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매경은 산스크리트어 사마디sam?dhi’의 음역이다. 사마디는 마음을 하나로 묶어sa? 매 순간 적절한 지점에 몰입하려는dhi 간절한 경지’다. 삼매경에 진입하기 위해 잡념의 소멸은 꼭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삼매에 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마디의 ‘디dhi’에는 인류가 오랜 세월 추구해온 삼라만상의 운행 원칙과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이 추구해야 할 고귀한 가치가 숨어 있다.

수련의 결과로 요가 수련자는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을 기꺼이 수용하게 된다. 나아가 수련자는 그 방식을 삶에 적용하는 열린 마음 상태가 된다. 이 상태를 삼매경三昧境이라고 한다

산스크리트어 리타는 하르의 과거분사로 ‘우주의 원칙에 맞게 조합된 것’이란 뜻이다. 리타는 ‘진리’, ‘법’, ‘질서’, ‘운명’ 등으로 번역된다. 리타가 사회에 적용되면 ‘다르마dharma’가 되고 개인에게 적용되면 ‘카르마’가 된다. 다르마와 카르마는 불교가 중국으로 전파되면서 각각 ‘법法’과 ‘업業’으로 번역되었다.

파탄잘리는 마음속 잡념을 잠재우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한 후, 삼매경의 두 층위를 소개한다. 이것이 요가가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목표 지점이다. 하나는 인식 대상에 대한 가장 높은 수준의 앎인 ‘상프라즈냐타 사마디sa?prajn?ta sam?dhi’, 즉 유상삼매有想三昧이다. 다른 하나는 인식 대상이 없는 상태에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앎인 ‘아상프라즈냐타 사마디asa?prajn?ta sam?dhi’, 즉 무상삼매無想三昧이다.

파탄잘리에 따르면 무상삼매는 모든 개념이나 표현을 초월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는 ‘아상프라즈냐타’라는 용어조차 사용하지 않는다. 무상삼매는 ‘무상’을 명상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고요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파탄잘리는 오히려 불특정 대상을 의미하는 부정대명사 안야를 이용하여 무상삼매의 오묘한 신비를 설명한다.

모든 것이 정지된 태고의 정적 상태에는 모든 것이 잠재적인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요가 수련자는 우주적 자아와 마주치기 위해 인내하며 수련해야 한다. 어떤 대상에 대한 수련이 아니라 그런 대상들에 대해 생각하도록 하는 씨앗을 찾는 수련을 해야 한다.

유상삼매는 물질세계의 본질인 프라크리티와 육체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인 ‘비데하videha’가 하나 되는 과정인 ‘바바bhava’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프라크리티는 마음과 물질을 형성하는 기본 원리이자 내용이다. 인도인들은 우주가 끝없이 창조와 파괴를 반복한다고 믿었다. 우주라는 질서가 창조되기 전, 분리되지 않은 잠재력 덩어리가 바로 프라크리티다. 프라크리티는 잠재력을 지닌 씨앗이다.

우리는 늙음과 그 늙음의 종착 지점인 죽음을 두려워한다. 우리 사회는 올바로 죽기 위한 연습의 장인 삶에서 오히려 죽음을 몰아내기도 하고, 마치 젊음이 죽음을 회피하고 망각할 수 있는 장치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삶과 죽음, 승리한 자와 패배한 자, 이들은 모두 하나다.

파탄잘리는 요가의 궁극적인 목적인 ‘사마디’와는 다른, 요가 수련에서 얻는 일상의 ‘사마디’를 언급한다. 이것은 인간의 의식 가운데 특별한 상태로 자신이 목표에 몰입하고 집중하는 마음이다

그가 자신이 드디어 삼매경 안으로 들어갔다고 자만하는 순간, 삼매경은 그를 내쫓는다. 삼매경에 진입한 그는 그 삼매경이 더 심오한 삼매경의 가장자리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신적인 자기 자신은 1인칭이면서 자신에게 가장 먼 존재인 3인칭이기도 하다.

