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지방의 토착 세력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파촉의 토착 세력들도 자신들의 경제력을 축내고 물자를 다른 곳으로 가져가는 ‘강탈’ 행위를 싫어했다. 『화양국지』를 보면 파촉의 토착민들이 유비 사후 정치를 주도한 승상 제갈량과 제갈량의 후계자인 장완, 비위, 강유 가운데 유독 강유를 싫어했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그보다 유비의 장점은 말수가 적었고, 아랫사람들을 잘 대해주었으며, 얼굴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간관계에서 성공할 수 있는 장점을 갖춘 셈이다. 『논어 論語』에서는 말을 적게 할 것을 거듭 강조했다. 그래야 실수가 적고, 적을 덜 만들며, 남에게 호감을 준다. 그래서 그럴까? 호협 豪俠
, 지금으로 말하면 깡패 혹은 동네 건달들과도 잘 사귀었고, 건달들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반면 북조 계열인 수나라와 당나라 그리고 오대십국 가운데 북쪽의 정통 왕조인 오대를 계승한 송나라(북송)는 정신적 고향인 중원을 장악했기 때문에 정통성의 기준을 혈통보다 중원의 장악에 두었다.

남송시대에도 속지주의보다 속인주의를 정통성의 기준으로 삼으면서 다시 위나라보다 촉나라를 정통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이러한 시대적 저류는 주자학의 아버지 주희가 쓴 『통감강목 通鑑綱目
』에 반영되었다

위나라가 망하게 된 계기는 조예가 죽기 전에 어린 아들 조방을 보좌할 후견인을 잘못 정한 데 있었다. 조예는 본래 조조의 아들이었던 연왕 燕王 조우 曹宇
와 조휴의 아들 조조 曹肇
, 조진의 아들 조상에게 조방을 보좌하게 하고 사마의를 바깥으로 내보내 관중에 주둔하도록 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병이 들어 정신이 혼미해져 측근인 유방
劉放과 손자 孫資
의 말을 듣고 조우와 조조를 내치고 조상과 사마의에게 공동으로 조방을 돕도록 했다

손권이 말년에 군사적인 측면에서 고생한 것은 그의 무능 때문이라기보다 훌륭한 장군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적벽대전의 영웅 주유(175~210년)는 손권이 29세인 210년 36세에 세상을 떠났다. 삼분지계의 계책을 내놓은 모사이자 장군인 노숙(172~217년)은 손권의 나이 36세인 217년 46세로 타계했다. 형주를 점령한 여몽(178~219년)은 손권의 나이 38세인 219년 42세의 나이로 죽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숙을 명장이라고 평가하지 않지만, 형주의 분할을 두고 관우와 대치한 용기와 관우가 노숙의 군대를 쉽게 이기지 못한 것을 보면 군사적 재능이 있었다. 노숙을 제외한다고 해도 주유와 여몽이 너무 일찍 죽었다. 손권에게는 큰 손실이었다.

손권은 초기에는 정치를 잘했지만 말년으로 갈수록 실수를 거듭했다. 가장 중요한 실수는 태자 손화孫和와 동생 손패孫覇의 후계자 다툼을 수수방관한 것이다. 15-10의 계보에서 볼 수 있듯 본래 태자는 손등孫登이었으나 241년에 병들어 죽고 만다. 그러자 손화가 242년 태자가 되었다. 손화와 손패가 파당을 만들어 정쟁을 벌이자 손권은 손화를 태자의 자리에서 밀어내고 손패에게 자결 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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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은 유비에게 충성스럽고 믿음직스러운 신하였지만 유비가 싫어하는 직언도 마다 않는 강직한 사람이었다. 황제나 왕, 상관들은 충성스러운 신하나 부하를 원하지만 자기에게 대놓고 간언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조자룡은 바로 그런 사람, 직설적이고 신랄한 직언을 아끼지 않은 충직한 사람이었다.

