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최저 수준의 신뢰도를 자랑하는 국내 여론들 덕분에 외신들을 보며 영어 공부를 강제로 해야되는 상황이 조금은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덕분에 '내가 잘못되었는가?'에 대한 기준을 세울 수 있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스스로 위안한다. 높아진 국가 위상 덕분에 이제는 국내 정치를 외신으로만 접해도 큰 흐름을 파악하는데 큰 지장이 없는 것을 보면 수십 년간 이어져온 언론의 독점(獨占)도 머지 않은 듯하다.


 2023년 연초 The Economist에서는 전임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재임 시 근무했던 정치권인사들에 대해 "The Economist explains"에서 'Why does South Korea pardon its corrupt leaders? 한국은 왜 부패한 지도자들을 사면하는가?'라는 주제로 상세히 세계인들에게 설명해주었다. 그 중 일부를 옮겨본다.


 Pardons are often motivated by power dynamics within the political elite, too. Convicted politicians often have powerful allies in parliament, who can encourage pardons. 


 때로 사면은 정치 엘리트들 간의 권력 역학에 의해 유발되기도 한다. 흔히 유죄 판결을 받은 정치인은 사면을 독려할 수 있는 강력한 권력을 가진 동맹자들을 두고 있기도 하다.


 President Yoon is clearly a fan of Mr Lee, the former president he pardoned. He has stocked his team with staff from his predecessor's administration and adopted similar policies. But the president also pardoned several politicians involved in the corruption scandal that brought down Ms Park even though he had put them away when he was chief prosecutor under Mr Moon.


 윤 대통령은 자신이 사면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팬임이 분명하다. 그는 이전 행정부의 직원들로  자신의 팀을 꾸리고, 유사한 정책을 채택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또한 문 대통령 아래에서 검찰총장 재직 당시 전임 박 대통령을 끌어내렸던 부패 스캔들에 연루된 여러 정치인들도 또한 함께 사면했다.


 He may be hoping that the pardons will unify his conservative party, People Power, which is riven by infighting. Mr Lee and Ms Park still have enormous influence in conservative political circles. The president, a political neophyte and outsider, may also be hoping to smooth his entry into this elite.


 그는 이번 사면이 내부 다툼으로 분열된 보수정당인 국민의 힘이 통합되는 계기가 되길 원할 것이다. 전임 이 대통령과 박 대통령은 여전히 보수 정치권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정치 초보이자 아웃사인더인 윤 대통령은 아마도 이들 정치엘리트 계층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가기를 바랄 것이다.


Though no longer a prosecutor, Mr Yoon still paints himself as a crusader for justice. But his decision to free a guilty man may open old wounds. The convictions of the ex-presidents and their co-conspirators were historic moments for South Korean democracy, says Erik Mobrand of the rand Corporation, a think-tank. Far from unifying the country, upending more of these judgments could undermine faith in its institutions. 


 이제 더는 자신이 검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은 여전히 자신을 정의를 위한 십자군으로 덧칠한다. 그러나 죄인을 석방하기로 한 그의 결정은 아픈 기억을 들추는 것일지도 모른다. 싱크탱크인 랜드 코퍼레이션(Rand Corporation)의 에릭 모브랜드(Erik Mobrand)에 따르면, 전직 대통령들과 그들의 공모자들에 대한 유죄 판결은 한국 민주주의에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국민대통합과는 동떨어진, 잘못된 이러한 판단을 뒤집는 것은 국가 근간에 대한 믿음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


[관련기사] https://www.economist.com/the-economist-explains/2023/01/06/why-does-south-korea-pardon-its-corrupt-leaders 


 같은 사안에 대해 국내 언론들은 '사면의 대상이 누구인가?', '누구 측근이 어떤 조건으로 사면되었는가?'에 대해 중계방송을 하듯 취재에 열을 올렸지만, 정작 사면이 가진 문제점에 대해 지적한 기사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 내가 미처 못 읽었을 수도 있겠지만, 새벽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 경매장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단순한 사실 나열 속에서 우리가 정작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점들은 슬며시 빠져나간 것은 아닐런지. 이런 어이없는 자신들의 보도보다 대중들의 무지를 지적하는 언론들에 대한 개혁과 함께, 21세기 대한민국 헌법 안에 존재하는 1789년 인권선언문 제16조를 통해 나타난 권력분립과 프랑스 대혁명 안의 법 안의 일반의지에 대한 논의를 무력화시키는 '사면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는 별도로 고민할 때가 아닐까.


