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에 힘을 빼고 쓴 글 - 제목은 ‘억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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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함

 

 

나는 잠이 없는 편이라 졸음을 귀하게 여긴다. 오늘 아침 식구들이 다 나간 조용한 시간에 졸음이 느껴졌다. 이 기회를 잡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더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침대가 차갑게 느껴져 이불을 덮어도 추웠고 소변이 마려웠다. 그래도 움직이기 귀찮아서, 또 잠이 달아날까 봐 화장실에 갔다 와야 하는데, (침대에 깔려 있는) 전기장판의 스위치를 켜야 하는데, 라고 생각만 하고는 옆으로 누워 웅크린 채로 5분쯤인가 잠들었다. 그리고 잠이 깨졌다. 깨어나서 길게 편히 자기 위해 화장실에 갔다 오고 전기장판의 스위치를 켜고 다시 누웠다. 이제 잠만 자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잠이 오질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잠이 들지 않았다. 결국 몇 번 뒤척이다가 잠들기를 포기하며 일어나고 말았다. 잠깐 잠들었다가 깼을 때 불편한 대로 그냥 다시 잠을 청할 걸 그랬다 싶었다. 괜히 몸을 움직여 화장실에 갔다 오고 전기장판의 스위치를 켰나 보다 싶었다. 이럴 때, 참 억울한 느낌이 든다. 푹 자고 싶었는데, 나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깊게 빠져들 것 같았던 ‘달콤한 잠’을 놓친 기분….

 

 

그때의 억울함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내 돈을 떼어먹고 도망친 빚쟁이를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가 놓쳤을 때의 기분.

오랜만에 깨끗이 세차했는데 그날 비가 세차게 쫙쫙 쏟아지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의 기분.

내가 산 로또 복권이 거액으로 당첨된 복권의 번호와 한 자리 수만 다른 것을 알았을 때의 기분.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내릴 곳을 1초 차이로 놓치고 건너편으로 가서 되돌아가는 지하철을 타야 할 때의 기분.

어느 깊은 산속의 여행지에서 한 잔의 커피밖에 없는데, 그것을 한 모금 마셔보지도 못하고 실수로 땅에 다 쏟았을 때의 기분.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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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이 글의 제목을 잘못 지은 것 같다. 제목을 '잃어버린 잠' 또는 '오늘 아침에 놓친 것'이라고 썼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중요한 건 아니라서 고치지 않기로 했다. 아니 이건 나에게만 중요한 문제이리라. 남에겐 하찮게 잃히는 글이라도 글쓴이에겐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것이므로. 글이란 그 글을 쓴 사람의 자식과 같은 존재이므로. (이 말을, 글 쓰는 사람들은 이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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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2-09-20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다보면 누구한테 하소연도 할 수 없는 그런 억울함이 엄습할 때가 참 많은 거 같아요.
제 경우엔 지리산 정상 혹은 설악산 정상 등지를 힘겹게 올라간 뒤에, 동반자들과 함께 '술 한잔' 나눌려고 폼 잡다가, 술병이 바람에 속절없이 자빠질 때가 제일 억울하더라구요. 땅에 스며든 술을 건져올릴 방법도 없고, 어디 술을 사러 나설 수도 없구요. 오늘도 지인들과 2차로 '술 한잔'을 더하는 자리에서, 딸랑 남은 와인 한병이 쓰러질까 조마조마 했다는... 운동도 하고 1,2차에 걸친 술자리도 가졌던 만큼 쏟아지는 잠을 청하러 이만 가봐야겠어요. 졸음을 참았던 '오늘밤'이 내일 아침에 더이상 억울하지 않게요.

페크pek0501 2012-09-20 13:31   좋아요 0 | URL
"술병이 바람에 속절없이 자빠질 때" - 제가 듣기만 해도 억울한 일인 걸요.
누군가가 이렇게 소리치지 않으셨나요. 아, 피 같은 술이!!!...

ㄱ님을 따라서 짧게 써 본 것인데, 저로선 문장 연습 또는 글감 얻기 연습인 페이퍼예요. 그러니 글의 수준을 가늠하진 마시어요. 또 방문해 주시니 (1,2차 술 자리도 갖고 바쁘실 텐데...) 황송합니다요. 고맙습니다.
 

 

 

1.

친구와 경쟁자 : 나는 친구의 성공을 배 아파하지 않는 쪽인데, 그것은 내가 착해서라기보다 내 경쟁자는 친구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게 옳을 것이다. 오히려 친구라면 잘난 친구가 많았으면 좋겠다. 의사, 변호사, 사업가, 교수, 작가 등의 직업을 가진 잘난 친구가 많다면 그것도 나의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쟤 주위엔 변변한 친구 하나 없어.”라고 하는 것보단 “쟤 주위엔 똑똑한 친구들이 아주 많아.”라고 하는 게 폼이 나 보이잖아.

 

 

글 쓰는 친구들도 몇 있고, 그중 모 일간지 신춘문예의 후보까지 올랐던 친구도 있는데, 난 그 친구들 중에서 누구라도 꼭 신춘문예 당선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것도 일종의 허영심인지 모르겠다. 훌륭한 친구가 많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은 허영심.

 

 

설령 허영심이라 할지라도 친구에 대해 시기심을 갖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이다. 시기심을 갖는 순간부터 친구 간의 우정은 깨지는 것이므로.

 

 

내 경쟁자는 친구가 아니고 나 자신이다.(이거, 어디서 읽은 것을 내가 따라하는 것 같다.) 친구를 뛰어넘고 싶은 게 아니라 현재의 나를 뛰어넘고 싶으니까.

 

 

 

 

 

2.

