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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17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쟈쟈 그림, 김정화 옮김 / 길벗스쿨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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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공식 가이드북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쟈쟈 그림, 김정화 옮김 / 길벗스쿨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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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16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쟈쟈 그림, 김정화 옮김 / 길벗스쿨 / 2022년 11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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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15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쟈쟈 그림, 김정화 옮김 / 길벗스쿨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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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5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5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쟈쟈 그림, 김정화 옮김 / 길벗스쿨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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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방학을 맞아 딸아이와 약속을 했다. 1주일에 한 편 책을 정해서 아빠와 함께 같은 책에 대해 독서노트를 작성하고 책에 대한 감상을 나누기로. 이 미션을 빠지지 않고 수행하면 일정 시점에 아이가 원하는 곳으로 함께 놀러가는 것(+원하는 것 사주기)이 약속 내용이다. 어제 쓴 독서 노트를 살짝 보니 옴니버스 형식인 이 책에서 제일 첫 이야기 <신제품 배지>를 집중적으로 쓴 것을 보면서, 합의문 수정이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이렇게 해서 갑작스럽게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5>부터 리뷰가 시작되었다...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5>는 전천당의 잃어버린 물건들이 세상으로 나와 일어나는 소동에 관한 이야기가 그려진다. 전천당의 물건들은 세상에는 없는 신기한 마법과도 같다. 어려움과 곤란에 빠졌을 때,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할 때 그 물건이 갖는 마법은 힘을 발휘한다. 물건 주인을 어려움에서 건져주거나, 소원을 들어주면서 그들의 마음을 기쁨으로 채워준다. 그렇지만, 그 기쁨을 진정한 기쁨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법은 주인의 새로운 소원을 들어주지만, 동시에 주인이 과거에 가졌던 것들을 대가로 가져간다. 우리는 현재 우리가 가진 것 위에 새로운 것을 쌓으려 하지만, 세상에 나온 전천당의 물건들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새로운 것과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것. 이들을 저울질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에 더해 전천당의 물건들은 이러한 판단을 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소유와 동시에 일어나는 마법의 거래. 그렇다면, 전천당의 신비한 물건들은 과연 축복이라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글이 어렵게 써진 것은 아닌가 고민이 된다. 조금 더 쉽게 내용을 다듬되, 잘 되지 않는다면 말로 잘 설명해야겠다. 나에게 이번 미션은 '어린이도 알아듣기 쉽게 풀어 쓰기'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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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1-30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의 따님 사랑이 느껴집니다^^
같은 책을 읽고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이 즐거우실거라 생각이 들어요. 헌데 아이에게도 알아듣기 쉽게 풀어 쓰기란 굉장히 어려운 미션인 듯 싶습니다. 응원할게요!

겨울호랑이 2023-01-30 16:20   좋아요 1 | URL
어려운 글쓰기는 쉽지만, 어려운 내용을 쉽게 쓰기는 어렵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이번 미션을 통해 아이와 함께 한 단계 성장했으면 하는 바랍을 가져봅니다. 거리의화가님 감사합니다! ^^:)

독서괭 2023-01-30 16: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호랑이님 따님과 멋진 약속을 하셨네요!^^ 전천당 시리즈 재밌다던데 저도 아이들 좀더 크면 같이 읽고 싶습니다. 독서노트 나누는 것도 해보고 싶어요!^^ 화이팅입니다~!

겨울호랑이 2023-01-30 16:25   좋아요 1 | URL
사실, 이보다 전에 <해리포터> 시리즈를 먼저 시도했었습니다. 일전에 올렸던 미나리마 에디션은 그 때문에 구입했었습니다. 영화를 재밌게 봐서 좋아할 줄 알았는데 두께가 있다보니 아이가 별로 흥미를 보이질 않네요. ㅜㅜ 그래서, 조금 얇은 전천당 시리즈로 다시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잘 되어야 할 텐데요... 독서괭님 감사합니다! ^^:)

그레이스 2023-01-30 17: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이 이런 리뷰를?‘ 하고 보니...^^
전천당 재미삼아 제가 읽어보고 싶네요~~

