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2권 - 6.25 전쟁에서 4.19 전야까지 한국 현대사 산책 4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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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은 자유당 시절 3. 26일을 어용곡필배들의 잔칫날이라고 말했다. 3. 26일은 이승만의 생일이었다. 5580회 생일 기념식은 서울운동장에서 거행되었다. 시인 김광섭은 이승만 생일을 맞아 헌시를 바치며 이승만을 세기의 태양으로 극찬한다. 공보처장 갈홍기는 이승만을 예수나 석가처럼 아무런 도 없고 어떠한 도 없이 민족의 자유와 독립,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개척하는 지공무사한 삶을 살아왔다고 칭송했다. 박목월 작사, 김성태 작곡의 이승만 대통령 탄신 80주년 기념노래도 나왔다.

 

4.19때 국민들이 불을 지른 <서울신문>은 이승만을 구국의 태양’, ‘인류의 등대라고 말했다.

 

418일부터 24일까지 인도네시아 반둥에선 아시아 아프리카회의가 개최되었다. 23개 아시아 국가와 6개 아프리카 국가가 참여하였다. 반둥회의는 평화공존, 반식민지주의, 민족자결주의의 이념을 골자로 한다. 제국주의 미국은 반둥회의를 못마땅해 한다. 이승만은 주동자인 인도를 비난하면서 반둥회의를 공산주의자들의 모임이라 비난한다.

 

6, 박인수 여대생 간음 사건이 터진다. 명문 E대생을 비롯한 70여 명의 여인과 간음을 했다는 박인수는 공무원 사칭과 혼인빙자간음 혐의로 피소되었다.

 

해병대 헌병 대위였던 박인수는 약혼녀가 자신을 배신하고 모 대령과 결혼해 버린데 충격을 받아, 불명예 제대 이후 여성 편력에 나선다. 재판 과정에서 박인수는 자신과 관계한 여성 중 처녀성을 지닌 여자는 단 한 명 밖에 없었다고 실토하자 언론은 일제히 우리 여성들의 정조 관념에 일대 경악과 통탄을 금할 수 없는 중대한 현실 문제라고 성토한다.


8월부터 중립국 감시위원단 축출 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정부가 문제 삼은 건 체코와 폴란드 등 공산국가 대표였다. 이 축출 시위를 적성감위 축출운동으로 줄여 불렀다.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학생들이 강제로 동원되었다. 백인빈의 <조국회상><적성감위 축출운동>을 이렇게 회상한다.

 

우리들은 구성지게 내리는 그 비를 맞으며 궐기대회니 총궐기대회니, 규탄대회니에 매일이다시피 끌려다녀야 했다. ...누가 만들어 나왔는지도 모르는 플래카드를 들고 서울운동장으로 달려가고, ....을지로나 종로를 통하여 시청 앞까지 나팔을 불고 구호를 외치며 시가행진을 하여야 했던 것이다. ....총 궐기대회에 나오지 않으면 배급을 주지 않는다거나, 이름을 적어간다는 소리에 질려서 서울운동장으로 끌려나가야 했던 것이다. ”

 


910일 유엔대표부 상임이사 임병직이 대구를 방문하자 이를 환영하고자 중고등학생들을 뜨거운 햇볕아래 서너시간 동안 가두에 도열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보다 못한 대구 <매일 신문> 주필 최석채는 913일자에 <학도를 정치 도구로 이용하자 말라>라는 제목의 사설을 썼다. 이 사설이 나가자 자유당 사주를 받은 폭력배 20명이 매일신문사를 습격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경북도경 사찰과장은 백주 테러는 테러가 아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주필 최석채는 검거된다.

 

당시는 밀수가 성행했고 부정부패가 창궐하는 시기였다. 산의 나무를 도벌해 파는 걸 군대 용어로 후생사업이라 했다. 1955년은 군대부정의 대표적인 해로 불리운다. 고급 장교들은 고철 수집, 벌목 등 후생사업 뿐만 아니라 사병들의 몫을 횡령, 착복하기 일쑤였다.

 

근본적으로는 정치자금 조달 부정부패가 횡행했다. 원면 사건이 대표적 예다. 미국으로부터 월동용 군 피복과 군용 이불을 만들기 위해 도입된 미화 약 50만 달러어치의 원면을 군용으로 쓰지 않고 상인들과 결탁, 부정 처분한 후, 국방부는 이 돈을 이기붕에게 헌납했다. 국방부와 육군이 결탁해 벌인일이었다. 이승만과 이기붕은 이 문제를 조사하던 국회 분과위원회에 압력을 가해 사건의 전모를 감추었다.

 

민국당 계열의 보수파는 919민주당을 창당한다. 민주당은 이른바 구파신파로 구성된다. 한민당 민국당 계를 승계한 구파는 신익희, 조병옥, 김준연, 윤보선, 유진산 등으로 지주 집안 배경을 가졌거나 해외 유학파가 중심이었다. 김성수의 보성, 동아 인맥이 강세를 보였다.

 

신파는 장면, 오위영, 조재천, 엄상섭등을 핵심 인물로 한 관료, 법조인 출신이 주류였다.

