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전설은 초기부터 그리스 신화 - 예를 들어 레다와 백조의 신화나 다나에와 황금의 비(shower of Gold) 신화 - 와 조로아스터교의 사오샨트 신화 양쪽에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모티프를 채택하였다.(p387) <신의 가면 3 : 서양 신화> 中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 1904 ~ 1987)는 <신의 가면 III : 서양 신화 The Masks of God Vol.III: Occidental Mythology>에서 기독교에서 드러나는 페르시아/이집트 문명의 영향에 대해 말한다. 그는 <신의 가면>에서 페르시아/이집트 문명의 영향은 성모 영보(聖母領報 Annunciation), 그리스도 탄생, 동방박사의 방문에서 잘 드러남을 지적한다.


 진짜 기적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전설의 수준에서만 본다면, 동정녀의 탄생은 기독교 유산 가운데 헤브루 측면이 아니라 페르시아나 그리스 측면에서 나온 신화적 모티프로 해석해야 한다.(p389) <신의 가면 3 : 서양 신화> 中


[그림] 성모영보(출처 : https://www.visituffizi.org/artworks/annunciation-by-simone-martini-and-lippo-memmi/)


 그리스도의 탄생 장면에서는 미트라가 어머니 바위로부터 출생하는 전설에 나오는 귀에 익은 모티프를 되풀이한다. 하늘의 군대라는 것도 조로아스터교적인 배경을 암시한다. 특히 주님의 영광의 빛이 비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한 광채 - 아베스탄, Xvarnah, "영광의 빛" - 는 아후라 마즈다에 의한 태초의 창조의 빛이다. 이것은 후광으로 상징된다. 후광은 페르시아의 예술에 처음으로 나타나서, 동쪽으로는 불교도들에게, 서쪽으로는 기독교권에 전파되었다.(p389) <신의 가면 3 : 서양 신화> 中


[그림] 보티첼리, <신비한 탄생, 그리스도의 탄생> (출처 : https://www.pinterest.co.kr/pin/522769469215540357/)

 

 우리에게 예수는 여관 마굿간에서 태어난 전설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콥트 기독교 전승에서는 이집트의 영향을 보다 깊게 확인할 수 있다.


 중동 기독교는 예로부터 예수가 동굴에서 탄생하셨다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성지의 전통 촌락에 있는 많은 소박한 집들도 동굴에서 시작하여 그 수가 늘어갔다. 예수가 태어나신 곳을 동굴로 보는 전통은 2세기 중엽에 저술 활동을 했던 순교자 유스티누스(Justin Martyr)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p54)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 中


 그리스도의 구체적인 탄생 일자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200년 무렵)는 4월 19일로 추정하는 연대기 학자에서부터 5월 20일로 보는 학자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 탄생일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전한다. 클레멘트 자신은 기원전 3년 11월 17일을 그리스도 탄생일로 보았다. 서기 2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동방 그리스도교들은 1월 6일을 그리스도 탄생일로 축하했다. 354년에 로마 교회를 비롯한 일부 서방 교회들은 12월 25일에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했다. 당시 이것은 낮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로 잘못 계산되었다. 동지는 이미 미트라교의 중심 축제로서, 정복당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이었다.(p371) <문명이야기 3-2> 中 


 동방박사 방문은 1월 6일에 기념된다. 이 날짜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처녀" 코레에게서 새로운 아이온(오시리스가 통합주의적으로 인격화된 존재)이 태어나는 것을 기념하는 축제의 날이었다. 그곳에서 코레는 이시스와 동일시되었다. 지평선에 빛나는 별 시리우스(천랑성)가 떠오르는 것이 아이온의 탄생의 표시라고 하여,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때가 되면 그 별이 떠오르기를 기다려왔다(p390) <신의 가면 3 : 서양 신화> 中



[그림] 동방박사의 방문 <Adoration of the Magi> (출처 : https://smarthistory.org/gentile-da-fabriano-adoration-magi-reframed/)


 캠벨은 페르시아 미트라와 이집트 오시리스 신화의 영향을 받은 그리스도 탄생(성탄 聖誕)을 근거로 헬레니즘(Hellenism)과 헤브라이즘(Hebraism) 더 나아가 기독교에 미친 오리엔트 요소를 찾아낸다. 그리고, 이러한 캠벨의 관점은 마틴 버날(Martin Bernal, 1937 ~ 2013)의 <블랙아테나 Black Athena>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블랙아테나>는 이전에도 여러번 넘겼지만, 이번에도 훗날을 기약한다...


