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옥신각신하다

 

신문에서 읽고 웃었다. 나이 들면서 남자에게 필요한 게 다섯 가지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남자에게 필요한 것은 ‘첫째 마누라, 둘째 아내, 셋째 애들 엄마, 넷째 집사람, 다섯째 와이프’라는 것이다. 결국 남자에겐 다른 건 필요 없고 오직 ‘마누라’만이 필요하다는 것이겠다.

 

 

남편이 퇴근해서 돌아와 내게 ‘배고파 밥 좀 줘.’라고 말할 때 그런 남편이 부러울 때가 있다. 나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마누라가 있었으면 좋겠다. 배는 고픈데 밥상을 차리기가 귀찮을 때 ‘배고파 밥 좀 줘.’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남편처럼 사는 건 부럽지 않다.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 준비를 하느라 바쁘고,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바깥에 있는 시간이 많은 생활을 하는 남편은 부럽지 않은 것이다. 그런 생활을 하는 남편이 내 눈엔 힘들어 보여서 밥상을 차려 주는 일쯤은 당연히 내 몫인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며칠 전, 병원에서 위내시경 검사와 초음파 검사를 하고 왔다. 내가 소화불량 때문에 소화제를 먹는 것을 몇 번 본 남편이 소화불량의 원인을 알아야 한다며 병원에 가자며 재촉하여 검사를 받은 것이다. 위내시경 검사를 한 지가 오래되어서 병원에 가야 한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병원에 가는 게 겁이 나서 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재촉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가게 된 것이다. 다행히도 몸에 아무 이상이 없고 '신경성 소화불량'이라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 (아무 이상이 없으면 대개 의사는 '신경성'이라고 하는 것 같다.) 의사는 소화불량일 때엔 한 끼를 굶으라고 조언했다. 굶는 게 건강에 나쁘지 않다고 하면서.

 

 

요즘 남편과 옥신각신하는 문제가 있다. 바로 담배 문제인데, 나는 남편에게 담배를 끊으라고 하고 남편은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어서다. 남편이 화장실에서 담배 피울 때마다 걱정되어 큰애의 방에서 담배 피우라고 말했다. (큰애가 지금 외국에 있어서 그 방이 비어 있다.) 아무래도 창문이 없고 좁은 화장실보단 창문이 있고 화장실보단 넓은 방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담배 연기를 덜 마실 것 같아서다. 그런데 내가 안방에 있을 때 나 몰래 거실에서도 담배를 피워서 내게 걸리는 일이 생기곤 한다. 겨울이라 추워서 환기하기가 쉽지 않아서, 함께 사용하는 공간에선 담배를 피우지 않기로 약속했는데, 이것을 어기는 것이다. 아마도 담배 피우러 큰애의 방으로 가기도 귀찮은 데다 그 방은 난방을 하지 않아 춥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다가 그냥 담배를 피운 것이다. 물론 내가 그때 안방에서 거실로 나올 줄 모르고 피운 것이겠다.

 

 

남편은 내가 만들어 주는 볶음밥을 좋아한다.

 

 

내가 말했다. “내가 저녁으로 볶음밥을 맛있게 해 주려고 했는데, 맛있게 안 해 줄 거야. 당신이 거실에서 담배를 피웠기 때문이야. 그 벌로 맛없는 볶음밥을 먹도록 해.”

 

 

이에 남편이 답했다. “며칠 전, 당신이 병원에 갔을 때 함께 가 준 사람은 누구인가를 잊지 말아라. 그때 병원에 함께 가 준 사람은 큰애도 아니고 작은애도 아니고 바로 ‘나’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아, 그러고 보니 맞네. 그걸 잊고 있었네. 남자에게 필요한 게 마누라인 것처럼, 내게 필요한 건 남편이었네. 나중에 딸들이 시집을 다 가고 나면 남는 것은 남편뿐이니, 결국 남편을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 거네.

 

 

그리하여 맛있는 볶음밥을 해 줄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남편이 담배를 끊지 않는 한, 우리 부부의 옥신각신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참, 문제다. 지금은 큰애의 방이 비어 있어 거기서 담배를 피우게 하면 되지만, 큰애가 돌아오고 나면 빈방이 없다. 그렇다고 함께 있는 공간에서 피우게 할 수 없다. 담배 연기가 옆에 있는 사람에게 더 해롭다고 하니까. 베란다가 없는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게 할 수도 없다. 복도에서 피우게 했다간 이웃으로부터 항의가 들어올 것이다. 그렇다고 이 추운 날에 아예 밖에 나가 피우라고 할 수도 없다. 결국 남편은 그 좁은 화장실에서 환풍기만 믿고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담배 끊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2. 굶는 게 건강에 좋단다

 

하루 세 끼의 식사를 해야 건강하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한 끼의 식사를 마치고 소화불량에 걸리면 소화제를 먹고 그 다음 끼의 식사를 하곤 했다. 굶으면 건강을 해친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 무슨 말인가. 굶는 게 건강에 좋다고? 아니 정말?

 

 

나구모 요시노리 저, <1日1食>에서 저자는 “영향을 계속 섭취해야 건강하다는 생각은 낡은 사고방식이다.” 오히려 “뱃속에서 꼬르륵 하고 소리를 내면, 세포 차원에서 몸에 좋은 작용들이 일어나고 젊어지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루 한 끼의 식생활이 건강에 좋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경험에 따르면 운동으로 살을 빼려고 하면 식욕이 더 늘고 체중은 더 늘어났다는 것. 그래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육식을 끊고 채소 중심의 식생활로 바꾸자, 그토록 심하던 변비(원래 변비가 있었다고 함.)가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더 들어 보자.

 

 

“내가 지금처럼 ‘하루 한 끼’ 식생활을 하게 된 것은 10년 전인 마흔다섯 살 무렵부터였다.” “그렇다면 하루에 한 끼만 먹는 식생활을 시작한 뒤 10년 동안 내 건강 상태는 어떻게 되었을까. 내 건강 상태는 아주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체중도 62킬로그램을 유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피부가 탱탱해졌고 휴먼 도크(human dock 정밀종합검사) 검사 결과 혈관 나이가 스물여섯 살에 불과했다!” 그리고 “다양한 동물실험을 통해 식사량을 40퍼센트 줄이면 수명이 1.5배 늘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피부가 젊고 깨끗하며 허리가 잘록한 것. 이는 ‘하루 한 끼’ 식생활이 지향하는 최종 목표이다.”라고 하면서 ‘하루 한 끼’의 식생활이 건강에는 필수적인 방법이라는 주장의 근거와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소개한다. (저자는 현재 “일본에서 ‘1일 1식’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여러 인기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사람들에게 ‘나구모식 건강법’을 전파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진작 좀 알았다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소화불량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밥을 억지로 먹으며 살지 않았던가. 앞으로는 소화불량에 걸리면 그냥 그 다음 끼니를 굶어야겠다. 뱃속에서 꼬르륵 하고 소리를 내면 오히려 건강에 좋다고 하니까. (위내시경 검사를 해 준 의사도 굶는 게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저자처럼 ‘일일일식’을 할 자신은 없지만, 또 그것이 정말 건강에 좋은지는 믿을 수 없지만, 굶는 것이 건강을 해치지 않는다는 건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밥을 먹기 싫을 땐 억지로 밥을 먹을 필요는 없다는 게 이 책으로 얻은 큰 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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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11-27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제가 만나는 분 중에 우울증이 되게 심한 분이 있거든요.
자신이 너무 우울하고 무기력해서 집안에서 며칠씩 밥도 안 먹고 웅크려있으면 남편이 일찍 들어와서 괜찮냐고 한대요. 그런데 립 서비스만 하고, 실제로 밥을 해주거나 뭐를 사들어오는 일이 없는게 너무 서럽다는거예요. 내가 안 챙기면 나를 챙길 사람은 없다는게 그렇게 슬프대요. 저는 제가 아프면 가끔 그렇더라구요. 혼자 사는 사람이나 주부는 그런 면에서 참 서글퍼요. 그죠..........

음, 오늘 내내 골골대는데
근데요, 신랑이 어제 같이 차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자기 주머니에서 멀 쓱 꺼내주더라구요. 자기가 병원에서 타와 먹던 감기약인데 효과가 좋다고 챙겨주는거 있죠. 물론 사람마다 달리 처방받아야 하지만, 음, 결혼 14년동안 본 행동 중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는 예쁜 행동이었다눈.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제가 하는 공부로 인해서 제 말하는 모양새가 예전보다 약간 이뻐졌거든요.... 그 상호작용같다는, 결국 자화자찬으로 끝나는 댓글.

추신. 저는 일일일식, 절대 반대입니다. 먹는게 사는 낙 중 하나입니다... 아하하.

페크pek0501 2012-11-28 19:41   좋아요 0 | URL
저는 아프면 남편한테 뭐 해 달라고 엄살 부려요. 그래서 섭섭한 것, 잘 몰라요. 생일도 달력에 크게 표시해 놓고 식구들에게 큰 소리로 말해서 입력시켜요. 하지만 부엌일에 서툰 식구들 때문에 서글플 때 당연히 있죠. 제가 아프면 뭐 시켜 먹을 궁리를 한답니다.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 참 중요하죠. 한쪽이 부드럽게 대하면 상대방도 부드러워지죠.

저의 친정 부모님이 사이가 좋으셔서 밥상도 꼭 함께 얘기하면서 차리시는데, 보기 좋아요. 자식으로서는 (떨어져 사니까) 부모님께 해 드리는 데에 한계가 있어서 부부 사이가 좋은 게 행복의 중요한 변수인 것 같아요.

이젠 달여우 님을 자주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반가워요. ^^

숲노래 2012-11-27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에 똥을 몇 번 누는가를 헤아리면,
사람들은 으레 하루에 한 번 누니,
하루에 한 끼니 먹는 삶이 가장 알맞아요.
왜냐하면, 똥이란 먹은 대로 나오니까요.

