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1 - 경제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1
요하네스 부르크하르트 외 지음, 오토 브루너 외 엮음, 송충기 옮김,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 푸른역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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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Wirtschaft'와 '살림살이 Okonomie'라는 이 한 쌍의 개념은 한 학문의 모든 핵심을 포괄하고 근대 세계의 모든 것을 관통해온 핵심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p12)... 그리스어 오이코스 oikos[집]라는 단어에서 발전된 살림학 Okonomik이라는 용어는 18세기 전까지는 다름아닌 '총체적 가정 ganzes Haus'에 대한 가르침이었다(p13)... 고대에 '오이코스'와 '오이코노미아 oikonomia'라는 용어는 각각 가정 家庭과 그것을 사회적이고 물질적인 관계 속에서 관리하는 것을 의미했다. 중세에는 '살림살이'와 오늘날 '경제'라고 부를 만한 것의 용어가 역사적으로 더욱 더 벌어졌다(p14)... 18세기와 19세기를 지나면서 이 양쪽의 용어가 근대적 의미에서 경제 영역을 뜻하는 하나의 포괄적인 개념으로 통합되어, 경제 영역이 이제 생산과 교환의 영역을 포괄하고 서로를 연관시켰다. 바로 이 지점이 이 개념사가 특별한 문제의식과 특별한 인식을 제공하는 곳이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1 : 경제>, P15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사전 21번째 주제는 경제(Wirtschaft)다. 본문에서 우리는 가정 경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경제'라는 단어가 가정을 넘어서 사회질서를 설명하기 위한 의미의 확장이라는 근대 이전의 단계와 근대 이후 변화된 개념어의 내용을 확인한다. 다소 거칠게 요약하자면, 근대라는 변곡점 전후의 '제가 - 치국(齊家 治國)'의 관계 설정의 역사라 할 수 있다. 


  헤시오도스의 <일과 날>은 당대 농부의 상황을 주로 다루었다. 이 서사시의 핵심은 농부의 일과를 묘사함으로써 '오이코스' 소유자에게 농사일과 사회적 태도에 구체적인 조언을 제시하는 것이다. 유럽적 전통 내에서 보자면 이것은 '가장귀감서 家長龜鑑書'의 원형이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1 : 경제>, P26


 '경제'라는 단어가 집과 '살림살이'라는 용어와 확고한 연관을 갖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당시 '가장귀감서 Hausvaterliteratur'라는 새로운 문학 장르가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가정은 숭고한 존재로서 필요하다는 점이 이 장르의 원칙으로 관철되었는데, 말하자면 가정은 공간적이고 물질적인 통일체이자 동시에 인간의 연합체로서 그에 부과된 실제적인 활동 영역을 지닌 포괄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1 : 경제>, P90


 근대 이전의 '경제'는 '가장귀감서'의 내용을 근간으로 한다. 농작물 재배와 농장 경영이라는 농업 활동과 이를 위한 가정의 질서 등을 규정한 <가장귀감서>는 기본적으로 자급자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와 함께 노동집약적인 농업의 특성상 안정적인 사회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가부장적인 계급질서가 긍정되고 있음을 플라톤(Platon, BCE 428 ~ 348)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E 384 ~ 322)의 저술안에서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관계는 중세에 이르러서도 큰 무리없이 받아들여지지만, 중세에 싹튼 변화 - 상업혁명 - 은 근대에 큰 변화가 있을 것임을 예고한다.


 플라톤은 '돈벌이'에 엄격한 제한을 두고자 했는데,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윤리학>을 저술했다. 시민을 가능한 한 '행복하고', 서로를 '친밀하게' 만들고자 하는 의도였다. 경제적 이해의 당사자들을 무턱대고 억압할 때에는 필연적으로 법적인 대립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이는 플라톤의 목적에 위배된다. 그러므로 '재산에 대한 근심'이 윤리적 가치 기준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놓인다. 이러한 평가는 <변명>에서 소크라테스가 '돈벌이'와 '오이코노미아'를 등한시한 것과 완전히 일치한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1 : 경제>, P35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렇게 살림학을 정치학에 종속시킨 것은 그가 '오이코스'와 '폴리스'의 관계를 이해하는 방식 때문이다. 플라톤과 달리 그는 이 두 가지 '공동체' 형태 사이의 본질적 차이를 강조하고 정치학과 살림학을 체계적으로 차별화했던 근거도 바로 거기에서 찾았다(p36)... '오이코노미아'에 속하는 것으로 그는 오로지 자연에 합당한 벌이를 들었는데, 거기에는 수렵말고도 무엇보다도 농업이 속하며, 또한 필요한 물품에 한해 물물을 교환하는 것도 그에 속한다. 그런데 물물교환에서 화폐 사용의 필요성이 나왔고, 결국 '상업적인 것'이 발전하고 말았다. 이것은 돈벌이 Chrematisik에 속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1 : 경제>, P37


