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들어 너무 바빴다. 시간에 쫓겨 일을 하다가 허둥지둥 퇴근해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다 재워놓고 다시 일을 했다. 어떤 이들은 매일 하루 대여섯시간만 자고도 멀쩡하다는데, 나는 왜 이렇게 피곤한가... 내 체력은 왜 이모냥인가에 대해 늘 그랬던대로 또 한번씩 슬퍼하곤 했다. 주말에는 내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데도, 힘들어 잠시 누워 있던 내게 둘째는 "엄마가 안 놀아준다"며 울부짖었다(두 시간 동안 역할놀이를 한 후였다). 아이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양치, 목욕 등)을 시키다가 "엄마 미워!" 소리를 듣고 힘이 쭉 빠졌다. 또 그러고서는 둘째는 목욕한다고 발가벗고 와서 배를 두드리며 "엄마가 제일 좋아" 노래를 불렀다.  



일하는 엄마가 아이를 맡겨야 할 때, 아이를 돌봐줄 기관이나 사람을 알아보고 연락하고 면접하고 찾아가 살펴보는 일은 모두 엄마의 몫이다. 남편이 일을 하고 돈을 번다는 이유로 면제 받는 모든 가정의 일에서 여자는 늘 예외다. 여자가 일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육아도 살림도, 세상이 여성에게 일차 책임을 묻는 일들은 절박한 순간마다 언제나 친정 엄마를 비롯한 다른 여성들이 돕는다.

교수 같은 괜찮은 직업을 가진 중산층 여성들이 가사노동에 곤란을 토로하면, 여건이 나은 탁아시설을 이용한다는 이유로 혹은 시집살이라는 권력 관계에서 조금 유리하다는 이유로 상황이 더 나쁜 여성들을 거론하며 배부른 소리 한다는 식으로 힐난하는 지식인 남성을 숱하게 보았다. 어떤 경우에도 조금도 그 책임을 나눠 지지 않으면서 세상 중립적인 판관이라는 듯 그런 말을 한다(새삼 분노가 솟구친다!)  - 190, 191쪽 / 281쪽 (전자책 기준)



<나의 가련한 지배자>를 읽다보면, 저자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많은 차이들이 일순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일을 놓고 싶지 않고 경제적 자립을 원하는 여성이 양육의 책임을 지게 되면 얼마나 큰 어려움에 부딪히는지 절절하게 서술되어 있다. 저자는 어떻게든 일을 계속하고 싶었기에 엄마에게 아이들을 맡긴다. 그러나 애들은 저절로 크는 것이라는 옛날식 육아관을 가지고 있는 엄마는 아이들이 하교할 시간에도 집을 종종 비운다. 어느날  "할머니가 맨날 집에 없는데 똥이 마려워서 집 앞에다 똥을 쌌다"는 아이의 말을 듣는다면, 그 마음이 어떨까? 


일과 육아를 병행하다 보니 살림은 엉망이고 애들은 꼬질꼬질하다 -> 일을 해서 버는 수입과 아이들 돌보는 도우미 고용비용을, 일을 해서 내가 얻는 것과 일을 포기해서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을 저울질한다 -> 아이를 돌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 이런 일은 대체로 수입이 적고 경력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 다시 저울질한다 -> 일을 포기한다 


이런 과정에서 공동양육자인 아빠는 어디 있는가? 아내가 일과 가정 사이에서 분열되는 자아를 안고 찢어지는 마음으로 일과 아이를 저울질하고 있을 때, 남편은 왜 똑같이 저울질하지 않는가? 왜 저울질 해야 하는 사람은 거의 늘 여성인가? 간혹 생계의 주책임자가 여성이 되었을 때, 왜 그 끝은 비극으로 묘사되는가? 



 <엄마에 대하여> 중 차현지 작가의 '핑거 세이프티'는, 작가의 말을 보면 자전적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는 소설인 듯하다. 소설 속 아빠는 이것저것 사업을 시도하다가 실패하고, 사업수완이 좋은 엄마가 생계를 책임진다. 늘 바쁘고 피곤한 엄마는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들 먹을 음식을 해놓지만 정서적 돌봄은 미약하다. 아빠는 술을 마시고 잠적하기 일쑤다. '나'는 늘 엄마 편이었지만 엄마에게 그 마음은 잘 전달되지 않았고, 어느날 아빠가 할머니에게 "아들 낳아줄 여자 찾죠 뭐. 어차피 딸년들 뿐인데"라는 말을 하는 걸 들은 '나'는 그 말을 듣게한 엄마를 용서하지 못한다. "이 집에서 욕 들을 만한" 유일한 사람이었던 아빠를 집에서 쫓아내는 데 성공하지만, 그 후에는 "이 집에서 잘못한" 유일한 사람인 엄마에게 화살이 돌아간다. 성인이 되고서도 '나'의 안에는 "죽여도 죽여도 영원히 죽지 않는" 12살의 내가 있어 엄마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수가 없다. 