 누가 법을 만들 것인가? 누가 입법자로서 공동체에 대해 결정을 내릴 것인가? 그런 사람은 단 한 사람만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민은 필연적으로 공동체의 이익에 반대되는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인(私人)이나 개인에 다시 지배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인민 전체만이 자신에 대해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본질상 비개인적이어서 오직 모든 사람의 이익에 일치하는 것만을 원할 수 있는 일반 의지만이 법을 제정할 수 있다(P227)... 개인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일부가 되고, 그의 의지와 일반 의지는 하나의 동일한 의지가 된다. 일반 의지를 따를 때 그는 단지 자기 자신에게 따를 뿐이다. 그는 자기 자신의 동의에 따라 공동체에 구속되었고 그 구성원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의지가 일반 의지에 속해 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따르는 법률에 참여했다. 바로 이런 식으로 국가 안에서 개인의 자유라는 문제는 해결된다. _ 베르나르 그뢰퇴유젠, <프랑스 대혁명의 철학> , p228


 로베스피에르는 이 원칙이 인권선언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사전에 올바른 질문부터 해야 옳다고 주장했다. 로데크의 주교 콜베르 드 세뉼레가 일어나 자기가 마련한 안을 내놓았다. “시민들의 권리는 오직 권력을 슬기롭게 분배해야만 보장할 수 있다.”  그 뒤 계속 원안 제24조로 돌아가 토론하고 심의한 뒤 결국 ‘선언문’의 제16조를 확정했다. 몽모랑시 백작은 제6위원회의 안을 모두 심의했지만 인권선언문에 한 가지 조항을 추가하자고 제안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온갖 폐단이 생기고 세대가 바뀌고 이해관계도 바뀌면서 인간이 구축한 모든 법을 수정할 필요가 생기기 때문에 한 나라의 인민은 언제나 헌법을 다시 보고 개정할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권리를 행사하는 평화롭고 합헌적인 수단을 지정해두는 것이 옳다.” _ 주명철, <프랑스 혁명사 2 : 1789 평등을 잉태한 자유의 원년> , p285/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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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그래픽 - 마르셀 프루스트 사후 100주년 기념
니콜라 라고뉴 지음, 정재곤 옮김, 니콜라 보주앙 그래픽 / 민음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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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톨라 라고뉴의 <프루스트 그래픽>은 마르셸 프루스트의 생애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시각적으로 정리한 인포그래픽이다. 너무 소소한 부분까지(심지어, 연도 별 프루스트의 콧수염, 프루스트의 연도별 주식 포트폴리오도 분석한다) 다루기에 저자의 철저함에 감탄하기도 하지만 '굳이 이런 것까지...'라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프루스트 그래픽>은 다소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작품 전체를 빅데이터를 활용한 텍스트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무의식의 의식적 결과를 독자들에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책으로 생각된다.

프루스트는 동시대 소설가들에 비해 많은 동사를 사용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ㅇ서는 "완료동사"라고도 불리는 과거완료시제가 많이 사용되었다. 반면 미래시제는 좀처럼 사용되지 않았지만 <되찾은 시간>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_ 니톨라 라고뉴, <프루스트 그래픽>, p75