좋은 리뷰 : 아무래도 이곳이 책과 관계되는 곳의 블로그인지라 책 내용과 관련한 글을 많이 쓰게 된다. 그래서 좋은 리뷰에 대해 관심이 많다. 좋은 리뷰란 어떤 것일까. 필자의 개성과 새로운 시각이 담겨 있는 글이라고 알고 있다. 리뷰가 단순히 책의 내용만 소개해선 안 된다. 아무리 책의 내용을 잘 소개했다고 해도 개성 있는 새로운 시각이 없다면 좋은 리뷰가 될 수 없다.

 

 

리뷰를 잘 쓰려면 우선 책을 꼼꼼히 읽고, 깊게 읽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작가에게 감동 받을 만큼 매료된 책을 선택하는 게 좋다. 이런 책에 대해 리뷰를 쓸 때 성공할 확률이 높다. 자신이 감동 받지 않은 책에 대해 감동 있는 리뷰를 쓸 순 없다는 사실을 명심할 일이다. 아주 비판적으로 읽은 책을 선택하는 것도 좋다. 어쨌든 강한 인상을 남긴 책이 좋다는 것이다.

 

 

한 달에 열 편의 리뷰를 쓰기보단 두세 편의 리뷰를 쓰는 것이 리뷰를 더 잘 쓸 수 있다. 열 권의 책을 읽을 에너지와 시간이라면 차라리 두세 권만 선택해서 여러 번 읽고 깊은 글의 리뷰를 쓰는 게 좋다는 것이다. 리뷰를 쓸 때 염두에 둘 것은 ‘책의 핵심을 읽고, 깨닫고, 현실에 적용해 보기’이다.

 

 

글을 쓰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좋은 문장을 쓸 때가 있는데, 이때 주의할 점은 이 부분을 한 줄짜리의 문장으로 간단히 처리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그 문장을 중심문장으로 만들어서 한 문단을 만드는 게 좋다는 것이다. 그 부분에서 길게 늘어지고, 깊게 뼛속까지 들어가 써서 자신의 깊은 안목을 보여 주는 게 좋다.

 

   

좋은 글이란 ‘인간과 세상에 대해’ 필자의 깊은 안목을 드러낸 글이다.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와 세상에 대한 이해 없이는 좋은 글을 쓸 수 없으므로, 인간과 세상을 알기 위해 책을 많이 읽으며 공부하는 게 좋은 글을 쓰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 하겠다.

 

 

“나는 모든 글 가운데서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그대는 피가 곧 정신임을 알게 되리라.”(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을 읽으며 이 말에 밑줄을 그었다.

 

 

 

 

 

3.

글을 왜 쓰는가 :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리고 싶은, 그러니까 글을 쓰는 놀이를 하고 싶은 욕구와 나만이 아는 비밀을 보여 주고 싶은 욕구, 이 두 가지가 글을 쓰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 비밀이란 부분에서 매번 실패한다. 삶을 통찰한 비밀이어야 하는데, 이것을 담은 글을 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쉽지 않아서 매력적인 작업이라고 여긴다. 매력적이라 포기할 수 없는 것 같다.

 

 

 

 

 

 

4.

능력의 한계에 부딪히는 일 : 글을 쓰다 보면 저절로 자신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를 알게 되고 자신의 능력의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이 지점에서 누군가는 그 한계점을 뛰어넘고 누군가는 그 한계점에서 더 이상의 발전 없이 제자리걸음인 상태에 머물며 글을 쓸 것이다.

 

 

“자기 자신의 성취에 대해 완전히 만족하는 것은 수준 낮은 예술가들뿐이다.”(아담 스미스, <도덕감정론>)

 

 

수준 높은 예술가들도 자신의 예술 작품에 대해 만족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이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 글을 쓰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점점 신중해진다. 그러다 보니 글을 많이 쓰지 못하게 된다.

 

 

 

 

 

 

5.

오도엽 저, <속 시원한 글쓰기>가 조언하는 것 : 어떤 신간이 나왔는지 인터넷 서점에서 자주 알아본다. 어떤 책이 새로 나왔는지 궁금해서다. 모두 사 볼 수는 없지만 대충 책의 내용만이라도 알아 두는 편이다. 그러다가 찾은 책이 오도엽 저, <속 시원한 글쓰기>이다. 이 책이 조언하는 것을 정리해 보았다.

 

 

 

 

 

 

 

 

 

 

 

 

 

 

 

 

 

 

5-1. 자기 멋대로 써라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면서 어깨에 힘을 빼고 자기 멋대로 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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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화장실에 앉아 똥을 누는데, 굵다. 그 굵은 줄기를 보며 굵어야 할 것은 똥발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벅지도 굵어야 하고, 뚝심도 굵어야 하지 않는가? 그래서 “굵어야 할 것이 있다 / 가진 것 없는 몸뚱이 똥발이 굵어야 한다”라고 시부렁거렸다.

 

낙서처럼 화장실에서 재미로 쓴 ‘똥발’ 이야기를 보여줬더니, 남들이 ‘시’라고 불렀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것도 모자라 이 낙서가 문학상을 받고, 시집으로 출판되니 황당했다. 남들이 나를 ‘시인’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직업이 노동자에서 시인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똥인지 시인지 모르고 지껄일 때는 승승장구했다. 문제는 그 뒤에 일어났다. 시집을 펴낸 뒤로 거의 세 해 동안 한 편의 시도 쓸 수가 없었다. 막상 시인이라고 불리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 시인으로서 시를 쓰려니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 그래서 맘을 바꿨다.

 

‘뭐 있나. 그냥 내 멋대로 쓰자. 언젠 시가 뭔 줄 알고 썼나.’

 

아, 놀랍게도 그 뒤로 시가 써졌다.

 

.................................................오도엽 저, <속 시원한 글쓰기>에서.

