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가지에 만족하면 행복할까, 불행할까
 




어떤 한 가지에 철저하게 만족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은 대개 다른 것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 버트런드 러셀 저, <런던통신 1931-1935>, 146쪽.




  

독서광이든, 낚시광이든, 골프광이든, 무엇을 광적으로 좋아하며 한 가지에 빠져 드는 사람은 분명 행복한 사람이지만 반대로 불행한 사람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한 가지의 즐거움에 빠져 사는 사람은 다른 다수의 일에서는 즐거움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연애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연애 이외에 다른 일들이 시시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연애하기 전에 좋아했던 친구들의 모임이나 여행조차 재미없어진다는 것이다. 그 무엇이든 연인과 함께 하지 않으면 흥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독서를 광적으로 좋아해서 책과 연애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책 읽는 일 이외의 일엔 흥미가 없어 무관심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귀찮게 느껴지는 일이 많아진다. 누군가의 방문이 있거나 전화가 오거나 또는 꼭 해야 할 일이 있거나 할 때, 그런 일들이 성가시게 느껴지는 것이다. 무엇이든 책 읽는 일을 방해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의 생활에 충실하려면 한 가지에서만 아닌, 모든 일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꼭 참석해야 하는 결혼식에 가는 날이면 결혼식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결혼하는 신랑과 신부를 축하해 주는 즐거움, 지인들을 만나는 즐거움,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 등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만 온 정신이 몰입되어 있으면 그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결혼식에 참석하는 그 자체도 귀찮을 뿐이다.


책에서 읽었는데, 혹자는 한 달에 삼십 권의 책을 산다고 한다. 책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나도 책을 좋아하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다. 삶의 균형이 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적당히 좋아하길 바란다.


그리고 생각한다. 독서처럼 한 가지에만 만족하는 삶이 행복할까, 불행할까.


2. 사람이 두 번 할 수 없는 것
 




옛 철학자가 말하길, ‘사람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뛰어들지 못한다’라고 했다. 그럼 내가 말하리라.


‘사람은 결코 같은 풍경을 두 번 볼 수 없느니라.’


-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 저, <아미엘의 일기>, 448쪽.




같은 강물에 두 번 뛰어들 수 없는 것은, 강물은 흐르기 때문에 두 번째 뛰어든 강물은 첫 번째 뛰어든 강물과 같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설사 고여 있는 물이라고 해도 같은 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 왜냐하면 만물은 늘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 본 나무와 오늘 본 나무는 같은 나무일지라도 정확히 말하면 같은 나무가 아니다. 어제 본 나무의 나뭇잎의 개수가 1000개였다면, 오늘 본 나무의 나뭇잎의 개수는 바람에 날려 떨어져서 900개인지 모른다. 나뭇잎에 앉은 먼지의 개수도 늘 변한다. 또 멀리서 나무의 겉모습만 봐도 같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조금 전 본 나무는 바람에 움직이는 나무였는데, 지금 본 나무는 움직임이 거의 없는 나무일 수도 있고, 조금 전 본 나무는 햇볕 속의 나무였는데, 지금 본 나무는 그늘 속에 있는 나무일 수도 있고, 비 맞고 있는 나무일 수도 있다. 또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기온이 25도일 때의 나무와 기온이 26도일 때의 나무가 같지 않으며, 습도가 많을 때의 나무와 습도가 적을 때의 나무가 같을 수 없다고. 그러므로 사람은 결코 같은 풍경을 두 번 볼 수 없다.


이 글을 쓰고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시간은 소중하다는 것. 왜냐하면 한 번 가고 나면 같은 시간은 오지 않으니까. 하루는 소중하다. 왜냐하면 한 번 가고 나면 같은 하루는 오지 않으니까. 그러므로 1분1초가 다 소중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가고 나면 다시 오지 않을 이 소중한 시간에.”


3.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경우 

    



언젠가 어느 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78세 된 어떤 노파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는 것이다. “78년 동안의 내 생애를 돌이켜 볼 때, 자기가 죄를 범했을 때의 일을 생각해 보면 아직도 나는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바보짓을 했다고 생각할 때는 이 나이가 되어도 자기를 용서할 수 없군요.”


- 임어당 저, <생활의 발견>, 155쪽.




바보짓을 하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은 바보짓을 하는 게 제일 싫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자기가 죄를 범했을 때의 일을 생각해 보면 아직도 기분이 좋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도 바보짓을 많이 하고 산다. 그럴 때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왜 그렇게 바보짓을 하고 살까?, 하면서 도대체 그동안 읽은 책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인가, 그동안 지나간 세월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책을 읽은 만큼, 또 보낸 세월만큼 지혜를 얻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으로 아무리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도 또 세월이 흘러 나이를 많이 먹는다고 해도 나의 바보짓은 계속 될 것만 같다.


어느 블로그에 들어갔더니 책을 많이 읽었으나 별로 이득이 없는 것 같아 앞으론 읽지 않겠다는 글이 있었다.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사실은 이에 공감했다. 나의 경험상으로도 독서는 삶의 지혜를 발휘하는 데에 별로 소용이 없었다. 또 노인의 지혜란 것도 믿을 게 못됨을 알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많은 경험으로부터 지혜가 생길 것도 같은데, 실제는 오히려 속이 좁아지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용서의 문제에서는 어떤가. 난 나의 바보짓은 용서할 수 있다. 어리석어서 저지르는 바보짓은 연민의 대상이지 미움의 대상은 아니지 않은가.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없는 건 죄를 범하는 경우일 것 같다. 도덕적 잣대로 봤을 때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경우다. 예를 들면 한 회사의 공금횡령을 했다거나 몸에 해로운 가짜 참기름을 만들어 파는 일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손실을 생기게 하는 일이다. 만약 이런 죄를 범하게 되면 뉴스에서 보는 어떤 범죄자에 대해서도 나는 비난할 자격이 없어진다. 어떤 범죄자도 비난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는 것, 이것보다 더 괴로운 일이 있을까. 그러므로 내가 가장 조심하고 싶은 것은 올바르게 살지 않고 죄를 범하는 것, 그것이다. 내가 잘 살기 위해, 내가 행복하자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그런 일을 가장 피하고 싶다.


바보짓을 하는 자신을 사랑할 순 있지만 죄를 범한 자신을 사랑할 순 없지 않은가.



4. 고뇌하는 나의 벗이여   

 

 


쇼펜하우어는 우리 인간이 마치 방탕한 아들처럼 본래 악에 물든 세상에 태어나서 불행하고 비참하게 살다가 끝내는 죽어야 한다며, 그 이유는 삶의 죗값이라고 하며, 우리는 그 점을 인정해야만 살 수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내 말대로라면 세상은 이미 죄의 텃밭이다. 그리고 인간이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가련한 존재라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우리가 상대방을 부를 때 아무개 씨라고 부르지 말고 그 대신 ‘고뇌하는 나의 벗’이라고 서로 불러 주자.


고뇌하는 그대여! 처음에는 습관이 안 되어서 좀 어색하겠지만 나중에는 서로 참아주고 위로하는 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우리는 그런 덕성을 갖지 않고는 살아가기가 힘들다.


- 쇼펜하우어 저, <사랑은 없다>, 156쪽.



결국 우리 삶이란 아등바등 발버둥을 치며 살아봤자 ‘죽음’을 향해 가는 삶에 불과하다.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이 가는 삶이니까. 또 삶은 유쾌한 일은 적고 불쾌하거나 걱정스러운 일로 가득 차 있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유쾌한 일을 되새기기보다 불쾌하거나 걱정스러운 일을 더 많이 되새기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뇌하며 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서로를 부를 때 ‘고뇌하는 나의 벗이여’라고 불러 주자는 게 일리가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부름으로써 좋은 점은 상대방의 허물이나 악의마저도 연민을 가지고 볼 수 있다는 게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벗을 향해 불러 보자. “고뇌하는 나의 벗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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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 2011-09-09 0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권의 책 다 저도 좋아하는 책이네요. <아미엘의 일기>는 제꺼는 동서문화사 판. 일기같은 걸 써본 적이 없어서 알라딘 초기에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문예출판사)하고 같이 샀는데 두 권 다 아끼는 책입니다. 요근래 <런던통신>에서 '누군가를 설득하고 싶다면'이라는 글이 재미있었어요.ㅋ 네 가지 이야기 다 저한테는 많은 울림을 주네요.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이유, 즉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계속 하고, 어떤 성향이 되는 데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 듯해요. 저는 그래서 그점이 재밌습니다. ^^

페크pek0501 2011-09-09 14:02   좋아요 0 | URL
매우 고맙습니다.