 그리스도 탄생을 12월 25일에 기념하는 현재의 관행은 353년이나 354년이 되어서야 제도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일은 로마에서 교황 리베리우스가 시행한 것이다. 미트라가 어머니 바위에서 태어난 것을 기념하던 축제가 그날 열렸기 때문에, 그것을 흡수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12월 25일이 동지였다. 따라서 그때부터 그리스도는 미트라나 로마의 황제와 마찬가지로 다시 떠오른 태양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리스도 탄생 장면에는 2개의 신화와 2개의 날짜가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12월 25일과 1월 6일이라는 이 두 날짜는 각각 페르시아권과 이집트권을 가리키고 있다.(p391) <신의 가면 3 : 서양 신화> 中


 캠벨의 저작에서는 그리스도 탄생과 관련한 헬레니즘 영향을 간략하게 언급하기에,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칼 융(Carl Gustav Jung, 1875 ~ 1961)의 <인간과 상징 Man and His Symbols>의 내용을 옮겨본다. 칼 융은 이 안에서 디오니소스교를 계승한 오르페우스교(Orphicism)와 초기 기독교의 관계를 주목한다. 비록, 두 개의 종교는 지향하는 방향이 과거와 미래로 각각 다르지만, 로마 제국 대중에게 소망의 상징이라는 면에서 같은 의미로 다가갔다. 오르페우스와 기독교의 관계에 대해서는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 1907 ~ 1986)의 <세계종교사상사 2> 리뷰에서 자세히 다룰 계획이다... 이 역시 훗날에.


 디오니소스교는 정신에서 육체로, 육체에서 정신으로 끊임없이 변전하기 때문에 금욕적인 사람에게 이런 의례는 너무 야만적이고 너무 광폭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같은 사람들은 오르페우스 신앙을 통해 내적으로만 종교적 무아경을 체험하게 된다. 오르페우스는 실제 인물이었던 것 같다. 가수, 예언자, 교사였던 그는 결국 학살당했고, 그의 무덤은 성지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초기 기독교 교회가 오르페우스에게서 그리스도의 원형을 봤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못된다. 이 두 종교는 후기 헬레니즘 세계에 내세의 신성한 삶을 약속한다. 로마 제국의 치하에서 사라져 가는 그리스 문화를 지키려던 대중에게, 신의 중재자이자 인간이었던 오르페우스와 그리스도는 미래의 삶에 대한 간절한 소망의 상징이었다.(p214) <인간과 상징> 中


 페르시아/이집트 문명과 이의 영향을 받은 서양 문명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동지(冬至)는 큰 명절이었다. 과거 페이퍼에 올렸던 내용을 다시 올려본다. 팥죽을 먹으면서 액을 쫓는 행위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팥죽할멈과 호랑이 이야기에서 잘 재현되어있다. 이 책들은 딸아이가 좋아하는 책이므로 곁들어 올려 놓는다.


