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기념해야 할 연도로 <종의 기원>이 출간된 1859년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을 꼽고 있었지만, 이번주 '뉴스위크(한국판)'를 보니 표지 타이틀이 "베를린 장벽괴는 '1979년 4대사건'이 블렀다"이다. 4대사건이란 덩샤오핑의 미국방문, 대처리즘의 태동, 호메이니의 '이란혁명' 그리고 소련의 아프간 침공 등이다. 이 기사 덕분에 나대로 환기하게 된 사실은 '이란 혁명'과 '아프간 침공'에 대한 책이 드물다는 것.     

뉴스위크의 기고자는 <돈의 역사>를 쓴 하버드대학 역사학 교수 닐 퍼거슨인데, 그에 따르면 1989년은 1979년에 비해 역사적인 비중이 떨어진다. 우리시대의 진정한 추세(중국의 부상, 이슬람의 과격화, 시장 원리주의의 성쇠)는 이미 그 10년 전에 시작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요지는 "진정한 혁명은 1979년에 시작됐다!"이다. 그의 주장을 좇는다면, 우리는 "우리시대의 진정한 추세"에 대해 절반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대해선 이웅현의 <소련의 아프간 전쟁>(고려대출판부, 2001)이 유일한 참고문헌인 듯싶지만 품절됐고, 이란 현대사와 이슬람 혁명에 대해 자세히 다룬 책도 거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건 유흥태의 <이란의 역사>(살림, 2008)란 문고본이 전부다(물론 범위를 '이슬람사'로 넒히면 책들이 없진 않다). 알라딘에서 검색되는 책에 한정하면 영어권에서도 생각만큼 많은 책이 나와 있진 않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차였는데, 이번주 신간 가운데 <이슬람 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한겨레출판, 2009)가 눈에 띄니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닐 퍼거슨은 "1979년의 가장 끔찍한 유산은 급진 이슬람주의다. 이 이념은 이란 지도자들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테러범과 테러 동조자들이 연결된 복잡하고 실체가 불확실한 네트워크에 자양분을 공급한다."라고 극도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지만, 그건 미국의 보수적 역사학자의 시각이고, 우리는 우리 나름으로 이란혁명 30주년의 의미를 따져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제비 한 마리가 봄을 가져다주지 않듯이, 책 한권이 우리의 궁금증을 다 해소해줄 수는 없겠지만, 또 한편 시작이 곧 반이므로. 그래서 관심도서로 올려놓으며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09. 11. 14) ‘폭풍전야’ 이란서 호메이니를 되새기다 

“너의 모든 말과 행동을 지켜보거라… 나는 더 할 말이 없다… 머무르고 싶은 자는 남아 있고 그렇지 않는 자는 가도록 해라. 불을 끄거라. 나는 자고 싶구나.”

이란의 현대사를 새롭게 쓰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걸어왔던 사람이 남긴 마지막 말이다. 1989년 6월 3일, 병원 침상에 누운 87살의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이 말을 끝으로 끝없는 잠에 빠져들었다. 이란의 ‘국부’ 호메이니는 그렇게 떠났지만, “그의 영혼과 흔적은 아직도 이슬람 세계 곳곳에” 남아 있다. 올해는 이란 이슬람혁명 30주년이자, 호메이니 타계 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슬람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는 부제 그대로 ‘호메이니의 삶을 통해 본 이란 현대사’를 다룬 책이다. 우리나라의 대다수 사람들은 호메이니라는 인물, 이란이라는 나라에 대해 잘 모를 뿐 아니라, 왜곡된 정보와 시각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시각으로 전달되는 뉴스와 정보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란에 대한) 우리의 독자적 시각”을 갖는 것은 테헤란 대학에서 중동정치학을 공부한 한국인 유학생 1호인 유달승 한국외대 교수가 이 책을 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한 개인의 삶은 그 사회의 역사, 문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며, 1979년 이슬람 혁명이 “아무런 배경도 없이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신학을 공부하고 “절대적 정의가 구현되는 정부”를 꿈꿨던 호메이니는 사회 현실에 눈감는 보수적 이슬람원리주의인 ‘와하비즘’을 비판하면서 정치적 발언을 시작했다. 그에 대한 민중들의 지지가 높아갈수록 팔레비 왕조는 그를 박해했다.