즐겨찾기 등록 수가 한 명 줄었기에 제가 새 글을 올리지 않아 화가 나서 그러신 줄 알고 뜨금해서 어제 급하게 써서 올린 것입니다. (저의 착각질이겠지만...) 그러나 앞으로도 부지런을 떨 자신이 없네요. 저의 능력부족. 한 달에 네다섯 편 정도의 글을 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어떤 성향의 글을 많이 쓴다든지 어떤 책을 많이 인용한다는지 하는 것은 글쓴이의 특색이 되겠지요. 주로 읽는 책들을 알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듯이요... 저도 저를 관찰중입니다.^^

초가을비가 오는 멋진 하루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oren 2011-09-09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은 글이네요...

pek님께서 '한 가지'에 빠져 드는 사람의 '행복과 불행'에 대해 말씀해 주시니, 제 '형편'이 생각나서 댓글을 달지 않을 수 없네요.ㅎㅎ 저 같은 경우는 '한가지'에 푹~ 빠졌다가 정신을 못차릴 정도가 되면, 거기서 슬금슬금 빠져 나옵니다. 그러다가 금새 또다른 '한가지'에 푹~ 빠지고... 매번 그런 현상의 연속이랍니다. 그래서 제 아내에게 참 바가지를 많이 긁힌답니다. 뭐 한가지에 빠지면 정신을 못차린다고 말입니다.

각설하구요, '같은 강물에 두 번 뛰어들지 못한다'는 글을 읽으니 문득 소설 속의 한 대목이 떠올라 여기에 덧붙이고 싶은데, 저도 아직 이 작품을 못읽어봤답니다.

* * *

"시간단위는 단순한 약속일 뿐이야. 시간에는 눈금이 없지. 세기가 바뀔 때 총을 쏜다거나 종을 울린다든지 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뿐이야."
- 토마스 만,『마의 산』中에서

페크pek0501 2011-09-09 17:51   좋아요 0 | URL
방문에 감사 드립니다. 뜻밖이라 '즐거운 깜짝 놀람'입니다.

저도 한 가지에 빠지면 정신을 못 차리는 편이라 이런 글을 썼던 거예요. 글이란 자신의 경험세계에 대해서만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책을 너무 좋아해서 한때는 감옥에 들어가고 싶었을 정도였어요. 주는 밥 먹고 책만 읽고 지낼 수 있는 감옥이요.ㅋ 오헨리가 감옥에서 대작가가 되어 나왔다는 일화도 있잖아요.

토마스 만, <마의 산>을 저는 읽었어요. 찾아보니, 제 책에는 이렇게 나와 있네요. 제가 밑줄을 쳐 놓아 빨리 찾을 수 있었어요.

"시간에는 사실 새겨진 눈금이 없다. 새로운 해나 달이 시작될 때도 천둥 소리나 나팔 소리가 울리는 것은 아니며, 새로운 세기가 시작될 때도 총을 쏜다든지 종을 울린다든지 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뿐이다." - 일신서적, 269쪽.

시간뿐이겠습니까. 모든 것은 사람들이 정한 것일 뿐이죠. '학문은 약속이다'이란 말이 생각나네요. 사람들이 '이렇게 하기로 하자'라고 약속을 해서 학문이 생겼다는 것. 그런 약속으로 시간도 탄생되었겠죠.

오늘 oren님 덕분에 시간에 대해 배웠습니다. 사실, 이 책을 잊고 있었어요.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빨리 사서 읽으려니 설렙니다. 이제 고백하는데, oren님이 정리하신 도덕감정론을 프린트해서 보았답니다. 그러다가 아예 사야겠군, 한 것이고요. 책 내용이 제가 찾던 책이어서 큰 도움을 받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이렇게 유명한 책 중 읽지 않은 책이 너무 많아요.

신지 2011-09-10 10:12   좋아요 0 | URL

저 같은 경우는 '한가지'에 푹~ 빠졌다가 정신을 못차릴 정도가 되면, 거기서 슬금슬금 빠져 나옵니다. 그러다가 금새 또다른 '한가지'에 푹~ 빠지고... 매번 그런 현상의 연속이랍니다.

ㅡ>

저도 오렌님, pek님과 똑같아요.^^ 뭐든 한 가지에 생각이 가면 특히 아무 일도 못하는 성격이라 ㅠ 그래서 저도 뜨끔했답니다.ㅋ

(이 글과는 좀 다른 얘기지만) 어쩌면 내성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이 다르듯이, 자신의 성향과도 관계가 있는 듯해요. 예전에 어떤 책에서 보니까, 흔히 보통 비젼과 목표를 명확히 하여 성공하라고들 하는데, 자신의 성향을 제대로 모르면 그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자신이 '이렇게 되고 싶다'라는 가시적인 목표를 정해놓아야 실천의욕이 생기는 목표추구형이 있는 반면, 먼 미래의 목표를 세우기보다 '나에게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자신의 소신과 내적 욕구에 충족감을 느낄 때 실천의욕이 생기는 '심리적만족형'이 있다고 하거든요. 저는 100% 심리적 만족형이라 ㅠ 무슨 일이든 열심히, 노력하는 식은 되지가 않더군요. 제 식으로 할 수밖에 없고, 좋아해야만 만족하고 잘 할수 있는 유형인듯. 그래서인지 여러가지를 경험하고 싶거나 많은 일을 하고 싶지는 않더군요(경험이 중요하다는 것도 일종의 신화가 아닐까 싶은) 제가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바쁘고 만족하는 편이어서요. 시간이 소중하겠지만, (사회에선 특히 그렇죠) 그런데 저는 정말 시간을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 편이어서.. 역시 저는 일반적, 사회적으로 보면 문제가 좀 있는 유형인 듯 ㅠ

아마도 pek님이 글에서 말하시는 것은 그것과는 다른 차원의 얘기인듯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지금 여기에 충실하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 잘 그러지 못해서 크게 동감했습니다. 저를 잠깐 돌아보게 되었거든요. 붓다는 삶은 연극과 같은 것이니 자신이 일시적으로 맡은 역할에 지나치게 빠져들지 말라고 했는데, 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어려워요...

페크pek0501 2011-09-10 10:33   좋아요 0 | URL
저 역시 심리적 만족형이군요. 성공을 지향하기보다 행복(내가 좋아하는 것)을 지향합니다.

'지금 여기에 충실하라'- 잘 지적하셨군요. 사실 이게 문제라서 쓴 글입니다. 한 가지에 빠지면 행복하고 좋은데, 다른 것들에 소홀해지는 게 문제라서요.

글이란 주제에 따라 달라지는데, 저는 이와 반대되는 글, 한 가지에 빠져 살자 그러면 행복하다, 라는 주제로 앞으로 글을 쓸지도 모릅니다.^^^ 아, 정반대의 글을 둘 다 쓰는 방법도 있군요. 제목은 '여러분은 어떠세요'^^

반가웠습니다. 추석 쇠러 오늘 지방에 내려갑니다. 추석 잘 보내세요.

oren 2011-09-10 12:02   좋아요 0 | URL
pek님과 신지님(오랜만입니다.ㅎㅎ)의 댓글을 보니 두 분 다 '한가지에 빠지면' 저와 비슷해 지는군요.참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pek님께서 책을 그렇게(감옥에 가고 싶을 만큼) 좋아하시는 줄은 몰랐고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부럽습니다.

