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대표적인 사상 중에 음양사상이 있다. 음양사상은 만물이 음과 양으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한다. 이때 음과 양은 각각 독립된 개체가 아니다. 음은 그늘을 뜻하고 양은 햇빛을 뜻한다. 마치 빛과 그림자가 따로따로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음양사상은 이 세상 만물이 홀로 존재할 수 없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p49)... 동양에서는 사람이라는 개념 속에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 조건, 즉 환경과 맥락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서양에서 말하는 사람 man이 땅, 하늘과의 관계를 전제하지 않은 독립된 개별적 존재를 의미하는 것과 대조적이다(p50)... 서양에서는 모든 사물이 독립된 물체들의 결합이라고 믿기 때문에 쪼개고 또 쪼개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본질적인 물체에 도달한다 믿었고, 이것을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 여겼다.(p51) <동과 서> 中 


 EBS 다큐멘터리 <동과 서>에서는 동양(東洋) 사상과 서양(西洋) 사상을 위와 같이 대조하고 있다. 관계 중심의 동양 사상과 본질 중심의 서양 사상은 의학(醫學)에서 어떤 차이를 보이며 발전해왔을까. 이번 페이퍼에서는 서양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of Cos, BC 460 ~ BC 370)의 전집에서 내용을 발췌하여 엮은 <의학이야기>와 고대 중국의 의학서인 <황제내경 黃帝內經> 발췌본을 통해 두 문명의 의학에 담긴 사상(思想)을 비교, 대조해 보고자 한다.


 오늘날의 서양 의학과 동양 의학은 서로 다른 경로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진단과 치료에 있어 많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의학 이야기>와 <황제 내경> 속의 내용을 살펴보면, 초기 의학 발전 단계에서 병(病)의 원인에 대한 생각은 큰 차이가 없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인간은 건강한 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인간의 몸은 운동을 하고 있는 자연의 일부분으로서, 이 운동은 밖에서부터 온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의 호흡과 체온, 체액의 작용 등에 의하여 알맞게 조립되어진 것이다. 다만 태어날 때 혹은 유아 때 어떤 결함을 가졌다면 이것은 다른 문제이다.(p18) <의학이야기> 中


 올바른 생각으로 의학에 몸담을 의욕이 있는 사람은 먼저 사계절이 어떤 방법으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계절은 각각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같은 계절일지라도 환절기에는 온도차가 매우 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사는 새로운 장소에 도착하면 먼저 바람은 어디서, 어떻게 불어오고 해는 어느 쪽에서 뜨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이런 점을 깊이 살핀 후 물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를 알아본다.(p21) <의학이야기> 中

 

 각 계절에 해당하지 않는 바르지 않은 기운을 때맞춰 피하고, 생각을 고요하게 하고 혼란스럽게 하지 않는다면 바른 기운이 이를 따르고 정(精)과 신(神)이 몸 안에 충만한데, 어떻게 병이 들어올 수 있겠는가(p17)... 사계절 음양의 기를 거역하면, 근본을 해치게 되어 생명을 유지하는 기운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계절의 음양이라는 것은 만물의 시작이고 끝이며, 삶과 죽음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거역하면 재해가 생기고 이를 따르면 질병이 발생하지 않습니다.(p22) <황제내경> 中


 이처럼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인간 병의 원인을 공통적으로 환경으로부터 찾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동양 사상과 서양 사상은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다만, 서양 의학의 경우에는 자연 환경의 영향을 보다 큰 것으로 생각하였음을 <의학 이야기>를 통해 확인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동서양 의학의 작은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의 체형/체질이 땅의 성질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것과 이로부터 정체(政體)까지 결정되었다는 히포크라테스의 설명은 자연(환경)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절대요소였음을 짐작케 한다. 인간에게 일방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자연으로부터 절대적인 신(神), 엄한 아버지의 느낌을 받게 된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체형은 땅의 성질에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땅이 비옥하고 부드럽고 수분이 많으며, 물이 지표 가까이 있어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순조로운 기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살이 찌기 쉽고, 관절이 굳어 벌어지지 않고, 게으름이 엿보인다.(p48) <의학이야기> 中

