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클래식을 눈을 감고 느긋하게 귀로 감상하듯이 뭐든 천천히 하면서 그것을 음미하며 살고 싶은데, 그랬다간 뒤처진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빨리 빨리’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게으르게 살고 싶은 나는 ‘느림’을 여유롭게 사는 삶이라고 여기는데, 사람들은 이런 나를 인생의 낙오자로 여기리라. 세상은 부지런을 떠는 사람에게만 승리의 자리를 내주는 것 같다.

 

 

가끔 지금의 세상을 따라가기가 버겁다고 느낀다. 세상은 앞서고 나는 그것을 힘겹게 뒤따르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남들 앞에선 버겁다는 티를 내서는 안 될 것 같다. 이 세상과 더불어 내 삶도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한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촌스러우니까, 싸 보이니까. 그건 또 싫으니까.

 

 

며칠 전, 친구들과 빕스(VIPS)에서 점심을 먹었다. 처음 이런 곳에 갔을 땐 어색해서 맛있는 음식이었을 텐데도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이젠 이런 곳에서 식사하면서 자연스러운 척할 줄 알게 되었고, 맛있게 먹을 줄도 알게 되었다. 아, 그래도 부자연스럽다. 한 끼의 식사 값이 비싸서.

 

 

집에 셋톱 박스, 인터넷 전화, 인터넷 공유기 등 세 가지를 설치했다. 이 세 가지를 같은 회사의 것으로 설치하면 설치비가 싸고 사용료도 싸다. 또 시간을 놓쳐서 시청하지 못한 방송 프로그램을 나중에 시청할 수도 있다. 이런 정보를 알면서도 어찌 설치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난 기계와 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친해지고 싶지도 않아서 처음엔 망설였다. 그 사용 방법을 배우는 게 싫었다. 물론 배우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앞으로 제2의 빕스나 제2의 셋톱 박스가 얼마든지 생겨날 것이다. 생겨날 때마다 빨리 친숙해지는 게 바로 변화해 가는 세상을 따라가는 일이다. 이에 대해서도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하지만 부지런을 떨기 싫은 나는 새로운 것 좀 그만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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