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사진] 국회의원 정수 축소를 주장하는 자유한국당 플래카드


 오전에 지나가던 길에 "비례대표제 폐지, 연동형비레대표제 반대" 플래카드를 내 건 자유한국당 플래카드를 보면서 "과연 국회의원 수 늘이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이에 대해 가볍게 짚어보도록 하자. 현행 기준에서 국회의원 수는 몇 명까지 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헌법 제41조 2항에 의거 국회의원 수는 법률로 정하되, 200인 이상으로 되어 있는 현행 기준과 제 20대 국회의원 정원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해 보자.(상한은 없다.)


공리. 다음을 사실이라고 받아들이자.


1. 모든 점에서 다른 모든 점으로 직선을 그을 수 있다.

2. 유한한 직선이 있으면, 그것을 얼마든지 길게 늘일 수 있다. <기하학 원론> 中


 유클리드(Euclid, ? ~ BC 300 ?)의 <기하학원론 Euclid's Elements>의 증명에 사용되는 공리를 사용하여 우리는 현행 국회의원 정수 300명이라는 한 점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점으로 부터 최소 1명으로부터 최대 유권자 수에 이르는 '대한민국 국회의원 수직선'을 도출할 수 있다. 


[그림] 국회의원 수 도출


 위의 그림에서 우리는 국회의원 수를 극소(極小)로 했을 때 1명이 되는 점과 모든 유권자가 국회의원이 되는 극대(極大)점을 정할 수 있는데, 현재 대한민국 국회의원 수는 이 사이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국회해산의 경우 0명이 될 수 있지만, 이러한 경우는 논외로 하자.) 최소점 - 최대점 대조를 통해 우리는 국회의원 수가 많은 경우와 적은 경우의 효과를 보다 극명하게 볼 수 있는데, 각 점에서 얻는 사회적 효용은 경제학자 애로우(K.Arrow)기 불가능성정리(不可能性定理, impossibility theorem)를 통해 제시한 네 가지 공리(axiom) 를 기준으로 살펴보자. 애로우가 말한 네 가지 공리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1) 완비성(完備性, completeness)과 이행성(移行性, transitivity) : 모든 사회적 상태를 비교, 평가할 수 있어야 하며, a / b / c 라는 세 사회적 상태에 대해 a를 b보다 더 선호하고 b를 c보다 더 선호한다면 a를 c보다 더 선호해야 한다.


2) 파레토원칙(Pareto principle) : 이 사회의 모든 사람이 a를 b보다 더 선호한다면 사회도 a를 b보다 더 선호해야 한다.


3) 비독재성(non-dictatorship) : 이 사회의 어느 한 구성원의 선호가 전체 사회의 선호를 좌우해서는 안 된다.


4) 제3의 선택 가능성으로부터의 독립(independence of irrelevant alternatives) : a와 b의 두 사회적 상태를 비교한다고 할 때, 이들과 직접 관련이 없는 제3의 선택 가능성 c의 존재는 이들 사이의 선호 순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말아야 한다.(p571)  <미시경제학>


 이제 각 점을 살표보자. 국회의원이 1명일 경우에는 '완비성과 이행성' 측면에서 보다 효율적일 것이다. 신속하게 사안을 판단하고 비교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1번 공리를 만족하지만, 3번 공리는 만족시키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반면, 모든 유권자가 국회의원일 경우에는 반대가 될 것이다. 애로우의 불가능성정리에 따르면 이들 공리 중 1), 2), 4)를 모두 만족시키는 사회적 선호체계는 반드시 공리 3)을 위배하게 된다. 애로우가 말한 것 처럼 비독재성의 문제가 다른 공리와 부딪히게 된다면, 결국 우리의 논의는 소수 국회의원에 의한 입법권 독점(또는 과점)체제의 신속성과 다수 유권자의 민의 반영이라는 효과성에 대한 선택으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상호배타적인 두 안(案)이 있을 경우에 우리는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의회는 왜 생겼으며, 어떤 역할을 하는 곳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 ~ 1831)의 <법철학 philosophie des Recbts>에서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의회의 사명은 공동체의 업무를 단지 잠재적으로 인지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의식적으로 표면에 드러나도록 하는 데 있다. 즉 주관적, 형식적인 자유의 요소인 공공의식을 다수인의 의견 또는 사상이라는 경험적인 공동성으로 현현되도록 하는 데 있다.(p535) <법철학s> 中


 입법권은 연이어 새로운 규정을 필요로 하는 법률 그 자체와 내용 면에서 전적으로 일반적인 국회의 안건을 책정하는 일을 관장한다. 입법권은 정치체제 또는 헌법을 전제로 하고, 그 자체가 정치체제 또는 헌법의 일부를 이룬다.(p530)... 정치제제 또는 헌법은 문화와 더불어 함께 진전되어 가는 것이다... 옛날에는 황제가 영내를 돌면서 판결을 내렸지만 외견상으로는 문화가 점점 향상됨에 따라 황제가 이 재판관 직을 타인에게 이양하는 것이 외면상 더욱 필요해짐으로써 마침내 재판권이 군주개인으로부터 합의부(合議府)로 넘겨지는 일이 벌어졌다.(p531) <법철학> 中


  헤겔에 따르면 의회의 사명은 다수인의 의견을 나타내는 것에 있으며, 이러한 관점에 의한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국회의원 정원 확대가 보다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이러한 입법자의 수는 문화의 발전과 더불어 늘어나왔다는 것이 헤겔의 주장이기도 하다.


 이상의 논의를 정리해보자. 국회의원 수를 줄인다면 보다 효율적인 입법처리가 가능하겠지만, 반면 독재의 우려가 생기게 된다. 국회의원 수를 늘인다면 이와는 반대되는 효과가 예상된다. 이러한 일장일단(一長一短)의 특징 속에서 의회의 사명과 법역사 발전을 생각한다면 개인적으로는 조심스럽게 국회의원 수를 늘이는 쪽에 손을 들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을 뒷받침하는 다른 근거는 의원 1인당 인구수가 OECD 평균을 훨씬 넘는다는 통계다.


[관련기사] http://www.hankookilbo.com/News/Read/201811051379055791


  만약, 국회의원 수를 늘린다면 몇 명이 적정할까? 이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적정 국회의원 수는 약 1,000명 정도라 생각한다.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 시 95% 신뢰구간과 표본오차범위 3.1%P에서 국민 약 1,000명을 표본으로 선정하며 신뢰도를 강조하는데, 이를 뒤집어 보면, 1,000명보다 적은 표본은 일반 국민에 대한 대표성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일회성의 지지도보다 중요한 우리 삶을 결정하는 입법권의 대표 수가 여론조사 표본 수보다 적어서는 안되지 않을까.