 중세에 예고된 근대의 변화. 고대 그리스에서 사회적 필요에 의한 교환은 인정되었지만, 화폐와 화폐로부터 얻어지는 이자 등은 부덕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에 반해, 중세로 넘어오면서 상인계층의 성장으로 교환 가치에 대한 인정이 이루어지게 되고, '자가 소비를 위한 생산'이 아닌 '타인 소비를 위한 생산', '교환을 위한 생산'이 대규모로 일어나면서, 경제 활동의 정의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이 변화는 '중세 - 가정'과 '근대 - 국가' 사이에 큰 틈을 만든다.                                                                                                                                                     

 (중세에서) 모든 논의의 기저에는 교환과 분업이 사회적으로 필요하다는 긍정적인 판단이 깔려 있다. 곧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은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가족공동체만으로는 이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시민 집단 multitudo civilis'을 필요로 한다(p81)... 당국에서는 빈민 구제를 제한하고 걸식에 엄하게 대응함으로써, 노동할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인 노동 의무를 부과하고자 했다. '노동'과 '빈곤'이 서로를 규정했던 과거 고대, 기독교, 중세의 견해와는 분명히 대조적으로, 이 두 개념은 이제 하나의 대립물로 나란히 하게 되었다. 곧 일하는 사람은 가난할 필요가 없으며, 가난한 사람은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증거일 뿐이라는 것이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1 : 경제>, P84


 중세까지 '경제'라는 단어가 '가정질서'를 근간으로 한다면, 근대화(Modernization)는 이 단어의 의미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이전과는 다른 가치관의 극적인 전회(轉回)는 사회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주며, 사회의 미덕(美德)이 절대가치가 아님도 함께 보여준다. 특히, 독일과 같이 다소 늦은 시기에 산업혁명이 일어난 국가에서는 이전에 설명될 필요가 없는 경제발전의 명분도 함께 설명해야 했고, 이러한 과정에서 국민경제에 대한 개념이 새롭게 도입되는 등의 변화가 생겨난다.


 (18세기 이후) 가족생활과 살림이, 다른 한편에서는 생산과 생업이 서로 점차 분리된 길을 걷게 되면서, 사회적 단위로서 가정의 쇠퇴는 결국 용어와 장르까지도 분열시켰다. 곧 가장귀감서는 가사 안내서나 가족 기도서로 전화되었다. 그렇지만 '살림살이'와 '경제'라는 한 쌍의 개념이 생업의 세계로 들어왔고, 거기에서 실제와 이론의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다시 새로운 개념으로 이어졌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1 : 경제>, P104


 세이 Say가 세운 19세기 교과서적 전통에 따르면, '정치적 살림살이'는 생산 요소로 토지, 노동 그리고 자본을 한꺼번에 고려하는 생산 법칙으로 시작되곤 하는데, 이로써 근대 경제적인 기제의 형성에서 생산의 결정적인 위치가 확립되고 그에 따라 보편적인 경제 개념도 정립되었다. 마찬가지로 생산이 단초가 됨으로써 근대 경제에 대한 생각에서 아주 독특하고 보편적인 개념, 곧 확대와 성장의 관념이 형성되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1 : 경제>, P134


  1990년대 씌여진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에서는 '경제'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이 '최소비용 이윤극대화'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 이러한 개념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경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임을 생각하게 된다... 