세 끼니를 먹는데 똥을 한 번만 눈다면,
두 끼니치가 뱃속에서 더부룩하게 쌓이면서
묵은똥(숙변)이 된다는 소리예요.

한겨레는 먼 옛날부터 누구나 두 끼니만 먹었어요.
아침과 저녁.
들일을 하는 사람은 샛참을 먹으며 기운을 북돋았지요.
그러니까, 들일을 하며 몸힘을 많이 쓰지 않는다면
하루 두 끼니가 누구한테나 가장 알맞고,
나이가 들면서 몸 쓰는 일이 줄어든다면,
차츰 한 끼니로 바꾸면서 몸을 더 튼튼히 지킨다는 뜻이 돼요.

다만, 사람마다 몸이 다르니, 스스로 몸을 잘 살펴야지요.
소화불량이 있다면,
끼니가 많거나, 밥을 많이 먹는다는 소리이니,
끼니를 셋으로 하면 밥부피를 줄이고,
끼니를 둘로 하고,
낮에 살짝 주전부리만 조금 해 주거나 물을 많이 마시면 되리라 느껴요.

페크pek0501 2012-11-28 19:43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 님의 말씀에 위안이 되는 군요. 고견에 감사드립니다.
진작 알았다면 좋았을 걸 싶어요. 소화가 안 되어 먹는 양을 줄이게 되니 자연히 체중이 빠져서 무슨 병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 은근히 걱정을 했지 뭐예요. 이젠 앞으로 소화불량인 날에 마음 편히 두 끼를 먹을 수 있을 듯 싶어요.^^

바꾸신 닉네임, 참 좋아요.

다크아이즈 2012-11-28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저도 꼭 하루 세 끼 골고루, 이런 생각엔 동조 못해요.
한 끼를 먹든, 뭘 먹든 규칙적이고 활동적인 생활을 하면 만사 오케이 댕큐인 것 같다는 생각이.

고구마만 평생 먹고, 라면만 평생 먹고, 사과만 평생 먹는 사람도 오래 건강하게 살잖아요!? 요렇게 말해놓고 보니 자신이 좀 없긴 해서 물음표도 살짝 곁들입니다. ^^*

페크pek0501 2012-11-28 19:46   좋아요 0 | URL
님의 말씀에 찬성해요. 몸이 원하는 대로, 배고프면 먹고 먹기 싫으면 안 먹고 그러고 싶어요. 건강의 3대 요소는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면 된다는 것이라는데, 제일 중요한 건 마음이 편안한 것 아니겠어요. 마음의 평화만큼 건강에 좋은 게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니 스트레스는 당연히 건강의 적이지요.
평화롭게 즐겁게 살자고요. 룰루랄라~~ 그러면서... ㅋ

마립간 2012-11-28 0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25년째 2끼 식사, 군복무 시절에 새벽 6시에 아침 식사, 낮 12시쯤 점심 식사 - 이리 식사해도 아무 문제 없던데요. 가끔 개신교 고난 주일, 한 끼 식사를 줄이라는 요구를 받을 때 (결과적으로 한끼 식사 때),는 정말 힘들었지만요.

페크pek0501 2012-11-28 19:47   좋아요 0 | URL
저는 25년째 2끼 식사... 아, 그러셨군요. 진작 좀 가르쳐 주셨으면 좋았겠어요. 저만 몰랐나 봐요. 결과적으로 제가 이 페이퍼를 잘 올린 것 같군요.
여러 의견을 들으니 마음이 놓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은빛 2012-11-28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몸살림 운동 창시자인 김철 선생이 하루 한 끼,
저녁만 먹는다는 얘기를 칼럼과 책에 썼어요.
저도 하루 세 끼를 다 먹어야 한다는 얘기에는 반대합니다.
오히려 식사가 좀 불규칙하더라도,
배고플때 먹는게 제일 좋다 싶어요.

저는 결혼하고 단 한번도 아내에게 밥 차려달란 소릴 해본적이 없어요.
이 글 읽으니 저도 그렇게 대접 한번 받아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

페크pek0501 2012-11-28 19:52   좋아요 0 | URL
아, 그 유명한 블로거가 아니십니까? ^^ 영광인 걸요.
제 서재에 댓글을 다 달아 주시고...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도 님의 서재에 들르곤 하는데(서재 화제 글에 뜰 때) 저는 댓글을 못 쓰겠더라고요. (제가 좀 소심해서요.)ㅋ
이렇게 먼저 댓글을 써 주시니, 앞으로는 저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마 아내 되시는 분이 많이 바쁘신가 봐요. 그러면 그럴 수 있죠. 저는 학교로 수업 몇 시간만 하러 나가기 때문에 저보다 남편이 더 바빠서 제가 부엌 당번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그래도 남편이 청소는 잘 도와 준답니다.
반가웠고요, 앞으로 자주 뵙기를 바랍니다.

감은빛 2012-11-30 09:43   좋아요 0 | URL
아이구! 유명하다니요!
정말 유명한 블로거가 보면 어쩌려구......
저도 가끔 들르긴 했는데,
딱히 남길 말을 찾기 힘들때가 많아서
이제서야 첫 댓글을 남겼나봐요.
즐찾은 오래전부터 해두고 있었거든요. ^^

아내도 저도 바쁘죠.
아내의 밥상은 가끔씩 받아보긴 하는데,
제가 차려달라고 해본 적이 없단 말씀을 드린거예요.
자주 뵙겠습니다! ^^

페크pek0501 2012-12-01 13:47   좋아요 0 | URL
어제 바빠서 컴퓨터를 못 켰는데, 그새 다녀가셨군요. 저도 오래전에 즐찾은 해 두었답니다.
제 서재에 유명한 블로거들이 댓글을 남기는 일이 많은데, 그런 기분이 들어요. 공부 못하는 학생이 공부 잘하는 학생과 어울리게 된 느낌? 하하하~~~
그래서 기분이 좋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으음~~ 앞으로 자주 들러 주시면
저로선 감사할 따름입니다.
바쁘시더라도 커피 한 잔 하며 겨울이구나, 하며 계절을 음미하기도 하면서 한가한 척하는 시간을 몇 분만이라도 가지시며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쓰고 보니 이게 무슨 소리인지 저도 모르겠다는...)ㅋㅋ어쨌든 감사합니다.

2012-11-29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9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9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9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tty99 2012-12-02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식이 좋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하루 한끼라니...
저는 굶는 것 정말 못하거든요. 그래서 뱃살이 많아요.
이제는 소식하는 것을 실천해 보려구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

페크pek0501 2012-12-04 10:59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소식이 좋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지만 하루 한 끼의 식가가 건강 비결이라고
말하는 것은 획기적이죠. 어쨌든 한 끼를 굶는 게 건강에 좋을 수 있다는 건
좋은 정보 같아요. 꼭 하루 한 끼를 실천할 필요는 없지만 굶고 싶을 때 편안히 굶을 수 있을 듯해요.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oren 2012-12-03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방안에서 담배를 피시는 간 큰 분이 계시는군요. 깜놀입니다. ㅎㅎ
저도 대략 아침을 간소하게 때우면서(과일이나 선식 등으로) 두 끼씩 먹는 습관을 들였는데, 10년 가까이 된 듯합니다. 그러고 보니 담배도 그 즈음에 끊은 것 같네요.
* * *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제발 바라건대, 여러분의 일을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도록 두지 말라. 백만 대신에 다섯이나 여섯까지만 셀 것이며, 계산은 엄지손톱에 할 수 있도록 하라.

간소화하고 간소화하라. 하루에 세 끼를 먹는 대신 필요하다면 한 끼만 먹어라. 백 가지 요리를 다섯 가지로 줄여라. 그리고 다른 일들도 그런 비율로 줄이도록 하라.(P132)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월든』중에서

페크pek0501 2012-12-04 11:02   좋아요 0 | URL
저, 간 큰 분과 함께 살아요. ㅋㅋ
저보다 남편이 조금 더 착하고 조금 더 성격이 좋아요. (아이들이 그렇대요.)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제가 남편에 대해 관대한 편인 것 같아요. 그래서 간이 커졌나 봐요.
다른 건 양보를 잘 하는데 담배는 끊기가 어려운가 봐요.
오렌 님이 담배를 끊으셨다니 신사의 품격이 느껴지네요. ^^
소로우도 한 끼를 주장했었군요. 좋은 정보에 감사드려요.

마태우스 2012-12-03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부군께서 담배 끊으라는 페크언니 말씀을 들으셔야 할텐데요. 아무리 그래도 결혼은 여자가 희생하는 게 더 많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전 아내한테 늘 고맙죠. 부군께서 건강검진 같이 가준 건 한번이지만 볶음밥은 수십, 수백번이잖아요. 게다가 건강검진은 부군께서 해주시는 게 아닌 반면 볶음밥은 님의 노하우에서 비롯된 님의 작품이니 비교불가입니다. 그래서 전 페크언니편. 꾸벅

페크pek0501 2012-12-04 11:04   좋아요 0 | URL
아, 오랜만의 방문이 아닌가요.
저는 남자들의 인생이 여자들의 인생보다 더 고달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퇴근하면 무조건 잘 해 주자, 뭐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아요.
그래도 님이 제 편이라고 하니까 으음~~ 마음 든든하네요. ㅋㅋ
감사드립니다.

프레이야 2012-12-04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옥신각신도 알콩달콩의 다른 모습이지요. 저도 세끼를 밥으로, 이건 꼭 동의 못해요ㅋ 간식이나 군것질 좋아해서 세끼 밥까지 먹으면 배가 힘들어요. 밥은 하루 한두끼, 나머진 빵 등등ᆢ 대책없는 식습관이랍니다. 추워졌어요 페크님. 감기조심하시구요 훈훈한 12월 보내요 우리!