 누군가는 그렇게 된다면 국민 세금이 낭비된다고도 이러한 의견을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의원300명에게 지급되는 의원 세비를 증액 없이 1,000명에게 나누어 준다면 세금 낭비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낮은 비용으로 인해 현 국회의원이 모두 출마하지 않는다고 해도 최저임금보다는 높은 수준이기에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지원자가 모자라는 상황은 오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또,  누군가는 이렇게 될 경우 능력 부족자가 국회의원이 되는 경우를 걱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최저임금을 받는 알바가 국회의원을 하더라도 지금처럼 국회를 보이콧하면서 민생법안을 외면하는 이들보다는 분명 더 많은 일을 할 것이기에 이 역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여러모로, 국회 세비는 동결시키고, 인원을 늘려서 경쟁체제를 강조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이념에도 부합된다 여겨진다. 국민의 국회불신을 통해 자신의 기득권을 강화하려는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보면서 21대 총선을 더 기다리게 되는 이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지나가는 길에 본 비례대표제 폐지와 국회의원 정수 축소를 주장하는 자유한국당 플래카드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을 약간의 장난과 함께 정리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9-03-17 15: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의원수의 문제가 아니라 명백하게 자질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하는 일에 비해 특권이 지나치게 많은 게 문제입니다. 스웨덴 의원들처럼 특권을 대폭 줄이면 천 명이라도 대환영입니다.

겨울호랑이 2019-03-17 17:16   좋아요 3 | URL
레삭매냐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특권을 줄이게 되면 이권을 노리고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이들은 출마하지 않겠지요. 반면, 국회의원을 명예봉사직으로 여기는 이들의 참여가 늘어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 상식적인 이들의 국회진출로 현재의 문제가 많이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2019-03-17 2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7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7 2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7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9-03-18 1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것들 호랭이밥으로 만들어야할듯요! 어흥

겨울호랑이 2019-03-18 19:56   좋아요 1 | URL
선거 때만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밥그릇만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만화애니비평님 말씀처럼 제대로 심판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호랭이 밥은 좀 ㅋㅋ

2019-03-19 14: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9 15: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9 1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9 1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0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0 1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0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0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1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1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1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일인들은 평화 회담의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1919년 5월 7일 독일 대표단에게 전달된 베르사유 조약의 최종안은 그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독일은 영토의 14퍼센트를 내주어야 했고, 그로 인해 인구의 10퍼센트와 철광석 절반, 석탄 매장량의 4분의 1을 내주어야 했다. 또한 모든 해외 식민지를  포기해야 했으며, 해외에 투자한 자금과 특권을 모두 잃게 되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전쟁 배상금에 대한 요구였다. 10년 동안 그들은 석탄 생산량의 60퍼센트, 상선 90퍼센트, 거의 대부분의 기차 내연 기관, 철도 차량, 젖소 절반, 화학 제품과 의약품 4분의 1 가량도 양도해야 했던 것이다. 또한 독일 군대는 육군 1만 명과 해군 1만 5,000명으로 제한되었으며 탱크와 비행기, 잠수함과 독가스 보유가 금지되었다.(p270) <케임브리지 독일사> 中


 <평화의 경제적 결과 The Economic Consequences of the Peace>에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 1883 ~ 1946)은  제1차 세계대전 종식을 위해 열린 파리평화회의와 그 결과로 만들어진 평화조약(베르사유조약)을 비판하였다. 능력을 넘는 과도한 전쟁 배상금과 승전국의 요구 속에서 저자는 이미 다른 세계 대전의 불씨를 예견하였다.

 

 독일을 돕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서부 유럽의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 채택되고 거기에 미국의 재정적 지원이 더해진다면, 하늘은 유럽인 모두를 도울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서유럽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교묘하게 중부 유럽을 빈곤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잡는다면, 감히 예견하건대, 머지않아 복수전이 펼쳐질 것이다.(p246) <평화의 경제적 결과> 中


 약속을 존중하고 정의를 충족시키는 것이 파리평화회의의 임무였다. 그러나 삶을 재구축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임무는 승자의 아량이라는 원칙에 따라 필요한 것 못지않게 유럽의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다.(p36) <평화의 경제적 결과> 中


 파리평화회의는 세계대전 후 유럽의 재건을 위해 당사국 모두가 '관용(寬容)'의 자세로 임할 필요가 있었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했다. 베르사유 조약이 패자에게 특히 가혹했던 조약이 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이에 대해 저자는 <평화의 경제적 결과>에서 베르사유 조약은 강력한 이웃을 가지지 않으려는 프랑스 클레망소(Georges Benjamin Clemenceau, 1841 ~ 1929)의 경계심과 미국 대통령 윌슨(Thomas Woodrow Wilson, 1856 ~ 1924)의 무능력 그리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영국 총리 로이드 조지(David Lloyd George, 1863 ~ 1945)의 욕망이 결합된 결과로 분석한다.


 프랑스 정책의 솔직한 목적, 즉 독일 인구를 제한하고 독일 경제 체계를 악화시키는 것이 윌슨 대통령을 위해 자유와 국제적 평등이라는 장엄한 언어로 포장되었다.(p65) <평화의 경제적 결과> 中


 협상의 다른 측면은 차치하더라도, 독일로부터 일반적인 전쟁 비용을 받아내겠다는 약속을 선거운동에 활용한 것은 영국 정치인들이 언젠가 반드시 책임져야 할, 정치적 무모함의 극치를 보여준 행위라고 나는 믿는다.(p143) <평화의 경제적 결과> 中


 각국의 정치인들이 자신의 나라와 개인을 위해 패전국에 강요한 조약의 결과는 가혹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평화조약은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줄 수 없었기에 한편에서는 극우 파시즘(Fascism)이, 다른 한편에서는 극좌 공산주의(Communism)가 집권하는 계기를 주게 되었다.


 경제적 박탈은 아주 쉽게 일어나며, 사람들이 그런 박탈을 인내하는 한, 바깥 세계는 그 문제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육체적 능률과 질병에 대한 저항력은 서서히 약화된다. 그러나 삶은 어쨌든 계속된다. 그러다 결국엔 인내의 한계에 닿게 될 것이고, 절망과 광기의 구호가 무력감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선동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분발하여 일어나고, 인습의 끈들은 풀리게 된다. 그것이 곧 위기이다... 파리에서는 평화조약이 선언되었다. 그러나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기대하지 못하고 또 희망을 걸만한 것을 전혀 갖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까지 인내할 것인지, 또 사람들이 불행을 피하기 위해 최종적으로 어느 쪽으로 방향을 틀 것인지 누가 알 수 있을까?(p229) <평화의 경제적 결과> 中


 저자는 <평화의 경제적 결과>에서 '관용'에 입각한 전후 처리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성(理性)보다는 감정(感情)이 지배한 평화회의장의 모습 속에서도우리는 계몽시대(Enlightenment)의 종언을 확인할 수 있다. 더이상 볼테르(Voltaire, 1694 ~ 1778)의 주장을 귀담아 듣는 이는 없었다. 