 동짓날은 작은 설(亞歲) 이라고 한다. 팥죽을 쑤고 찹쌀가루를 새알 모양으로 만들어 그 속에 넣어 심으로 삼는다. 꿀을 타서 명절 음식으로 제사에 올린다. 팥죽을 대문에 뿌려 액운을 없앤다. <형초세시기>를 보면 "공공씨(共工氏)에게 어리석은 아들이 있었는데 동짓날에 죽어서 역귀가 되었다. 팥을 무서워하므로 동짓날에는 죽을 만들어 쫓는다."하였다.(p215)... 동짓날 팥죽에 대한 기록은고려시대 문헌에도 보인다. 이제현(李齊賢, 1287 ~ 1367)의 <동지 冬至>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동지에 반드시 팥죽을 끓인다. 東人冬至必烹豆粥"라고 주석이 달려 있다.(p217) <동국세시기 東國歲時記> 中


 밤이 가장 긴, 어둠의 힘이 가장 강한 때인 동지가 거의 모든 문명에서 명절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깊은 어둠이라는 현재 상황의 어려움보다 이제는 밝음이 길어질 것이라는 희망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 아닐까. 문학작품 <어린 성냥팔이 소녀>, <행복한 왕자>,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잘 나타나는 현세의 어두움이 밝은 미래로 바뀌는 순간. 이제는 낮이 밤보다 길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동지(크리스마스)를 명절로 만든 것이라 생각된다. 


 다음날 새벽 어린 소녀는 장밋빛 뺨을 하고 미소를 띤 채, 두 집 사이에 옴츠려 있었다. 소녀는 지난해 마지막 날 밤에 얼어죽은 것이었다.... 소녀가 보았던 것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할머니와 함께 행복한 새해를 맞이하러 간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웠는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었다.(p360) <주석달린 고전 동화집, 어린 성냥팔이 소녀> 中


 마침내 작은 제비는 자신이 곧 죽을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제비는 행복한 왕자에게 입맞춤을 하고는 왕자의 발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그 순간 동상 속에서 무엇이 쪼개지는 듯한 알 수 없는 소리가 났습니다. 납으로 된 왕자의 심장이 두 쪽으로 갈라진 것입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 흉해진 행복한 왕자의 동상을 본 사람들은 동상을 끌어내려 용광로에 넣고 녹여 버렸습니다. 그러나 쪼개진 심장은 아무리 해도 녹지 않았습니다.(p26)... 천사는 조각난 납 심장과 죽은 제비를 가지고 하느님께 돌아갔습니다. "이 새는 천국의 뜰에서 노래를 부르도록 할 것이며, 행복한 왕자는 이 곳에서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니라.(p28)  <행복한 왕자> 中


 페이퍼가 매우 길어졌는데, 우선 이번 페이퍼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교 신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의미있는 날이라는 것이다. 힘든 한 해를 돌아보면서 수고한 자신과 주위를 위로하고 새로운 한 해에 대한 희망을 가지는 날로서. 그리고, 이러한 결론을 내려고 한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합니다. 무슨 선물을 받을까 설게기 때문이지요. 이때 왜 선물을 주고받는지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은 어떨까요?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는 사랑과 행복을 모두와 나누는 것이니까요. <크리스마스를 찾아서, 추천사> 中


 살펴본 이 모든 것을 종합해서, 이웃분들 모두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시길 바랍니다.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내심을 축하드리며, 어제보다 나은 오늘, 그리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


 페이퍼의 마지막은 크리스마스에 많이 공연되는 차이코프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1840 ~ 1893)의 <호두까기 인형 Op.71 The nutcracker Op.71>을 소개하며 "Merry christmas!" 라고만 하면 썰렁할 것 같아 작성하다 늘어져버린 페이퍼를 갈무리합니다...



 <호두까기 인형>은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세 편의 발레 중에서도 가장 짧은 작품으로, 음악성이 원숙에 달한 만년의 시기에 만들어진 대표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의 경험이 충분히 살아있는 작품으로서, 음악적으로도 앞의 두 곡에 필적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곡 전체를 통해서도 독특한 그의 어두운 음영이 보이지 않고, 프랑스 민요 등을 교묘히 인용해 시종 밝고 부드러운 분위기에 넘쳐 있다. 더욱이 동화적 세계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섬세하고 독창적인 수법으로 묘사되고 있다. 천진난만하고 사랑스런 소녀 클라라의 심리와 쥐의 대군을 대조적으로 표현한 것은 찬사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 당시의 발레음악으로서는 처음 시도되어지는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눈의 왈츠>에 어린이 합창을 첨가시켜 그 색채를 풍부하게 그려내었다는 점이다. 또한 첼레스타를 채용하여 훌륭한 효과를 거둔 점 등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p111) <차이코프스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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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4 19: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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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4 19: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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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지 2019-12-27 09: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항상 건강하시고 댁내 두루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겨울호랑이 2019-12-27 10:09   좋아요 2 | URL
갱지님 감사합니다. 갱지님께서도 행복한 연말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다시 인사드립니다.

