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그리고 모든 도인 집에서는 어린아이를 치지 말라는 간절한 당부를하였다. ˝어린 자식 치지 말고 울리지 마옵소서. 어린아이도 하날님을 모셨으니 아이 치는 게 곧 하날님을 치는 것이오니 천리를 모르고 일행 아희를 치면 그 아희가 곧 죽을 것이니 부디 집안에 큰소리를 내지말고 화순하기만을 힘쓰옵소서. 이 같이 하날님을 공경하고 효성하오면 하날님이 조와 하시고 복을 주시나니 부디 하날님을 극진히 공경하옵소서˝라는 간절한 당부를 하였다. 후일 소춘 김기전(金起田)이 1921년에 천도교 소년호를 창립하고 어린이 운동을 시작한 것은 이 「내수도문」에 기초한 것이라고 전한다. (p162)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5-07 1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07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회남자 & 황제내경 : 하늘, 땅, 인간 그리고 과학 지식인마을 20
강신주 지음 / 김영사 / 200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 강신주(姜信珠, 1967 ~ ) 박사는 <회남자 & 황제내경 淮南子 & 黃帝內經>을 통해 동양 과학사상과 서양 과학사상의 차이와 동양 과학사상에 기반한 동양의학(한의학)의 신체관을 설명하고 있다. 리뷰에서 동양의학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뿌리가 되는 동양 과학사상에 대해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서양 근대 자연과학은 측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양(量)으로 치환한다. 우리가 분석하려는 요소를 제외한 나머지 요소는 주어진 조건으로 가정하게 된다. 'ceteris paribus, all things being equal'라 불리는 이러한 전제를 통해 일반법칙을 도출할 수 있게 되며, 세워진 수식을 통해 수리적 조작을 가능케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상과 주체의 엄격한 분리가 필요하다.


 서양의 근대 자연과학은 인간의 양적인 경험에 주목한다. 따라서 이 전통은 이를 통해 자연현상을 수학적으로 일반화하려는, 즉 양화하려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 이와 달리 동양 전통 과학사상은 음양오행론이 보여주는 것처럼 인간의 질적 경험을 직접 일반화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제1성질(수학적으로 다룰 수 있는 것. 크기, 모양, 양, 운동 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결여되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자연에 대한 양적인 조작 가능성을 어렵게 만들었다.(p36) <회남자 & 황제내경> 中


 반면, 동양 전통 과학에서는 대상과 주체가 분리되지 않는다. 기 氣의 정의에서 볼 수 있듯이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는 동양 과학의 태도는 관찰되지 않는 사실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서양 과학의 태도와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결과 동양 전통 과학에서는 일반 법칙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하게 되고, 이러한 차이로부터 동양 과학은 서양 과학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우리는 기를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기가 비가시적 invisible 이지만 감지할 수는 sensible 있는 것이다'라는 정의이다.(p51)... 우리는 동양 전통 과학사상의 중대한 특징 하나를 읽어낼 수 있다. 즉 기에 대한 경험이나 감지는, 주체와 대상 사이의 분리를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에, 객과화되기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여기서 객관화되기 어렵다는 표현은 양화되기 어렵다는 것, 즉 측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p52) <회남자 & 황제내경> 中


 우리는 동양의 전통 과학사상이 기본적으로 '실험'을 통한 반증가능성 falsifiability, 즉 실험을 통해서 반박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결여되어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동양 과학사상은 '실험'하고나 '조작'하기보다는 오히려 '설명'하는데 치우쳐 있었다고 할 수 있다.(p39) <회남자 & 황제내경> 中


 이러한 사상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동양의학은 서양의학과 다른 방향을 추구하게 되었다. '편작'으로 대표되는 동양의학은 인체를 '유기체'로 바라보는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관점이 서양의학의 환원주의 reductionism, 還元主義 의 극복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동양의학이 주먹구구식 의학이 아니라, 혁명적 사고의 전환의 결과임을 알게 된다.


[사진] 동양 의학과 서양 의학 차이(출처 : http://book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4/13/2013041300268.html)


 동양의학은 우리의 신체를 기계가 아닌 살아 있는 '유기체'로 다룬다. 유기체란 어느 한 부분의 변화가 전체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고, 전체의 변화는 모든 부분의 변화를 낳을 수 있는 통일체를 말하는 것이다.(p15)... 배를 절개해서 내장들을 직접 살펴보고 이것들을 치유하려는 유부 兪跗라는 의사는 서양의학의 해부학적 사유와 매우 유사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해부학적 치료법에 대해 편작 扁鵲은 단호하게 반대 입장을 피력한다. 그러나 이런 해부학적 치료법에 대해 편작은 단호하게 반대 입장을 피력한다.(p16) <회남자 & 황제내경> 中  


 편작 앞에는 이미 '유부'로 대표되는 '해부학적 의학'이 있었던 것이다. 편작의 새로운 의학이 해부학적 사유를 부정하면서 출현했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동양의학이 해부학에 기초를 두고 있는 서양의학과 대립할 수 밖에 없는 성격을 태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예견하고 있기 때문이다.(p16)... 동양의학은 어떻게 인간의 몸 안에 오장육부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동양의학도 기본적으로는 해부학적 전통에서 왔다... 그들 역시 몸을 구성하는 각각의 장기를 직접 관찰했고 그것들의 위치를 경험적으로 확인했던 것이다.(p132) <회남자 & 황제내경> 中