페크pek0501 2012-12-05 16:13   좋아요 0 | URL
아, 알콩달콩한 모습이 될 수도 있군요. 그런 게 사는 재미 같아요.
저도 이젠 밥 세 끼를 꼭 먹기, 이런 것 안 하려고 해요. 그러면 좋아하는 간식을 먹을 수가 없더라고요.

프레이야 님, 지금 눈 와요. 겨울이긴 한가 봐요. 잘 지내요. ^^
 

 

 

 

며칠 전, ‘단상(44) 우정은 (情)이오’라는 글을 올렸다. 그 글을 올리고 나서 생각해 보니 나와 우리 친구들을 술꾼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겠다 싶었다.

 

 

그저 한 친구가 멀리서 온 친구들 셋을 대접하느라 우리를 끌고 여기저기 맛있는 음식점을 다녔을 뿐인데... 평소에 해 보지 않던 음주를 곁들였을 뿐인데... 반가움에 주고받는 술이 필요했을 뿐인데... 그냥 술이 있는 가을날의 낭만에 취하고 싶었을 뿐인데...

 

 

왜 이리 말이 많으냐, 라고 물으신다면 술꾼이라는 오해는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답하겠다. 그럼 당신이 술꾼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믿느냐, 라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증명해 보겠다.

 

 

첫째, 진정한 술꾼은 안주보다 술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술보다 안주를 더 좋아한다. (평소엔 먹성이 좋은 편이 아닌데, 이상하게 안주는 맛이 있다.)

 

둘째, 진정한 술꾼은 술을 자주 마시는데, 나는 일 년에 한두 번쯤 마신다. (이것, 우리 친구들도 들어오는 블로그라서 거짓말 못한다.)

 

셋째, 진정한 술꾼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술을 꼽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책을 꼽겠다. (이건 이 블로그로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

 

넷째, 이게 제일 중요한데, 내가 장(腸)이 약하다. 술을 마시면 며칠 동안 설사로 고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술을 마시는 자리를 피하는 편이다. 피할 수 없으면 적게 마신다. (소주로 말하면 세 잔까지는 마셔도 된다. 참고로, 그까짓 설사, 라고 하시는 분을 위한 부연 설명 들어간다. 설사하면 살이 빠지는 것 같아 스트레스를 엄청 받는다. 내가 제일 싫어 하는 게 살이 빠지는 것이다. 이건 마른 사람이면 누구나 이해할 듯.)

 

 

(아, 유치하다. ㅋㅋ 뭐 이런 구차한 설명을 늘어놓다니. 나의 친구 ㅎㄹ이가 하하하 웃겠다. 그리고 한마디 할 것 같다. “술꾼으로 오해 좀 받으면 어때? 재밌잖아. 하하하.” 또는 “그래 나 술꾼이다, 어쩔래?, 좀 이렇게 살아라. 하하하.” 나도 이 친구처럼 소심하지 않게 살고 싶다. 나의 이상형 친구다. 그런데 그를 닮는 것, 쉽지 않다. 나중에 그 친구의 옆집으로 가서 살아야겠다. 그를 닮기 위해서.)

 

 

 

 

글샘 님이 댓글에서 내게 추천한 책이 있다. 세이쇼나곤 저, <마쿠라노소시>라는 책이다. 처음엔 180쪽밖에 되지 않아 얇은 책이라 좋아했는데, 다 읽고 나선 그 점이 오히려 아쉬웠다. 더 읽고 싶어서다. 그만큼 이 책이 좋았다.

 

 

이 책에 있는 해설에 따르면 이 책은 ‘일본 수필문학의 효시로 대표적인 고전문학 작품’이다. 수필을 감상하듯, 시를 감상하듯 읽었는데, 어느 부분에선 그윽한 정취를 맛보았고, 어느 부분에선 폭소를 터뜨렸다. 인상 깊게 읽었으므로 기억해 두고 싶어서 이 페이퍼를 쓴다. (아, 그리고 내가 술보다 문학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도 쓴다.)

 

 

내가 좋았던 구절들을 뽑아 나열했고, 나도 따라 써 보았다.

 

 

1.

설렘―가슴 두근거리는 것

(53쪽) 참새 새끼를 기르는 것. 어린아이가 뛰어노는 곳 앞을 지나가는 것. 고급 향을 태우며 혼자 누워 있는 것. (…) 신분이 높은 남자가 내 집 앞에 차를 세우고 시종에게 뭔가 묻는 것. (…) 약속한 남자를 기다리는 밤은 빗소리나 바람 소리에도 문득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 세이쇼나곤

 

 

설렘―가슴 두근거리는 것

무심코 창밖을 보았을 때 눈이 소복이 쌓여 있는 풍경이 보이는 것.

어느 찻집에서 시집을 읽다가 빗소리가 들려 창밖을 보는 것.

주문한 책 몇 권을 배달해 주는 사람이 누른 초인종 소리를 듣는 것.

기대하고 기다렸던 책의 첫 장을 펼치는 것.

반신욕을 하기 위해 뜨거운 욕조에 들어가는 것.

모처럼 식구들이 집을 비워 나만의 일박이일의 시간이 생기는 것.

혼자 떠난 여행지에서 책 한 권 옆에 끼고 산책하다가 숙소로 들어가는 것. (이걸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서 상상만으로 설렌다.) - pek0501

 

 

 

 

2.

밉살스러움―얄미운 것

(46쪽~47쪽) 다른 사람 몰래 오는 사람을 알아보고 눈치 없이 짖는 개도 얄밉다. 또 남의 눈에 띄면 안 되는 곳에서 코를 골며 자는 사람이나, 몰래 찾아오는데 높은 에보시를 쓰고 와서 남의 눈을 피한답시고 허둥지둥 들어오다가 물건에 부딪혀서 소리를 내는 사람도 얄밉다. (…) 삐걱거리는 우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도대체 귀머거리인지 화가 치민다. 주인이 타고 있으면 그 차 주인까지도 미워진다. 또 얘기할 때 잘난 척 앞질러가는 사람이나 얘기 중간에 말참견하는 사람은 어른이든 애든 다 보기 싫다. 가끔 오는 애들을 귀여워하며 좋아하는 것을 줘서 보냈더니, 그것에 맛을 들여 계속 찾아와서 마치 자기네 집인 것처럼 함부로 드나들며 물건을 어지르는 것도 정말 밉다. - 세이쇼나곤

 

 

밉살스러움―얄미운 것

누군가를 험담해서 난처하게 만드는 사람.

누군가를 무시하는 말투로 말하는 사람.

누군가가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사람.

거짓말을 해서 이득을 보는 사람.

모른 척하며 남의 약점을 건드리는 사람.

모든 이성이 자신을 좋아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

남이 말할 땐 딴생각을 하다가 자신이 말할 땐 신이 나서 말하는 사람. - pek0501

 

 

 

 

3.

부조화―어울리지 않는 것

(79쪽~80쪽) 천한 것들 지붕에 흰 눈이 소복이 쌓인 것. 게다가 달까지 환하게 비치면 정말이지 달빛이 아깝기만 하다. 달 밝은 밤 지붕 없는 우차. 또 거기에 누런 황소까지 매달고 있으면 최악이다. 나이 든 여자가 임신해서 산만한 배를 안고 돌아다니는 것도 꼴불견이다. 젊은 남편 얻는 것만 해도 가관인데, 그 남편이 다른 여자네 집에 가서 자기 집에 안 온다고 화내는 것은 참으로 볼 만하다. (…) 애인인 여방의 방에 살짝 들어가 고상하게 향 피워놓은 휘장 위에 흰색 하카마를 벗어서 제멋대로 걸쳐놓은 것이 눈에 띄기라도 하면 정말이지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이다. - 세이쇼나곤

 

 

부조화―어울리지 않는 것

얼굴은 미남인데 심하게 사투리를 쓰는 남자.

교양 있게 생긴 얼굴로 크게 소리 내며 껌을 씹는 여자.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해진 옷을 입고 있는 집주인.

짬뽕에 반찬으로 김치를 먹는 사람.

여행지에서 (커피 잔이 없어) 밥그릇에 커피를 마시는 사람. - pek0501

 

 

 

 

4.

있기 어려운 일―흔치 않은 것

(100쪽) 장인한테 칭찬을 받는 사위나 시어머니한테 귀염받는 며느리. 또 털 잘 뽑히는 족집게. 주인 험담 안 하는 시종. 전혀 결점이 없는 사람도 흔지 않다. (…) 남녀관계뿐만 아니라 여자끼리라도 변치 말자고 굳게 약속한 사람이 끝까지 사이가 좋은 경우도 드문 일이다. - 세이쇼나곤

 

 

있기 어려운 일―흔치 않은 것

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이건 이 글을 읽은 여러분이 상상해 보시길...

 

 

 

 

 

.................................

(쓰고 나니 평범하다, 평범해. 평범함은 글 쓰는 사람으로서 치명적인 단점이다. 그래서 4번은 여러분을 위해 남겨 두기로 한다.)

 

 

 

 

 

 

..................................

글샘 님의 안목 높은 추천으로 읽게 된 책입니다.

