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들어 너무 바빴다. 시간에 쫓겨 일을 하다가 허둥지둥 퇴근해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다 재워놓고 다시 일을 했다. 어떤 이들은 매일 하루 대여섯시간만 자고도 멀쩡하다는데, 나는 왜 이렇게 피곤한가... 내 체력은 왜 이모냥인가에 대해 늘 그랬던대로 또 한번씩 슬퍼하곤 했다. 주말에는 내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데도, 힘들어 잠시 누워 있던 내게 둘째는 "엄마가 안 놀아준다"며 울부짖었다(두 시간 동안 역할놀이를 한 후였다). 아이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양치, 목욕 등)을 시키다가 "엄마 미워!" 소리를 듣고 힘이 쭉 빠졌다. 또 그러고서는 둘째는 목욕한다고 발가벗고 와서 배를 두드리며 "엄마가 제일 좋아" 노래를 불렀다.  



일하는 엄마가 아이를 맡겨야 할 때, 아이를 돌봐줄 기관이나 사람을 알아보고 연락하고 면접하고 찾아가 살펴보는 일은 모두 엄마의 몫이다. 남편이 일을 하고 돈을 번다는 이유로 면제 받는 모든 가정의 일에서 여자는 늘 예외다. 여자가 일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육아도 살림도, 세상이 여성에게 일차 책임을 묻는 일들은 절박한 순간마다 언제나 친정 엄마를 비롯한 다른 여성들이 돕는다.

교수 같은 괜찮은 직업을 가진 중산층 여성들이 가사노동에 곤란을 토로하면, 여건이 나은 탁아시설을 이용한다는 이유로 혹은 시집살이라는 권력 관계에서 조금 유리하다는 이유로 상황이 더 나쁜 여성들을 거론하며 배부른 소리 한다는 식으로 힐난하는 지식인 남성을 숱하게 보았다. 어떤 경우에도 조금도 그 책임을 나눠 지지 않으면서 세상 중립적인 판관이라는 듯 그런 말을 한다(새삼 분노가 솟구친다!)  - 190, 191쪽 / 281쪽 (전자책 기준)



<나의 가련한 지배자>를 읽다보면, 저자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많은 차이들이 일순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일을 놓고 싶지 않고 경제적 자립을 원하는 여성이 양육의 책임을 지게 되면 얼마나 큰 어려움에 부딪히는지 절절하게 서술되어 있다. 저자는 어떻게든 일을 계속하고 싶었기에 엄마에게 아이들을 맡긴다. 그러나 애들은 저절로 크는 것이라는 옛날식 육아관을 가지고 있는 엄마는 아이들이 하교할 시간에도 집을 종종 비운다. 어느날  "할머니가 맨날 집에 없는데 똥이 마려워서 집 앞에다 똥을 쌌다"는 아이의 말을 듣는다면, 그 마음이 어떨까? 


일과 육아를 병행하다 보니 살림은 엉망이고 애들은 꼬질꼬질하다 -> 일을 해서 버는 수입과 아이들 돌보는 도우미 고용비용을, 일을 해서 내가 얻는 것과 일을 포기해서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을 저울질한다 -> 아이를 돌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 이런 일은 대체로 수입이 적고 경력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 다시 저울질한다 -> 일을 포기한다 


이런 과정에서 공동양육자인 아빠는 어디 있는가? 아내가 일과 가정 사이에서 분열되는 자아를 안고 찢어지는 마음으로 일과 아이를 저울질하고 있을 때, 남편은 왜 똑같이 저울질하지 않는가? 왜 저울질 해야 하는 사람은 거의 늘 여성인가? 간혹 생계의 주책임자가 여성이 되었을 때, 왜 그 끝은 비극으로 묘사되는가? 



 <엄마에 대하여> 중 차현지 작가의 '핑거 세이프티'는, 작가의 말을 보면 자전적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는 소설인 듯하다. 소설 속 아빠는 이것저것 사업을 시도하다가 실패하고, 사업수완이 좋은 엄마가 생계를 책임진다. 늘 바쁘고 피곤한 엄마는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들 먹을 음식을 해놓지만 정서적 돌봄은 미약하다. 아빠는 술을 마시고 잠적하기 일쑤다. '나'는 늘 엄마 편이었지만 엄마에게 그 마음은 잘 전달되지 않았고, 어느날 아빠가 할머니에게 "아들 낳아줄 여자 찾죠 뭐. 어차피 딸년들 뿐인데"라는 말을 하는 걸 들은 '나'는 그 말을 듣게한 엄마를 용서하지 못한다. "이 집에서 욕 들을 만한" 유일한 사람이었던 아빠를 집에서 쫓아내는 데 성공하지만, 그 후에는 "이 집에서 잘못한" 유일한 사람인 엄마에게 화살이 돌아간다. 성인이 되고서도 '나'의 안에는 "죽여도 죽여도 영원히 죽지 않는" 12살의 내가 있어 엄마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수가 없다. 







폭력을, 방치를, 억압을 행사한 아빠보다 그 상황에서 그 나름대로 아이를 키운 엄마는 오히려 더 큰 원망의 대상이 되기 쉽다. <나의 가련한 지배자>의 저자도 그런 아빠를 두었다.


아빠는 어떤 감정의 이입이나 교류 같은 게 불가능한 관념화된 악으로만 존재했기 때문에 내게 '아버지'는 이상적이든 그 반대로든 책이나 드라마, 영화 등에나 있었다. 아버지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역시 기본 모델이 있고 거기에서 좀 모자라다 싶은 것과 강렬한 바람 같은 것을이 엮여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나처럼 거의 투명한, 존재감 없는 아빠를 가진 사람에게는 매체 속 아버지 역시 막연하기는 매한가지였다. - <나의 가련한 지배자> 135쪽/281쪽


저자는 <엄마는 딸의 인생을 지배한다>라는 책에서 아래 구절을 인용한다(143쪽, 144쪽/281쪽). 


