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저녁을 잘 먹고 소화 안 되는 기사를 읽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미술평론가 아서 단토의 신작이 출간된 건 반갑고, 게다가 그 책이 지난달에 기대를 표한 <앤디 워홀>(2009)이라면 놀라울 정도인데, 정작 '번역서'라고 나온 <앤디 워홀 이야기>(명진출판, 2010)는 엉뚱하게도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의 하나로, 앤디 워홀의 전기를 소설처럼 꾸며서 간추린 책이다.   

 

청소년들에게 21세기가 원하는 롤모델을 소개시켜주는 '청소년 롤모델' 제10권 '앤디 워홀 이야기'. 미국 원로 미술평론가이자 예술철학자 아서 단토가 일상과 예술, 그리고 산업 사이를 가로막는 벽을 허문 '팝 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의 창조적 인생 속으로 청소년들을 초대하고 있다. 류머티즘 무도병으로 인해 병약했으나 특유의 예술 세계의 바탕을 다져간 어린 시절부터 따라간다. 특히 앤디 워홀의 인생 속에는 21세기를 움직이는 가장 핵심적 가치인 '다양성'과 '컨버전스'가 생생하게 살아숨쉼을 보여준다. '멀티 플레이 창조인'을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롤모델이 되어줄 것이다. 앤디 워홀은 자신이 사는 자본주의 시대에 걸맞게 예술과 비즈니스를 적극적으로 결합하여 상업미술가이자 순수미술가로서 성공을 거두었다. 스스로를 '예술 공장 공장장'이라고 부르면서 회화부터 영화까지 풍부한 예술 작품을 남겼다.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도 부수어내, 평범한 사람들도 그것을 마음껏 향유하도록 인도했다. 특히 코카콜라 병마저도 예술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등 평범한 것을 예술로 승화시켜 새로운 것으로 창조시켰다.(아시아경제) 

일단 이런 소개기사에서 "미국 원로 미술평론가이자 예술철학자 아서 단토가 일상과 예술, 그리고 산업 사이를 가로막는 벽을 허문 '팝 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의 창조적 인생 속으로 청소년들을 초대하고 있다"는 말은 '작문'이거나 '거짓말'이다. 원저의 서문을 읽어보니(물론 번역본엔 번역돼 있지도 않다) 단토는 그런 걸 의도하지도 않았다. 여러 훌륭한 전기를 토대로 자신의 예술철학에 영감을 준 워홀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하는 것이 책의 취지다.  

그렇게 해야 '팔리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정식으로 원저자와 판권계약을 한 책인지, '아서 단토 지음'이란 말은 무슨 의미인지 궁금하다. 편집자주에 따르면, "원저작물에 어려운 부분이 많아 엮은이를 따로 두었"다. 차라리 편집자를 '저자'로 해서 책을 냈으면 훨씬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어차피 원저와는 관계가 없는 책이니까. 청소년 롤모델로서 '앤디 워홀'이 불만스럽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런 책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고, 나는 말릴 생각이 전혀 없다. 하지만 불만은 왜 엉뚱한 저자의 책을 망쳐놓느냐는 것이다(정식 계약을 한 책이라면, 단토의 이 책은 다시 번역될 수 없다. 최소한 수년간은). 이런 게 출판의 '롤모델'인가?  

기대했던 책이 어이없게 출간돼 더없이 불쾌하다... 

10. 0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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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4 2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4 20: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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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4 20: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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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4 22: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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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4 22: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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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4 22: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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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4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4 22: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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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4 23: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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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10-08-15 17: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들만 있어서 이어지는 내용이 더 궁금해졌어요!

로쟈 2010-08-15 17:13   좋아요 0 | URL
몇분이 비밀글로 달아놓시는 바람에 저도...