좋은 책을 읽게 된 것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추천해 주실 분은 이 책처럼 얇은 책으로 해 주세요. (이것, 두꺼웠으면 사 보지 않았을지 몰라요. 결국 얇아서 아쉬웠지만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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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2-11-09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ㄱㅅ 는 욕설로 쓰인다는 걸 아시나요? ^^
뭐, 이걸 익명으로 해주실 거 까지야~
책이 딱 pek님 취향일 거 같더라구요. ㅋ~ 다행이네요. 취향에 맞으셔서~

페크pek0501 2012-11-09 17:00   좋아요 0 | URL
제가 좀 신중해서요. 아니 소심해서요.ㅋㅋ 싫어하시는 분이 있더라고요.
ㄱㅅ이 욕설로 쓰인다는 건 몰라고요.
어쨌든 님은 그냥 밝혀도 된다는 뜻으로 해석하여
ㄱㅅ을 님의 닉네임으로 수정했사옵니다. 감사 두 번 드리옵니다.
좋은 가을 보내시길...^^

카스피 2012-11-09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1년에 한번 거나하게 술을 먹을수도 있지 뭘 그리 소섬하게 그러세용.저도 1년 내내 술 한방울 입에 안되고 있다가 한 두달전인가 친구들하고 기네스 흑맥주에 양주 말아서 시원하게 마신 기억이 나는데요^^

페크pek0501 2012-11-12 12:12   좋아요 0 | URL
반가운 카스피 님, 요 앞의 페이퍼 단상(44)을 읽으신 분들이 보면 마치 제가 술꾼처럼 보일 것 같아, 자주 마시지 않고 일 년에 한두 번 마신다, 라고 새로 쓴 것이랍니다. 일년에 한두 번이 괜찮은 게 아니라 으음~~ 한 달에 한두 번은 마셔도 되지 않을까요?ㅋ
그런데 알라디너들 중에는 애주가가 꽤 있을 것 같은데요, 제 생각엔 아마 자주 못 마실 거예요. 그러면 블로거 활동을 열심히 할 수 없거든요. 이곳 사람들은 술보다 블로그가 더 좋아, 하는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입니다. 또 뵈요.

순오기 2012-11-10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가슴 두근거리는 거 찌찌뽕이오!
님이 못해 본 설렘~ 이번에 제주도 가서 꼭 해볼테야요!!
그리고
진정한 술꾼은 pek님이 아니라 순오기란 말이오.ㅋㅋㅋ

페크pek0501 2012-11-12 12:13   좋아요 0 | URL
저도 찌찌뽕... ㅋㅋ
순오기 님, 제주도에 가서 꼭 해 보세요. 필히 여행가방 안에 책을 넣어야 폼이 나는 여행자의 모습이 되는 거죠.
진정한 술꾼이라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순오기 님이 좋아요, 저는.


노이에자이트 2012-11-10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이쇼나곤은 무라사키 시키부와 아는 사이군요.먼 옛날 사람들의 수필이나 일기가 그대로 남아있으니 참 다행입니다.저렇게 좋은 글을 후손에게 남겼으니...

페크pek0501 2012-11-12 12:14   좋아요 0 | URL
님의 오랜만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그러니까‘보존’이란 것도 참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님도 이런 글을 좋아하시는군요. 그래서 더욱 반갑습니다. ㅋ

숲노래 2012-11-10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사를 하면 장에 있는 찌꺼기도 여러모로 잘 나와요.
이른바 장청소라고 할까요.

관장을 한다면 더 좋지만,
가끔 설사를 하면
장에 쌓인 것이 밖으로 나와서
배가 홀쭉해지니까요
굳이 싫어하지는 않으셔도 돼요.

페크pek0501 2012-11-12 12:19   좋아요 0 | URL
하하하, 된장 님의 말씀이 맞아요. 설사를 가끔 하면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최근 3.5키로나 체중이 빠져서 무슨 병이 있나, 하고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했답니다. 다행히 병은 없대요. 여기서 더 '설사’를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설사주의보를 스스로 내리고 살아요. ㅋㅋ
여름에도 설사할까 봐 냉장고의 물을 못 마셔요. 설사 멎는 약을 복용한 적도 있지만 그 약이 나쁘다고 해서 잘 안 먹어요.
일단 살이 빠지니까 인물이 죽어요.(이것 웃겼나요? 사실인데...ㅋ)
전 한 번 빠지면 다시 회복되지 않는 특이체질이라서 더 안 빠지려고 노력중이어요.
 

 

 

그저께 대전에서 대학동창의 모임이 있었다. 네 명이 만나는 모임이다. 서울에서 같은 대학을 다녔음에도 현재 한 친구는 대전에서 살고, 한 친구는 부산에서 살고, 한 친구와 나만 서울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 한 번 모이려면 여간 성의가 필요한 게 아니다. (나만 해도 그날 오전 10시까지 서울고속터미널에 나가야 했다.) 나와 한 친구는 서울에서 대전으로 가고, 한 친구는 부산에서 대전으로 와야 하는 것이다. 대전이 중간 지점이므로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서로 사는 거리가 멀어서 일 년에 두세 번밖에 만나지 못하는 만남이라 일단 우리는 만나면 크게 웃으며 껴안는 버릇이 있다. 만난 반가움을 그렇게 표현한다. 그리고 마음이 급하다. 당일 코스의 만남이어서 시간이 많지 않은데 할 말은 많은 까닭이다.

 

 

우리 만남에 술이 빠질 수 없다. 막걸리로 시작해서 소주로 그리고 입가심으로 맥주 한 잔씩을 마시는 것으로 끝이 난다. 안주로는 숯불에 굽는 소고기로 시작해서 장어구이로 그리고 입가심으로 골뱅이 무침으로 끝이 난다. (절대 술꾼들은 아니다.)

 

 

첫 술은 야외에서 마셨는데, 음식점의 앞마당에 식탁과 의자가 있고 숯불이 있고 게다가 호수가 있고 고운 빛깔의 단풍잎들이 있고, 호수에 비친 단풍잎들이 있어서 무지 죽였는데(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그날따라 비가 오기도 했고 햇살이 반짝거리기도 하여 여러 얼굴의 풍경들을 볼 수 있었다. 환성을 지를 만큼 아름다웠다. (실제로 우리는 가을 풍경에 반해 환성을 질렀다.) 가는 음식점마다 서로 자기가 돈을 내겠다고 하는 것도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이다.

 

 

우리는 건배를 할 때 좀 특이하게 한다. 건배를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

이것이 술이오?

아니요.

그럼 뭐요?

정이오.

(그리고 깔깔깔 웃어 댄다.)

....................

 

 

 

마지막 술을 마시기 위해 친구가 아는 호프 집에서 맥주를 마시는데, 우리가 주문하지도 않은 안주가 나왔다. 우리가 주문한 것은 골뱅이 무침과 계란탕이었는데, 그것들을 다 먹을 무렵에 무료 서비스의 안주라면서 김치찌개가 나온 거였다.

 

 

우리가 물었고, 그(호프 집의 주인)가 답했다.

 

 

....................

이것이 김치찌개요?

아니요.

그럼 뭐요?

정이오.

(그리고 깔깔깔 웃어 댔다.)

....................

 

 

 

또,

 

“나는 정 주고 떠난 사람이 제일 미워.”라고 말하는 한 친구의 말에 다 같이 깔깔깔 웃어 댔다.

 

 

술을 마시기 전에, 친구가 대전에서 옷가게를 해서 거길 들러서 옷을 팔아 주기도 했다. 나는 두꺼운 울 카디건(가디건이 아니라고 함.)을 구입했다. 더 비싼 옷인데 깎아서 12만 원이라고 한다. 싱글인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에게 “너도 골라, 내가 사 줄게.”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4만 원짜리의 바지를 골랐다.

 

 

그런데 술을 마시다가 그 친구가 갑자기 내가 사 준 바지를 가방에서 꺼내며 하는 말이 웃겨 죽는 줄 알았다. 원래는 이렇게 말해야 했다.

 

 

....................

그 친구 : 이것이 바지요?

우리 셋 : 아니요.

그 친구 : 그럼 뭐요?

우리 셋 : 정이오.

(그리고 깔깔깔 웃어 대기.)

....................

 

 

 

이렇게 말해야 내가 그 친구에게 준 것이 단지 바지가 아니라 ‘정’이다, 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가 다음과 같이 변형하여 말해서 우리 모두 박장대소했다.

 

 

....................

그 친구 : 이것이 바지요?

우리 셋 : 아니요.

그 친구 : 그럼 치마요?

(깔깔깔. 모두가 박장대소함. 얼마나 웃었던지 눈물이 다 나왔다.ㅋ)

....................

 

 

 

앞으로 친구에게 점심으로 갈비탕을 사 줄 때에도 이런 말을 주고받아야겠다.

 

 

....................

친구 : 이것이 갈비탕이오?

나 : 아니요.

친구 : 그럼 뭐요?

나 : 정이오.

(그리고 깔깔깔 웃어 대기.)

....................

 

 

 

 

 

 

 

 

 

 

 

 

 

 

 

 

 

 

 

 

칼릴 지브란의 책을 언제부터 구입하려고 했는데 미루다가 지난달에 드디어 구입했다. 이런 글이 있다.

 

 

 

 

 

우정을 나눌 때에는 영혼을 깊이 하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은 두지 마십시오.

(…)

시간을 적당히 때우기 위해 친구를 찾는다면 그 친구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언제나 시간을 활기차게 보내기 위해 친구를 찾으십시오.

친구는 그대들의 공허함을 채우는 존재가 아니라, 그대들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우정의 따스함 속에 웃음이 깃들도록 하십시오.

마음은 하찮은 이슬 한 방울에서도 아침을 발견하고 생기를 되찾기 때문입니다.

- 칼릴 지브란 저, <예언자>, 65쪽~66쪽.

 

 

 

그날 우리는 칼릴 지브란의 말처럼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우정의 따스함 속에 웃음이 깃들도록 했고, 마음은 하찮은 이슬 한 방울에서도 아침을 발견하고 생기를 되찾았다.

 

 

 

 

 

그대들 가운데 어떤 이는 즐거움이 전부인 것처럼 추구하다가 비판을 받고 질책을 받습니다.

허나 나는 이들을 비판하거나 질책하지 않겠습니다.