 어떤 경우든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범인으로 몰기가 훨씬 쉽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전문가에게 단죄받기도 전에 이미 스스로 머리를 떨구고 목을 내밀고 있거든요. 그녀는 우리의 비난에 반박 한마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자진해서 스스로의 죄를 열거하겠지요. 이 정도로 안성맞춤인 범인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  182쪽 인용










저자가 이 부분에서 언급하는 <케빈에 대하여>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둘다 '괴물' 아이를 둔 엄마의 고백록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내가 함께 읽은 책, 도리스레싱의 <다섯째 아이>를 추가하고 싶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실제 총기난사사건 가해자의 엄마가 쓴 논픽션이다. 이 논픽션을 소설화 한 것처럼 보이는 <케빈에 대하여>를 재미있게 읽은 나지만, <나는 가해자의~>는 힘들어서 중간에 포기하고 가지고만 있다. <케빈>과 <다섯째아이>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좋지 않은 의미로 남달랐던 반면, <나는 가해자의~> 속 현실의 아이는 저자 수 클리볼드에게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클리볼드의 "내가 내 아이를 이렇게 몰랐다니"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의문과 회한은 끝없이 괴롭고 정답을 알 수 없는, 시지프스의 돌이 된다. 


















이때 아빠들은 순진하고 무책임한 '가장'으로서 한발짝 뒤로 물러나 있을 수 있다. 직접적으로 아이를 학대한 증거가 없는 이상 아이에게 생긴 문제는 엄마의 책임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아빠들은 더 순수하게 슬퍼하고 괴로워할 수 있다. 아이에게 그만큼 영향을 미칠만한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어제 읽은 <긴긴밤>은 양육과 성장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가족을 잃고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흰바위코뿔소 '노든'은 전쟁을 기화로 동물원에서 탈출한다. 우연히 동행하게 된 펭귄 '치쿠'는 같은 수컷인 '윔보'와 파트너가 되어 누구 알인지 모를 펭귄알을 소중히 지켜 왔었는데, 윔보가 죽어 혼자 알을 가지고 나온 것이다. 가족을 죽인 인간들에게 복수하려던 노든은 차마 치쿠와 알을 내버려둘 수 없어 함께 바다를 찾아 떠돈다. 치쿠가 죽고 알에서 태어난 '나'에게, 노든은 아빠이고, 가족이고, 모든 것이 된다. 하지만 코뿔소와 펭귄에게는 공유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결국 '나'는 노든과 헤어져 자기의 삶을 찾아간다. 

이 아빠들은 양육에 대한 모든 책임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먹을 것, 따뜻한 잠자리, 정서적 보살핌까지. 





나는 이 이야기를 아이를 대하는 양육자의 자세에 대한 우화로 읽었다. 

우리의 아이를 '정체를 알 수 없는' 하나의 알로 여긴다면, 우리는 아이와 좀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나의 자유가 초원에 있듯이, 너의 자유는 바다에 있음을 인정한다면. 나는 코뿔소로서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었지만 그게 펭귄인 너에게는 전부가 될 수 없음을 인정한다면.

  

엄마는 나에게 "자식 겉 낳지, 속 낳는 것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 말처럼 모든 엄마는 자신이 낳아 자기 방식으로 키운 자식을 완전히 낯선 타인으로 만나는 순간을 맞닥뜨린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 <나의 가련한 지배자> 144쪽/ 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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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1-17 15:08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오전에 제가 페이퍼에도 언급했던 며칠전의 여자친구 살해한 남자의 기사에서, 딸 집에 왔다가 딸이 죽는 현장에 같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엄마 생각이 너무 나네요. 독서괭님도 댓글에서 언급하셨었지만, 저는 그 기사를 읽고 그 엄마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남자친구 문 열어주지 못하게 할 걸, 들어오지 못하게 할 걸, 둘만 들어가지 말게할 걸 등등. 그 엄마는 얼마나 많은 자책들로 고통스러워할까요. 분명 여자를 찾아온 것도, 무기를 가져온 것도, 결국 죽인 것도 전남친이지만, 전남친은 이 일에서 얼마만큼의 괴로움을 가져갈까 생각해보면 너무 화가 나요.

오늘 페이퍼의 <엄마는 딸의 인생을 지배한다> 인용문이 정말 아프게 밟히네요, 독서괭 님. 자신의 죄가 아닌데도 머리를 떨구고 목을 내밀 엄마들 때문에 미치겠어요, 독서괭 님. ㅠㅠ

독서괭 2022-01-17 23:29   좋아요 3 | URL
맞아요 다락방님. 그 엄마 심정을 상상만 해도(감히 상상도 안 되지만) 너무 심장이 쪼이는 듯해요.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피플>에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그 엄마가 집에 버리지 않고 놓아뒀던 칼이 범행에 쓰여서 그걸 버렸어야 했는데, 버렸어야 했는데, 그러거든요 ㅠㅠ
자식의 나쁜 행동에 대한 책임의 화살은 엄마에게 돌아가고, 좋은 행동에 대한 칭찬은 ‘진짜 대단히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자식을 잘 키웠을 때‘ 정도나 돌아오는 것 같아요. ㅠㅠ

페넬로페 2022-01-17 17: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일과 육아를 병행하시니 피곤하신 건 너무 당연해요. 거기다 이렇게 독서와 글쓰기까지 열심히 하시는데~~
정말 끊임없이 이야기해도 여성에게 짊어진 이중, 삼중의 짐은 없어지지 않는것 같아 넘 아쉽고 저 또한 살면서 힘이 드는걸 느껴요 ㅠㅠ

독서괭 2022-01-17 23:31   좋아요 4 | URL
페넬로페님, 여성들은 처한 상황이 조금씩 달라도 모두 공감하는 삶의 지점들이 많은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여성들과의 대화와 연대가 저에게 많은 힘이 되는 걸 느낍니다. 페넬로페님도 힘내세요~~!!