미미달 2010-10-24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작을 읽어보지 않아서 확실한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처럼 꾸민것은 아니구요. 그냥 간추리기만 했습니다. 차라리 소설같았으면 재미라도 있었겠지요. -_-;ㅋ
 

불확실성이 지배적인 시대라곤 하지만, 출판분야는 좀 예외적이어서 올해의 최고 베스트셀러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문학동네, 2010)가 될 거라는 걸 누구라도 알 수 있다. 또한 그에 버금하는 책으로 인문분야 최고의 화제작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 2010)가 될 거라는 것도. 이미 30만부 이상 판매됐다고 하니까 아무튼 당분간 깨지기 힘든 '기록'을 세우게 될 듯하다.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그 샌델이 한국에  온다. 실상은 그의 두 번째 방한이지만, 베스트셀러 저자로서의 감회는 새로울 듯하다.    

최근 국내 서점가에 인문서 열풍을 몰고온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의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5천명 한국 독자와 만난다. 아산정책연구원(원장 함재봉) 초청으로 다음주 방한하는 샌델 교수는 20일 저녁 7시 경희대 평화의 전당(4700석 규모)에서 강연을 한다. 19일 오전 10시에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기자간담회도 갖는다. 20년 연속 하버드대 최고 명강의로 꼽히는 샌델 교수의 강연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로, 7월 26일~8월 3일까지 선착순으로 신청을 받았다.

30년간 샌델 교수가 하버드대생들에게 강의했던 '정의' 이야기를 담은 '정의란 무엇인가'는 5월 24일 출간된 후 3개월 여만에 32만부(8월 12일 기준)가 판매됐다. 한국출판인회의가 집계한 8월 둘째주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전국 온,오프라인 서점 10곳 판매부수 종합)에서도 무라카미 하루키 장편소설 '1Q84'(문학동네) 3권에 이어 2위를 기록 중이다.(노컷뉴스)

 

첫 번째 방한시의 강연을 모은 책이 <공동체주의와 공공성>(철학과현실사, 2008)이지만 이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 바람'을 전혀 타지 않았다(놀라울 정도다!). 한 문학평론가는 그래서 그의 강연 모습을 담은 표지 이미지가 오히려 샌델이란 고유명사나 그의 얼굴 사진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게 아닌가란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원서의 이미지와 비교하면 마케팅의 한 축으로 고려했음 직하다는 게 억지는 아니다. 그 샌델의 책이 한 권 더 나왔다. '유전학적으로 완벽해지려는 인간에 대한 반론'이 부제인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동녘, 2010).  

이번엔 독사진이긴 하지만, 저자의 이미지를 조금 더 키웠다. 물론 강연하는 모습이고,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라는 사실도 부각시켰다. 책이 어떤 반응을 얻을지 궁금하다. '생명의 윤리'란 타이틀을 달고 나온 책 가운데서는 가장 많이 나갈 듯싶지만, '윤리'란 말의 '저항선'도 만만찮기 때문이다('윤리'는 '정의'와 다르다!).   

개인적으론 샌델의 강연에 갈 계획이 없지만,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는 바로 읽어볼 마음이 있다. 내가 같이 떠올린 책은 자유주의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의 <생명의 지배영역>(이화여대출판부, 2008). 대학출판부에서 나온 책답게 <공동체주의와 공공성>보다도 덜 주목받은 책이다(이런 경우 저자의 지명도는 거의 '제로'다). 그리고 역시나 같은 '다산 기념 철학 강좌'의 초청으로 방한 강연을 했던 피터 싱어의 강연집 <이 시대에 윤리적으로 살아가기>(철학과현실사, 2008). 샌델이 2006년, 싱어가 2007년 초빙 연사였다. 싱어의 네 차례 강연은 윤리적 문제의 본질, 세계화의 윤리, 동물해방의 윤리, 생사판정과 관련한 생명윤리 등을 다루고 있다. 샌델의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와 초점이 겹치는 대목이 있을 듯하다.  