소설에서는 관우 및 장비의 살해와 관련된 주연, 반장, 마충, 부사인, 미방, 범강, 장달을 모두 죽였다(주연의 죽음은 84회에 나온다). 특히 관우의 아들인 관흥과 장비의 아들인 장포가 배신자인 부사인과 미방, 범강과 장달을 직접 죽여 아버지에게 제사를 지내고 원혼을 달랬다. 그러나 『삼국지』에 따르면 반장은 234년, 주연은 249년에 죽었다. 참고로 이릉 전투는 221년에 있었으니 반장과 주연은 이릉 전투 이후에도 살 만큼 살다 죽었음을 알 수 있다. 마충·부사인·미방·범강·장달이 언제 죽었는지는 기록이 없으나 이릉 전투에서 죽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조비와 제갈량뿐만 아니라 약간의 군사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촉한군의 군사 배치가 잘못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유비의 무식이나 노망 때문이 아니었다. 지형상의 한계 때문이었다.
요약하면 촉한군은 길게 늘어선 군영 때문에 8만 대군의 병력을 집중하여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장강 지형도를 보면 그런 군영들이 고립된 지형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군영을 목책으로 만들어 화공에 취약했다. 이러한 정보를 입수한 육손은 당연히 화공법으로 촉한의 군영을 동시에 공격했다.

한 학자는 이릉 전투가 끼친 영향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먼저 개와 고양이처럼 촉나라와 오나라가 싸우고 반목했지만 위나라의 강대함과 대비되는 촉나라의 쇠약, 오나라의 고립 때문에 두 나라는 감정을 버리고 도리어 연합해 위나라에 대항하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두 번째로 오나라는 형주 방어에 성공하고 오나라와 촉나라의 연합을 통해 촉나라가 형주를 침입할 위험을 제거함으로써 위나라와의 싸움에 전념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오나라와 촉나라의 연합은 위나라와의 세력균형을 이루게 하여 삼국정립의 기틀을 마련했다.

부하를 위해 자기 목숨을 거는 지도자라니. 복수를 ‘사랑’하는 중국인들이 반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다. 이에 착안한 삼국지의 작가들은 상상의 나래를 펴서 유비가 관우와 장비의 복수를 감행했던 이유를 형제애에서 찾았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의형제였기에 피가 섞인 형제와 다름없다고. 게다가 의형제를 당연시하던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이들의 상상력은 기정사실처럼 굳어졌다. 소설의 작가나 청중 혹은 독자들은 세 사람이 의형제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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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 전면개정판
최무영 지음 / 책갈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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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올바른 활용을 위해서 과학은 사회 전체의 공유물이 되어야 하며,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과학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이해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는 단순히 과학 지식이 아니라 편협한 실증주의를 넘어서는 진정한 합리주의로서의 과학적 사고를 뜻합니다. 나아가 과학과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인간과 세계에 대해 스스로 성찰하는 지혜의 수준, 이른바 온의식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사회, 그리고 인문학의 만남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환원의 관점에서 또 다른 경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경계 넘기로부터 경계 허물기로 나아가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_ 최무영,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 p686

최무영 교수의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는 여러 면에서 더글러스 호프스태터(Douglas R. Hofstadter, 1945 ~ )의<괴델, 에셔, 바흐 Go"del, Escher, Bach: An Eternal Golden Braid>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실제로, 본문에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 1898 ~ 1972)와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 ~ 1750)가 인용되기도 했지만(특히, 에셔의 작품은 매우 비중있게 여러 곳에서 소개된다), 여러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저자 자신이 의도한 방향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리학이 생소한 이들이 느꼈을 혼돈의 카오스(Chaos)로부터 질서를 부여하며 코스모스(Cosmos)를 보여주는 느낌.

예전에 사람들은 어떤 것을 지각할 수 있게 해주는 적절한 은유를 갖기 전에는 그것을 보지 못한다 - 토마스 쿤 -

예전에 서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셨던 AgalmA님의 서재 대문에 적힌 글을 잠시 옮겨본다. 다양한 분야의 사례를 통해 물리학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적절한 은유를 제시하는 책이지만, 책에 담고 있는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많지 않은 수식이지만, 그 수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리학에 대한 상당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책은 독자에 따라 다른 빛깔의 책으로 보여질 것이다. 여기에는 저자의 철학도 작용한다. 저자의 사회,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과 우리 말 용어를 사용하겠다는 의지는 누군가에게 불편함으로 비춰질 수도 있을 것이고, 책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이라 여겨진다. 이에 대해서는, 본문의 아래 내용이 답이 될 듯하여 옮겨본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은 다르다는 것, 내가 속한 세상(또는 세계)는 다른 이가 속한 곳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차이는 어쩌면 물리학에서 다루는 거대 시공간보다 더 클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다름이 공존할 수 있지 않을까.