폭력을, 방치를, 억압을 행사한 아빠보다 그 상황에서 그 나름대로 아이를 키운 엄마는 오히려 더 큰 원망의 대상이 되기 쉽다. <나의 가련한 지배자>의 저자도 그런 아빠를 두었다.


아빠는 어떤 감정의 이입이나 교류 같은 게 불가능한 관념화된 악으로만 존재했기 때문에 내게 '아버지'는 이상적이든 그 반대로든 책이나 드라마, 영화 등에나 있었다. 아버지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역시 기본 모델이 있고 거기에서 좀 모자라다 싶은 것과 강렬한 바람 같은 것을이 엮여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나처럼 거의 투명한, 존재감 없는 아빠를 가진 사람에게는 매체 속 아버지 역시 막연하기는 매한가지였다. - <나의 가련한 지배자> 135쪽/281쪽


저자는 <엄마는 딸의 인생을 지배한다>라는 책에서 아래 구절을 인용한다(143쪽, 144쪽/281쪽). 


 어떤 경우든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범인으로 몰기가 훨씬 쉽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전문가에게 단죄받기도 전에 이미 스스로 머리를 떨구고 목을 내밀고 있거든요. 그녀는 우리의 비난에 반박 한마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자진해서 스스로의 죄를 열거하겠지요. 이 정도로 안성맞춤인 범인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  182쪽 인용










저자가 이 부분에서 언급하는 <케빈에 대하여>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둘다 '괴물' 아이를 둔 엄마의 고백록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내가 함께 읽은 책, 도리스레싱의 <다섯째 아이>를 추가하고 싶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실제 총기난사사건 가해자의 엄마가 쓴 논픽션이다. 이 논픽션을 소설화 한 것처럼 보이는 <케빈에 대하여>를 재미있게 읽은 나지만, <나는 가해자의~>는 힘들어서 중간에 포기하고 가지고만 있다. <케빈>과 <다섯째아이>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좋지 않은 의미로 남달랐던 반면, <나는 가해자의~> 속 현실의 아이는 저자 수 클리볼드에게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클리볼드의 "내가 내 아이를 이렇게 몰랐다니"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의문과 회한은 끝없이 괴롭고 정답을 알 수 없는, 시지프스의 돌이 된다. 


















이때 아빠들은 순진하고 무책임한 '가장'으로서 한발짝 뒤로 물러나 있을 수 있다. 직접적으로 아이를 학대한 증거가 없는 이상 아이에게 생긴 문제는 엄마의 책임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아빠들은 더 순수하게 슬퍼하고 괴로워할 수 있다. 아이에게 그만큼 영향을 미칠만한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어제 읽은 <긴긴밤>은 양육과 성장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가족을 잃고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흰바위코뿔소 '노든'은 전쟁을 기화로 동물원에서 탈출한다. 우연히 동행하게 된 펭귄 '치쿠'는 같은 수컷인 '윔보'와 파트너가 되어 누구 알인지 모를 펭귄알을 소중히 지켜 왔었는데, 윔보가 죽어 혼자 알을 가지고 나온 것이다. 가족을 죽인 인간들에게 복수하려던 노든은 차마 치쿠와 알을 내버려둘 수 없어 함께 바다를 찾아 떠돈다. 치쿠가 죽고 알에서 태어난 '나'에게, 노든은 아빠이고, 가족이고, 모든 것이 된다. 하지만 코뿔소와 펭귄에게는 공유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결국 '나'는 노든과 헤어져 자기의 삶을 찾아간다. 

이 아빠들은 양육에 대한 모든 책임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먹을 것, 따뜻한 잠자리, 정서적 보살핌까지. 





나는 이 이야기를 아이를 대하는 양육자의 자세에 대한 우화로 읽었다. 

우리의 아이를 '정체를 알 수 없는' 하나의 알로 여긴다면, 우리는 아이와 좀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나의 자유가 초원에 있듯이, 너의 자유는 바다에 있음을 인정한다면. 나는 코뿔소로서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었지만 그게 펭귄인 너에게는 전부가 될 수 없음을 인정한다면.