요가 수련자에게 신이란 최선에 도달하기 위한 수련 과정에 등장하는 어떤 것이다. 신에게 헌신한다는 것은 수련자의 자아를 유기하고, 신에게 의지하며 자신의 최선을 바치겠다는 의미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조종하면서도 인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존재가 있다고 믿었고, 이를 ‘신’이라고 불렀다. 그런 신은 인간의 이성적인 사고 밖에 존재한다.

불교 철학은 부정신학의 정수다. 아트만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무시하고 진아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아나타anatta’, 즉 무아無我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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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레이반도 끝단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이사의 수마트라섬 사이에 있는 좁고 긴 수역(水域)을 가리키며, 동쪽의 남중국해(태평양)와 서쪽의 안다만해(인도양)을 연결한다. 말라카 해협의 길이는 약 800km, 최대 폭은 300km이며, 최소 폭은 50km다. 연안과 해협 중앙부에서는 해류가 빨라 항해에 주의가 요구된다. 이곳은 오래전부터 해상 실크로드 상의 요로였다. 인도양과 남중국해의 계절풍을 이용한 항해술이 발달하면서 말라카 해협은 중국에서 동남아시아를 거쳐 인도양과 페르시아만까지 이르는 해상교역로의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_ 정수일, <해상실크로드 도록> , p182



[사진] Jacques-Nicolas Bellin Map of the Straits of Malacca,(1755), 출처 : https://joyofmuseums.com/museums/asia-museums/singapore-museums/national-museum-of-singapore/jacques-nicolas-bellin-map-of-the-straits-of-malacca/


 파라하나 슈하이미 (Farahana Shuhaimi)의 <말라카 Kesultanan Melayu Melaka>와 로저 크롤리 (Roger Crowley)의 <대항해시대 최초의 정복자들 Conquerors: How Portugal Forged the First Global Empire>은 16세기 초반 포르투갈의 말라카 해협 정복이라는 사건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책들이다. 각각 이슬람의 말라카 왕국과 기독교의 포르투갈 왕국을 주제로 하는 이들은. 1511년 포르투갈의 알부케르크(Afonso de Albuquerque, 1453 ~ 1515)에 의한 말라카 함락이라는 교점을 갖는다. 15세기 말라카 왕국의 번영과 포르투갈에 의한 멸망. 이번 페이퍼에서는 그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포르투갈인들이 나타나기 이전까지 이곳은 마자파히트(Majapahit) 왕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말라카>에서 저자는 이슬람의 평화적 전파를 강조하면서, 이에 대해 폭력적인 기독교 진출을 대조시킨다. 이는 말라카 해협의 지리적 특성에 힘입은 바가 클 것이다. 

 

 말레이 세계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던 말레이반도는 15세기 초 이슬람의 유입과 함께 멀라까 왕국이 성립하면서 비로소 이 지역의 새로운 중심 세력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_ 소병국, <동남아시아사> , p79


 동남아의 이슬람 전파는 주로 말라카로부터 조직된 비폭력적 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들의 영향력과 무역에 있어서의 물질적 우위는 주변국들로 하여금 점차적으로 술탄국의 이슬람을 채택하고, 국교(國敎)로 삼도록 하였다. 이 문제에 있어서 말라카는 그들의 승리를 종교적 강제 형태로 몰아가지 않는 매우 모범적인 태도를 보였다. _ 파라하나 슈하이미, <말라카> , p122/123


 말레이 반도 내륙의 습지는 농업에 적합하지 않았으며, 열대우림의 해충들과 맹수들은 살기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라카 해협의 주민들은 어업 외에 삶을 영위할 길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에게 이슬람의 전파와 함께 이슬람 경제권으로의 편입이라는 제안은 이들에게 매우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시골 어촌 마을에서 새로운 경제 허브(hub)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이러한 상황에서 이슬람교의 전파가 강제로 이루어졌다면 그 편이 더 이상했으리라. 여기에서도 우리는 정치와 경제는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한 몸임을 확인할 수 있다.