 

민주당 참여를 거부당한 혁신계 야당 세력은 1222일 조봉암, 서상일, 이동화 등을 주축으로한 진보당 창당 준비위원회를 구성한다.

 

9월 한국에서 처음으로 국산 승용차 시발이 등장한다.

 

1210일 중앙극장에선 한국 최초의 여자 감독 박남옥의 <미망인>이 개봉한다. 55년엔 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 이해연 노래의 <단장의 미아리 고개>가 히트한다.

 

전후로 베이비 붐세대가 태어난다. 55~60년 기간 합계 출산율은 6.3명에 달했다.

 

53년 장준하에 의해 창간된 <사상계>55년 이후로 3만 부를 넘어서며 점점 영향력을 더해갔다. 5510월호에 쓰인 <권두언 : 소위 위기위식에 대하여>에선 당시 서구를 풍미하던 절망의 허무주의 사조 수입에 대해 비판했다.

 

근래 구미의 일부 인사들이 위기와 절망이라는 패자의 철학을 고창함으로써 자유세계의 지성을 좀먹어 들어가는 것은 진실로 유감된 일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맹목적으로 이 패자의 철학을 받아들여서는 안 되겠습니다. 더구나 힘과 포부에 차야 할 젊은이들의 마음 속에 이러한 씨를 뿌린다든지, 젊은이들 자신이......제자리에 주저앉아 퇴영무위의 생활에 젖어버린다면 이보다 한심스런 일은 다시 없는 줄 압니다. 저들은 위기니 절망이니 하여도 그것은 오직 관념상 내지 이념상의 희롱에 불과합니다. ”

 

10월 박인환의 첫 단독 시집 <박인환 선시집>이 출간된다. 56년 이른 봄 서울 명동 경상도집에 문인 몇몇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마침 그 자리에는 가수 나애심도 있었다. 일행이 나애심에게 노래를 청했으나 나애심은 노래를 하려 하지 않았따. 그러자 박인환이 즉석에서 시를 써내려갔다. 그래서 탄생된 것이 <세월이 가면>이라고.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서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박인환은 563203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월에 개봉한 이규환의 <춘향전>2개월 동안 12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기록을 세운다.

 

50년대 신흥종교가 창궐한다. 박태선의 전도관, 문선명의 통일교, 나운몽의 용문산 기도원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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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5 1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7-25 15:08   좋아요 1 | URL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의 우매함에 새삼놀라워요. 그렇다고 해서 현재에 나아졌나 싶으면 딱히 그렇지도 않구요. 여전히 야만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5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삼웅... 평전 잘쓰는 분이시죠. 김삼웅 평전은 믿고 봅니다..

시이소오 2016-07-25 17:33   좋아요 0 | URL
저도 김삼웅 쌤, 평전은 전작할 작정입니다. ^^

cyrus 2016-07-25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삼웅 씨가 쓴 절판된 책 중에 친일파에 대한 각종 기록을 정리한 것도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이런 책이 잊혀지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시이소오 2016-07-25 18:34   좋아요 0 | URL
전작해야 할 분이죠^^

2016-07-26 0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7-26 10:38   좋아요 1 | URL
김영성님. 격려 감사합니다.
그동안의 무지를 반성하는 차원에서 ᆢ

영성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
 
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2권 - 6.25 전쟁에서 4.19 전야까지 한국 현대사 산책 4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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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은 자유당 내에서 이범석과 족청계를 축출하고 이기붕을 총무무장에 임명한다. 이승만은 대한청년단을 이끌었던 안호상도 빨갱이로 몰아 축출한다.

 

11일부터 <서울 신문>에 정비석의 <자유부인>이 연재된다. 단행본으로 출간된 <자유부인>은무려 14만 부가 팔려 한국 출판사상 최초로 판매량 10만 부를 돌파한 책으로 기록된다. 한편 국가와 사회단체들은 열녀, 효부, 절부를 뽑아 모범과 찬양의 대상으로 표창장을 수여하기 바빴다. 장성군 사는 김씨는 2년 동안 고생하는 남편을 완치하기 위해 허벅다리를 도려내여 복역케 하여 표창장을 받았다고.

 

54년은 자유부인허벅다리 부인이 공존하는 사회였다.



 

4, 김성주 살해 사건이 일어난다. 김성주는 서북청년회 등 반공 청년단체의 제 일선에서 활약한 인물이었다. 유엔군 북진시 유엔군 임명에 의해 잠시 평남지사를 맡으면서 이승만 눈 밖에 난다. 김성주는 국가변란 및 이승만 대통령 암살음모 혐의로 구속된다. 이승만은 김성주에 대한 사형 판결을 기대했으나 군법회의에서 7년을 구형한다. 이승만은 원용덕에게 김성주를 반드시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영문 서한을 보낸다. 416일 원의 부하 김진호는 육군형무소에서 김성주를 끄집어 내 사살한다. 이는 비밀로 붙여지고 56일에 김성주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진다.

 

한편 포병 사령관 장은산 휘하에 있던 장군 이기련은, “김성주는 김구 선생 사건의 내막을 알기 때문에 이 박사가 죽였다고 본다고 진술했다.