 경제학적 분석은 점차 증가하고 있는 사회적 생산물과 투자율에 집중되었고, '경제적 성장'이나 '경제 성장'이라는 단어에서, 살림살이 기제가 시간대를 걸쳐 지속적으로 팽창하는 현상을 설명해주는, 일상적 언어와 결합된 이론과 개념을 찾았다. 경제 이론에서 경제 성장에 대한 생각이 지배적임을 잘 말해주는 단어가 바로 경기 변동이 움직이는 영역인 성장 궤적 Wachstumspfad이다... 실제로 성장의 관념은 생산과 보편적 성장가능성에 근거한 근대적인 경제 개념의 요체이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1 : 경제>, P163 



초기 그리스 시문 詩文에서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는 ‘오이코스‘를 잘 꾸려나가는지에 대한 서술이다. "오디세우스가 가계와 농장을 경영하는 방식이야말로 가장 치밀하고 탁월하게 묘사된 이상형으로서, 호메로스의 시가 詩歌는 이것을 가능한 모범으로 삼아 고대의 사회적 관념을 제시했다." 그리스 초기의 귀족사회에서 오이코스는 이중적인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적 통합체였다. 그렇지만 호메로스 저작에서 오이코스는 사회적 통합체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더 자세히 말하자면, 생산과 소비를 위한 통합체 이기도 하다. - P25

근대에도 보편적인 경제생활, 특히 물질생활의 필요성과 재화의 생산을 지칭하는 사례를 18세기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고 19세기에 비로소 관철되었다. 요컨대 이 단어의 근대 초기의 역사를 더 천착해봐야 하는 이유는 우선 이 ‘경제 Wirtschaft‘라는 단어가 가정과 가사의 관리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살림살이 Okonomie‘라는 단어는 근대 초기에 아리스토텔레스식 의미의 가정학을 지칭하는 기술적 용어로 사용되고, 거기에서 ‘경제‘라는 단어 및 그 의미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었다 - P89

국가경제라는 명칭 형태를 독일에서 밀어내고 대신 들어선 것이 ‘국민살림살이‘와 ‘민족경제‘라는 개념이다(p147)... 19세기 백과사전에 나오는 합성어에서도 가내경제라는 요소가 사라지고, 그 원초적인 형태 대신에 중상주의에서 중농주의를 거쳐 산업사회로 넘어가는 발전 경로를 보여준다. 이러한 근대적인 경제 개념은 학문적으로 형성되었지만, 이어 ‘사회‘ 및 ‘역사‘와 맺는 현실적인 관계에서도 그 쓰임새를 스스로 입증해야만 했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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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an 2023-02-05 2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관련해서 푸코의 흥미로운 언급을 옮겨봅니다. ˝18세기에 중요했던 어느표현이 이 점을 잘 특징짓습니다. 케네는 훌륭한 통치는 경제적 통치라고 말합니다...16세기에 ‘경제‘라는 말은 통치의 한 형식을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18세기가 되면 경제는 우리의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련의 복잡한 절차를 통해 통치가 개입하는 현실의 한 수준, 어떤 영역을 지칭하게 됩니다...라 페리에르의 말에 따르면 통치가 담당해야 하는 사물이란 인간이지만 그것은 부 식량 자원 같은 사물과의 관계, 연결, 연루 속에 있는 인간입니다. 물론 특질 기후 가뭄 풍요 등과 더불어 국경을 갖춘 영토도 사물에 포함됩니다. 풍속 습관 행하고 사유하는 방식 같은 것과도 관계를 맺고 있는 인간, 마지막으로 기근 전염병 사고 등의 사고나 불행과도 관계를 맺고 있눈 인간이 바로 사물입니다...<사회계약론>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자연‘ ‘계약‘ ‘일반의지‘ 같은 개념으로 어떻게 통치의 일반 원리를 제시할 수 있느냐입니다. 주권의 법률적 원리뿐만 아니라 통치술을 정의하고 특징지을 수 있게 하는 요소들까지 모두 감안한 일반 원리를 말입니다.˝ <안전, 영토, 인구>

겨울호랑이 2023-02-05 23:34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글 안에서 푸코는 케네의 <경제표>를 하나의 변곡점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네요. 이전까지 정형화된 객체가 통치의 관심사였다면, 순환적인 경제 구조를 제시한 케네 이후 대상의 관계성에 보다 중점을 둔 것이 이전과 다른 점이라고 요약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관계성에 주목하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변화라 해석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법칙, 일반원리를 끌어내는 것이 현대 사회 과학과 자연 과학이 추구하는 바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김민우님 좋은 글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한 밤 되세요!
 

"누구든 말라카의 통치자가 되는 사람은 베니스의 목에 손을 얹게 된다."

말라카인은 계속해서 깨끗한 물과 하수 탱크 시설을 갖추고 살았는데, 바로 이런 이유로 말라카에는 옛 영국령 동남아시아의 다른 해협 식민지에 비하여 치명적인 전염병이 적었다. 말라카인들은 또한 강 가까이에 살았는데, 이것은 하수 재활용 기법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이 튼튼한 저장소들은 화재에 강한 특성 덕분에 포르투갈의 공격에도 멀쩡하였다. 그들은 강어귀를 따라 귀중품들을 보관하였고 그중 일부는 도시 주변에 있는 과수원에도 숨겼다.