겨울호랑이 2023-01-30 18:00   좋아요 1 | URL
^^:) 초등학생 눈높이에 맞춘 책이라 그레이스님께 재밌다는 말씀을 드리기가 조심스러워 집니다. 다만 요즘 어린이들을 이해하고자 하신다면 잠시 머리를 식힐겸 읽으셔도 좋을 것 같아요.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인류의 성현들이 남긴 경전이나 신화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들이 정신과 육체, 생각과 행동을 하나로 여겼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정신은 육체를 통해 표현되며, 생각의 결과는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따라서 정신과 육체가 괴리하고 생각이 행동으로 표현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 훈련은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를 제3자의 눈으로 관찰함으로써 시작된다. 외부의 자극이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잡념이다. 생각이란 그런 잡념들의 생성을 객관적으로 살피고 잡념의 원인을 유추하는 이성의 활동이다. ‘명상冥想’이란 외부 자극에 대한 나의 감각을 가만히 바라보는 행위다.

요가는 인간을 신적인 인간으로 승화시키는 신체?정신?영적인 훈련이다. 요즘 사람들은 요가를 유연체조 혹은 피트니스 훈련쯤으로 여긴다. 하지만 요가는 마음을 개간하여 인간의 심연에 존재하는 원래 자신을 발견하는 운동이자, 그 자신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혁명적인 운동이다. 다시 말해 요가는 삶의 주인을 교체하는 쿠데타coup d’Etat인 셈이다. 그는 이제 과거에 안주하지 않는다. 요가는 미래에서 온 듯한 멋진 나의 모습이 주인이 되어 현재의 나를 일깨우는 정신적?육체적 운동인 것이다. 즉, 영적인 유전자를 교체하는 마음 혁명이다.

요가 수련자가 수련을 통해 평정심을 반드시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해야 할 의무를 행하는 것이다. 결과는 신에게 달렸다. 만일 그 결과가 수련자의 기대와 다르다고 해도 그것을 신의 뜻으로 여기며 담담하게 수용한다. 이처럼 수련자는 명성과 오명,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인생이란 소용돌이에서 겪는 다양한 상황을 동일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웠을 때에야 그는 크리슈나가 말하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

종교의 얼개는 ‘경전經典’이고 문명의 얼개는 ‘고전古典’이다. 경전은 종교의 핵심사상을 기록한 책으로, 처음에는 개별 종교의 창시자나 사상가의 입을 통해 전해졌다. 회자되던 어록을 일정 시기가 지난 뒤 글로 기록한 것이 경전이다. 종교 구성원들은 문전에 담긴 내용을 해석하여 삶의 지표로서 가치가 있는지 그리고 전통적으로 권위 있는 문장이나 내용이 무엇인지 열띤 논쟁을 벌인다. 이 논쟁 과정이 ‘해석解釋’이다.

생각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그것은 흐르는 물이나 공중의 대기처럼 혹은 바람에 흩날리는 풍선처럼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인다. 생각의 특징은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생각, 즉 잡념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 생각은 인간의 감정, 지성 그리고 ‘나’라는 이기적인 자아가 실제의 삶에서 만들어낸 복잡한 결과물이다.

‘요가’라는 단어는 이중적이다. ‘결합’과 ‘분리’라는 상반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 자신이 생각하는 나’인가? 만일 운명적으로 주어진 환경에서 형성한 나 자신과 거기서 습득한 세계관을 유일한 진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무지이며 불행을 초래하는 길이다. 세상에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와 세계관이 무수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라는 개체를 객관적으로 가만히 바라보는 연습이 요가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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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우스 로마사 4 - 로마와 지중해 세계 리비우스 로마사 4
티투스 리비우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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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전 201년] 카르타고와의 강화 조약 이후에 마케도니아 전쟁이 시작되었다. 마케도니아와의 충돌은 상황의 위험성, 적군 지휘관의 자질, 교전 부대들의 전력 등에서 포에니 전쟁과는 비교될 수 없는 소규모 전쟁이었다. 하지만 이 전쟁은 포에니 전쟁 못지않게 유명해졌는데, 마케도니아의 옛 명성과 마케도니아 제국의 광대한 영토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마케도니아는 정복 사업을 통해 유럽의 광대한 지역을 얻었고 아시아에서는 그보다 더 거대한 영토를 확보했던 것이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4> , p12/964