 

 

 

 

5-2. 너 자신을 써라

 

예전에 문학 강의를 들었던 곳에서 어느 교수님은, 작가는 글을 쓸 때 자신의 항문도 보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 숨김없이 자유롭게 써야 좋은 글이 탄생한다는 것이겠다. 그 얘기를 들은 나의 반응은 ‘어떻게 항문을 보여, 말도 안돼’였다. 원래 인간의 밑바닥을 보여 주는 작품이 진짜라는 건 안다. 하지만 나의 경우, 내 사생활이 노출되는 글을 올리고 나면, 며칠 뒤 그걸 다 지우고 싶어진다. 나는 항문은커녕 나의 새다리조차 보이기 싫어한다. 그렇다면 나는 글을 쓸 그릇이 안 된다는 것인가. 그러나 앞으로 글을 쓸 때 대담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무식한 용감’을 발휘하고도 뻔뻔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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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을 써라!”

 

내가 처음 글을 쓰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글이 써지지 않는다고 답답해하지 마라. 자신의 글에 만족을 느끼지 못해 미치지 마라.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적으면, 막혔던 글 보따리가 터진다. 쓸 이야기는 자신의 몸 안에 잔뜩 있다.

 

.................................................오도엽 저, <속 시원한 글쓰기>에서.

 

 

 

 

5-3. 쉬운 것부터 써라

 

이 책에 따르면, 누구한테나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가 하나쯤 있으니 그 이야기를 친구에게 말하듯 적으면 글이 된다고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 쓰되, 쉬운 것부터 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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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이야기는 잠시 미뤄두고, 우선 내 이야기부터 쓰자. 나를 쓰되 어렵게 시작하지 말자. 오늘 있었던 일이어도 좋다. 문득 떠오르는 옛 애인 이야기도 괜찮다. 뭐든지 떠오르는 대로 써라. 오늘부터 하루에 30분, 아니 단 3분이라도 나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며 종이에 적자. 퇴근길에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내 하루를 올려도 좋다.

 

뭐라도 써야 다음 이야기를 이어갈 것 아닌가.

 

.................................................오도엽 저, <속 시원한 글쓰기>에서.

 

 

 

 

5-4. 글 잘 쓰는 비결

 

글 잘 쓰는 비결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좋은 글을 많이 읽는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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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좋은 내용이 담긴 글들을 함께 실었습니다. 잘못 쓴 글을 고치는 것보다 좋은 글을 많이 만나는 게 글쓰기에 더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건 어법이 어떻고, 이건 비문이고, 이건 잘못된 표현이고, 빨간 줄을 친다고 글이 잘 써지는 게 아닙니다. 좋은 생각, 좋은 표현을 익힐 때 좋은 글, 살아있는 글이 나옵니다.

 

..................................................오도엽 저, <속 시원한 글쓰기>에서.

 

 

 

 

좋은 내용이 담긴 글들을 함께 실었다고 하니까, 이 책에 관심 갖는 글쟁이들이 많겠다. 나도 좋은 글을 쓰는 비결의 그 첫째로 ‘좋은 글을 반복해서 많이 읽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후기>

 

 

요즘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글이 잘 써지지 않으면 처음으로 돌아가 초보자의 자세로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내가 초보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 맞다.ㅋ)

 

자, 이제부터 나도 어깨에 힘을 빼고 내 멋대로 쓰기, 남 얘기 말고 나 자신에 대해 쓰기, 쉬운 것부터 쓰기, 좋은 글을 많이 읽기 등을 실천하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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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9-15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동감이에요. 최근 강영숙 소설 라이팅클럽을 읽었는데요, 이 페이퍼 결론에 닿아있어요. 재미났어요. 권해드리고 싶어요.^^

페크pek0501 2012-09-16 13:33   좋아요 0 | URL
반가운 프레이야 님.
책 추천, 고맙습니다. 부지런히 읽으시는군요.^^

한 친구가 제게 전화를 자주 해 줘서 고마운 마음에 이메일을 보냈어요.
챙겨 줘서 고맙다고요. 그랬더니 제게 전화를 한 이유가 두 가지라며 답장을
보내 왔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비밀이고(공개하기가 부끄러워서 ㅋ), 두 번째 이유가 저의 맑은 마음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기분이 좋아지게 한 대요.
으음~~ 이 나이에 맑다는 말을 들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제가 프레이야 님에게서 느끼는 것도 비슷해요. 님의 가을 하늘 같이 맑은 마음이 느껴집니다.
님의 닉네임에서도 느껴져요. 프~레~이~야... 맑은 느낌...^^

숲노래 2012-09-17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안 써진다면, 예전에도 안 써졌다는 뜻이에요.
내 마음은 언제나 첫마음이 오늘 마음이고 모레나 글피 마음이에요.
첫마음으로 돌아가는 일이란 없다고 느껴요.
오늘 살아가는 마음이 곧 첫마음이니까요.

그러니까, 오늘을 잘 누리면서 좋아하고,
이 삶을 글로 쓰면 되겠지요.