1979년, 호메이니는 오랜 망명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이슬람혁명을 주도했다. 구호는 크게 세 가지였다. 자유, 자주, 이슬람공화국. “이슬람혁명은 반제반봉건 혁명”이었던 셈이다. 특히 이슬람 공화국은 일찍이 없었던 정치실험이자 자존의 청사진이었다. 이란은 이미 1905년 입헌혁명을 시도했을 만큼 중동 아랍지역에서 정치적으로 앞선 나라다. 호메이니의 원대한 꿈도 이슬람 가치와 근대 민주주의 원칙을 결합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힘의 논리는 세계 2위의 원유 매장량과 절묘한 지정학적 위치를 지닌 이란을 가만 두지 않았다. 영국과 미국은 이란의 내정에 끊임없이 개입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이란 정부를 전복하고 왕정을 부활시키는 쿠데타 공작을 꾸몄다. 호메이니는 “제국주의자들이 장악한 억압 정부를 타도하고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정의로운 이슬람 정부를 건설”할 것을 주창했다. 그 결과 다른 어느 나라보다 강력한 신정체제가 등장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다.

딱딱한 정치, 역사, 시사 문제들을 현장중계하듯 생동감 넘치게 서술한 것은 이 책의 미덕이다. 상황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사실적인 묘사는 마치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는 것 같은 감칠맛이 있다. 페르시아어를 쓰는 인도·유럽어족-아랍어를 쓰는 샘족, 조로아스터교-이슬람교, 칼리프-이맘, 시아파-수니파 등 이란과 주변국의 역사·문화적 특징들에 대한 풍부하고 재미있는 배경 지식들도 곁들였다.(조일준 기자) 

09. 11. 14. 

 

P.S. 개인적으로 닐 퍼거슨의 기고문에서 챙긴 것은 소련의 붕괴에 관한 몇 권의 연구서이다. 냉전사의 권위자인 존 루이스 개디스의 책이 표준적이라고 하고, 스티븐 코트킨이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고 있는 수정주의자라 한다. 코트킨의 책으론 <저지된 대결전>(2001/2008)과 <비문명사회>(2009) 등이 있다. 전자는 소련이 1970년대를 버텨낸 건 오로지 고유가 덕분이었다고 지적하며, 후자는 서방 지도자는 물론 동유럽 반체제 인사도 소련 붕괴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고. 흥미를 끄는 내용들이어서 한번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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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슬람, 이슬람혁명, 이슬람여성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3-19 09:58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간행하는 월간 소식지 <출판문화>(544호)에 실은 '이현우의 책읽는 세상'을 옮겨놓는다. 격월로 연재하는 칼럼인데, 이달에는 '책으로 읽는 이슬람 이야기'를 주제로 다루었다. 읽은 책보다는 읽어야 하는 책이 더 많은 분야인데. 아무튼 이번 이슬람 혁명을 계기로 부쩍 읽고 싶은 책이 많아졌다(그래서 관련서들을 한데 모았다). 유엔 안보리가 군사개입을 결의한 리비아의 전황이빨리 호전되기를 기대한다.출판문화(11년 3월호) '
 
 
노이에자이트 2009-11-14 15:16   좋아요 0 | URL
소련붕괴는 레이건 행정부가 중앙정보국 국장 존 케이시와 함께 동유럽 붕괴공작을 통한 성과였다고 주장하는 책이 있습니다.피터 시바르쯔<냉전에서 경제전으로>.폴란드 자유노조 지원을 위해 공작금을 많이 퍼부었고 교황도 개입했다는 내용이죠.재밌는 건 이 책이 좌파의 폭로물이 아니라 우파의 시각으로 쓴 것이라는 것이죠.