 그렇다면, 동양 과학사상에 기반한 동양의학의 탁월한 점과 한계점은 무엇일까? <회남자 & 황제내경>에서는 동양의학의 탁월한 점으로 몸의 기능을 관계를 통해 해석한 점으로 꼽는다. 우리 사회가 유지되는 원리와 질서가 우리 몸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보다 보편적인 도 道를 끌어낼 수 있다. 반면, 지금 사회에 적용되고 있는 질서를 통해 자연 nature 自然 법칙을 바라보기에, 혁명적 인식의 전환을 어렵게 만든다. 초기 동양의학이 혁명적 사고의 전환의 결과였음에도, 이후 획기적인 전환점이 없음은 이를 반증한다. 그리고, <회남자 & 황제내경> 에서는 그 예로 뇌(腦)의 기능을 발견하지 못한 동양의학을 들고 있다.


 <황제내경>에서 다른 장기도 물론 어느 하나 예외 없이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그런데도 서한시대 동양의학자들이 생명과 관련하여 두 가지 중심, '일차적 중심(위장)'과 '이차적 중심(심장)'을 따로 설정해다는 점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일차적 중심'이 신체의 내부와 외부 사이의 관계를 상징한다면, '이차적 중심'은 신체 내부의 균형과 조화를 상징한다. 결국 '이차적 중심'은 최종적으로 '일차적 중심'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 이것이 바로 <황제내경>의 탁월할 통찰이었다.(p136) <회남자 & 황제내경> 中


 왜 <황제내경>은 뇌가 정신활동의 근원이라는 것을 통찰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동양의학자들이 정신활동이 직접 장기를 손상한다는 임상적 경험을 직접 추상화해냈기 때문이다.(p137)... 고대 중국인은 경험적으로 사실을 관찰하고 그에 주목했다. 이로부터 그들은 기쁨, 노여움, 두려움, 걱정 같은 정서적 반응이나 사유 같은 지적인 활동이 신체 내부의 장기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다고 생각했다. 즉 인간의 정신활동이 장기에 직접 속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오행론이 함축하는 유추논리이 부적절함이 확실하게 드러난다.(p138) <회남자 & 황제내경> 中


 책을 읽고 나면 우리는 이러한 차이를 보이는 동양의학(한의학)과 서양의학 중 어떤 의학이 더 우수하고, 어떤 치료법을 선택해야 하는가하는 문제를 자연스럽게 던지게 된다. 이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잠시 마케팅 Marketing 조사 기법을 머리도 식힐 겸 살펴보자. 


  <회남자 & 황제내경>을 읽다보면 우리는 마케팅 조사 기법 중 정성 Qualitative 定性 조사와 정량 Quantitative 定量조사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 정량 조사 기법은 객관식 문항을 중심으로 소비자의 의향을 파악하는 분석 방법인 반면, 정성 조사 기법은 개념 도출을 위해 사용하는 분석 방법이다. 전자가 객관화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영향력을 파악하는데 활용되는 방법이라면, 후자는 전혀 새로운 사실, 제품 등의 소비자 수용성을 파악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사진] 정성조사 정량조사(출처 : https://www.weetechsolution.com/blog/strengths-and-weaknesses-of-quantitative-and-qualitative-research)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일반적인 법칙/치료법을 추구하는 서양의학은 우리가 아픈 상황에 직면했을 때 눈 앞의 치료를 위해서 바람직한 반면, 동양의학은 예방의학적 차원에서 우리가 잘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사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병원을 이용하고 있기에 별로 놀라운 결론은 못된다.)


 <회남자 & 황제내경>은 이처럼 동양과학과 서양과학 사상 기반의 차이에서 출발하여 의학의 차이까지를 넓게 바라보고 있다. 어느 의학이 더 우수한가에 대한 질문과 답에는 주관차이가 존재하겠지만, 동양 의학 역시 해부학적 사실에서 출발했다는 점과 인식의 전환이 있었음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회남자 & 황제내경>은 우리에게 전통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준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좋은 교양서적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대상 - 주체'와의 관계를 정리한 본문 내용을 살펴보면서 이번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서양의 분리법에서는 내포 intension와 외연 extension이라는 유명한 논리적 개념들이 출현하게 된다. 여기서 내포가 어떤 개념이 함의하고 있는 속성들을 의미한다면, 외연은 그 개념이 가리키는 대상을 의미한다. 그런데 음양 陰陽에 의한 의한 분류법에는 내포와 외연이라는 논리적 관계가 성립될 여지가 전혀 없다. 단지 인상적이고 감각적인 유사성에 의한 유비 analogy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 점에서 유비적 사유는 마치 시 詩에서의 '은유'나 '직유'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p55) <회남자 & 황제내경> 中


