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군주와 신하는 피붙이와 같은 친분이 있는 사이가 아니므로 정직한 방법으로 편안함을 얻을 수 있다면 신하는 힘을 다해 군주를 섬긴다. 그러나 정직한 방법으로 안락함을 얻을 수 없다면 신하는 사사로움을 추구해 군주에게 발탁되기를 구할 것이다. 현명한 군주는 이를 알고 있어 이롭거나 해로운 이치를 설정하여 천하에 제시할 뿐이다. 무릇 이 때문에 군주가 비록 [자신의] 입으로 많은 관리들을 가르치지 않고 [자신의] 눈으로 간사한 자를 찾아내지 않아도 나라는 잘 다스려진다.

어리석은 자는 본래 다스려지기를 바라면서도 그 다스리는 방법을 싫어하고, 모두 위태로워지는 것은 싫어하면서도 그 위태롭게 되는 방법을 좋아한다. 무엇으로써 이를 아는가? 무릇 형벌을 엄하고 무겁게 하는 것은 백성들이 싫어하는 바이지만 나라가 다스려지는 까닭이며, 백성을 가엾게 여겨 형벌을 가볍게 하는 것은 백성들이 좋아하는 바이지만 나라가 위험해지는 까닭이다.

나라가 흥할 것인가 망할 것인가 하는 관건은 반드시 그 나라가 잘 다스리는 것과 혼란스러운 것, 부강함과 쇠약함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었는가에 달려 있다.

법도가 세워지는 것은 군주의 보배이며 패거리를 갖추는 것은 신하의 보배가 된다. 신하가 그 군주를 시해하지 못하는 것은 패거리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한 치라도 잘못하게 되면 신하는 그 갑절의 이득을 얻게 될 것이다. 나라를 갖고 있는 군주는 그 신하의 도읍을 크게 하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릇 군주와 소원한 자가 신임과 사랑을 받는 신하와 겨루면 이길 승산이 없고, 떠돌이 유세객이 군주와 오랜 친분을 쌓아온 신하와 다투면 이길 승산이 없다. 또 군주의 뜻을 거스르는 자가 군주의 좋고 싫음을 잘 맞추는 신하와 겨루면 이길 승산이 없다. 무시당하고 비천한 자가 존귀하고 권세 있는 신하와 다투면 이길 승산이 없으며, 혼자만의 입을 가지고 온 나라가 칭송하는 자와 싸우면 이길 승산이 없다.

술術을 아는 인사는 반드시 멀리 내다보고 명확하게 꿰뚫는다. 명확하게 꿰뚫지 않으면 사적인 음모를 밝혀낼 수 없다. 법法에 능한 인사는 반드시 굳세며 강직하다. 굳세고 강직하지 않으면 간사한 자들을 바로잡을 수 없다.

지혜로운 사람의 의견이 어리석은 자들에 의해 결정되고, 현명한 자의 품행이 현명하지 못한 자들에 의해 평가받게 되면 현명하고 지혜로운 자들이 치욕을 당할 것이고, 군주의 판단도 어긋나게 될 것이다.

무릇 설득의 어려움이란 내가 알고 있는 바를 가지고 남을 설득시키기가 어렵다는 것이 아니다. 또 내 말주변이 나의 뜻을 분명하게 전할 수 있느냐의 어려움도 아니며, 또 내가 과감하고 거리낌 없이 나의 능력을 모두 다 펼쳐 보일 수 있느냐의 어려움도 아니다. 무릇 설득의 어려움이란 설득하려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헤아려 내가 설득하려는 것을 그에게 맞출 수 있느냐 하는 점에 있다.

따라서 간언을 하거나 논의를 하고자 하는 신하는 군주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미리 살핀 뒤에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용이라는 동물은 유순해 길들이면 탈 수 있다. 그러나 턱밑에 직경 한 자쯤 되는 역린(逆鱗, 거꾸로 난 비늘)이 있는데, 만약 사람이 그것을 건드리면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인다. 군주에게도 역린이 있어, 설득하려는 자는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을 수 있어야만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

대체로 주옥珠玉은 제왕들이 조바심내는 것이다. 비록 화씨가 바친 옥덩어리가 아름답지 못할지라도 왕에게 해로움이 될 것은 없다. 그러나 오히려 두 발을 잘리고 나서야 보배로 인정을 받았으니, 보물로 인정받기란 이처럼 어려운 것이다. 지금의 군주들에게 법과 술은 결코 화씨의 옥을 얻는 것만큼 조바심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 법술이 있어야 여러 신하와 사민들이 사사로움과 간사한 행동을 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법과 술의 이치에 밝은 자가 죽임을 당하지 않았던 것은 단지 제왕의 보옥이라고 할 법술이 아직 바쳐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3-10-22 1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설득의 성공 비결은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리기, 인 거군요. 결국 인간에 대해 잘 알기, 가 되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23-10-22 17:45   좋아요 0 | URL
페크님이 정리하신 내용에 공감합니다. 상대와 같은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관계는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
 

법도가 세워지는 것은 군주의 보배이며 패거리를 갖추는 것은 신하의 보배가 된다. 신하가 그 군주를 시해하지 못하는 것은 패거리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한 치라도 잘못하게 되면 신하는 그 갑절의 이득을 얻게 될 것이다. 나라를 갖고 있는 군주는 그 신하의 도읍을 크게 하지 않는다.

