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쪽 <그림>을 보면, 세월호 참사 때크게 감소한 산재 사망자 수는 2015년에다시 상승선을 그린다. 박두용 전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2015년 그 1년 동안한국 사회는 세월호 참사를 안전 규범을정착시키는 계기가 아니라 정치 싸움으로 만들어버렸다. 정부는 이 문제에 진지하게 마주하기를 회피했고 유가족은 고립됐다. 2014~2015년의 그래프는 두 가지 중요한 점을 말해준다. 하나는 획기적인 예산이나 인력, 제도 변경이 없이도 기업 내에서 조금만 관리하면 산재 사망을줄일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추가적인 정책이 뒷받침되지않으면 현장의 변화는 쉽게 후퇴한다는것이다." - P14

 지금처럼 중소기업에 안전 규제를면제해주는 게 맞을까? 노동조합이 없는곳의 ‘자율규제‘는 어떻게 가능할까? 로벤스 보고서는 이렇게 말한다. "단 하나의 만병통치약도, 간단한 지름길도 없다.
이 분야의 진전은 극적으로 이루어지는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인내심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개개인의 마음속에 일터 안전보건이라는 주제의 위상을높이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 P15

이런 와중인 1907년 10월 드러난 구리 시장에서의 투기 실패가 미국 전역에서 수많은 은행들을 파산시키는 금융공황이 터진다. 그러나 당시 미국엔 최종 대부자 노릇 (18~19쪽 기사 참조)을 할 기관이 없었다. 결국 악명 높은 독점자본가이자 금융가로 경제계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가졌던 JP모건이 은행장들을 조직해서 취약한 금융기관에 자금을 무제한몰아주는 식으로 사태를 해결했다. 일개자본가가 중앙은행의 기능 중 하나인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해낸 것이다. 이후 ‘미국에도 중앙은행을 설립해야 한다‘는 여론이 정치권과 금융권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1907년 금융 공황이 연준의 산파 노릇을 한 셈이다. - P23

이에 따라 연준은 활황(주식시장 붐)이 불황으로 전환되던 1920년대 말에 오히려 금리를 올렸다. 1930년부터 은행들의 파산이 시작되었지만, 진성어음주의에 따라 최종 대부자 노릇 따위는 포기했다. 결국 1933년에는 미국의 은행 시스템이 총체적으로 붕괴하는 사태로 치달았다. 연준 자료에 따르면, 1930년 가을에서 1933년 겨울 사이 미국의 통화 공급과가격수준이 거의 30%나 떨어졌다. 실업률은 25%로 치솟았다. 미국과 세계는 10여 년에 걸친 불황을 겪었다. - P24

피해자를 보호하고 피고인을 보호하는 것이 법인데 마치 법은 냉정하고 건조한 것인 양 법의 취지를 애써 무시하고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슬픔과 고통마저도 권위로 누르려 하는 이들이 있다. 이때법은 문제 해결의 과정이 아니라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사람들은 법 때문에 더 큰 상처를 받고 치유에서 멀어진다. - P39

작은 행동의 소용과 필요는 자주 의심받는다. 기후위기에 관한 각종 데이터는 보는 이를 압도하곤 한다. 나아지는 부분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고, 모두가 합심해 나쁜 방향으로만 달려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 너무 늦었다‘거나 돌이킬 수 없다‘는 주장은 우리를 무기력에빠뜨린다. - P41

앞서 말한 대로 인류에게는 어려움과가혹한 상태를 견디기 위해 약물을 필요로 한 역사가 있었다. 그러니 약물의존증은 약물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문제라고 여기는 인식 전환이 이뤄져야한다. 그리고 약물 규제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눈에 띄는 현상이 있다. 미국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사실 미국의 약물 규제에는 약물뿐 아니라 ‘흑인‘ ‘멕시코인‘ ‘중국인‘ 등을 백인 사회에서 배제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약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혐오감은 약물이 범죄라는 사실에서 비롯한 것이지만, 그 범죄화의 배경에는 ‘익숙하지 않은 문화와 인종‘을 향한 편견 및 차별 의식이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 P44

약물의존과 관련해 한국의 상황 중눈여겨보는 점이 있다면?
경찰 당국이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약물남용 방지 계몽을 하기 위해 특히 ‘본보기‘로 삼기 좋은 연예인이나 유명인사 등을 노리고 체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처럼 성공했던 사람들이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몰락하는 장면‘이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로서 사람들의 처벌 감정을충족시키고, 왜곡된 쾌감을 경험하게 만든다. 이러한 ‘사회의 연출‘에 속아서는안 된다. - P44