PS. '대상-주체'의 관계를 분리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서양과학이라면, 이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동양과학이라고 정리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동양과학은 통계학에서 말하는 '공분산 共分散, covariance : 2개의 확률변수의 상관정도를 나타내는 값'을 고려한 과학으로 정리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우리는 동양과학 사상으로부터 현대 물리학의 양자역학 量子力學, quantum mechanics을 '유비'해낼 수 있을 것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8-10 1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0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0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0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18-08-10 22: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분야에 깊이있는 독서를 하시고,
늘 글도 꾸준히 쓰시는 호랑이님.. 부럽고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좋은 밤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8-08-10 22:48   좋아요 2 | URL
에고. 아니에요. 저는 북프리쿠키님께서 독서 모임을 통해 여러 분야의 책을 깊이 있게 읽고 계시는 모습이 많이 부럽습니다. 한동안 더운 날이 이어진다니 북프리쿠키님께서도 건강한 주말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병경백자  兵經白字>는 게훤(掲暄, 1613 ~ 1695)이 저술한 병법과 관련한 책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병법과 관련한 100자 운(韻)을 제시하면서 병법과 관련한 내용을 구성한다. 상 중 하로 구성된 3권은 각각 지부(智部), 법부(法部), 연부(衍部)로 되어 있으며, 이하 세부 주제어를 제시하여 각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책의 내용이 크게 어렵지 않지만, 글을 읽다보면 다음과 같은 상반된 내용이 언급되기도 하기에 현실 적용에 어려움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법부>의 '과장하기'와 '축소시키기' 편이 그렇다.

 

 과장하기(張) : 아군의 위엄을 과장하여 적의 사기를 빼앗고 변칙적인 계책을 내어 승리를 취하는 것이다. 이것이 과장되게 위세를 부려 실용적 이익을 성취하는 것이니, 허약한 군대에게는 좋은 방법이다.(p132) <병경백자> 中

 

 축소시키기(減) : 자신의 정통(精通)하고 능숙한 능력을 감추는 것은 적군의 성대한 기세를 약화시킬 수 있으니, 오직 축소시키는 것만이 적군의 강력함을 이길 수 있고 오직 축소시키는 것만이 적군의 강력함을 가지고도 아군을 어렵게 만든다. (p134)  <병경백자> 中

 

 개별적으로는 이해되지만, 전체적으로는 서로 모순(矛盾)되는 듯한 위의 내용을 통해 우리는 병법서를 읽기 전 무엇보다도 자기 이해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를 잘 설명한 내용이 너무도 유명한 <손자병법 孫子兵法>의 다음 구절이 아닌가 한다.

 

 그러므로 말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적을 알지 못하고 나만 알면 한 번은 이기고 한 번은 지게 될 것이며, 적을 알지 못하고 나도 알지 못하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위태롭게 될 것이다."(p106) <손자병법> 中

 

 따라서 용병을 아는 자는 출동해도 미혹되지 않고, [군대를] 일으켜도 막힘이 없다. 따라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승리는 곧 위태롭지 않으며 하늘을 알고 땅을 알면 승리는 곧 온전해질 것이다.(p257) <손자병법> 中

 

 많은 이들이 현대 기업의 경영(經營)을 전쟁에 비유하며, 병법서를 읽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현대 경영서적들이 옛 병법과 고대 전투를 사례로 다루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병법서에서 제시한 수 많은 방법을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가,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이 어떤지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연후에 병법서를 읽더라도 크게 늦지 않을 것임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5-07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7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7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7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7 2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7 2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도덕경


노자(老子, BC 604 추정)의 <도덕경 道德經> 에서는 무위(無爲)를 말하며, 자연의 법칙에 따를 것을 말하고 있다. 특히, 제16장에서는 자연의 이치에 따르면 오래갈 수 있으며, 죽을 때까지 위태롭지 않다고 말하면서 순리(順理)에 따를 것을 강조한다.

<도덕경 제 16장  第16章> 


지허항야至虛恒也, 수중독야守中篤也 

텅 빈 상태를 유지해야 오래 가고, 중(中)을 지켜야 돈독해진다.


천내도天乃道 도내구 道乃久 몰신불태 沒身不殆

하늘에 부합하는 일이 곧 자연(自然)의 이치다. 자연의 이치대로 하면 오래갈 수 있으며, 죽을 때까지 위태롭지 않다.(p145)'


2. 엔트로피 법칙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자.  우리 주변의 자연(nature)법칙에는 물리학의 법칙이 포함되며, 열역학의 법칙도 여기에 속한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엔트로피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되며, 엔트로피의 증가는 다른 말로 유용(有用)한 에너지의 손실을 의미한다.


'열역학은 우리가 아는 과학적 개념 중에서 가장 단순하고 가장 놀라운 것이다. 제1법칙과 제2법칙을 합쳐서 하나의 짧은 문장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며(제1법칙), 엔트로피의 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제2법칙)


제1법칙을 부연설명하자면 에너지를 창조하거나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p50)... 제2법칙은 이렇게 말한다. 에너지는 한 가지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겨갈 때마다 "일정액의 벌금을 낸다." 이 벌금은 뭔가 일을 할 수 있는 유용한 에너지가 손실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을 가리키는 용어가 있다. 그 용어가 바로 엔트로피(Entropy)다. 엔트로피는 더 이상 일로 전환될 수 없는 에너지의 양을 츨정하는 수단이다.(p51)'


