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마지막 주를 보내면서 딸아이의 제안으로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영화를 거의 20년 만에 봤다. 20여년 전 <해리 포터>는 영화로도, 문학 작품으로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매년 나오는 신작 <해리 포터>를 사기 위해 아침 일찍 서점에 줄 서는 어린이들 시리즈였고, 2000년대 초반 겨울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함께 <해리 포터>시리즈가 연말 극장을 장식했던 기억이 난다.


 20년 만에 다시 본 <해리 포터>. 마치 20년 전 친구를 다시 만난다면 이런 느낌이 들까. 그때보다 발전한 CG로 그때는 감탄했던 마법의 장면들이 과학의 발전으로 이제는 낡은 마술로 전락한 느낌을 주긴 했지만, 이제는 성인이 된 배우들의 앳된 모습을 보면서 잠시나마 그때의 시간으로 돌아가게 된다. 다소 예전 영화라 아이에게는 어떻게 비춰졌을까. 다행히 자신 또래의 아이가 주인공인 해리, 헤르미온느, 론에게 감정을 몰입하며 영화를 보는 아이를 보면서 <해리 포터> 시리즈가 이제는 고전이 되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영화 <해리 포터>는 2000년대 겨울을 함께 보낸 친구였지만, 문학작품으로는 읽은 적이 없다. 아이들이 열광하는 문학작품이라 유치하다는 편견이 있어서 였을까. 대신 당시 유행했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를 읽으며 레버리지를 활용해서, 젊은 나이에 은퇴하고 개인 사업을 하겠다는 정말 마법같은(?) 꿈을 꾸었던 것을 돌이켜 보면 <해리 포터>의 마법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듯하다.


 모처럼 <해리 포터>시리즈에 빠진 아이를 보며, 이번 기회에 <해리 포터> 시리즈를 책으로 읽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그래서 구입한 미나마라 에디션의 <해리 포터>. 다소 뜬금없이 2023년의 독서는 <해리 포터> 읽기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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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23-01-04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해리포터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역시 장서가의 부심으로 미나리마 아니아니 미나마라 시리즈 가지고 있는데요 이게 3편이 작년 연말에 나왔어야 되는데 아직 안나와서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일러스트 에디션을 한권씩 사모으고 있습니다. 멋집니다. ㅎㅎㅎㅎㅎ

겨울호랑이 2023-01-04 11:11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 저도이번에 해리 포터 시리즈를 보면서 일러스트 에디션과 미나리마 시미즈 중 고민했습니다. 둘 중 미나리마가 팝업북 양식으로 나와 골랐습니다. 붉은돼지님께서는 일러스트에디션까지 갖추셨다니 진정한 장서가십니다! ^^:)

바람돌이 2023-01-04 15: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0년전에 어린이도 청소년도 아니면서 해리 포터에 열광해서 다음 시리즈가 나오길 책도 영화도 다 손꼽아 기다리던 사람 저요. ㅎㅎ 그때 해리포터 시리즈 책으로 샀다가 나중에 도서관에 기증했는데, 우리집 애가 크니 할 수 없이 다시 전집을 다 샀다죠. ㅠ.ㅠ 새해 추억돋는 해리포터 좋네요. ^^ 영화는 반지의 제왕을 더 좋아해요. ^^

올해도 겨울호랑이님 열심히 공부하시는 글 살짝 살짝 훔쳐볼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겨울호랑이 2023-01-04 21:58   좋아요 1 | URL
이제 해리 포터는 초판 이후에도 여러 판본으로 사랑받는 우리 시대의 고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출판 당시에는 미처 몰랐지만요. 이번에 읽으면서 해리 포터의 저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니다... 바람돌이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 한 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 순간부터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는 그들의 친구가 되었다. 세상에는 함께 겪고나면 서로를 좋아하게 될 수밖에 없는 일이 몇 있는데, 3미터 넘는 산트롤을 쓰러뜨리는 것도 그런 일 가운데 하나다. - P217