 말라카는 전적으로 교역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는 도시였다. 도시 뒤쪽에는 말라리아를 옮기는 열대림이 우거진 내륙 지역이 있었는데 그곳은 곧 호랑이와 악어의 서식지이기도 했다. 기후는 무더웠고, 습한 열기가 갑옷을 입은 사람들에게서 활력을 빼앗았다. 항구에는 배가 떼릴 지어 모여 있었다. _ 로저 크롤리, <대항해시대 최초의 정복자들> , p234/306


 말라카의 농업은 말레이 반도의 다른 지역에 비하여 활발하지 않았다. 약간의 불이익은 말라카 사람들이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서, 도시 외곽 지역은 늪지대에 있었지만, 말라카의 도시는 언덕 위에 있었다. 그 도시는 원래 강어귀에 있는 단순한 지역이었으며, 주요 일자리는 말라카강을 따라 전개된 어업밖에 없었다. _ 파라하나 슈하이미, <말라카> , p12/123


  파라하나 슈하이미의 <말라카>는 15세기부터 16세기 초에 이르는 말라카의 번영을 잘 보여준다. 향신료 무역의 중심지로서 금, 커피, 육두구, 정향 등의 물품이 거래되며 동으로는 중국, 일본과 서로는 아라비아 반도와 이집트 상인들이 출입하는 항구. 이슬람 경제권으로의 편입은 이들을 해상실크로드의 중심지로 만들었고, 말라카로 물산과 화폐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이곳은 세계적인 물류 중심지가 되었다. 이로 인해 말라카는 번영했지만,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면서 이는 몰락의 원인이 되었다. 향신료 무역을 위해 희망봉을 돌아 아프리카, 인도를 거쳐 말라카에 포르투갈이 손을 뻗치면서 말라카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말라카는 향신료 무역의 중심지였다. 이슬람 무역상인들에 대한 이들 상품의 공급은 실제로 유럽인들, 특히 포르투갈인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향신료 무역은 포르투갈이 필사적으로 마카오를 차지하려고 했던 첫 번째 이유다. 기독교 복음 전파는 부차적인 이유였을 뿐이다. 그 당시 향신료는 음식의 맛을 좋게 하고, 음식을 보존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하였다. 아랍상인들의 독점으로 인한 이 카르텔을 깨트리기 위해 서구 무역상들은 불타는 시도로 격랑의 바다에 뛰어들었다.  _ 파라하나 슈하이미, <말라카> , p55/123


 말라카의 금가루는 미낭카바우(Minangkabau)와 파항에서 생산되었다. 정향은 몰루카(Moluccas)에서 나왔다. 커피, 육두구(nutmeg), 그리고 백단(sandwood)은 각각 보루네오, 반다, 그리고 티모르에서 생산되었다. 그와 같은 무역상품 공급은 동양인들과 서양인들의 무역수요를 충족시켜 주었다. 말라카는 무역과 방어의 측면에서 모두 전략적인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식량이 부족한 것이 한 가지 문제였다. _ 파라하나 슈하이미, <말라카> , p57/123


 알부케르크는 희망봉을 돌아 동아프리카와 서인도, 동남아시아를 선(線)으로 연결하는 포르투갈 제국을 구상한다. 이는 강력한 대포와 범선을 보유한 인구가 적은 포르투갈이 제국을 이루기 위한 최선의 방안이었으며, 말라카 해협의 정복은 아시아와의 무역을 독점을 의미했기에 반드시 이뤄내야 할 과제였다.


 알부케르크는 열정적으로 연설을 했다. 그는 인도양 전반에 걸친 전략적 계획을 간략히 요약해 설명했다. 홍해에서 무슬림 교역을 옥죄는 것이 궁극적 목표라면, "온갖 풍요로운 상품과 교역의 중심지이자 종점"인 말라카는 그 최종 목표와 연관된 중대한 지점이었다. 그곳은 "온갖 향신료, 약품, 그리고 온 세상 부의 원천이다... 또 후추를 캘리컷에서 떠나는 경로보다 더 많이 메카로 보내는 경로이기도 하다." 말라카 점령은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베네치아의 목을 조르고, 더 나아가 이슬람교의 전파를 가로막을 수 있었다. _ 로저 크롤리, <대항해시대 최초의 정복자들> , p236/306 