 

 자연은 우리 인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연약한 존재이므로 서로를 도우시오. 당신들은 무지하므로 서로를 가르치고 용인하시오. 만약 당신들 모두가 같은 의견이고 단 한 사람만이 반대 의견이라면 여러분은 그 사람을 용서해야 하오. 왜냐하면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데는 여러분 각자가 책임이 있기 때문이오... 당신들 인간들이 걸핏하면 벌이는 잔인한 전쟁 한 복판에서도 나 자연만이 당신들을 결합시킬 수 있소. 나는 당신들 인간에게 땅을 경작할 팔을 그리고 자신을 인도해 줄 한 줌의 이성(reason)을 주었소. 이 싹을 꺽거나 썩히지 마시오.(p178) <관용론> 中


 이러한 암울한 당대 현실 속에서 케인즈는 절망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비록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시대 흐름 속에서 그는 '교육'과 '상상력'의 역할을 통해 역사의 흐름을 바꾸려 했다. 


 유럽이 파산과 쇠퇴를 겪도록 내버려둔다면, 그 상태는 장기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래도 다행한 것이 한 가지 있다. 지금 나아가고 있는 길을 재점검토하고 세계를 새로운 눈으로 볼 시간은 아직 있는 것이다. 미래를 좌우할 사건들이 지금 전개되고 있고, 유럽의 운명은 더 이상 몇몇 사람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일어날 사건들은 정치인들의 교묘한 술책의 영향을 받지 않고, 역사의 표면 아래에서 지속적으로 흐르고 있는 숨겨진 물결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오직 한 가지 방법으로만 이 숨겨진 물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이다. 그 방법은 의견을 변화시킬 교육과 상상력의 힘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진실을 굳게 믿고, 망상을 깨뜨리고, 증오를 불식시키고, 사람들의 가슴과 마음을 활짝 열고 또 확장시켜야만 숨겨진 물결의 방향을 우리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돌려놓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p270) <평화의 경제적 결과> 中


그리고, 이러한 그의 주장 속에서 우리는 장기균형보다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지출을 강조한 그의 경제학 이론과 통하는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But this long run is a misleading guide to current affairs. 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 장기(長期)는 현재 사안에 대해 잘못된 안내를 해준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 <화폐개혁론> 中 [출처 : 위키백과]


 국가는 부분적으로는 과세를 통하여, 부분적으로는 이자율을 정함으로써, 그리고 또 부분적으로는 아마도 다른 방법을 통하여 소비성향(消費性向)에 대해 지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야 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자율에 대한 은행정책의 영향력이 그 자체로서 최적투자율(最適投資率)을 결정하기에 충분하리라는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나는 상당히 광범위한 투자(投資)의 사회화(社會化)가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를 확보하는 유일한 수단이 되리라고 생각한다.(p455)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中


 저자는 <평화의 경제적 결과>의 본문을 각국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통계자료를 활용하여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결국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리고, 유럽 여러 나라들은 대신 '전쟁의 경제적 결과'가 '피'임을 체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비극이라 할 것이다.


 2019년 2월 28일.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별다른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한 채 끝낸 후 글을 쓰기 시작해서, 2019년 3월 1일 3.1운동 100주년 기념일 새벽까지 글을 쓰고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300년 전 3.1 운동을 불러온 베르사유 조약이 가져온 평화와 지금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평화의 결과는 무엇이 될 것인지 되물으며 글을 마무리한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oren 2019-03-01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극소수의 사람들이나 겨우 예상할 수 있었던 ‘결렬 시나리오‘가 막상 눈 앞의 현실이 되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들을 해 보게 됩니다. 우선,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개념 자체가 2차 북미회담 직전까지도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북한 비핵화‘에 대한 어려움을 극적이고 상징적으로 보여준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우리 정부의 무분별할 정도로 지나친 낙관론을 이제는 좀 더 냉철히 되돌아볼 때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트럼프의 말대로, 결국 ‘비핵화는 핵을 없애자는 것‘인데, 지금까지의 북한의 태도로 봐서는 ‘비핵화를 구실로 내세워 결국 UN의 제제 완화만 얻어내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정말로 비핵화를 하자는 것인지, 핵무기 체계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 풍계리 핵실험장,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 영변의 핵시설 폐기 등을 잘게 썰어서 ‘핵 장사‘를 하자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으니까요.(이번 회담이 결렬되고 나서야 마침내 이런 측면들이 비로소 극명하게 부각된 게 이번 회담의 진정한 소득이라면 소득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더군요. 아무튼 북한 비핵화는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만 가까스로 도달 가능한 매우 어려운 과제임이 분명한 듯합니다. 여의도의 세 배나 되는 면적에 400여개나 되는 건물로 둘러싸인 영변 핵시설만 해도 끔찍한데, 그거 말고도 굉장히 규모가 큰 핵시설이 또 있다고 하니 정말 소름이 끼치더군요.)

겨울호랑이 2019-03-01 18:22   좋아요 1 | URL
oren님 말씀처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갈 길이 참 멀어 보입니다. 저는 회담의 결렬 원인에 대해서 Oren님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합니다만, 보다 중요한 문제는 한반도의 평화, 세계의 평화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서로 다른 북한과 미국의 기자 회견 내용을 접하면 혼란스럽기도 합니다만, 어제의 협상 결렬이 평화로 가는 과정이라는 점으로 위안을 삼아 봅니다...

2019-03-02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02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04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04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 2018년 12월 10일은 세계인권선언 채택 70주년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났지만, 이번 페이퍼에서는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을 맞아 인권(人權, Human Rights)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유엔인권위원회는 인류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인권의 표현을 찾기 위하여 유네스코(UNESCO)에 인권에 관해 전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견해를 조사해줄 것을 의뢰하였다. 이 요청을 받은 유네스코는 가맹국들의 사상가와 문필가들에게 설문을 돌려 각자의 종교적, 문화적, 지성적 배경에서 도출된 특유한 인권관을 조사하였다... 인권위원회는 선언문 기초 작업에 착수할 때부터 원칙을 세워 보편적 인권이 18세기 유럽 계몽주의에서 기원한 서구의 발명품이라는 가정을 거부하였다. 그 대신 위원들은 계몽주의 인권 사상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던 공동선에 대한 어떤 보편적 관념을 확인하기 위해 전세계의 위대한 종교, 문화 전통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이러한 오랜 토론의 결과가 1948년 12월 10일, 인류 역사 속에서 발전해온 세속적, 종교적 인권개념을 집대성한 최고의 인권문헌인 '세계인권선언'의 채택으로 이어졌다.(p56) <세계인권사상사> 中


  미셀린 이샤이(Micheline Ishay)가 저술한 <세계인권사상사>는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만들어진 세계인권선언에 담긴 세계 여러 문명권과 다양한 종교의 영향을 비교, 제시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짧은 페이퍼에 담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과감히 생략하고, 세계인권선언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살펴보자.