"그래. 34센티미터, 주목 소재.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정말 신기하단 말이야. 마법사가 지팡이를 고르는 게 아니라 지팡이가 마법사를 고른다는 거 기억하지? 네가 뭔가 엄청난 일을 해낼 거라고 기대해야 할 것 같다. 포터 군.………어쨌든,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그 사람도 엄청난 일들을 해냈으니까. 물론, 끔찍한일이었지. 그러나 엄청난 일이기도 해." - P110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덤블도어가 조용히 말했다. "이 거울이 보여 주는 건 우리 마음속 가장 깊고도 간절한 욕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다. 가족을전혀 몰랐던 너는 가족들이 네 주위에 서 있는 모습을 보지. 늘 형들에게 가려져있던 로널드 위즐리는 어떤 형제보다도 뛰어난 모습으로 홀로 서 있는 자기 모습을보고. 하지만 이 거울은 우리에게 지식이나 진실을 전해 주지 않는단다. 많은 사람이 이 앞에서 인생을 허비했어. 여기에 비치는 모습에 도취되거나 광기에 빠져서,
거울이 보여 주는 게 현실인지, 심지어 가능한 일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채로 말이다. 이 거울은 내일 새집으로 옮길 거란다. 해리. 다시는 이 거울을 찾지 말아다오어쩌다 이 거울과 다시 마주치게 된다면, 그때는 준비가 되어 있겠지만 말이다. 꿈에 사로잡혀 삶을 잊는 것은 아무 소용 없는 일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거라 자 이제 그 훌륭한 망토를 다시 두르고 자러 가는 게 어떻겠니?" - P256

"너처럼 어린 사람에게는 믿을 수 없는 일 같겠지만, 니콜라나 페레넬한테 죽음이란 사실 아주, 아주 긴 하루를 보내고 잠드는 것과 같은 일이란다. 어쨌거나 잘다듬어진 정신에게는 죽음도 또 한 번의 위대한 모험이거든. 실은 말이지. 그 둘은그렇게 훌륭한 물건이 아니란다. 돈과 생명을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걸 모두 젖혀 놓고서라도 선택할 두 가지가 아니겠냐? 문제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 나쁜 것을 콕 집어내는 재주를 갖고 있다는 거지" - P354

"네 어머니는 너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다. 볼드모트가 이해하지 못하는 단 한가지가 있다면 그건 바로 사랑이야. 그자는 너희 어머니가 너에게 준 것만큼 강력한 사랑은 그 자체로 흔적을 남긴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흉터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표시도 아니지만…… 그렇게 깊은 사랑을 받으면, 그 사랑을 베푼 사람이 우리를 떠난 뒤에도 어떤 보호막이 영원히 남는단다. 너의 살갗에 깃들어 있는 보호막이지, 증오와 탐욕과 야망으로 가득 차서 볼드모트와 영혼을 나눠 쓰고 있던 퀴럴은 그런 이유로 너를 만질 수 없었던 거란다. 그렇게 선한 흔적이 남아 있는 사람을만지는 게 고통스러웠던 거야." - P355

"어떻게 제가 거울에서 그 돌을 꺼낼 수 있었을까요?"
"아, 그래, 그 질문을 해 주다니 기쁘구나. 그건 내가 떠올린 기막힌 생각 중 하나였다. 단둘이 있으니까 하는 얘기지만, 정말 굉장한 발상이었지. 그러니까, 그돌을 찾고자 하는 사람 찾기는 하되 사용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 사람만이 그 돌을가질 수 있는 거란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금을 만들어 내거나 생명의 영약을마시는 자신의 모습만 보게 되지.  - P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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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을 내쫓은 뒤, 조조는 앞서 패퇴시킨 청주 황건적을 제북국까지 추격했다. 궁지에 몰린 청주 황건적은 항복했다. 그리하여 192년 겨울, 조조는 항복해온 황건적 군사 30여만 명과 남녀 100여만 명을 받아들였다. 그는 이들 가운데서 정예를 골라 군인으로 충원했는데, 이들을 청주병이라고 불렀다.

조조가 처음 동군에 왔을 때 그의 병력은 1,000~1,500명이었을 것이다. 물론 『삼국지』에 기록되지 않은 병력 충원이 중간에 있었을지도 모르므로 이를 감안해 그보다는 조금 더 많았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다. 조조는 이 병력으로 청주 황건적을 물리치고 그들을 전력으로 흡수함으로써 병력을 대거 늘렸다. 이는 조조가 날개를 단 격이었다.

조조는 연주자사 자리를 쉽게 얻은 편이었다. 하지만 연주를 지키고 지배권을 관철하기 위한 싸움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는 주변의 적들과 쉼 없이 싸웠다. 192년부터 193년까지 불과 1년 반 동안 흑산적과 청주 황건적, 공손찬, 원술 등과 싸워 모두 승리하고서야 연주를 완전히 지배할 수 있었다.

원술은 군웅 중 한 명이라고 하기엔 모순덩어리 인물이었다. 제대로 된 지역 기반을 차지하지도 못하고, 사촌형(실제로는 형) 원소보다 설쳐대며 황제를 자칭했지만 흉년으로 경제가 파탄되면서 자멸했다. 이런 별볼일없는 인물이었지만 초기에는 최강의 무장 손견을 부하로 두어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손견이 전사한 후 원술은 몰락했다.