 처음부터 알부케르케는 광대한 영토를 정복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있었다. 해군 기지의 역하를 하는 한편 대포로 무장한 함선에 의해 바다 쪽에서 방어가 가능한 전략적 거점을 많이 차지함으로써만 인도양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가 총독으로 재임하는 동안 고아와 말라카, 호르무즈가 각각 1510년, 1511년, 1515년에 정복되었고, 아시아에서 포르투갈의 우위를 확립하는 본거지가 되었다. _ 카를로 M. 치폴라, <대포, 범선, 제국>, p170


 이렇게 시작된 말라카-포르투갈의 전쟁은 카를로 M. 치폴라 (Carlo Maria Cipolla, 1922 ~ 2000)가 <대포, 범선, 제국 Guns, Sails and Empires: Technological Innovation and the Early Phases of European>에서 주장한 서구의 우위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대포가 장착된 범선과 이를 활용하는 유기적인 전술의 활용을 통해 알부케르크는 말라카의 중심 다리를 점령하면서 1511년 말라카는 포르투갈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술탄들은 육중한 대포도 필요하였는데, 이를 이용해서 장거리에서 적의 대열을 분산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술탄들은 말라카를 위해 그런 대포를 구입하는 데 찬성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가 늦게 대두되었기 때문에, 말라카는 포르투갈의 공격을 버텨내기에는 장비가 덜 갖춰진 상태였다. 그래서 그들은 침입하는 함대들을 파괴할 수 없었고, 적들은 도시가 함락될 때까지 반족해서 방어선을 공략할 수 있었다. _ 파라하나 슈하이미, <말라카> , p76/123


 유럽의 팽창 과정을 기술할 때 군비에서 유럽의 우월성은 일반적으로 정적인 현상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사실, 15세기 첫 팽창의 물결 이후 유럽의 군비 생산 능력은 질적인 측면에서나 양적인 측면에서나 극적으로 증가했다. 이로 인해 비유럽권의 사람들은 유럽의 팽창에 적절히 대응하기가 극도로 어려웠을 뿐 아니라, 영토 방어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하게 된다. 특히 대포 제작에서 유럽의 진보는 전함의 건조와 해전에서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전략과 기술의 주목할 만한 발전을 동반했기 때문이다. _ 카를로 M. 치폴라, <대포, 범선, 제국>, p85


 16세기 대부분의 기록들은 말라카의 해군에 강력한 리더십이 없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 한 가지 약점으로 인해 말라카는 자신의 항구에서 그들의 강력한 자산을 사용하지 못하였다. 일부 기록은 두 명의 해군 제독이 술탄 때문에 불명예스럽게 물러났을 개연성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항 투아 제독이 수립한 공포 요소는 포르투갈인들이 공격하였을 때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_ 파라하나 슈하이미, <말라카> , p83/123


 이슬람의 패배는 해전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기술과 전략에서 주로 기인한다. 자신들의 전통적인 적인 베네치아와 몰타기사단 세력과 마찬가지로 오스만 투르크는 대서양 세력이 거둔 해상 혁명의 함의와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근대가 이미 시작되었얼 때도 여전히 "중세"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인력에 크게 의존했다. 충각으로 들이박고 적선에 올라타 싸우는 구식 전술을 고수했고 전력의 핵심은 언제나 갤리선이었다. _ 카를로 M. 치폴라, <대포, 범선, 제국>, p121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말라카의 점령은 알부케르크에게 절반의 승리만을 가져다 준다. 알부케르크는 '호르무즈-고아-말라카'를 잇는 선의 제국을 만드는데 성공하지만,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유럽 대륙 외 지역에 대한 분할에 관한 조약 - 토르데시야스 조약( Tratado de Tordesilhas)의 헛점을 파고든 에스파냐와 이를 위해 기꺼이 조국을 등진 마젤란(Ferdinand Magellan, 1480 ~ 1521)의 활약으로 필리핀이 에스파냐 식민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선의 제국이었던 포르투갈에 비해 아메리카 대륙에서 아시엔다(Hacienda)를 활용한 플랜테이션 제도를 운영했던 에스파냐는 무역 뿐 아니라 농업양식을 변화시키면서 결과적으로 아시아 무역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포르투갈의 입지는 점차 좁아지다가 결국 17세기에는 네덜란드에 말라카 영유권을 넘겨주면서 포르투갈 제국은 역사 속으로 퇴장하기에 이른다.