 <세계인권선언>의 주요 성안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카생(Rene Cassin)은 <세계인권선언>을 사원 입구의 주랑으로 이루어진 현관에 비유하여 인권의 중심 사상을 선언했다. 카생은 <세계인권선언>이 프랑스 혁명 당시에 외쳤던 구호처럼 "존엄성, 자유, 평등, 박애"의 네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세계인권선언>의 전체 30개 조항 중 27개 조항이 4개의 기둥으로 각각 나뉘어 있으며, 이들 4개 기둥이 모여 주랑 현관의  천장에 해당하는 28~ 30조를 함께 떠받치고 있다.(p36) <세계인권사상사> 中


  비록, 유엔인권위원회가 서구 중심중의에서 탈피해서 세계인권선언서를 작성하려고 노력했다지만, 카생의 설명을 듣자면 세계인권선언이 유럽 중심주의라는 형식적인 틀까지 깨뜨리지는 못한 듯하다. 유럽 건축 양식을 빌려 카생이 설명한 유엔인권선언의 세부 구조는 다음과 같다.  


[사진] 주랑 현관(출처 : 위키백과)


 첫째 기둥은 인권의 일반 원칙과 개인의 자유를 의미하며 전문과 제1~11조가 이에 해당한다. 둘째 기둥은 개인과 개인이 속한 사회집단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권리를 의미하며 제12~17조가 이에 해당한다. 셋째 기둥은 시민적 자유와 정치적 권리를 의미하며 제18~21조가 이에 해당한다. 넷째 기둥은 사회적, 경제적 영역의 권리를 의미하며 제22~27조가 이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천장은 인권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국제적 질서 그리고 권리들을 서로 조화시키기 위한 원칙을 의미하며 제28~30조가 이에 해당한다.(p37) <세계인권사상사> 中


 위와 같이 개인과 집단 사이의 권리와 이들을 조화시킬 수 있는 질서를 규정한 세계인권선언이지만, 우리 현실 속에서 유엔인권선언이 잘 지켜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부분에 있어서 우리의 권리가 침해되고 있는가? 세계인권선언의 대상을 개인으로 한정해 살펴본다면, 세계인권선언의 내용을 경제민주주의와 정치적 평등으로 크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 문제를 바라보는 로버트 달(Robert Dahl, 1915 ~ 2014)의 입장은 다분히 비판적이다. 


 단순하게 요약해 보자면, 한 입장에서는 미국이 세계 최초로 민주주의, 정치적 평등 그리고 정치적 기본권을 성취함으로써 미국인들의 이상은 실현된다. 두 번째 관점에서는 재산권을 보호받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고 부유해질 기회를 보장받음으로써 미국인들의 이상은 실현된다.(p172)... 이와 같은 상호 대립적인 이상들 가운데 어떤 쪽을 선택해야 할 지를 두고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미국인들은 생각을 달리하고 있다.(p173) <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 中


 모든 국가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완전한 정치적 평등이란 미국 시민이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직은 아니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경쟁적 소비주의 문화에 내재한 공허함을 자각하는 동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권의 문화가 가져오는 보상과 도전의식의 가치를 깨닫게 될 때, 그들은 미국을 저 멀리 잘 잡히지 않는 목표에 훨씬 더 근접할 수 있도록 만들기 시작할 것이다.(p133)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 中


  로버트 달에 따르면 기존의 재산권, 경제적 불평등, 법인 기업의 비민주적인 권위가 지향하는 경제발전이 민주주의와 정치적 평등 그리고 정치적 권리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현재 우리의 권리는 침해받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산권보다 인권을 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식의 확산만이 경제 민주화와 정치 평등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길임을 그는 지적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개별 리뷰에서 상세히 살펴보도록 하고, 그렇다면 이번에는 현상황 아래에서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볼 차례다. 이에 대해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쿠미 나이두(Kumi Naidoo)의 말을 옮겨본다.

 

 인권선언문은 시민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권리를 구별하지 않았다. 먹을 것에 대한 권리를 보장할 필요성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필요성을 구분짓지 않았다. 현실에서는 그 둘 사이가 본질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그 후 수십 년간, 각국 정부들은 그 두 종류의 권리 사이에 구별을 만들었고 그로 인해 그 권리들이 인식되고 보호되는 데 있어서 불균형이 생겨났다.(p4)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8년 12월호 : 유엔인권선언 70주년에 부쳐 > 中


 인권운동에 있어서 우리는 표현하고 시위할 수 있는 권리를 계속해서 주장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정부가 시행하는 경제, 금융 정책과 그것이 인권에 미치는 영향을 연결 지어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동료조직들과 협력해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정부에 묻고 부패와 불법자금의 흐름과 취약한 국제적인 조세구조를 밝혀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서로 손을 잡고 친구, 동료들과 연합을 구성해야만 가능한 거대한 일이다. 인권운동가, 변호사, 노동조합, 사회운동가, 경제학자, 종교지도자 등 여러 조직에 걸친 협력이 필요하다.(p5)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8년 12월호 : 유엔인권선언 70주년에 부쳐> 中


  쿠미 나이두의 제언을 듣다보면, 자연스럽게 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 ~1883)의 <공산당 선언>의 유명한 구절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Workers of the world, unite!'를 연상하게 된다. 또한, 연대와 단결의 근간이 타인에 대한 공감임을 생각해본다면, 아담 스미스가 <도덕감정론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에서 강조한 '동감(同感, sympathy)' 문제도 피할 수 없을 듯하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지난 250여년 동안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살아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유엔인권선언 70주년을 맞아 '인권'에 대해 미처 정리되지 않은 여러 질문을 던져본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은 다음 독서 여정이 될 것임을 확인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와같다면 2018-12-22 17: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분노. 차별. 경멸이 가득한 세상
연대한 우리가 어떻게 사회를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지..
요즘 참 생각이 많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12-22 19:19   좋아요 2 | URL
비록 지금 많이 혼란스럽지만, 이러한 혼란도 일종의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2018-12-22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22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23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23 2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계는 위험에 처해 있는데, 이는 영국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 1938 ~ )에 따르면 적어도 어느 정도는 세계화 때문이다. 그는 근대성이 정부와 개인들이 기후변화 같은 세계적 위험에 직면하는 '질주하는 세계'를 낳았다고 믿는다... 근대성의 세계화와 그 결과는 인류 문명의 새로운 단계를 나타내는데, 기든스는 이를 '후기근대(late modernity)'라고 부른다. 후기근대의 생활이 때론 유익하고 신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개개인은 새로운 불확실성에 직면해야 하고, 추상적인 체제를 신뢰해야 하며, 새로운 문제와 위험을 헤쳐나가야만 한다.(p148)... 기든스는 심각한 기후변화의 피해에서 벗어나려면 전 세계가 지금부터 즉시 과격할 정도의 획기적인 온난화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기든스는 미래를 낙관한다. 그는 첨단기술 사회를 낳은 바로 그 인간 독창성이 탄소 방출 절감을 위한 혁신적 해결책을 찾는 데 쓰일 수 있다고 믿는다.(p149) <사회학의 책> 中