2019-12-27 10: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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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7 19: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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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2 07: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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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2 08: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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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6 17: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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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6 18: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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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것을 알아 두십시오. 모든 사람이 듣기는 빨리 하되, 말하기는 더디 하고 분노하기도 더디 해야 합니다...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완전한 법 곧 자유의 법을 들여다보고 거기에 머물면, 듣고서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실천에 옮겨 실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사람은 자기의 그 실행으로 행복해질 것입니다. <성경> <야고 1:19 ~ 25)


 시위를 할 때 함께 무리 지어 걷는 것은 정치적 행위이다. 거리를 행진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행진은 상징적 행동으로, 공적인 장소를 걸어 지나감으로써 그 공간을 점령한다는 의미가 있다.. 시위 행진이 있을 때면 수천 명(경찰 추산에 따르면 수백 명)이 사람들이 모여 같은 방향으로 걷는데, 이렇게 함께 걷는 가운데 생성되는 연대감 역시 상징적인 것이다.(p57) <걷다> 中


 2016년 이후 오랫만에 뜻이 맞는 자신의 생각을 실천으로 옮긴 이웃들과 함께 한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서초역과 교대역까지 거리가 짧긴 하지만, 교대역 앞까지 통제된 사람의 물결 속에서 마음이 통하고 생각이 같은 이들을 만나 외롭지 않은 하루였습니다. 편향되고 왜곡된 정보화 시대 속에서 통하는 이들을 길에서 만났을 때의 느낌. 그런 느낌을 깊이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 합니다...


 양명의 지행합일(知行合一)은 주자학의 선지후행설(先知後行說)에 대한비판에서 나온 것이다. 양명은  "알과 행위는 사욕에 의해 가로막힌 것이지, 지행의 본체가 아니다. 알고도 행하지 않는 자는 없었다.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단지 아직 알지 못한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양명은 "참된 앎은 행하기 위한 까닭이다. 행하지 않으면 그것을 앎이라 말 할 수 없다.(眞知所以爲行 不行不足以爲知)"고 하였다. 양명에 의하면 앎은 실천 중에 터득되는 것이므로 지행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전습록 1>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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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8 20: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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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8 22: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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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8 22: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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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8 22: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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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19-09-28 2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방이라 참석이 어렵지만 적극 지지합니다!ㅎ

겨울호랑이 2019-09-28 22:5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막시무스님.!!^^:) 아 참, 저를 지지하는게 아니시지요? 뜻을 같이 하는 분을 만나 반갑습니다.

단발머리 2019-09-29 0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젯밤의 감동이 느껴지네요.
어제 무리지어 행진하는 사람들 속에 겨울호랑이님이 계셨군요. 저도 그 속에 있었습니다. 서로를 몰라보고 지나쳤지만,
겨울호랑이님, 더욱 반갑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09-29 08:36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께서도 오셨군요. 저 역시 반갑습니다. 어제 밤 행사로 고단하실텐데 평안한 휴일 되세요!^^:)

나와같다면 2019-09-29 1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덕분에 미셸 퓌에슈의 [사랑하다] 를 읽었어요