  티투스 리비우스 (Titus Livius Patavinus, BCE 59/64 ~ ACE 17)의 <리비우스 로마사 4 Ab Urbe Condita Libri>은 <리비우스 로마사> 31~45권까지 내용을 담고 있다.  2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을 통해 강력한 해운국 카르타고를 꺾고 서지중해 패권을 장악한 로마는 이제 그 시선을 동지중해 알렉산드로스(Alexander III Magnus, BCE 356 ~ 323)의 후손들에게로 돌린다. 그렇지만, 한때 인도변경에까지 이르렀던 마케도니아의 위세는 이제는 마케도니아, 시리아, 이집트로 분할되고 약해졌다.


 <리비우스 로마사>에서 서술된 바와 같이 3차례에 걸친 마케도니아 전쟁은 포에니 전쟁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포에니 전쟁 때와 같이 한 번도 이탈리아 반도에 마케도니아 군이 발을 들여다 놓은 적도 없었으며, 칸나에 전투(Battle of Cannae, BCE 216)와 같이 로마군에게 궤멸적인 타격을 가하지도 못한 채 마케도니아는 로마에게 무릎을 꿇고 만다. 이에 반해, 로마는 제2차 포에니 전쟁(한니발 전쟁) 당시 카르타고에게 사용한 절차대로 마케도니아를 압박해 들어갔다. 한니발 전쟁 때 에스파냐의 사군툼을 통해 한니발을 자극했던 로마는, 이제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Philippos V of Macedonia, BCE 221~179)에게 카르타고와 한니발(Hannibal Barca, BCE 247~181) 지원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전쟁을 시작한다. 


 로마 군이 승리를 거두게 된 가장 분명한 원인은 다수의 소규모 전투를 유도하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이런 소전투들이 중장보병 밀집 대형(Phalanx)을 무질서 속으로 빠뜨렸고 이어 완전 해체시켰다. 중장보병 부대는 밀집 대형을 유지하고 장창을 밖으로 내밀 때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여러 군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해 오면 그 대열은 장창의 길이와 무게 때문에 날렵하게 상황에 맞춰가며 전선을 재정비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중장보병 부대는 하나의 거대하고 무질서한 덩어리로 해체되고 말았다. 전열의 측면과 후면에서 계속 소음이 발생하여 그들을 혼란 속으로 빠트렸고 이어 전체 대열이 완전 궤멸하고 말았다. 이것이 이 전투의 핵심사항이었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4> , p842/964


 로마군은 한니발 전쟁을 통해 자신들에게 처절한 절망을 안겨주었던 칸나에 전투에서 얻은 전술적 교훈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고, 그 결과를 자마 전투(Battle of Zama, BCE 202)에서 입증한다. 그리고 '망치와 모루 전술 Hammer and Anvil military tactic'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마케도니아 군의 팔랑크스(phalanx)를 포위 섬멸하면서 전술적인 우위를 확인한다. 


 그렇지만, 로마 군의 우위는 전술적인 측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개인 병기(兵器)에 있어서 차이 또한 현저했기에 마케도니아는 각개 전투에서도 전술 단위의 집단전투에서도 패배할 수 밖에 없었다. 후대에 마케도니아 동쪽 지역 시리아 일대에서 다마스쿠스 강(鋼) 제조법을 통해 강력한 검(劍)이 만들어지며 명성을 떨치지만, 이 시기 글라디우스(Gladius)는 최강의 양산화된 개인병기였다. 요약하자면, 오랜 전투 민족이었던 로마인들은 한니발이라는 최강의 적으로부터 규화보전(葵花寶典)을 전수받아 진정한 지중해의 패자(覇者)가 되었다.