페크pek0501 2012-09-19 13:31   좋아요 0 | URL
반가운 된장 님.
그러고 보니 글이 잘 써져서 기분 좋았던 날이 생각 안 나네요.
그런데 님의 말씀은 고차원적인 말씀이라 쉽게 와 닿질 않네요. 전 조금만 어려운 문장을 만나면 그 뜻을 모른답니다. ㅋㅋ하지만 좋은 말씀이라는 건 감으로 느껴지니까, 곱씹어 보겠습니다.
이 환절기에 아이들 감기는 들지 않았나요? 저는 아이들 키울 때 감기에 잘 걸려서 환절기가 싫었답니다. 커서 초등학교에 들어가니까 감기에 걸리지 않더라고요. 가족 모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또 뵈요. ^^

루쉰P 2012-09-17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은 여전히 페크님만의 향기를 내 보이시며 글을 쓰시네여 ㅋ 페크님의 리뷰를 읽을 때마다 도움이 많이 돼 참으로 좋아요 ㅋ 글을 읽고 곰곰이 생각한다고 할까여? 전 여전히 삶의 쳇바퀴에서 돌고 돌고 있어여 나가야 하는데 말만 하고 있어여 ㅋ

페크pek0501 2012-09-19 13:35   좋아요 0 | URL
루쉰 님, 매우 오랜만이라 반가워 기절?하겠네요.
아직도 잠수 중이신 거예요? 너무 긴 경향이 있어요. 저도 6월에 쉬기 시작해 서재활동을 7주 동안 쉰 적이 있었답니다.
어떤 일이든 휴식은 필요하죠. 하지만 루쉰 님은 좀 길어요. 그만 나타나세요.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글을 올리세요.‘저, 바쁩니다.’이런 글이라도요.
‘글이 안 써져요’하는 글이라도요. 근황을 알려 주세요. 이제 나타나셨으니 앞으로 오래 잠수하지 않으시겠죠?

저의 향기라... 기분 좋은 표현인데요. 고맙습니다. 제 표현에 의하면, 매일 그 타령을 하고 있답니다. 어쨌든 방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거, 진심인 것 아시죠?

oren 2012-09-18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께선 '요즘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고 답답해 하시지만, 저는 요즘 '댓글'조차 잘 써지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어요. ㅎㅎ

그런데 가끔씩은 누구나 자기 자신도 모르게 슬럼프와 비슷한 어떤 '뜻대로 되지 않는' 현상들을 겪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경향은 운동선수들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도 가끔씩 찾아오기 마련일텐데, 어떨 땐 그런 슬럼프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기나긴 시간동안 지속될 때도 있다고 하더군요.

암튼 페크님의 글 속 조언대로 '어깨에 힘을 빼고' 모처럼 댓글 남겨봅니다.

페크pek0501 2012-09-19 13:37   좋아요 0 | URL
오늘 반가운 분들만 만나네요. 오렌 님은 또 얼마나 오랜만이십니까.
잘 지내고 계시나요? 댓글 쓰는 것, 저도 어려워요. 그래서 마음으론 서재의 지인들에게 추석 전에 한 바퀴 돌면서 명절 잘 보내라고 인사댓글을 써야지, 하고 있는데, 잘 될지 모르겠다는...

오렌 님과 처음 알게 된 게 작년 9월 이맘 때가 아닌가 싶어요.(제 기억이 맞다면요.) 그런데 시간이 한 바퀴 뺑 돌아 벌써 1년이란 시간이 지났네요. .
빠른 시간이 끔찍하지 않습니까.
또 뵙기를... 반가웠습니다.
 

 

 

1.

오래전, 어느 문화센터에서 수필 강의를 듣던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첫 수업 때 신입 수강생이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이렇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초보자의 마음으로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겸손하게 말하기 위해 그렇게 말했다. 최대한 나를 낮추고 싶었던 게 내 의도였다. 그런데 그날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자기소개'의 인사말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초보자의 마음으로 열심히 배우겠다는 말은 이미 초보자가 아니라는 말이 아닌가. 초보자는 아니지만 초보자의 낮은 자세로 임하겠다는 뜻이 아닌가.

 

 

아마 나는 문학의 초보자가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미 몇 년 동안 소설, 드라마, 추리소설, 시 등의 강의를 들었고 습작도 해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초보자가 아니라는 뜻을 담은 말을 실수로 했을 뿐이다. 그래서 ‘겸손하기도 힘든 거구나’하고 생각했다.

 

 

말에는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2.

대중목욕탕에서 있었던 일이다. 거기서 팔십 세쯤으로 보이는 노인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말했다.

 

 

“새댁은 젊어서 좋겠다. 돈보다 좋은 건 젊음이야.”

 

 

“저, 새댁 아닌데요.”

 

 

“내 눈엔 젊으면 다 새댁으로 보여.”

 

 

그렇겠구나. 노인이 되면 노인이 아닌 사람은 다 젊어 보이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노인의 짧은 말에서 어떤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돈보다 좋은 건 젊음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노인은 가난하게 살지 않았거나 지금 가난하지 않을 것 같다, 라는 것이다. 가난하게 산 사람은 또는 현재 가난한 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 고생한 사람은 돈이 좋은 거라고 말했을 것이다. 젊음은 누구나 한때 가질 수 있는 것이지만 돈은 그렇지 않으니까.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

 

 

말에는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3.

누군가가 멋진 가방을 삼십만 원에 샀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두 가지로 반응할 수 있다.

 

 

“멋진 가방을 싸게 잘 샀네.” 또는 “멋진 가방이지만 왜 그렇게 비싸.”

 

 

이런 반응에서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가방의 가격을 짐작할 수 있다. 삼십만 원보다 훨씬 높은 가격의 가방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가방이 싸 보일 수 있고, 삼십만 원보다 훨씬 낮은 가격의 가방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가방이 비싸 보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 사람의 경제적 형편까지 추측해 볼 수 있다.

 

 

말에는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4.

최근 김어준 저, <닥치고 정치>를 읽었다. BBK, 삼성 기업, 이명박 대통령과 여러 정치인들 등에 대한 놀라운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책이다. 그런데 내가 가장 흥미를 느낀 것은 그런 것들보다 저자의 남다른 통찰이 돋보이는 대목, 정치인 ‘조국’에 관한 글이었다.