[걷 다] 나는. 오늘도 에도 상징적인 마음을 건드리는 문장이 있네요

겨울호랑이 2019-09-29 17:49   좋아요 1 | URL
[사랑하다]와 [걷 다]를 처음 읽은 시점이 2017년으로 기억이 됩니다. 그때에도 나와같다면님께서 [사랑하다]를 읽고 좋은 독서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이번에도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9-09-29 18: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행합일... 알면서도 가장 어려운 뜻인 것 같습니다. 저녁 날도 추운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9-09-29 18:32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머리와 손발을 일치시키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듯 합니다. 그런데, 사실 어제 더워서 고생했습니다. 반바지를 입을 것 그랬다는 생각을.... 아마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거리 감각을 되찾고, 시간과 공간에 대해 좀더 직접적인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사실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는 도구들을 이용하다보면 주변 세상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없게 된다. 시간과 공간을 좀 더 생생하게 지배할 수 있는 힘을 빼앗기는 것이다.(p42)... 두 발로 걸을 때, 우리는 세상을 직접 경험하고 느낀다.(p45) <걷다> 中


 얼마전 알라딘에서 '독보적'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루 1권의 책을 읽고, 하루 5,000 걸음을 걸으면 하루 미션이 수행되는 이벤트를 통해 '걷기'에 대해 생각하면서 '걷기'와 관련된 오래된 두 권의 책을 꺼내 읽어본다.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발로 걸어가는 인간은 모든 감각기관 의 모공을 활짝 열어주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으로 빠져든다. 그 명상에서 돌아올 때면 가끔 사람이 달라져서 당장의 삶을 지배하는 다급한 일에 매달리기보다는 시간을그윽하게 즐기는 경향을 보인다. 걷는다는 것은 잠시 동안 혹은 오랫동안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p9) <걷기예찬> 中


  몸과 생명의 근원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숲 속 서바이벌 체험을 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야생의 자연에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것들에 대한 감각을 되살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계와 직접 대면할 때의 느낌과 평상시의 그것과의 차이를 통해 현재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p13) <걷다> 中


<걷기예찬 Eloge de la Marche>와 <걷다 Marcher>의 저자는 '걷기'의 의미를 관계에서 찾는다. 나와 나 밖의 세계, 가진 것과 현재 가지고 있지 못한 것. 이들과의 관계를 걷기를 통해 우리는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걷기'를 통해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하루 5,000 걸음이 많게 여겨지지만, 출/퇴근, 식사시간, 청소 등 일상 업무를 보다보면 생각보다 5,000 걸음이 많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별도의 운동시간을 내려한다면 부담스럽게 느껴질 걸음량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움직임과 관계를 맺고 있음을 걸음을 재면서 느낀다. 문제는 5,000걸음을 측정하기 위해서 나는 핸드폰을 들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서비스가 구글 피트니스 서비스와 연동되기 때문에, 전자파가 나오는 핸드폰을 계속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조금(솔직히 많이) 부담되는 것도 사실이다.


 층계참을 지날 때마다 엘리베이터 맞은편 벅에 붙은 커다란 얼굴의 포스터가 그를 노려보았다. 그 얼굴은 교묘하게 그려져 있었다. 마치 눈동자가 사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 얼굴 아래 '빅 브라더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p10) <1984> 中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 ~ 1950)의 <1984>에서 묘사된 빅 브라더(Big Brother)와 같이 내 자신을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핸드폰의 위치 정보 서비스에서 정보 제공을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런 사실이 내게는 크게 위안이 되지 않는다. 구글 위치 정보 제공에 동의해도 정보는 수집된다는 다음의 기사 때문이기도 하다.


 구글 위치정보 기사 : http://www.techdail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49


[사진] 구글 위치 정보 서비스(출처 : 테크데일리)


 텔레스크린은 수신과 송신을 동시에 행한다. 이 기계는 윈스턴이 내는 소리가 아무리 작아도 낱낱이 포착한다. 이 기계는 윈스턴이 내는 소리가 아무리 작아도 낱낱이 포착한다. 더욱이 그가 이 금속판의 시계(視界) 안에 들어 있는 한, 그의 일거일동은 다 보이고 들린다. 물론 언제 감시를 받고 있는지 알 수는 없다.(p11) <1984> 中


 개인적으로 핸드폰을 통한 개인정보 수집에 대해 부정적인 편이다. 수집된 개인 정보가 내 자신을 편리하게 해준다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 모두는 5G로 연결되어 AI(인공지능)에게 감시당하며, 배달앱을 통해 모든 것을 배달하면서 세상과 격리되어 살아갈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 현실화된 이러한 세상이라면, 벤담의 판옵티콘은 오히려 낭만적인 근대감옥이 될 지도 모르겠다.