가끔 양자역학에 비추어 고전역학은 틀렸고 잘못되었으니 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경우를 보는데 이는 옳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상대론적 양자역학만 남기고 양자역학도 버려야 하겠네요. 사실 고전역학은 지금도 대단히 훌륭한 이론입니다. 다만 적용 범위가 양자역학만큼 넓지 않은 것뿐입니다. 보편성 면에서는 양자역학이 더 좋은 이론이지요. 그러나 좋은 이론의 기준은 보편성 맟고도 여러 가지가 있고, 다른 측면에서는 고전역학이 양자역학보다 오히려 더 좋은 이론일 수 있습니다. _ 최무영,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 p187

<최무영의 물리학 강의>는 미시 물리학에서 거시 물리학을 소개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기본 입자와 기본 입자 사이에 작용하는 네 가지 힘, 힘을 설명하는 이론(고전역학, 양자역학, 상대성 이론) 등으로 부터 최근 이론이라 할 수 있는 복잡계 이론까지 점점 범위를 넓혀간다. 복잡계 이론을 통해 저자는 학문 간 통섭(通涉, consilience)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전체 틀을 가진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초끈이론, 양자역학 등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그리고 은유를 만들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기본입자는 세 가족으로 나누는데 쿼크 가족, 렙톤 가족, 그리고 게이지입자입니다. 모든 입자는 결국 이러한 세 가지로 이뤄져 있지요. 쿼크 가족은 알다시피 위, 아래, 맵시, 야릇함, 꼭대기, 바닥의 여섯 가지가 있습니다. 렙톤 가족은 전자와 전자중성미자, 뮤온과 뮤온중성미자, 그리고 타우와 타우 중성미자가 있습니다... 게이지입자는 기본입자들의 상호작용을 전해주는 알갱입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기본 상호작용은 네 가지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힘은 결국 네 가지 상호작용 중 하나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친숙한 것이 중력일겁니다. _ 최무영,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 p157

결론적으로 일상 세계를 기술하려면 뉴턴의 고전역학으로 충분하지만, 원자나 분자 등 작은 세계의 기술에는 양자역학, 빛에 비해 크게 느리지 않은 빠른 세계나 우주 등 거대한 세계를 기술하는 경우에는 상대성이론을 써야 합니다. _ 최무영,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 p186

우주는 중력이 존재하지 않으면 유클리드 기하학이 성립하는 평형한 4차원 시공간, 정확히는 민코프스키 시공간일 텐데 여기저기 물질이 존재하므로 중력마당을 형성했고, 따라서 굽어진 시공간이 되어서 일반적으로 비유클리드기하학이 성립하겠네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는 흥미로운 문제입니다. 우리 우주는 이를테면 쌍곡선일까요, 아니면 타원적일까요? 또는 평평할까요? _ 최무영,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 p291

이제까지 물리학과 생물학 그리고 사회과학의 여러 분야에서 복잡계의 예를 몇 가지 들었습니다. 이렇듯 여러 분야에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그 가운데에서 어떤 보편성을 찾아내고, 이에 따라 다양한 현상을 하나의 틀로 해석하려 합니다. 이른바 보편지식 체계를 구축하려고 노력하는 거지요. 이것이 바로 물리학의 독자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_ 최무영,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 p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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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3-01-19 2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뎌 이 책을 영접하셨내요. ㅋ 그리고
AgalmA 님을 기억하시네요. 반갑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3-01-20 04:58   좋아요 1 | URL
^^:) 예전 초판을 읽었는데 개정판은 또 다른 느낌이네요. 더 체계적이고 저자의 철학이 잘 표현되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좋은 글을 많이 쓰신 AgamA님을 잊을 수 없지요. 많이 아쉽습니다. 북다이제스터님 행복한 설 연휴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아이는 분명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별 쓸모없는 것에 노력을 집중하는 것이 문제였다. 잘하는 것들은 더 이상 수업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반면 책을 읽고 의미를 파악한다든지, 역사 수업을 듣는 등 못하는 것들은 점점 친구들의 수업에 방해가 되었다.