 앤서니 기든스는 근대의 결과로 세계화가 진행되었고, 이의 부산물로서 기후변화라는 위기가 초래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급진적인 해결을 주장하고 있다. 동시에, 기후 변화로 초래된 위기는 인간의 독창성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 또한 펼친다. 이러한 생태 문제에 대한 기든스의 입장은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일관되어 나타나고 있는데, 이번 페이퍼에서는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Beyond Left and Right>와 <제3의 길 The Third Way>을 통해 기든스의 관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생태학적 위기는 이 책의 핵심이기는 하지만 비정통적인 방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생태학적 위기 및 그와 관련하여 발생한 여러 철학과 운동은 근대성의 표현이다. 근대성은 전 지구화 추세에 따라 그리고 스스로 자신에게 등을 돌리게 됨에 따라 한계에 도달하게 된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당연히 새로운 전략들과 계획들이 요구되기는 하지만 그에 따라 제시될 대부분의 실천적, 윤리적 고찰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p23)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中


 기든스는 1994년 출간된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를 통해 현재 사회의 인위적 불확실성(manufactured uncertainty)이라 칭하면서, 전 지구화, 탈전통화, 사회적 성찰(social reflexivity) 등이 불확실성을 가속화 시킨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와 같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무엇일까?


 삶의 정치문제는 전 지구화(globalization)와 탈전통화(post- traditional)가 결합된 영향력의 결과로서 중요성을 띠게 된다. 전 지구화와 탈전통화 과정은 서구적 의미를 강하게 띠고 있으나 전 세계 국가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포괄적으로 볼 때 급진적 정치틀은 유토피아적 현실주의의 관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네 가지 근대성 범주와의 연관 속에서 발전된다. 절대적/상대적인 빈곤과의 전쟁, 환경 파괴의 구제, 전제권력에 대한 대립, 사회적 삶에서의 강제력과 폭력의 역할 감소 이것들이 유토피아적 현실주의의 지향점이다.(p272)... 내가 해석한 생태학적 위기는 전 지구화 되어가는 세계에서 본질적으로 도덕적 의미의 위기를 의미한다.(p273)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中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에서 제기한 현대 사회의 문제에 대해 기든스는 자율성과 의존성의 결합, 연대성 증진, 삶의 정치 확대 등을 대화민주주의(dialigic democracy)의 방법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러한 그의 관점은 환경 문제를 인간의 독창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 그의 낙관적인 전망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사회적 연대성의 재건은 경제영역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적 삶의 영역에서 조화로운 자율성과 상호 의존성을 결합시키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탈전통사회에서 연대성 증진은 능동적 신뢰(active trust)로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에 달려 있다. 이것은 타인에 대한 개인적/사회적 책임의 회복과 연결된다.(p26)... 삶의 정치(life politics)는 삶의 기회의 정치가 아니라 삶의 스타일의 정치이다... 능동적 신뢰는 발생적 정치(generative politics)의 개념을 포함한다. 발생적 정치는 사회의 전반적 관심과 목표라는 맥락에서 개인과 집단이 무슨 일인가를 발생시키도록 하는 정치이다.(p28)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中


 그렇지만, 이러한 인류적 과제 앞에 기존의 정치사상들은 과거와 달리 변화되고 있다. 보수주의는 급진화되고, 사회주의는 보수화되면서, 신자유주의는 그 모순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 기든스의 진단이다. 그리고, 저자는  1998년 출간된 <제3의 길>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을 제시한다. <제3의 길>을 통해 저자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체제는 무엇일까? 이를 살펴보기 전에 그가 추구하는 방향을 먼저 살펴보자.


 보수주의는 경쟁자본주의와 자본주의가 야기하는 경향인 극적이고 원대한 변동과정이라는, 이전 같았으면 거부했을 면들을 다소 갖고 있다... 보수주의가 급진화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사회주의는 보수화되었다.(p14)... 좌파 급진주의자들은 또 다른 방향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페미니즘, 생태학, 평화와 인권에 관련된 새로운 사회운동이 그것이다.(p15)... 우파는 급진적으로 전환된 반면 좌파는 보수적 기질을 보인다. 복지국가적 특성들을 보존하려하는 것 등이 그 예이다... 다른 한편 신자유주의는 내적으로 모순적이고 이 모순은 점점 더 흔하게 발견된다. 한편으로 신자유주의는 전통에 대해 적대적이고 곳곳의 전통을 소멸시키는 주요 동인의 하나이며 시장과 공격적인 개인주의 증진의 결과이다. 다른 한편 신자유주의는 정당성을 위해 그리고 보수주의와의 유착을 위해 국가, 종교, 성, 가족의 영역에서 전통의 보존에 의존한다.(p22)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中


 기든스는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를 통해 생산성주의를 자본주의와 연계시키고 이를 비판한다. 조화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해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이 생산성주의라고 했을 때, 내적으로 모순을 가지고 있는 신자유주의사상은 결코 답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급진화된 보수주의나 보수화된 급진주의 역시 불확실한 상황에서 우리의 과제를 해결하기에는 부족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기든스가 제시한 개념이 '제3의 길'이다.


 이상적 지향으로서의 탈결핍사회 개념과 생산성주의 비판은 이러한 관점에서부터 도출된다. 간단히 말해서 탈결핍사회는 더 이상 생산성주의를 지배적 규칙으로 삼지 않는 사회이다. 나는 생산성주의를 노동이 자율적인 사회, 경제발전 기제가 개인의 성장과 타인의 조화를 이루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목표를 대체하는 사회의 핵심으로 규정한다... 생산성주의는 자본주의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생산성주의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사상과는 아주 다른 정책을 취해야 한다.(p274)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中 


  기든스는 <제3의 길>을 통해 정부와 시민사회의 조화로운 협력을 강조하면서, '신혼합경제'체제를 주장하고 있다. '규제완화'와 '작은 정부'를 말하는 우파와 '복지 사회'를 주장하는 좌파를 넘어선 새로운 길이 기든스가 주장하는 제3의 길이다. 