오히려 즐거움을 추구하도록 이들을 격려하겠습니다.

이들이 즐거움을 찾더라도 즐거움 하나만을 얻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즐거움은 일곱 자매를 두었는데, 그중 가장 어린 자매도 즐거움보다는 아름답습니다.

정녕 그대들은 듣지 못했습니까.

뿌리를 캐다가 땅속에서 보물을 발견한 사람의 이야기를.

- 칼릴 지브란 저, <예언자>, 78쪽.

 

 

 

 

어느 책에서 읽은 것 같다. 좋은 인생을 사는 비결은 ‘주위에 좋은 사람들만 배치하기’라고. 내 주위에 좋은 친구들을 배치해 놨더니, 많이 웃게 만들어 건강에 좋은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는 날을 보냈다. 웃음으로써 즐거움을 주고받은 날을 보냈다. 그러나 그날에 주고받은 것이 어찌 즐거움뿐이랴. 칼릴 지브란의 말처럼 즐거움을 찾더라도 즐거움 하나만을 얻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추신.

 

 

페크의 서재에 여러분이 쓰신 댓글이 정녕 댓글이란 말이오?

아니요.

그럼 뭐란 말이오?

그건 情이오.

 

(여러분이 깔깔깔 웃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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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2-11-07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는 두개의 신체에 깃든 한개의 영혼이라는 금언도 있습니다. 제가 우정에 대해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서로의 존경 없이는 친구가 될 수 없기 때문이죠.

페크pek0501 2012-11-07 16:55   좋아요 0 | URL
첫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댓글이 아니라 정으로 접수합니다. ㅋㅋ
좋은 하루 되세염.

숲노래 2012-11-07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 돈을 내겠다 한다면...
저라면
"나는 돈을 안 내겠소~" 할까 싶어요~

페크pek0501 2012-11-07 22:22   좋아요 0 | URL
그것도 좋지요. 우린 돈 내기 싫어하는 사람은 그렇게 해 줍니다.
고맙습니다. 님은 가을 풍경 속에서 사시겠네요. ^^

oren 2012-11-07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은 댓글입니까? / 아니오.
그럼 정(情)이오? / 아니오.
그럼 무엇이오? / 그렇게 말랑말랑한 게 아니요. '웃음'에 대해서조차 '철학의 대상'으로 삼았던 사람들의 논문으로부터의 '인용'이오.ㅋㅋ

* * *

웃음의 기원

웃음의 기원에 대하여 여기서 논하는 것이 본론의 진행에 방해가 된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웃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어떤 개념과 그것에 의해 어떤 관계 속에서 실재하는 객관과의 모습을 갑자기 알아차렸을 때에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웃음도 이 모순의 표현에 불과하다. 이 모순은 흔히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실재적 객관들이 '하나의' 개념에 의해 사고되고, 그 개념의 동일성이 이들 객관에 옮겨지는데, 그 다음에 그 밖의 점들에 있어서는 이 객관들과 개념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개념이 오직 일면만으로 이들 객관과 상응하고 있다는 것이 확실하게 드러남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中에서

웃음의 팽창력

웃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웃음을 유발하는 밑바탕에는 무엇이 있을까? 익살꾼의 찌푸린 얼굴, 재치있는 말솜씨, 보드빌(vaudeville:가벼운 오락용 희극)의 착각, 하이코미디 장면 사이에서 어떤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까? 어떤 증류법(蒸溜法)을 사용하면 저렇게 종류가 잡다한 산물(産物)에 독한 향기를 감돌게 하는, 언제나 같은 그 엑기스를 채취할 수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훌륭한 사상가들이 이 사소한 문제에 몰두해 왔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언제나 그 노력을 비웃듯이 빠져나가고 비껴가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철학적 사색에 던져진 비위에 거슬리는 도전이라고나 할까.
- 앙리 베르크손,『웃음』 中에서

페크pek0501 2012-11-07 22:23   좋아요 0 | URL
재밌는 댓글을 쓰셨는데요.ㅋㅋ 감사합니다.

oren 2012-11-07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븐 핑커의 책에서 읽었던 '우스운 이야기' 하나만 덧붙일께요.
* * *
웃음, 목메임, 헐떡거림, 아우성

전 세계 대부분의 위트는 알공킨 원탁모임보다는《애니멀 하우스》에 더 가깝다. 샤농은 야노마뫼족의 가계조사를 시작할 때, 저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그들의 터부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샤농은 피조사자들에게 저명한 개인의 이름과 그 친척들의 이름을 귀에다 속삭이라고 요청했고, 그 때문에 어색한 과정을 몇 번씩 반복한 후에야 이름을 정확히 들을 수 있었다. 이름이 거론된 사람이 샤농을 노려보고 구경꾼들이 킥킥대고 웃으면 샤농은 안심하고 그의 진짜 이름을 기록했다. 몇 달에 걸쳐 정성스럽게 가계를 정리한 후 이웃 부락을 방문하던 중에 샤농은 자랑삼아 그곳 추장 부인의 이름을 불쑥 꺼냈다.

순간 싸늘한 침묵이 흘렀고 잠시 후 온 마을이 걷잡을 수 없는 웃음, 목메임, 헐떡거림, 아우성에 빠졌다. 사람들 앞에서 나는 비사시테리의 추장이 "털 많은 성기'와 결혼했다고 생각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뿐 아니라 나는 추장을 '기다란 음경'으로, 그의 형제를 '독수리 똥'으로, 그의 한 아들을 '병신 같은 놈'으로, 그의 딸을 '방귀 냄새'로 부르고 있었다. 다섯 달 동안 심혈을 기울여 가계조사를 한 결과가 터무니없는 헛소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자 관자놀이에 피가 솟구쳤다.

페크pek0501 2012-11-07 22:24   좋아요 0 | URL
정말 웃게 만드는 글이군요. 덕분에 하하하 웃습니다. ^^

프레이야 2012-11-07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유쾌한 페이퍼 읽다가 정 한 줄 드려요.
이건 댓글이 아니라 정!!!

그리고 예언자,에서 인용하신 우정에 대한 글이 팍 안깁니다.
저 책 저도 주문했는데 좀 전에 받았어요.
여고시절 사서 처음 보고 상당한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있지요.
검정표지였는데 그 책은 어디로 갔는지...

페크pek0501 2012-11-07 22:25   좋아요 0 | URL

저도 정 한 줄의 답글 드려요. 좋은 가을날 보내세요, 프레이야 님.^^

앞으로도 유쾌한 글을 쓰고 싶은데, 이런 글감이 날마다 생기는 게
아니라서요. ㅋㅋ

글샘 2012-11-07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오'가 아니오.
아니요...라고 써야 맞소.
이 댓글도 초코파이 정일까요? ㅋ

페크pek0501 2012-11-07 22:27   좋아요 0 | URL
아, 글샘 님이 교정 보신 거면 이젠 안심해도 되는 것인가요?
님의 말씀 대로 고쳤어요.ㅋㅋ

이 글을 올리고 나서 맞춤법을 찾아보고 수정해야지, 했는데 잊어 버렸어요.
다른 데를 수정하느라고요.
우정은 정이오, 인지, 우정은 정이요, 인지...
이것이 술이오? 인지, 이것은 술이요? 인지... 헷갈렸는데
그래도 아니오, 하나밖에 안 틀렸네요. 키득키득키득~~~
이젠 확실히 알았답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공부해 두었어요. 감사~~~

다크아이즈 2012-11-07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고 웃다가 배꼽 날려버렸습니다.
페크님만이 쓸 수 있는 글이옵니다.
남들 다 정을 남길 때, 저는 너무 웃다 댓글만 살짝 남기고 사라집니다.^^


페크pek0501 2012-11-07 22:37   좋아요 0 | URL
혹시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이 우리를 술꾼이라고 할까, 걱정이 되옵니다.
저로 말하면 제 별명이 집순이인데(집에만 있는다고 해서) 집순이에서 술꾼으로 변경되는 게 아닐까요?
제가 참 오랜만에 외출다운 외출을 했는데, 그 외출에 대해 남편과 아이가 반가워하더군요. 집에만 있지 말라면서요.
팜므느와르 님, 반가웠습니다. 님 같은 분이 있어 더 좋은 가을날입니다.

순오기 2012-11-10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재밌게 읽었는데, 비로그인으로 읽어서 댓글이 늦었습니다.
늦은 댓글도 정이오!ㅋㅋㅋ

페크pek0501 2012-11-12 12:21   좋아요 0 | URL
당연히 늦은 댓글도 정이죠. 저 접수했어요.

늦은 답글도 정이오, 라는 정 한 줄 드리옵니다. 받으십시오. ㅋㅋ

마태우스 2012-12-13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힝, 순오기님 사흘쯤 늦은 건 늦은 것도 아니어요. 한달 늦은 저도 있는데요 뭐.
정말 멋지게 사시네요. 역시 제 추측이 맞았어요.^^
님과 님을 이해하는 친구분들이 있어서 좋으시겠다...

페크pek0501 2012-12-15 22:53   좋아요 0 | URL
어머낫!!! 이렇게 늦게 갑자기 나타나시면 어떡합니까.
그러면 제가 너무 반갑잖아요. 호호~~

마태우스 2012-12-13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참참 뒤늦게 마이페이퍼 상타신 거 축하드려요

페크pek0501 2012-12-15 22:53   좋아요 0 | URL
감사함.^^
 

 

 

 

이번 글이 이 서재에 150번째로 올리는 글이다. 100번째로 올린 글이 지난 해 9월이었으니 거의 13개월 만에 150번째가 된 것이다.

 

 

나는 시간에 쫓기면서도 왜 블로거 활동을 중단하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내게 있어 블로거 활동은 연애이고, 도박이고, 실속이 없는 짓인 줄 알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갖게 하는 즐거운 취미 활동이기 때문이다.