말라카의 농업은 말레이 반도의 다른 지역에 비하여 활발하지 않았다. 약간의 불이익은 말라카 사람들이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서, 도시 외곽 지역은 늪지대에 있었지만, 말라카의 도시는 언덕 위에 있었다. 그 도시는 원래 강어귀에 있는 단순한 지역이었으며, 주요 일자리는 말라카강을 따라 전개된 어업밖에 없었다.

말라카에는 켈링 케이프(Keling Cape), 차이나타운, 자바 마을 등과 같은 대규모 상인 거주지역이 있었고, 그 지역은 모두 무역업자들의 주거지역으로 활용되었다.

말라카의 실제 영토는 쿠알라 링기(Kuala Linggi)에서 케상(Kesang)까지 포함하였다. 그 도시는 말라카강 어귀에 수산업 기지로 시작되었다. 마지막 싱가포르의 왕은 말라카가 발전하면서 유명해진 이곳에 약간의 잠재력을 불어넣었다. 제국은 지리상 두 지역으로 나뉘었다. 도시가 설립된 최초의 지역과 통치세력이 방어하고 점령한 영토. 초기에 말라카인들이 세운 도시는 해안선을 따라 확장되었다. 곧 이 도시는 보호를 제공하기 시작하였고, 처음에는 무한한 경제적 잠재력으로 설립된 도시들을 차례차례 점령하면서 성장하였다.

지식은 말라카가 제국의 확장을 공고히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술탄들은 학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통해 인재 개발에 초점을 맞추었다. 당시 중요한 학문 분야는 무기생산, 외국어, 가축 사육(축산학), 항해, 건설, 이슬람 신학 등이었다.

무역상들은 인종에 따라 귀족들이 관리하였다. 이 사법체계는 특히 무역상들에 대한 공적인 재판을 수립하기 위해 민사 및 관세 사건을 포함하였다. 그래서 귀족은 관청이나 그의 공적인 거소(居所)에서 재판을 통해 각 사건을 다루도록 되어 있었다.

일반적으로 말라카 술탄국에 있는 기관들의 호칭은 산스크리트어 어원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말라카 술탄국의 건국 관점에서, 오직 중요한 호칭만이 술탄국의 기관에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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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은 음모에 대한 이론이다. 전상진은 음모론을 "어떤 사건이나 사고의 원인을 ‘권력 유지나 획득을 목적으로 비밀스럽게 진행하는 집합 행동’인 음모에서 ‘찾고 탐구하고 설명하는 이론’"으로 정의했다.

음모론은 사건의 원인이 명확하게 설명되지 못할 때 배후에 거대한 권력 조직이나 비밀스러운 단체가 있다고 해석하는 경향성을 지칭한다.

과거 과학이 발달하지 않던 시대에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던 현상을 신의 뜻을 빌어 설명했다. 전상진은 고통을 설명하는 방식으로서 과거의 신정론이 현대에 들어서 음모론으로 대체됐다고 주장한다.

음모론을 구분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음모론은 세계관이기 때문에 사실로 확인된 음모론이 존재한다. 그런데 합리적 추론 여부는 결과론적으로 판단을 해야 할 때가 많다. 처음에는 음모론이었다가 나중에 사실로 판명된 사례가 있는 것처럼 처음에는 합리적 의심으로 보여 다수의 사람이 믿었다가 나중에 음모론으로 확인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음모론이 힘을 발휘하는 두 번째 토양은 바로 진영 논리다. ‘우리 편’에 도움이 된다면 음모론을 만들어서 뿌리는 데 주저하지 않는 음모론자들이 나오고 비합리적이라 하더라도 이를 믿어줄, 최소한 ‘믿는 척’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게 된다.

한국에서 특히 음모론이 횡행하는 이유는 한국이 전통적으로 저신뢰 사회이며 특히 공공 영역의 신뢰도가 매우 낮기 때문이다.