 국가와 정부의 개혁은 제3의 길 정치의 근본 방향을 설정하는 원칙이어야 한다. 즉 국가와 정부의 개혁은 민주주의를 심화시키고 확장시키는 과정이어야 한다. 정부는 공동체의 복원과 발전을 촉진시키기 위해 시민사회의 행위 주체들과 동반자로서 활동해야 한다. 이 동반자 관계의 경제적 기반은 바로, 내가 신혼합경제(new mixed economy)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p125)... 제3의 길은 '정부를 적이라 말하는' 우파와 '정부가 해답이라고 말하는' 좌파를 넘어서서 국가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p127) <제3의 길> 中


  기든스가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와 <제3의 길>을 통해 새로운 정치방향을 제시한 지도 벌써 20여년이 넘었지만,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와 이를 둘러싼 문제를 돌아본다면 기든스의 이론을 낡았다고 비판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림] 새정부 경제정책 기본 방향 (출처 : 경북일보)


 경제 문제에 있어 소득주도 성장인가, 혁신주도 성장인가 하는 문제를 양자택일(兩者擇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일부의 문제 인식과 정치 성향을 '진보', '보수'의 기준으로 구분하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비록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기든스의 조언은 여전히 유효다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강조하는 '제3의 길'의 여섯 가지 중심 과제를 마지막으로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저는 특히 제3의 길을 이루는 여섯 가지 중심 과제를 강조합니다. 첫째는 정부의 재창조입니다. 둘째는 시민사회를 재구성하는 것이며, 셋째는 정부의 규제 완화와 민영화등을 통하여 시장 중심적인 신혼합경제를 이끄는 과제입니다. 넷째는 인적 자원의 개발과 위험 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처방으로 복지체제를 개편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생태환경적 현대화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여섯째는 세계적 민주주의를 관철할 수 있는 세계적 관리운영 체제를 준비하는 것입니다.(p274) <제3의 길> 中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9-02 2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02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05 1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05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대한민국 제7회 지방 선거가 며칠 전 끝났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여당의 압승과 야권의 궤멸'로 끝난 이번 선거를 어느 한 유권자의 입장에서 선거 성격과 선택 배경 등을 정리해 보려한다.


 1. 지방선거 : 양자 운동과 중력 사이 그 어딘가

 

 우리가 볼 수 있는 범위 중 가장 큰 10의 15승 미터가 중력과 중력장의 지배를 받는 것이라면, 가장 작은 단위에서 볼 수 있는(10의 -16승 미터) 몇 가지 장면들은 양자 운동의 예가 된다. 이들은 뉴턴의 법칙이 아닌 새로운 법칙을 따른다. 중력 효과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원자 영역은 양자 운동의 영역이다... 대부분의 일상 경험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달력도 아니며, 어느 정도 우연하게 중력계에 존재하는 궤도들도 아니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물질의 안정성이다.(p27) <10의 제곱수> 中


 지방선거는 우리 삶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 지방자치단체 구성원을 선출한다는 의미와 함께 중앙정부에 대한 민심을 전달한다는 두 가지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이유로 선거 때마다 정권심판론과 인물론 어느 쪽이 더 우세한가에 따라 선거의 성격이 달라지게 되는데, 이 두 상이한 성격은 내용적으로 부딪히는 부분이 있다. 마치 물리학에서 양자역학이 좌우하는 미시의 세계와 중력의 지배를 받는 거시의 세계가 현실적으로 공존하는 자연세계와 정치세계에서 우리는 공통점과 차이점 모두를 발견하게 된다. 현재까지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을 통합하는 이론이 나오지 않은 것처럼 지방선거를 종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 역시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은 물리학과 정치학의 공통점이라 여겨진다. 다만, 물리학의 세계와 달리 이들 법칙이 미치는 영향력의 범위가 달라지는 것은 차이점인 듯하다.


2. 문재인 정부가 처한 상황 :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그림] 제1차 삼두체제 당시의 세력권(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Caesar%27s_Civil_War)


 지난 2016년 촛불혁명을 바탕으로 다음해에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어려움에 놓여있다.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여소야대, 경제적으로는 재벌개혁과 소득불균형, 외교적으로는 남북문제 등으로 문재인 정부는 많은 개혁과제를 안고 있는 실정이다.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에서 주도권을 잡았지만, 실질적으로는 폼페이우스(Gnaeus Pompeius Magnus, BC 106 ~BC 48)에게 역(逆)포위되어 있었던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BC 100 ~ BC 44)의 상황을 연상시키는 현재 한국의 현실은 짙은 어둠 안에 놓여있다. 

 

 최근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등으로 과거보다 상황은 조금 나아보이지만 여전히 많은 해결 과제가 남아있다. 그리고, 여러 부분에서 야당(특히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인해 개혁이 무산되는 것을 유권자들을 지난 1년동안 지켜봐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유권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갈리아와 로마의 국경 지대인 '루비콘 강' 앞에 도착한 카이사르는 망설인다. 이대로 강을 건너면 반란의 주역이 된다... 기원전 49년 1월 12일 그는 결국 루비콘을 건넌다(p17)... 폼페이우스는 일단 이탈리아를 벗어나 그의 세력이 힘을 발휘하는 지중해와 히스파니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전투를 벌이고자 했다. 추격 도중 잠시 로마에 들어온 카이사르는 기원전 48년도 집정관에 취임하면서 로마의 내정을 돌본 후 급히 다시 폼페이우스를 뒤쫓는다.(p19) <카이사르의 내전기 Commentarili De Bello Civili> 中


3. 유권자의 선택 : 차선의 이론

 

 최근 유권자들은 여러 개혁 과제들이 독립된 과제가 아니라, 서로 얽혀 있는 문제임을 확인해왔다. 고차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구하는 것처럼 어떤 선택지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차선의 이론'을 통해 설명이 가능하다. 차선의 이론에 따르면 충족되는 효율성의 조건의 수와 사회 후생의 극대화와 반드시 관련있는 것만은 아니다. 차선의 이론은 우리에게 현재의 제약조건은 순차적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동시에 개선되어야함을 알려준다.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위해서는 n개의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한다고 하자. 그런데 어떤 이유 때문에 이 중 하나가 충족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할 때, 나머지 (n-1)개의 조건만은 모두 만족되는 것이 차선의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립시(R. Lipsey)와 랭카스터(K. Lancaster)는 이와 같은 직관이 틀린 것일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그들이 증명하는 바에 따르면 이미 하나 이상의 효율성 조건이 위배되어 있을 때는 충족되는 효율성 조건의 수가 늘어난다 해서 사회 후생이 더 커지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p572) <미시경제학> 中

[그림1] 차선의 이론(by 겨울호랑이)


[그림1]에서 원점에 대해 오목한 생산가능곡선과 몇 개의 사회무차별곡선들이 그려져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배분은 E점이 의미하는 쌀과 옷의 조합이 생산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선분FG로 대표되는 이 선분의 바깥쪽에 있는 상품의 조합은 선택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자. 이 제약하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 점이 반드시 생산의 효율성을 의미하는 생산가능곡선 위에 위치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림을 보면 생산가능곡선 위의 H점에서 보다 그 곡선 위에 있지 않은 I점에서의 사회후생이 더 크다는 것이 명백하게 나타나 있다.(p573) <미시경제학> 中


4. 유권자의 제약 배경 : 불가능성정리


관련기사 :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849060.html


  이에 대한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대응 논리는 '나라를 통째로 넘기겠습니까' 였다. 문재인 독재를 방치할 경우 개별 구성원의 자유가 위협받는다는 논리로 정리될 수 있을 듯한데, 이들의 논리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 하다. 결국 이슈가 독재와 사회개혁으로 압축된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선택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는 '불가능성 정리'라는 제약조건으로 설명이 가능할 듯 하다. 사회적 효율성과 독재성은 배타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 불가능성 정리의 핵심이다.