환공이 말하였다. "포숙아鮑叔牙는 어떻소?"
관중이 말하였다. "안 됩니다. 포숙아는 사람됨이 지나치게 곧고 고집이 세며 일처리에 너무 과격한 면이 있습니다. 강직하면 백성들에게 포악하게 나설 우려가 있고, 고집이 세면 백성들의 마음을 잃게 되며, 과격하면 아랫사람들이 등용되기를 꺼릴 것입니다. 그는 마음에 두려워하는 바가 없으니 패왕의 보좌역이 아닙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모임에서 논의하는 안건은 제규 제1조에 내건 것처럼 오로지 교육에 관계되는 학문, 기술, 사물의 이치, 일의 이치 등, 대저 인간의 재능을 풍부하게 하고, 품행이 나아지는 데 필요한 일들이다. 더군다나 기약하는 바는 오로지 후세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간혹 현재의 꺼리는 것을 건드리는 일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에 관해 논하는 일 같은 것은 본래 우리가 모임을 연 주된 뜻이 아니다. _ 모리 아리노리, <메이로쿠 잡지>, p19

미국에서 돌아온 모리 아리노리와 니시무라 시게키가 주도해서 발간한 메이로쿠 잡지. 발간 초기 연설문에서 드러나듯 이들은 개화기에 쏟아져 들어오는 서양문물을 어떻게,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가와 기존의 제도에서 수용할 수 없다면 어느 곳으로 가야하는가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가야하는 종착지는 정해졌지만, 가는 방식은 서구의 방식을 따를 수 없었기에 지식인들은 저마다 자신의 생각을 해답으로 제시한다. 민선의원 선출, 처와첩 문제, 부부동권 문제, 정부주도 문제 등 여러 분야에 걸친 논의가 본문에 소개된다.

우리의 《메이로쿠 잡지》의 논의는 앞으로 정치상의 일과 관계가 없기를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기대할 수 없음이 이미 명백하기 때문에 신속하게 중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혹시 모임 안에 의견을 말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잡지의 이름에 의지하지 말고 각자 스스로 간행하고 그 책임을 져야 한다. _ 후쿠자와 유키치, <메이로쿠 잡지>, p25

그렇지만, 현실문제의 궁극적 해결안을 갖고 있는 것이 정치이며, 정치를 배제한 이들의 논의는 결국 한계에 부딪히고 1875년 이후 발간되지 않는다. 지식인의 고민과 정치적 한계를 잘 보여주는 <메이로쿠 잡지>를 통해 독자들은 일본 개화기에 벌어진 백가쟁명과 치열한 고뇌의 결과가 낳은 일본 번역 문화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난세일기 -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을 되돌아본다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윤석열이라는 인간의 최대 특징은 하나의 개체로서의 사인 私人일 뿐, 지도자로서의 공인 公人됨이 거의 부재하다는 것이다. 사적인 개인일 뿐 공적인 리더임을 망각하거나 지향하지 않거나, 아예 존재의 과제상황에서 제외시킨 매우 특유한 인간이라는 것이다(p12)... 대강 이런 비젼이 그의 개체로서의 사인적 私人的 의식 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고, 또 신념화되어 잇는 것이다. 이러한 신념은 대화를 거부하고 토론이나 타협의 장을 벗어나 있다. _ 김용옥, <난세일기> , p13

도올 김용옥(金容沃, 1948 ~ )의 <난세일기 亂世日記>는 정치, 외교, 군사, 사회 등 취임 후 불과 1년 만에 모든 국정을 총체적 위기로 몰아넣은 윤석열 정부의 시대를 바라보는 철학자의 일기다. 일기 속의 날짜는 4월 24일부터 5월 24일까지의 한 달이지만, 한 달 동안 일어난 여러 사건 - 윤석열의 미 의회 연설, 기시다 방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관련 문제 등 - 속에 담긴 함의는 결코 작지 않다. 저자는 이 기간 동안 화제가 되었던 여러 사건들의 의미를 자신의 철학(哲學)을 통해 바라보면서, 사건의 의미와 사상의 여정을 함께 드러낸다.

나는 나의 책이 어렵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실상 나의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그것이 쉽게 쓰여졌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논술방식이 파격적이기 때문이라는 것, 또 그 주제의 선정이 항상 새롭기 때문에 평균적 저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다양성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언어 그 자체는 충분히 풀어헤쳐져 있지 않다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그 농축된 언어에 피곤을 느낀다는 것, 그러한 사실이 충분히 반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_ 김용옥, <난세일기> , p21

제목처럼 어려운 시대(亂世)를 살아간다는 공통된 기반 위에서 저자는 자신의 사상을 쉽게 정리한다. <노자>부터 최근 <동학>과 <주역>에 이르는 수많은 저작들의 내용이 한 달 동안의 사건과 함께 펼쳐져 지식의 넓이와 함께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을 다루는 장은 깊이도 함께 보여주는 책이라 생각된다.

이처럼 <난세일기>는 어려운 시대의 의미를 저자 자신의 철학으로 비추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일반적으로 무능과 무지로 평가하는 윤석열 정부의 폭정이 방식에 있어서는 거칠지만, 그 의도는 분명한 지향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행동은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것처럼 불안하게 보이지만, 그 의도는 마치 혈(穴)자리를 끊듯 우리의 가치를 손상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저자는 자신의 사상의 여정을 정리하며 밝힌다. 윤석열을 철학적으로 조망한다... 조금은 이질적인 조합처럼 느껴지지만, 어지러운 세상의 의미와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또한 정리가 필요한 것은 아닌가를 책을 통해 생각하게 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3-07-18 21: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 시절의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구호가 난무하던 시절이 기억납
니다.

지금이 난세가 아니라면 언제가
난세일 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겨울호랑이 2023-07-18 21:57   좋아요 1 | URL
비정상의 정상화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황이 더 안 좋아지니, 갈수록 어지러워지는 것 같습니다. 기후위기가 심각한 요즘 자연과 사회 모두 절박함이 일상이 된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