저도 한 때는 딱 1년이나 2년쯤 절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책을 너무 읽고 싶어서요. 그런데 그게 '직업적인 이유' 때문에 그랬었답니다. '99년쯤 제가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는데, 숱하게 경제지와 일간지에 이름이 오르내릴 때 역설적으로 저 자신의 '실력 부족'을 절감했던 적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월간조선'에 제가 소개되던 때에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은?]이라는 물음에 [한 수레의 책을 싣고 절에 들어가 1,2년쯤 책에 푹 파묻혀 지내고 싶다]라는 대답을 한 기억이 납니다. (월간잡지에는 딱 두번 실려 봤는데, 총각시절 '레이디경향'인가에 '유망 총각'(?) 코너에 실렸다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쇄도하는 전화와 편지와 선물(초코렛 등)공세에 시껍한 적이 한 번 있었답니다. 대중매체의 위력이 참 대단하더라구요. 제가 이 곳에서 별 얘기를 다 합니다. ㅎㅎ)

'한가지'에 빠지는 건 좋은데 특히 '취미생활'에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빠지게 되면 이게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특히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하더군요. 저 같은 경우엔 '일'에 푹 빠져 지냈던 시절도 있었지만, 노는 데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빠진 적이 많아서, 지금도 곧잘 '과거에 저질렀던 죄목들' 때문에 아내에게 꼼짝 못할 때가 많습니다.

결혼 전부터 '산'에 미쳐 돌아 다니다가, 결혼 직후에는 본격적으로 '암벽등반'을 배운답시고 등산학교엘 다녔고, '90년대 중반엔 게임과 인터넷 채팅에도 아주 잠깐 빠져 봤고, 또 ski와 golf에 미쳐 오랫동안 욕을 바가지로 얻어 먹었고, 요즘에는 카메라를 만지작거리고 있답니다.

횡설수설하고 보니 결국 '일'과 '책'에 빠지는 게 제일 좋은 게 아닐까 싶은데, 저 같은 경우에는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데' 훨씬 더 잘 빠지는 성격이어서, 책에만 푸욱~~ 빠져 지내기는 앞으로도 별 가망이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노는 쪽으로 한가지 더 욕심을 내고 싶은 건 '여행'인데, 여행은 다행히 '혼자' 돌아다니는 것만 아니라면 아내로부터 환영받을 수도 있겠다 싶은데, 그건 일에서 좀 더 많이 벗어날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고, 그럴려면 더욱더 열심히 일을 해야 될 것 같아서 그게 고민입니다.

페크pek0501 2011-09-13 00:51   좋아요 0 | URL
oren님은 대단한 분이시군요. 영광입니다.^^ 꽤 삶을 적극적으로 사시는 멋진 분 같아서 감탄하게 됩니다. 뭐든지 치열하게 도전하는 것이 존경스러울 정도예요. 그건 아무나 못 하는 것이므로...^^^ 아마도 그런 분이셔서 잘 나가던 시절도 있었겠지요.

오랜만에 들어보는 레이디경향이군요. 옛날엔 한 달에 두 번 발행되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87, 88년쯤) 레이디경향 기자들이 가수 담당, 탤런트 담당, 영화배우 담당 등 각각 한 명씩 맡아서 일을 하던데요... 그게 인상적이었어요.

님의 블로그에 자주 들르게 될 것 같군요. 오렌님께 앞으로 제가 많이 배우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는... 그래서 기쁘다는... 그래서 즐겁다는 pek입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1-09-09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늘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는 없겠죠.또 책을 통한 경험이건 내가 직접 한 경험이건 경험이 시야를 넓혀줘야 하는데 실제로는 경험이 사람의 시야를 좁히는 경우가 많습니다.자신의 경험을 절대시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늘 새롭게 배워야겠죠.

페크pek0501 2011-09-09 17:54   좋아요 0 | URL
"자신의 경험을 절대시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 마음에 새겨 둬야 할 좋은 말인 것 같아요. 어디에 적어 둬야겠어요. 명언같은데요. ^^^

노이에자이트 2011-09-09 18:02   좋아요 0 | URL
노이에자이트 어록 하나 만들어 주세요. 하하하...

페크pek0501 2011-09-09 18:04   좋아요 0 | URL
예 예 예 ... 항상 어록을 의식하시고 댓글을 달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언젠가 제 페이퍼에 올릴지도 모르니까요. 까르르...

순오기 2011-09-09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가지에 빠지는 것도 좋지만,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제가 많은 것들을 경험하진 못했지만, 앞으로 경험하게 될 일도 많겠지요.
좋은 글,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즐거운 명절 보내시기를...

페크pek0501 2011-09-10 00:10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은 아마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게 잘 하실 겁니다. 그리고 글을 보고 느낀 건데, 마음 따뜻하고 넉넉하실 것 같아요. 글은 거짓말을 하지 않거든요. 제 친구 중에도 그렇게 넉넉한 친구가 있어서 비슷한 분위기를 느낍니다.

님의 블로그에 자주 들어가는데 댓글은 쓰기가 어려워서 가끔만 남기도 돼요. 저는 페이퍼 쓰는 것보다 댓글 쓰기가 더 힘들어요. 댓글도 자꾸 써야 늘겠지요?

추석 잘 보내세요. 방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2011-09-10 0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0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0 15: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1-09-13 00:3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대환영입니다. 저의 서재 태그 보시면 아마도 저와의 공통된 관심사를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이미 저는 찾았습니다.^^^

추석은 잘 보내셨나요? 저는 추석일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내일도 바쁠 거예요. 한가해지면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셰익스피어가 ‘모방의 천재’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의 작품 중에서 <햄릿>은 중세 이래 덴마크 사람들에게 구전되어 온 슬픈 왕자의 전설을 소재로 하여 쓴 것이다. <오셀로>는 ‘베니스의 무어 인’이라는 이탈리아 작품을 소재로 하여 쓴 것이다. <맥베스>는 스코틀랜드의 역사극에서 모티브를 갖고 쓴 것이다.


이처럼 셰익스피어는 ‘옛 것’의 영향을 받아 재창조한 작품이 오히려 그 ‘옛 것’을 뛰어넘어 탁월한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작가다. 그렇다면 예술작품에서만 ‘모방’이 필요한 것일까.




1. 새 아이디어는 낡은 아이디어로부터 나온다
 

 



 

최근 출간된 책으로, ‘세상을 바꾼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되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 있다. 바로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 저, <바로잉>이다. 저자는 천재들과 훌륭한 기업인들도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빌려와 새롭게 발전시켰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 책은 혁신과 창조를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어느 날 갑자기 번뜩 떠오른다는 데 반기를 든다. ‘바로잉(빌려오기)’의 의미처럼, 저자인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는 “이 세상에 독창적인 것은 없다”며 ‘아이디어 빌리기’ 6단계를 제안한다. 또 ‘남의 아이디어를 빌리는 행위’는 지적인 절도 행위가 아니라 창의적인 사고 기법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책에는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구글 가이즈뿐 아니라 아이작 뉴턴, 조지 루카스 등의 사례를 들면서 그들의 독창적인 아이디어 또한 기존에 있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임을 보여준다.“(알라딘, 책소개)


바로잉이란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 빌려오기(또는 모방)를 통한 창의성을 강조함으로써 누구든지 학습하면 창조적일 수 있다는 주장하는 책이다. 여기서 저자가 제안한 ‘아이디어 빌리기’ 6단계란 남의 아이디어가 자신의 것이 되기 위해 몇 단계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1) 문제를 정의하라 2) 빌려라 3) 결합하라 4) 숙성시켜라 5) 판단하라 6) 끌어올려라 등을 말하고 있다.




여태까지 지구에 살았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창의성이 넘치는 몇몇은 남의 아이디어를 훔쳤다거나 표절했다는 의심과 비판을 받았다. 아이작 뉴턴이 그랬고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그랬다.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이디어는 기존의 다른 아이디어들 속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아이디어의 세계에서는 독창성과 도둑질이 종이 한 장 차이다.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 저, <바로잉>, 35쪽.