음모론에 대한 수요가 끊이질 않는 이유는 세계관이 단선적이어서 이해하기 쉽고 매력적으로 사회의 원리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번 위기는 전 세계적 문제를 다루는 전례가 될 것이다. 이것이 코로나19 위기의 가장 중요하고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유익한 교훈일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국수주의가 팽배해지고 국익 우선주의가 만연해져 서로 힘을 뭉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최악의 시나리오 대신 최상의 시나리오가 실현되리라는 희망의 조짐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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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 캐럴>을 이전의 모든 연말 휴가철 책들과 구분해주는 것은 이 명절이 스크루지에게 첫째 마당에서 상기시키듯, "다른 어떤 계절보다도 이때 결핍이 무엇이며 풍요가 무엇인지를 가장 뼈저리게 절감하게 마련"임을 의식적으로 인식시킨다는 점이다. _ 찰스 디킨스, <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럴>, p39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 ~ 1870)의 <크리스마스 캐럴 The Annotated Christmas Carol>과 차이코프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1840 ~ 1893)의 <호두까기 인형  The Nutcracker>. 크리스마스에 널리 사랑받는 이들 작품이지만, <크리스마스 캐럴>안에 담겨진 의미는 사뭇 진지하다.  


 스크루지의 영혼은 말리의 영혼처럼 "현찰 통, 열쇠, 자물쇠, 장부, 증서 묵직한 철가방"에 짓눌려 있다. 그의 직업은 엄밀성과 정확성을 요구하기에 엄격한 수학과 경제학의 법칙들을 흔들어놓는 인간적 감성이나 나약함이 설 자리는 전혀 없다. 그의 작고 좁은 세계에는 헛소리나 개소리 같은 헛것들이 들어설 자리가 전혀 없다. 그의 냉랭한 의견들은 당시 경제이론가들의 뒤틀린 학설들을 그대로 반영한다. 가난한 자들이 가난한 이유는 스스로의 잘못 때문이니 스크루지는 "게으름뱅이들이 흥청거릴 돈"을 제공할 의향이 전혀 없다. 그가 이들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유일한 해결책은 감옥과 구빈원인데, 이미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이 기관들의 유지비를 내고 있다. _ 찰스 디킨스, <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럴>, p122


 주인공 스크루지는 전형적인 맬서스주의자(Malthusianism)다. 또한,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시장주의자이기도 하며, 개인의 효용극대화를 추구한는 공리주의자(Utilitarianism)다. 그런 그에게 무능력하고 천성적으로 게을러 가난해진 이들에게 자선은 낭비에 불과하다. 열악한 삶의 조건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은 이들을 잉여인력으로, 그리고 이들을 악덕(惡德)의 근원으로 본다는 점에서 그안에 자리한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 1766 ~ 1834)이론을 발견하게 된다.


 지주들은 꼭 필요한 인력 외에는 가급적 빈민들을 자신의 땅에 들이지 않기 위해 남아 있는 빈민 오두막을 허물어버린다. 이로 인한 주택부족은 필연적으로 혼인의 강력한 억제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구빈법 제도가 오랜 세월 존속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이러한 억제요소 덕분일 것이다. 이와 같은 여러 억제요인에도 불구하고 끝내 결혼을 선택한 빈민들은 더럽고 초라한 거처에 머물며 보잘것없는 보조금에 의지해 연명해가거나,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비좁고 불결하기 짝이 없는 구빈원에 수용되어야 한다. 구빈원의 끔찍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특히 어린아이의 사망비율이 두드러진다. _ 맬서스, <인구론> , p356


 그런데 여기서 살아남은 과잉인구의 존재로 인해 노동유지기금은 본래의 적정 인원수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에게 분배되어야 하고, 그 결과 근면하고 신중한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 게으르고 무지한 빈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이는 해가 갈수록 구빈원 바깥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의 삶을 무겁게 짓누르는 부담이 되어 결국엔 개탄해야 마땅할 거대한 악덕을 낳는다. 전체 인구 가운데 자선에 의지하는 이들으 ㅣ숫자가 비정상적일 만큼 높은 비율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_ 맬서스, <인구론> , p357


  소설에서 냉혹한 스크루지는 크리스마스 전날 밤 유령을 만난다. '과거-현재-미래'의 유령을 만나면서 점차 변화되었다는 것은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다. 과거의 자신과 현재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평가와 미래의 자신의 죽음을 본 스크루지가 마음을 차츰 열어가는 과정에 대해 <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롤>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가난한 이들의 진정한 보호자는 '현재의 크리스마스 정령'이다. '과거의 크리스마스 정령'은 "이미 지난 일들의 그림자"를 보여줄 능력만 있을 뿐, 판단을 내리거나 지난 일들을 바꾸지 못한다. '미래의 크리스마스 정령'은 뒤를 돌아볼 역량을 갖고 있지 않다. 이 음침한 추수자는 오직 앞으로만 나아갈 뿐이고 그의 필연적인 여정은 그 어떤 것도 바꾸지 못한다. 오직 '현재의 크리스마스 정령'만이 사건들에 대해 논평하고 스크루지에게 구원의 기회를 제시한다. _ 찰스 디킨스, <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럴>, p123