 스파르타 인들은 투척 무기로 싸웠지만, 로마 군인들은 소지하고 있는 커다란 방패 덕분에 그런 무기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데 거의 어려움이 없었다. 이외에도 던져진 많은 창이 목표를 맞추지 못했고, 맞았다고 하더라도 영향이 미미했다. 공간이 제한적이고 병력이 한가득 모여 있어 스파르타 인들은 창을 던지기 전에 달려올 공간이 없었고, 그래서 던지는 창엔 속력이 붙지 않았다. 실제로 그들은 견고하게 투척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할 공간도 찾을 수 없었다. 그 결과 던진 창은 그 어떤 것도 로마 인들의 몸을 정확히 맞추지 못했고, 그나마 명중한 몇 안 되는 창도 방패에 가로막혔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4> , p241/964


 그들은 창, 화살, 드물게 긴 창으로 부상당한 병사들의 시신들을 보아 왔지만 그것은 그리스 인과 일리리아 인의 싸움에선 익숙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스페인' 칼로 예리하게 잘린 주검을 보게 되었다. 양팔은 어깨가 붙은 채로 잘렸고, 머리는 목이 완전히 잘린 채로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내장이 그대로 드러났고, 다른 끔찍한 상처도 보였다. 장병들은 이런 부류의 무기, 그리고 그들이 대적해야 할 상대를 깨닫고 심한 두려움을 느끼면서 전반적인 공황 상태에 빠졌다. 필리포스 왕 자신도 두려움에 휩싸였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4> , p60/964


 <리비우스 로마사 4>에서 로마는 이러한 압도적인 무력만을 선보이지 않는다. 이를 바탕으로 상대를 압박하고 고립시켜 결국 굴복시키는 외교술을 통해 마케도니아 뿐 아니라 아테네, 스파르타, 로도스 등 그리스 제국들과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조 등이 차례로 로마의 속주로 전락하게 되는 역사가 소개된다.


 로마 인들은 선왕을 상대로 싸울 때 그리스를 해방시킨다는 기만적인 구실을 내세웠다. 이제 저들은 노골적으로 마케도니아를 노예로 만들려고 한다. 로마 제국 주위에 왕국이 아예 없게 만들고 또 전쟁에서 용맹함을 떨친 국가가 아예 무기를 지니지 못하도록 하려는 속셈이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4> , p759/964


 이런 논쟁을 다 들은 뒤에 로마의 조사위원들은 그들의 결정사항을 발표했다. 마케도니아 주둔군은 거론된 도시들에서 물러나야 하며, 필리포스의 영토는 마케도니아의 과거 국경으로 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양쪽이 모두 피해를 입었다고 불평하는 잘못들에 관해서 조사위원들은 그 문제에 적용될 법적 원칙을 확립하겠다고 말했다. 그런 원칙이 마련되면 관련된 민족들과 마케도니아 인들 사이의 분쟁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는 말도 했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4> , p583/964


 지중해 패권을 둘러싸고 강대국인 카르타고와 마케도니아 제국을 무너뜨린 로마는 이제 유일한 강대국이 되었다. 로마가 한때 자신보다 강력했던 이들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자신보다 강력한 상대의 장점을 흡수하는 로마인들의 학습 능력이 그들을 '진화하는 전투민족'으로 만들었지만, 그 근간에는 신(神)의 뜻을 넘어선 인간 의지(意志)가 자리한 것은 아닌가를 생각해본다. 더 거슬러 올라가 이탈리아 반도 내에 자리한 고대 헬라 문명(그리스 문명)의 영향력이 의식에서의 인문혁명(人文革命)을 가능케 했고, 그 결과 칸나에 패전의 절망에서도 일어날 수 있도록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포에니 전쟁과 마케도니아 전쟁은 인간과 바알, 제우스와 12 올림푸스 주신(主神)들과의 이데올로기 전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기저에는 리비우스가 강조한 '근검과 절약'과 소박한 '로마인 정신' 대신 부(富)를 향한 개인의 욕망과 내부 체제의 문제를 외부로 돌리려는 체제의 욕망이 자리하겠지만...


 "불멸의 신들께서 부여하실 수 있는 여러 물건들 중에, 우리 로마 인들은 신들께서 직접 주신 것들만 지니고 있소. 하지만 우리의 정신은 우리의 의지에 속하는 것이오. 우리는 온갖 흥망성쇠 속에서도 그런 정신을 바꾼 적이 없고, 여전히 바뀌지 않은 채로 지니고 있소. 성공했다고 그런 정신이 칭송된 적도 없고, 역경을 겪었다고 그런 정신이 저하된 적도 없소. 이런 로마 인의 강건한 정신을 목격한 사람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 증인들을 모두 건너뛰고, 나 역시 그런 증인들 중 한 사람으로서 그대들의 친우인 한니발을 내세울 수 있소. 이젠 그대들도 증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말이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4> , p443/964