  

엄마는 나에게 "자식 겉 낳지, 속 낳는 것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 말처럼 모든 엄마는 자신이 낳아 자기 방식으로 키운 자식을 완전히 낯선 타인으로 만나는 순간을 맞닥뜨린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 <나의 가련한 지배자> 144쪽/ 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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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1-17 15:08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오전에 제가 페이퍼에도 언급했던 며칠전의 여자친구 살해한 남자의 기사에서, 딸 집에 왔다가 딸이 죽는 현장에 같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엄마 생각이 너무 나네요. 독서괭님도 댓글에서 언급하셨었지만, 저는 그 기사를 읽고 그 엄마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남자친구 문 열어주지 못하게 할 걸, 들어오지 못하게 할 걸, 둘만 들어가지 말게할 걸 등등. 그 엄마는 얼마나 많은 자책들로 고통스러워할까요. 분명 여자를 찾아온 것도, 무기를 가져온 것도, 결국 죽인 것도 전남친이지만, 전남친은 이 일에서 얼마만큼의 괴로움을 가져갈까 생각해보면 너무 화가 나요.

오늘 페이퍼의 <엄마는 딸의 인생을 지배한다> 인용문이 정말 아프게 밟히네요, 독서괭 님. 자신의 죄가 아닌데도 머리를 떨구고 목을 내밀 엄마들 때문에 미치겠어요, 독서괭 님. ㅠㅠ

독서괭 2022-01-17 23:29   좋아요 3 | URL
맞아요 다락방님. 그 엄마 심정을 상상만 해도(감히 상상도 안 되지만) 너무 심장이 쪼이는 듯해요.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피플>에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그 엄마가 집에 버리지 않고 놓아뒀던 칼이 범행에 쓰여서 그걸 버렸어야 했는데, 버렸어야 했는데, 그러거든요 ㅠㅠ
자식의 나쁜 행동에 대한 책임의 화살은 엄마에게 돌아가고, 좋은 행동에 대한 칭찬은 ‘진짜 대단히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자식을 잘 키웠을 때‘ 정도나 돌아오는 것 같아요. ㅠㅠ

페넬로페 2022-01-17 17: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일과 육아를 병행하시니 피곤하신 건 너무 당연해요. 거기다 이렇게 독서와 글쓰기까지 열심히 하시는데~~
정말 끊임없이 이야기해도 여성에게 짊어진 이중, 삼중의 짐은 없어지지 않는것 같아 넘 아쉽고 저 또한 살면서 힘이 드는걸 느껴요 ㅠㅠ

독서괭 2022-01-17 23:31   좋아요 4 | URL
페넬로페님, 여성들은 처한 상황이 조금씩 달라도 모두 공감하는 삶의 지점들이 많은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여성들과의 대화와 연대가 저에게 많은 힘이 되는 걸 느낍니다. 페넬로페님도 힘내세요~~!!

미미 2022-01-17 17: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의 가련한 지배자>사두었는데 괭님 글 읽으니 빨리 읽고싶어지네요. 다른 책들도 쏙쏙 담아갑니다
‘나의 자유가 초원에 있듯이, 너의 자유는 바다에 있음을 인정한다면‘이대목 너무 감동적이예요 괭님ㅠㅠ👍아... 눈물납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독서괭 2022-01-17 23:35   좋아요 3 | URL
오, 미미님 사두셨군요! 이 책은 엄마와의 관계에서 힘들었던 딸들이나 지금 딸과의 관계를 고민하는 엄마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줄 것 같아요.
감동적이라고 해주시니 감동입니다 미미님 ㅠㅠ <긴긴밤>이 담고 있는 의미가 이뿐만은 아니지만, 제게는 나와 네가 이렇게 달라도 그 다름을 인정하면서 서로 사랑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가장 와닿더라구요!

기억의집 2022-01-17 17: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는 죽을때까지 짊어지는 무게겠지요 !! 오늘 아침에 같이 일했던 엄마가 전화와 자식 이야기 좀 나눴는데.. 그 엄마가 나이가 어려 애가 지금 12살인데 며칠 전에 말 안들어 옆에 있던 몽둥이로 애를 때렸다고 하더라고요. 평소에 말 들어보면 정말 말 안들어서.. 지금 미술 심리 치료 받거든요. 물론 상담자가 엄마가 문제가 있다고 해서 같이 심리 상담 받는데… 너무 부모자식간 엇갈리니깐.. 본인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푸념은 하는데..’자식 키우는 건 정답 없는 거 같어요 저의 언닌 자식에게 신경질내고 소리 지르고 떽떽 거렸음에도 자식들이 잘해요. 근데 저는 민주적으로 양육했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서로 얼굴 붉히는 일 많어요. 양육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나는 가해자 엄마, 가 본인 자식을 몰랐다고 하는데..전 그 말 백퍼 공감해요!!