 말라카는 1511년 8월 24일 정오에 함락되었다. 적은 성으로 들어와서 보이는 말레이인들을 모두 살육하였다. 강한 충동으로 그들은 왕궁을 평지로 만들어 버렸으며, 이슬람사원을 불태워 버렸고, 묘지에서 모든 묘지석을 뽑아 버렸다. 도시의 이름은 에이 파모사로 바뀌었고, 그 폐허의 잔해는 재건에 사용되었다. _ 파라하나 슈하이미, <말라카> , p86/123


 불행하게도 이런 대담한 확장 정책 - 알부케르크의 제국 건설 정책-은 포르투갈에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말라카 공격의 부분적 목적은 극동에서 스페인의 야욕을 근절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목적과는 정반대로, 스페인은 그 사건 덕분에 극동 지역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지도와 정보를 얻었다. _ 로저 크롤리, <대항해시대 최초의 정복자들> , p243/306


 포르투갈은 인도 서부 해안에 위치한 고아를 점령해 아시아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향료를 안전하게 확보/독점하려면 인도 너머까지 진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목표가 된 곳이 말레이반도의 멀라까였다. 1511년 포르투갈령 고아의 총독인 아폰수 알부케르크(재임 1453~1515)는 군함 19척과 군인 1,400명을 이끌고 멀라까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멀라까를 점령한 포르투갈은 곧 북부 수마뜨라의 아쩨, 그리고 남부 말레이반도의 조호를 상대로, 멀라까해협에 대한 치열한 제해권 경쟁에 빠져들었다. 그 와중에 국제무역항으로서 포르투갈령 멀라까의 위상은 점차 약화했다. 멀라까는 단지 포르투갈 군인, 상인, 관료, 선교사 활동의 중심지가 되어 마치 이슬람 세계 속에 고립된 섬처럼 되어갔다. _ 소병국, <동남아시아사> , p134


 15세기 말라카 왕국의 번영과 쇠퇴를 다룬 이 시기의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가. 먼저 우리는이슬람의 비폭력 확산과 기독교의 무력 전파를 통해 오늘날 이들 지역의 이슬람화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알부케르크는 말라카 전쟁을 십자군전쟁으로 규정지으며 전쟁을 독려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말라카에 거주했던 말레이시아인들에게 이슬람 문화권은 하나의 경제블록(bloc)으로 물고기를 잡으며 하루하루를 살던 이들에게 번영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마음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반면, 십자가를 들고 온 포르투갈인들은 기존의 도시들을 파괴하고 이를 재료 삼아 요새를 건축하고, 제1차 십자군 당시 행해진 예루살렘 학살 때처럼 많은 원주민들을 살해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동남아시아들이 과연 어느 종교를 마음으로 받아들였을까 하는가는 너무도 명확하다. 제1차 세계대전까지 대부분 지역이 서구 열강의 지배아래 있었지만 기독교화하지 못했던 부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동남아시아 전선에서 크게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정도 이러한 과거와 연관되지 않을까.


 또한, 우리는 포르투갈이 자본주의 독점이익에만 관심을 갖고 무리하게 말라카를 점령하는데 성공했지만, 이로 인해 빚어진 엄청난 파괴와 약탈은 포르투갈에게 승자의 저주가 되었고, 결국 제국주의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었음도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를 과거의 문제로만 생각할 수 있을까. 이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소비중심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도 분명 여기에 담겨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말라카 무역의 품목 중 하나이기도 한 <육두구의 저주> 리뷰에서 별도로 다루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우리는 말라카의 역사 속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중국 화교와 말레이시아인들의 갈등 문제를 읽을 수 있다. <말라카>의 저자 파라하나 슈하이미는 말라카를 배신한 중국인들이 없었다면, 포르투갈에 의한 점령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러가지 경제적 혜택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포르투갈과 손잡은 중국상인들에 대한 저자의 시선은 결코 곱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시선은 결코 말레이시아인 저자 개인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기에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분명 우리에게 동남아시아 또는 아시안(ASIAN)은 낯선 지역이다. 중요하지만 낯선 동남아시아 중 한 지역인 말라카의 역사속에서 우리와 관련된 여러 현대 사회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다소 생소하지만 우리가 말라카와 동남아시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가를 생각하며 글을 갈무리한다...