 

폐쇄되고, 세분되고, 모든 면에서 감시받는 이 공간에서 개인들은 지정된 장소에서 꼼짝 못하고, 아무리 사소한 움직임이라도 통제되며, 모든 사건들은 기록되고, 끊임없는 기록 작업은 중심부와 주변부를 연결시키고, 권력은 끊임없는 위계질서의 형상으로 완벽하게 행사되고, 개인은 줄곧 기록되고 검사되면서, 생존자, 병자, 사망자로 구별된다.(p306)... 벤담(Bentham)의 '판옵티콘(Panopticon)'은 이러한 조합의 건축적 형태이다.(p309)... 수감자에게는 권력의 자동적인 기능을 보장해 주는 가시성의 의식적이고 지속적인 상태가 만들어진다. 감시작용에 중단이 있더라도 그 효과는 계속되도록 하고, 권력의 완벽한 상태는 권력행사의 현실성이 점차 약화되도록하고, 건축의 장치는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과 상관없이 권력관계를 창출하고, 유지하는 기계장치가 되도록 한다.(p311) <감시와 처벌> 中


 얼마 전 모처럼 아이와 함께 가족들이 영화를 보기 위해 나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시간이 남아 이곳저곳을 거닐면서 주변상가를 둘러볼 수 있었는데, 그 상가에 사람이 없는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극장 주변이면 보통 중심상권으로 봐야하는데, 그곳에서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영화는 네플릭스로, 식사는 배달의 민족으로, 옷은 쇼핑몰에서 구입하는 행태가 우리를 세상과 격리시키고, 경기를 어렵게 만드는 주요인은 아닐런지. 그런 의미에서 '걷기'의 의미는 세상과 연결이고, 소통이라는 저자들의 통찰은 적극 공감하게 된다.


 세계를 인식한다는 것은 그 세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 다시 말해서 그 세계를 명명하는 것이다. 도보 여행자가 왜 그토록 이름을 알아내고자 하는지 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p98) <걷기예찬> 中 


 알라딘의 '독보적(獨步的)' 서비스를 통해 걷기의 의미와 현대 과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최근 놀랍게 발달하는 과학기술 속에서 점차 설자리를 잃어가는 인간의 모습이 슬퍼지기도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스티븐 핑거(Steven Pinker, 1954 ~ )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How The Mind Works>를 통해 위로받는다. 

 

 이 사실들을 종합하면, 영혼은 우리가 잠을 잘 때 돌아다니고, 그림자 속에 몰래 존재하고, 연못의 수면을 통해 우리를 훔쳐보고, 우리가 죽을 때 육체를 떠난다는 이론이 나온다. 현대과학은 그림자와 환영을 설명하는 더 훌륭한 이론을 제공했다. 그러나 그것이 꿈을 꾸고, 상상하고, 신체를 조종하는 감각력을 가진 자아를 얼마나 잘 설명할지는 미지수다.(p863)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中


 실재란 어디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있네. 그것도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곧 사라져버릴 개인의 마음속이 아니라 집단적이고 불멸하는 당의 마음속에 있지. 당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건 무엇이든 다 진실일세. 당의 눈을 통해 보지 않고는 실재를 볼 수 없네.(p347) <1984> 中