독서괭 2022-01-17 23:40   좋아요 3 | URL
아이고 몽둥이로 애를 때렸다니ㅠㅠ 그지경까지 가도록 얼마나 서로 힘들었을지 안타깝네요. 미술심리치료 받으며 많이 좋아지면 좋겠습니다. 보통 아이들 문제행동은 양육자의 문제와 연계되어 있으니.. 요즘은 주변에 보면 어른들도 심리치료 많이 받고 부부상담이나 소아상담도 많이 받더라구요. 자기도 몰랐던 행동의 깊은 원인을 알게 된다고 하니, 저도 받아보고 싶습니다.
기억의집님과 언니의 결과적 차이를 보면 정말 모르는 일인 것 같네요. 그렇게 생각하면 양육의 부담이 좀 덜어지네요^^ 읽지 않았지만 <양육가설>인가 그 책도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고 들었는데.. 자식이 타인임을 인정하며 부담을 덜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2-01-17 17: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의 자유가 초원에 있듯이 너의 자유는 바다에 있음을 인정한다면... 타인으로 인정하는 자세, 아이들이 컸는데도 가끔 힘들어요

독서괭 2022-01-17 23:41   좋아요 3 | URL
그레이스님, 아이들이 커도 저절로 되지는 않는 거군요 ㅜㅜ 애들은 원래 내맘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을 명심하며 적절한 거리 유지를 하도록 노력해봐야겠습니다..

공쟝쟝 2022-01-17 18:4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각각의 책들이 모두 괭님의 어느 지점을 가리킨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공감보다는 추측할 수 밖에 없지만, 읽으면서 생겨나는 괭님만의 물음표들이 콕콕콕콕 찔려와도 잘 움켜쥐면 좋겠습니다.

독서괭 2022-01-17 23:42   좋아요 3 | URL
쟝쟝님, 이 책은 엄마와 딸에 대한 이야기인데, 저는 아무래도 애들 키우다보니 엄마로서의 입장에서 많이 생각했지만, 쟝쟝님은 딸로서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실 수 있을 거예요. 특히 엄마와 애증이 많은 장녀들에게는 더 많이 와닿을 것 같습니다!

책읽는나무 2022-01-17 20: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나는 일을 하지 않는 엄마이고, 애들이 다 컸는데도 피곤하단 말을 달고 사는 엄마다 보니....괭님께 참 면목이 없네요ㅜㅜ
전 늘 괭님을 대단하고 멋진 엄마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괭님은 초원도 바다도 다 아우를 수 있는 엄마이자 한 사람의 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괭님 화이팅!! 쫌만 더 힘내세요♡
그리고 책들 쫌 담아갈게요^^

독서괭 2022-01-17 23:45   좋아요 3 | URL
나무님, 일을 안 하시는 게 아니고 집에서 일을 하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애들 다 키우셨다고 체력이 다 회복될 리 없으니까요 ㅠㅠ 저는 사실 책 읽고 글 쓰는 시간 확보를 위해 요리도 청소도 열심히 안하고 대충 포기했답니다. 애들이랑 열심히 놀아주는 걸로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려고 했는데, 피곤하다 보면 그것도 잘 안 되더라구요..^^;
응원해주셔서 감사드려요~ 나무님도 화이팅~ 책 많이 담아가세요^^

mini74 2022-01-17 20: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아이 키우면서 학교체육시간 몽땅 합친것 보다 더 많이 뛰었던거 같아요 ㅠㅠ 전 그때 커피와 어른들의 대화가 참 그리웠던거 같아요. 남퍈 미워서 잘 때 침대에서 발로 밀어보기도 하고. ㅎ 괭님 가까운 곳에 사시면 잠시라도 아이 봐드리고 싶네요. 괭님 오늘만이라도 아이들 일찍 잠들어 괭님 자유시간 조금이라도 가지실수 있길 바라며 ~

독서괭 2022-01-17 23:48   좋아요 3 | URL
ㅎㅎㅎ 애들 따라댕기다 보면 체육시간 못지 않죠 ㅋㅋ 가끔 미끄럼틀도 타게 되고.. ㅡ.ㅡ;; 커피와 어른들과의 대화!! 정말 꼭 필요합니다. 전업맘이 가장 힘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혼자 독박육아 하는 게 젤 고달픈 이유이기도 하고요. 남편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는 걸 알면서도 가끔 미워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죠?^^ 아이 봐주시고 싶다는 말씀에 완전 감동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미니님!