 

 

 

 

 

(조국은) 공부 잘하고 잘생긴 아이로 칭찬받으며 성장했을 것이고, 그 경쟁에서 항상 선두에 있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를 위해 직접 나서기까지 했고 또 하고 있으니까. 그런 삶을 통해 자신의 몸에 스며든 애티튜드가 있을 텐데, 그게 그런 문장(그의 글을 말함) 뒤에 자리하고 있다고 느껴버리는 거지. 사실 조국 정도면 스스로 대견해하고도 남지. 그 정도 남자가 어디 흔한가.

 

 

그런데 대중이 정치인 조국에게서 그런 걸 느껴버리면 조국은 조국만의 가치를 급속히 상실하게 된다고. 진보는 자기가 가진 게 당연해선 안 되는 거거든. 누구도 가진 게 당연한 사람은 없는 법이고. 그러니까 조국이 전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가진 자산 때문에 대중 일반에게 야기할 수밖에 없는 모종의 박탈감, 그것까지 감지하고 배려할 정도의 섬세한 대중 감수성, 그게 부족하다. 물론 조국은 억울하겠지. 하지만 어떡해. 가진 게 죄지.(웃음)

 

 

- 김어준 저, <닥치고 정치>에서.

 

 

 

 

‘조국’이란 정치인이 ‘진짜 오만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읽힌다’는 글이다. “자신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렇게 느껴질 수 있는 애티튜드가 지속적으로 유포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말(또는 글)을 객관화할 수 있는 ‘섬세한 감수성’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표현 방식으로 말하면, 말에는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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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2-08-29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댁이시네요~ ㅎㅎ 맞아요. 나이가 들면, 더 젊어보이는 사람들이 애들로 보이죠.
모든 게 상대적이에요. 그쵸? 정보라는 것도... 그렇지 않을까요?

페크pek0501 2012-08-30 13:56   좋아요 0 | URL
맞아요, 글샘 님. 모든 게 상대적이에요.
같은 말을 해도 듣는 이에 따라 해석이 달라요.
그리고 저, 새댁이에요. ㅋㅋ

마립간 2012-08-29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번 글 ; (억울함때문에 기본을 포기)하지 않는 용기가 있다면 좋겠어요.

페크pek0501 2012-08-30 13:58   좋아요 0 | URL
아, 마립간 님. 매우 오랜만인 것 같군요. 제가 자주 방문해야 하는 건데... 미안한 마음이 드네요.
용기... 제가 요즘 그 용기가 없어서 글을 못 쓰고 있어요. 용기를 사러 백화점에 가야겠어요. 농담임... 반갑습니다. ^^

프레이야 2012-08-29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의 내용뿐만 아니라 단어선택, 어조, 억양 등에도 정보가 담겨있지요. 페크님, 저도 가끔 새댁 소리 들어요. 아가씨라고까지ㅋㅋ 나이 드신 분들 눈엔 새파란 청춘으로 보이나 봐요. 아무튼 말을 잘하기란 정말 어려워요. 진심을 제대로 전달하고 소통하는 게 말의 목적이라면 말이죠. ^^

페크pek0501 2012-08-30 14:02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 님이 세세하게 잘 설명하셨네요. 말하기 정말 어렵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그래서 큰 모임 같은 데는 잘 가게 되지 않고 맘에 맞는 소수의 사람들만 만나져요. 괜한 오해를 받는 게 싫어서 말이죠.
프레이야 님, 오늘 가을 같아요. 비가 오고 서늘해요. 보일러를 켜야 할까요? ㅋㅋ 긴 팔의 옷으로 갈아 입어야 하는 거죠? 지금 반바지 차림임...ㅋ
그리고 님도 저처럼 새댁 같은 동안? 히히~~

비로그인 2012-08-29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이지 공감가는 글이네요. 뱉고 나서 곱씹게 되는 게 말이라니... 곱씹고 나서 내뱉으려면 신경을 아주 많이 써야하려나요. 마음하고 연결되어 있기에 말도 참 어려운 거 같아요. 페크님 단상글은 나중에 책으로 묶어도 좋겠어요 ㅎㅎ

페크pek0501 2012-08-30 14:03   좋아요 0 | URL
책? ...
무슨 그런 말씀을... 요즘 맘에 드는 글을 못 써서 의기소침해 있는 제게 힘을 주시는데요. 감사합니다.

마태우스 2012-08-30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이지 공감가는 글이네요(2). 초보자의 마음,이 가장 공감됐습니다. 말에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담겼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네요. 팬으로서 열심히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해요 페크언니!

페크pek0501 2012-08-30 14:04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 님이 별 말씀을 다 하시네요. 이 하찮은 글에 댓글을 남겨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얼마나 바쁘실지 짐작이 갑니다.


숲노래 2012-08-30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 새내기라고 생각하고 말하면 새내기일 뿐이지요.
남들이 무어라 토를 달건,
스스로 새내기가 되겠다 하는데 남들 말마디 때문에 달라질 삶이란 없어요.

새내기가 아니라서 새내기라 말한다 한들, 새내기가 아니라고 드러낸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새내기이니까 이렇게 말하지요.

아이들은 언제나 "나는 아이인데." 하고 말해요.
아이가 아니라서 아이들이 스스로 '아이'라 말하지는 않겠지요.

페크pek0501 2012-08-30 14:05   좋아요 0 | URL
예, 된장 님. 전달하려는 메시지만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제가 초보자라고 말하면 초보자인 거죠. 저는 지금도 ‘늘 처음처럼’의 자세를 좋아합니다.
반가웠어요.
 

 

 

 

1.

