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시마 유키오의 <부도덕 교육강좌 69>에는 69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그중 ‘마음껏 참견을 할 것’이라는 제목의 에세이가 있다. 이 글에서 저자는 참견하는 사람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나타내며, 남의 일에 참견을 하는 사람의 인생은 장밋빛이라고 단정한다. 그 이유는 그런 사람은 언제까지나 자기 얼굴은 안 보이고 남의 얼굴만 보이기 때문에 인생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참견을 잘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녀는 기차를 탄다. 커다란 짐을 가진 할머니가 손잡이에 매달려서 서 있고 좌석은 만원이었다. 할머니 앞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은 학생이 시시한 잡지나 대수롭지 않은 뭔가를 펴 들고 열심히 읽고 있다. (…) 그녀는 금방 학생의 이기주의에 기가 막혀서 울분을 터트린다.
“뭐에요? 당신은 젊은 학생이면서 이 무거운 짐을 가진 노인이 안 보여요. 빨리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하세요.”
그러나 뜻밖에도 할머니 쪽에서 반박했다.
“그만 두시오. 나는 아직 노인이 아니고, 첫째로 이 짐은 솜이에요.”
차 안의 모든 손님은 웃음을 터트리고 그녀는 슬금슬금 다음 역에서 내려 다른 차량으로 옮겨 탄다.
- 미시마 유키오 저, <부도덕 교육강좌 69>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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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또 다른 데에 가서 참견을 한다.
대낮부터 연인들이 나무 그늘 벤치에 기대서 넋을 잃고 있다. 이 무슨 추잡한 부도덕한 광경인가! 그녀는 거기 있는 여성들 모두를 동정한다. 그녀들은 모두 속아서 걸려든 새끼양들이다.
한 벤치에 가장 비극적인 한 쌍이 있었다. 여자는 양가집 규수인 듯 얌전하고 청순한 아가씨였고, 남자는 상고머리에 눈초리가 사나워서 보기에도 건달 같은 청년이었다. 이런 한 쌍은 바로 보고 지나칠 수가 없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서 다가가 말을 건다.
“아가씨. 이 남자는 건달이에요. 당신의 인생을 소중히 하지 않으면 되돌릴 수 없는 불행의 씨앗이 되고 말 거에요.”
그러니까 청년은 눈을 부릅뜨고
“어이, 이봐! 못된 아줌마 같으니라구. 내 여자한테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야.”
라며 빈정대는 것이다. 그래도 이 사람은 보기와는 달리 관대한 편이다.
그 아가씨는 쌀쌀한 눈으로 힐끗 쳐다보고 나서 남자에게
“아무래도 올드미스의 히스테리일 거에요.”
라고 말하는 것이다.
“올드미스라니 말 삼가세요. 나는 결혼한 가정주부예요.”
“가정주부라면 댁에 가서 애나 보시지.”
이것으로 그녀는 또 다시 화가 나서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다.
- 미시마 유키오 저, <부도덕 교육강좌 69>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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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예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우리는 때때로 남의 생각과 상관없이 이것(참견)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면서 “아무런 도움도 안 되고 헛일일지라도 참견에는 한 가지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남을 귀찮게 함으로써 스스로 즐길 수가 있다’는 것이고, 더구나 정의감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안전하게 행사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2.
예전에 지인이 말한 적이 있다. 남에게 함부로 충고를 하는 게 아니라고. 더군다나 그 상대방이 바라지 않는데도 충고를 하는 건 실례가 될 수 있다고. 그때 그 말에 나도 동의했다. 내가 동의한 이유는 이렇다. 첫째, 충고로 인해 상대방이 자존심이 상해 불쾌감을 느낄 수 있어서다. 둘째, 인간은 남의 충고에 따르기보다 어차피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존재여서다. 그러므로 함부로 충고를 해서 괜히 둘의 관계만 나빠질 수 있으니, 남의 인생에 끼어들며 참견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잘못 말해서 인심만 잃는 경우가 많지 않던가.
그러나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든다. 절친한 친구가 나쁜 길로 가고 있는데도 충고를 하지 않는 게 과연 최선일까. 그것은 인심을 잃지 않으려는 이기주의자의 태도가 아닐까. 만약 친구가 결혼생활이 파탄에 이를 정도의 춤바람이 났는데도, 친구가 재산을 탕진할 정도의 도박에 빠져 있는데도, 친구가 지나치게 쇼핑에 중독이 되어 있는데도 불난 남의 집 불구경하듯 보기만 해야 할까.
이렇게 친구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면, 둘의 관계가 나빠지고 인심을 잃더라도 충고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게 진정한 친구의 모습일 것 같다. 상대방이 당장에 그 충고를 달갑게 듣지 않을지라도 언젠가는 한 번쯤 그 충고가 떠올라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또 여러 사람이 같은 말로 충고했다면 충고의 효과는 커질 것이다. 다수의 의견은 옳게 여겨질 때가 많으므로.
미시마 유키오 저, <부도덕 교육강좌 69>에서 읽은 ‘마음껏 참견을 할 것’이라는 에세이는 ‘남에게 충고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여겼던 나에게 생각을 뒤집어 보는 시간을 갖게 하였다.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을 뿐 아니라 창피를 당하고 마는 ‘참견을 잘하는 여자’의 모습을 보니, 내 체온이 따스해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료의 서비스 정신을 발휘하는 사람을 본다면 난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을 내기가 어렵다. 남의 일에 참견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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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참견과 충고에 대한 명언
부정적인 말 :
지나치게 참견하는 바보는 적보다 더 나쁘다.(크릴로프)
아무도 너 자신보다 더 현명한 충고를 네게 해 줄 수는 없다.(키케로)
자기와 무관한 일에 관해서는 참견하지도 말고 굳이 알려고도 하지 마라.(지눌)
친구들의 사회적 약점을 그들에게 충고하지 마라. 그들은 자기 약점을 없앤 뒤 너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L. P. 스미스)
충고는 결코 환영받지 못한다. 충고가 가장 절실히 필요한 사람일수록 언제나 그것을 가장 싫어하는 법이다.(체스터필드)
긍정적인 말 :
좋은 충고보다 더 값진 것은 없다.(에라스무스)
바보마저도 때로는 좋은 충고를 한다.(A. 겔리우스)
나무는 먹줄을 따라야 곧게 되고 사람은 충고를 받아들여야 거룩해진다.(공자)
가끔 남의 충고를 들을 필요가 전혀 없을 만큼 그렇게 완전한 사람은 없다.(그라시안)
바보들보다는 현명한 사람들에게 충고가 더 불필요하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들은 충고로부터 가장 많은 도움을 받는다.(귀치아르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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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갖고 있는 책은 미시마 유키오 저, <부도덕 교육강좌 69>라는 책인데, 이것은 절판된 듯하고 현재 출판되어 있는 것으로 <부도덕 교육강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