 

5.20 3대 총선이 열린다. 5.20 선거는 경찰의 곤봉이 당락을 결정했다고 하여,곤봉선거로 불리었다. 후보 등록 방해 수법이 벌어져 조봉암조차 후보 등록을 하지 못한다.

 

7월 하순, 방미에 오른 이승만은 728일 미국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제3차 세계대전을 촉구하는 초강경 연설을 한다.

 

현 대통령에 대한 중임 제한 폐지를 위한 헌법 개정에는 전체 의석의 3분의 2136석이 필요했다. 그러나 자유당은 114석으로 22석이 모자랐다. 자유당은 막대한 정치자금을 동원해 무소속 의원 매수작전에 돌입했다. 그 결과 무소속 당선자 23명을 자유당에 입당시킨다.

 

자유당은 초대 대통령 연임을 골자로 한 국회 개헌안을 제출한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초대 대통령 연임에 대한 반대가 78.8%였다.

 

자유당은 뉴델리 밀회 사건을 터뜨려 1120, 개헌안을 상정한다. 1127일 표결에 들어갔다. 개표결과 출석 의원 203명 중 찬성은 헌법 개정에 필요한 136표에 한 표 부족한 135표였다. 2033분의 2135. 333......명이기에 부결된 것이다. 부의장 최순주가 부결을 선포했다.

 

그런데 월요일 29일 열린 국회 제 91차 본회의에서 최순주는 개헌안의 부결을 선포한 것은 계산 착오였으므로 이를 취소하고 사사오입의 수학원리에 따라 가결되었다고 선포한다. 자유당은 135.333.......을 사사오입하면 136이 된다는 해괴한 논리를 내세웠다. 이게 그 유명한 사사오입이다.

 

69일 공식적으로 상업주의를 표방한 <한국일보>가 창간된다. <한국일보> 사주는 <조선일보> 사장을 지냈던 장기영이었다. 이해에 기독교방송도 개국하였다. 정부는 기독교 방송과는 별도로 또 하나의 종교방송을 허가한다. 극동방송이었다.

 

문학계에선 카뮈와 싸르트르의 실존문학이 유행하였다.

 

54년엔 18편의 영화가 제작되었다. 최대의 화제작은 한형모의 <운명의 손>이었다

이 영화에서 한국 최초로 키스신이 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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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07-24 18: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950년대까지 단지, 허박다리를 도려내서 효부, 효자를 표창하는 관행이 있었군요.. 새정부가 들어섰다고 조선시대가 끝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역사는 하루 아침에 개벽되는 것이 아닌듯합니다. 그 이전에 충분하게 축적된 에너지가 어떤 계기로 표출되어서 새로운 세계로 도약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봤습니다. 시이소오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시이소오 2016-07-24 18:33   좋아요 2 | URL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사람들의 의식은 여전히 조선 왕조에 머물러 있었던것 같네요.

저도 매번 겨울호랑이님의 격려에 감사드려용 ^^

2016-07-24 2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7-24 20:20   좋아요 2 | URL
그게 가장 핵심적인 원인이죠. 지금이라도 숙청해야하는데 ㅠ
 

오, 나오미 클라인 책이 들어왔어요. 윌 리엄 트레버의 비온듸 까정 !!
사랑합니다. 사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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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7-23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 보다 더 재미있는 논픽션 쓰기>는 알라딘에선 검색이 안 되던데
어떤 책인지 궁금하네요.

시이소오 2016-07-23 19:14   좋아요 0 | URL
앗, 그런가요?
재미질듯 합니다 ^^
 
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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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타츠루의 <하루키씨를 조심하세요>의 독후감을 쓰면서 미처 하지 못한 말이 있다. 우치다 타츠루는 하루키 문학의 위대성에 대해 여러 가지 근거를 들어 제시한다. 그 중에 세계적으로 많이 팔리기 때문에 하루키 문학은 위대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평론가 모린 코리건 역시 많이 팔리기 때문에 피츠제럴드는 위대하다고 주장했었다. 과연 그럴까


우치다 타츠루의 주장처럼 많이 팔리면 좋은문학일까? 거꾸로 물어보자. 안 팔리면 나쁜 문학이란 말인가? 우치다 타츠루의 말은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터무니없는 외침이자 소음에 불과하다. <실미도>는 천 만명이 봤으니까 좋은 영화고, <한공주>22만 명이 봤으니 나쁜 영환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선 작품의 내적인 가치보다는 오히려 외적인 환경이 판매를 좌우하기도 한다. 오프라인 서점 매대에 진열하는 책의 경우, 홍보비로만 3천 만원 이상이 드는 걸로 알고 있다. 인터넷 서점, 탑 화면에 홍보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광고, 홍보비가 드는 걸까. 아무도 홍보하지 않는데 저절로 팔리는 책은 거의 없다.