새로운 독창성은 기존의 다른 아이디어들을 도둑질해서 태어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겠다. 이 책 속에서 발견한 이 말은 의미심장하다. “창의성의 비밀은 그 창의성의 원천을 숨기는 방법을 아는 데 있다.”(앨버트 아인슈타인) 창의성의 원천을 숨기려면 아이디어를 도둑질할 때 모방의 모델이 된 그것을 단순히 모방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모방의 모델이 된 그것을 뛰어넘는 재창조를 함으로써 빼어난 성과를 거두어야 하는 게 중요하다. 앞서 말한 셰익스피어처럼.



2. 새 저술은 낡은 저술로부터 나온다


내가 읽은 유명한 저술에는 유난히 ‘인용문’이 많았다. 에리히 프롬 저,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그랬고, 임어당 저, <생활의 발견>도 그랬다. 이렇게 저술에 인용문이 많은 까닭은 무엇일까. 유명한 저술가들조차도 자신의 생각만으로 저술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이것은 곧 기존의 낡은 저술을 학습해야만 뛰어난 새로운 저술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바로잉>의 저자가 ‘새 아이디어는 낡은 아이디어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했다면, 나는 ‘새 저술은 낡은 저술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하고 싶다.


‘인용문’이 많이 들어 있는 책은 의외로 많았다. 그 중에서 다음의 세 권을 뽑아 정리해 보았다.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저자는 근대인에게 있어서의 ‘자유’의 의미에 연구를 집중하여, 근대인을 속박으로부터 구했던 ‘자유’가 독립성과 합리성을 가져다주는 한편 고립과 무기력도 동시에 가져왔음을 지적하고, 결국 자유가 주는 부정적 측면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경우, 비록 민주주의 사회라 할지라도 전체주의의 심리적 온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의 ‘자유’에 대해서도 새롭게 고찰할 기회를 갖게 한다. 
 


129쪽 : 개인은 부정적인 측면에서 자유롭다고 느낀다. 즉, 그는 혼자 떨어져 있으며, 낯설고 적의에 찬 세계와 대립해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인간이라는 불쌍한 동물은 타고난 자유라는 선물을 가능한 한 빨리 양도해 줄 수 있는 상대방을 찾고자 하는 강한 염원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카라마조프의 형제>의 뛰어난 서술을 인용해 본다.


189쪽 : 히틀러는 오직 평화와 자유만을 바라고 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합리화의 첫 번째 예는 <나의 투쟁>의 ‘만약 독일 국민이 역사적 발전에서 다른 나라 국민이 향수한 것과 같은 집단적 통일을 가지고 있었다면, 독일제국은 아마도 오늘날 이 지구상의 주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한 구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은 도스토예프스키, 히틀러, 휴즈, 샤피로, 루터, 칼뱅, 그린, 발자크 등을 비롯한 많은 저술가들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임어당, <생활의 발견>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가장 행복할 수 있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내게 있어 중요한 것은 객관적 진리보다는 오히려 사물을 보고 생각하는 방법이다.”라고 밝혔듯이, 사물을 보는 그의 개성적 견해를 감상할 수 있다. 그는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이성보다는 정열’로 보고, “사상교육보다는 오히려 감각과 정서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또 유머감을 중요시하며, 중국인의 한적한 생활을 예찬한다. 그의 사고법을 따라가다 보면 삶을 어떻게 즐기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150쪽~151쪽 : 노자가 거의 공자와 동시대의 사람이었던 것처럼 장자는 맹자와 동시대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맹자와 장자는 다음에서 일치하고 있다. 즉, 인간은 무언가 중대한 것을 잃고 있으며, 철학의 임무는 그 잃은 것, 여기서는 맹자의 이른바 ‘적자지심’(赤子之心, 죄악에 물들지 아니한 깨끗한 마음)을 발견하여 그것을 되찾는 데 있다는 것이다. 맹자는 “뛰어난 현인이란 그 적자지심을 잃지 않는 자다”라고 말하고 있다. 맹자는 문명의 기교적 생활이 인간의 나면서부터의 생생한 마음에 주는 영향을 산림의 남벌(濫伐)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152쪽 : 장조(張潮)의 말처럼, “정이 있는 사람은 늘 이성을 사랑하고 있으나, 이성을 사랑하는 자가 늘 정이 있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또 “정은 인간세계의 밑바닥을 버티고 있는 것이지만 재(才)는 그 지붕을 채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이라는 것이 없다면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맹자, 장자, 노자, 장조, 도연명, 김성탄, 월트 휘트먼, 소로우, 플라톤, 퍼거슨 등을 비롯한 많은 저술가들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세속적인 성공만을 위해 바쁘게 사는 문명사회의 사람들이 과연 행복한가를 스스로 묻게 만든다. 소로우는 실제로 문명을 등지고 월든 호숫가에서 원시적인 삼림 생활을 했는데, 그 생활을 이 책을 통해 엿볼 수 있다.

 

  


203쪽~204쪽 : 다음 시는 어떤 방문객이 명함 대신 노란 호두나무 잎에 적어 놓고 간 스펜서의 시이다. 이것을 내 오두막의 표어로 자랑스럽게 내걸 수도 있겠다.

“그곳에 이르러 그들은 오두막을 가득 채웠으나

도락이 원래 없는 곳이니 도락을 찾지 않는다.

휴식이 그들의 만찬이며 모든 것이 뜻대로이다.

가장 고귀한 정신이 가장 큰 만족을 얻는다.”


359쪽 : 저술가 길핀은 영국의 숲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기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숲을 무단출입하거나, 개인의 주택이나 울타리가 숲의 경계를 침범하는 것은 옛 삼림법에서는 중대한 불법행위로 간주되었다. 그러한 행위는 새와 짐승을 놀라게 하고 삼림을 해칠 우려가 있으므로 불법 삼림 침해라는 죄명으로 엄한 처벌을 받았다.”



(이 책은 스펜서, 길핀, 공자, 맹자, 사아디, 이블린, 카토, 초서, 커비와 스펜스, 오비디우스 등을 비롯한 많은 저술가들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3. 결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학문에서든, 예술에서든, 기업에서든 기존의 것을 단순하게 모방만 하면 '표절'이 되지만 모방의 모델이 된 그것들을 결합하고 재배열하고 숙성시켜 새로움을 낳는 재창조를 할 때 ‘창조’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끝으로 ‘모방’에 관한 명언을 옮겨 둔다.


“모든 것에 관련되는 세 가지 기술은 이용하고, 만들고, 모방하는 것이다.”(플라톤)


“모방하기를 두려워하지 마라. 그것은 창조를 위해 필수적인 예비 작업이다.”(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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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1-08-31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올린 글을 포함해서, 마이리뷰 17편, 마이페이퍼 82편을 올린 것이니 그동안 총 99편의 글을 올렸습니다. 다음에 한 편만 더 올리면 100편이 됩니다. 제가 저를 자랑스러워해도 되나요? 물론 다른 유능한 블로거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저로선 제가 자랑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글을 올리고 나면 쑥스럽고 자신없고 그렇습니다. 어느 책에선가 읽은 적이 있는데, 글을 쓴다는 것은 창피한 일을 자처해서 하는 것(기억이 정확한지 모르지만 대충 이런 문장인 듯)이라는군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자랑스럽다는 것이지요. 자신의 부끄러운 일기장 같은 것을 용기 있게 공개하는 일이므로... 그것도 자신 없어 하면서... 앞으로 좀 더 나아지겠지 하면서...