전반적으로 소년의 성취는 굳이 따지자면 "중간 수준"이었지만, 자폐 어린이의 발달이란 맥락에서 그 정도면 어마어마하게 넓고 깊은 심연을 건너뛴 것과 다름없었다. 도널드는 적어도 일부 어린이는 자폐증의 가장 파국적인 측면을 극복할 수 있으며, 그런 과정을 적극적으로 시도해볼 가치가 있음을 입증하는 생생한 증거였다.

도널드는 번호 매기는 규칙을 한 번도 설명한 적이 없다. 하지만 자신만 이해하는 특이한 방식으로 사회적 상호작용 방식을 개발한 것은 분명했다. 말을 길게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사회적인 교류라는 점에서 효과는 대화 못지않았다. 도널드의 숫자는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재미있고 매력적이었으며, 확실히 관심을 끌었다.

숫자가 계속 늘어나는데도 자폐증의 본질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려는 노력은 지속되지 못했다. 너무 드물어 과학자들이 주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탓도 있었다. 더 중요한 이유는 정신의학자들이 자폐증의 원인이 분명하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최종 판결은 이랬다.
자폐증은 엄마가 자녀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병이다.

사악하다, 위험하다, 잡아먹을 것 같다. 베텔하임은 자폐의 원인과 영향을 설명하면서 이런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 자폐란 자기가 속한 세상이 냉정하고 역겨우며 위협적이란 사실을 깨달은 아이가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연구진은 어린이들을 부상 입은 존재로 보았다. 그토록 큰 상처를 입힌 사람은 바로 엄마라고 믿었다. 연구자들끼리는 심리적 유발인자라는 용어를 썼다. 어떤 정서적 외상이 가해져 자폐 상태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정서적 외상의 근원을 밝혀내고 손상을 회복시킬 방법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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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우스 로마사 3 - 한니발 전쟁기 리비우스 로마사 3
티투스 리비우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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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밀카르가 아이가테스 제도에서 패배하고, 이후 에릭스에서 패배한 것을 기억하십시오. 24년의 전쟁 동안 육지와 바다 양면으로 겪었던 고통을 상기하십시오. 당시 우리의 지휘관은 이 청년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인 하밀카르였지요. 그의 지지자들은 그를 제2의 마르스(軍神)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튼 로마와의 협정 조건에 따라 우리는 이탈리아에 개입하면 안 되는데도, 이탈리아의 땅 타렌툼에 간섭하여 전쟁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지금 그 역사가 바로 사군툼에서 반복되는 중입니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3> , p26/1226


  티투스 리비우스 (Titus Livius Patavinus, BCE 59/64 ~ ACE 17)의 <리비우스 로마사 3 Ab Urbe Condita Libri>은 <리비우스 로마사> 21~30권까지 내용을 담고 있다.  <리비우스 로마사> 전체 시리즈 4권 중 가장 많은 분량이 할애된 3권에서는 제2차 포에니 전쟁(한니발 전쟁 Bellum Hannibalcum, BCE 218 ~ 202)의 시기를 다룬다.  유명한 한니발 전쟁을 배경으로 하기에 <리비우스 로마사 3>의 서술은 마치 <삼국지연의>를 읽는 듯 긴박하게 그려진다. 한니발의 탄생으로 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전쟁 전반부에서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Hannibal Barca, BCE 247 ~ 181)이 칸나에 전투(Battle of Cannae, BCE 216)에서 대승을 하며 전쟁의 주도권을 잡은 시점을 돌아, 전쟁 후반부에서는 로마의  스키피오(Publius Cornelius Scipio Africanus, BCE 235 ~ 183)는 자마 전투(Battle of Zama, BCE 202)에서 압승을 통해 전쟁을 마무리짓고, 리비우스의 30권 내용도 함께 끝난다.