 마치 그리스 신화의 운명의 세 여신 모이라이(Moirai) - 클로토(Klotho), 라케시스((Lachesis), 아트로포스(Atropos)-를 떠올리게 하는 이들 존재를 거치면서 스크루지는 자신 안의 숨겨진 어린이와 같은 감성을 의식의 세계로 끄집어 올릴 수 있었고, 행복하게 마무리된다. 여기서 잠시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 ~ 1616)의 <맥베스 Macbeth>를 떠올리게 된다. 스크루지와 같이 이질적인 세 존재들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스크루지는 자신을 반성하고 다른 미래를 그렸다면, 맥베스는 미래를 향해 폭주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예언의 시점이 달랐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예언이 보여주는 미래의 전망이 달랐기 때문이었을까.


 스크루지에게 세 정령은 과거-현재-미래의 순서로 자신의 삶을 보여주면서 비참한 결말을 통해 변화의 계기를 마련했다면, 맥베스에게 세 마녀는 '가까운 미래 - 먼 미래 - 훗날'과 그의 인생에 내릴 빛나는 미래를 하면서 이들의 운명을 바꿨다. 이후 구두쇠 스쿠르지는 좋은 이웃이 되지만, 충신 맥베스는 대역죄인으로 변화된다는 점에서 이들 작품 안의 예언(oracle)은 여러 모로 비교된다.


 맥베스 : [마녀들에게] 말해라, 너희는 누구인가?

 마녀 1 : 맥베스 만세! 글래미스 성주 만세!

 마녀 2 : 맥베스 만세! 코더의 성주 만세!

 마녀 3 : 맥베스 만세! 훗날 왕이 되리라.

 뱅코   : 장군, 왜 놀라시오? 그처럼 좋은 말을 겁내는 듯하시오?... 내 말은 없었는데, 과연 너희가 시간의 씨앗을 살펴 자랄 싹,  못 자랄 싹을 알 수 있다면 내게 말하라. 나는 너희의 호의도 악의도 구하지 않으며 미움도 원치 않는다.

 마녀 1 : 맥베스보다 작으나 크다.

 마녀 2 : 그처럼 행복하지 못하나 더 행복하다.

 마녀 3 : 왕은 되지 못하나 왕을 낳을 것이다. 따라서 맥베스와 뱅코 만세.

 마녀 1 : 뱅코와 맥베스 만세.

 맥베스 : 잠깐, 불완전한 말이다. 더 말하라. _ 윌리엄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 전집> <맥베스> , p645


 그(스크루지)가 크리스마스의 기쁨과 슬픔의 장면을 보면서 느끼는 양심의 가책은 진실되다. 그는 자신의 옛 사랑 벨의 딸을 바라보며,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살아왔는지, 그의 탐욕으로 인해 상실한 가능성들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그가 이 세 정령과 여행을 다니는 동안 그의 내부에 감춰져 있던 또 다른 분위기가 되살아난다. 음울한 안개가 크리스마스 날의 눈부시게 밝은 해 앞에서 물러나듯이, 차감고 딱딱한 외피는 녹아 없어진다. 그의 독기 섞인 냉소주의에도 불구하고 스크루지가 완전히 크리스마스 정신을 상실하지는 않았고, 다만 그 정신이 잠자고 있었음을 보게 된다. 그 정신을 되살리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다... 그가 선택한 것은 일상사의 기쁨과 성가심으로부터 자신을 차단하는 것이었고, 그 결과 한때 자신의 성품에서 핵심적 부분을 차지했던 감성들을 억압하게 되었다. _ 찰스 디킨스, <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럴>, p115


 구두쇠 스크루지에게 구원의 기회를 제공하는 현재 크리스마스 유령과의 배회에서 스크루지에게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바로 '결핍'과 '무지'의 모습이다. <올리버 트위스트 (Oliver Twist)>의 페이긴 집단의 아이들 모습과도 같은 소년, 소녀의 모습을 통해 현재 크리스마스 유령은 가난한 이들 - 특히 어린이들 - 에 대한 무관심과 사회적 책임을 작가는 독자들에게 분명하게 묻는다. 