이다/있다(etre), 가지다(avoir), 하다(farie)는 어느 정도의 길이를 가진 모든 프랑스어 텍스트에서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동사들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예외가 아니다. _ 니톨라 라고뉴, <프루스트 그래픽>, p8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시각은 본연의 의미로나 비유적인 의미에서나 핵심적이다. 프루스트가 소설에서 환기하는 모든 감각 중에서 시각은 가장 중요한 감각이다. 화자는 끊임없이 구경꾼이나 훔쳐보는 사람의 위치를 점하며,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시각적 은유와 시선이라는 단어가 넘쳐난다. _ 니톨라 라고뉴, <프루스트 그래픽>, p88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들 중에서 '처럼/같이/~하듯'은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 소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문자 그대로 비교들로 넘쳐난다. '처럼(comme)'이란 단어는 매 부분들, 사람들, 예술 작품, 동물, 식물 또는 감정 따위를 비교하기 위해 사용된다. _ 니톨라 라고뉴, <프루스트 그래픽>, p90

전체적으로는 "완료동사"인 과거완료 시제를 사용해서, '큰'과 '작은'의 대조로 구불구불한 미로처럼 얽혀 최종적으로 미래 시간(temps)을 향해 나아가는, 세부적으로는 'etre'와 'avoir' 동사와 '처럼(comme)'이라는 비유를 통해 시각적인효과를 극대화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작가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프루스트 무의식의 결과를 과학을 통해 정량화 시킨 <프루스트 그래픽>을 가지고 완간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시 읽는 것도 작품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식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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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1-11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민음사 행사때 샀는데, 처음에는 내용이 넘 간단해서 좀 실망했었어요
근데, 자꾸 넘겨보게 되더라구요.^^

겨울호랑이 2023-01-12 08:11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말씀처럼 저도 처음에 책을 보면 큰 의미가 없는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관련해서 끝없는 미로와 같은 이 작품을 읽을 때 나침반 같은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주어진 역할에 충실한 책이라 여겨집니다. 그레이스님 좋은 하루 되세요! ^^:)
 

조조는 허를 수도로 삼으면서 둔전 경작으로 물자 수송 없이 자급자족하려고 했다. 또한 운하망을 통해 허에서 다른 지역으로 물자를 운반하는 유통의 이점을 누릴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둔전은 본래 변경에 주둔한 군사들이 현지에서 농사를 지어 직접 식량을 충당하는 것을 이르는 말로, 원래 중국 내지 지역의 경작 방식은 아니었다. 또한 조조는 군사들을 동원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허 일대에서 둔전 경작에 종사하게 해 곡식 100만 석을 얻었다.

현재 남아 있는 기록에 의존할 때 가능한 해석은 둔전(민둔) 경작이 군량 수송 비용 절감과 신속한 수송을 위해서라기보다 수도 허에 거주하는 황제와 관료, 군인들을 위한 식량 확보가 주요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근대시대에도 대개 총사령관은 후방에서 지휘했기 때문에 장군들에게 중요한 자질은 뛰어난 무예라기보다 작전 능력과 지휘 능력, 판단력, 순발력이었을 것이다. 원술은 절충교위折衝校尉와 호분중랑장, 후장군 등 무관직을 역임했지만 무예가 뛰어나거나 큰 전공을 세운 인물은 아닌 것 같다. 원술이 그나마 두각을 나타낸 것은 손견, 손책 부자 덕분이었다.

조조는 막판에 서주를 쉽게 평정했지만 서주 전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장패 등의 도적들이 서주 북서부의 낭야국과 동쪽의 동해군에서 활개치고 다녔기 때문에 이들을 굴복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에 조조는 장패 등을 사면하고 청주와 서주의 해안 지방을 이들에게 맡겼다. 정확히 말하자면, 조조는 서주와 청주의 해안 지역에 해당하는 낭야와 동해, 북해를 나눠 성양城陽, 이성利城, 창려昌慮 3군을 새로 만들어 장패 등에게 맡겼다. 사실상 장패 등의 지분을 인정하고 권력을 분할해준 조치였는데, 대신 조조는 장패 등 전직 도적들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다.