청아 2022-01-17 17: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의 가련한 지배자>사두었는데 괭님 글 읽으니 빨리 읽고싶어지네요. 다른 책들도 쏙쏙 담아갑니다
‘나의 자유가 초원에 있듯이, 너의 자유는 바다에 있음을 인정한다면‘이대목 너무 감동적이예요 괭님ㅠㅠ👍아... 눈물납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독서괭 2022-01-17 23:35   좋아요 3 | URL
오, 미미님 사두셨군요! 이 책은 엄마와의 관계에서 힘들었던 딸들이나 지금 딸과의 관계를 고민하는 엄마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줄 것 같아요.
감동적이라고 해주시니 감동입니다 미미님 ㅠㅠ <긴긴밤>이 담고 있는 의미가 이뿐만은 아니지만, 제게는 나와 네가 이렇게 달라도 그 다름을 인정하면서 서로 사랑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가장 와닿더라구요!

기억의집 2022-01-17 17: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는 죽을때까지 짊어지는 무게겠지요 !! 오늘 아침에 같이 일했던 엄마가 전화와 자식 이야기 좀 나눴는데.. 그 엄마가 나이가 어려 애가 지금 12살인데 며칠 전에 말 안들어 옆에 있던 몽둥이로 애를 때렸다고 하더라고요. 평소에 말 들어보면 정말 말 안들어서.. 지금 미술 심리 치료 받거든요. 물론 상담자가 엄마가 문제가 있다고 해서 같이 심리 상담 받는데… 너무 부모자식간 엇갈리니깐.. 본인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푸념은 하는데..’자식 키우는 건 정답 없는 거 같어요 저의 언닌 자식에게 신경질내고 소리 지르고 떽떽 거렸음에도 자식들이 잘해요. 근데 저는 민주적으로 양육했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서로 얼굴 붉히는 일 많어요. 양육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나는 가해자 엄마, 가 본인 자식을 몰랐다고 하는데..전 그 말 백퍼 공감해요!!

독서괭 2022-01-17 23:40   좋아요 3 | URL
아이고 몽둥이로 애를 때렸다니ㅠㅠ 그지경까지 가도록 얼마나 서로 힘들었을지 안타깝네요. 미술심리치료 받으며 많이 좋아지면 좋겠습니다. 보통 아이들 문제행동은 양육자의 문제와 연계되어 있으니.. 요즘은 주변에 보면 어른들도 심리치료 많이 받고 부부상담이나 소아상담도 많이 받더라구요. 자기도 몰랐던 행동의 깊은 원인을 알게 된다고 하니, 저도 받아보고 싶습니다.
기억의집님과 언니의 결과적 차이를 보면 정말 모르는 일인 것 같네요. 그렇게 생각하면 양육의 부담이 좀 덜어지네요^^ 읽지 않았지만 <양육가설>인가 그 책도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고 들었는데.. 자식이 타인임을 인정하며 부담을 덜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2-01-17 17: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의 자유가 초원에 있듯이 너의 자유는 바다에 있음을 인정한다면... 타인으로 인정하는 자세, 아이들이 컸는데도 가끔 힘들어요

독서괭 2022-01-17 23:41   좋아요 3 | URL
그레이스님, 아이들이 커도 저절로 되지는 않는 거군요 ㅜㅜ 애들은 원래 내맘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을 명심하며 적절한 거리 유지를 하도록 노력해봐야겠습니다..

- 2022-01-17 18:4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각각의 책들이 모두 괭님의 어느 지점을 가리킨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공감보다는 추측할 수 밖에 없지만, 읽으면서 생겨나는 괭님만의 물음표들이 콕콕콕콕 찔려와도 잘 움켜쥐면 좋겠습니다.

독서괭 2022-01-17 23:42   좋아요 3 | URL
쟝쟝님, 이 책은 엄마와 딸에 대한 이야기인데, 저는 아무래도 애들 키우다보니 엄마로서의 입장에서 많이 생각했지만, 쟝쟝님은 딸로서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실 수 있을 거예요. 특히 엄마와 애증이 많은 장녀들에게는 더 많이 와닿을 것 같습니다!

책읽는나무 2022-01-17 20: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나는 일을 하지 않는 엄마이고, 애들이 다 컸는데도 피곤하단 말을 달고 사는 엄마다 보니....괭님께 참 면목이 없네요ㅜㅜ
전 늘 괭님을 대단하고 멋진 엄마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괭님은 초원도 바다도 다 아우를 수 있는 엄마이자 한 사람의 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괭님 화이팅!! 쫌만 더 힘내세요♡
그리고 책들 쫌 담아갈게요^^

독서괭 2022-01-17 23:45   좋아요 3 | URL
나무님, 일을 안 하시는 게 아니고 집에서 일을 하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애들 다 키우셨다고 체력이 다 회복될 리 없으니까요 ㅠㅠ 저는 사실 책 읽고 글 쓰는 시간 확보를 위해 요리도 청소도 열심히 안하고 대충 포기했답니다. 애들이랑 열심히 놀아주는 걸로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려고 했는데, 피곤하다 보면 그것도 잘 안 되더라구요..^^;
응원해주셔서 감사드려요~ 나무님도 화이팅~ 책 많이 담아가세요^^

mini74 2022-01-17 20: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아이 키우면서 학교체육시간 몽땅 합친것 보다 더 많이 뛰었던거 같아요 ㅠㅠ 전 그때 커피와 어른들의 대화가 참 그리웠던거 같아요. 남퍈 미워서 잘 때 침대에서 발로 밀어보기도 하고. ㅎ 괭님 가까운 곳에 사시면 잠시라도 아이 봐드리고 싶네요. 괭님 오늘만이라도 아이들 일찍 잠들어 괭님 자유시간 조금이라도 가지실수 있길 바라며 ~

독서괭 2022-01-17 23:48   좋아요 3 | URL
ㅎㅎㅎ 애들 따라댕기다 보면 체육시간 못지 않죠 ㅋㅋ 가끔 미끄럼틀도 타게 되고.. ㅡ.ㅡ;; 커피와 어른들과의 대화!! 정말 꼭 필요합니다. 전업맘이 가장 힘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혼자 독박육아 하는 게 젤 고달픈 이유이기도 하고요. 남편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는 걸 알면서도 가끔 미워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죠?^^ 아이 봐주시고 싶다는 말씀에 완전 감동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미니님!

건수하 2022-01-17 21: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는 제목의 의미를 모른 채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서점> 저자라는 것만 알고 시작을 했더랬죠.. 서문 읽으며 넘 아파서 그 뒤에 좀 더 읽다가 덮어뒀어요. 이걸 읽고 계신 독서괭님을 일단 안아드리고 싶어요. 토닥토닥… 읽기 힘드시더라도 치유의 시간이 되길..