 카르타고에선 지휘관들이 성공적으로 전쟁을 끝냈더라도 전술이 나쁘면 십자가형에 처해지지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모든 일의 시작과 수행에 신들을 관여시키는데, 이는 신들이 승인한 이런 행동들이 누구에게도 비판을 받을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공공 감사제나 개선식을 결정하는 데 있어 그 의례 방식엔 '그가 공무를 훌륭하고도 성공적으로 수행했기에'라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4> , p528/964


 동료 시민 여러분, 저는 여러분 중 그 누구도 이런 파멸적인 잘못에 휘말려 인생이 파탄나지 않으리라 확신할 수 없습니다. 종교 문제에서 드러나는 변태적 집착만큼 사람을 잘 속여 넘기는 것도 없습니다. 저들이 신들의 뜻을 범죄 행위의 구실로 삼는 곳에서, 우리의 마음 속에서는 이런 두려움이 생겨나게 됩니다. 우리가 인간의 비행을 처벌하는 과정에서 혹시 신의 뜻에 위배되는 짓을 저지르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저들의 범죄에 신의 뜻이 가미되어 있다고 주장하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런 우려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로마의 사제단이 내린 무수한 결정, 원로원 결의, 그리고 추가로 예언자들의 반응을 통해 선례가 정립되어 있으니까요.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4> , p571/964


 현존하는 리비우스(Titus Livius Patavinus, BCE 59 ~ 17)의 <로마사>는 45권이 마지막이다. 그렇지만, 한때 동경했던 그리스마저 발밑에 둔 로마인들이 주변 민족을 대하는 시선은 경멸을 넘어서지 못한다. 자신들의 제국(帝國)으로 편입시키면서, 이민족을 야만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로마의 해방 정복 전쟁은 이후 역사에서 가속화될 것이고, 리비우스는 여태까지와 같은 논조로 이를 서술했으리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리비우스가 CE 9년 아르미니우스(Harminius, BCE 17 ~ CE 21)에게 당한 토이토부르크 전투(Schlacht im Teutoburger Wald)의 패배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봤을까 궁금해지지만,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 없다. 다소의 아쉬움이 남지만, 로마인이 바라본 로마 역사서인 <리비우스 로마서>에 대한 정리는 이것으로 마무리하자. 


 이제 <리비우스 로마사>를 바라본 다른 시선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 1469 ~ 1527)의 <로마사논고 Discorsi sopra la prima deca di Tito Livi>을 꺼낼 차례가 되었다. '분할하여 통치'(divide and rule)할 수 있었던 제정 시대를 살았던 리비우스와는 달리 중앙집권국가들인 신성로마제국, 프랑스, 에스파냐 제국들로부터 '분할되어 통치'되었던 15세기 말을 살았던 마키아벨리는 이 시기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 ~ 1831)이 예나에서 시대정신을 발견하기 이전, 시대정신에 근접했던 'the prince'의 모델을 로마에서 발견한 것과 <로마사 논고>는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다음 리뷰에서 보다 상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아테네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성급하고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모험에 나선다는 평판이 있습니다. 반면에 스파르타 사람들은 성공을 확신하는 일에서조차 첫 걸음을 떼는 것이 어렵고 망설인다고 합니다. 나는 아시아 전역이 이런 무책임한 성격을 만들어냈고, 우리가 허세를 부리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4> , p881/964


 온 세상의 다른 모든 민족을 상대로 한 것보다 갈리아 인들을 상대로 치른 개선식이 더 많다. 우리는 경험으로 아는 바가 있다. 그들이 불처럼 타오르는 격정과 맹목적인 분노로 몸을 던져 가하는 첫 공격을 우리가 버텨내면 그들의 사지는 곧 땀과 피로로 늘어지고, 손에 쥔 무기는 흔들리게 된다. 격정이 사그라지면 그들의 몸은 축 늘어지고, 그들의 결의도 마찬가지로 축 늘어진다. 그들은 태양, 먼지, 목마름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해 제군이 그들을 상대할 때 무기조차 필요 없을 정도이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4> , p483/964


PS. 동방불패(東方不敗)가 익힌 것으로 알려진 '규화보전'은 최강의 무공이지만, 그 대신 고자가 되어야 하는 반대급부가 따른다. 최강의 무력을 얻은 로마는 대신 동방으로부터 들어오는 막대한 재물로 사치와 향락에 빠지면서 다른 의미에서 대가를 치룬다...