 엔트로피의 증가는 평형상태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데, 이 극대점은 자유롭고 유용한 에너지가 존재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은 유용한 에너지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일정량의 에너지가 무용한 에너지로 전환된다는 뜻이다.(p52)... 평형상태는 엔트로피가 극대점에 달한 상태이며,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롭고 유용한 에너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이다. 클라우시우스는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열역학 제2법칙을 요약했다. "엔트로피(무용한 에너지의 총량)는 극대점을 향해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p53)'


3. 유위(有爲)와 무위(無爲)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르면, 자연상태에서 에너지는 변환되고, 변환되는 과정에서 에너지는 손실된다. 물론 에너지의 총량은 보존되지만, 유용한 에너지는 손실된다는 것이 엔트로피의 법칙이라고 했을때,  자연의 이치에 따른다는 '무위(無爲)'는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엔트로피가 증가'되는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옳은지, 그렇지 않으면 엔트로피의 억제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옳을 것인지. 

 환경 오염으로 자연이 파괴되고 있는 현재 상황은 부(負)의 에너지인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상황'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상황에서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는 당연히 행동해야 한다. 이때 우리가 선택하는 '무위(無爲)'는 단순히 비움(虛)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적극적인 행(行)함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진정한 '무위'에 대한 보다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노자는 그 컵을 채우려는 인간의 행위를 유위라고 부른다. 유위란 곧 존재에 있어서 허(虛)의 상실이다. 그러니까 그 반대방향의 행위, 즉 빔을 극대화(極大化)하는 방향의 인간의 행위를 바로 무위라고 부르는 것이다.(p189)'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2-03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03 2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03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03 2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04 0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04 0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04 0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04 0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04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8-02-04 0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입춘입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올해도 좋은 일들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겨울호랑이님, 따뜻한 일요일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02-04 11:03   좋아요 2 | URL
^^: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한 해 좋은 일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는 철학자 강신주(姜信珠)가 생각하는 노자(老子)사상과 장자(莊子)사상이 다름을 주장하고 있는 책이다. 지식인 마을 시리즈 중  하나인 <장자 & 노자 : 道에 딴지걸기> 내용을 보다 깊이있게 다루고 있다. 프롤로그에 책 내용이 잘 요약되어 있어 이를 옮겨본다.

 

 '통치자는 피통치자에게 노동력이든 재화든 수탈하고, 그걸 (재)분배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수탈과 재분배의 메커니즘이 바로 국가의 비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수탈과 재분배의 메커니즘이 바로 국가의 비밀이라고 할 수 있다. 노자의 위대함, 아니 무서움은 이 메커니즘을 정확히 포착하여 그걸 싸늘한 눈으로 통치자의 정치에 응용하려는 데 있다. 바로 이 수탈과 재분배의 메커니즘을 노자는 "도(道)"라고 불렀던 것이다.(p13)... 나는 장자의 속내는 타자와의 소통에 있다고 생각했다... 장자가 우리에게 권고했던 치열한 자기 수양은 타자와 소통하려는 열망에 종속된다는 것, 내 첫 책이 밝히려고 했던 건 바로 이것이다. 운 좋게도 타자와 소통했다면, 그 흔적도 남을 수밖에 없을 터. 그것이 바로 장자의 머릿속에 있던 "도(道)"였다. 바로 여기에서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 그러니까 "길은 걸어가야 이루어진다"는 장자의 사자후가 포효하게 된다.(p12)'


 저자는 2004년에 펴낸 <노자 : 국가의 발견과 제국의 형이상학>을 통해 노자 사상에서 파시즘, 제국주의를 끌어내고 있다.(이 책은 <장자 : 타자와의 소통과 주제의 변형>과 <노자 : 국가의 발견과 제국의 형이상학>의 합본이다.) '무위(無爲)'에서 에떻게 '제국주의 帝國主義'가 나올 수 있는지 결론만으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지만, 이 책은 이에 대한 논리를 서술하는 책이다. 이하 이번 페이퍼에서는 이 책에서 <노자>사상이 어떤 방식으로 제국주의로 나아가는지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고, 서양철학과 역사는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를 보려고 한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도덕경>에 대한 다른 해석과 함께 개인 의견을 적었는데 미리 말하자면 내용이 많이 긴 편이라 지루할 수 있을 것 같다.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의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여기까지 읽으셔도 읽으시는 것을 권하고 싶다.  


1. <도덕경 道德經> 42章


 가. 개별자를 통해 도(道)를 끌어냄 


'백서본 5장(왕필본 42장)에는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는 유명한 구절이 등장한다. 이 구절만큼 노자와 장자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 아니 정확히 말해 노자와 장자는 우리의 통념과는 달리 대립적이기까지 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p51)'


 저자는 먼저 도덕경 42장을 통해 노자 사상과 장자 사상의 차이를 밝히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노자는 하나, 둘, 셋의 개별자들이 서로 모순되지만, 조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보편적인 질서인 도(道)를 도출한다. 이는 수학적으로 1+1=2, 2+1=3... 무한수(無限數)를 도출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연속된 수(數)의 확장을 통해 만물을 설명하는 일정한 법칙(자연법칙)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이해가 된다.(더하는 수의 동일성(同一性) 문제는 여기서는 논외로 하자.)


제42장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萬物負陰而抱陽, 沖氣以爲和. 

