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은 일부 세포들이 비정상적으로 증식하여 자연적으로 주어진 공간 너머로 퍼짐으로써 덩어리로 자라는 현상이다. 암은 하나의 질환이 아니라 다양한 증상을 보이는 여러 질환들의 묶음이다. 유전자 결함, 노화, 그 밖에도 정체 모를 여러 발암물질들이 암을 일으킨다.(p418) <인체, 완전판> 中 


 암(癌 cancer)은 이제 우리에게 낯선 질병이 아니다. 2016년 한해에만 229,180명의 암환자가 발생하는 현실(<국가암등록사업 연례보고서(2016년 암등록통계), 국립암센터>은 현대인 모두가 암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한다. 최근 높아진 의학 기술 수준은 암을 조기발견하고, 치료해 생존율을 높여주었지만, 이러한 사실이 암에 대한 공포를 감소하진 못한다. 치료 시 발생하는 여러 부작용등과 다른 질병 대비 높은 사망률을 생각하면, 암은 현재 여러 질병 중 가장 위협적인 질병임에 틀림없다. 


  <암 : 만병의 황제의 역사 The Emperor of All Maladies: A Biography of Cancer>는 최근까지 이루어진 암치료의 역사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그리고, 책을 통해 우리는 암치료 역사와 함께 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암이 최근에 발견된 질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의 질병으로 인식되는 것은 과거에는 호환, 마마와 같은 병등으로 인한 사망이 다수였기 때문이며, 이들 질병이 거의 사라진 지금은 암이 인간은 필멸의 존재( a mortal being)를 일깨운다. 질병을 단순히 제거할 대상이 아닌 동반자로 생각할 수 있다면 고통 역시 무의미 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는 페이퍼 후반에 다룰 것이다.

 

 암은 나이와 관련이 있는 병이며, 나이가 들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암도 있다. 고대 사회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암에 걸릴 정도로 오래 살지 못했다. 그보다 훨씬 더 전에 결핵, 수종, 콜레라, 천연두, 한센병, 페스트, 폐렴으로 사망했다. 사실 세상에 암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두 가지 부정적인 사건의 산물이다. 암은 다른 살인자들이 다 살해될 때에야 흔해진다... 문명은 암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수명을 연장시킴으로써 암의 정체를 드러나게 한다.(p58)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 中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에서는 암치료를 위한 여러 학자들의 노력이 소개된다.  이들 학자들의 노력을 살펴보기 전에 간단하게 암의 발생과 전이, 그리고 상태등 암에 대한 기초지식을 살짝 건드려보자. 이는 <인체, 완전판 DK The Complete Human Body: The Definitive Visual Guide>의 내용을 통해 살펴보자.


 암은 여러 사건들이 함께 발생하여 시작된다. 최초의 유발인자는 보통 세포 행동을 규정하는 종양유전자(oncogene) DNA가 손상되는 사건이다. 그 DNA에 돌연변이가 생기거나 손상되면, 정상적인 세포자멸사 과정이 차단되어 세포들이 끝없이 분열한다... 국소암(local cancer)은 암세포들이 원래 위치에서 성장되고 증식한 것이다. 주된 확산 경로는 영양소 분배와 노폐물 수거를 담당하는 혈액계통과 림프계통으로, 혈관이나 림프관 벽이 뚫리면 암세포들은 관으로 들어가서 다른 부위로 이동한다. 주로 간, 뇌, 허파, 뼈로 간다. 암세포들이 다른 부위에 정착하면 독자적으로 더 공격적인 암이 자랄지도 모른다. 이것이 전이(metastasis)이고, 이런 암이 전이암이다.(p419)<인체, 완전판> 中


 종양(tumor)은 세포 덩어리를 말한다. 악성(malignant)종양은 정상 조직을 침투하여 다른 부위로 퍼지고, 양성(benign)종양은 확산하지 않는다. 종양은 세포 덩이가 비정상적으로 빨리 분열하여 정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으로 세포 성장과 분열이 빠를수록, 세포 구조가 비정상일수록, 널리 확산될수록 악성이 심하다.(p418) <인체, 완전판> 中