2022년 5월동반성장위원회에서는 대리운전업을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결정했으며, 카카오 모빌리티와 티맵 모빌리티에 대한사업 확장 제재를 권고한 바 있다. 대기업이 선진적인 기술력을 무기 삼아 돌격할때, 속수무책 당하는 건 중소기업뿐만이아니라 그 아래 계약된 개별 노동자들이기도 하다. 플랫폼은 이용자들에게는 일상의 편리를 돕는 순풍이지만, 해당 산업이나 생태계에는 파괴적으로 몰아치는폭풍이다.  - P47

애당초 사람들의 관심은 뱅크먼프리드의 파산보호 신청과 전 세계 가상화폐시장에 대한 충격 등에 쏠렸다. 그러다 8개 혐의 가운데 선거자금 위반 혐의가 포함되자 그가 정치권 로비를 위해 뿌린
‘검은돈‘의 실체와 규모로 관심이 옮아갔다. 그가 측근들과 함께 정치권에 뿌린돈이 무려 수천만 달러에 달하기 때문이다.  - P48

관동 대지진 이후의 조선인 대학살은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비극이고,
일본인들의 처절한 반성이 필요한사건이야. 하지만 조선인들에게죽창질을 하고 칼을 휘두른 일본인들은결코 타고난 악마가 아니었어. 선량한얼굴로 조선인들과 곧잘 어울리기도했던 보통 사람들이었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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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카 이전에는 거의 모든 국가가 시암의 영향 아래 있었다. 권력의 이동이 정치권을 남쪽으로 향하게 했다. 그리고 말라카의 제국주의는 북쪽으로 확장되었으며 반도에서 시암의 영향력은 축소되었다.

이전에 포르투갈인들은 보통 그들의 함선에서 장거리 대포로 먼저 포격을 가하였다. 이 포격은 도시를 맞추기는 하였지만 방어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와 같이 지속된 피해는 신속히 복구되었는데, 말라카에는 항상 자원이 넘쳤기 때문이었다. 폭격 이후에 이루어진 공격도 병력의 숫자가 적어서 효과적이지 않았다.

이 산악지대에 있는 나라는 동남아에서 향신료, 특히 고품질의 정향을 생산하는 중심지로 유명하였다. 이 나라는 말라카와 아랍 선교사들의 노력을 통해 이슬람을 받아들였다.

위험을 감지하자마자, 중국 무역상들은 포르투갈인들에게 만약 그들이 도시를 점령하면 귀중품을 가지고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으로 그들을 안심시키면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말라카 측의 주요 약점은 장거리 대포가 부족하였다는 것이다. 포르투갈인들은 이 약점을 미리 알았고, 포의 사격거리 밖에 머물면서 말라카의 공급을 차단하였다.

16세기 대부분의 기록들은 말라카의 해군에 강력한 리더십이 없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 한 가지 약점으로 인해 말라카는 자신의 항구에서 그들의 강력한 자산을 사용하지 못하였다. 일부 기록은 두 명의 해군 제독이 술탄 때문에 불명예스럽게 물러났을 개연성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항 투아 제독이 수립한 공포 요소는 포르투갈인들이 공격하였을 때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배신하는 중국인이 없었더라면, 포르투갈인들은 지원병을 보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중국 무역선들은 포르투갈인들을 판타이 힐리르(Pantai Hilir)와 우종 파시르(Ujong Pasir)에 몰래 실어다 날랐다. 포르투갈 군대는 말라카 병사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해 인도 상인처럼 변장하였다. 사실 대부분의 포르투갈 용병은 남인도 출신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새벽에 도착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또한 말라카의 방어는 다툭 샤반다르, 라자 멘델리아르, 그리고 다툭 니카 찬 예우 캄(Datuk Nika Chan Yeow Kam) 등이 변절한 후에 무너졌다.

말레이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강가에 건설되었고, 이에 따라 인구이동과 동원에 필요한 수상 운송이 필요하였다. 선박에 상당히 의존하였다는 것은 동남아 전체에 걸쳐 공통된 특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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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초선은 여포가 동탁의 시비와 사통한 데서 모티브를 따온 허구의 인물이다. 정사의 단편적인 에피소드 2개를 엮어 동탁과 여포의 사이가 틀어졌음을 나름대로 논리적으로 풀어간 소설 삼국지가 더 재미있다. 양자라고 해도 한 여성을 두고 부자가 싸우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니 두 사람 모두 패륜으로 몰아 비난한 것이다.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왕윤은 황실의 부흥을 위해 동탁을 죽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후한서/왕윤전』의 기록을 그대로 믿는다면, 동탁을 죽인 후 그는 실수를 연발했다. 결과적으로 왕윤은 동탁을 죽인 후 뒷수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가 뒷수습마저 잘했다면 정국은 다시 통일과 평화로 전환되어 삼국지 자체가 탄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실제와 역사와 달리 소설 삼국지는 유우를 ‘나약한’ 지방관으로 각색하여 유비의 화려한 데뷔를 빛낸 조연으로 전락시켰던 것이다.