 한니발 전쟁을 다룬 책이나 리뷰는 매우 많기에, 굳이 여기에 전쟁의 내용을 다룬 리뷰 하나를 추가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대신, 한니발 전쟁을 바라보는 리비우스 그리고 그가 속한 로마인들의 관점을 이번 리뷰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한니발은 아주 위험스러운 상황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고, 그런 일이 벌어지면 오히려 전보다 더 탁월한 전술 능력을 선보이며 돌파했다. 그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지칠 줄 몰랐고, 무더위나 혹한이나 똑같이 쉽게 견뎌냈다... 그의 미덕에 관해서는 이쯤 해두기로 하자. 그가 보인 여러 미덕들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결점 역시 그에 못지않게 대단했다. 그는 비인간적이라고 할 정도로 잔혹했고, 일반적인 카르타고 인보다 더 신의가 없었고, 진실, 명예, 종교, 맹세의 신성함, 다른 사람이 신성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이런 미덕과 악덕의 특징을 갖춘 채, 그는 하스드루발의 지휘 아래 3년을 복무하면서, 장차 위대한 사령관 후보로서 반드시 보아야 하고 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단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학습하며 실천했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3> , p15/1226


 우리는 한니발에 대한 리비우스의 서술에서, 그를 바라보는 로마인의 상반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뛰어난 능력과 부하들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리더쉽 등. 리비우스는 지휘관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덕목을 갖춘 한니발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이와 함께 가해지는 그의 인간적인 성품에 대한 비판에 대해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한니발의 뛰어난 자질은 인정하면서도, 그의 인간적인 결점을 드러내며 험담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는 리비우스의 서술은 로마인이 한니발을 바라보는 시선 그 자체가 아닐까. 마치, 중국인들이 당 태종 이세민(唐 太宗 李世民, 598 ~ 649)을 죽음 가까이까지 몰아넣은 고구려의 연개소문(淵蓋蘇文, 594 ~ 666)을 악의 화신으로 기억하듯.


 전하는 말에 따르면 총 45,500명의 보병과 2,700명의 기병이 전사했고, 로마 인과 동맹 시민의 전사자 비율은 거의 같았다고 했다. 전사자 중엔 집정관 직속의 두 재무관 루키우스 아틸리우스와 루키우스 푸리우스 비바쿨루스, 29명의 천인대장, 다수의 전직 집정관, 다수의 전직 법무관이나 토목건축관이 있었다. 그나이우스 세르빌리우스 게미누스와 이전 해 사마관이자 몇 년 전에 집정관을 지낸 마르쿠스 미누키우스도 전사했다. 원로원 의원이나 원로원 의원 자격이 부여되는 공직을 지낸 사람들 80명도 군단 복무를 자원했는데, 이들도 전투 중에 사망했다. 3천 명의 보병과 1천 5백 명의 기병은 포로로 붙잡혔다. 이상이 칸나이 전투의 개요이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3> , p230/1226


  로마 역사상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칸나이 전투를 넘어선 패배는 없었기에, 이러한 좌절을 안긴 한니발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울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리비우스 또한 역사가 이전에 로마인이었기에 이런 주관적인 서술을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그렇지만, 한니발이 수세(守勢)로 몰리면서 전장이 이탈리아를 벗어나 에스파냐, 아프리카로 옮겨졌을 때 로마군들이 한 행동을 서술한 리비우스라면 과연 한니발과 카르타고군의 잔학함을 악(惡)으로 몰아 비판할 수 있을까. 로마군이 한니발 전쟁에서 그리고 제국 팽창 과정에서 벌어질 수많은 참상의 원흉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더더욱 그런 자격은 없어보인다. 인용부분에서는 동포들의 손에 학살당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로마인의 약탈 또한 정도가 결코 덜하지는 않았으리라...