 

 

“불행만큼 인간이 전념하는 대상이 또 있을까.”(알랭 드 보통)

“불행만큼 인간이 전념하는 대상은 즐거움이다.”(pek0501)

 

 

 

 

 

1. 블로거 활동은 연애다 : 블로거 활동(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타 블로그의 글을 읽고 댓글을 쓰는 것을 포함한 활동을 말함)을 하면서 연애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 만나지 못하면 연인이 궁금한 것과 같이 블로그도 그렇다. 며칠 동안 블로그에 들어오지 못하면 궁금하다. 연인과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하듯, 블로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하다. 연인과 연애하면 다른 모든 것들이 시시해지듯, 블로그와 연애하면 다른 모든 것들이 시시해진다. 연인과 작별하면 마음고생을 해야 하듯, 아마 블로그와 작별하게 된다면 마음고생을 하게 될 것 같다.

 

 

블로거 활동을 좋아하는 이유는 대략 두 가지의 즐거움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는 창의성으로 인한 즐거움이다. 글을 쓸 때마다 내가 기획하고 내가 구성하고 내가 마무리 작업까지 해야 하는 창의적인 글쓰기는 재미있다. 또 하나는 평가로 인한 즐거움이다. 매번 글을 올릴 때마다 추천의 수와 댓글의 내용으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글쓰기는 재미있다. (최근 즐겨찾기의 수가 5명이 늘었는데 그중 4명은 비공개한 블로거였다. 이것도 평가로 본다.) 원래 가장 재밌는 놀이가 창의성이 있으면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놀이가 아닐까. 연애를 할 때 상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옷차림에서부터 언행에 이르기까지 창의적으로 연출하는 재미가 없다면 무슨 재미로 연애를 하겠는가. 블로거 활동도 마찬가지다.

 

 

 

 

2. 블로거 활동은 도박이다 : 블로거 활동은 중독성이 있다는 점에서 도박과 같다. 화투를 치는 도박꾼은 돈을 따면 그 재미로 또 화투를 칠 것이며, 돈을 잃으면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또 화투를 칠 것이다. 블로거도 글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으면 그 재미로 또 글을 쓸 것이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또 글을 쓸 것이다. 결국 도박꾼도 블로거도 똑같이 그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무런 이득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블로거들은 돈을 매번 잃으면서도 화투를 치는 도박꾼과 같다. 그러므로 아무리 불미스런 일로 이곳을 떠난 블로거라도 우리는 그에게 위로의 말 대신 축하의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른다.

 

 

“당신의 중독이 치료된 것을 축하합니다.”라고.

“시간을 빼앗기고 몸이 축나는 블로거 활동을 끝낸 것을 축하합니다.”라고.

“블로거 활동을 했던 시간에 지금은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하겠지요.”라고.

 

 

 

 

3. 블로거 활동은 실속이 없는 짓이다 : 블로거 활동(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블로거들의 활동)은 금전상 아무런 이득이 없는, 실속이 없는 짓이다. 그 시간에 만약 돈을 버는 일을 한다면 훨씬 실속이 있는 일이 될 것임을 알면서도 블로거 활동을 한다. 디스크라는 병이 생겨도, 안구건조증이 생겨도 그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고 싶은 일이니까.

 

 

누군가에게 허점으로 인해 마음이 끌리는 일이 많다. 평소에 철두철미한 사람이 우산 챙기는 걸 깜박 잊었던 일을 말하는 것을 보면 갑자기 그가 좋아진다. 구멍난 양말을 신어서 창피해 하는 사람을 보면 그를 위해 따뜻한 웃음을 지어주고 싶다.

 

 

만점의 시험지, 일류 대학, 최고로 유능한 사회인…, 이런 것들만을 지향하는 이 사회가 삭막하게 여겨질 때마다 나는 허점이 있는 사람이 좋아진다. 그와 같은 맥락으로 실속이 없는 블로거들이 나는 좋다.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 김재진 작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보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 함께 있다 해도 다 허상일 뿐

완전한 반려伴侶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듯

한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듯 순간일 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놓는다 해도

수긍해야 할 일.

어차피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일.

상투적으로 말해 삶이란 그런 것.

인생이란 다 그런 것.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하략)

 

 

 

 

 

 

 

 

 

 

 

 

 

 

 

 

 

4. 블로거 활동은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 블로거 활동을 하게 되면 댓글을 통해 여러 이웃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이웃들과의 만남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소외감과 고독을 상당히 덜어 준다. 그래서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것이 블로거 활동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저의 개인적인 느낌을 쓴 것입니다. 좋은 이웃들을 알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

추신.

내 일기장에 적혀 있는 것.

실속을 따지지 말 것. 그냥 블로거 활동 그 자체를 즐길 것. 인생, 별거 아니다. 죽을 때쯤, 그땐 참 즐거웠노라, 라고 말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아주 잘 산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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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2-10-16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pek0501님께 바라건대, 불꽃같은 블로거 생활보다 장작불, 화롯불같은 블로거 생활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페크pek0501 2012-10-17 12:45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고 싶어요.
마립간 님도 이곳에서 오래 뵙길 바랍니다.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숲노래 2012-10-16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으로 이득이 안 된다지만,
'마음'에 도움이 되면서 사랑을 불러일으킨다면,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이득이라 하겠지요.

언제나 즐겁게 삶을 일구시기를 빌어요.

페크pek0501 2012-10-17 12:4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된장 님. 블로거 활동을 열심히 하면 몸은 좀 고단해도 풍성해지는 정신세계와 따뜻해지는 마음을 가질 수 있으니, 이것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프레이야 2012-10-16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근한 구들장 온기 같은 블로거가 됩시다요!! ㅎㅎ
마음에서 즐거우면 되는 것이죠.^^

페크pek0501 2012-10-17 12:48   좋아요 0 | URL
예, 프레이야 님. 인생의 최종 목표는 행복한 삶이라는 것, 잊지 말자고요.
참, 알랭 드 보통의 말은 제가 님의 페이퍼에서 살짝 가져왔다는 것, 아시죠?
님도 필요하시면 제 페이퍼에서 살짝 가져가셔도 됩니다.(있을까 모르겠지만요.ㅋㅋ)

카스피 2012-10-16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정말 공감이 가는 글입니당^^

페크pek0501 2012-10-17 12:49   좋아요 0 | URL
카스피 님. 공감하시는 1인을 만나 반갑고 고맙습니다.

oren 2012-10-17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거 그 어떤 시대에도 일찌기 경험해 보지 못했던 '소통 과잉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저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을 통해 끊임없이 서로 '소통'하려는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힌 모습들을 보노라면 한편으로는 '혼자'에서 벗어나려는 처절한 몸부림 같다는 생각도 가끔씩 하게 됩니다. (며칠 전에 축구선수 기성용은 인터넷을 쓸 수 없는 환경을 '지옥같다'라고 표현할 정도였죠)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철학적으로 깊이 깊이 탐색했던 사람 가운데 하이데거도 포함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가 아직까지 살아서 오늘날 어마어마한 사용인구를 지닌 페이스북과 카카오톡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봤더라면 뭐라고 말했을지 도무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울 것 같네요.

* * *

가까움에 대한 본질적인 경향

거리를 없앰은 거리를, 다시 말해서 어떤 것의 멂을 사라지게 함을, 가까워지게 함을 말한다. 현존재는 본질적으로 거리를 없애며 존재한다. 그는 그가 무엇인 그 존재로서 그때마다 존재자를 가까이에서 만나도록 해준다. 거리를 없앰은 멂을 발견한다. 이 멂은 거리와 마찬가지로 현존재적이지 않은 존재자에 대한 범주적 규정이다. 그에 반해서 거리를 없앰은 실존범주로서 확고하게 견지되어야 한다. 도대체 존재자가 현존재에게 그것의 멂이 발견되는 한에서만 세계내부적인 존재자 자체에서 다른 것과 관련되어서 "거리"와 간격이 접근 가능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존재자들 가운데 어떤 것도 그것의 존재양식상 거리를 없앨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단지 거리를 없앰에서 발견되는 측정 가능한 간격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거리없앰은 우선 대개 둘러보는 가깝게 함, 조달함으로서의 가까이 가져옴, 예비해놓음, 손안에 가짐이다. 그런데 존재자를 순수하게 인식하며 발견하는 특정한 방식들도 가깝게 함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현존재에는 가까움에 대한 본질적인 경향이 놓여 있다. 우리가 오늘날 다소 강요되듯이 함께 행하고 있는 모든 종류의 속도상승은 멂을 극복하도록 몰아세운다. 예를 들면 "라디오 방송"과 함께 현존재는 오늘날 일상적 주위세계의 확장과 파괴라는 방법으로써 그것의 현존재의 의미를 아직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세계'의 거리를 없애고 있다. (149쪽) - 『존재와 시간』中에서

페크pek0501 2012-10-18 15:03   좋아요 0 | URL
오렌 님이 애덤스미스, 쇼펜하우어, 키케로에 이어 이번엔 하이데거의 글을 배에 싣고 오셨네요. 멋집니다. 이 배를 타면 가지 못할 곳이 없을 것 같군요.ㅋㅋ
하이데거의 저작은 읽어보지 못했는데 그를 거론하는 책들은 많이 읽어서 마치 그의 저작을 읽은 것처럼 착각이 듭니다.
책을 읽다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이름이 하이데거를 비롯해 마르크스, 프로이트, 다윈, 에리히 프롬인 듯해요. 이들의 저작은 다 읽었는데 하이데거는 못 읽었네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 언어가 인간의 생각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읽고 무척 감탄했었어요.(저, 원래 감탄 잘 해요. 제 특기죠.ㅋㅋ)

이 가을, 오렌 님이 사진과 단풍과 더불어 가장 멋지게 이 계절을 보내실 듯 생각됩니다. 행복한 가을 보내세요.