원술이 남양군에서 성공하지 못한 것은 지역 기반이 1개 군밖에 없어서가 아니라 남양군의 전략적 이점을 제대로 활용할 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한 데서 찾아야 한다. 그는 폭정을 저질러 민심을 잃었으며, 손견 외에는 믿을 만한 장수 하나 얻지 못했고, 군사력도 갖추지 못했다.

원술이 회남의 2군(구강군과 여강군)만 지배했건 장강 이남과 회수 이북의 몇 개 군국을 지배했건 간에, 중요한 사실은 원술의 지역 기반이 여러모로 불리한 곳이었다는 점이다

조조가 수십만 명의 서주 백성을 죽이고 여러 현을 도륙한 잔학 행위는, 당시 조조에게나 동시대 사람들의 눈에나 그의 효심을 증명하는 행위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조조는 곧 ‘악행의 대가’를 받았다. 그가 서주에서 아버지의 복수에 온 신경을 쏟는 사이, 과거 그를 연주자사로 만든 진궁이 장막·장초 형제와 결탁하여 여포를 연주의 새 주인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게다가 연주의 여러 군현도 조조에게 등을 돌리고 여포에게 항복했다. 졸지에 본거지를 잃은 조조는 복수를 그만두고 연주로 돌아가 강적 여포와 싸워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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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체스는 6세기경 인도에서 시작되었다. 굽타 왕조 시기에 그것은 차투랑가(Caturanga)라고 불렸다. 이 게임은 말라카 이외의 페르시아와 다른 지역으로 건너갔다. 전 세계의 모든 무역 항구에서 체스 게임을 하였다.

제국은 여러 측면에서 안정적이고 강력한 정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정의와 사회규칙에 관한 문제를 포함해서 강력한 문명이 필요로 하는 모든 요소를 갖추었다. 술탄 무자파르는 조화와 평등을 유지하기 위해 23개 지역과 식민지에 44개 조항의 교회법을 마련하여 시행하였다.

이 모스크는 공적인 사회활동에 중요하였다. 그의 통치 이전의 모스크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말레이 문서에 따르면, 두 명의 술탄이 모스크 건설에 관여하였다. 바로 만수르 샤와 마흐무드 샤였다. 포르투갈인들이 대모스크를 허물어 버린 이후 마흐무드 샤는 재임기간 중 캄파르에 새로운 모스크를 세웠다.

동남아의 이슬람 전파는 주로 말라카로부터 조직된 비폭력적 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들의 영향력과 무역에 있어서의 물질적인 우위는 주변국들로 하여금 점차적으로 술탄국의 이슬람을 채택하고, 국교
(國敎)로 삼도록 하였다.

말라카는 교육을, 특히 귀족들의 교육을 우선시하였다. 기록에, 술탄은 기꺼이 전임 카디인 마울라나 유수프에 가까이 다가가서 공부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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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핵심은 영성문화의 이해와 해석을 피하는 왜곡된 근대주의 맹종에 있다. 동학과 굿과 민족종교의 숙제를 풀지 못하면 한국문화의 정체성은 더욱 훼손될 것이다. 정체성과 영성문화 연구를 계속 소홀히 한다면 한국학은 엘리트주의에 더욱더 갇히고 말 것이다. 아시아 문화정체성의 뿌리인 샤먼문화를 통해 생명의 마음과 소통하는 자연과 우주의 공공성으로 영성문화를 이해하고, 개인의 심리적 치유의 방법론으로 굿의례를 재조명할 때가 이제는 되었다.

동학을 유불선의 문헌적 결합으로만 보기보다 한국적 샤머니즘인 굿에서 나온 점도 많음을 이해할 것을 권한다. 동학의 창시자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의 ‘칼의 노래’ 검결(劍訣)과 무당의 공수의례는 같은 문화로 보인다. 검결은 샤먼의 영혼관을 띤 일종의 내림굿으로, 강신무(降神巫) 입무(入巫) 전통과 같다.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의 이천식천은 토템문화의 인문적 재해석으로 이해된다.

사회구조라는 개념 속에는 그 사회의 소수자에게 눈길을 돌리고, 그들을 사회의 범주에 포함시켜 사고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경우에 따라 어느 개인의 입장에서는 ‘생각하기도 싫을’ 수 있는 존재들이 이 사회에 함께 살고 있음을 환기하는 것이다. 이는 페미니즘이 줄곧 가족에 대해 견지해오던 시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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