독서괭 2022-01-17 23:53   좋아요 3 | URL
앗 그래요? 전 작가에 대해 모르고 시작했어요. 애들 데리고 외국생활을 했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는데 그게 시애틀인가 보군요. 그 책도 찾아봐야겠습니다.
저도 엄마에게 쌓인 감정이 꽤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해소되고 큰 문제는 없어서, 또 저희 딸은 아직 어려서, 읽으며 공감은 많이 했지만(하이라이트 많이 침) 읽기 힘들 정도는 아니었어요^^; 수하님은 서문에 마음이 많이 아프셨다니 저보다 깊이 이입하며 읽게 되실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건수하 2022-01-19 19:24   좋아요 1 | URL
그 책은 많이 재미있답니다. 책 좋아하시는 분들은 다들 좋아하실 책이에요 :)

저는 사실 엄마에게 쌓인 감정이 그리 많지는 않은데..
(저는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편이라 사실 자라면서 남자 형제와의 차별 등에 대해 이미 표현을 많이 했어요)
엄마는 저와 성격이 좀 달라서, 그래서 표현 못하고 혼자 더 힘들었던 건 아닐까...
저도 딸을 낳고 보니 여자들은 왜 그러고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아팠어요.

독서괭님 읽기 힘들지 않으셨다니 저도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댓글 달길 잘했네요. 감사해요 ^^

독서괭 2022-01-25 08:57   좋아요 0 | URL
수하님, 이책 뒤로 가니 많이 아픈 이야기도 나오네요😅 그런데 제가 댓글을 늦게 달아서 혹시 그사이 이미 읽으셨을 수도…!!!

단발머리 2022-01-18 09: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 페이퍼 읽다보니 예전에 읽었던 『숭배와 혐오』라는 책에서 재클린 로즈의 말이 기억나네요. ‘모성은 우리의 개인적, 정치적 결함, 다시 말해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잘못된 일에 대한 궁극적 책임을 떠맡은 희생양이다(6쪽)’.

모성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전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뱃속의 아이를 만나는 순간부터 그러지 않을까 싶어요. 다만 코뿔소와 펭귄이 다른 것처럼 나와 아이가 다르다는 걸 ‘알아채기만‘ 해도 전 훌륭한 부모라고 생각합니다.
위의 댓글 보니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을 위해 요리 청소 대충하신다고 쓰셨던데... 아주 좋은 선택입니다. 아이들 어릴 때는 치워도 어차피 표시도 안 나구요.

독서괭님의 고단하고 바쁜 시간 시간 사이에 알라딘이 있어서 독서괭님의 좋은 글을 읽을 수 있네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날 되시길요!!!

독서괭 2022-01-18 13:58   좋아요 1 | URL
네 일단 <숭배와 혐오> 담으러 가고요.. 댕겨왔습니다 ㅋ
모성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하고 딱히 바람직한 일도 아닐 것 같습니다. 모성이라는 틀이 너무 정해져 있는 게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나의 가련한 지배자> 오늘 읽은 부분에서도 그런 내용이 나오더라구요. 결국 딸들이 커서 엄마가 되는데 그들 각자가 가지고 있던 욕망과 개성이 사라질리 없건만, 엄마라는 존재는 어디서 솟아나온 듯이 상상된다고요.
살림 대충하는 것에 좋은 선택이라고 해주시니 기쁩니다 ㅎㅎㅎㅎ 알라딘서재가 제게 많은 충족감을 줍니다. 주어진 시간에 책읽기/글쓰기/서친서재탐방을 모두 하기 빠듯해서 늘 선택의 기로에 서는데, 세가지가 서로 자극이 되는 선순환 같아서 적절히 배분해보려 애쓰고 있어요.
단발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전자책 기준 168,169/281

정상가족의 틀 속으로 들어간나는 그것이 격정적인 사랑의 결과물이 아님을잘 안다. 다만 그 안에 들어감으로써 이 사회에안전하게 받아들여졌다. 내 손의 결혼반지는 어떤 측면에서 나를 보호해주었다. 남자들의 일상적인 집적거림이나 나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괜한 긴장 같은 것들로부터.
가정 안에 얼마나 많은 모순과 격파해야 할 부조리들이 있는지 나도 느낀다. 하지만 어떤 측면에서 보자면 나는 그 모순과 부조리 들을 대충 모른 체하는 가부장제의 수호자였다. 그렇다고 그걸 느끼지 못할 수는 없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몸과 마음을 다해야 했기 때문에 종종그다지 크지도 않은 내 야심과 양립할 수 없었다. 대가가 없으면서도 그렇다고 사소하지도 않은 가사노동 때문에 집에 있는 동안 나는 무력해졌다. 친인척들의 관혼상제를 챙겨야 하는 끝없는 감정 노동과 불균형한 권력 관계에서 오는시댁과의 미세한 마찰은 간혹 상처가 되곤 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말로 하려면 명확한 언 - P168

어를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런 말들은 감정적이고 모호하고 사소한, 전형적인 여성의 언어로 폄하되곤 했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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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싱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9
넬라 라슨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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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을 품에 안고라도 목적을 향해 뛰어드는 클레어 vs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아이린. ‘패싱‘ 중인 클레어가 자꾸 흑인 사회에 돌아오려 하여 점점 긴장이 고조되다가, 펑! 그런데 과연, ‘패싱‘은 클레어만 하고 있는 걸까? 누구나 조금씩은 ‘패싱‘을 하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 짧지만 강렬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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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1-11 22: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갑자기 패싱에 관심이 생기네요~!! 독서괭님 다음 도서로 <휴먼 스테인>도 추천드려요~! 요책도 패싱이 소재로 나옵니다 ㅋ

독서괭 2022-01-12 15:08   좋아요 4 | URL
오 안 그래도 휴먼스테인이 패싱 뒷날개에 딱 광고되어 있더라구요 ㅎㅎ 두권짜리네요.. 올해 구매 확 줄이기로 결심해서🙄 하지만 꼭 읽어보겠습니다 ㅎ