 이런 유혈극은 전쟁에서 벌어지는 통상적인 과정이었다. 격분한 로마 인들은 저항 가능한 무장한 적들과 싸웠던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끔찍한 일이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수백 명의 힘없고 무방비 상태인 여자들과 아이들이 동포들의 손에 학살당한 것이었다. 시장엔 커다란 화톳불이 붙었고, 종종 아직도 숨을 쉬는 사람들이 그 불에 던져졌다. 화톳불은 피의 강으로 거의 꺼졌다. 마침내 도살을 맡은 자들이 그 끔찍한 일을 끝냈고, 그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손에 칼을 든 채로 불에 뛰어들었다. 이렇게 학살이 끝나자 로마 인들이 도시에 나타났다. 이 광경에 로마 인들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놀라며 멈춰 섰다. 잠시 그들은 입을 벌린 채 서서 그 참상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시신과 잡다한 물건이 싸인 곳에서 금과 은이 반짝거리는 걸 보자 그들은 자연스럽게 탐욕에 휩싸여 화톳불 속에서 그 보물들을 낚아채고자 했다. 화톳불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이들은 뒤에서 물건을 빼내려고 밀려오는 무리 때문에 불길에서 뒤로 물러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밀치며 앞으로 나아갔고, 몇몇은 불속으로 밀려들어가 타죽었고, 다른 일부는 맹렬한 열기에 온 몸을 그을렸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3> , p866/1226


 리비우스의 한니발에 대한 평가는 후반부에 다시 이루어진다. 한니발 몰락기에 리비우스 자신이 직접 역사서의 화자(話者)로 등장하여 이루어진 재평가는 앞서와 사뭇 결이 다르다. 


 실제로 나는 한니발이 성공을 누릴 때보다 운이 기울었을 때 더욱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고국에서 머나먼 적의 영토에서 13년 동안 싸우면서 많은 흥망성쇠를 겪은 그의 군대는 카르타고 인으로만 구성된 게 아니라 온갖 국적의 천민들이 뒤범벅된 그런 군대였고, 병사들은 법, 관습, 언어가 모두 달랐으며, 예절, 의복, 장비는 물론 섬기는 신과 종교 의식의 형태도 어느 것 하나 같은 점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든 이 잡다한 무리를 굳게 결속시킬 수 있었고, 그리하여 자기들끼리 단 한 번도 싸우는 일이 없었으며, 한니발에게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 적도 없었다. 놀라운 건 급료를 지급할 자금이 빈번히 부족하고 식량도 자주 떨어졌음에도 일절 반항의 기미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제1차 포에니 전쟁 때는 그런 일로 장교와 병사 모두가 형언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른 바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승전의 희망이 전부 사라진 데다 하스드루발이 전사함과 동시에 휘하 병력이 괴멸하고, 이탈리아의 작은 구석인 브루티움 하나를 제외하고 이탈리아 전역을 포기한 상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카르타고 진지에서 반란이 일어나지 않은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3> , p841/1226


 로마의 반격으로 이탈리아 반도에서 연이어 세력을 잃어가고, 본국으로부터 보급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에스파냐를 포기하고 넘어온 동생 하스드루발마저 죽음을 당한 절박한 상황. 이러한 상황에서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히 맞선 한니발에게 리비우스는 경의를 표한다. 그는 포르투나(fortuna)에 맞선 비르투(virtu)의 고귀함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이러한 리비우스의 서술에서 앞선 한니발에 대한 악의적인 서술만큼 진실성을 느끼기 어렵다. 이제 승기를 잡은 자의 어설픈 관용이라면 지나친 표현일까. 리비우스의 경의에도 불구하고 <리비우스 로마사 3>을 통해 한니발은 사악한 전쟁신(神)에서 거센 운명에 맞서는 인간(人間)으로 격하된 느낌이다. 이렇게 리비우스가 악(惡)으로 규정한 제2차 포에니 전쟁, 한니발 전쟁은 왜 일어난 것일까? 


 한니발은 더 이상 주저하지 말고 사군툼을 공격하기로 했다. 그 도시를 직접 공격하면 로마가 행동에 나설 것이 확실했으므로 그는 먼저 올카데스 부족 영토를 침공했다. 이 부족은 에브로 강 남쪽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카르타고의 영향력이 미치는 영역 안에 있었지만, 실제로는 카르타고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있었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3> , p16/1226


 하지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배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어서 그들이 동정을 얻기는 힘든 일이었다. 전략 회의가 열렸고, 모두가 정당한 분노를 느끼며 카르타고 파괴를 촉구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니 저런 방어 시설과 자원을 갖춘 도시를 포위하며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은 어마어마할 것이었다. 게다가 스키피오는 자신이 노력하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사실상 끝낸 전쟁의 영광을 자신의 후임자가 가져가고, 승리의 보상도 그가 챙길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고, 이에 회의 참석자들은 모두 평화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나아갔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3> , p1098/1226