 

 이번에는 아시아와 유럽의 차이점을 설명하고자 한다. 이 두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체질은 많이 다르다. 아시아의 땅에서 자라나는 초목과 인간은 유럽의 그것과는 다르다. 아시아는 땅이 비옥하여 모든 것이 아름답고 크게 성장하고, 기후도 온화하여 인간의 기질을 보다 부드럽고 온건하게 만든다.(p35)... 아시아 사람들은 유럽 사람보다 전투적이 아니고 기질이 온화하여 무기력하고 용기가 없어 보인다. 그 주요 원인은 계절에 따라 더위와 추위의 변화가 심하지 않는 온화한 날씨 때문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왕이 통치하고 있다. 전제 군주 밑에서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 통치하거나 독립하지 못한다.(p39) <의학이야기> 中


 사실, 이러한 설명은 히포크라테스만의 독창적인 인식은 아니다. 거의 동시대를 살다간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os, BC 485 ~ ?)의 <역사 Histories Apodexis>안에도 기후가 기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설명이 거의 같은 내용으로 언급된 것을 보면 고대 그리스인들의 인식이 이와 같았음을 알 수 있다.

 

 아이귑토스[이집트]의 기후가 특이하고 그곳의 강이 다른 강과 다르듯이, 아이귑토스들의 관습과 풍속도 거의 모든 점에서 다른 민족의 그것과 정반대다.(제2권 35)p181... 아이귑토스인들은 리뷔에인들 다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민족이다. 그것은 기후 때문이라고 생각되는데, 말하자면 계절의 변화가 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병에 걸리는 것은 대개 변화 때문이며, 그중에서도 특히 계절의 변화 때문이다.(제2권 77) p206 <역사> 中


 다만, 이들 문헌에서는 고대 인간의 힘이 미약해서인지는 몰라도, 자연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데, 이에 반해 동양 문헌인 <황제 내경>에서는 자연 법칙이 인간에게도 적용되는 보편적인 도(道)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맛의 경우 동양에서 다섯 가지의 맛 안에는 변화의 질서가 담겨 있는 반면, 서양에서는 강한 자극은 제거할 대상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여겨진다.


 동방(東方)은 바람을 낳고 바람은 나무를 낳으며, 나무는 신맛을 낳고 신맛은 간을 낳으며, 간은 힘줄(筋)을 낳고 힘즐은 심장을 낳으며, 간은 눈을 주관합니다. 그 음양은 하늘에서는 현(玄)이 되고 사람에게는 도(道)가 되며 땅에서는 변화(化)가 되는데, 이 변화로부터 다섯 가지 맛이 생겨나고 도는 지혜를 낳으며 현은 신(神)을 낳습니다.(p24) <황제내경> 中


 그들은 또한 건습열한(乾濕熱寒) 이외의 것들은 인체를 해치는 것도 아니고 또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이들 각각이 갖는 강한 자극, 즉 인체가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의 강한 것이 해를 준다고 생각하여 이를 제거시키고자 노력하였다. 단 것 중에서도 더 단 것, 쓴 것 중에서도 더 쓴 것, 신 것 중에서도 더 신 것이 있어 각각에 함유된 모든 성질의 가장 강한 것들이 몸 속에 있어 인체를 해롭게 함을 발견하였다.(p81) <의학이야기> 中


[그림] 4원소와 오행(출처 : http://energy75.blogspot.com/2017/02/2.html?m=0)