그리고 한 권만 더하자면, 하버마스의 <인간이라는 자연의 미래>(나남, 2003). 독일 사회철학의 거장이 "'생명윤리'의 문제와 더불어 생명공학(또는 유전공학)의 발전이 제기하는 윤리적, 도덕적 문제를 심층적으로 살펴본 책"이다. 모두가 대중적으론 별로 주목받지 못한 책들인데, 샌델의 책이 이 주제의 독서경험을 확장해보도록 부추길지도 모르겠다. '마이클 샌델 붐'이란 게 있다면, 거기에서 내가 기대하고 싶은 건 그것이다...  

10. 0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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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8-16 17:45   좋아요 0 | URL
함재봉 씨가 초청했군요.랜드 연구소에 있었는데 국내에 자리를 잡았네요.한국의 대표적인 매파 보수논객이지요.샌델 씨는 함재봉 씨가 쓴 시위대처법에 대한 논문을 정의론의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해집니다.

로쟈 2010-08-16 20:06   좋아요 0 | URL
예전엔 '유교 자본주의론'을 주장/지지한 걸로 기억하는 데요. 함재봉씨가 매파면 조갑제옹 같은 양반은 어떻게 분류를 해야 할까요?..

노이에자이트 2010-08-16 23:17   좋아요 0 | URL
조갑제 씨는 거리의 전사가 되었고 실제로 정부에 대한 영향력은 함재봉 씨 쪽이 더 나을 겁니다.경찰청 쪽에서 의뢰받아서 함씨가 쓴 논문이 '광우병 괴담의 정보적 특성분석과 대비책에 관한 연구'인데 보수여론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지요.보수신문들에서 이 논문의 내용을 크게 소개했습니다.

푸른바다 2010-08-17 10:13   좋아요 0 | URL
함재봉씨가 초청했다기 보다는 정몽준이 초청하고 함재봉씨가 실무를 맡았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언론에도 정몽준이 초청한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아산정책연구원은 정몽준이 운영하는 사설연구소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그의 대선 준비를 위한 연구소가 아닐까 합니다.

함재봉은 전두환의 비서실장을 지낸 함병춘의 아들입니다. 함병춘은 동서양의 정치사상에 정통한 인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그는 박정희 정권과도 협력했고 전두환의 비서실장까지 지냈으니 그의 성향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는 동서비교정치철학의 전문가였는데 그의 '지식'을 독재정권의 이론적 정당화에 활용했습니다.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발상이 그의 정치철학과 부합되는 면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아웅산 사태시 사망했는데, 불행하게 사망한 그의 유업을 장남인 함재봉이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함재봉이 지금은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과거 박정희의 정치철학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는 연구를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함재봉이 유교존재론을 들먹이며 서양정치사상을 비판하고 우리가 부정적으로 논하는 가치들, 예를 들어 인맥 등등을 정당화하는 것을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보수들은 철학이나 이론이 없다고 쉽게 생각해 버리지만, 박종홍, 함병춘-함재봉으로 이어지는 계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은 좌-우를 통털어서 공부를 많이했던 것으로는 국내에서는 최고였던, 최고인 사람들입니다. 섵부른 폭력적 보수에서 이들의 이론을 바탕으로한 보다 성숙한 '한국적 보수주의'가 탄생할런지도 모르지요...

정몽준이 자신의 연구소에 '아산'이라는 이름을 붙힌 걸 보면 아버지를 계승할 생각이 있기는 있는 모양입니다.^^ 그의 반북 이데올로기는 소떼를 몰고 방북한 아버지 정주영의 '실천'과 부합되지 않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8-17 17:35   좋아요 0 | URL
함병춘 씨는 반대진영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은 인물로 알려져 있지요.예절바른 신사였다고 합니다.제 생각에는 학자로서 좀더 남아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이른바 품위있는 보수랄까...함재봉 씨에 관해서는 그가 유학 마치고 국내에 왔던 초창기 김용옥과 함께 일하기도 했지요.그때부터 유교사상이 우리나라에 도움도 되었다는 이론을 제시했는데 강준만이 <인물과 사상>에서 그런 점을 지적하기도 해서 알려졌습니다.