우리는 유우를 다른 군벌들과는 다른 잣대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군웅할거 상황을 설명한 여러 책과 지도에서, 유우는 여타 군웅과 구별되지 않은 채 그중 한 명이었던 것처럼 설명되곤 한다. 하지만 유우는 엄밀한 의미에서 단 한 번도 군웅의 한 사람이었던 적이 없다.

명장의 자질을 갖춘 황보숭과 주준이 자신의 처세보다 국가와 대의를 더 생각했더라면, 후한 말의 혼란은 어쩌면 일찍 종식되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랬다면, 동탁 집권 이후 조정이 급속한 권력 쇠퇴를 겪은 것과는 정반대로 다시 권력과 위엄을 되찾고 지방 세력을 복종시켜 좀 더 오래 황실이 보전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조연을 연기하는 데 만족했다. 문신인 왕윤과 유우가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자기 목숨을 던진 반면, 무장인 황보숭과 주준은 역적 동탁을 제거할 기회도 버리고 자신의 영달을 꾀했다. 그들의 선택은 당시 중국인들에게는 뼈아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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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국과 승상은 원래 진나라와 전한시대 재상의 벼슬로, 후한 조정은 통치상의 이유로 한 명만 임명되는 상국과 승상직을 폐지하고 3명의 재상, 즉 삼공(태위·사도·사공)을 두어 서로 견제하게 해 재상의 권력을 약화시켰다. 재상이 한 명일 때보다 세 명일 때 권력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런데 동탁은 스스로 상국이 되었고, 이로써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최고 권력자로 부상했다. 아마 동탁은 전혀 깨닫지 못했겠지만, 그의 이 행위로 위진남북조시대 내내 관찰되는 ‘찬탈’의 조건 하나가 마련되었다. 이후 숱하게 벌어지는 찬탈의 과정에서, 신하된 자의 상국 또는 승상 취임은 그가 황제가 되기 위해 거치는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단계로 자리매김한다.

동탁은 그 외에도 주비周毖와 오경伍瓊, 정태鄭泰, 하옹何?, 순상荀爽, 진기陳紀, 한융韓融 등 조야의 명망 있는 인물을 대거 발탁했다. 그러면서 직속 부하나 총애하는 무장들의 벼슬을 중랑장과 교위校尉에 묶어두는 지혜도 발휘했다. 이렇듯 집권 직후 동탁이 보인 행보는 적어도 외형상 공평무사한 것이었다.

『삼국지/제하후조전』에는 하후돈과 하후연夏侯淵, 조홍曹洪, 조인曹仁, 조휴曹休, 조진曹眞, 하후상夏侯尙 등이 함께 실려 있다. 조홍과 조인, 조휴는 조조와 같은 항렬의 동생들로, 이들은 나중에 조조의 아들 조비가 황제가 되면서 황실 일족이 된다. 즉 이 ‘특별한 조씨’들과 하후씨가 함께 실린 것은 후자도 황실 일족 혹은 그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음을 암시한다. 즉 조씨와 하후씨는 사실상 동족으로 볼 수 있다.

후한시대에는 출세를 하려면 평판이 좋아야 했다. 특히 관리가 되려면 남들의 추천이 있어야 했다. 이를 ‘타천他薦’이라고 한다. 후한에는 ‘향거리선’이라는 관리 등용 제도가 있었다. 군국의 태수와 상은 인구 20만 명당 1명을 ‘효렴’으로 조정에 추천할 권한이 있었다. 그러면 조정의 사도와 상서가 이들을 시험한 후 관직을 주었다. 그 외에 ‘관리 아버지’를 둔 덕으로 벼슬을 얻는 ‘임자제任子制’와, 부서의 장이 추천해 사실상 사후에 중앙정부로부터 임명받는 ‘벽소제?召制’가 있었지만, 주된 출세 코스는 효렴으로 추천을 받는 것이었다.
그런데 효렴으로 추천을 받으려면 지방(고향)에서 평판이 좋아야 했다. 그리고 이 평판이란 ‘효렴’이라는 명칭에서 보이듯이 주로 효심이나 덕망에 관한 것이었다.

원술은 표를 올려 손견을 행파로장군行破虜將軍 예주자사로 추천했다. 하지만 말이 표를 올려 추천한 것이지, 사실상 원술이 손견을 파로장군과 예주자사로 임명한 것이었다. 대신 원술은 남양군을 넘겨받았다. 관직과 땅을 주고받은 두 사람의 거래는 서로에게 이익이었다. 막장은 동탁만 저지른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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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2-31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가지 모두 레이달리오 책이네요.^^

겨울호랑이님,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날이예요.
따뜻한 연말 보내시고, 새해에도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 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