 세포의 변이로 발생하는 암을 치료하는 방법 중 현재  수술과 방사선 치료, 화학 치료 등이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된다. 서로 다른 장단점을 가진 이들 치료는 독립적으로도 활용되지만, 환자의 상태에 따라 보완적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암 치료법은 종양 제거 수술, 방사선치료, 암세포를 죽이는 항암제(anticancer drug)를 동원한 화학요법 등이 있다. 특히 초기 암이나 양성종양은 수술로 종양을 제거해 치료한다. 다른 치료에 앞서 종양 크기를 줄이거나 종양이 주변 조직을 해치지 못하도록 막을 때도 수술한다. 강력한 방사선으로 암세포를 파괴하는 방사선 치료는 암을 치료할 수도 있고, 종양 성장을 늦추거나 예방할 수도 있다. 화학요법(chemotherapy)은 손상 혹은 돌연변이 종양유전자, 성장 인자들, 분열하는 암세포 등을 표적으로 삼는 다양한 화학약제를 적용한다.(p419) <인체, 완전판> 中


 그렇지만, 이들 치료방법으로도 암을 완전히 치료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암이 다른 질병과 다르게 진화(evolution)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갖는 진화는 화학치료에는 내성으로, 제거 수술에는 재생으로, 방사선 치료에는 방사선에 의한 다른 종의 암발생으로 대응하기에 암치료는 현재까지도 어렵다.


 암은 단순한 클론 질병이 아니다. 그것은 진화하는 클론 질병이다. 성장이 진화 없이 일어난다면, 암세포는 침략하고 생존하고 전이하는 강력한 능력을 갖추지 못할 것이다. 모든 세대의 암세포는 모세포와 유전적으로 다른 소수의 세포도 만들어낸다. 화학요법 약물이나 면역계가 암을 공격하면, 그 공격에 저항할 수 있는 돌연변이 클론이 자라서 불어난다. 최적자인 암세포는 살아남는다. 돌연변이, 선택, 과잉 성장의 이 즐겁지 않은 냉혹한 순환은 생존과 성장에 점점 더 적응한 세포들을 만들어낸다... 암은 다른 질병들과 달리 진화의 근본 논리를 활용한다. 종으로서의 우리가 다윈 진화의 최종 산물이라면,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이 경악할 질병도 그렇다.(p52)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 中 


 이러한 현실에서 최근 강아지 구충제인 펜벤다졸(fenbendazole)로 암을 치료했다는 사례가 널리 퍼지고 있다. 6주만에 4기 암환자가 펜벤다졸 복용 후 완치되었다는 보도는 암치료와 관련한 높은 사회비용을 생각하면 충격적이기까지 해서, 현재 강아지 구충제가 품귀현상을 겪고 있다. 현재 논란중인 사안이라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책의 내용과 함께 '펜벤다졸 품귀 현상'과 '암 치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담배'가 공공연하게 판매되는 저렴한 발암물질임을 생각한다면, 강아지 구충제는 아니어도 저렴한 치료약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우리가 비싼 약에만 의존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을까.



 위협과 대처 사이의 간격이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거의 모든 신약을 잠재적인 발암물질로 보고 엄격히 정밀 검사를 하며, 어떤 물질이 암과 연관이 있다는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대중적인 히스테리와 언론의 불안이 대폭발을 일으키는 나라인 미국에서, 인류에게 알려진 가장 강력하고 가장 흔한 발암물질 중 하나가 모든 구멍가게에서 푼돈을 내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니 정말 희한하고 불편하기 그지없다.(p306)<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 中


 이러한 의심은 미국에서 암연구 초기 암예방보다는 암치료에 치중된 연구예산을 고려했을 때 합리적 의심으로 바뀐다. 전체 예산의 80퍼센트가 치료 예산이라는 사실 을 통해 미국 제약자본은 이를 건강복지 차원이 아닌 이윤창출의 수단으로 접근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로부터 제약회사와 보험회사는 막대한 시장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 이러한 의심이 오늘의 강아지 구충제 품귀현상으로 이어진 것이라 조심스럽게 판단해본다.