 

, 한마디로 판매량은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종의 기원> 많이 팔렸다지. 호평도 많길래 기대했다. 초반부가 짜증스러웠다. 앞부분만 그렇겠지? 책을 덮을 때까지 짜증스러웠다. 도대체 뭐가, 어디서, 어떻게, 재밌단 말이지? 뭘 즐기란 것일까? 정유정의 <7년의 밤>은 평론가들의 말대로 압도적 서사에 끌렸다. <종의 기원>에 그런 게 있나? 단편으로도 충분한 이야기 아닌가? 정유정 작가의 말대로 악을 탐구하고 싶으면 책을 읽어야지, 왜 책을 쓰고 자빠진걸까. 이렇게 빈약한 서사로 뭘 즐기라는 것일까. 아니 뭐 즐길 게 있어야 즐길 거 아닌가. 장어 사주겠답시고 꼬드겨서 꼼장어 사주는 거랑 뭐가 다르지? 꼼장어가 커봤자 꼼장어지 장어 되냐고? 수류탄에 초콜릿 바르면 수류탄이 초콜릿 되냐고?

 

좋은 소리 안 나올게 뻔하므로, 독후감 안 쓸려고 다짐을 했건만 너무 열 받아 결국 쓰고 말았다. 책을 읽으니, 독자인 내가 사이코패스가 되는 것 같다. (혹시 그게 작품의 숨은 의도?) 더 악평을 하기 전에 말을 말아야지. 이 책을 읽느니 영화 <어바웃 케빈>을 보시길. <종의 기원>과는 비교 불가할 정도로 좋은 작품이다.)

 

제목은 또 왜 <종의 기원>? 감히 다윈을 욕 되게 하다니. 정유정은 포식자 대변인이 되고 싶었나?? 

이래저래 재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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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07-23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만, 이승만 정권의 비리에도 의연하게 정리해 주셨던 시이소오님께서 이처럼 분노(?)하시는 것은 처음 뵙는 것같습니다. 더운 날이어서 기대에 못 미친 부분이 많이 아쉬우셨나봐요^^ 그래도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 것을 보면 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사실 저도 요즘 읽고 있는 플라톤 사상이 왜 위대한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그래도 고전이라고 위대하다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어렵네요^^) 저녁에는 비가 온다고 하니 조금은 시원해 지겠지요. 즐거운 토요일 오후 되세요.^^

시이소오 2016-07-23 15:06   좋아요 1 | URL
사기당한 느낌이라서요. 날도 더운데 ㅋ 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3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읽었지만 뭔가 이상하게 설득이 되어서 좋아요를 누르고 갑니다..내일을 위해 쏴라.. 인가 그 소설은 읽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맹숭맹숭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시이소오 2016-07-23 15:09   좋아요 0 | URL
이상하게 설득된다는 표현이 왜 이리 웃길카요 ㅋ.

보물선 2016-07-23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유가 아주 쏙쏙 들어옵니다^^

시이소오 2016-07-23 15:10   좋아요 1 | URL
아시죠? 장어는 권여선 소설에서, 수류탄은 이 소설에서 인용했어요^^

한가한걸 2016-07-23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오히려 7년의밤을 아주 지루하게 봤습니다. 영화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좀 ..
책에 빠지는 몰입감은 이책이 더 좋았는데
하지만 정유정 작가의 최고작은
28이라고 생각해요

시이소오 2016-07-23 15:54   좋아요 0 | URL
사람마다 취향이 다 다르네요. 전 28은 화가나 책을 읽다 던져버렸던 슬픈 추억이 ㅋ

stella.K 2016-07-23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내일을 향해 쏴라> 보고 정유정의 책은 읽지 않습니다.
사람이든 책이든 첫 인상이 좋아야 다음에도 보고 싶고 그러는 건데...
근데 화가 많이 나셨나 봐요.
별 하나에 글도 좀 과격하시네요.ㅎ

어바웃 케빈? 거 엄마와 아들 이야기 나오는 거죠?
그 영화 정말 잘 만들었어요!

시이소오 2016-07-23 16:18   좋아요 0 | URL
저도 28보고 1818거리며 정유정책을 두번다시 읽으면 성을갈겠다 다짐을 했건만 닭대가리인지라 금세 또잊어버리고 읽었네요 ㅋ

맞습니다. 그영화. 어바웃 캐빈 한번 보는게 이소설 백 번 읽는것보다 나을듯 하네요^^

오거서 2016-07-24 21:06   좋아요 0 | URL
저도 28 읽었지만, 책을 읽고난 기분을 말하라면 책 제목을 다시 소리내서 읽어보라고 하고 싶어요.

시이소오 2016-07-24 21:05   좋아요 0 | URL
오거서님/ 저는 28 개 싸움하는데서 책을 던져버려서ᆢ 무슨 이유로 그렇게 소설을 읽다 화가 났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 ㅋ

오거서 2016-07-24 21:14   좋아요 0 | URL
저도 정유정 작가의 전작에 대한 호평을 듣고 신작을 기대감으로 읽게 되었지만 신작이 제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군요. 작가가 열심히 글을 썼을 테니 작가 탓을 하기보다는 나와 맞지 않는다고 여길 수 밖에요. 엽기, 호러물을 싫어하는 취향이라서요.