  이제는 세상과 자신과의 연결, 그리고 자신의 발견을 생각해볼 시간이 된 듯하다. 여기에 현대과학까지 들어올 필요는 사실 없다고 여겨지지만,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된 이상 바람직한 활용을 생각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첫 걸음은 다른 걸음과는 다른다. 첫 걸음을 내딛음으로써 "역동적 불균형"이 시작되어 다른 걸음들이 딸려오기 때문이다. 사랑에서, 그리고 인생의 한 영역에서, 첫 걸음을 내딛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정지 자세를 깨고 불균형 상태를 창출하는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첫 걸음을 떼는 그 순간 이미 상황은 변화했고, 우리는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p34) <걷다> 中


PS. 스탬프 하나에 열심히 미션을 채워가는 자신을 보면 좋게 말해 동심(童心)이 살아 있는 것도 같지만, 어린 시절 '참 잘했어요'의 세뇌 효과가 강했다는 느낌도 함께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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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1 11: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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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1 21: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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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1 11: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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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1 21: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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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9-09-23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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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3일 이외에도 제일이 많은바, <문헌비고>에서는 고구려, 신라, 마한, 가락 등 여러 나라들이 다 중삼(重三 : 3월 3일), 중오(重五 : 5월 5일), 중구(重九 : 9월 9일), 중원(重元, 8월 15일) 등의 날에 하늘과 조상신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하였고... (p81) <조선상고문화사> 中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1880 ~ 1936)는 <조선상고문화사 朝鮮上古文化史>에서 민족 최대 명절인 음력 8월 15일 한가위(漢嘉會)의 유래는 고조선(古朝鮮)시대 '중원'으로부터 찾을 수 있습니다. 제천(祭天)행사가 이루어지는 중요한 날인 이 날 제사와 더불어 음주가무를 남녀노소 모든 이가 즐겼음을 <조선상고문화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한편, 조선시대 편찬된 다른 문헌인 <동국세시기 東國歲時記>에서는 한가위의 기원을 신라에서 찾고 있다는 면에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비록, 시기는 다르지만 이 날이 명절임과 함께 모두가 즐겼던 날이라는 사실은 크게 차이 없습니다.

 

 15일은 우리 풍속에서 추석 또는 가배(嘉徘)라고 하는 날이다. 신라때부터 시작된 풍속인데, 시골 농가에서는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명절이다. 새 곡식이 익고 추수가 머지않았기 때문이다. 누런 닭을 잡고 막걸리를 빚어 사방 이웃이 배불리 먹고 취하여 즐긴다... 8월 16일이 되면 성과의 많고 적음을 살펴 진 쪽이 술과 음식을 준비하여 이긴 쪽을 대접하였다. 이때 노래와 춤을 비롯하여 온갖 놀이를 하는데, 이를 가배라고 하였다.(p187) <동국세시기> 中

 

  한가위는 제사일로서의 의미만 지닌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날은 농사에 있어서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서유구(徐有榘, 1764 ~ 1845)의 <임원경제지 林園經濟志><위선지 魏鮮志>에서는 중추절 기상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습니다.


 8월 중추절(仲秋節)에 달을 볼 수 없으면, 토끼는 새끼를 배지 못하고, 방합조개는(蚌蛤) 알을 배지 못하고, 메밀(蕎麥)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이는 토끼는 달을 바라보면서 새끼를 배고, 방합을 달을 바라보면서 알을 배고, 교맥은 달빛을 얻어 영글기 때문이다. <담총> 중추날 밤에 달빛이 좋으면, 토끼가 많아지고 물고기는 적어진다. 달이 없으면 내년 상원(上元) 등절(燈節)때 비가 내린다. 속언에 "구름이 중추날 달을 싸버리면, 빗방울이 상원(上元)날 등불을 때리리."라 했다.<군방보> 중추에 비가 오면, 큰 장마가 진다. 또 내년에 지대 낮은 밭의 곡물은 잘 여물 것이다.<군방보> 8월 15일이 맑으면, 내년에 지대 높은 밭의 곡물은 잘 여물 것이나, 지대 낮은 밭에는 수해가 있다. <월령통고>(p225) <임원경제지><위선지> 中

 