『삼국지/위서/종요전』에서는 정확한 날짜를 기록하지 않았지만, 종요는 폐허가 된 낙양의 인구를 늘리기 위해 관중의 백성들을 낙양으로 이주시켰다. 또 도망가거나 배반한 사람들을 받아들여 낙양의 인구를 늘렸다. 이는 장안과 관중의 번영을 도모하기보다 관중의 피폐함을 의도한 정책으로 읽힌다. 당시 수도였던 허에서 먼 관중 지역의 인구를 감소시키고 가까운 낙양의 인구를 늘려 조조 정권의 통제를 강화한 것이다.

결국 황하 이북과 이남은 원소와 조조의 2파전으로 좁혀진다. 조조는 여포와 원술, 유비, 장수 등을 물리치고 영토를 확대하여 황하 이남 지역의 대부분을 지배했다. 관중에 남아 있던 동탁 부하들도 물리쳐 영토를 넓혔다. 비록 장강 유역에 유장, 유표, 손책이 있었지만 조조에게 위협적인 세력은 아니었다. 결국 당시 상황으로는 원소와 조조 가운데 승자가 천하를 차지할 분위기였다. 원소가 이길 수밖에 없는 우세한 구도였으나 최후의 승자는 그가 아니었다.

소설 삼국지에서는 관우가 문추를 참했다고 묘사했지만(26회), 『삼국지』와 『자치통감』에서는 문추를 참한 장수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조조는 원소의 군대를 격파하고 관도로 후퇴했다.

이때 조조는 항복한 원소군 7만여 명을 땅에 파묻어 죽였다. 『자치통감고이』에서는 『후한서/원소전』을 인용해 8만 명을 죽였다고 했다. 원소가 이끌고 간 병사가 11만 명이었으니 그중 대략 7할의 병사들이 조조에 의해 생매장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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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우스 로마사 세트 - 전4권
티투스 리비우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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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우스 로마사 4- 로마와 지중해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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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우스 로마사 2- 끝나지 않는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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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우스 로마사 1 - 1000년 로마의 시작 리비우스 로마사 1
티투스 리비우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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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리비우스)는 독자들이 우리의 조상이 어떤 종류의 삶을 살았고,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으며, 로마의 권력이 처음 획득되어 그 후 계속 확장되어 나가는 과정에서 어떤 정치와 전쟁의 수단을 사용했는지 등을 좀 더 진지하게 고려해 보기를 촉구한다. 그런 다음 우리나라의 도덕적 쇠퇴의 과정을 살펴보기를 권한다. 먼저 오래된 가르침이 무시되면서 도덕적 기반이 붕괴한 과정, 그리고 그 후에 이어진 신속한 해체 과정, 이어 도덕적 세계관의 전면적 붕괴 과정을 살펴보기 바란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의 음울한 시대가 어둡고 울적한 모습으로 등장했는데, 이제 우리는 우리의 악덕을 견디지도 못하고 또 그 악덕을 치료하는데 필요한 조치를 해낼 용기도 없다. 역사의 연구는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약이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1> 서문 , p20/766


  티투스 리비우스 (Titus Livius Patavinus, BCE 59/64 ~ ACE 17)의 <리비우스 로마사 1 Ab Urbe Condita Libri>은 <리비우스 로마사> 1~5권까지 내용을 담고 있다. 로마 창건부터 BCE 390년 알리아 전투에서 로마군을 대파시키고 일시적으로 로마를 점령하기까지의 시기를 다룬 이 책에서 우리는 저자의 집필 의도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사관을 파악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관심이 가는 부분은 저자가 <서문>에서 언급한 우리 시대의 악덕(惡德)이다. 공화주의자로서 로마 내전시기 폼페이우스(Gnaeus Pompeius, BCE 106 ~ 48)를 지지했던 저자 리비우스가 생각했던 악덕은 무엇이었을까? 이번 리뷰는 이를 중심으로 살펴보려 한다.