요즘은 촛불시위에 대한 논문도 그렇고 전형적인 보수 이데올로그로 활약할 듯 싶습니다.그런데 정몽준씨와 잘 어울릴까 약간 의구심도 드네요.
 

이번주에 나온 가장 '묵직한' 책은 막스 베버의 사회학 고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길, 2010)이다. 출간은 예고된 것이긴 한데, 해제와 역주가 원서의 두 배가 넘는 '정본 주석판'이다(일반 독자를 위해서는 조금 더 저렴한 보급판이 나오면 좋겠다). 책은 아직 입수하지 못했지만 '올해의 번역서' 후보로 올려놓음직하다. 흠, 이런 책은 황석영의 <강남몽>(창비, 2010)과 같이 읽어줘야 하나(한국 자본주의의 정신을 낳은 '윤리'는 무엇이었나?)...  

한겨레(10. 08. 14) 금욕주의, 자본주의의 정신적 힘이었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사진·1864~1920)의 주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하 ‘윤리와 정신’)이 베버 전공 사회학자 김덕영 독일 카셀대 교수의 번역으로 새로 나왔다. 이번에 출간된 <윤리와 정신>은 200자 원고자 850장에 이르는 상세한 옮긴이 해제와 방대한 역주를 거느리고 있어 분량이 원서의 두 배가 넘는다. 전공 학자가 자신의 학문적 역량을 총동원해 이루어낸 고전 번역이자 우리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꼼꼼한 주해 작업의 모범적 사례로 꼽힐 만한 작업이다. 옮긴이는 이와 함께 베버의 후속 연구논문인 ‘프로테스탄티즘의 분파들과 자본주의 정신’도 번역해 보론으로 실었다.  



베버는 흔히 현대 사회학의 창시자로 거론되지만, 대학 시절 그의 전공은 법학이었고 강단에서는 법제사와 경제사를 동시에 가르쳤다. 생애 말년에야 뮌헨대에 사회학 교수로 부임했으나, 이때에도 경제사·경제학 교수직을 겸했다. 말하자면 베버의 학문은 학제간 연구를 통해 발전했으며, 인문·사회과학을 포괄하는 통합과학의 성격을 띠었다. 그의 얼굴과도 같은 저작인 <윤리와 정신>이 바로 그런 통합과학적 연구의 결과물이다. 베버는 이 저작에서 신학·경제학·역사학은 말할 것도 없고 철학·문학·문헌학·심리학 같은 여러 학문의 도움을 받아 이론의 건축물을 세웠다.

이 책은 제목이 알려주는 대로 근대 자본주의 정신이 형성되는 데 프로테스탄티즘이라는 금욕적인 종교적 이념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추적해 밝히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근대 자본주의의 발흥을 가져온 시민계급의 엄격한 직업정신이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밝히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인 셈이다.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주의 윤리가 시민계급의 직업정신을 낳았다고 베버는 말한다.

눈여겨볼 것은 이 책의 주제어 가운데 하나인 ‘자본주의’에 관한 베버의 독특한 생각이다. 베버는 자본주의가 “우리 근대인의 삶의 운명을 가장 강력하게 결정하는 힘”이라는 일반적인 관념을 논의의 전제로 삼는다. 그러나 그는 자본주의를 영리욕이나 화폐욕과 동일시하는 통념에는 단호하게 반대한다. “영리욕, 이윤 추구, 화폐 취득, 그것도 가능한 한 많은 화폐 취득을 추구하는 것 자체는 자본주의와 전혀 상관이 없다.” 베버는 자본주의를 ‘탐욕’ 자체와 동일시하는 관점을 ‘천진난만한 것’이라고 규정한다. 자본주의는 “오히려 이런 비합리적인 충동의 억제, 또는 적어도 합리적 조절과 동일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무제한의 탐욕을 동력으로 삼아 나아가는 체제라기보다는 그 탐욕을 합리적으로 억제하고 조절하는 체제라는 것이 베버의 관점이다.  