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 만물부음이포양, 충기이위화. 


人之所惡, 唯孤, 寡, 不穀, 而王公以爲稱. 

인지소악, 유고, 과, 불곡, 이왕공이위칭. 


도는 일을 내고, 일은 이를 살리며, 이는 삼을 기르고, 삼은 말물을 이룬다. 

만물은 음을 진 채 양을 품고 있는데, 두 기가 서로 만나 조화를 이룬 것이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은 특히 고(孤)와 과(寡) 그리고 불곡(不穀)이지만, 

오히려 왕은 그것들도 자신의 호칭을 삼는다.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첫 번째 단락이 개체의 발생론을 피력하고 있다면, 두 번째 단락은 군주의 수양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첫 번째 단락이 두 번째 단락의 근거로 제안된 것이라고 이해하면, 전체 5장의 구조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첫번째 단락에 따르면 도는 하나(一)를 낳고, 이 하나(一)는 둘(二)를 낳는다. 그리고 이 둘(二)은 셋(三)을 낳고 최종적으로 이 셋(三)이 만물을 낳는다... 난해해 보이는 하나, 둘, 셋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노자 철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유명(有名)"논리를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반복하자면 노자는 이 세계를 도에 의해 설명하고자 했던 사변적 형이상학자가 아니다. 그래서 노자는 아주 재빠르게 만물의 층위로 곧바로 미끄러져 나가버리는 것이다. 노자에 따르면 모든 개별자들은 상호모순적이고 대립적인 이중적 규정의 존재이며 또한 이런 이중적 규정을 조화롭게 할 수 있는 주체적 역량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p53)


'노자의 발생론은 역으로 읽어야 한다. 즉 만물은 상호모순적인 두 계기로 규정되지만 아울러 이런 모순적인 규정성을 조화시킬 수 있는 주체적 역량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부터 노자는 셋, 둘, 하나라는 추상적인 계기를 발견해낸다. 그리고 결국 만물들을 규정하는 모든 대립과 조화의 계기는 오직 내재적 원인(causa immanens)으로서의 "도(道)"에 의해 조율될 수 밖에 없다고 발견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개별자에 대한 통찰을 기초로 가장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층위에서 "도"를 발견한 다음에 이것을 발생론적 도식으로 설명한 것이 바로 첫번 째 단락이라고 할 수 있다.(p54)'


나. 군주(君主), 국가(國家) 개념의 도출


이어서 저자는 군주(또는 국가)의 개념과 노자 사상을 결합시킨다. 사실, 이 지점이 노자 사상에 대한 해석이 갈라지는 분기점이 되는 지점이다. 본문에서 '而王公以爲稱'이라고 하는 부분에 있어 저자는 '왕=군주'로 해석을 하고, 이를 통해 "짐이 곧 국가다(L'Etat, c'est moi)"라는 말과 유사하게 이로부터 '국가' 개념을 끌어낸다. 이제 논의는 '국가'로 옮겨간다. 그리고, 이상의 자연법칙과 사회법칙과의 연결고리는 다음 주장의 주요한 논거가 된다.

 

 '노자는 아주 재빠르게 "군주"의 논의를 도입한다. 노자는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로 바로 들어가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모든 개별자들의 내재적 원인으로서의 "도"에 대한 논의와 "개별자(萬物)'의 규정에 대한 논의는 군주에 대한 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제안된 근거였을 뿐이다. 다시 말해 "도"와 "개별자" 사이의 관계는 "국가"와 "군주" 사이의 관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제안된 말이다.(p54)... 국가는 군주의 내재적 원인이고  따라서 군주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인식은 국가의 기능과 위상에 대한 인식으로 파생되는 것이지 그 역이 아니다. 이 점에서 노자에게 "도"와 "개별자" 사이의 인과관계는 "국가"와 "군주"사이의 인과관계의 "내재적 문법"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p55)'


2. <도덕경 道德經> 77章


제77장


天之道, 其猶張弓與, 高者抑之, 下者擧之,有餘者損之,

천지도, 기유장궁여, 고자억지, 하자거지,유여자손지,

 

不足者補之, 天之道損有餘而補不足,

부족자보지, 천지도손유여이보부족,

 

人之道則不然, 損不足以奉有餘, 孰能有餘以奉天下, 唯有道者,

인지도칙불연, 손부족이봉유여, 숙능유여이봉천하, 유유도자,

 

是以聖人爲而不恃, 功成而不處, 其不欲見賢.

시이성인위이불시, 공성이불처, 기불욕견현.


자연의 도는 마치 활을 당기는 것 같구나! 높으면 눌러주고 낮으면 들어준다. 

남는 것은 덜어내고 부족한 것은 보태준다. 자연의 도는 남은 것은 덜어서 부족한 것을 채우는데, 인간의 도는 그렇지 않다. 부족한 데서 덜어내어 여유 있는 쪽을 봉양한다.

누가 남는 것을 가지고 천하를 봉양할 수 있겠는가? 오직 도를 체득한 자(聖人)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이런 이치로 성인은 무엇을 하고도 그것을 소유하지 않으며 공이 이루어져도 거기에 거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나은 점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42장에서 '국가'의 개념을 끌어냈다면, 이 국가가 어떤 기능을 하는가는 77장에서 살펴본다. 77장에서 언급된 '성인(聖人)'은  저자에게는 '재분배자'로서의 권력이 된다. 이로써, 성인은 더이상 '무위자연 無爲自然'의 '도(道)'와 결별하고 하나의 구조(structure)가 되어버린다. 