그런데, 왜 쓰느냐구요? 쓰지 않고는 살 수 없으니까요. ^^^

그럼 다음에 100번째의 글을 올리겠습니다. 앞으로 200편, 300편의 글이 쌓이길 희망하면서...

stella.K 2011-08-31 13:05   좋아요 0 | URL
오, 축하합니다.
사실 이날까지 블로그질 하면서 왜 쑥스럽지 않은 순간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그보도 중요한 건 성실하게, 진실하게가 더 중요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정말 쓰지 않고는 살 수 없죠?
앞으로 계속 좋은 글 써 주시기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11-08-31 17:2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스텔라님은 글을 꽤 많이 쓰시던데, 직장생활하시면서도(글 보니깐)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어요. 저는 직장 다닐 때 휴일이면 무조건 쉬어야 했는데... 베개가 푹 들어갈 정도로 잠을 자곤 했는데... (잠시 배게인지, 베게인지, 헷갈렸음ㅋ)

stella.K 2011-08-31 19:56   좋아요 0 | URL
헉, 저 직장 안 다니는데요...ㅠ
그러니까 이만큼 쓸 수도 있는 거죠.
안 그랬다면 이렇게 쓰기 어려울 걸요?
단지 봄부터 조그만 일을 하려고 했는데
이게 그만 무기한 연기가 되서 놀고 있습니다.
혹시 일손이 필요하시지 않나요? 그러면 연락주세요.ㅋㅋ

페크pek0501 2011-09-01 00:40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이 쓴 이 글 때문임- “어제는 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탔는데” - 이걸 읽고 퇴근하는 것으로 보니 직장 다니시는군, 했어요. 아, 나의 실수!‘퇴근’이라는 말에 그만...

일손이요? ㅋ 저는 논술선생질을 10년간 해서(작년까지요) 요즘처럼 노는 게 얼마나 자유롭고 좋은지 몰라요. 경제적 여건만 허락한다면 이렇게 블로거질이나 하면서 살고 싶은 걸요. 그런데 내년부턴(아마도) 일을 갖게 될 것 같아요. 놀려니깐 친정엄마, 시어머님 눈치가 보여요. 왜 돈 벌 수 있는데, 안 버느냐고 하시는 것만 같아서. 다행히 학생들 독서글쓰기 강의를 주겠다는 곳이 있어요.^^^

신지 2011-09-01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그렇지만 공감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모르겠네요) 그저 박수만 치고 있습;; ^^ 그런데 pek님도 자신 없으시다니 저는 좀 용기가 납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창피한 일을 자처해서 하는 것""ㅡ 저는 글은 고사하고 댓글도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ㅋ
이건 (바로잉이라는 책과는) 좀 다른 얘긴데, 저는 책 중에서 '인용문'이 많은 책을 특히 선호하는 편이어서 이 글이 반갑습니다. (반면 가장 싫은 책은 여백이 많고 글씨가 큰 책). 특히 사회과학 쪽에서는 국내 저자들의 문장력이 대개는 일반인 블러거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한 가지 불만입니다. 두번째 불만은 저는 저자들이 좀 자신이 아는 것만 얘기했으면 좋겠습니다. '남의 말을 함부로 전하는' 책들은 싫어하는 편입니다. 인용을 하지 않고 저자가 남의 말을 전하는 책은 대부분 왜곡이 되는 것 같아서요. 그 사람들의 책은 마치 논술교재 같습니다. 마치 자신이 그 사람/철학자에 대해서 다 안다는 듯이 말합니다. ^^
뭐랄까 다양한 인용문을 볼 수 있는 것 자체가 저로서는 책을 사는 데 있어 가장 뿌듯함을 주는 목적이랄까요. 인용문은 대체로 핵심적이고 적절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또 인용문이 많다는 것은 저자가 독서가이거나 전공자일 확률이 높아서 짧은 시간에 많은 독서 경험을 하게 되어서 좋습니다. 그러나 명언을 모은 책이나 잠언 책은 곧바로 반품하는데, 좋은 말이나 문장도 어떤 글의 맥락 속에서 읽어야만 공감이 되더군요. 너무 당연한 얘기만 한 것 같은데, 가령 저는 강준만의 책도 그런 면이 오히려 좋습니다만. 전에 보니까 바로 그점(인용문이 많다.) 때문에 싫다는 분도 많이 계시더군요.

어떤 사람이 인용한 문장은 그 자체로 흥미롭습니다. 왜 저 말을 인용했을까? 저 문장이 저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있어서 좋은 걸까?
그리고 인용한 문장이 (나도) 좋을 때, 또 글에 적절한 인용일 때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런 면에서 글에서 글쓴이가 인용하는 문장은 글쓴이를 나타내주는 표현이기도 한 것같습니다. 이번엔 어떤 책일지, 어떤 인용문이 있을지, pek님 글을 읽을 때마다 저는 그점도 매번 흥미롭습니다. (알라딘에서는 다락방님도 그런 페이퍼를 많이 쓰십니다.) 취향이 그러므로 꼭 아는 분이어서가 아니라, 저는 pek님 글같은 책이 나오면 아무말 없이 사는 편입니다. 어서 그날이 오기를..

페크pek0501 2011-09-01 00:51   좋아요 0 | URL
이렇게 긴 댓글을 쓰시다니... 꾸벅 감사드리고 싶네요. ^^^

제 책을 사고 싶으시다고요? 아, 대박입니다. 제가 댓글 받아본 중에 최고의 찬사예요. 힘을 주시는 군요. 만약 책이 나오게 되면 제가 선물로 한 권 보내드려야 할 것 같군요. 대박의 댓글이었으니까요.^^

자신 없음에 대하여 - 이것 정말입니다. 제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는 글 중 아직 블로그에 올리지 못한 게 많은데 이‘자신 없음’때문입니다. 수준 미달이라고 스스로 느껴져요. 그렇다고 블로그에 올린 글이 다 괜찮다는 뜻은 아니고요.

저는 인용문이 많은 책을 좋아한다기보다 제가 좋아하는 책은 이상하게 인용문이 많더라구요. 구입할 땐 인용문을 보고 구입하진 않았는데. 오히려 인용이 많아 읽다가 놀라게 되는 경우죠. 명저에 특히 인용문이 많은 것 같아요.

인용 많이 하려면 그 주제에 대해 필자가 이미 통찰력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 통찰력이 없으면 인용이 불가능해요. 같은 문맥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작업이거든요. (저야, 그냥 생각나는 대로 인용을 하고 있지만요.) 법정스님의 ‘무소유’라는 수필이 인용을 많이 하면서도 아주 뛰어난 작품이죠. 명작입니다.

하지만 사람들 중엔 인용을 많이 하면 하류로 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아요. 인용을 하든 안 하든 글의 완성도가 가장 중요하겠죠.

저도 강준만 저자의 책 좋아해요. 제게 필요한 책이 무언지 알려 주거든요.

아, 누가 더 길게 썼나요? ^^^

루쉰P 2011-09-01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이 리뷰를 통해 제 서재 글쓰기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 방황을 하며 지내다가 이렇게 모처럼 들어와 가슴 깊이 박히는 리뷰를 보내요. ㅋㅋ
게다가 100편에 육박하는 리뷰까지 대단하심, 전 아직 24편 ㅋㅋ! 암튼 대단하셔요. 근데 자신이 없으시다니 하하하!
제가 좋아하는 작가 중, '둔황'을 쓴 이노우에 야스시가 한 말이 기억나네요. 그의 딸도 시인인데 좋은 시를 쓰고 싶은데 자신이 없다고 하자, 하루에 100편 씩 써라! 한 달에 몇 편 쓰고 거기서 대작이 나오기를 바라는 건 멍청한 짓이다 라고 했죠 ^^
또한 루쉰 선생은 자기를 천재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천재 따위는 없다. 난 타인이 커피 마실 시간에 쓴 것 뿐이다 라고 하셨죠. 정말 커피를 안 마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암튼 오로지 노력이라고 말씀하신 뜻이라 봅니다.
근데 저보다 더 뛰어나신데 자신감이 없으시면 전 어떻해요. T.T

페크pek0501 2011-09-01 17:44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오히려 제가 한 수 배웠는걸요. 루쉰님의 '분노하라'의 리뷰를 보니깐 책의 내용과 자신의 생활을 잘 매치시켜 쓰셔서, 나도 이렇게 써야지, 했는걸요. 그 리뷰, 좋았습니다. 조지오웰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 중 '서점의 추억'이란 글을 연상시켜요.