 가난한 이들의 아이들에 대한 그의 배려는 유령 소녀와 소년인 '결핍'과 '무지'를 통해 추가로 표현된다. 이들을 변호하면서 '현재 크리스마스의 정령'은 모든 버려진 아이들을, 잉글랜드의 공장과 콘월의 탄광에서 일하며 런던의 야학에 다니는 "비참하고, 처참하고, 무시무시하고, 끔찍하고 비천한" 아이들을 위해 호소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디킨스는 예언자의 역할을 떠맡아 하며 사회의 무관심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경고한다. 결핍과 무지는 어린이들을 방치한 나라의 산물들인 것이다. _ 찰스 디킨스, <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럴>, p40


  이들은 남녀 어린이였다. 누렇고 깡마르고 남루하고 찡그리고 사나운 인상이었지만 그래도 미천하게 납작 엎드린 모습이기도 했다. 우아한 어린 생명이 이들의 안색에 생기를 주고 가장 신선한 색조로 빛나게 했어야 하건만, 꼭 늙은이처럼 깡마르고 쪼글쪼글한 손으로 꼬집고 비틀어서 너덜너덜해진 얼굴이었다. 천사들이 권좌에 앉아 있어야 할 자리에 악마들이 들어가서 도사리며 협박하는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어떤 변화, 어떤 타락, 어떤 인간성이 아무리 심하게 변질된 상태라고 해도, 이 놀라운 창조된 세계의 온갖 신비를 다 둘러보아도, 이들보다 더 섬뜩하고 무시무시한 괴물들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_ 찰스 디킨스, <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럴>, p262


 "얘들은 인간의 아이들입니다." 정령이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런데 자기네들의 아버지에 대해 탄원을 하면서 나한테 달라붙는 거지요. 이 사내아이는 '무지'라고 합니다. 여자아이는 '결핍'이지요. 둘 다. 또 이들과 같은 급의 모든 아이들을 조심해야 할 거요, 특히 사내아이는요. 아이 이마에 파국의 조짐이 적혀 있는 것이 내 눈에 보이기 때문이오. 그것을 지우지 않는 한 조심해야 하오." _ 찰스 디킨스, <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럴>, p263


 개인적으로 <크리스마스 캐럴>은 매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와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 세트와 같은 책이다. 매년 읽는 책이지만, 올해 책이 주는 의미는 예년과는 참 다르다. 예전에는 스크루지의 굳었던 마음이 풀리는 것처럼 다가올 새해를 맞아 새롭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즐겁게 읽었다면, 올해에는 '무지'와 '결핍'의 어두움이 무엇보다 크게 느껴지는 것은 2022년 한 해를 보낸 내 자신과 주변 상황때문일 것이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 것이 고전이 가진 매력이지만, 올해 <크리스마스 캐럴>에서는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 우리를 둘러싼 어두움에 시선이 가는 것을 어쩔수가 없다. 이러한 어두움이 계속되지 않기를 원한다면, 우리 자신의 변화만이 유일한 해결방안이 될 것이다. 2022년의 마지막은 희망과 기대보다는 더 굳은 각오로 마무리 되는 것 같다...


 "그런들 어떻소? 죽어야 할 것 같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겠소, 잉여인구도 줄일 겸." 정령이 대답했다. 스크루지는 정령이 자기가 했던 말을 인용하는 것을 들으며 고개를 숙였고, 뉘우침과 애통함에 압도되었다. "이보시오, 인간." 정령이 말했다. "댁이 돌덩어리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잉여'라는 게 무엇이고 그게 어디 있는지 발견하기 전에는 그 사악한 괴담은 좀 자제하시오. 어떤 사람이 살고 어떤 사람은 죽어야 할지를 당신이 정하겠다는 거요? _ 찰스 디킨스, <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럴>, p244 


 "꼬마 팀은 안 죽고 살아 있었기에 스크루지가 이 아이의 제2의 아버지가 되어주었다." 이 문장은 나중에 첨가한 것으로 본래 원고에는 나오지 않는다. 디킨스는 교정쇄 단계에서 독자에게, 현재의 크리스마스 정령이 언급한 빈자리가 이제는 없고 사람이 달라진 스크루지는 '무지'와 '결핍'의 유령들의 운명에서 적어도 한 아이는 건져낼 수 있었음을 확인시켜줘야 할 필요는 느꼈던 것이 분명하다. _ 찰스 디킨스, <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럴>, p306