순오기 2012-10-18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공감 백배!^^
하지만 요즘은 교육쇼핑(?^^)에 동참하느라 한동안 소홀했어요.
행복한 가을 되시기를...

페크pek0501 2012-10-18 15:06   좋아요 0 | URL
순오기 님, 반갑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저는 워낙 게으름뱅이 블로거이기 때문에 요즘이 아니라 늘 조금만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만...(남이 볼 땐 게으름뱅이이지만 저 나름대로는 하느라 하는 거예요. 킥킥...)
워낙 바쁘시게 사시는 분인 것, 방문자들도 잘 알 겁니다.
님도, 행복한 가을 보내세요. 바쁘신 일 끝내시고 빨리 원위치하시길... 그래야 순오기 님이죠. 파이팅!!!!!!!!! 또 봐용^^

글샘 2012-10-18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용한 구들장같은 서재가 되시길 빌면서...
pek 님이 읽으심 홀랑 빠질 책 하나 알려드릴까요?
일본에서 천 년 전에 헤이안 시대에 궁녀가 쓴 '마쿠라노소시'란 책 보셨나요?
한번 읽어 보시면... 왜 권했는지... 아실랑가? ㅋ

페크pek0501 2012-10-18 15:10   좋아요 0 | URL
글샘 님, 오랜만이군요.
오늘은 옛 친구들을 만나는 기분을 들게 합니다.
조용한 구들장같은 서재가 꼭 될꼬예요.(될 거예요.)
아마 제가 가장 오래 남는 블로거가 되지 않을까, 예측해 본다는...ㅋ

아, 그 책, 180쪽밖에 안 돼서 좋습니다. 누가 추천하시는데, 안 읽겠습니까.
요즘 읽는 책들이 거의 300쪽이 되어서 그 정도의 쪽수라면 앉아서 떡먹기입니다.(누워서 떡먹기는 어려워요.ㅋㅋ)
꼭 구입해서 읽고 그 감상을 님의 서재에 댓글로 남기겠습니다. 그런데 이 게으름뱅이가 언제 읽으려나요. 으음~~~ 책이 밀려 있어서 말이죠. 그래도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읽고 그 흔적을 남기겠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해도 달력 몇 장 안 남았네요. 슬프다..... 떠나는 모든 것들은 슬픔을 잉태하는 것 같아요. 또 봐용^^

글샘 님 - "왜 권했는지... 아실랑가? ㅋ"(끝에 높여서 읽기)
페크 님 - "왜 권했는지... 아실랑다.ㅋ"(끝에 낮추어서 읽기)
 

 

 

 

1.

대학생 시절에 어느 여자고등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간 적이 있다. 한 달간 2학년을 맡아 가르치게 되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능숙한 선생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교단에 서면 긴장이 되어 표정이 굳어지곤 하였다.

 

 

2주일쯤 지난 뒤, 담임선생님이 학생들한테 교생인 나에게 편지를 쓰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대부분의 교생들이 아이들에게 인기를 얻기 마련이어서 나도 내 인기를 확인하게 될 그 편지들을 은근히 기대하였다. 그러나 편지를 하나씩 뜯어보던 날, 나는 깜짝 놀라며 실망하였다. 숙제로 제출한 그것들은 나의 바람과는 아주 딴판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내 인상이 차갑다, 냉정해 보인다, 깍쟁이 같다 등의 글을 적었던 것이다. 교사답게 보이는 데에만 치중하다보니 내 얼굴과 말투가 그들에겐 그렇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런 평가에 어찌나 실망이 되던지 그날 하루 종일 우울하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질문을 하기 위해 손을 들었는데 이때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내가 그 학생에게 다른 학생의 이름으로 불렀던 것이다. 그것도 그 학생을 잘 안다는 듯한 말투로 말이다. 그 바람에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이에 당황한 나는 말을 더듬었고 얼굴까지 빨개졌다. 능숙한 선생님으로 보이고 싶었는데 한순간에 바보 같은 선생님이 되어 버린 것이다. 같은 또래의 학생들은 정말 비슷비슷해 보였다. 당혹해 하는 내 모습이 안됐던지 학생들은 하나 둘씩 위로를 해 왔다.

 

 

그날 이후로 나의 인기는 조금씩 올라갔다. 내 실수로 인해서 오히려 학생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기가 오르자 자신감이 생겨 덜 긴장해서 재밌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해 줄 수 있었다. 유머와 관련한 이야기와 내 연애 이야기도 해 줬는데, 그들은 무척 재밌어 했다. 이야기를 더 해 달라고 조르기도 하였다.

 

 

교생실습이 끝날 때쯤, 나와의 작별이 아쉬워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도 있을 정도로 나는 인기 있는 교생이 되어 있었다. 나의 인기를 증명하는 건 바로 그들이 내게 준 ‘선물’이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사진과 내게 쓴 편지를 한 권의 앨범에 담아서 내게 주었던 것. 그 선물에 나는 감동하고 말았다. 어느 교생도 그렇게 정성스럽게 만든 선물을 받지 못했다. 교생들은 그런 나를 부러워했다.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그 앨범엔 그 당시 60명쯤 되는 학생들의 사진과 편지가 들어 있다.

 

 

학생들과 친해지기 시작한 건 학생의 이름을 잘못 부른 나의 실수로 인해서다. ‘실수’라는 건 나쁜 것으로 여겨지지만 때론 이 나쁜 것이 이로운 일을 만들기도 한다. 나쁜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이다.

 

 

이 밖에도 내가 살면서 ‘나쁜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라는 걸 깨닫게 하는 일이 참 많다. 또 하나 예를 들면 둘째 아이를 낳던 날, 첫 딸에 이어 두 번째도 딸이어서 그땐 무척 섭섭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남매인 것보다 자매로 자식을 둔 게 더 좋다는 생각이다. 그때와 달리 시대가 변해 딸을 선호하는 세상이 된 것도 그 이유이지만, 무엇보다도 자매는 자랄 때도 그렇지만 결혼을 하고 난 뒤에도 친구처럼 지내는 것을 주위에서 봐 왔기 때문이다. (반면에 남매는 결혼을 하고 나면 친하게 지내며 살기 어려운 것 같다.) 그리고 아들보단 딸이 더 부모를 챙긴다는 점에서도 딸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딸을 낳아 실망한) 나쁜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2.

내가 책을 읽는 즐거움엔 두 가지의 종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의 글을 읽고 공감하는 즐거움, 그리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의 글을 읽고 새로운 걸 배우는 즐거움. 여기선 전자의 즐거움에 속하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내가 깨달은 것과 똑같이 깨달은 이를 책에서 만났다. 바로 위화 저,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라는 책이다.

 

 

먼저 이 책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야겠다. 이 책은 인민, 영수, 독서, 글쓰기, 루쉰, 차이, 혁명, 풀뿌리, 산채, 홀유 등 열 개의 단어를 중심으로 한, 열 편의 에세이로 중국의 40년 동안의 모습을 보여 준다. 저자는 1960년에 출생, 문화대혁명 시기에 성장기를 보냈다. 그는 “이 책에서 나는 중국의 고통을 쓰는 동시에 나 자신의 고통을 함께 썼다.”라고 했듯이, 독자로 하여금 그의 일상 속의 일화를 들여다보게도 하고 중국의 역사를 들여다보게도 한다.

 

 

독자마다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이 다 다를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 첫 번째 이야기

저자(위화)가 중학생이던 시절엔 책이 귀했다. 그래서 책을 돌려 가며 읽었다. 모든 책들이 수천 개의 손을 거쳐서인지 심하게 낡은 상태의 책을 볼 수밖에 없었는데, 어떤 책은 앞부분의 10여 쪽 정도가 찢겨 나간 책도 있었다. 그는 책 제목도 몰랐고 작가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한 채로 책을 읽었고, 또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끝나는지도 모른 채 책을 읽었다.

 

 

..............................

결말이 없는 이야기들은 나를 훈련시켰다.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못했다. 마침내 나는 스스로 이야기의 결말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 이야기의 결말을 지어내고 이렇게 내가 지어낸 이야기에 감동하여 뜨거운 눈물을 흘리곤 했다.

 

..............................위화 저,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81쪽~82쪽.

 

 

 

그 시대엔 파손된 책으로 독서를 해야 했기 때문에 저자로 하여금 상상력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는 것. 파손된 소설들이 처음으로 저자의 창작 열정에 불을 붙여서 여러 해가 지나 마침내 작가가 될 수 있게 도와주었으므로 결국 나쁜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 두 번째 이야기

저자의 아버지는 외과의사인 동시에 공산당의 말단 간부이기도 했다. 문화대혁명 초기에 저자는 간부였던 친구 아버지들이 타도 대상이 되는 것을 직접 목격했기에 아버지에게도 그런 액운이 닥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저자의 아버지는 지주 집안의 이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일정한 직업 없이 빈둥거리던 건달이라서 그저 먹고 마시며 노는 것밖에 몰랐으므로 집안은 점점 기울어갔다.

 

 

..............................

이렇게 기울어가던 집안은 1949년에 이르자 2~3백 무 정도 남아 있던 땅마저 전부 팔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렇게 자신의 지주 신분마저 팔아버린 셈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중국 전체가 해방되었을 때 할아버지는 총살의 운명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도 전화위복으로 지주의 아들이라는 오명을 벗어버릴 수 있었다. 물론 나와 우리 형도 할아버지의 건달 생활에 따른 격세의 수혜자가 되었다.

 

..............................위화 저,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116쪽.