'백서본 42장(=왕필본 77장)은 빛을 발휘하고 있다. 이 백서본 42장에서 노자는 국가의 기능에 대해 자신의 사유를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자에 따르면 자연의 법칙은 높은 것을 누르고 낮은 것을 올리고 남는 것은 덜고 부족한 것은 채우는 데 있다. 그런데 노자는 이런 자연의 법칙에 비추어 인간 사회 법칙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인간 사회에서는 오히려 가난한 사람의 것을 빼앗아서 부유한 사람에게 더해주는 것이 법칙인 것처럼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노자는 이상적인 통치자, 즉 성인(聖人)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다시 말해 노자의 이상적인 통치자(=聖人)는 기본적으로 "재분배(redistribution)"가 국가의 핵심 기능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p117)'


'노자 철학의 탁월한 점은 그가 국가를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에 일어나는 교환의 관계, 즉 수탈과 재분배의 논리에 입각해서 파악했다는 있다는데 있다. 다시 말해 그는 국가를 어떤 신비한 무엇으로 파악하기보다는 경제적인 기구(economical mechnism)로 파악했다는 것이다.(p125)'


저자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 노자와 가라타니 고진의 이론을 결부시킨다. 이제, 노자사상은 자본주의 경제사상으로 변화되었다. '자본주의 사상'으로 변신한 이상 '제국주의'로의 이행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가라타니 고진의 분석이 지닌 중요성은 그가 국가를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교환 관계로 통찰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진에 따르면 국가는 기본적으로 약탈을 통한 우월성 확보, 이어서 약탈의 연속성과 지속성을 위해서 수행되는 재분배의 과정을 통해 작동한다. 결국 가라타니 고진의 논의가 옳다면, 국가의 교환 논리는 자본의 논리와는 여러 모로 구별할 수 있지만, 자본의 논리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p126)'


3. <도덕경 道德經> 80章 : 국가의 발전(by 겨울호랑이)


 책에는 소쉬르, 하이데거, 레비나스 등 많은 학자들이 등장하면서 파시즘과 제국주의로의 이행을 설명한다. 그래서, 책과는 다른 방법으로 발전단계를 설명해본다. 이하 체제의 변화는 <도덕경>, <국가>, <정치학>,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으로 백성들이 국가를 이루고, 제국을 이뤄서 붕괴되는 것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구성해봤다. 논의의 서두는 도덕경 80장을 먼저 서두로 잡았다. <도덕경 80장>이 백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기도 하지만, 이는 노자 사상과 제국주의가 결합되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의문의 제기이기도 하다. 나라를 적게 하고 백성의 수를 적게하라는 것(小國寡民)은 <도덕경>의 문장 그대로다. 지극히 반(反)제국주의 적인 내용을 본문으로 확인하면서도, <도덕경>을 현대 사상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규모를 팽창시켜가는 제국주의 사상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 앞으로도 생각해볼 과제라 여겨진다.


<도덕경 제80장>


小國寡民, 使有什佰之器而不用, 使民重死而不遠徙,

소국과민, 사유십백지기이불용, 사민중사이불원사,

雖有舟輿, 無所乘之, 雖有甲兵, 無所陳之,

수유주여, 무소승지, 수유갑병, 무소진지,

使人復結繩而用之,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사인부결승이용지, 감기식, 미기복, 안기거, 낙기속,


나라를 작게 하고 백성의 수를 적게 하라. 많은 도구가 있더라도 쓸 일이 없게 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죽음을 중히 생각하여 멀리 가지 않도록 한다.

배와 수레가 있더라도 탈 일이 없고 군대가 있더라도 펼칠 일이 없다.

백성들로 하여금 결승 문자를 회복하여 쓰게 한다. 그 음식을 맛있어 하고

그 옷을 곱다고 여기며 그 거처를 편안해 하고 그 풍속에 기꺼워한다.


 이와 같은 의문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주장처럼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부족함이 생겨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점차 나라는 커지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더 많은 사람이 생겨남에 따라 부족함은 점점 더 커지게 되고 그 결과 전쟁이 발생하게 된다. 전쟁을 통해 나라와 나라가 병합되고 제국이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플라톤(Platon, BC 427 ~ 347) 이전 세대에서 '아테네 제국'과 이를 낳은 '페리클레스(Pericles, BC 495 ~ 429)'를 통해 역사 속에서 소국(도시국가)에서 제국으로의 발전양상을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로는 나라가 생기는 것은 우리 각자가 자족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것이 필요 때문에 다른 사람을 맞아들이고, 또 다른 필요 때문에 또 다른 사람을 맞아들이는 식으로 하는데, 사람들에겐 많은 것이 필요하니까, 많은 사람이 동반자 및 협력자들로서 한 거주지에 모이게 되었고, 이 "생활공동체(synoikia)"에다 우리가 "나라(polis)"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네..."최소 한도의 나라(he anankaiotate polis)"는 넷 또는 다섯 사람으로 이루어지겠네.(2권 369b ~ 369d)'