 1974년 연구소 지원금의 대다수인 80퍼센트는 암의 치료 전략으로 향했다. 예방 연구에는 약 20퍼센트가 돌아갔다. NCI 연구 예산 20억 달러 중에서 6억 달러가 예방 연구에 쓰이고 있었다. 예방이나 조기 검출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는 것은 시사적이었다. 연구소는 암 예방을 핵심 동력으로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p263)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 中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암치료'에 대해 생각해보자. <은유로서의 질병 Illness as Metaphor>에서 수전 손택(Susan Sontag, 1933 ~ 2004)은 '이제 암이 문을 두드리지 않은 채 불쑥 들어오는 질병이 될 차례이다'라고 말했지만, 현대 의학은 암이 외부로부터 찾아오는 질병이 아닌 RNA 안에 들어있는 단백질의 변이와 전이로 상태를 악화시킴을 밝힌다. 의학적으로 암은 우리 내부의 문제다. 


  암의 은유들이 지극히 현대적이라서 우리는 암을 "현대적인" 질병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암은 과다 생산, 전격 성장이 특징인 병이다. 통제 불능이라는 심연에 빠지는 성장, 멈출 수 없는 성장이 바로 암이다. 현대 생물학은 세포를 분자 기계로 상상하라고 부추긴다. 암은 첫 명령(성장하라)을 삭제할 수 없어서, 파괴가 불가능하며 자체적으로 추진되는 자동장치로 변신한 기계이다.(p50)... 암은 지나치게 많은 세포로 몸을 채워서 우리를 질식시킨다. 그것은 다른 의미의 소모(consumption), 즉 과잉의 병리학이다. 암은 팽창주의 질병이다.(p51)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 中 


  리보핵산(ribonucleic acid), 즉 RNA라는 분자였다. RNA는 유전자 청사진의 작업본이다. 유전자가 단백질로 번역되는 것은 RNA를 통해서이다. 유전자의 이 중간 RNA  사본을 유전자의 "메시지"라고 한다. 유전정보는 일련의 분리되고 통합된 단계들을 통해서 한 세포에서 다음 자손으로 전달된다. 우선 염색체에 자리한 유전자는 세포가 분열할 때 복제되어 자손 세포로 전달된다. 그 다음에 DNA 형태의 유전자는 RNA 사본을 만든다. 마지막으로 이 RNA 메시지는 단백질로 번역된다. 유전정보의 최종산물인 단백질은 유전자에 암호로 담겨 있던 기능을 수행한다.(p383)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 中


 극단적인 과잉과 팽창(inflation)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과도 성장을 통해 개체를 죽음으로 이끄는 암은 여러 면에서 통한다. 경제성장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현대사회 시스템을 살아가는 인간의 몸이 여기에 적응하고, 이러한 인간 안의 세포가 개체의 상태에 적응하는 것이 부자연스럽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암은 현대인과 현대사회를 대표하는 질병으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의학적이지는 않지만 암의 예방을 위한 해방책 역시 여기로부터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되도록 적게, 되도록 가볍게


 연기가 꿀벌을 벌집에서 몰아내듯 과음과 과식은 영적인 힘을 우리에게서 몰아내 버린다. 과식하고 있다면 게으르지 않을 수 없다. 과음한다면 금욕하기 어렵다. 등불을 들고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 있다. 그가 헤매다 지쳐서 등불을 꺼버리면 아무 방향으로나 걷게 된다. 흡연과 음주로 지적 능력이라는 불빛을 꺼뜨리면 우리도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게 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3 행복> 中