 리비우스는 <로마사> 의 서문에서 오늘날의 시대는 음울하게 타락한 시대라고 말했다. 그가 여기서 말한 시대는 구체적으로 후기 로마 공화정의 시대, 즉 술라 이후 마리우스를 거쳐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내란을 벌이고 다시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가 내전을 벌인 시기를 가리킨다. 수많은 구국의 영웅을 배출한 로마 공화국이 왜 이렇게 퇴락했을까?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1> 작품해설 , p751/766


  <리비우스 로마사 1>에서 리비우스가 말한 악덕이 가장 잘 표현되는 부분은 집정관 퀸크티우스의 대중 연설 부분이라 생각된다. 외적들에 의해 연이어 패배를 당하면서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귀족을 대표하는 집정관은 다수가 평민들인 대중들에게 위기의 책임을 묻는다. 평민들이 원해서 10인 위원회도 설치했고, 호민관 제도도 시행되었으니 귀족들은 많은 것을 양보했지만, 대체 어디까지 양보해야 하는가? 이러한 집정관의 질문은 다수인 평민을 넘어서 상대적 소수인 호민관을 향했다고 보는 편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아래의 호민관 가이우스 테렌틸루스 아르사의 대중 연설에서 드러나듯, 호민관들은 집정관과 원로원 정치에 강력한 견제 장치로 작용했으며 집정관/원로원의 권력과 평민들의 자유의 대립은 <리비우스 로마사 1> 전체에서 반복되는 소재이자 주제다.


 여기서 진실을 말해 보자면, 우리의 공공 생활은 정치적인 불화와 계급 갈등 때문에 타락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점이 적들에게 우리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희망을 키워주었습니다. 여러분의 자유를 향한 욕망과 우리의 권력을 향한 욕망이 끝없이 충돌하고, 그래서 서로를 대표하는 행정관들을 증오하는 모습을 외적들은 전부 지켜봤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도대체 무엇을 원하십니까?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1> , p433/766


 이들 계급간의 갈등이 로마 공화국을 위기로 몰아넣었다면, 이들 중 어느 편에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할까? <리비우스 로마사 1>에서 저자 리비우스는 평민이 아닌 귀족들의 손을 들어주는 듯하다. 로마 내전 당시 원로원의 수호자로 자처했던 폼페이우스를 지지했을만큼 강력한 공화주의자였던 그의 생애를 생각해봤을 때 이러한 추론이 크게 무리하지 않다고 생각되는데. 본문 여러 곳에서 호민관과 평민에 대한 그의 부정적 인식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귀족 계급의 오만함을 격렬하게 성토했고 또 두 집정관의 과도한 권력을 특히 비난했다. 그런 권력은 자유로운 공동체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집정관은 왕보다는 덜 혐오스러운 말이지만, 실제로는 집정관 정부는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 운영하므로 군주제보다 더 억압적이라는 것이다. 두 집정관은 무책임하고 무제한인 권력을 행사하며 정작 그들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런 견제가 가해지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평민을 압제하기 위해 법률이 정한 처벌을 마음대로 내리면서 법에 의한 테러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는 말했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1> , p308/766


 특히, 리비우스는 호민관의 역할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듯하다. 원로원 의원들의 입을 빌려 서술된 호민관에 대한 내용은 그들이 포퓰리스트(Populist)들이며, 정치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는 신출내기들이 1년이라는 짧은 임기동안 주어진 특권을 남용해서 로마의 국가 체계를 뒤흔들었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평민과 귀족들 모두가 화합하는 상황에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부정적인 인식을 하는 호민관들의 모습은 그들을 공화정의 적(敵)으로 인식하는 리비우스의 인식이 반영된 대목이라 여겨진다.