 여자 류트 연주자와 하프 연주자, 그리고 다른 유쾌한 여흥 제공자들이 만찬에 따라오게 된 것도 이때의 일이었다. 연회 그 자체에 엄청난 공과 더욱 큰 비용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고대 로마 인들이 노예 중에서 가장 가치가 없다고 여겨 몸값과 대우도 그에 맞추어 낮았던 요리사들이 높은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고, 단순한 서비스가 예술로서 대우받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경이롭게 여겼던 것들은 앞으로 다가올 사치의 예고편에 지나지 않았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4> , p557/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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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기원은 저자가 1989년 여름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에 기고한 "역사의 종말? The End of History?)"이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거기서 나는 하나의 정부형태인 자유민주주의 Liberal Democracy가 군주제나 파시즘, 또는 최근의 공산주의와 같은 상반되는 이데올로기를 무너뜨리게 됨에 따라, 지난 수년 사이에 세계적으로 이러한 자유민주주의의 정통성에 대해 주목할만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자유민주주의가 "인류의 이데올로기 진화의 종점"이나 "인류 최후의 정부형태"가 될지도 모르며, 따라서 자유민주주의는 "역사의 종말"이 된다고 주장했다. - P7

그러나 내가 종말이 왔다고 주장한 것은 심각한 대사건을 포함한 여러역사적 사실의 발생이 아니라 역사 그 자체이다. 즉, 어떤 시대, 어떤민족의 경험에서 생각하더라도 유일한, 그리고 일관된 진화의 과정으로서의 역사가 끝났다는 것이다. 역사를 단 하나의 일관된 진화의 과정의로 간주하는 것은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G. W.F 헤겔의 사상에서 유래한다.  - P8

이를 위해 나는 자연과학을 역사의 방향성과 일관성을 설명하는 장치또는 방법으로 사용하였다. 근대 자연과학은 이와 같은 논의에 있어서유효한 출발점이 되는데, 이는 자연과학이 인간의 행복에 대해 궁극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해도, 자연과학만큼 일반적으로 그 누적속성이나 방향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있는 주요 사회활동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P11

하지만 역사에 대한 경제적 해석이라는 것은 역시 불완전하며,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것은 인간이 단순한 경제적 동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경제적 해석은 특히, 우리들이 왜 민주주의자인가 하는 점,
즉 우리들이 왜 인민주권의 원리와 법의 지배 아래 기본권에 대한 보장을 신봉하는지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설명하고 있지 못하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 이 책의 제3부에서는 역사의 과정에 대해 첫번째 관점과는 평행인 새로운 관점에 대해 설명하고, 인간의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그 전체적인 모습을 재파악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헤겔과그의 "인정받기 위한 투쟁‘에 기초한 비유물론적 역사관으로 되돌아가야한다. - P13

이렇게 해서 우리는 제2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역사를 경제적 관점에서 설명할 때 누락되었던 자유주의 경제와 자유주의적 정치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가 바로 인정받기 위한 욕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업화 과정이나 기타 경제 활동의 대부분은 욕망과 이성의 두 가지에 의해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은 설명할 수 없으며, 이는 인정받고자 하는 영혼의 ‘패기‘ 부분에서 궁극적으로 비롯되는 것이다. 공업화의 진전에 따른 사회적 변화, 그중에서도보통교육의 보급은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때까지 느끼지못했던 인정받기 위한 욕망을 불러 일으킨 것 같다.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도시화가 진전됨과 아울러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사회가 전반적으로 평등화되면서 사람들은 단순히 더 많은 부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지위에 대한 인정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 P17

 니체에 의하면 근대의민주주의란, 예전의 노예가 스스로 주군이 된 것이 아니라, 노예와 일종의 노예적 윤리가 무조건적인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전형적인 시민이란, 근대 자유주의의 창시자들로부터 조련되어, 쾌적한 자기보존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훌륭한 가치에 대한 긍지 높은 신념마저 내던져 버리는 "최후의 인간"이었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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