 

 

 

할아버지가 건달이어서 집안이 기울어갔던 것은 그 당시엔 분명 나쁜 일이지만, 그 때문에 훗날 목숨을 구할 수 있었으니 나쁜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 세 번째 이야기

저자는 스물두 살 무렵, 한편으로는 치과의사로서 사람들의 이를 뽑으면서 한편으로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글쓰기는 나중에 더 이상 이를 뽑지 않기 위해서 한 것이었다. 직업을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

여러 해가 지나 중국의 비평가들은 나의 언어 서술이 매우 간결하다고 칭찬하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농담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건 내가 아는 한자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나의 작품이 영어로 번역, 출판되자 미국의 한 문학 교수는 영어로 번역된 나의 언어가 마치 헤밍웨이의 언어 같다고 말했다. 나는 내 농담을 미국으로 수출하여 이 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헤밍웨이도 아는 영어 단어가 그리 많지 않았나보군요.”

농담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일리 있는 말이었다. 인생은 종종 이렇다. 때로는 단점에서 출발한 것이 갈수록 장점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장점에서 출발한 것이 갈수록 단점이 되기도 한다. 마오쩌둥의 말을 빌리자면 “좋은 일이 변해 나쁜 일이 되고, 나쁜 일이 변해 좋은 일이 된다”라고 할 수 있다. 방금 한 농담을 계속하자면 나와 헤밍웨이는 마오쩌둥이 말한 것 중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변한 경우에 속할 것이다.

 

..............................위화 저,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136쪽~137쪽.

 

 

 

 

**** 문학의 힘이란 이런 것

위의 세 가지 이야기는 교생실습 때의 나의 경험과 마찬가지로 ‘나쁜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게 한다. 나와 저자는 ‘다른 시대, 다른 나라, 다른 민족, 다른 언어, 다른 문화’임에도 똑같은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바로 이것이 문학의 힘이다.

 

 

..............................

어떤 독자로 하여금 다른 시대, 다른 나라, 다른 민족, 다른 언어, 다른 문화에 속한 작가의 작품 속에서 자신의 느낌을 읽을 수 있게 하는 힘 말이다. (…)

 

나는 나 자신에게 말했다.

 

“이것이 바로 문학이다.”

 

..............................위화 저,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109쪽.

 

 

 

 

3.

프로 야구를 좋아해서 야구장에 자주 가던 때가 있었다. 특히 9회 말에서 점수의 반전이 일어나서, 내가 응원하던 팀이 역전의 승리를 거둘 때의 그 짜릿한 통쾌함 때문에 ‘야구는 9회 말부터’ 라는 말을 좋아했다.

 

 

인생이란 스포츠와 같다,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스포츠가 어느 팀이 이길지를 예측할 수 있지만 점수의 반전이 일어나서 우리의 예측을 뒤엎기도 한다는 점에서 인생은 스포츠와 닮았다.

 

 

우리가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당장엔 알 수 없게 만드는 ‘삶의 반전’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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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2-10-09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생 시절과 여고 교실에서의 교생실습에 얽힌 추억담이 너무나 풋풋해서 좋네요. 그런데 저는 이 글을 읽는 내내 엉뚱하게도 '노년에 대하여' 글을 남긴 키케로가 자꾸만 떠올랐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년'을 두려워하거나 한탄하지만, 키케로는 '노년은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인물인데, 페크님의 이번 글과 나름대로 유사한 점도 있는 것 같아요.ㅎㅎ
* * *
노인의 경우에는 쾌락의 쑤석거림 같은 것은 그리 크지 않다는 말인가? 그렇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아예 바라지도 않는다네. 사람이 원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괴롭힐 수가 없지. 이미 노쇠기에 소포클레스는 아직도 성생활은 즐기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멋지게 대답했다네.
"이런 맙소사! 거칠고 포악한 주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것처럼, 거기서 빠져나오게 된 것을 기뻐하고 있는 중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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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말하자면 육욕과 야망, 투쟁, 적대감, 그리고 온갖 욕망에 대한 복무 기간이 끝나, 마음이 스스로 만족하는, 이른바 마음이 자기 자신과 함께 산다는 것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정말 연구와 학문이라는 양식이 얼마든지 있다면, 한가한 노년만큼 즐거운 것도 없다네.
- 키케로,『노년에 대하여』 中에서

페크pek0501 2012-10-10 14:10   좋아요 0 | URL
"정말 연구와 학문이라는 양식이 얼마든지 있다면, 한가한 노년만큼 즐거운 것도 없다네."
이 글에 공감합니다. 언젠가는 주름이 많이 생길 날이 올지라도
저는 책을 읽는 즐거움과 한가한 시간만 있다면 늙음을 서럽게 여기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중요한 건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와 함께 늙는 일인 것 같아요. 꼭 독서가 아니더라도요.

반가웠습니다.^^

프레이야 2012-10-09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그래그래 끄덕끄덕ᆢ이러며 읽었어요. 완전 공감ㅎㅎ 교생 때의 이야기는 참 훈훈하네요. 실수도 하고 잘못도 저지르면서 살아가는 게 사람이고 그것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는 거 같아요. 요즘 부쩍 드는 생각이, 세상에 나를 키우지 않은 건 없구나, 열화같았던 내 여름을 함께한 대상을 비롯해 내 지난 어리석음까지도 날 키우는 재료였구나 하는 거에요. 위화의 저 책도 담아갑니다.^^

페크pek0501 2012-10-10 14:14   좋아요 0 | URL
예, 프레이야 님, 이 책 좋아요. 저는 개인의 일상을 통해 보여 주는 한 나라의 역사 이야기가 재밌더라고요. 이 책이 중국에서는 출판 금지라고 합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의 소설은 출판이 되었으나 이 책은 비허구성의 책이기 때문이죠. 개인의 삶을 다루기 때문에 그 배경이 되는 역사가 더 애절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전화위복, 이란 말을 제가 좋아합니다. ㅋㅋ

다크아이즈 2012-10-09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이 책 샀는데, 정말 좋네요. 허삼관매혈기 안 읽었는데 위화의 이 <비허구성 글> 덕분에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세상엔 왜 이리 잘 쓰는 작가들이 많은 걸까요?

페크pek0501 2012-10-10 14:17   좋아요 0 | URL
아, 손님이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저도 위화의 책은 처음 읽은 거랍니다. 워낙 명성 있는 작가라서 궁금해서 구입하게 되었어요. 이미 일간지를 통해 이 책에 대한 소개를 읽어서 어떤 책인지 짐작할 수 있었어요. 저도 이 저자의 다른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잘 쓰는 작가, 정말 많아서 기죽으며 읽게 돼요. 그러나 즐거운 기죽음이에요.ㅋㅋ 책을 산 것을 후회하게 하지 않으니까요.
방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2-10-10 0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새벽, 제가 이 글에 얼마나 위안을 얻고 가는지 언니는 모르실거예요. ^^

페크pek0501 2012-10-10 14:18   좋아요 0 | URL
아, 달여우 님.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저도‘삶의 반전’에 위안을 받으며 사니까요.
삶이 수학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이라면 얼마나 숨막히겠습니까.
때로는 꼴찌가 일등이 되는 역전의 기회가 숨어 있는 삶을 사랑합니다.
앞으로 자주 보아요. 제가 응원하고 있는 것, 아시죠?

마립간 2012-10-10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잘 읽고 갑니다.^^

페크pek0501 2012-10-10 14:20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마립간 님. 어려운 발걸음을 하셨군요.
이젠 아주 자연스러운 발걸음으로 느껴지는데요.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12-10-10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11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2-10-10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님글을 읽으니 저도 고 1때 본 교생 선생님이 생각나네요^^

페크pek0501 2012-10-11 15:23   좋아요 0 | URL
저도 고등학교 때 교생 선생님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프로의식이 있는 선생님처럼 보여서 정말 선생님 같았거든요. 제가 그 선생님을 흉내 내고 싶어나 봐요.ㅋㅋ 말하자면 저의 롤모델이 되었던 거죠.
카스피 님, 오랜 만에 뵈니 반갑군요. 방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숲노래 2012-10-11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ek0501 님이 생각한 '능숙한 교사'란 바로 '긴장된 몸'으로 학생을 마주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런 모습이 되었으리라 느껴요. 스스로 내 모습을 바라고 그리는 대로 나타나니까요.

그런데, 아이들 앞에서 '능숙한 교사'가 될 까닭이란 없어요. 이제 잘 아실 텐데요, 아이들 앞에서 '능숙한 부모'가 될 까닭도 없어요. 그저 '사랑스러운 어버이'가 되면 즐겁고, 동무들 사이에서도 '서로 사랑스러운 동무'로 지낼 때가 가장 즐거워요. 교사 또한 '서로 사랑스럽게 마주하는 사람(어른)'이라면 가장 즐겁겠지요.

겉(지식)으로는 능숙한 교사(교생)로 아이들 앞에 서려 했지만, 마음속(생각)으로는 아이들하고 마주할 때에 사랑스러운 교사이기를 바랐으니, 나중에 '잘못' 이름 부르는 일을 빚었겠지요. pek0501 님 스스로 학생 때에 느낀 '내가 좋아하며 사랑할 만한 교사' 모습을 스스로 빚었으리라 생각해요.

페크pek0501 2012-10-11 15:27   좋아요 0 | URL
아, 된장 님이 좋은 말씀을 해 주셨어요.
그땐 제가 대학생인 때라 어려서? 그런 거예요.
고등학생들과 나이가 몇 살밖에 차이가 안 나기 때문에 선생님답게 보이는 걸 중요시했어요. 또 학교에서도 그렇게 교육시켰고요.
물론 지금은 안 그래요. 요즘도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다정하고 재밌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합니다. 논술 수업 시간이 참 재밌다, 라는 말을 듣는 게 제 목표랍니다. 사랑스러운 선생님이면 더 좋겠지요.
좋은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012-10-11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12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