 여전히 정령은 무덤만을 가리킬 뿐이었다. "인간들의 삶의 여정은 계속 그대로 그 길을 따라 산다면 결국에는 예정된 지점에 도착하겠지요. 하지만 만약 그런 길에서 떠난다면 도착점도 바뀔 것이오. 정령님이 나한테 보여주고 있는 바도 그런 것이라고 말해주시오!" 정령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_ 찰스 디킨스, <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럴>,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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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2-23 22: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스크루지 나오는 책이 크리스마스 캐럴이었지요. 크리스마스가 되면 생각나는 책 중의 하나예요.
겨울호랑이님, 이번 일요일이 크리스마스입니다.
따뜻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메리크리스마스.^^

겨울호랑이 2022-12-23 23:17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말씀처럼 <크리스마스 캐럴>의 스크루지는 산타 클로스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캐릭터라 생각합니다. 크리스마스가 일요일이어서 공휴일이 줄어 아쉬움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미사를 한 번에 끝낼 수 있다는 작은 즐거움을 느끼려 합니다.ㅋ 서니데이님께서도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

:Dora 2022-12-24 09: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메리크리스마스~

겨울호랑이 2022-12-24 09:31   좋아요 2 | URL
도라님께서도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

그레이스 2022-12-24 09: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디킨스가 그의 작품들에서 멜서스주의, 공리주의, 자본주의를 일관되게 비판하고 있더라구요.

성탄절에 읽는 크리스마스캐럴!

복된 성탄되세요.

겨울호랑이 2022-12-24 10:17   좋아요 2 | URL
그레이스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디킨스의 맬서스주의, 공리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어린 시절 노동현장에서 힘들게 일해야 했던 작가 자신의 불우한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께서도 따뜻하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세요! ^^:)

하나의책장 2022-12-25 18: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크리스마스만 되면 크리스마스 관련된 책과 영화가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겨울호랑이님도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셨나요?
돌아오는 주가 지나면 2023년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네요ㅎㅎ
따뜻하고 행복한 저녁 보내세요! Merry Christmas🎄❤

겨울호랑이 2022-12-25 21:35   좋아요 0 | URL
올해는 유난히 12월부터 추운 겨울인 듯합니다. 덕분에 가족과 함께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냈습니다. 하나의책장님께서도 좋은 시간 되셨는지요? 이제 한 주만 지나면 2022년도 마무리되네요. 남은 한 주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당시 독일 경제가 회복되는 데는 이 원조보다 독일 본래의 잠재력이 훨씬 더 결정적 역할을 했다. 독일의 1948년 불변가격 자본 스톡은 전시의 파괴를 제하고도 1936년보다 10퍼센트 높은 수준이었다. 이는 독일 내에서 1930년대 말 이래 있은 투자 덕분이었다.

서독의 공공 부문은 대부분 나치 정권 시절부터 비롯되었다. 2차 대전 중 독일 합자회사 자본의 거의 절반이 직, 간접적으로 공기업 자본이었다. 사회민주주의자는 물론 기민당까지도 이를 추진했다.

서방세계의 복지국가는 부자에게서 세금을 거둬 가난한 자에게 이를 재분배하는 방식이라기보다는 개인의 돼지저금통을 적절히 관리하는 기능을 했다. 즉 보험, 연금, 교육 제도 운영 방식을 통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개인의 일생 동안의 소득을 적절히 조정한 것이다

합스부르그는 유럽의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막시밀리안 1세는 부르고뉴와 네덜란드 귀족들에게 자극받아 행정 근대화를 추구했다. 인스부르그에 재무성을 창설하고 오스트리아 내 최초의 정부 자문 회의를 설치하는가 하면 대외 정책을 모색하기도 했다.

프로이센과 달리 합스부르그제국에서는 토지 귀족이 국가기구에 편입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들에게 불리한 개혁을 제국이 시도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제국을 내적으로 취약하게 한 원인이었다. 문화적, 사회적으로 토지 귀족과 분리되어 있던 도시 출신 관료를 통해 제국이 귀족의 집단적 이해관계를 직접 침범하자 귀족들이 제각기 사나운 자기네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대에 제국은 반혁명의 보루였으나 제국 자체는 무기력했고 표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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