  레프 톨스토이(Count Lev Nikolayevich Tolstoy, 1828 ~ 1910)의 글과 노자(老子, BC 601 ? ~ ?)의 허(虛)와 같은 비우는 마음. 되도록 적게, 되도록 가볍게 하려는 마음이 끊임없이 채우려하는 물질계의 '엔트로피(Entropy)'에 대응하는 '엘랑비탈(Elan Vital)'로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이같은 마음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도덕적인 삶을 살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치명적인 현대의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아닐런지 생각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PS. 뜬금없는 생각. 몸에 생긴 암을 치료하는 방법이 수술, 화학치료, 방사선 치료가 있다면, 우리 사회의 암을 치료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수술은 극단적인 절제술이니 혁명이 될 것이고, 화학치료는 지속적인 치료법이니 중단없는 개혁이 해당될까. 방사선 치료는.... 마땅히 생각나지 않으니 다소 억지스럽지만, 한반도 비핵화로 대충 맞춰 본다. 이제 서초동으로 암치료하러 나갈 시간이 되어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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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5 22: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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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5 22: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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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3 00: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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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3 09: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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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의 대표적인 사상 중에 음양사상이 있다. 음양사상은 만물이 음과 양으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한다. 이때 음과 양은 각각 독립된 개체가 아니다. 음은 그늘을 뜻하고 양은 햇빛을 뜻한다. 마치 빛과 그림자가 따로따로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음양사상은 이 세상 만물이 홀로 존재할 수 없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p49)... 동양에서는 사람이라는 개념 속에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 조건, 즉 환경과 맥락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서양에서 말하는 사람 man이 땅, 하늘과의 관계를 전제하지 않은 독립된 개별적 존재를 의미하는 것과 대조적이다(p50)... 서양에서는 모든 사물이 독립된 물체들의 결합이라고 믿기 때문에 쪼개고 또 쪼개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본질적인 물체에 도달한다 믿었고, 이것을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 여겼다.(p51) <동과 서> 中 


 EBS 다큐멘터리 <동과 서>에서는 동양(東洋) 사상과 서양(西洋) 사상을 위와 같이 대조하고 있다. 관계 중심의 동양 사상과 본질 중심의 서양 사상은 의학(醫學)에서 어떤 차이를 보이며 발전해왔을까. 이번 페이퍼에서는 서양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of Cos, BC 460 ~ BC 370)의 전집에서 내용을 발췌하여 엮은 <의학이야기>와 고대 중국의 의학서인 <황제내경 黃帝內經> 발췌본을 통해 두 문명의 의학에 담긴 사상(思想)을 비교, 대조해 보고자 한다.


 오늘날의 서양 의학과 동양 의학은 서로 다른 경로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진단과 치료에 있어 많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의학 이야기>와 <황제 내경> 속의 내용을 살펴보면, 초기 의학 발전 단계에서 병(病)의 원인에 대한 생각은 큰 차이가 없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인간은 건강한 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인간의 몸은 운동을 하고 있는 자연의 일부분으로서, 이 운동은 밖에서부터 온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의 호흡과 체온, 체액의 작용 등에 의하여 알맞게 조립되어진 것이다. 다만 태어날 때 혹은 유아 때 어떤 결함을 가졌다면 이것은 다른 문제이다.(p18) <의학이야기> 中


 올바른 생각으로 의학에 몸담을 의욕이 있는 사람은 먼저 사계절이 어떤 방법으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계절은 각각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같은 계절일지라도 환절기에는 온도차가 매우 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사는 새로운 장소에 도착하면 먼저 바람은 어디서, 어떻게 불어오고 해는 어느 쪽에서 뜨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이런 점을 깊이 살핀 후 물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를 알아본다.(p21) <의학이야기> 中

 

 각 계절에 해당하지 않는 바르지 않은 기운을 때맞춰 피하고, 생각을 고요하게 하고 혼란스럽게 하지 않는다면 바른 기운이 이를 따르고 정(精)과 신(神)이 몸 안에 충만한데, 어떻게 병이 들어올 수 있겠는가(p17)... 사계절 음양의 기를 거역하면, 근본을 해치게 되어 생명을 유지하는 기운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계절의 음양이라는 것은 만물의 시작이고 끝이며, 삶과 죽음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거역하면 재해가 생기고 이를 따르면 질병이 발생하지 않습니다.(p22) <황제내경> 中


 이처럼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인간 병의 원인을 공통적으로 환경으로부터 찾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동양 사상과 서양 사상은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다만, 서양 의학의 경우에는 자연 환경의 영향을 보다 큰 것으로 생각하였음을 <의학 이야기>를 통해 확인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동서양 의학의 작은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의 체형/체질이 땅의 성질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것과 이로부터 정체(政體)까지 결정되었다는 히포크라테스의 설명은 자연(환경)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절대요소였음을 짐작케 한다. 인간에게 일방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자연으로부터 절대적인 신(神), 엄한 아버지의 느낌을 받게 된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체형은 땅의 성질에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땅이 비옥하고 부드럽고 수분이 많으며, 물이 지표 가까이 있어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순조로운 기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살이 찌기 쉽고, 관절이 굳어 벌어지지 않고, 게으름이 엿보인다.(p48) <의학이야기> 中