수하 2022-01-17 21: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는 제목의 의미를 모른 채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서점> 저자라는 것만 알고 시작을 했더랬죠.. 서문 읽으며 넘 아파서 그 뒤에 좀 더 읽다가 덮어뒀어요. 이걸 읽고 계신 독서괭님을 일단 안아드리고 싶어요. 토닥토닥… 읽기 힘드시더라도 치유의 시간이 되길..

독서괭 2022-01-17 23:53   좋아요 3 | URL
앗 그래요? 전 작가에 대해 모르고 시작했어요. 애들 데리고 외국생활을 했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는데 그게 시애틀인가 보군요. 그 책도 찾아봐야겠습니다.
저도 엄마에게 쌓인 감정이 꽤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해소되고 큰 문제는 없어서, 또 저희 딸은 아직 어려서, 읽으며 공감은 많이 했지만(하이라이트 많이 침) 읽기 힘들 정도는 아니었어요^^; 수하님은 서문에 마음이 많이 아프셨다니 저보다 깊이 이입하며 읽게 되실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수하 2022-01-19 19:24   좋아요 1 | URL
그 책은 많이 재미있답니다. 책 좋아하시는 분들은 다들 좋아하실 책이에요 :)

저는 사실 엄마에게 쌓인 감정이 그리 많지는 않은데..
(저는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편이라 사실 자라면서 남자 형제와의 차별 등에 대해 이미 표현을 많이 했어요)
엄마는 저와 성격이 좀 달라서, 그래서 표현 못하고 혼자 더 힘들었던 건 아닐까...
저도 딸을 낳고 보니 여자들은 왜 그러고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아팠어요.

독서괭님 읽기 힘들지 않으셨다니 저도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댓글 달길 잘했네요. 감사해요 ^^

독서괭 2022-01-25 08:57   좋아요 0 | URL
수하님, 이책 뒤로 가니 많이 아픈 이야기도 나오네요😅 그런데 제가 댓글을 늦게 달아서 혹시 그사이 이미 읽으셨을 수도…!!!

단발머리 2022-01-18 09: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 페이퍼 읽다보니 예전에 읽었던 『숭배와 혐오』라는 책에서 재클린 로즈의 말이 기억나네요. ‘모성은 우리의 개인적, 정치적 결함, 다시 말해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잘못된 일에 대한 궁극적 책임을 떠맡은 희생양이다(6쪽)’.

모성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전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뱃속의 아이를 만나는 순간부터 그러지 않을까 싶어요. 다만 코뿔소와 펭귄이 다른 것처럼 나와 아이가 다르다는 걸 ‘알아채기만‘ 해도 전 훌륭한 부모라고 생각합니다.
위의 댓글 보니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을 위해 요리 청소 대충하신다고 쓰셨던데... 아주 좋은 선택입니다. 아이들 어릴 때는 치워도 어차피 표시도 안 나구요.

독서괭님의 고단하고 바쁜 시간 시간 사이에 알라딘이 있어서 독서괭님의 좋은 글을 읽을 수 있네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날 되시길요!!!

독서괭 2022-01-18 13:58   좋아요 1 | URL
네 일단 <숭배와 혐오> 담으러 가고요.. 댕겨왔습니다 ㅋ
모성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하고 딱히 바람직한 일도 아닐 것 같습니다. 모성이라는 틀이 너무 정해져 있는 게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나의 가련한 지배자> 오늘 읽은 부분에서도 그런 내용이 나오더라구요. 결국 딸들이 커서 엄마가 되는데 그들 각자가 가지고 있던 욕망과 개성이 사라질리 없건만, 엄마라는 존재는 어디서 솟아나온 듯이 상상된다고요.
살림 대충하는 것에 좋은 선택이라고 해주시니 기쁩니다 ㅎㅎㅎㅎ 알라딘서재가 제게 많은 충족감을 줍니다. 주어진 시간에 책읽기/글쓰기/서친서재탐방을 모두 하기 빠듯해서 늘 선택의 기로에 서는데, 세가지가 서로 자극이 되는 선순환 같아서 적절히 배분해보려 애쓰고 있어요.
단발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