 오늘날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달에서 방아찧는 토끼'는 여기에서 유래된 듯 합니다.  커다란 달을 보면서 많은 새끼를 낳는 토끼처럼 풍년(豊年)을 기원하는 조상들의 마음이 이와 같이 표현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예년보다 짧은(특히, 2017년 추석 때보다 반토막 난) 연휴이지만, 이웃분들 모두 보름달을 보며 풍성하고 행복한 한가위 보내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얼마전 연의와 함께 색칠한 토끼 그림 사진을 올리며 이만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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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 2019-09-12 0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도 즐겁고 풍성한 한가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겨울호랑이 2019-09-12 09:1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눈꽃님께서도 행복한 연휴 되세요!^^:)

2019-09-12 06: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12 0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딩 2019-09-12 0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 호랑이님 추석 잘 버내세여~
댓글 오랜만에 다네요 ㅎㅎ 좋은 하루 되시구여

겨울호랑이 2019-09-12 10:14   좋아요 0 | URL
초딩님 오랫만에 뵙습니다. 초딩께서도 행복한 추석 연휴 되세요! 감사합니다.^^:)

bookholic 2019-09-12 1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여유롭고 행복한 한가위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9-09-12 13:0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bookholic님께서도 행복한 한가위 연휴 보내세요!^^:)

2019-09-12 14: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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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2 15: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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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6 10: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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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법 전서와 혁명


기성 육법전서를 기준으로 하고

혁명을 바라는 자는 바보다

혁명이란

방법부터가 혁명적이어야 할 터인데 

이게 도대체 무슨 개수작이냐

불쌍한 백성들아

불쌍한 것은 그대들뿐이다

천국이 온다고 바라고 있는 그대들뿐이다

최소한도로

자유당이 감행한 정도의 불법을

혁명정부가 구육법전서를 떠나서

합법적으로 불법을 해도 될까 말까 한

혁명을 -

불쌍한 것은 이래저래 그대들뿐이다

고생한 것은 그대들이고

그놈들이 망하고 난 후에도 진짜 곯고 있는 것은

그대들인데

불쌍한 그대들은 천국이 온다고 바라고 있다

그놈들은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고 있다


보라 항간에 금값이 오르고 있는 것을 

그놈들은 털끌만치도 다치지 않고 있다

보라 항간에 금값이 오르고 있는 것을

그놈들은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으려고

버둥거리고 있다

보라 금값이 갑자기 8,900환이다

달걀값은 여전히 영하 28환인데


이래도

그대들은 유구한 공서양속(公序良俗) 정신으로

위정자가 다 잘해 줄 줄 알고만 있다

순진한 학생들

점잖은 학자님들

체면을 세우는 문인들 

너무나 투쟁적인 신문들의 보좌를 받고


아아 새까맣게 손때 묻은 육법전서가

표준이 되는 한

나의 손등에 장을 지져라

4.26 혁명은 혁명이 될 수 없다

차라리

혁며이란 말을 걷어치워라

하기야

혁명이란 당자는 학생들의 선언문하고

신문하고

열에 뜬 시인들이 속이 허해서

쓰는 말밖에는 아니 되지만

그보다도 창자가 더 메마른 저들은

더 이상 속이지 말아라

혁명의 육법전서는 <혁명>밖에는 없으니까  <1960.5.25> (p189)


 어처구니 없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를 종일 시청하고 겨우 끝났다고 생각한 5분 뒤, 장관 후보자 부인에 대한 검찰의 불구속 기소. 지난 한 달 동안 계속된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언론에 정보 흘리기 등등.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는 검찰의 행동을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는 듯 하다.


 1960년 자유당 정부를 무너뜨린 4.19 혁명을 바라본 김수영 시인의 심정을 통해 지난 2016년 촛불혁명을 통해 세상이 바뀌었다고 생각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돈의 단위는 '환'에서 '원'으로 바뀌었지만, 아직도 바뀌지 않은 많은 것들을 새삼 깨닫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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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7 07: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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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7 09: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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