책 리뷰가 필요한 이유는 하루에 백 권 넘게 쏟아지는 신간들을 우리가 어떻게 다 읽어내겠습니까. 리뷰를 쓰는 사람도, 리뷰를 읽는 사람도 필요한 이유입니다. 요즘 리뷰들을 묶어 낸 책은 대부분 기본 이상은 팔리는 것 같아요. 사람들도 그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거지요.루쉰님의 리뷰를 앞으로 기대하겠습니다.

노력!!!!!!!!!!!!, 정말 중요하죠. 문제는 집중력인 것 같아요. 요즘 기업인들의 자녀들이 경제계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는데, 그 자리에 앉으면 저절로 되는 것도 아니고, 그 아버지를 닮아서도 아니고, 그만큼 본인이 집중해서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글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죠. 늘 글쓰기와 관련한 생각을 하고 신문을 봐도 방송을 봐도 책을 봐도 글쓰기에 관련해 생각해야 돼요. 그런데 글쓰기를 좋아하면 저절로 집중력이 생기고 그 집중력이 모든 것에서 글감을 얻어내게 만드는 것 같아요. 결론은 '집중력을 가진 노력'인 것 같아요. 요즘 든 생각입니다.

그야말로 남들이 커피를 마실 때 자신은 글을 쓰고 있는 그 집중력!

또 뵙기를... 갑자기 나타나셔서 더 반가웠다는...것.

노이에자이트 2011-09-01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의 글을 인용하면서도 자기 글인 것처럼 시치미 떼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를 일으키는지 잘 모르더군요.외국에선 어린 시절부터 표절이 큰 범죄임을 가르친다는데...하늘 아래 새 것이 없다는 말이 맞다면 출처를 제대로 밝혀야겠죠.이런 개인블로그에서도.

페크pek0501 2011-09-01 18:18   좋아요 0 | URL
맞아요. 표절이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도, 도덕적 양심을 위해서도 인용의 출처를 꼭 밝혀야지요. 블로그도 자기 맘대로 운영할 수 있는 개인적(사적) 공간이기도 하지만 글이 공개된다는 점에서 공적 공간인 만큼 사회적 예의를 지키는 글쓰기를 해야죠.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반칙하는 스포츠맨과 같죠. 글쓰기든 스포츠든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기에 앞서 우선 '인간다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하겠지요.

반가웠어요. 노이에자이트님.^^^

노이에자이트 2011-09-02 16:49   좋아요 0 | URL
궁하면 개인블로그라는 것을 강조하여 요리조리 피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한심해요.남에게 공개하는 글이라면 책임을 져야하는데 말이죠.

페크pek0501 2011-09-03 14:11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님의 제2의 파브르곤충기를 읽고 오는 길입니다. 무엇인가를 관찰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에요. 저는 꿀병을 향해 한 줄로 줄 서서 기어오는 개미들의 행진을 관찰한 적이 있어요. 질서정연하답니다. 아마 꿀병의 겉에 꿀이 묻어 있었던 모양.

빵조각을 들고 가는 개미들의 협동정신에는 감탄을 했어요.

앞으로도 동물의 세계를 많이 보여 주시길...

노이에자이트 2011-09-03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미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재미있을텐데...

저도 이야기 거리를 열심히 골라보겠습니다.
 

1.  좋은 시

오늘 어느 블로그에 들어갔더니 다음의 시가 마음을 끌어 훔쳐 왔습니다. 그대로 옮깁니다.

지금은 머릿속에서 온갖 꽃들이 시드는 오후다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이상한 말들을 중얼대는 오후다
몇 시인가 시계를 들여다 보니
고요와 소요가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시간이다

(이상하게 말하기, 부분) - 눈앞에 없는 사람 ㅣ 심보선 지음

요즘 이 시집이 많이 팔리고 있어요. 그만큼 좋은 시가 많은 모양입니다. 이 시집의 리뷰를 쓰신 블로거님의 글에서 가져왔는데, 그 블로거님이 이해해 주시겠지요. 제가 양심은 있어서 댓글은 남기고 왔으니까요.

(여러분은 머릿속에서 온갖 꽃들이 시드는 오후를 맞고 있습니까, 아니면 머릿속에서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오후를 맞고 있습니까?) 오늘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신랑신부들은 아마 머릿속에서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오후를 맞고 있겠지요.

(당신은 고요와 소요가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시간을 맞고 있습니까, 아니면 기쁨과 슬픔이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시간을 맞고 있습니까?) 저는 졸업한 학교마다 기쁨과 슬픔이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시간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만,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저는 이 시를 보고 감탄했습니다. 
 
 

2. 좋은 영화 

늦여름입니다. 어젯밤에 <세 얼간이>라는 영화를 보러 갔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니 밤12시가 넘었습니다. 늦여름의 시원한 밤바람이 얼마나 좋았던지 길에서 두 팔을 벌려 바람을 맞았습니다.(누가 봤다면 돌았다고 했을 것임) 그렇게 늦은 시간에 길을 걷는다는 게 즐겁기도 했어요. 다른 날 같았으면 벌써 잠이 든 시간입니다. 저의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극장이 있어서 영화를 자주 보게 됩니다. 이 영화, 참 재밌습니다. 안 보신 분은 꼭 보시길...

이 영화의 메시지는,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행복하다는 것, 그리고 그럴 때 성공도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 간단한 얘기를 그러나 흥미진진하게 풀어내서 볼 만합니다. 청소년들에게도 교훈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권할 만합니다. 무엇보다 유쾌하도록 하하하 웃으며 볼 수 있어 좋습니다.

제가 본 것 중에서 <7광구>보다 훨씬 재밌고 <써니>보다 조금 더 재밌고 <캐리비안의 해적>만큼 재밌습니다. 

<7광구>는 스릴이 지나쳐 지루하지 않고 집중력은 갖게 하나 관객으로 하여금 스트레스를 너무 받게 하여 또 보고 싶지 않은 영화. 괴물과 싸우는 주인공이 다칠까 봐 조마조마하게 만들기 때문. 

<써니>는 단순한 시나리오지만 연출이 뛰어나 기분좋게, 신나게 감상하게 하는 영화. 마치 신나는 음악 감상을 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좀 작위적인 결말이 흠이다.

<캐리비안의 해적>은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유머러스한 장면이 펼쳐져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볼 수 있는 영화. 특히 인어아가씨가 출현하는 신비로운 장면은 압권이다. 또 봐도 좋을 듯.  

<세 얼간이>는 의미 있게 교훈적이고, 눈물 나게 할 정도로 감동적이면서도, 유쾌하게 웃게 만드는 영화. 또 봐도 좋을 듯.

..............................

댓글로 쓰기 시작하다가 글이 길어져 그냥 페이퍼로 올립니다.

제겐 짧게 쓰는 기술은 없는 듯합니다. 쓰다 보면 자꾸 길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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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8-29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뭐가 길다고 그러십니까?
저만 할까요.ㅎ
영화 많이 보시네요.
전 귀찮아 개봉영화 언감생심이고 지나간 영화 IP TV로 봅니다.ㅋㅋ

페크pek0501 2011-08-30 10:22   좋아요 0 | URL
반가운 손님, 환영합니다.

이 글이 댓글로는 길고 페이퍼로는 짧지요? 댓글로 썼더니 너무 길어져서 옮겼어요. 저의 집에서 극장 간판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데에 극장이 있어서 영화보기가 쉬워요. 멀다면 자주 못 봤을 거예요.

스텔라님은 영화리뷰를 길게 쓰는 게 아니라 실속 있게 영양가 있게 쓰시는 거죠.
저도 시나리오에 관심 많아요. 시적인 대사도 좋지만 사유 깊은 대사는 외우고 싶어지죠. 사실은 영화리뷰 써 보려고 영화 관련 서적을 한꺼번에 5권이나 샀었는데, 지금까지 영화리뷰를 한 편도 못 썼다는 것.ㅋ 저는 칼럼이나 쓰고 스텔라님의 영화리뷰 감상이나 해야겠어요.