미시마 유키오의 <부도덕 교육강좌 69>에는 69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그중 ‘마음껏 참견을 할 것’이라는 제목의 에세이가 있다. 이 글에서 저자는 참견하는 사람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나타내며, 남의 일에 참견을 하는 사람의 인생은 장밋빛이라고 단정한다. 그 이유는 그런 사람은 언제까지나 자기 얼굴은 안 보이고 남의 얼굴만 보이기 때문에 인생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참견을 잘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녀는 기차를 탄다. 커다란 짐을 가진 할머니가 손잡이에 매달려서 서 있고 좌석은 만원이었다. 할머니 앞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은 학생이 시시한 잡지나 대수롭지 않은 뭔가를 펴 들고 열심히 읽고 있다. (…) 그녀는 금방 학생의 이기주의에 기가 막혀서 울분을 터트린다.

 

“뭐에요? 당신은 젊은 학생이면서 이 무거운 짐을 가진 노인이 안 보여요. 빨리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하세요.”

 

그러나 뜻밖에도 할머니 쪽에서 반박했다.

 

“그만 두시오. 나는 아직 노인이 아니고, 첫째로 이 짐은 솜이에요.”

 

차 안의 모든 손님은 웃음을 터트리고 그녀는 슬금슬금 다음 역에서 내려 다른 차량으로 옮겨 탄다.

 

 

- 미시마 유키오 저, <부도덕 교육강좌 69>에서.

 

 

 

그녀는 또 다른 데에 가서 참견을 한다.

 

 

 

 

대낮부터 연인들이 나무 그늘 벤치에 기대서 넋을 잃고 있다. 이 무슨 추잡한 부도덕한 광경인가! 그녀는 거기 있는 여성들 모두를 동정한다. 그녀들은 모두 속아서 걸려든 새끼양들이다.

 

한 벤치에 가장 비극적인 한 쌍이 있었다. 여자는 양가집 규수인 듯 얌전하고 청순한 아가씨였고, 남자는 상고머리에 눈초리가 사나워서 보기에도 건달 같은 청년이었다. 이런 한 쌍은 바로 보고 지나칠 수가 없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서 다가가 말을 건다.

 

“아가씨. 이 남자는 건달이에요. 당신의 인생을 소중히 하지 않으면 되돌릴 수 없는 불행의 씨앗이 되고 말 거에요.”

 

그러니까 청년은 눈을 부릅뜨고

 

“어이, 이봐! 못된 아줌마 같으니라구. 내 여자한테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야.”

라며 빈정대는 것이다. 그래도 이 사람은 보기와는 달리 관대한 편이다.

 

그 아가씨는 쌀쌀한 눈으로 힐끗 쳐다보고 나서 남자에게

 

“아무래도 올드미스의 히스테리일 거에요.”

라고 말하는 것이다.

 

“올드미스라니 말 삼가세요. 나는 결혼한 가정주부예요.”

 

“가정주부라면 댁에 가서 애나 보시지.”

 

이것으로 그녀는 또 다시 화가 나서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다.

 

 

- 미시마 유키오 저, <부도덕 교육강좌 69>에서.

 

 

 

이런 예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우리는 때때로 남의 생각과 상관없이 이것(참견)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면서 “아무런 도움도 안 되고 헛일일지라도 참견에는 한 가지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남을 귀찮게 함으로써 스스로 즐길 수가 있다’는 것이고, 더구나 정의감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안전하게 행사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2.

예전에 지인이 말한 적이 있다. 남에게 함부로 충고를 하는 게 아니라고. 더군다나 그 상대방이 바라지 않는데도 충고를 하는 건 실례가 될 수 있다고. 그때 그 말에 나도 동의했다. 내가 동의한 이유는 이렇다. 첫째, 충고로 인해 상대방이 자존심이 상해 불쾌감을 느낄 수 있어서다. 둘째, 인간은 남의 충고에 따르기보다 어차피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존재여서다. 그러므로 함부로 충고를 해서 괜히 둘의 관계만 나빠질 수 있으니, 남의 인생에 끼어들며 참견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잘못 말해서 인심만 잃는 경우가 많지 않던가.

 

 

그러나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든다. 절친한 친구가 나쁜 길로 가고 있는데도 충고를 하지 않는 게 과연 최선일까. 그것은 인심을 잃지 않으려는 이기주의자의 태도가 아닐까. 만약 친구가 결혼생활이 파탄에 이를 정도의 춤바람이 났는데도, 친구가 재산을 탕진할 정도의 도박에 빠져 있는데도, 친구가 지나치게 쇼핑에 중독이 되어 있는데도 불난 남의 집 불구경하듯 보기만 해야 할까.

 

 

이렇게 친구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면, 둘의 관계가 나빠지고 인심을 잃더라도 충고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게 진정한 친구의 모습일 것 같다. 상대방이 당장에 그 충고를 달갑게 듣지 않을지라도 언젠가는 한 번쯤 그 충고가 떠올라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또 여러 사람이 같은 말로 충고했다면 충고의 효과는 커질 것이다. 다수의 의견은 옳게 여겨질 때가 많으므로.