시이소오 2016-07-24 21:22   좋아요 1 | URL
오거서님/ 정유정 작가는 안 읽는게 나은 작가로 분류해야겠습니다. 바람직한 독자의 자세라 할 수 없지만 책이 너무 많아서요. ^^; 그렇게 마음먹다보면 신작이 나오더라도 흔들리지 않게되더라구요.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안 읽어요. 쓰레기 책들 까지 읽기엔 인생이 그렇게 길지가 않네요^^

이은 2016-07-23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님처럼 느낀바를 님처럼 쓸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에,
님의 글에 작품에 대해 답답했던 제 맘이 조금은 해소됩니다.

시이소오 2016-07-23 16:20   좋아요 0 | URL
이은님, 해소가 되신다니 저 역시도 해소가 되네요^^

지금행복하자 2016-07-23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유정책 7년의 밤인가를 보고 마지막이었던거 같아요 ㅠㅠ 아무리 극찬을 해도 재미있다고 해도 저는 재미없어서... 그래서 정말 안 좋아하는데.. . 이 책은 하도 시끌시끌해서 혹시 어쩌나 볼려고 빌려왔는데.... 역시나라는 건가요?
읽지 않았는데도 막 공감이 되요 ㅎㅎㅎ

시이소오 2016-07-23 17:38   좋아요 0 | URL
역시나에 몰빵이요ㅋ ^^

재는재로 2016-07-23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ㅇ7ㄴᆢㄴ

재는재로 2016-07-23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ㅇ7ㄴᆢㄴ

samadhi(眞我) 2016-07-23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유정은 「7년의 밤」에서 정점을 찍고 그 이후로는 매너리즘에 빠졌거나 뭐 그런 가 봐요. 「28」나왔을 때 작가 사인회 갈 뻔했다가 못 가고 그 책을 읽고는 안 가길 잘 했다 싶었어요. 그 책 읽고 난 뒤에 이 책은 기대도 안 했습니다. 「7년의 밤」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권해주지만요. 작가가 지나치게 배가 불렀나 봐요. 이 책이 워낙 많이 팔렸다고 하니...

시이소오 2016-07-23 19:25   좋아요 0 | URL
지나님 말씀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종의 기원도 7년의 밤, 우려먹기죠

차는 우려먹을수록 맛이 좋아진다는데

책은 반대인듯 합니다. 뭐든지 적당히 우려먹어야 ㅋ

이은 2016-07-23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생각해도 종의기원은 내용이 없어요.
그냥 없을 `무`의 줄거리라고 봐요.
그리고 살인이 일어나는 집의 구조를 이해하기 힘든 묘사방식과,
수영선수 출신이 갑자기 법조계로 진로를 바꾸는 것과,
만화에서 나오는 듯한 인물의 특성과,
도대체 형이 죽는 장소의 이해가 힘든 공간 묘사와,
아무리 사이코패스라 할지라도 최소한 살인에 대한 동기라도 있어야 함에도,
이 모든 것들을 저렴한 연결 방식으로 써 내려간점은 분명 소설의 가치를 심하게 깍아내버린다고 생각합니다.

시이소오 2016-07-23 21:55   좋아요 0 | URL
칠년의 밤을 다른식으로 쓰려한것 같아요. 성공한 과거에 매달리고 싶은 마음을 이해못하는건 아닌데 결국 매너리즘으로 가는 지름길을 질러가신 셈이죠

Jeanette 2016-07-23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7년의 밤 까진 좋았고, 28도 그럭저럭 좋았는데 이번 종의 기원은 별로에요.. 처음에 내 자신이 살인을 했구나에 도달하기까지도 넘 지루해서 열 번은 책 닫았다 폈다 한 것 같아요

시이소오 2016-07-23 21:57   좋아요 0 | URL
저도 전반부의 지루함을 어떻게 넘겼는지, 유진아, 부를때마다 작가에 대한 살의로 부들부들 떨었다는 ㅋ

지키미 2016-07-23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잘 가던 단골식당의 음식 맛이 조금만 바뀌어도 사람들은 바로 알 수 있듯이 독자들도 작가의 글이 변하는 것을 바로 아는듯해요. 다시 한 번 다음 작품을 기다려봐야겠죠

시이소오 2016-07-23 22:02   좋아요 0 | URL
정유정 작가는 칠년의 밤의 성공에 계속 취하고 싶은것 같은데, 전작을뛰어넘겠다는 의지가 전혀 안 보인다는점에서 다음 작품도 기대할게 없다는 게 아쉽네요 ^^;

클라우디우스 2016-07-25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유정작가님의 책중에서는 칠년의밤이 최고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종의기원 읽고있는중인데 진도가 더디게 나가서 책을바꾸어 크로노크루세이더 신장판을 읽어버렸습니다.ㅋ

시이소오 2016-07-25 00:58   좋아요 0 | URL
ㅋ 잘 하셨어요. 뒤로 가도 그닥 별다른 이야기가 없다는것만 염두해 두시길^^

람린아빠 2016-11-21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와 생각이 같으시네요^^
7년의 밤은 중상, 28은 짜증 대박, 종의 기원은 뭐 별 1개 주기도 아까울 정도...
극도의 매너리즘에 빠져 본인 하고 싶은 대로만 쓰는 작가는 책을 써서 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인만 보고...