순오기 2011-08-29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저녁상을 물리고 편안한 휴식을 즐기는 밤입니다.^^
시인은 정말 대단해요, 저런 표현을 잡아내다니...
오늘 독서회원이 '세 얼간이'재밌다고 추천하기에 금욜 심야로 볼까해요.

페크pek0501 2011-08-30 10:24   좋아요 0 | URL
고향손님 같은 반가운 손님이 오셨네요. 제게 용기를 주신 분이기도 하고요.
처음 저와 비슷한 연령이신 걸 알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그래서 순오기님의 무궁한 발전을 늘 응원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시길...

그저께 극장에서 영화 보다가 갑자기 순오기님 생각이 났어요. 방문해야겠다고 하면서...

2011-08-29 2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30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31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신지 2011-08-29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괴물과 싸우는 주인공이 다칠까 봐 조마조마하게 만들기 때문.

ㅡ> 그런 것에 스트레스를 받다니. 주인공이 안 다치면 화나죠ㅋㅋ 그런데 제가 아는 사람 중에도 칼로 찌르거나 고문 장면 같은 거 나오면 못보고 나가버리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안 됐거나 아픈 사람이 나오는 '다큐'는 ㅡ 예를 들어 인간시대 ㅡ 같은 걸 도무지 못보겠더군요. 너무 실감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다들 잘 보고 감동을 받으면, 저는 이해가 잘 안 됐었는데, 저걸 어떻게 견디며 보는 걸까 싶었죠. 나중에 생각해보니 사람마다 감정이입하는 부분이 달라서 그런가 봐요. 반면 영화로는 웬만큼 긴박하고 잔혹해도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걸 보면 아무리 현실감이 있어도 영화는 영화로 느껴지나 봐요.

페크pek0501 2011-08-30 10:30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잘 지내시죠?

저도 아픈 환자 나오는 프로는 채널을 돌리게 돼요. 저는 친구도 행복해 죽겠다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전 그런 친구에 대해 질투 안 해요. 보면 기분이 좋아지니까요.
7광구 같은 영화는 정말 다시 보고 싶지 않아요. 보는 내내 정신적으로 고단했어요. 처음으로 생각한 건데, 딴 생각 못하게 사람을 강하게 집중시키는 영화가 꼭 좋은 영화인가, 가끔은 옛 추억을 더듬으며 볼 수 있는 영화도 좋은 게 아닌가, 생각 들었어요. 써니처럼요. 이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고교시절을 떠올리게 되죠. 아련히 추억에 젖게 해요.

신지 2011-08-31 01:43   좋아요 0 | URL
저는 pek님의 다른 글에서 이 말에 굉장히 공감이 되더군요. ㅡ "꿈을 향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 내게 이런 여유가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자기의 꿈을 웃으며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은 느긋하다. "

저도 경쟁심이 많은 사람은 간혹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시기심 질투심은 남과 비교하거나 경쟁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pek님의 글들을 보면 노력한다기보다 무언가 그것을 자신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저는 그점이 좋아 보였어요. 영화 본 건 적어 놓는데 지금 보니까 마지막으로 극장 간 게 작년 12월에 '부당거래'네요. 올해는 한 번도 극장에 못 가봤다니, 초딩때 이후 처음인듯 ㅠ

실은 (글도 반갑지만) pek님 이런 가벼운 페이퍼는 처음이어서 무척 반가웠어요. 꼭 칼럼이나 단상이 아니어도 이번처럼 가볍게라도 자주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11-08-31 0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31 0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 8월 24일 최종 투표율 25.7%로 개표가 무산되며 무상급식정책은 현행대로 유지된다. 이에 따라 초등학교는 올해부터 중학교는 내년부터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시행하게 된다. 현행 무상급식은 서울시교육청이 초등학교 1학년에서 3학년까지,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21개구가 4학년에 무상급식을 진행하고 있다. (중략) 오세훈 시장은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전면 무상급식 주민투표 투표율이 33.3%에 미달할 경우 시장직에서 사퇴 하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시장직을 걸었다.”(NEWSEN뉴스엔, 2011. 8. 25.)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르면 내일, 늦어도 오는 28일까지 시장직 사퇴 시기 등 자신의 거취를 표명할 것으로 보입니다.”(YTN, 2011. 8. 25.)


오세훈 시장에 대한 인터넷 기사를 보며, 오세훈 시장에게 지금 필요한 건 훗날을 기대하며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사퇴하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1. 패배할 땐 웃기




지금도 기억하고 있지만, 늘 과묵한 내가 갑자기 즈베르꼬프하고 격투를 벌인 일이 있었다. 하루는 그가 휴식 시간에 친구들과 미래의 정부(情婦) 이야기를 하면서, 마치 햇볕을 쬐고 있는 강아지처럼 들뜨기 시작하더니, 자기는 영지 마을의 계집애들을 하나도 그냥 놔 두지 않겠다, 그건 - droit de seigneur(귀족의 권리)이므로 만약에 농부들이 건방지게 반항한다면 그 따위 텁석부리 악당들은 모조리 곤장을 먹인 후에 인두세를 곱절로 물리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얼빠진 동료들은 모두 박수갈채를 보냈지만 나는 달려들어 격투를 벌였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마을 계집애들과 그 아버지들을 동정해서가 아니라 이런 풋내기에게 모두들 박수를 보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운 좋게 이겼지만, 즈베르꼬프는 바보이긴 해도 쾌활하고 활달한 성격이었으므로 허허 웃어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실은 나의 승리도 완전한 것은 못 되었다. 마지막으로 웃은 것만큼 그가 덕을 본 셈이다.



도스토예프스키 저, <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





이 글은 상대의 웃음 때문에 자신이 완전한 승리자가 되지 못함을 말하고 있다. 상대편에서 보면 그 웃음 때문에 완전한 패배자가 될 뻔한 것을 면한 것이다. 그 웃음이란 바로 마음의 여유인 것이다. 즈베르꼬프는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 네가 이겼다. 네가 이겼다고 인정해 주지. 그런데 그게 뭐 대단한 건가.”


그런 마음의 여유가 ‘허허’ 웃게 만든 것이리라.


(혹시 여러분은 누군가로부터 창피를 당하거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에 처했을 때 그래서 패배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 때,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뛰면서 그 상대에게 분노를 느껴 화를 벌컥 낸 적이 있는가? 그럴 땐 화내는 대신 시치미 떼고 웃어 버리자. 오히려 그것이 자신을 초라하지 않게 만드는 방법인지 모른다.)


2. 꿈을 웃으며 바라보기


내게도 꿈이 있다. 책을 내는 것은 오래 전부터 내가 꿈꾸어 오던 일이다. 하지만 난 서두르고 싶지 않다. 내 능력이 아직 멀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꿈은 그저 그것을 가지고 있는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을 때 행복하다는 생각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꿈을 웃으며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행복하다’가 된다.


설령 내가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불행해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꿈은 갖고 있는 그 자체로써 충분히 행복을 선사하니까. 꿈을 향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 년 뒤에 책을 내든 십 년 뒤에 책을 내든 언제 내면 어떠한가, 또 책을 내지 못하면 어떠한가,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게 이런 여유가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생활의 발견>에 있는, 임어당의 이 말씀이 맘에 든다.




“인간이 꿈을 꾼다고 하는 것은 필요한 일임에 틀림이 없으나 자기 꿈을 웃으며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또한 필요한 일이 아닐까?”


임어당 저, <생활의 발견>에서.



성적 비관으로 자살하는 학생, 인기가 떨어졌다고 해서 우울증을 앓는 연예인, 사퇴로 인해 인생이 끝났다고 여기는 정치인, 그들은 자기 꿈을 웃으며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해서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어떠한 좌절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급해 하지 않고 자기의 꿈을 웃으며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은 느긋하다. 느긋해서 불행에 빠지지 않는다. 오세훈 시장도 그랬으면 한다.