 리비우스는 한니발 전쟁의 발단을 한니발의 사군툼 공격에서 찾는다. 제1차 포에니 전쟁 이후 평화를 위한 협약이 카르타고의 친로마 중립 도시 사군툼 공략으로 깨지면서 평화를 위한 로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고, 로마는 평화를 지키기위한 정의로운 전쟁을 할 수 밖에 없었음을 강조한다. 21권의 시작이 한니발의 맹세와 성장, 사군툼 공략으로 이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기에 숨겨진 진실은 없는 것일까? 우리는 리비우스가 서술하지 않은 부분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제1차 포에니 전쟁이후 해외 진출 방향을 에스파냐 방면으로 돌릴 수밖에 없는 카르타고의 속사정과 이마저도 에브로 강 이남으로 제한하려는 로마의 압력과 중립 도시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카르타고를 자극했던 로마의 술수는 과연 한니발 전쟁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리비우스 로마사 3>의 내용은 매우 흥미진지하다. 시오노 나나미(塩野七生, 1937~ ) 의 <로마인 이야기>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2권 <한니발 전쟁>에서 전쟁 관련한 대부분의 내용이 리비우스의 저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 매우 몰입도가 높은 역사서다. 다만, 카르타고와 로마가 벌이는 검투 경기에 열광한 독자들의 시선이 피끊는 전장에 머무는 동안, 그들에게 씌워진 선(善)-악(惡)의 프레임은 승자(勝者)가 정한 것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전쟁의 발단은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스페인의 로마 동맹시인 사군툼을 포위 공격한 것이었다. 그 전에 그러니까 제1차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 인들은 동부 스페인의 공동체들과 동맹을 맺었는데 그곳에 진출한 카르타고의 세력을 봉쇄하기 위해서였다. 로마는 기원전 226년 에브로 강 이남의 지역(카르타고가 지배하는 지역)은 간섭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으나 곧 그것을 위반했다. 당연히 카르타고는 로마의 이런 움직임에 반발했다. 카르타고 인들은 스페인의 광업과 농업 자원에 투자한 자국의 중요한 상업적 이해사항들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크게 우려했다. 로마 원로원은 그 전의 맹세는 무시해 버리고 카르타고를 물리쳐 달라는 사군툼의 호소에 호의적으로 반응했다. 맹세 위반이라는 국제적 신의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카르타고는 어차피 인간적 도덕성이 결여된 야만인이므로 그런 맹세는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게 로마의 일방적 판단이었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3> , p1142/1226


스페인 부족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들을 카르타고의 지배하에 두는 능력이 탁월했던 하스드루발 덕분에 로마 인들은 평화 협정을 갱신하여 에브로 강을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의 영토 구분선으로 삼아, 사군툼의 중립성을 확보함으로써 일종의 완충국 역할을 그 도시에 맡겼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3> , p12/1226

스페인의 전반적인 상황은 어떤 측면으로는 이탈리아와 무척 비슷했지만, 다른 측면으로는 무척 달랐다. 전투에서 패배하고 사령관을 잃은 카르타고 인들이 대서양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던 점은 이탈리아의 상황과 유사했다. 하지만 스페인이 이탈리아와 다른 것은 지역의 특성이나 그곳 주민들의 기질이 세상 다른 어떤 곳보다 패배를 태연하게 여기며 새로운 적대 행위에 나서는 일을 밥 먹듯이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스페인이 로마 인들의 첫 번째 속주가 되고, 우리 시대에 이르러서야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의 리더십과 지원 아래 완전히 정복된 마지막 지역이 된 이유이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3> , p842/1226

로마 인들과 카르타고 인들 사이에 전염병이 돌았고, 둘 다 똑같이 끔찍하게 시달렸다. 다른 점이 있다면 후자는 병으로 고통 받았을 뿐만 아니라 식량 공급마저 부족했다. 한니발은 유노 라키니아 신전 근처에서 여름을 보냈고, 그곳에 제단을 세웠고 제단 밑에는 자신의 업적을 장황하게 기록한 기명(記銘) 판을 설치했다. 기명 속의 문장은 카르타고어와 그리스어로 새겨졌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3> , p927/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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