시이소오 2016-11-21 09:14   좋아요 0 | URL
람린아빠님, 저보다 쎄시네요. ㅋ저도 28은 느무느무 짜증스러워 책을 던져버렸답니다.
 
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2권 - 6.25 전쟁에서 4.19 전야까지 한국 현대사 산책 4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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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년을 맞아, 절량농가의 규모가 더 확대된다.

 

절량농가는 이른바 입도선매에 내몰려 고통이 가중되었다. 당시의 입도선매란 농사를 짓기도 전에 미리 돈이나 곡식을 얻어다 쓰고 나중에 수확한 걸 고스란히 넘겨줘야 하는 비극적인 게임이었다. 정부는 입도선매 행위가 농민을 더욱 파멸의 길로 몰아넣는다는 판단에서 이를 강력히 단속하였다. 그러나 단속에도 불구하고 입도선매는 성행하였고, 결국 입도선매를 한 농민들은 농촌을 떠나 도시 빈민촌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

 

입도선매는 오늘날 신용카드를 떠올리게 한다. 혹은 카드론혹은 카드 돌려막기

 

인플래이션은 52년에 절정에 달해 정부는 대응책으로 215일 오전 6시를 기해 통화개혁을 실시한다. 원 단위 화폐 유통을 중지시키고 환 단위의 새 화폐로 교체한다. 1001로 평가절화되어 구화 100원에 신화 1환의 비율로 교환되었다.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국민들은 현금을 쥐고 있기 보다는 앞다투어 물건을 사들였다. 물건 값은 하루에 4배에서 15배까지 폭등했다.

 

120일 미국에서는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출범하고, 35일 소련에선 스탈린이 사망한다. 아이젠하워 정부는 한국에서 핵무기 사용을 검토한다. 한국에 핵무기를 사용할만한 전략적 목표물이 없다는 이유로, 아이젠하워는 핵무기 사용을 포기한다. 그러나, 513일부터 평양의 독산댐을 시작으로, 미국은 북한의 모든 댐을 폭격한다. 댐 파괴는 미국 선교사들의 아이디어였다. 브루스 커밍스는 이렇게 말했다.

 

원자탄은 삼갔지만, 미국은 또 다른 신무기인 네이팜탄을 공중에서 쏟아부어 불바다를 만들었으며, 나중에는 북한의 계곡들을 물바다로 만들기 위해 거대한 댐들을 파괴했다. 이는 한국전쟁의 가장 악랄한 측면으로, 이에 대해 쓰고 읽는 일 자체가 곤혹스럽다. 바로 이 때문에 200만 명 이상이라는 엄청난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다.”

 

강준만은 이승만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요구했고, 트루먼 정부나 아이젠하워 정부는 쳬결하지 않으려 했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너무 순진한 해석이 아닐까?

 

당시 국민들은 휴전 반대 시위를 벌였다고 하는데, 확실한 것은 국민들에게 휴전 찬성의 자유는 없었다. 휴전에 찬성하는 사람은 빨갱이로 몰려 쥐도 새도 모르게 학살 당할 수 있는 시기였다.

 

휴전 협정이 서명 절차만을 남겨 놓고 있던 618, 이승만은 반공 포로들을 일방적으로 석방해 버린다. 이승만의 방해질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소련은 휴전을 원했다.

 

712일 이승만의 바람대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다. 미국은 원하지 않았는데?? 이승만의 반공 포로 석방에 조병옥이 비난하자 이승만은 조병옥을 대통령 암살 음모 사건과 연계하여 육군형무소에 수감한다. 조병옥도 이승만 못지않게 극우 인사였거늘 이승만은 자신에게 대드는 자면 누구건 간에 빨갱이로 몰아 제거해 갔다.

 

빨갱이 잡는 사상 검사 선우종원도 장면 비서실장을 지낸 것이 죄가 되어 빨갱이로 몰렸다.

 

727일 정전 협졍이 조인된다.

 

브루스 커밍스와 존 할리데이는 한국 전쟁의 총 사망자 수는 300만 이상이 거의 확실하며 400만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총 인구 3천만이었던 나라에서 10분의 1이 사망한 것이다.

 

미군은 매일 500대에서 1500대의 폭격기와 전투기를 출격시켰고, 개전 후 19534월까지 26만발의 대, 중형 폭탄, 2억 여발의 탄환, 40만 발의 로켓탄, 150만 발의 네이팜탄을 사용하였다.

 

미 공군 폭격에 의해 북한은 모든 게 파괴되었다. 남은 것은 바위와 돌뿐. 초가집 한 채도 남지 않았다. 존 할리데이는 한국전쟁을 반공을 위한 전쟁이 아니라 반한을 위한 전쟁이었다고 말했다. 미 존슨 행정부 시절 법무장관을 지낸 반전, 평화주의자 램지 클라크는 한국 전쟁의 본질이 인종말살정책이었다고 주장한다.