 '다시금 이 나라를 한층 더 크게 만들어야만 되네. 앞의 그 건강한 나라는 더 이상 적합지 못한데, 이는 이미 그 규모에서 확장을, 수에서 충만을 보아야만 하겠기 때문일세... 그런데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하다보면 영토 또한 그때에는 그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에 충분한 것이었지만, 이젠 충분하기는커녕 아마도 작아 빠지게 될 것세. 아니면 어떻다고 말할까?... 우리가 목축하고 경작하기에 넉넉한 땅을 가지려 할 경우에는, 우리로서는 이웃 나라 사람들의 땅을 일부분 떼어내야만 되겠고, 다시 그들은 그들대로, 만약에 그들 역시 필요 불가결한 것들의 한도를 벗어나, 재화의 끝없는 소유에 자신들을 내맡겨 버리게 될 때는, 역시 우리 땅을 떼어 가져야만 되지 않겠는가? 그 다음에는 우리가 전쟁을 하게 되겠지.(2권 373d ~ 373e)'



[지도]아테네 제국(출처 : http://kalnaf.egloos.com/m/3379624)


 페리클레스라는 걸출한 인물이 다스린 50여년의 시간동안 아테네는 황금시기를 맞이함과 동시에 멸망의 씨앗을 동시에 품게 되었다. 그에 대해 언급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페리클레스 편을 살펴보자.


 '제 10권인 이 책에서 나는 페리클레스와, 한니발과 처절하게 싸운 파비우스 막시무스(Fabius Maximus)의 생애를 기술할 것이다. 이 두 사람의 탁월함은 서로 비슷하다. 특히 온유함과 올바름, 백성들과 동료 관리의 어리석음을 참는 능력에 힘입어 두 사람은 그들의 조국에 크게 이바지했다.(p186)... 그가 죽은 뒤 일어난 일련의 사건으로 아테나이인들은 곧 그의 가치를 알게 되어 그를 몹시 아쉬워했다... 남들의 시샘을 사 독재정치니 참주정치니 하고 비난받던 그의 권력이 국가를 지켜주는 보루였음이 밝혀진 셈이다. 왜냐하면 치유할 수 없는 화근으로 자라나지 못하도록 그가 늘 억제하고 눈에 띄지 않게 했던 온갖 부패와 해악이 이제는 국가를 덮쳤기 때문이다.(p241)'


 페리클레스 치세(治世) 동안 번영의 시기를 맞이했지만, 그의 치세는 '참주정치'라는 굴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러한 정체의 한계는 페리클레스 시대에 이미 대내적으로는 정적(政適)과 민중들의 견제, 대외적으로는 외국과의 대립으로 나타나게 되며 결국, 아테네 제국은 펠로폰네소스 전쟁(Peloponnesian War,BC 431 ~ 404)'을 통해 무너지는 결과를 맞게 된다.

 

'참주정체도 다른 정체와 마찬가지로 참주정체에 반대하는 더 강력한 국가가 있을 경우 외부적인 원인에 의해 무너질 수도 있다. 이념이 상반된 까닭에 그 국가는 참주정체를 무너뜨리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그럴 힘만 있으면 원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기 마련이다... 왕정과 귀족정체는 정체(政體)가 다르기 때문에 참주정체를 적대시한다. 그런 이유에서 라케다이몬인들은 수많은 참주정체를 해체했고, 쉬라쿠사이인들도 좋은 정체를 갖고 있는 동안에는 그렇게 했다.(1312a39)' 


4. 노자 사상 = 제국주의 사상(?)


 기본적으로 이 논의의 시작은 '왕=군주'라고 해석되는 것에서 시작된다. 앞서 책의 내용으로 볼때 왕을 군주로 해석하고 이로부터 국가가 도출된 것으로부터 '제국주의' 개념이 나왔다는 것을 상기해보자. 여기에서 출발점을 달리해서 <노자>를 살펴보자.


<도덕경 제3장>


爲無爲 위무위

 

則無不治 즉무불치 

 

'무위'를 실천하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


노자 사상을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에서처럼 경제학적으로 해석하더라도 다른 관점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해석은 '무위= 보이지 않는 손'으로부터 출발한다. 시장의 질서에 맡기도록 하면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국부론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의 내용은 '무위'사상과 의미면에서 잘 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각 개인이 최선을 다해 자기 자본을 본국 노동의 유지에 사용하고 노동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노동을 이끈다면, 각 개인은 필연적으로 사회의 연간수입이 가능한 한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 된다. 사실 그는, 일반적으로 말해서, 공공의 이익(public interest)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지도 않고, 공공의 이익을 그가 얼마나 촉진하는지도 모른다. 외국 노동보다 본국 노동의 유지를 선호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안전(security)을 위해서고, 노동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그 노동을 이끈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이익(gain)을 위해서다. 이 경우 그는, 다른 많은 경우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에 이끌려서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p552)'