.........................................................................

<이 글과 관련한 책>


도스토예프스키 저, <지하생활자의 수기> 

임어당 저, <생활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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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1-08-29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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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은 다음 사이트와 제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 오늘 어느 블로그에 들어갔더니 다음의 시가 마음을 끌어 훔쳐 왔습니다. 그대로 옮깁니다.

지금은 머릿속에서 온갖 꽃들이 시드는 오후다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이상한 말들을 중얼대는 오후다
몇 시인가 시계를 들여다 보니
고요와 소요가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시간이다

(이상하게 말하기, 부분) - 눈앞에 없는 사람 ㅣ 심보선 지음

새 글도 없는데, 계속 들어오시는 방문자님들을 위해 올린 글입니다.
(이 시라도 읽으면 좋으실 것 같아서...) 어느 블로거님의 리뷰에서 가져왔는데, 옮긴 것에 대해 그 분이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이 시를 보고 감탄했습니다.
 

1.


우리는 자신이 예상한 것과 정반대의 마음 작동을 보이는 상대로 인해 당황하거나 불쾌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정반대의 마음 작동을 일으키는 예를 나의 상상력으로 써 보았다.


A라는 선생님이 초등학교 6학년의 여름방학식 날에 학생들에게 말했다. “이번 여름방학은 중학교 교과서를 마지막으로 공부할 수 있는 중요한 방학이다. 그러니 방학 동안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라고. 그러자 어떤 학생은 이런 생각을 한다. ‘초등학생으로서 마지막 방학이니 실컷 놀아야지. 중학생이 되면 학원 다니느라 놀 시간이 없을 거야.’


B라는 남자가 여자와 연애를 하면서 싸움을 자주 하게 됐다. 그래서 더 이상 싸우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한 끝에 무조건 그녀에게 잘 해 주기로 했다. 그러면 싸울 일이 없을 줄 알았던 것. 그런데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너무 잘 해 주었더니 그녀가 자만해져서 더 싸울 일이 많아졌던 것이다.


C라는 사람이 어느 블로그에 들어가서 “이 글은 참 재미있군요.”라고 댓글을 썼다. 정말 잘 썼다고 생각해서 최고의 찬사로 그렇게 쓴 것이다. 그러면 글쓴이가 기분 좋아할 줄 알았다. 그런데 글쓴이는 오히려 기분 나빠했다. ‘내 글이 깊이는 없고 재미만 있다는 말이군.’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


어떤 주제로 글을 쓰려고 하면 자연히 그것과 관련 있는 글이 떠오른다. 내가 읽은 책 중에서 정반대의 마음 작동을 보여 주는 글과 그 책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조지 오웰 저, <나는 왜 쓰는가>에서    

 



조지 오웰의 글을 만난다는 것은 내겐 ‘충격’을 만나는 일과 같다. 그가 쓴 소설 <동물농장>이 그랬고, <1984>가 그랬다.


29편의 에세이가 실린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집 역시 충격을 주는 글이 많이 실려 있다. 이 책에는 그가 몸소 체험한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 마치 그의 육성을 직접 듣는 듯해 자서전처럼 읽히는 글이 많다. 이 중에서 조지 오웰이 부랑자 생활을 한 경험을 토대로 쓴 ‘스파이크’라는 제목의 에세이가 있다. (스파이크란 ‘부랑자 임시숙소’를 말함)


부랑자들이 있는 스파이크에선 그저 맛없는 빵과 차로 끼니를 때운다. 그런데 200야드 떨어진 구빈원 부엌에선 “소고기로 만든 굉장한 요리들”(16쪽)을 비롯한 음식이 많았고, 사람들이 먹고 남은 음식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리게 했다. “남은 음식을 부랑자들에게 주지 않고 버리는 건 고의적인 방침인 듯했다.”(17쪽)


그 이유는 이러했다.




“이런 데를 너무 좋게 만들어 놓으면 온 나라의 쓰레기들(부랑자들을 말함)이 다 몰려들게 돼요. 그런 쓰레기들을 떼어 놓으려면 음식이 나빠야만 되고요.”


- 조지 오웰 저, <나는 왜 쓰는가>, 18쪽.




구빈원 부엌에서, 먹다가 남은 음식을 부랑자들에게 주지 않고 쓰레기통에 넣는 것은 좋은 음식을 주게 되면 부랑자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란다. 이런 마음 작동은 충격적이다.


혹시 우리나라에서도 정부가 서울역에 몰려드는 노숙자들에게 기거할 주택을 마련해 주지 않고 방관하는 이유도 이와 같기 때문일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2) 버트런드 러셀 저, <런던통신 1931-1935>에서   

 


<런던통신 1931-1935>는 135편의 칼럼들이 실려 있는데, 러셀이 1930년대에 주로 미국 신문에 기고했던 글이다. 그 시대를 살며 목격하고 생각한 일들에 대해 날카로운 직관으로 풀어 써서 그의 깊은 사색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글을 쓴 시대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현재를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좋은 글이 많다. 
 



그중, ‘기대하는 마음이란’의 제목의 칼럼에는 남녀 사이에서 변심한 사람에 대한 그의 시각이 잘 나타나 있다.




결혼을 하는 신랑 신부는 이제부터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두 사람의 ‘의무’라는 얘기를 듣는다. 사랑이란 하나의 감정이기 때문에 의지로 통제할 수 없고 따라서 의무의 영역에 넣을 수 없는데도 그렇다고 한다. 신중한 행동이야 의무가 될 수도 있겠지만 사랑은 하늘의 은총이다. 따라서 그 은총이 철회되었을 때는 그것을 상실한 사람을 비난할 게 아니라 동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 버트런드 러셀 저, <런던통신 1931-1935>, 192쪽.



우리는 흔히 변심한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판단해 버린다. 남녀가 만났으면 사랑을 영원히 간직한 채 살아야 좋은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감정의 영역에 있으므로 변할 수 있다. 그리고 변심한 사람은 사랑을 잃은 것이므로 미워하기보단 가엾게 여겨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그래서 변심한 사람을 비난할 게 아니라 오히려 동정하는 게 마땅하다고 하는 이 마음 작동은 옳은 것 같다. 또 서로를 위해서 이런 마음 작동이 바람직한 것 같다.


(3) 홍은희 저, <삶의 시간들>에서 


   


<삶의 시간들>은 중앙일보 논설위원을 지낸 저자가 1996년부터 2006년까지 쓴 생활칼럼 가운데 110편을 가려 모은 책이다. 이 책은 사랑에 관한 것, 여성들의 문제에 관한 것, 남성들의 문제에 관한 것, 고질적인 생활문화의 병폐에 관한 것, 조기유학의 실상과 같은 우리 사회의 문제에 관한 것 등을 다루고 있다.


 

그중, ‘부부싸움과 말버릇’이란 칼럼은 어느 부부싸움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 작동이 성별에 따라서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 준다.




얼마 전, 부산에서 남편의 술버릇 때문에 부부싸움을 하던 아내가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기도했다가 뒤쫓아 달려온 남편이 간신히 팔을 붙잡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일이 있었다.


‘목숨 건 부부싸움’ 기사를 보다가 그들 부부의 ‘사건 후 세력판도’가 궁금해졌다. 질문을 받은 몇몇 남성들은 예외 없이 “이제 그 남편은 완전히 마누라에게 잡혔군” 하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여성들은 “남편이 생명의 은인이 됐으니 큰소리치긴 다 틀렸다”고들 했다.


- 홍은희 저, <삶의 시간들>, 178쪽~179쪽.




하나의 부부싸움을 보면서 신기하게도 남성들과 여성들은 정반대의 마음 작동을 일으키고 있다. 누군가를 이해하려 할 땐 세상을 읽는 시각이 자신과 같은지, 다른지의 문제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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