청아 2022-01-11 23:2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여러모로 의미있는 읽기가 될것 같아요 저도 이제 찜!!^^*

독서괭 2022-01-12 15:08   좋아요 3 | URL
미미님 찜! 영화도 좋다고 하니 함께 즐겨보세요~^^

그레이스 2022-01-11 23:3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짧지만 강렬한 ...적용까지 하는 100자평!
👍 👍 👍

독서괭 2022-01-12 15:09   좋아요 4 | URL
짧지만 강렬한… 과찬을 담은 댓글!
👍👍👍 ㅎㅎ 감사합니다^^

mini74 2022-01-11 23:3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패싱이 많지 않을까 싶어요. 누구나 조금씩은 패싱을 하며 살아간는건 아닐까 하는 독서괭님 말씀에 공감이 갑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

독서괭 2022-01-12 15:09   좋아요 4 | URL
아이린의 삶을 보면 절로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부부관계의 미묘함도 잘 담긴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이 2022-01-14 01: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아무래도 얼른 읽어야겠는걸요. 별 다섯개 주셨네요! 독서괭님

독서괭 2022-01-15 10:50   좋아요 0 | URL
구도가 단순하고 분량도 짧은데 묘사가 섬세하고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인 것 같아요~^^

scott 2022-01-15 01: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괭님 넷플! 영상 추천 합니다
패싱하지 말귀 ^ㅅ^

독서괭 2022-01-15 10:52   좋아요 1 | URL
스콧님, 제가 넷플을 안 봐서 ㅠㅠㅠ 애들땜에 btv 연결잭도 끊었다가 다시 연결하니 안 나오네요?!ㅋㅋ 어떻게 구해봐야겠습니다.
 

엄마는 결코 무능하지 않았다, 아니 무능할 수 없었다. 엄마의 세계를 가족 안에 지었을 뿐이다. 그 세계는 견고하지 않았고 자식들이나 남편의 상황, 세간의 평가에 따라 쉽게 흔들렸다. 엄마가 얼마나 훌륭한 엄마고 아내였던가를 시시때때로 증거해야 해서 우리는 고통스러웠다. 언젠가 엄마가 부족해도, 항상 옳지 않아도, 약점을 가진 채로도 훌륭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자식이나 남편, 혹은 주위의 누군가의 보증이 아니라 스스로 믿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전자책 기준 121/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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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1-11 20: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보자마자 검색했는데 중고 있어서 바로 질렀어요 괭님. 그러므로 지금 제게 오는 책 박스가 네 개.. 인가 다섯개.. 인가…

독서괭 2022-01-11 21:58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다락방님 올해 알라딘 0.1% 찍으시려고요?? 이 책, 저자의 개인사와 더불어 솔닛, 에이드리언리치, 르귄, 박완서, 나혜석 등을 인용해서 좋아요. 이 책 읽고 쓰실 다락방님 페이퍼가 기대됩니다^^

- 2022-01-15 13:28   좋아요 1 | URL
저도 제목부터 너무 찔려가지고... 그런데 왠지 읽으면 저는 전신에 힘 빠질 것 같아서 일단 보관함에만 넣어뒀지요! 다 읽고 리뷰 부탁드리옵니다!

독서괭 2022-01-16 09:22   좋아요 0 | URL
엄마와 애증이 깊은 장녀들에게는 더 깊이 다가올 것 같아요!
 

나는 워킹맘이다. 나는 진작부터 워킹맘이 되기로 결심했던가 보다. 직업은 가질 생각이었고, 아이도 둘 낳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희망을 모두 이루고 보니, 나는 워킹맘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워킹맘 이미지로 종종 언급되는 '슈퍼우먼'이 되었느냐 하면, 전혀 아니다. 나는 본질적으로 게으른 인간이고 여러 가지를 동시에 잘하기보다는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눈에는 내가 슈퍼우먼처럼 보일 수도 있다. 냉동실에 가득한 냉동음식들,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로 넘쳐나는 난잡한 방꼴, 늘 분주해서 늘 뭔가 빼먹고 스스로 머리를 쥐어박는 일상들을 못 보니까. 


워킹맘이라도 다 하나로 묶어서 보기는 어렵다. 어떤 사람은 온 가족(남편과 시가 식구들 포함)의 적극적 지원 아래 날개를 펴고 자기 일에 매진하고, 어떤 사람은 일을 최대한 줄이고 육아에 힘쓰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중간 어딘가에서 방황한다. 전자의 경우, 일단 그런 환경도 안 될 뿐 아니라 아이를 직접 양육하고 싶은 욕구와 필요를 내려놓기도 어렵다. 후자의 경우 일을 줄인다는 게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을 뿐더러 업무영역에서 성취하고 싶은 욕구와 필요를 내려놓기도 어렵다. 이건 양손에 떡을 쥐고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니다. 양손에 쥔 이것은 내 인생에 너무 중요하다. 다만 그 둘을 모두 잘 해내기에는 체력과 능력이 부족한 보통 사람이니까. 해결 방법은 두 가지이다. 둘 모두 '잘' 해내기를 포기하거나, 떡의 무게를 마땅히 나눠야 할 사람(남편)에게 나눠 주거나. 후자의 경우 남편이 없는 사람은 어려울 것이고, 남편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사람들도 있다... 인생 선배들은 "내려놓으면 편해져"라고 조언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일에 집중해야 할 시간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나 학교, 학원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야 하고(요즘은 갑자기 하원/하교하라는 연락이 오면 허둥거리며 사람을 찾거나 조퇴해야 한다), 일과시간 내에 처리해야 하는 각종 잡일과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건들도 사야 한다. 집에 가면 아이들과 놀아주어야 하지만 너무 피곤하다. 업무에서는 비양육자 동료들에게 밀리는 것 같고 양육/교육에서는 전업맘들에게 밀리는 것 같다. 그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 조그만 실수에도 밀려오는 죄책감. 그게 나를 가장 힘들게 한다. 