 

유대인에 대한 독일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같은 맥락입니다. 우월한 백인 병사들이 열등한 유색인종 전체를 작전, 전투 대상으로 설정하고, 남과 북, 전방과 후방,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모두 살육했던 거죠. 그들의 목적은 한민족의 독립과 자유가 아니라, 미국이 아시아에서 가질 정치, 경제적 이익을 찾는 것이었으니까요.”

 

미국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세계 초강대 군사국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하게 굳힐 수 있었다. 전쟁동안 미군은 150만 명에서 350만 명으로 늘어났고 연간 군사 예산은 50150억 달러에서 53년에는 500억 달러로 팽창하였다. 국무장관 애치슨의 표현에 따르면, “한국 전쟁이 나타났으며 그리하여 미국을 살려주었다맥아더 역시 한국이 우리를 구원해주었다.고 말했다. 한국 전쟁을 계기로 전 세계는 경제 부흥의 기회를 맞았다. 가장 큰 수혜자는 일본이었다. 일본 수상 요시다 시게루는 한국전쟁을 신이 내린 선물로 평가하였다. 일본은행 총재 이찌마다 히사또는 우리 재계는 구원받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군은 모든 물자를 일본에서 조달했다. 수백만 장의 빨치산 토벌 투항 권유 전단까지 일본에서 인쇄했다. 일본이 그렇게 해서 벌어들인 특수 수입은 24억 달러에 이르렀다. 50년 경제성장률은 10.9%, 51년에는 13%를 기록했다. 51년 외화보유고는 94천만 달러에 이르러 미국이 대일 원조를 종료할 정도였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일본 국민은 경제제일주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55년 자민당이 결성되고 장기집권을 하게 된다. 일본사회는 우경화된다일본은 전범국가로서 응징을 받아야 했지만, 한국전쟁은 일본에게 축복이었다. 단지 일본은 운이 좋았던 것일까.

 

한국전쟁 때 골로 간다는 말이 생겼다. 좌우익을 막론하고 학살할 때는 주로 산골짜기로 데리고 가서 총살 또는 생매장을 했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램지 클라크에 따르면 미국에서 한국전쟁은 잃어버린 전쟁을 불린다. 그는 당시 3천만 인구 가운데 10%가 넘는 민간인이 몰살당한 전쟁을 국제사회가 잊어버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비극이라고 말했다.

 

한홍구는 말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왜 미국의 민간인 학살이 주목받지 못했는지 아십니까? 한국전쟁 때 죄 없는 민간인을 조직적, 의도적으로 살육한 그들이 역사를 쓰고, 교육을 하고, 미디어를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세계 양심세력들의 힘으로 잊혀진 전쟁기억해야 할 전쟁으로 되살릴 때입니다.” 

 

민간인 학살만큼이나 끔찍스러운 일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100만 명 가량의 희생자가 발생한 이 학살에 대해 우리 사회가 모르는 척하거나 정말로 모른 채 반세기를 보냈다는 점이다. 같은 하늘 아래 이런 엄청난 일들이 묻혀 있음을 애써 외면한 채, 또는 전혀 알지 못한 채 우리는 먹고, 마시고, 잠자는 일상의 삶을 살아왔다.. 수십만 명의 죽음을 50년간 외면해 온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는 학살 그 자체는 아닐지라도 학살 은폐의 방조자가 됨으로써 사람된 도리를 다 하지 못한 것이다.”

 


200274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위원회geonocide.or.kr는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 회관에서 ’2002 한국전쟁 전후 피학살자 유족 증언 대회를 열었다.

 

범국민위원회가 펴낸 <2002년 민간인 학살 총서>에서 범국민위원회 사무처장이자 성공회대 교수인 김동춘은 한국의 국가는 피학살자들을 세 번 죽인 셈이 된다.”고 말했다. 전쟁을 전후해 저질러진 학살이 첫 번째라면, 1960년대 당시 진상균명 요구를 탄압한 것이 두 번째였고, 유가족과 자식들을 모두 빨갱이로 취급해 1980년까지 연좌제로 묶어 탄압한 것이 세 번째였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들춰내는 것 자체가 반국가적 행동으로 탄압받아 왔기 때문에, 사실을 알고 있는 당사자는 생존을 위해 침묵했으며, 좌익 혐의를 받지 않으려고 계속 여당만을 지지해왔고, 그들 자식들은 오히려 연좌제등의 불이익을 당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리하여 생존자와 유족들은 자식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봉건시대 천형이 이와 같았을까?”

 

20035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통합특별법 쟁취 투쟁본부는 한국전쟁 때 억울하게 학살당한 민간인들의 넋을 위로하는 해원굿을 국회 앞에서 열었다. 투쟁 본부에 따르면, 전주, 강화, 거창, 고양, 구미, 나주, 단양, 문경, 사천, 산청, 순천, 여수, 연동, 제주, 진도, 포항, 함평 등에서 집단학살 증언이 이어졌으며 한국전쟁을 앞뒤로 학살당한 민간인 숫자가 100만명으로 추산된다고 했다.

 

20043월 국회는 한국전쟁 휴전 이전 학살 진상규명에 관한 통합 특별법안을 부결시켰다.