이 책에서 단적으로 베버가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의 주체로 지목하는 것이 칼뱅주의와 거기서 발전한 영국의 청교주의(퓨리터니즘)다. 중세 가톨릭에 대항해 기독교를 개혁한 사람이 마르틴 루터(1483~1546)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베버는 개념사 연구를 통해 루터가 근대적 의미의 ‘직업 개념’을 창출했음을 밝힌다. 루터는 기독교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베루프’(Beruf, 영어 calling)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 단어는 ‘직업’이라는 뜻과 ‘소명’이라는 뜻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직업이 신의 소명, 부르심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직업 정신이 바로 근대 자본주의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베버는 루터주의 안에 가톨릭의 전통적인 관념이 남아 있었다고 말한다. 루터주의는 중세 가톨릭의 세계관과 완전한 단절을 이루지 못했다.  

장 칼뱅(1509~1564)의 ‘예정론’에 와서야 가톨릭의 전통적 관념이 완전히 씻겨나갔다. 누가 구원받을지 누가 버림받을지 이미 영원으로부터 예정돼 있어서 그 어떤 노력으로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이 칼뱅의 예정론이다. 이 예정론이 초래한 심리학적 결과는 “각자 개인이 직면하는 전대미문의 내적 고독감”이었다고 베버는 말한다. “종교개혁 시대의 인간들은 영원으로부터 확정된 운명을 따라 고독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무도 그들을 도와줄 수 없었다.” 설교자도, 성례전(성찬식·세례식)도, 교회도 도울 수 없다. “심지어 신조차도 도울 수 없다.” 처음부터 결정된 것을 신이 뒤늦게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칼뱅주의와 루터주의의 차이점이었다. 루터주의는 교회에 가고 예배를 봄으로써 구원받을 가능성을 열어 놓았으나, 칼뱅주의는 이 구원의 문을 닫아버렸다. 여기에서 베버 사회학의 핵심적 개념인 ‘세계의 탈주술화 과정’이 등장한다. 인간이 주문·기도·예배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주술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세계의 탈주술화 과정’이다. 베버는 이 과정이 헬레니즘 시대의 과학적 사고와 더불어 진전되다가 마침내 칼뱅주의에 이르러 완결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진정한 청교도들은 심지어 장례식에서도 일체의 종교적 의식의 흔적을 배척했다.” 구원과 저주가 태초에 정해졌기 때문에 인간의 어떠한 노력도 간청도 쓸모없다는 생각에서 주술적인 사고와 행위를 모조리 거부했던 것이다.

이런 예정론적 사고방식이 낳은 결과가 투철한 직업윤리와 노동윤리였다는 것이 베버의 통찰이다. 신의 소명, 곧 직업에 헌신하여 이윤을 얻고, 이 이윤을 조금도 낭비하지 않고 계속 사업에 재투자함으로써 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이 세상 사람들이 할 일이라는 것인데, 이를 통해 칼뱅주의자들은 신의 은총을 확신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근면한 노동과 금욕주의적 생활의 결과인 이윤 획득과 사업 번창이 신의 구원을 확증해주는 주관적인 근거였다. 바로 여기서 자본주의 정신이 형성됐다고 베버는 말한다. 수도원 담장을 넘어 세속으로 나온 금욕주의가 바로 자본주의를 밀고나간 정신적 힘이었던 것이다.(고명섭 기자) 

10. 08. 14.  

P.S. 역자 김덕영 교수에 대한 소개와 인터뷰도 덧붙인다.   

김덕영(52) 교수는 베버와 인연이 깊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읽었던 그는 베버에 대한 호기심에 끌려 사회학과를 택했다고 한다. 독일로 유학을 떠난 것도 베버를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이 가장 큰 이유였다. 1993년 독일 괴팅겐대학에서 베버 사회학에 대한 지성사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5년 뒤에는 카셀대학에서 ‘막스 베버와 게오르크 지멜 비교 연구’로 하빌리타치온(독일 대학교수 자격)을 획득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베버를 연구했던 그는 비교 연구 대상이었던 지멜의 책들은 여러 권 번역했지만, 베버 책 번역은 계속 외면했다고 한다. 1999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번역을 제안받았을 때도 대답은 “할 수 없다”였다. “이 책을 번역하기에는 나의 지적 훈련에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범주가 ‘신학’인데, 그 분야에 대해 거의 공부가 돼 있지 않았던 것이다. 김 교수는 결국 뒤늦게 다시 신학 공부를 시작했고, 2007년쯤에는 이 책의 번역에 도전할 만큼 루터 이후 서구 기독교 신학에 익숙해졌다고 한다.