 

 이번에는 아시아와 유럽의 차이점을 설명하고자 한다. 이 두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체질은 많이 다르다. 아시아의 땅에서 자라나는 초목과 인간은 유럽의 그것과는 다르다. 아시아는 땅이 비옥하여 모든 것이 아름답고 크게 성장하고, 기후도 온화하여 인간의 기질을 보다 부드럽고 온건하게 만든다.(p35)... 아시아 사람들은 유럽 사람보다 전투적이 아니고 기질이 온화하여 무기력하고 용기가 없어 보인다. 그 주요 원인은 계절에 따라 더위와 추위의 변화가 심하지 않는 온화한 날씨 때문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왕이 통치하고 있다. 전제 군주 밑에서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 통치하거나 독립하지 못한다.(p39) <의학이야기> 中


 사실, 이러한 설명은 히포크라테스만의 독창적인 인식은 아니다. 거의 동시대를 살다간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os, BC 485 ~ ?)의 <역사 Histories Apodexis>안에도 기후가 기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설명이 거의 같은 내용으로 언급된 것을 보면 고대 그리스인들의 인식이 이와 같았음을 알 수 있다.

 

 아이귑토스[이집트]의 기후가 특이하고 그곳의 강이 다른 강과 다르듯이, 아이귑토스들의 관습과 풍속도 거의 모든 점에서 다른 민족의 그것과 정반대다.(제2권 35)p181... 아이귑토스인들은 리뷔에인들 다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민족이다. 그것은 기후 때문이라고 생각되는데, 말하자면 계절의 변화가 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병에 걸리는 것은 대개 변화 때문이며, 그중에서도 특히 계절의 변화 때문이다.(제2권 77) p206 <역사> 中


 다만, 이들 문헌에서는 고대 인간의 힘이 미약해서인지는 몰라도, 자연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데, 이에 반해 동양 문헌인 <황제 내경>에서는 자연 법칙이 인간에게도 적용되는 보편적인 도(道)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맛의 경우 동양에서 다섯 가지의 맛 안에는 변화의 질서가 담겨 있는 반면, 서양에서는 강한 자극은 제거할 대상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여겨진다.


 동방(東方)은 바람을 낳고 바람은 나무를 낳으며, 나무는 신맛을 낳고 신맛은 간을 낳으며, 간은 힘줄(筋)을 낳고 힘즐은 심장을 낳으며, 간은 눈을 주관합니다. 그 음양은 하늘에서는 현(玄)이 되고 사람에게는 도(道)가 되며 땅에서는 변화(化)가 되는데, 이 변화로부터 다섯 가지 맛이 생겨나고 도는 지혜를 낳으며 현은 신(神)을 낳습니다.(p24) <황제내경> 中


 그들은 또한 건습열한(乾濕熱寒) 이외의 것들은 인체를 해치는 것도 아니고 또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이들 각각이 갖는 강한 자극, 즉 인체가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의 강한 것이 해를 준다고 생각하여 이를 제거시키고자 노력하였다. 단 것 중에서도 더 단 것, 쓴 것 중에서도 더 쓴 것, 신 것 중에서도 더 신 것이 있어 각각에 함유된 모든 성질의 가장 강한 것들이 몸 속에 있어 인체를 해롭게 함을 발견하였다.(p81) <의학이야기> 中


[그림] 4원소와 오행(출처 : http://energy75.blogspot.com/2017/02/2.html?m=0)