 

 

미시마 유키오 저, <부도덕 교육강좌 69>에서 읽은 ‘마음껏 참견을 할 것’이라는 에세이는 ‘남에게 충고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여겼던 나에게 생각을 뒤집어 보는 시간을 갖게 하였다.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을 뿐 아니라 창피를 당하고 마는 ‘참견을 잘하는 여자’의 모습을 보니, 내 체온이 따스해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료의 서비스 정신을 발휘하는 사람을 본다면 난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을 내기가 어렵다. 남의 일에 참견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

 

<후기> 참견과 충고에 대한 명언

 

 

부정적인 말 :

지나치게 참견하는 바보는 적보다 더 나쁘다.(크릴로프)

아무도 너 자신보다 더 현명한 충고를 네게 해 줄 수는 없다.(키케로)

자기와 무관한 일에 관해서는 참견하지도 말고 굳이 알려고도 하지 마라.(지눌)

친구들의 사회적 약점을 그들에게 충고하지 마라. 그들은 자기 약점을 없앤 뒤 너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L. P. 스미스)

충고는 결코 환영받지 못한다. 충고가 가장 절실히 필요한 사람일수록 언제나 그것을 가장 싫어하는 법이다.(체스터필드)

 

 

긍정적인 말 :

좋은 충고보다 더 값진 것은 없다.(에라스무스)

바보마저도 때로는 좋은 충고를 한다.(A. 겔리우스)

나무는 먹줄을 따라야 곧게 되고 사람은 충고를 받아들여야 거룩해진다.(공자)

가끔 남의 충고를 들을 필요가 전혀 없을 만큼 그렇게 완전한 사람은 없다.(그라시안)

바보들보다는 현명한 사람들에게 충고가 더 불필요하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들은 충고로부터 가장 많은 도움을 받는다.(귀치아르디니)

 

 

 

************************

 

내가 갖고 있는 책은 미시마 유키오 저, <부도덕 교육강좌 69>라는 책인데, 이것은 절판된 듯하고 현재 출판되어 있는 것으로 <부도덕 교육강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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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2-08-13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는 남에게 충고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남이 자기에게 충고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거죠.

페크pek0501 2012-08-14 12:23   좋아요 0 | URL
늘 고마운 이웃님, 반갑습니다. 맞아요. 그런 경향이 없지 않지요.
이 페이퍼는 님 덕분에 쓰게 된 것, 짐작하시죠?
님의 페이퍼에서 미시마 유키오라는 이름을 보고 어, 내가 그의 책을 읽었는데, 이러면서 책을 찾아보았지요. 이 페이퍼는 “그만 두시오. 나는 아직 노인이 아니고, 첫째로 이 짐은 솜이에요.”
라는 글에 밑줄이 그어져 있어서 하하~~ 웃고 나서, 이걸 넣어 글을 쓰면 재밌겠다, 이러면서 쓰게 된 거예요. 참견에 대한 단상을 쓴다면 생각할 거리도 되겠다 싶었고요. 결론은 읽는 사람 각자가 내는 걸로...왜냐하면 저도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니까요.ㅋㅋ

노이에자이트 2012-08-14 14:34   좋아요 0 | URL
으하하하! 짐작합니다.저는 미시마에게서 풍기는 마초주의가 좋더라고요.

페크pek0501 2012-08-15 16:10   좋아요 0 | URL
저도, 으하하하! ㅋㅋ

프레이야 2012-08-13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고가 필요한 때도 있지만 섣부른 충고가 화를 초래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 말이 생각나요.
충고를 받아들일 마음이나 자세가 되어있고 스스로 충고 받기를 원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먼저 섣불리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더라구요.ㅎㅎ

페크pek0501 2012-08-14 12:2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섣불리 충고할 필요가 없어요. 상황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 상대가 처한 상황을 잘 이해할 수도 없고 그 상황 속에서 어떤 느낌, 생각을 갖게 되는지도 제삼자는 알 수 없잖아요.(인생을 바꿔 살아보지 않는 한...) 그리고 이건 극단적인 생각인데 우울증에 걸려 괴롭게 살기보단 춤바람이 나서 즐겁게 사는 낫다고 봐요.(요건 아주 극단적인 비교...ㅋ)

반가운 프레이야 님, 오늘 날씨는 그리 덥지 않을 것 같아요. 새벽에 침대 옆 커튼이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더라고요. 제법 공기도 찼고요. 이제 다시 뜨거운 커피가 당기는 시간이 온 거죠.(너무 더울 땐 냉커피를 마셨어요.) 물론 아직 낮은 덥겠죠. 고 정도야 견딜 수 있죠. 입추와 말복이 다 지났으니 우린 이제 여름의 끝자락을 잡고 있는 거니까, 무더위로 인한 고생은 끝~~ 인 거 맞죠?

마녀고양이 2012-08-14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언니 오랜만이셔요...
잼난 페이퍼라서 열심히 읽었어요.... 아하하.

춤바람이 나거나 엄청 잘못된 선택을 할 때, 충고를 해주는 것은 좋은거 같아요.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충고를 해주느냐의 문제가 있겠죠. 특히 남의 상황을 잘 모르면서,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면서 자기 기준으로 충고를 해주는 사람은, 과연 남을 위해서 해주는 것일까 동기가 의심스러워지기도 합니다. 순수한 의도일지라도, 상대가 왜 그렇게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것인지 헤아려주는 것도 필요한거 같구요.... 그리고 프야 언니의 말씀처럼 스스로 충고를 원하는 상태가 아니라면, 저는 이제 충고를 하지 않으려고 해요. 옆에서 아무리 안타깝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제가 해결해줄 성질이 아니니까요. 전, 도저히 제가 견딜 수 없을거 같은 사람이라면 그냥 멀리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제게 도움을 제대로 청하고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보이면, 당연히 돕구요....

정말 긴 여름이었어요.... 건강하게 잘 지내셨어염? ^^~~

페크pek0501 2012-08-14 12:29   좋아요 0 | URL
이게 누구십니까? 마녀고양이 님이 닉네임을 새로 바꾸셨군요. 어쨌든 반가워요. 저는 닉네임을 바꾸고 싶어도 못 바꾸겠어요. 안 그래도 지명도가 낮은데, 더 낮아질까 봐... 그래서 아무도 방문하지 않을까 봐... 그래서 배경도 못 바꾸고 있다는...ㅋㅋ

님이 말씀하신 대로 어떤 방식으로 충고를 해주느냐의 문제, 이게 중요하죠. 말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거죠. 어떤 화법으로 얘기하는가 하는 것은 어떤 내용으로 얘기하는가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겠죠.