김 교수는 베버의 이 책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여러 종의 영어 번역본과 프랑스어 번역본을 참고했는데, “결정적인 문제에서 영어 번역본에 의존하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적이 여러 번 있었음”을 고백했다. 중요한 개념이 엉터리로 번역돼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 체험을 통해서 “외국의 지식을 수용하고 번역하는 경우에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원어로 해야 한다”는 평소의 생각을 다시 확인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진정한 학문으로부터 배제하고 소외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영어로 된 ‘Max Weber’를 수용하고 번역하면 ‘맥스 웨버’는 논할 수 있을지 몰라도 ‘막스 베버’는 논할 수 없을 것이다. 곧 영어화되고 미국화된 베버 논의에 머물 뿐 진정한 의미의 베버 논의는 불가능할 것이다.”

김 교수는 이 책을 번역한 동기가 “고전 번역을 통해 우리 문화자본을 축적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그는 이 책이 한국 사회의 자기 성찰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랐다. 한국 자본주의가 ‘천민자본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이 책에서 찾아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요컨대, 이 책은 실천적 측면에서 한국 사회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역자의 교수자격취득논문 ‘막스 베버와 게오르크 지멜 비교 연구’가 아마도 <짐멜이냐 베버냐?>(한울, 2004)의 바탕인 듯싶다. '베버리언'으로서의 면모는 평전 <막스 베버, 이 사람을 보라>(인물과사상사, 2008)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베버에 대한 조금 다른 시각의 비판을 담은 책으론 키어러 앨런의 <막스 베버의 오만과 편견>(삼인, 2010)도 참고해볼 만하다(내가 반경 2미터 내에서 한달 넘게 못 찾고 있는 책이다).   

막스 베버와 뒤르켐, 마르크스 등 고전 사회학자들의 자본주의론을 비교한 책으론 앤서니 기든스의 <자본주의와 현대사회이론>(한길사, 2008)이 요긴하겠다. 특히 뒤르켐과의 비교는 지식인마을 시리즈의 <뒤르켐 & 베버>(김영사, 2007)도 참고할 수 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까지 정본 번역이 나오니까 욕심이 나는 것은 뒤르켐의 <자살론> 번역이다. 번역본이 없지는 않지만, 결정판이라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뒤르켐 전공자들이 '자존심'을 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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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4 13: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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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4 17: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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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5 00: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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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6 22: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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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6 15: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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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10-08-17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믿을 만한 번역본이 나왔군요. 문예출판사 본을 갖고 있었는데, 김덕영 번역본을 구매하게 되면 비교해 볼 수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론 <프로테스탄트..>가 중요한 참고문헌이긴 하지만 어마어마한 아우라를 가진 고전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외국의 지식을 수용하고 번역하는 경우에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원어로 해야 한다”는 말에 원칙적으로는 동의하지만 '어떠한 일이 있어도'라는 말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리스어를 몰랐고 많은 경우 아랍어에서 중역한 아리스토텔레스를 읽었지만 그의 아리스토텔레스 이해를 무시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독일관념론을 중요한 전거로 삼았던 프랑스 현대철학자들이 과연 독일 관념론에 대한 '문자 그대로의 이해'에만 치중했다면 실존주의-구조주의-후기구조주의로 이어지는 창조적인 탐구가 가능했을지도 의문입니다. 독일 관념론의 창조적인 '오독(?)'이 프랑스 현대철학이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물론 독일의 관념론도 대륙합리론과 영국 경험론의 창조적인 오독일 수도 있겠지요.^^ 같은 나라에서도 하이데거는 후설의 현상학을 오독했고, 아도르노는 벤야민을 오독했지요. 지젝의 철학도 헤겔-마르크스-라캉의 창조적 오독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물론 '정확한 읽기'는 학문적 깊이와 창조적 사고의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전자가 후자를 바로 담보해 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할 필요도 없이 이러한 단순한 원리는 대부분 알고 계시지만 전자에 매몰되서 후자를 망각하는 경우가 종종있는 듯 합니다...