 <의학이야기>와 <황제내경> 속에 담긴 내용을 통해 우리는 자연(自然)을 인식하는 구조의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서로 소통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동양과는 달리, 일방의 영향을 주는 절대적 존재로 바라본 서양. 이러한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이후 동양과 서양 의학의 다른 발전을 가져오는 요인 중 하나는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순수한 형식인 공간/시간 표상에서만 한 대상은 우리에게 직관될 수 있다. 일정한 공간/시간 관계에서만 한 대상은 우리에게 주어진다. 우리에게는 이 형식에서만 한 사물이 존재한다.... 현상들을 주관적인 형식적 조건 아래서만 성립한다. 그러나 주관적인 현상만으로써 현상이 성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사물들은 사물 자체가 우리 감성을 촉발하는 것을 계기로 우리 의식 안에 생기는 감각을 매개로 해서만 현상한다.(p44)... 요컨대, 객관으로서의 사물 그 자체와 주관이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두 근거이다. 이 관계에서 전자를 초월적 객관이라고 일컫고, 후자를 초월적 주관이라 일컫는다.(p45) <순수이성비판 1 : 해제> 中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1724 ~ 1804)는 <순수이성비판 純粹理性批判, Kritik der reinen Vernunft>을 통해 사물(자연 현상)이 우리의 주관을 통해 인식되었을 때 현상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칸트가 이러한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근대 이후 과학(科學, science)의 발전으로 인간의 힘이 자연과 대등하거나 우위에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자연의 영향을 받았던 고대에서 문명(文明)의 발달로 인해 자연을 정복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자연은 신(神)의 위치에서 내려와 이제는 사물(事物)로 존재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근대 철학은 출발하게 되었음을 우리는 여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오이디푸스 왕>은 소위 운명 비극이다. 비극적 효과는 신들의 절대적 의지와 파멸에 직면한 인간들의 헛된 반항 사이의 대립에 근거하고 있다.(p319)... 오이디푸스처럼 우리도 자연이 우리에게 강요한 소원, 도덕을 모욕하는 소원의 존재를 모르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소원이 폭로되면, 우리는 모두 유년시절의 사건들을 애써 외면하려 한다.(p320) <꿈의 해석> 中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 ~ 1939)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Oedipus complex)라는 개념을 통해 강한 아버지와 이로부터 초래되는 거세 불안을 언급하면서, 이러한 갈등구조가 현실적인 자아를 만들면서 극복된다고 해석한 바있다. 이처럼, 서양 문명은 강한 자연의 힘 앞에서 불안감을 느끼다가, 이러한 공포를 과학이라는 힘을 통해 극복하고, 이에 대한 복수를 자연과 주변 문명에게 한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복수의 구체적 모습은 유발 하라리가 <호모 사피엔스>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자본주의(資本主義), 제국주의(帝國主義), 과학(科學), 기독교(基督敎)의 형태로 표현된 것은 아니었을까.


 페이퍼가 길어졌지만, 이처럼 <의학이야기>와 <황제내경> 속에는 의학에 대한 지식 뿐 아니라 고대인들의 인식에 대해 알려준다. 그리고, 우리의 현재 모습은 이러한 과거의 인식에서 비롯되었음을 다시 확인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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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9-05 20: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연에 대한 인간의 ‘복수’... 곰곰 생각해 볼만큼 새롭고 흥미있는 말씀이세요. ^^

겨울호랑이 2018-09-05 20:28   좋아요 3 | URL
관련한 책들을 읽다 보니, 그쪽으로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편협한 제 생각이겠지만요. ㅋ 또 동시에, 자연으로부터 ‘환경의 역습‘을 받고 있는 것 또한 지금의 현실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저 또한 오늘 북다이제스터님 글을 읽으면서 또 여러 생각할 거리를 받아갑니다. 감사합니다.^^:)

AgalmA 2018-09-06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 자본주의 기타 등등에 벌벌 떠는 지금 생각하면 이게 다 무슨 코미딘가 싶어요...으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뒤 했다는 말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모르나이다˝ 그 짝인 걸까요.
바람만 살짝 바뀌어도 이리 살만한데 우리의 욕심은 끝도 없지요.

겨울호랑이 2018-09-06 09:42   좋아요 1 | URL
사실 우리가 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발달시킨 자본주의, 과학, 종교가 이제는 인간의 삶을 옭아매는 것을 보면, AgalmA님의 말씀처럼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 초심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2018-09-06 1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06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09 0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09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09 0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