 애로우(K.Arrow)의 불가능성정리(不可能性定理, impossibility theorem)는 바람직한 성격을 두루 갖춘 사회 후생함수가 존재하지 않음을 입증함으로써 우리에게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불가능성정리는 사회적 선호체계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성격으로 다음의 네 가지 공리(axiom)를 제시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애로우는 이들 공리 중 1), 2), 4)를 모두 만족시키는 사회적 선호체계는 반드시 공리 3)을 위배하는 것을 증명했는데, 이것이 바로 불가능성정리의 핵심이다. (그리고, 문재인 독재를 공격하는 이론적 논거가 될 것이다)


1) 완비성(完備性, completeness)과 이행성(移行性, transitivity) : 모든 사회적 상태를 비교, 평가할 수 있어야 하며, a / b / c 라는 세 사회적 상태에 대해 a를 b보다 더 선호하고 b를 c보다 더 선호한다면 a를 c보다 더 선호해야 한다.


2) 파레토원칙(Pareto principle) : 이 사회의 모든 사람이 a를 b보다 더 선호한다면 사회도 a를 b보다 더 선호해야 한다.


3) 비독재성(non-dictatorship) : 이 사회의 어느 한 구성원의 선호가 전체 사회의 선호를 좌우해서는 안 된다.


4) 제3의 선택 가능성으로부터의 독립(independence of irrelevant alternatives) : a와 b의 두 사회적 상태를 비교한다고 할 때, 이들과 직접 관련이 없는 제3의 선택 가능성 c의 존재는 이들 사이의 선호 순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말아야 한다.(p571) <미시경제학> 中


 결국,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에 놓여진 과제 상황은 사회후생의 극대화를 위해 어느 조건을 포기해야 한다면 어떤 조건을 포기할 것인가. 그리고, 개혁은 단숨에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그리고, 선택의 결과는 문재인 정부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개인적으로 부패한 독립군'과 '개인적으로 훌륭한 일본제국군인'이 선거에 나왔을 때,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물음을 받았을 때 개인의 품성보다 그가 속한 조직을 보고 선택한 것과 같은 결과가 이번 선거에 나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5. 지방 선거 이후 과제와 정리


 참패를 한 야당도 마찬가지지만, 개인적으로는 여권인 여당에게 주는 국민의 메세지가 더 무겁다고 생각한다. 무서울 정도로 힘을 몰아준 유권자의 뜻이 무엇인지를 여권이 깨닫지 못한다면 결코 생존할 수 없을 것임을 <확장된 표현형 The Extended Phenotype>의 표현을 빌려 옮겨본다. 유전자가 적응의 수혜자라는 자연 법칙을 깨닫지 못했을 때, 적응하지 못하는 개체가 멸종하는 바와 같이 정당이 유권자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그 끝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명할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이것이 지방선거가 남긴 과제라 분석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어떤 행동 유형이 부적응이라는 말은 오직 이를 수행하는 동물 개체에서만 부적응이라는 뜻이다. 행동을 수행하는 개체는 적응인 행동으로 이득을 얻는 존재자가 아니다. 적응은 개체를 만든 유전하는 복제자에게 이익을 주며, 경우에 따라서 동물 개체에게 이익을 줄 뿐이다.(p454) <확장된 표현형> 中


 선택은 다른 유전자가 존재하는 조건에서 성공하는 유전자를 선호하기 때문에, 그 결과 유전자는 다른 유전자들이 존재하는 조건에서 성공한다.... 확장된 표현형이라는 신조에 따라 유전자(유전하는 복제자)가 내는 표현형 효과는 세계 전체에 미친다고 보는 것이 최선이며, 유전자가 자리한 개체나 다른 어떤 운반자에게 효과를 미치는 일은 그저 부수적 사건에 불과하다.(p227) <확장된 표현형> 中


[사진] 사진으로 요약한 제7회 지방선거 : 정의, 평화 그리고 심판(by 겨울호랑이)


PS. 선거에서 '차선의 이론'의 결론을 피하기 위해 유권자들이 '차악(次惡)'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매번 놓이는 것은 아이러니라 생각한다...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곰생각하는발 2018-06-15 11: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고급스러운 글을 읽는 기분입니다. ㅎㅎ

겨울호랑이 2018-06-15 11:26   좋아요 0 | URL
^^:) 조금 아는 것을 이어붙여 길게 늘어졌습니다 ㅋ 감사합니다

2018-06-15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5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5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5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5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5 1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6 0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6 0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06-15 14: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묵직하기가 하늘입니다 ㅎ

겨울호랑이 2018-06-15 14:40   좋아요 3 | URL
에고... 여러 이야기를 담다보니 글이 무거워졌네요 ^^:)

나와같다면 2018-06-15 17: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무서울 정도로 힘을 몰아준 유권자의 뜻이 무엇인지를 여권이 깨닫지 못한다면 결코 생존할 수 없을 것..

그들이 이 무게를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겨울호랑이 2018-06-15 17:47   좋아요 3 | URL
정말 그래야겠지요... 물론 그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도 유권자들은 또다른 대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요... 민주당 자신을 위해 깨달아야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cyrus 2018-06-15 18: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서 언론들은 ‘야권의 궤멸’을 ‘보수(자유한국당, 대한애국당)의 궤멸’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겨울호랑이님도 그렇게 보시는 것 같고요. 선거 전부터 지금까지 ‘더불어민주당 대 자유한국당’ 대결 구도 프레임으로 정치 지형을 분석하는 방식에 불편합니다. 이러한 분석 관점은 나이브합니다.