 말라카 해협은 14세기 후반 마자파히트(Majapahit) 왕국의 판도에 들어가면서 세상에 알려진 이래 15세기 초 중국 명나라 정화 선단이 이곳을 다녀왔다. 1511년 포르투갈이 점령한 데 이어 서구 열강들의 각축전끝에 1641년에는 네덜란드가, 1824년에는 영국이 각각 점령하였다.  _ 정수일, <해상실크로드 도록>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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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2-06 09: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중간에 포함된 소병국의 동남아시아사는 저도 사두었는데 제대로 읽지는 못했거든요. 올해 동남아시아사 읽어볼 요량인데 많은 도움이 될 페이퍼네요. 자극 받고 갑니다^^

겨울호랑이 2023-02-06 09:33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에서 동남아시아사와 관련된 책을 찾기가 참 어려운데, 소병국의 동남아시아사는 그런 면에서 큰 흐름을 보여주는 좋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벌써 거리의화가님께서 많은 분야의 책을 다양하게 읽고 계신데, 동남아시아사까지 손대신다면 정말 많은 것을 이루는 한 해가 되실 듯합니다. 거리의 화가님,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

그레이스 2023-02-06 09: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해적이 출몰하던 곳, 한때 해상무역의 요충지 이렇게 알고 있었어요
30개의 도시로 보는 세계사에서 간략하게 정리했었어요
잘 읽고 갑니다

겨울호랑이 2023-02-06 10:14   좋아요 1 | URL
아, 30개의 도시로 보는 세계사에서도 말라카가 나오는군요! 그레이스님 덕분에 좋은 책을 한 권 알아갑니다.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서니데이 2023-03-13 1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3-03-13 20:19   좋아요 1 | URL
^^:) 항상 이웃을 배려해주시는 서니데이님 덕분에 꽃샘추위을 잠시 잊네요. 감사합니다. 평안한 밤 되세요!

얄라알라 2023-03-19 0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축하드립니다^^

육두구의 저주...말라카....연결 고리 엮어 기억해두어야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23-03-19 08:32   좋아요 0 | URL
얄라얄라님 항상 감사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셨네요. 봄바람이 차갑게 느껴지지만,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
 

배움은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를 걷어내고, 지금이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 시선을 수련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에게 배움은 자신의 편견을 강화하는 수단일 뿐이다

몽자각으로 무장한 사람은 꿈을 꾸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도, 그것이 꿈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자신은 이미 꿈에서 깨어난 사람이라고 착각한다. 자각몽을 꾸는 자신이 아직 꿈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요가 수련자는 자신이 되어야만 하는 모습이 되기 위해 매일 정진하는 자다. 그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군더더기를 제거하는 것이다. 이 제거가 ‘이욕’, 즉 ‘욕심 떨어뜨리기’다. 그 후 해탈을 위해 용맹정진 하는 ‘연습’을 경주해야 한다. ‘이욕離慾’과 ‘연습’은 요가 수련의 두 기둥이다.

동요하는 생각을 고요하게 만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도달하려고 애쓰는 ‘연습練習’이며 다른 하나는 달아나려고 애쓰는 ‘이욕離慾’이다. 결국 연습과 이욕이 모두 필요하다. 만일 요가 수련자가 하나를 소홀히 하고 다른 하나에만 집중한다면 그 수련은 아무 소용이 없으며 오히려 위험하다.

요가 수련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비범하고 고유해진다. 삼매로 진입한 요가 수련자는 일시적 쾌락에서 점차 멀어지고 평온한 신적 본성을 드러낸다. 그는 삼매 상태를 외부에서 얻지 않고 심연에서 기억해낸다. 따라서 삼매로 진입하는 기쁨을 얻는다.