 

85일부터 포로 송환이 시작되었다. 유엔군 측은 송환을 희망한 공산군 포로 75823명을 돌려보냈고, 공산군 측은 12773명을 돌려보냈다. 전쟁 포로 88명은 남한도 북한도 아닌 중립국을 택했다. 북한군 포로 74, 남한군 포로 2, 중국군 포로 12명이었다.

 

최인훈의 <광장>은 당시의 중립국을 선택한 포로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승만 정권 치하에서는 발표될 수 없는 소설이었으나, 4.19 덕분에 가능했가.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쪽에 가두어 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그럴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르고 밀실에서 광란의 부르짖음이 새어 나온다. 우리는 분수가 터지고 맑은 햇빛 아래 뭇꽃이 피고 영웅과 신들의 동산으로 치장이 된 광장에서 바다처럼 우람한 합창에 한 몫 끼기를 원하며 그와 똑같은 진실로 개인의 일기장과 저녁에 벗어 놓은 채 새벽에 잊고 간 애인의 장갑이 얹힌 침대에 걸터앉아서 광장을 잊어버릴 수 있는 시간을 원한다.”

 

많은 국군 포로가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한국전쟁으로 득을 본 사람들은 누굴까. 한반도에선 이승만과 김일성이었다. 이승만은 남한에서 반공주의를 더욱 확고한 국가 이념으로 정립할 수 있었고, 김일성은 김일성 유일 제체를 반석에 올려 놓았다.

 

여전히 강준만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대해 미군은 원치 않았는데, 이승만이 요구한 걸로 기술한다. 세계사를 비춰보았을 때, 상식적으로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이런 전쟁통에 극장에서는 마릴린 먼로의 <나이아가라>, 오드리 헵번의 <로마의 휴일>이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다방도 늘어났다. 명동이 번성해지자 이후 충무로에 다방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친미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숭미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숭미주의의 선봉엔 이승만이 이었다. 미제 물건은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다. 아이들은 강냉이 가루, 우유 가루에 환장했다. 교회에 가면 맛볼 수 있었다. 미국 밀가루를 얻기 위해 교회에 가는 밀가루 신자들이 속출했다. 기독교는 또한 반공의 보증수표였다. 남한 교회들은 북한을 사탄’, ‘마귀’, ‘악마로 표현했다. 북한 교회들은 미군을 악마로 표현했다. 반공은 친미였고 친미는 곧 친기독교를 뜻했다.

 

일본의 비교문화 정신의학자인 노다 마사아키는 일본의 패전 후 일본인에게는 바꿔치기에 의한 물질주의가 범람했다고 말한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쟁을 통해 기존 신분제는 폐지되었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낳았다. 사람들은 주로 파벌을 짓기 시작한다. 전쟁 직후, 혈연, 지연, 학연으로 구성된 조직들이 급속히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전쟁 후, 사람들은 달라졌다. 석달 동안 피난을 마치고 돌아온 권정생은 이렇게 말했다.

 

서로 믿고 얘기를 나눌 이웃이 없어진 것이다. 형제끼리도 사촌끼리도 사돈간에도 입을 다물고 지냈다. 마을 남자들 중엔 모병으로 국군이 되기도 하고 인민군 의용군으로도 갔다. 토벌대로 가기도 하고 공비가 되기도 했다. 그 어느 쪽도 본인 의사와는 다르게 서로가 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살벌한 분위기는 여자들과 아이들한테도 미치게 되었고 가치관의 혼란은 그 당시 우리들의 정신 성장에 커다란 장애가 되었다. 흰색도 검다고 가르치면 그냥 검은색으로 따라 배워야 했고 고양이가 개로 둔갑하는 세상이었다. ”

 

극단주의 문화는 위험을 무릅쓰는 문화를 창출했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온 피난민은 300만 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어느 지역을 가든지 경찰과 우익 청년단원들에게 빨갱이 색출심사를 받아야 했다. 월남인에게 반공은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었다. 한편 월북자 가족들 역시 연좌제를 넘어 국가권력의 일상적 감시와 시달림 마저 받아야 했다.

 

53년의 3대 히트 가요는 <굿세어라 금순아>, <꿈에 본 내 고향>, <이별의 부산 정거장>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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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7-22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현대사는 알면 알수록 끔찍하군요. 역사 교과서를 악착같이 개정하려고 한 박근혜가 이해갑니다...

시이소오 2016-07-22 15:39   좋아요 0 | URL
알면 알수록 끔찍하다는 말씀이 박히네요^^;

2016-07-22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7-22 16:10   좋아요 0 | URL
아, 봐야겠네요. 추천해주셔 감사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6-07-22 1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월남전에서 악랄했던 네이팜탄이 이미 한국전쟁에서 사용되었군요..오늘의 전쟁은 내일 전쟁의 연습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시이소오님^^

시이소오 2016-07-22 16:20   좋아요 3 | URL
저도 한국전에서 세균전을 벌이고 네이팜탄을 썼다는걸 이 책 읽고 알았네요.
네이팜탄으로 북한 땅은 거의 초토화 됐더군요.

저도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님도 즐거운 주말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