로쟈 2009-11-14 17:43   좋아요 0 | URL
왠지 자화자찬일 거 같다는 느낌이 들지만 참고는 해볼 만하겠어요...

펠릭스 2009-11-14 21:16   좋아요 0 | URL
이란이 중동지역(아랍)과 중앙아시아 사이에 위치한 시아파 이슬람국인데도 호메이니가 비아랍국이며 이슬람 순니파가 대부분인 터키에 망명할 수 있었을까요? 또한 유럽의 잠재적 적이라는(유럽공동체 제외) 터키가 중앙아시아 카자스탄에 경제적 지원에(대학지원 등) 적극적이며, 인접한 중국의 서북공정 대상인 위구르족도 11세기부터 이슬람교도들이고 보면 문명탄생지보다는 종교적 연대성이 큰 위협이 되겠는데요.

로쟈 2009-11-15 12:23   좋아요 0 | URL
터키가 그런 면도 있군요. 덕분에 알게 됐습니다...

2009-11-15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15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rror 2009-11-15 18:34   좋아요 0 | URL
이슬람혁명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이 왜 보수적 역사학자에만 국한된다고 말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몇개월전에 있었던 이란의 부정선거와 이로 인해 발생한 시민들의 항거는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이란의 지식인들에게 물어보시죠. 호메이니의 혁명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박사논문을 쓰는 나의 이란인 친구는 현재의 이란 상태에 대해서 절망적이더군요. 모든 측면에서 호메이니의 혁명은 이란을 뒤로 가게 만들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그가 이란인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몇개월전의 사태로 볼 때, 무시할 수만은 없는 관점이지요. 박정희가 경제에서만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고 나머지를 압살했다면, 호메이니와 신정정권은 종교만 빼고 나머지를 모두 압살했다고 할 수 있을 터인데, 박정희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이라면, 같은 관점에서 과연 호메이니를 높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우리 나름대로의 관점'이 반미나 또는 반서구적 가치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로쟈 2009-11-15 19:01   좋아요 0 | URL
이슬람혁명이 부정적인 양상으로 귀결되었다는 것과 급진 이슬람주의를 싸잡아서 테러리즘의 온상이라고 지목하는 것은 다른 문제가 아닐까요? 부시 시절의 명분없는 대테러전쟁도 '미국적 가치'에 비춘다면, 반미적이고 반민주적인, 반서구적 전쟁이었습니다. 그리고 책에 관해서 저는 '우리 나름대로의 관점'보다는 이란 현대사에 관한 책이 나온 것에 더 주목한 것입니다...

mirror 2009-11-15 19:37   좋아요 0 | URL
로자님이 이런 책의 출간을 환영하는 것처럼 저도 그러합니다.
제가 로자님이 사용하신 '극도로 부정적인 평가'라는 표현에 많이 집중한 것 같습니다.
 

어제 수능시험도 끝났고 이제 연말도 멀지 않았다. 여러 지면에 서평을 쓰고 있는 탓에 이맘때가 되면 '올해의 책'을 추천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대략 어림하고는 있지만 막판 기대주들이 또 있기 마련이다. 역사분야에서라면 계승범 교수의 <조선시대 해외파병과 한중관계>(푸른역사, 2009)가 단연 돋보이는 신간이다. 정부가 아프간 파병을 다시 결정한 상황이라 시의성도 있다. 소개를 보니, "해외파병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의 역사를 추적했다. 이 책은 1392년부터 1876년까지 480여 년간 명, 청의 파병 요구에 따라 조선 조정에서 군대를 파견하는 문제를 놓고 벌어진 논의를 다루고 있다. 2009년 우수저작 및 출판지원사업(한국간행물위원회 주최) 당선작." 저자 인터뷰기사에 있기에 미리 챙겨놓는다. 부제인 '조선 지배계층의 중국 인식'은 오늘날 '한국 지배계층의 대미 인식'으로 바꿔 읽어도 무방하겠다.    