인간은 두 종류다. 이들은 욕망에 따르는 ‘짐승 같은 인간animal human’과 승화된 자신을 열망하는 ‘신적 인간divine human’이다. 신적 인간은 어제까지 자신의 삶을 지배했던 과거의 문법에 얽매이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미래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상상하고 ‘현재 자신의 모습에 투영하며’ 지금 이 순간을 정교하게 다듬는다. 이 전략적인 노력이 바로 연습이다.

지속이란 요가 수련을 자신의 일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으로 정하는 마음이다. 지속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신적인 불꽃, ‘이슈바라??vara’에 온전히 승복하는 행위로 감동적인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끊임없이 일치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요가 수련자는 세상에서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단계인 사트바를 넘어서, 외부 자극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우주를 탄생시킨 원칙이 존재하는 단계, 그 우주에서 소우주로 사는 인간이 본연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단계로 진입해야 한다.

삼매경은 최고도의 마음 집중 상태다. 마음은 세계 최고의 양궁선수가 활을 들고 과녁을 향해 화살을 날려 보내기 위해 한껏 당겨진 활시위를 무아의 상태에서 놓아버리는 순간의 긴장이자 동시에 여유다. 그것이 일념이다.

일념은, 인간이 그 분야에서 스스로에게 만족스럽고 그래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어울리고 감동적인 결과를 도출하려는 유일한 도구다. 인간은 깊은 곳을 두려워한다. 사실은 깊은 곳을 두려워하는 자신이 두려운 것이다. 그 길을 막는 괴물은 바로 자신이다.

영겁이란 시간의 흐름은 환영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뇌에 떨어진 브라흐마 신의 뇌에서 나온 섬광의 순간이었다. 그는 일념을 통한 순간 안에서 가장 완벽한 지팡이를 만들어냈다. 자신의 마음속으로 퇴거하여, 적당한 나무를 찾아 완벽한 지팡이를 만드는 과업만이 거룩하다. 그런 행위는 인생이라는 제한된 시간을 초월하는 북극의 오로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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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금의 ‘고귀함‘은 ‘성숙‘의 결과이며, 다른 금속들은 익지 않은 ‘날것‘이기 때문에 ‘비천‘ 하다. 그런데 자연의 궁극 목적은 광물계의 완성, 그 최후의 ‘성숙‘에 있다. 금속이 금으로 변하는 자연적변성은 금속 자체의 운명에 새겨져 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자연은완전을 추구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금이 고도로 정신적인상징을 담고 있다("금, 그것은 불멸이다"라고 인도의 문헌들은 반복해말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어떤 연금술적 구제론적 사변에 의해 예고된 하나의 새로운 개념이 밝혀지게 된다. 그것은 곧 자연의 형제와도 같은 구제자로서 연금술사가 담당하는 역할의 개념이다.  - P57

‘수은의 ‘응고‘ (또는 ‘죽음‘)의 화학적 의미와 더불어서, 인도에는순수하게 연금술적인 의미, 즉 요가적 탄트라적 의미가 분명히 존재한다. 수은의 유동성을 환원한다는 것은 곧 정신적 심리적 흐름을 예떠한 변화도 없는, 따라서 어떠한 시간적 지속도 없는 ‘정지된 의식으로 역설적인 변환을 시키는 것과 같은 가치를 갖는다. - P138

연금술 조작의 차원에서 볼 때, ‘죽음‘은 보통 여러 가지 함유 성분을 띠는 흑색, 즉 니그레도에 해당한다. 그것은 제1물질로의 환원이자, 우주론적 차원에서 보면 원초적 상태, 카오스에 해당하는 유동적인 무형의 덩어리인 혼돈의 덩어리"로의 환원이다. 죽음은 무정형으로의 퇴행, 혼돈으로의 복귀를 나타낸다. 물의 상징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 P158

연금술사와 마찬가지로 용광공과 대장장이도 ‘불의 지배자였다.
이들은 모두 자연의 작업을 도와 시간의 속도를 촉진하고, 그렇게함으로써 결국 시간을 대신하였다. 아마도 연금술사들은 그들의 작업이 시간을 대체하리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음에 틀림없다. 그레나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문제의 핵심은 변환이라는 그들의 작업이 어떤 형태로건 시간의 폐기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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