 아시다시피 저의 할아버님께선 호민관의 권력을 무너뜨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원로원에 제시하셨습니다. 그건 바로 그들 중 일부를 포섭하여 동료의 제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게 하는 것이지요. 권력을 처음 맛본 자들은 위대한 정치 가문의 사람이 비위를 맞춰주는 방법으로 접근하면 쉽게 마음을 바꾸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사람은 잠시 신분에 맞는 위엄은 잊고 요령 있게 말하기만 하면 됩니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1> , p552/766


 당신이 집정관의 권위를 가증스럽고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몰아붙이는데, 오히려 호민관의 권위가 그렇습니다. 호민관의 권위는 한때 원로원과 조화를 이루었고 그래서 원로원의 적절한 기능과 갈등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전의 타락한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나는 당신이 이미 시작한 노선을 포기하라고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적어도 당신에게는. 하지만 나는 다른 호민관들에게는 호소하겠습니다. 호민관의 권력은 도움이 필요한 개인들을 도우라고 주어진 것이지, 공화국 전체를 파괴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1> , p310/766


 이 혁신적인 조치로 인한 기쁨은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평민은 원로원 회의장에 몰려들어 밖으로 나오는 의원들과 악수하며 그들을 실제로 아버지라 불렀다(모든 의미에서). 그들은 또한 지금부터 이런 관대한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여력이 있는 한 몸과 피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실제로 이 선물은 두 가지 이유로 환영받았다. 법의 구속력 때문에 병역에 몸이 매인 가난한 병사는 그의 작은 재산을 늘릴 수 없었는데, 그 조치는 이런 가난한 자들을 구제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나은 점은 그런 조치가 호민관들이나 평민의 요구 없이 원로원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었다. 이에 평민은 크게 만족하면서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이런 큰 기쁨과 호혜(互惠)에 동참하지 못한 것은 호민관들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조치가 예상보다 그리 흡족하지 못하고 또 그리 큰 성공을 거두지도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언뜻 보기에는 훌륭해 보여도 막상 경험해보면 그런 조치의 단점이 곧 드러나리라는 것이었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1> , p576/766


 <리비우스 로마사 1>에서 리비우스는 공화정 후반기 혼란의 원인을 이전 시대의 악덕에서 찾는다. 로마 외부의 외적이 아닌 내부의 투쟁과 갈등이 악덕이었으며, 그러한 악덕의 기원을 만족할 줄 모르는 대중의 욕심과 호민관의 야심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공화주의자 리비우스의 사관(史觀)이 잘 드러난 책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호민관에 대한 부정적인 리비우스의 역사 인식이 후대 로마 역사가 테오도르 몸젠(Christian Matthias Theodor Mommsen, 1817 ~ 1903)에게 영향을 주었음을 추정해본다. 그라쿠스(Gracchi) 형제 개혁에 대한 몸젠의 날선 비판은 리비우스의 역사관의 연장선상에 있고, 몸젠이 1968년 <리비우스 로마사> 3~6권 중 일부를 해독했음을 생각해본다면 근거가 빈약한 것만은 아니라 생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리비우스는 다른 한편으로 혼란을 극복할 방안도 제시하는데, 바로 종교(宗敎)다.


 "재앙이 다가왔을 때 우리는 우리의 종교를 기억했습니다. 우리는 지고의 신 유피테르의 안식처 옆의 카피톨리움 언덕으로 가서 신들에게 보호를 청했습니다. 우리의 재산을 모두 잃어버린 후 우리는 성물들을 묻거나 다른 도시로 가져갔고, 적은 그리하여 성물을 보지도 못했습니다. 비록 신과 인간에게 버림받았지만, 우리는 신들을 숭배하는 일을 절대 멈추지 않았습니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1> , p690/766


 악덕을 벗어나 신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리비우스가 역사서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의도라 생각된다. 마치 바빌론 유배를 겪었던 유대인들이 이후 이스라엘 공동체를 재건하기 위해 신명기계 역사서를 편찬했듯, 리비우스 또한 신 중심의 역사관을 보여준다. 다만, 여기서 우리는 헬레니즘(Hellenism)과 헤브라이즘(Hebraism)의 차이가 빚어낸 서로 다른 결과에 대해 생각해야 할 것이다. 다신교의 헬레니즘과 유일신교의 헤브라이즘. 헤브라이즘 역사관의 결과가 전쟁신인 야훼로 지향을 끌어냈다면, 다신교 역사관의 결과는 신적인간, 아우구스투스(Augustus)를 향했던 것을 아닐까. 짧았던 로마 왕정에 대한 리비우스의 인식과 사악한 특권을 상징하는 호민관을 폐지한 임페라토르(Imperator)에 대한 기대가 제정 로마에서 그를 든든한 반석 위에 올려놓지 않았을까.