 추가적으로, 최근 신자유주의자들이 규제철폐를 외치며 '보이지 않는 손'을 강조하는데, 이는 <국부론>의 전제가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임을 외면하는 논리다. <도덕감정론>에서 애담 스미스 Adam Smith, 1723 ~ 1790)는 타인의 고통을 생생하게 느끼는 인간을 전제하고, 이러한 인간의 감정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공감하지 못하는 인간들의 경제행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손'이 남용되는 것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利己的  : selfish)인 존재라 하더라도, 그 천성(天性 :nature)에는 분명히 행동원리(principles)가 존재한다. 이 행동원리로 인하여 인간은 타인의 행운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단기 그 행운을 바라보는 즐거움 밖에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행운을 얻은 타인의 행복이 자기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연민(憐憫 : pity)이나 동정심(同情心 : compassion) 또한 이와 같은 종류의 것인데, 이것은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보거나 또는 그것을 아주 생생하게 느낄 때 드는 종류의 감정이다.(p3)


이렇게 본다면 '도(道)'를 통해 체제와 권위를 부여하기 보다는, 선(善)하다(또는 동점심이 있다)는 인간의 본성(本性)믿고, 일체의 간섭을 배격하자는 주장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다시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로 돌아와서 '노자 사상'에서 '제국주의'를 끌어낸 관점은 충분히 의미있고 즐거운 지적 과정이었지만, 전체적인 흐름과는 맞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도덕경> 42장의 내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자연질서에서 국가로 넘어가는 연결고리가 되는 이 부문에 대한 설명은 다석 류영모(多夕 柳永模, 1890 ~ 1981)의 <老子 : 빛으로 쓴 얼의 노래>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노자> 42장에 해당되는 한 구절의 설명을 보자.

 

'萬物負陰而抱陽 만물부음이포양. 거의 모든 생물들은 향일성(向一性)을 지니고 있다. 짐승은 암놈이 숫놈을 지고 숫놈이 암놈을 안는다. 이 세상은 거의 모든 것이 음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프리초프 카프라는 서양 문화는 양(陽)의 특성이 음의 특성을 월등히 능가하는 문화라는 결론을 내렸다. 주렴계(周濂溪)의 태극도설에는 양이 극에 이르면 음으로 전환되고 음이 극에 이르면 양으로 전환한다고 하였다. 스티븐 호킹이 말한 특이점(特異點)도 양이 음으로 변하고 음이 양으로 변하는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음양의 법칙이 인연(因緣)의 법칙이다. 토인비의 도전 응전의 법칙이나 헤겔의 정반합의 변증법도 같은 상대성의 법칙을 말한 것이다.(p222)' : 페이지수는 전판(前版)


 류영모의 <노자>에서도 많은 현대 사상가들이 등장하면서 종합적인 관점에서 <도덕경>을 조망하고 있기에,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에 비해 종합적인 해석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다. 이 책에서 설명된 42장의 이어지는 내용에 대한 설명을 통해 해당 장의 구조를 살펴보자. 요약하면 편집오류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은 의미상으로는 연결이 안된다. 이것은 이곳만이 아니라 앞뒤가 맞지 않거나 장(章)의 나뉨이 잘못된 곳이 여러 곳 있다. <노자>는 몇번인가 개정증보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p223)'


 이처럼, 연결고리가 끊어진다고 한다면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의 논리는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타격을 받게 된다고 생각된다. 이제 마무리를 해보자.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에서 노자편은 이처럼 노자 사상을 새로운 관점으로 조명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저자의 또다른 저작 <철학 VS 철학>에서 나오는 많은 철학자들이 거의 한 번이상은 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관점에서 노자 사상을 음미하는 맛이 있다고 생각된다. 다만,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는 이처럼 우리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논리전개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당혹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라 생각된다는 견해를 마지막으로 이번 페이퍼를 끝낸다.


PS. 쓰다 보니 리뷰 페이퍼가 아니라 단편소설을 써버렸네요. ㅜㅜ 귀한 시간내서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남은 시간 행복하게 보내세요.


댓글(8)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yo 2017-09-23 1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은 알라딘에서 상 줘야 됩니다. 뭐하고 있는 거야 알라딘.

겨울호랑이 2017-09-23 16:32   좋아요 0 | URL
^^: syo님 끝까지 읽어주시고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syo 2017-09-23 17:39   좋아요 1 | URL
감사할 사람과 감사받을 사람이 바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9-23 17:44   좋아요 0 | URL
^^: 이웃분들이 읽어주셔야 저도 글을 올리지요 ㅋ 그래서 이웃분들께 감사하게 되네요^^:

북다이제스터 2017-09-23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느 철학자의 말씀인지 퍼뜩 기억나지 않지만, 세상은 ‘해석된 것의 해석’이란 말이 문뜩 떠오릅니다. ^^

겨울호랑이 2017-09-23 20:03   좋아요 0 | URL
북다이제스터님 의견에 공감합니다.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과정에서 ‘보다 보편적인/ 타당한 지식의 DNA‘가 축적, 계승, 발전하는 것 같습니다.^^::

cyrus 2017-09-24 1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자를 읽으려고 했는데, 마침 참고할 수 있는 글이 나왔군요. ^^

겨울호랑이 2017-09-24 10:24   좋아요 0 | URL
^^: cyrus 님께 참고가 되어 좋네요. 다만 는강신주의 저서의독창적 시각에 대한 글의 내용이 많아서 이점 역시 같이 고려하셔야할 것 같습니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