나는 전업맘에 대한 후려치기에 대해서도 분개하는데, 그게 잘하려고 들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직업이 있었으나 내가 초등학교 무렵에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그렇지만 일하는 아빠보다 엄마가 늘 더 바빠 보였다. 아빠에게는 주말도 휴가도 있었지만 엄마에겐 없었다. 아빠는 열심히 밖에서 일하고 오면 따뜻한 밥상을 받을 수 있었지만 엄마는 청소, 빨래, 아이들케어, 재정관리 등 모든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단 한 번 다른 이에게 밥상을 받아보지 못했다. 

그런데 전업맘들에 쏟아지는 시선은 어떠한가? 



<호러북클럽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방식> 중 



"아니, 정말로 잘하는 게 뭐냐고? 어떻게 잘하는 게 그렇게 하나도 없어?"
"뭐라고?"
"맨날 집구석에나 박혀 있고, 옛날 여자처럼."
"없어? 내가 잘하는 게 없어?"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모를 일이다. 험하게 돌아누우며 자도 먼지 안 나는 침구가, 곰팡이 없이 깨끗한 욕실 타일이, 주름 잡혀 걸려 있는 양복바지가, 오래되었지만 가죽이 은은하게 빛나는 소파가 자동으로 그렇게 유지된다고 인철이 당연히 여기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만큼은 오래 해왔다. 인정해 주리라는 기대 같은 건 없었다.

그런데도 그날 밤 그 순간, 운영은 화가 났다. 몰라? 정말 몰라? 이렇게 잘하는데, 어떻게 몰라? - <피프티 피플> P198, 199





엄마들이 평일에 카페에 모여 브런치를 먹으며 수다 떠는 모습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거기에 대고 어떤 이들은 팔자가 좋다고 한다. 남편 돈으로 먹고 논다고. 왜 남자들이 밤에 회식을 하며 술을 마시고 심지어 룸살롱에 가는 것은 사회생활, 경제생활이고 여자들이 모여서 식사하고 정보를 나누는 건 노는 일인가? 엄마들 사이에 정보력과 인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나 하나. 그저 그런 필요가 아니라도, 아이들 외에 대화 대상이 없을 때 공통 화제가 있는 어른과의 대화는 숨통을 틔워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저렇게 엄마들 역할을 비하하면서, 또 애들 교육에 실패하면 그 책임은 엄마에게 미루는 것. 

전업맘에게는 집안을 벗어난 시간과 공간이 꼭 필요하다. 일터에서 쉴 수 있는가? 집에 있으면 해야 할 일이 계속 눈에 띄는 것이 집안일이라는 건데. 그래서 오소희 작가는 무조건 눈썹을 그리고 일단 나가라고 한 것이다.. (엄마의 20년) 사실 나는 주말이나 휴일이 너무 힘들어서, 출근할 때 기쁘다... 애들이 예쁜 건 예쁜 거고, 힘든 건 힘든 거다. 집에 있는 시간 비례해서 손도 튼다 ㅜㅜ 



최근 엄마의 경제적/정신적 독립과 건강이 얼마나 아이에게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작품을 연달아 읽었다.


 <의지와 증거> 이 책에 나오는 엄마는 최악이다. 가진 것은 미모 뿐이어서 모든 것을 남편에게 의존하기만 한 엄마는 아빠의 부속물일 뿐 아이들에게 마땅한 보호를 제공해주지 못한다. 화자 베르기요트는 그래서 아빠보다 엄마를 더 증오하는 것 같다. 엄마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나름대로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한 것일 뿐이라고 우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베르기요트가 입은 피해를, 아빠를 떠나기 위한 구실로 이용하려 했다. 떠나지 못하자, 겉보기에 화목한 가정을 꾸미며 베르기요트의 정신을 계속 파괴해 나간다. 








마침 이걸 설명하는 내용이 <여성과 광기>에 나왔다.


정신과의사 주디스 루이스 허먼(Judith Lewis Herman)과 고인이 된 그녀의 어머니 헬렌 블록 루이스(Helen Block Lewis)에 따르면 근친상간이 일어난 가정에서 딸들은 어머니에게 "깊은 배신감"을 느낀다. "힘센 남성을 달래기 위한 희생자로 바쳐졌다"고 생각하고, "어머니를 경멸한다"고 느낀다. 그들은 또한 다른 여성으로부터는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다고 배운다. 경우에 따라 그러한 폭력에 강력히 맞서거나 복수를 하는데 대상은 주로 자신들의 어머니이다. - <여성과 광기> P36








 김초엽은 「관내 분실」에서 '고유성을 상실한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다룬다. 

 지민은 사망 직전에 사람의 뇌를 스캔해서 '마인드'라는 이름으로 보관하는 일종의 '도서관'에 찾아간다. 그러나 지민의 어머니의 마인드가 '관내 분실' 되어 찾을 수가 없다는 설명을 듣는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오래전 집을 떠나 부모와 연락을 끊었던 지민은 엄마의 마인드를 찾기 위해 엄마 마음속에 특별하게 남을 만한 추억의 물건을 찾으려 한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극심한 우울증을 겪으며 늘 멍하니 창밖을 보거나 지민에게 집착하며 소리지르던 엄마 말고, 엄마의 인생에 뭐가 있었을까? 엄마가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사람이었을까? 


엄마는 세계에서 분리되어 있었다. 인덱스가 지워지기 전에도.  - p267/367(전자책)






 페터 한트케의 <왼손잡이 여인>의 주인공도 비슷하다. '왼손잡이'로 표상되는 고유성은,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면서 사라져 버렸다. 주인공은 고유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그게 어찌나 힘든지. 헤어지자며 집에서 내보낸 남편은 한때의 장난으로 치부하려다가 별거가 길어지자 폭력을 행사하려 하고, 번역일을 맡기 위해 연락한 출판사 사장은 일감을 핑계로 추근대고, 아들과 친구들은 일하는 엄마를 방해하기 바쁘다. 엄마가 아들에게 소리 지르고, 아들도 엄마에게 "나도 슬프다고요!"하고 소리 지르는 장면은 정말 마음이 아팠다. 

 이 책에는 '왼손잡이 여인' 외에도 '소망 없는 불행'이 실려있는데,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로 보이는 이 단편을 보면 주부로 살면서 자신을 잃어가는 여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알 수 있다. 인용하고 싶은데 책이 지금 없다.... 나중에 추가해야지.