심각한 건 언론은 정의당, 녹색당, 민주평화당, 노동당 같은 진보 정당들의 정책 어젠다에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어요. 선거 결과 이후 전체적으로 보면 진보 정당들이 약진한 건 사실이지만, 앞으로 더불어민주당 중심의 정책 어젠다나 정치 이슈가 장기적으로 알려진다면, 진보 정당들도 불리합니다. 그럴수록 유권자의 선택 폭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요. 겨울호랑이님이 유권자의 선택을 분석한 관점(문재인 정부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한 전략적 선택)은 원론적으로 맞을지 모르나 현실을 반영한다고 볼 수 없어요.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모두 싫어서 진보 정당에 힘을 실어주고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원내정당인 정의당뿐만 아니라 원외정당에 속한 진보 정당들(녹색당, 노동당)도 정책 어젠다를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주류 언론은 진보 정당들의 행보에 주목하지 않았고, 진보 정당들의 목소리를 국민에게 들려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어요. 이러니까 국민들은 진보 정당들은 정책 어젠다를 못 내놓는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정의당은 ‘더불어민주당 2중대’라는 소리까지 듣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대 자유한국당’ 대결 구도 프레임이 계속 이어진다면 언론과 국민이 쏠리는 관심 정당은 ‘둘 중 하나’일 겁니다. 당장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국민이 다양한 정당의 정책 어젠다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겨울호랑이 2018-06-15 20:51   좋아요 4 | URL
먼저 cyrus님께서 좋은 의견 말씀해주셔 감사합니다. 그리고 cyrus님께서 말씀하신 다양한 정책 어젠다로 가야한다는 방향성에 대해서 저또한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다만, 그전에 선행과제들이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선거제도 개혁 같은 부분이 있겠지요. 현재의 소선거구제 하에서 진보 정당을 비롯한 중소 정당들이 의회 진출할 길은 많이 차단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 이전에 중선거구제 도입 등의 제도 개혁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지역 유지들과 정치권이 밀착 양상을 보이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례 대표제도를 강화할 필요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여겨지네요. 이러한 정치 개혁이 이루어진 후에야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 이전에는 거대 양당이외 세력이 자리잡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현재 주어진 상황이 단기적으로 바뀌기 전에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전략적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 투표에서 실제 투표 결과가 그렇게 나온 것으로 여겨집니다. cyrus님 말씀처럼 유권자들이 정당 정책을 확인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확인하는 유권자들도 분명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공약에 대한 평가를 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난 결과는 제도적 제약하에서 행해진 유권자들의 전략적 투표행태로 생각됩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이고 결과에 대한 해석일 뿐 우리가 가야할 방향성과는 다르다 여겨집니다. 이후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개헌과 제도 개혁을 통한 사회변혁이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런 변화가 이번 지방선거부터 시작되기를 바라봅니다.

kokoro 2018-06-15 22: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차선의 이론과 유권자의 선택을 고찰하신 점은 정말 흥미롭습니다. 마침 스티글리츠의 책을 읽고 있는데 스티글리츠는 차선의 이론이 최선의 상황이 달성되지 못한 상황에서 모든 정부 개입을 부인하는 것처럼 잘못 이해하는 것을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었거든요^^

결국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는 [개인의 선호를 사회적 선호로 집계할 수 있는 완벽한 사회적 의사결정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모든 사회적 대안을 일관되게 평가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사회후생 함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개인도 배제시키지 않고(보편성) 모든 사회적 대안에 대해(완비성) 항상 일관된 답을 줄 수 있는(이행성) 민주적인(비독재성) 사회적 의사결정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가능성 정리의 조건 중 지나치게 제약적이거나 덜 중요한 조건들을 하나씩 완화시키면 바람직한 사회적 의사결정체계가 존재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가령 아마티아 센(Amartya Sen)은 제한된 수의 선택 가능성 사이에 서열을 매길 수 있는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사회적 선호 체계를 찾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접근(완비성 완화)을 하고 있고, 베르그송(Bergson)은 사회적 후생 함수에 적극적으로 적절한 가치판단을 도입하여 개인 간의 효용의 비교를 어느 정도 허용한다(무관한 선택 대안으로부터의 독립성 완화)는 접근법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개인의 선호를 단봉 선호로 제한(보편성 완화)하거나 서수적 효용 함수가 아닌 기수적 효용을 사용하는 사회후생 함수(베르그송-새뮤엘슨) 등의 다양한 접근법 또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투표율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60.2%는 너무 낮다고 생각합니다. 투표를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을 주류 경제학(합리적 무지 가설)이 아닌 행동경제학으로 고찰해보는 것도 유의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겨울호랑이 2018-06-15 23:18   좋아요 2 | URL
kokoro님, 감사합니다. 경제학의 많은 부분이 정치학을 다루고 있어, 페이퍼에서 여러 생각을 해봤습니다.

kokoro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본 전제인 ‘공리‘의 한계를 찾아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알려주신 아마티아 센, 베르그송, 새뮤엘슨 등의 석학들이 제시한 방식 역시 애로우의 강공리 대신 약공리를 대안으로 삼는 것인 것 같네요. 다만, 이러한 대안에도 한계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짧게 해봅니다.

예를 들어, 행동경제학과 기수적 효용 등에서 나타날 수 있는 주관성으로부터 사회 전체 복리를 증진시키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대안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 또한 해결하기에 쉽지 않은 과제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게 됩니다...

투표율 60%가 낮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과거 산업화시대 도입된 제도가 21세기 변화된 생활 양식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수의 직장인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현실 속에서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유권자에 대한 다른 배려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공인인증으로 인터넷, 모바일 뱅킹을 하면서 모바일 투표는 왜 도입이 되지 않는가에 대한 생각도 언뜻 해보게 됩니다. 보완할 점이 있겠지만, 투표율을 높이는 여러 방안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4차 산업 시대에 맞는 생활양식의 변화를 제도가 못 따라가는 것은 아닌가 잠시 생각해봤습니다... kokoro님 덕분에 여러 가지 많이 배우고 생각해 봤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편한 밤 되세요!^^:)

kokoro 2018-06-15 23:31   좋아요 2 | URL
말씀 감사합니다. 주류 경제학이 말하는 ‘합리적 인간‘이라는 기본 가정과 전제에 회의감이 들곤 합니다^^; 겨울호랑이님께서 올리시는 글은 생각할 거리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 :)

겨울호랑이 2018-06-15 23:37   좋아요 2 | URL
저 역시 경제학의 기본 전제인 ‘합리적 인간‘이라는 가정이 현실에 맞지 않는 전제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경제학의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서 ‘합리적 인간‘과 ‘다른 조건이 변하지 않는다면‘이라는 전제는 붙일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계몽시대와 산업화 시대를 대표하는 ‘이성‘과 ‘다수‘라는 핵심 용어 대신 ‘감정‘과 ‘개인‘을 바라볼 수 있는 ‘차가운 머리 뜨거운 가슴‘의 21세기 경제학을 기대해 봅니다.^^:) kokoro님 감사합니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