일이에요.
하루키의 책은 두꺼워서 언제 읽나 했는데 의외로 빨리 읽혀요.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내용이라 복잡해서 리뷰는 못 쓰겠어요.ㅋ 모나리자 님도 편안한 한 주 보내십시오.^^

서니데이 2024-05-25 2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작년에 하루키 신작 출간 소식을 들었을때 무척 기대하면서 우리나라 번역판이 나오기를 기다렸던 기억이납니다.
작년 9월에 한국어판이 나왔으니, 벌써 꽤 시간이 지났네요.
근데 책을 사두고 몇달 전에 읽어서 그런지 얼마전의 일 같아요.
작가의 나이가 있어서 앞으로는 점점 더 이런 장편신작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지는 게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날씨가 많이 더워졌고, 장미가 가득 피는 5월입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4-05-28 11:12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 님, 여름입니다. 그제는 결혼식이 있어 다녀왔고 어제는 병원 갈일과 강좌 수강이 있었어요. 오늘도 나갈 일이 있네요. 이번 5월은 유난히 바쁘네요. 그래서 댓글이 늦었습니다.
하루키의 나이가 적지 않지요. 49년생이니까.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이 잘 늙지 않아 80세 넘어도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미가 참 예쁘죠?
늘 건강하시고, 좋은 한 주 보내세요.^^

서곡 2024-05-26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트로와 아웃트로의 두 사진이 계절의 흐름을 잘 보여주고 있는 듯합니다. 곧 6월이네요 남은 시간 건강히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24-05-28 11:15   좋아요 1 | URL
인트로, 의 뜻을 몰라 네이버에 다녀왔잖아요. 조금만 어려운 말 쓰면 제가 모른다니까요. 깔깔~~
덕분에 배웁니다.
아, 여름은 무섭습니다. 갱년기 시작된 이래로(이 끝나지 않는 갱년기!) 더워요. 원래 제가 땀이 없고 더위를 한 타는 체질이었는데 체질이 바뀌나 봅니다. 더위를 못 참겠어요. 책 속에 파묻혀 지내면 괜찮을거야, 하고 스스로 힘 내고 있어요. 좋은 주말 보내시길...^^

서곡 2024-05-28 1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죄송합니다 ㅎㅎㅎ 그냥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적어도 됐는데 제가 멋부리고 싶었나봐요 ㅋㅋㅋ 오늘 잘 보내시길요~~

페크pek0501 2024-05-28 11:29   좋아요 1 | URL
하하~~ 괜찮습니당~~ 그래서 제가 배우게 되니까요. 앞으로도 좀 어려운 말 써 주세요.ㅋㅋㅋ

서니데이 2024-06-01 2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장미가 예쁘던 5월이 지나고 오늘부터 6월입니다.
요즘엔 6월부터 여름 느낌이 들 만큼 더워지는데,
건강 늘 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4-06-07 12:30   좋아요 1 | URL
벌써 6월이네요. 시간 참 잘 가죠?
오랜만에 로그인해서 들어왔어요. 더위 때문에 올 여름도 후딱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가을이 와서 아쉬우려나...
서니데이 님도 늘 건강하시고 즐거운 하루하루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