영어가 아닌 언어로 된 고전의 번역본에 상투적으로 붙는 이야기 중의 하나가 '영어본에 오류가 있다'인데 이도 너무 과장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어로 된 것을 직접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제어인 영어본을 통한 이해로도 충분히 깊이있는 학문적인 논의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영어본과는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정도가 족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로쟈 2010-08-17 10:00   좋아요 0 | URL
네, 철학사의 오독/오해에 대해선 지젝이 지적한 바 있죠. '정독'이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번역관계로 보자면 의미의 변형을 포함하지 않는 번역이란 불가능한데다 무의미한 것인데요. 문제는 생산성이죠. 얼마나 멀리 가느냐는. 못난 부모에게서 잘난 자식이 나왔다고 자식을 탓하는 건 기이한 일이겠죠. 넌 부모를 '오독'했어?...
 

<이것이 인간인가>와 <주기율표>의 작가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소설이 번역됐다. <지금이 아닌면 언제?>(노마드북스, 2010). 알려진 대로 레비는 아우슈비츠 생존작가이며 지난1987년 자살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는 1982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그의 저작 가운데 개인적으로 기다리고 있는 책은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1986)이다. 2008년에 다른 아우슈비츠 작가들과 엮어서 마이리스트를 만들어놓은 적이 있는데, 이번 기회에 프리모 레비만을 위한 리스트를 따로 만들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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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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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아니면 언제?- 투신자살한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장편소설
프리모 레비 지음, 김종돈 옮김 / 노마드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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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Not Now, When? (Paperback, Reprint)
Levi, Primo / Penguin Classics / 199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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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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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8-14 00:48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를 로쟈님이 소개해 주신 <생존자>와 함께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그 극한의 체험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리는 그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어요. 주기율표가 어떤지 궁금합니다.

로쟈 2010-08-14 11:10   좋아요 0 | URL
덜 인상적이지 않습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08-14 11:22   좋아요 0 | URL
돌베개에서 다음 달에 <휴전>을 발간한다고 하던데요. 이 책 기다리다 중간에 <지금이 아니면 언제?>가 발간되어 무척 반갑습니다^^

로쟈 2010-08-14 11:31   좋아요 0 | URL
반가운 소식이네요. 이 리스트는 내달에 한번 더 써먹어야겠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9-13 22:20   좋아요 0 | URL
<휴전>이 출간 되었네요. 구입해 읽어 보렵니다^^

로쟈 2010-09-14 13:31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어제 알았습니다.^^

lo초우ve 2010-09-14 22:09   좋아요 0 | URL
저도 로쟈님께서 소개해주신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열흘에 걸쳐 다 읽었답니다.
금방 이삼일이면 읽을듯 생각했는데..
제가 겁이 많거든요 ^^
이 책 읽으며 얼마나 많이 놀랐는지..
정말 잔인 그 자채더라구요
어찌 말로 다 표현을 하겠는지요.
그저 한숨만 나옵니다.
휴~~~~~~~~~ ㅡ,.ㅡ;;

 

집안일로 지방에 다녀왔다. 직행버스를 타고 올라오는 길에 들른 대천휴게소에서 잠시 바람에 실려온 바다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올여름 바다와의 '인연'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일 듯싶다. 하긴 가뭄과 산불로 '생지옥'이라는 모스크바에서 '휴가'를 보내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는지 모른다. 내일자 리뷰기사들을 보다가 <하버드, 철학을 인터뷰하다>(돌베개, 2010)의 오역 지적이 기사화된 걸 읽었다. '인문학 가뭄'으로 편집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출판계 현실을 문제 삼고 있다. 역자와 출판사쪽에서 번역을 재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으로 '번역시비'는 일단락짓는다.  