한겨레(09. 11. 13) 명나라의 파병요청…조선은 실리를 택했다 

1479년(성종 10년) 명으로부터 건주여진에 대한 협공을 요청 받은 조선은 파병 여부를 두고 신료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찬성론자는 ‘대국을 섬기는 예의상 거절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었고, 반대론자는 어려운 경제사정과 패전 가능성을 들어 불가함을 역설했다. 판세를 가른 것은 때마침 올라온 정효종이란 하급관리의 상소였다.  

“맹자께서 말씀하시길 이웃 마을에 싸움이 있으면 문을 닫아걸어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혹 황제의 명을 중히 여겨 부득이 (파병 요청에) 응해야 한다면 봄날의 화창한 때를 기일로 삼을 것을 청하고, 중국이 기일에 앞서 단독으로 정벌에 나선다면 우리 백성은 전쟁에 나가는 수고를 겪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조정이 마련한 최종안은 이랬다. 병력 요청에는 응하되 최대한 시간을 끌고, 군대가 가더라도 충돌은 가능한 한 피한다는 것. 사실상의 ‘면피용 파병’이었다. “당시 논쟁을 보면 ‘남의 싸움에 끼어들어 피해 볼 이유가 뭐냐’는 신중론과 ‘어차피 보낼 거 화끈하게 결행해 명의 환심이라도 사 두자’는 적극적 파병론이 충돌합니다. 심지어 ‘유림과 백성의 반대 여론을 내세워 파병 규모를 줄여보자’는 협상론 등 나올 수 있는 논리가 다 나와요. 어떻습니까, 참여정부 시절 이라크 파병을 두고 벌어진 논쟁 구도와 흡사하지 않습니까?”  



계승범 고려대 연구교수(민족문화연구원)가 쓴 <조선시대 해외파병과 한중관계>(푸른역사)는 파병 논쟁이란 프리즘을 통해 조선의 대외관계, 나아가 지배 엘리트의 대중(對中)의식이 겪은 변화상을 추적한 책이다. 파병이라는 단일 이슈를 매개로 조선의 외교관계와 대외인식에 통사적으로 접근한 첫 시도인 셈이다.

“17세기 나선정벌에 관해 논문을 쓴 것을 계기 삼아 실록에 나온 해외파병 논쟁을 정리해 봤더니 무려 열다섯 차례나 되는 겁니다. 첫 번째가 1449년(세종 31년) 명의 몽골 원정 요구였고, 마지막이 1658년(효종 9년) 남하하는 러시아 세력을 막기 위한 청의 출병 요청입니다.” 

계 교수의 분석으로는 이 가운데 거절한 것이 5차례, 파병한 게 9차례였고, 취소가 1차례다. 중요한 사실은 16세기를 분수령으로 논쟁의 양상에 큰 변화가 찾아온다는 점이다. “성종 때까지만 해도 중원 제국(명)에서 파병 요청이 들어오면, 신료들끼리 모여 주판알을 튕깁니다. ‘대체 이 전쟁에 참여해 얻을 수 있는 게 뭐냐’를 따지는 거죠. 그래서 별 볼 일 없으면 거절해 버리고, 그게 어려우면 마지못해 생색내기 차원에서 군대를 보냅니다. 적어도 ‘국익’과 ‘사대’를 동일시하진 않았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16세기를 지나면서 두 가지가 동일시됩니다. 명의 요청을 따르는 것 자체가 국익으로 둔갑하는 것이죠.” 

대체 16세기에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계 교수는 쿠데타를 통해 옹립된 중종이 명에 대한 사대를 통해 정통성을 획득하려 했던 점, 이 시기 주자학이 통치 이데올로기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점과 함께 더욱 현실적인 이유를 든다.