  이정도로 <리비우스 로마사 1 - 1000년 로마의 시작>에 나타난 역사가 리비우스의 관점을 정리하고, 바탕으로 이제 몸젠과는 로마인 리비우스가 바라보는 로마사의 내용을 차차 리뷰로 정리해보려 한다... 


 그런 공동체 의식 ― 유일하게 진정한 애국심 ― 은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와 아주 천천히 자라난다. 그것은 가정에 대한 존경과 국토에 대한 사랑을 그 밑바탕으로 삼는다. 대중들에게 휘둘리는 이런 시기상조의 "자유"는 재앙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정치적 성숙에 도달하기도 전에 사소한 싸움들로 인해 사분오열이 되었을 것이다. 사실을 말해 보자면 그런 정치적 성숙은 군주 정부 아래에서 안정된 오랜 세월이 경과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사실, 군주제 정부는 우리의 국력을 키워서 궁극적으로 우리가 자유라는 건전한 열매를 누릴 수 있게 해주었다. 자유는 오로지 정치적으로 성숙한 나라만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1> , p152/766


 리비우스는 공화정의 원칙들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찬양했으나 로마의 찬란한 과거를 높이 숭상한 저술 태도 덕분에 로마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의 호감을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지속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리비우스는 후대에 황제의 지위에 오르는 어린 클라우디우스(기원전 10년 태생)에게 역사 공부를 지도하기도 했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1> 작품해설 , p709/766

과거 여러분은 호민관을 바랐고, 평화를 지키고자 우리는 여러분의 뜻대로 그 제도를 설치했습니다. 그 뒤로 여러분은 10인 위원회를 바랐고, 우리는 그 위원회의 임명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어 다시 호민관을 원해서 그대로 되었고, 집정관들마저도 평민의 대의를 지지하는 자를 원해서 그런 사람을 선출했습니다. 귀족이 맡아오던 최고 행정관도 우리의 적(평민)에게 공손히 양보하는 걸 지켜보는 게 우리에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면서도 그렇게 했습니다. 여러분은 호민관에게서 보호받을 수 있고, 항소권도 있습니다. 게다가 호민관의 법령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의무를 원로원에게 부과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하여 정의라는 허명으로 우리의 모든 특권은 짓밟혔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일을 견뎠고, 여전히 견디는 중입니다. 이런 상황을 끝내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1> , p434/766

이에 호민관들은 좋은 기회를 잡았다며 평민의 불만을 부채질하는데 집중했다. 그들은, 원로원이 싸우고 있는 진정한 적은 베이이나 다른 외적이 아니라, 로마의 평민들이라고 주장했다. 호민관들은 원로원이 할 수만 있다면 평민들에게 군복무를 강요하여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게 하는 등 의도적으로 평민을 괴롭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원로원이 이처럼 평민들을 국외로 파견하려고 하는 건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원로원은 평민들이 본국에서 평온한 삶을 누리면 금지된 사항들, 즉 자유, 경작할 수 있는 자신의 농장, 공유지 배분, 양심에 따라 투표할 권리 등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1> , p573/766

하지만 로마의 내부 갈등은 심각하고 맹렬한 것이어서 원정의 상황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이었다. 호민관들의 방해로 전쟁세는 징수되지 않았고, 병사들은 목소리를 높여 급료 지급을 요구했으나 사령관들에게 병사들의 급료가 전달되지 않았다. 이에 병사들은 정부에 저항하는 반란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귀족에 대한 평민의 분노는 더욱 대담해졌고, 호민관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젠 국가 최고위직에서 세르기우스와 베르기니우스 같은 자는 배제하여 평민의 자유를 더욱 공고히 다지자고 주장했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1> , p609/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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