너무 오랜만이에요. 무지 반갑다는~~~~ 또 봐요.~~~~

숲노래 2012-08-15 0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시마 유키오 님 이 책은 참 오래되었고,
참 수없이 되풀이해서 나왔어요.

책이름이 '부도덕' 교육강좌이구나 하고 생각하면
글쓴이 마음이나 그무렵(1960년대) 일본이
얼마나 껍데기가 가득했는가를 헤아릴 수 있어요.

미시마 유키오 님은 1960년대 일본 사회를
비판(또는 조롱)하려고 이 책을 썼어요.

이 책이 아직까지 한국에서 끝없이 다시 나온다는 얘기는
그만큼 한국 사회가 형편없다는 소리일 테지요.

페크pek0501 2012-08-15 16:10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된장 님. 이번 무더위에 아이들이 땀띠는 나지 않았는지요?
오늘 서울은 비가 많이 오네요. 모처럼 시원한 날씨예요.

작가의 할 일이 원래 세상을 비판하고 바람직한 세상을 모색해 보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 책을,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게 해 주는 데에 유익한 책으로 봅니다. 사물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그 일에 대해 이 책에서처럼 자신의 생각을 뒤집어서 정반대의 해석을 해 본다면 기분전환이 될 것도 같아요. ^^

노이에자이트 2012-08-21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독에서 연합군의 군정이 끝나고 집권한 아데나워(독일은 의원내각제)는 1963년까지 장기집권합니다.이 시기 아데나워는 강력한 반공주의와 경제성장을 내세워 과거사 반성 같은 것은 신경쓰지 않았죠.그 전 연합군 군정 시절에도 소련을 제외한 연합군은 나치잔당들을 비호했습니다.그래서 하인리히 뵐이 한탄한 겁니다.

2012-08-22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2 1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3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2-08-22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트콤의 한 장면이 떠오르네요. 얹혀 사는 똑똑한 남자가 집주인한테 꼬박꼬박 참견해서 미움을 사고 있었는데, 하루는 자기도 미움 받으며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참견질을 아예 그만둬버려요. 그랬더니 집주인이 왜 말해줘야 될걸 안 말해주냐고 버럭 성질을 내더라는. 참견에도 중용의 덕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아니면 차라리 참견 시원하게 해버리든가 아예 묵인하든가, 하나였으면 좋겠어요. 끼어들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는 순간이 제일 괴롭더라구요 ㅠ ㅠ

ps. 방명록에 흔적 남겨주셔서 고마워요, 페크님. 저는 완벽주의자가 아니랍니다. 못될 거에요 아마. 가끔 완벽주의자에 대한 동경이 조금씩 튀어나오는 정도인 것 같아요. 그래서 글도 지우고 글씨도 지웠다 다시 쓰고. 사소한 일에 이렇게 반응을 한답니다. 아무튼 다시 오니 좋네요. 이런 글도 보고!

페크pek0501 2012-08-23 13:36   좋아요 0 | URL
1. "참견에도 중용의 덕이 필요..." - 좋은 의견이에요. 그런데 어떤 일이든 그 중용의 자리가 어디쯤인가가 어려워요.

2. 님은 완벽주의의 성향이 있는 게 맞습니다.(제가 보건대)ㅋ

3. 여름무더위와 함께 사라지셨다가 가을바람과 함께 나타나신 건가요. (오늘 날씨 흐리고 바람 불고 좀 서늘해요. 창문 닫았어요.)

4. 반가웠습니다.
 

 

 

 

이 세상은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클래식을 눈을 감고 느긋하게 귀로 감상하듯이 뭐든 천천히 하면서 그것을 음미하며 살고 싶은데, 그랬다간 뒤처진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빨리 빨리’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게으르게 살고 싶은 나는 ‘느림’을 여유롭게 사는 삶이라고 여기는데, 사람들은 이런 나를 인생의 낙오자로 여기리라. 세상은 부지런을 떠는 사람에게만 승리의 자리를 내주는 것 같다.

 

 

가끔 지금의 세상을 따라가기가 버겁다고 느낀다. 세상은 앞서고 나는 그것을 힘겹게 뒤따르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남들 앞에선 버겁다는 티를 내서는 안 될 것 같다. 이 세상과 더불어 내 삶도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한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촌스러우니까, 싸 보이니까. 그건 또 싫으니까.

 

 

며칠 전, 친구들과 빕스(VIPS)에서 점심을 먹었다. 처음 이런 곳에 갔을 땐 어색해서 맛있는 음식이었을 텐데도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이젠 이런 곳에서 식사하면서 자연스러운 척할 줄 알게 되었고, 맛있게 먹을 줄도 알게 되었다. 아, 그래도 부자연스럽다. 한 끼의 식사 값이 비싸서.

 

 

집에 셋톱 박스, 인터넷 전화, 인터넷 공유기 등 세 가지를 설치했다. 이 세 가지를 같은 회사의 것으로 설치하면 설치비가 싸고 사용료도 싸다. 또 시간을 놓쳐서 시청하지 못한 방송 프로그램을 나중에 시청할 수도 있다. 이런 정보를 알면서도 어찌 설치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난 기계와 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친해지고 싶지도 않아서 처음엔 망설였다. 그 사용 방법을 배우는 게 싫었다. 물론 배우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앞으로 제2의 빕스나 제2의 셋톱 박스가 얼마든지 생겨날 것이다. 생겨날 때마다 빨리 친숙해지는 게 바로 변화해 가는 세상을 따라가는 일이다. 이에 대해서도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하지만 부지런을 떨기 싫은 나는 새로운 것 좀 그만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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