고유성. 남편 말고, 아이들 말고, 누구 부인 말고, 누구 엄마 말고. 나 자체를 특정하는 인덱스. 그게 분실되지 않았는지, 잘 살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워킹맘과 전업맘이 서로를 존중하고 연대한다면, 고유성을 확보하고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는 데 상호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원래 주부 후려치기에 대해서만 쓰려고 했는데 내 얘기가 너무 많이 들어갔다(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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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1-12-29 23:45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괭님. 이 페이퍼 소장각입니다. 공감백의백배!!! 저는 프리로 일하다 둘째 1학년때부터 전업주부 됐어요. 근데 말씀하신 것처럼, 주부가 하는 일이 느~~~무 많더라구요. 저는 남편이 하는 말 중 제일 싫은 게, 집에서 머하는 거야!! 라는 거였어요. 주부는 퇴근이 없다, 주말이 없다는 사실이 젤 억울했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남편에게도 밤 10시 이후에는 나를 건드리지 말라고 선언했다는.^^
고유성. 나의 인덱스를 돌려봐야겠어요. 저는 워킹맘들 존경합니다. 괭님은 뭣보다 건강을 챙기십시오. 개인사를 곁들여 주셔 이 페이퍼가 쑤욱 가슴을 후볐답니당. 넘 좋아요^^

독서괭 2021-12-31 21:26   좋아요 2 | URL
행복님 양쪽을 모두 경험하셨군요! 남편 분 그런 망언을 하셨단 말입니까… 그럴 땐 한번씩 주말에 애들 남편에게 맡기고 나갔다 온 다음 같은 말을 돌려줘야 깨달으려나요? ㅠㅜ 주부는 진짜 퇴근이 없죠.. 저는 퇴근하면 다시 출근하는 마음으로 집에 ㅠㅠ 애들 자고 나면 퇴근입니다. 그래서 점점 애들을 빨리 재우려고 하고 있어요 ㅋㅋ
저도 전업맘들 존경합니다. 그거 진짜 어려운 거고 남들이 몰라주는 속상함도 많잖아요.
페이퍼 좋다고 폭풍 칭찬해 주시니 넘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건수하 2021-12-30 00:05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 폭풍공감합니다. 저도 일하는 엄마인데 여기서도 저기서도 다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는 게 가장 괴로워요.

작년에 1년 휴직하며 전업주부로 있어보았는데 어찌나 힘들던지요. 삼시세끼만 해도 힘들었구요. 24시간이 있다고 24시간 내내 똑같은 강도로 일할 수 있는게 아닌데 전업주부는 그걸 요구받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자기 전까지는 퇴근할 수가 없으니.. (일하는 엄마도 집으로 다시 출근하는 기분이지만…?)

저는 제 그릇이 안된다 생각해서 하나만 낳았어요. 아이가 크면 그래도 좀 나아지더라구요. 최소한 육체적인 피로는 좀 줄어든달까… 독서괭님도 몇 년 뒤엔 더 수월해지실거예요…

나의 고유성. 일하는 엄마는 그걸 찾기는 조금 수월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제가 책에 매달리는 것 같기도 해요. 책 읽는다고 뭐 나오는 것도 아닌데.

독서괭 2021-12-31 21:32   좋아요 4 | URL
네 둘다 제대로 못 한다는 생각이 들면 그게 참 마음이 안 좋더라구요. 뭐라도 빵꾸가 나면 자책하게 되고.. 남편들은 보면 대체로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억울할 때도 있어요.
저도 출산휴가에 붙여서 육아휴직 해봤는데 넘 힘들었어요. 밥 해 먹이는 게 젤 일이고, 매일 비슷비슷한 일상… 복직 첫날 애들데리고 못 먹는 뜨겁고 매운 거 먹으며 행복했던 기억이^^
애 둘은 주변 지원이 있지 않으면 힘들어요. 둘째가 있으니 좋긴 해도 저도 권하지는 못하겠더라구요. 밤중수유를 또 해야 하잖아요..😨
저도 고유성, 그 때문에 더 책과 서재에 매달린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구요. 오롯이 내 시간이니까? 내년에도 열심히 고유성을 찾아보자구요😉

scott 2021-12-29 23:5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희 어머니도 자식들 졸업 후 만세를 부르셨습니다.
결혼으로 좋은 커리어 포기 하시면서
아이들 키우면서 틈틈히 했던 공부 뒤늦게 이어가시는 모습에,,,[엄마가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사람이었을까?.]
여전히 주무시기 전에 아이 패드 켜놓고 열쉼히!

책읽기님 말씀처럼 괭님 건강을 챙겨야 하는데 ,,,
오히려 출근 시간에서 집안일에서 해방이 되니 ㅠ.ㅠ

누군가 괭님에게 딱 보름의 휴식을 줬으면! ^^

독서괭 2021-12-31 21:55   좋아요 4 | URL
와 지금도 공부를 놓지 않으셨군요. 멋진 어머니십니다! 그런 모습이 지금의 스콧님을 만든 걸까요?
전 정말 둘째 낳고 나서 체력이 바닥을 치고.. 이러다가는 안 될 것 같아서 아침 달리기를 시작했고 최근 영양제도 챙겨 먹고.. 또 무엇보다 애들이 이제 밤에 안 깨고 쭉 자니까 좀 살 만 합니다^^; 하지만 주말이 없다는 건 슬퍼요.. 주말 늦잠 따윈 모르는 아이들..ㅠㅠ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콧님~ 애들 좀 더 키우면 온전한 휴식을 즐길 수 있겠죠^^

새파랑 2021-12-30 00:1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 엄청 바쁘시고 정신없는데도 독서까지 열심히 하시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Respect~!! 화이팅 응원합니다~!!