 <의학이야기>와 <황제내경> 속에 담긴 내용을 통해 우리는 자연(自然)을 인식하는 구조의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서로 소통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동양과는 달리, 일방의 영향을 주는 절대적 존재로 바라본 서양. 이러한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이후 동양과 서양 의학의 다른 발전을 가져오는 요인 중 하나는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순수한 형식인 공간/시간 표상에서만 한 대상은 우리에게 직관될 수 있다. 일정한 공간/시간 관계에서만 한 대상은 우리에게 주어진다. 우리에게는 이 형식에서만 한 사물이 존재한다.... 현상들을 주관적인 형식적 조건 아래서만 성립한다. 그러나 주관적인 현상만으로써 현상이 성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사물들은 사물 자체가 우리 감성을 촉발하는 것을 계기로 우리 의식 안에 생기는 감각을 매개로 해서만 현상한다.(p44)... 요컨대, 객관으로서의 사물 그 자체와 주관이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두 근거이다. 이 관계에서 전자를 초월적 객관이라고 일컫고, 후자를 초월적 주관이라 일컫는다.(p45) <순수이성비판 1 : 해제> 中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1724 ~ 1804)는 <순수이성비판 純粹理性批判, Kritik der reinen Vernunft>을 통해 사물(자연 현상)이 우리의 주관을 통해 인식되었을 때 현상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칸트가 이러한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근대 이후 과학(科學, science)의 발전으로 인간의 힘이 자연과 대등하거나 우위에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자연의 영향을 받았던 고대에서 문명(文明)의 발달로 인해 자연을 정복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자연은 신(神)의 위치에서 내려와 이제는 사물(事物)로 존재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근대 철학은 출발하게 되었음을 우리는 여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오이디푸스 왕>은 소위 운명 비극이다. 비극적 효과는 신들의 절대적 의지와 파멸에 직면한 인간들의 헛된 반항 사이의 대립에 근거하고 있다.(p319)... 오이디푸스처럼 우리도 자연이 우리에게 강요한 소원, 도덕을 모욕하는 소원의 존재를 모르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소원이 폭로되면, 우리는 모두 유년시절의 사건들을 애써 외면하려 한다.(p320) <꿈의 해석> 中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 ~ 1939)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Oedipus complex)라는 개념을 통해 강한 아버지와 이로부터 초래되는 거세 불안을 언급하면서, 이러한 갈등구조가 현실적인 자아를 만들면서 극복된다고 해석한 바있다. 이처럼, 서양 문명은 강한 자연의 힘 앞에서 불안감을 느끼다가, 이러한 공포를 과학이라는 힘을 통해 극복하고, 이에 대한 복수를 자연과 주변 문명에게 한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복수의 구체적 모습은 유발 하라리가 <호모 사피엔스>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자본주의(資本主義), 제국주의(帝國主義), 과학(科學), 기독교(基督敎)의 형태로 표현된 것은 아니었을까.


 페이퍼가 길어졌지만, 이처럼 <의학이야기>와 <황제내경> 속에는 의학에 대한 지식 뿐 아니라 고대인들의 인식에 대해 알려준다. 그리고, 우리의 현재 모습은 이러한 과거의 인식에서 비롯되었음을 다시 확인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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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9-05 20: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연에 대한 인간의 ‘복수’... 곰곰 생각해 볼만큼 새롭고 흥미있는 말씀이세요. ^^

겨울호랑이 2018-09-05 20:28   좋아요 3 | URL
관련한 책들을 읽다 보니, 그쪽으로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편협한 제 생각이겠지만요. ㅋ 또 동시에, 자연으로부터 ‘환경의 역습‘을 받고 있는 것 또한 지금의 현실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저 또한 오늘 북다이제스터님 글을 읽으면서 또 여러 생각할 거리를 받아갑니다. 감사합니다.^^:)

AgalmA 2018-09-06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 자본주의 기타 등등에 벌벌 떠는 지금 생각하면 이게 다 무슨 코미딘가 싶어요...으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뒤 했다는 말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모르나이다˝ 그 짝인 걸까요.
바람만 살짝 바뀌어도 이리 살만한데 우리의 욕심은 끝도 없지요.

겨울호랑이 2018-09-06 09:42   좋아요 1 | URL
사실 우리가 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발달시킨 자본주의, 과학, 종교가 이제는 인간의 삶을 옭아매는 것을 보면, AgalmA님의 말씀처럼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 초심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2018-09-06 1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06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09 00: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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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9 09: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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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9 09: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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