경향신문(10. 08. 14) ‘인문학 가뭄’이 부른 오역 홍수

묵직한 인문·사회과학서를 전문으로 내고 있는 한 출판사는 지난해 말쯤 외국 유명 학자의 두툼한 책을 번역해 출간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어느 전문가가 원서와 대조해서 읽고 번역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것이다. 번역자는 대체로 이 지적들을 수긍했다.

일부를 고치는 수준이 아니라 번역문을 전체적으로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남아 있는 책들, 그리고 이미 팔린 책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초판을 적게 찍긴 했지만 재고가 꽤 많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출판사는 재고를 폐기하고 품절시켰다. 그리고 이미 팔린 책들은 구매자를 파악해 새로 책이 나오면 교환해 주기로 약속했다. 다행히 인터넷 서점을 통해 팔린 경우가 많아 서점을 통해 구매자를 찾는 데는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이 출판사 관계자는 “적지 않은 부담이었지만 그간 쌓아온 출판사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당연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인문학 전공자의 층이 엷어지면서 심도 있는 책들을 번역할 사람도, 교정·교열 및 편집 능력을 제대로 갖춘 출판 편집자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특히 출판사들이 편집자들에게 전문성보다는 ‘실적’을 강조하는 문화가 정착되고 편집자들의 이직이 잦아지면서 당연히 걸러졌어야 할 오·탈자나 비문, 오역이 방치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다른 출판사의 편집주간도 비슷한 얘기를 했었다. “편집진이 자주 교체되고 젊어지면서 예전의 꼼꼼함과 치열함이 덜하다고 여겨지는 건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가진 고민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눈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번역에 관한 시비가 또 붙었다. 활발한 강연과 저술·번역, 그리고 날선 비평으로 유명한 철학자 강유원씨가 다른 한 명의 공역자와 번역해 최근 출간한 책에 여러가지 오류가 있다는 지적이 공개적으로 제기된 것이다. 전부터 오역 사례를 많이 지적했던 서평가 ‘로쟈’는 이 책을 원문대조해 곳곳에서 문제점을 찾아냈다며 그 내용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강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그가 지적한 것 중에서 명백한 오역은 쇄를 거듭할 때 고치려 한다”고 밝혔다. 몇몇 문장은 고치겠다고도 했다. 이 책을 출판한 돌베개출판사 역시 “강씨가 번역문을 재검토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오자와 탈자, 비문 등은 책이건 신문이건 활자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로선 숙명과 같은 것이다. 아무리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인간인 이상 오·탈자와 비문은 발생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번역 역시 마찬가지다. 굵직한 번역서가 나올 때마다 의역이네, 직역이네, 오역이네 하는 시비가 붙곤한다. 이 또한 번역서의 숙명이라면 숙명이다.

특정인과 특정 출판사를 면박주고 싶은 뜻은 결코 없다. 번역자와 편집자가 나눠질 책임의 무게도 저울질 해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이 이야기되고 곱씹어져야 하는 것은 앞서 소개한 우려 때문이다. 오죽하면 과거 이윤기씨로 하여금 <장미의 이름> 개역판을 내도록 만든 ‘고수’인 강씨와 차분하게 질좋은 책을 만든다는 평가를 받는 돌베개의 만남에서마저 이런 일이 벌어졌느냐는 안타까움과 우려 말이다.(김재중 기자) 

10. 08. 13.  

P.S. 참고로 기사의 서두에서 언급된 책은 짐작에 조반니 아리기의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길, 2009)일 텐데, 공개적인 리콜이 이루어졌던 것일까? 내가 갖고 있는 초판본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아봐야겠다(나는 알라딘을 통해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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