독서괭 2021-12-31 21:56   좋아요 3 | URL
사실 엄청 바빠서 독서를 더 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었음 퇴근 후 오히려 늘어져서 발가락으로 리모콘 누르고 있었을지도?? 응원 감사합니다 새파랑님^^

책읽는나무 2021-12-30 00:31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늘 고단하실 괭님 보면 토닥토닥~해드리고 싶은데, 아~~이 글은 제가 토닥토닥!!! 위로 받네요^^
여자들은 엄마가 되는 순간!!
워킹맘이든, 전업주부맘이든...늘 죄책감에 시달리는 듯 합니다.어느 쪽에 서 있든 엄마로서 잘해내지 못하는 느낌이거든요.
그래도 스스로의 자존감을 지켜 나간다면, 나 잘하고 있다고 격려하며, 어질러진 집안 질끈 두 눈 감고 ‘엄마 퇴근 했어!!‘ 외치며 내 시간을 조금이나마 가진다면(이 말이 통하려면 아이가 조금 더 커야겠죠?ㅋㅋ)...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일 수 있어요.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인 듯 해요^^
저는 주변에 전업맘들이 살림을 어찌나 똑부러지게 잘하시는지....늘 자괴감이 들거든요.어휴~~ㅜㅜ
전 의외로 알라딘에서 위로 받습니다ㅋㅋㅋ 직접 저의 살림을 보시지 못하시니 알턱 없는 저에게 너무 잘한다고!!!!ㅋㅋㅋㅋ
그래서 자존감 무한업 된달까요??
암튼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우리 힘내자구요!!
‘슈퍼우먼‘ 그거 엄마면 모두의 가슴에 달아 주어야 할 이모티콘이라고 생각합니다^^
괭님은 특별히 두 개!!! 🦸‍♀️ 🦸‍♀️

책읽는나무 2021-12-30 00:32   좋아요 6 | URL
글 너무 맘에 들어요^^

독서괭 2021-12-31 22:01   좋아요 3 | URL
크.. 나무님 댓글이 또 저를 위로해 주시네요^^ 엄마가 되는 순간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말씀이 정말 맞는 것 같아요. 임신 사실을 안 때부터 내가 뭘 먹었는지부터 점검하고.. 애한테 뭔가 안 좋은 부분이 있는 것 같으면 내가 임신했을 때 막 먹어서 그런가! 모유수유를 덜해서 그런가! 이유식을 제대로 못 먹여서 그런가! 싶고, 성격이나 행동의 문제도 엄마에게 훈육의 책임이.. ㅠㅠ
전 주변에 일이랑 살림까지 똑부러지게 하는 워킹맘들이 꽤 있어서 나는 뭔가 싶을 때가 있어요 ㅠㅠ 하지만 뭐.. 사람은 타고난 능력치가 있는 걸로.. 그분들은 타고난 체력이 저의 두배인 걸로 생각하기로^^;
엄마인 우리 모두는 슈퍼우먼!! 그 말씀 명언이네요! 두개나 달아주셔서 영광입니다 😳 글 맘에 들어해주시니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햇살과함께 2021-12-30 00:46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은 또 언제 쓰실까 그 바쁜 와중에도. 대단하세요~ 얘들 어릴 때 정말 직장인 월요병이 없었습니다 ㅋㅋ

독서괭 2021-12-31 22:07   좋아요 2 | URL
월요병 따윈 없죠 ㅋㅋㅋ 오히려 금요일에 하 벌써 금요일이라니.. 할 때도(얘들아 미안)ㅋㅋ
전 다른 취미생활이 없고 오로지 이거만 합니다 ㅎㅎ 햇살님 감사합니다^^

mini74 2021-12-30 01:02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넘 좋은데요. 워킹맘 전업맘 후려치고 이간질하는 글들 참 싫었거든요. 독서괭님 대단하세요. 책 읽는 나무님 댓글처럼 왜 죄책감은 대부분 엄마몫인지 ㅠㅠ

독서괭 2021-12-31 22:08   좋아요 1 | URL
워킹맘은 그나마 힘들다는 건 인정하는 분위기인데 전업맘은 많이 후려치기 당하는 것 같아요. 아빠들이 엄마들이 느끼는 것같은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는지 궁금합니다🙄 미니님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1-12-30 01:43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의 개인적인 얘기가 들어간 페이퍼, 공감하고, 넘 좋아요^^
아직 아이들이 어린 것 같은데
거기다 일까지 하시느라 바쁘실 것 같은데, 독서에다 글까지 쓰시고~~
근데 이상하게 저는 그때 더 열심히 살아지고 더 많은걸 했던 것 같아요.
이 밤에 나의 고유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어요^^

독서괭 2021-12-31 22:07   좋아요 2 | URL
그때 더 열심히 살아진다는 말씀! 공감합니다. 뭔가 악착같이 좋아하는 일에 매달리게 되네요. 사실 집안일과 육아가 사람을 소진시킨다는 점을 쓰고 싶었는데 글이 좀 부족했어요. 저는 업무에도 매달리고 싶을 때가 있는데 애들 보러 퇴근을 해야만 하는 것도 나름의 힘듦이더라구요. 어쨌든 북플이 저를 많이 충전시켜 주고 있습니다 ㅎ 페넬로페님 감사합니다^^

- 2021-12-31 14: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으악. 막 고유성~에 대한 페이퍼를 쭉 쓰다가 돌아왔는데, 여기서도 고유함의 고유함을 만나다니. 새해처럼 복된 기분이다!
내 이야기가 많이 들어간 글이야 말로 고유한 글이라서 저는 이 글이 참 좋으네요. 알찬 책들까지 조근조근 인용되고!!
두손에 든 떡 잠깐 입에 물고, 내년에는 좀 자주 써주세요!
( 여기 달린 댓글들 보면 이런 글을 원해왔다는 게 느껴지시죵? ㅎㅎㅎ )

독서괭 2021-12-31 22:10   좋아요 2 | URL
새해처럼 복된 기분! 기막힌 표현입니다. 하이파이브🤚
전 개인사를 많이 안 담으려고 해왔는데 이웃님들이 칭찬해주시니.. 제 별것도 없는 개인사를 막 까발리고 싶어지고 막 그럽니다??!! 나중에 tmi라고 욕하기 없기 ㅋㅋ
두손에 든 떡 입에 물고 있으라니 ㅋㅋㅋㅋ 군침도네요 ㅋㅋㅋㅋ 쟝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