“고려 때까지만 해도 중원의 주인이 100년을 주기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명나라는 200년이 다 되도록 안 무너지는 겁니다. 그러니 명의 헤게모니 질서가 영속할 것처럼 여겨지고, 그 질서 아래서 2인자 자리를 유지하는 게 조선의 국익이란 인식이 생겨납니다. 여기에 주자학의 배타적 화이관의 영향으로 조선과 명의 관계는 과거의 군신관계에 부자관계의 요소가 더해지는데, 이 상황에선 명을 배신하는 게 ‘천륜’을 어기는 게 돼 버립니다.”

계 교수는 광해군을 폐위시킨 반정세력의 최대 명분이 광해군의 배명(背明) 행위였던 사실이나, 조선의 지배 엘리트들이 무력으로는 청을 결코 이길 수 없음을 알면서도 청의 침공을 초래해 삼전도의 굴욕을 당한 것, 이후로도 북벌이니 대명의리니 조선중화니 하며 과거의 기억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본다. 간과해선 안 될 점은 이런 조선 지배층의 태도가 단순한 명분론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뭔가 실익이 있었다는 얘긴데, 계 교수의 설명은 이렇다.

“삼전도의 굴욕이 뭡니까. 아버지(명)가 위험에 처했는데 나 하나 살겠다며 원수(청)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부자의 연을 끊기로 약속한 사건입니다. 당시 기준으론 배반이자 패륜이지요. 만약 이것이 상황논리로 허용된다면, 피지배층에게 왕조와 양반에 대한 복종을 요구할 명분이 사라져 버립니다. 이런 절박감이 ‘소중화’를 자처하며 망해버린 명 제국에 대한 의리와 충성을 강조하는 집단적 자기최면으로 나타난 겁니다.”

하지만 조선이 대명의리적 조선중화 의식에 집착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확고한 통치기반을 확립한 청이 내정 간섭을 중단한 덕분에 가능했다. 그런 점에서 계 교수는 조선중화론이 “청 질서의 보호막 안에서 외친 ‘수족관 안의 자부심’이었다”고 일축한다.

“명-청 교체기의 역사는 오늘날의 동아시아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미국 헤게모니가 쇠퇴하고 중국의 부상이 가시화되는 지금 상황은, 굳이 비유하자면 누르하치가 만주를 실질적으로 장악했지만 명과의 대결에는 나서지 않은 17세기 초반의 정세와 유사하다고 할까요. 정치하는 사람이라면 정파를 떠나 어느 것이 한국을 위한 길인지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이세영 기자) 

09.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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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11-13 11:04   좋아요 0 | URL
예나 지금이나 약소국의 비애내요.아프간 파병 요청에 냉큼 응하는 명박정부의 행태를 보면서 조선 성종새대의 관료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것은 왜일까요?

로쟈 2009-11-14 10:41   좋아요 0 | URL
관료들이 많이 읽어볼 만한 책이겠어요...

노이에자이트 2009-11-13 20:35   좋아요 0 | URL
제임스 팔레(워싱턴 주립대) 마지막 제자 계승범씨가 드디어! 하하하...재밌겠습니다.저는 이런 소재 다룬 책이 좋아요.한명기의 <임진왜란과 한중관계><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를 의식하고 쓴 부분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올해엔 동아시아 외교 분야 다룬 책들이 꽤 나오는데요.올봄에는 이삼성,한명기가 그리고 연말에 계승범까지...식단이 풍성하군요.

로쟈 2009-11-14 10:41   좋아요 0 | URL
노이에자이트님이 제일 반가워하시네요.^^

펠릭스 2009-11-14 21:35   좋아요 0 | URL
당나라 또한 신라에게 파병한 꼴인가요?

로쟈 2009-11-15 12:26   좋아요 0 | URL
미국이 이라크에 파병한 것 비슷하지 않을까요?..

mirror 2009-11-15 20:37   좋아요 0 | URL
당시 고구려는 당나라에게 냉전시대 미국에 대해서 소련이 지니는 지위, 또는 소련에게 미국이 지니고 있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을 듯 합니다. ^^ 당나라가 신라와 함께 백제와 고구려를 공격한 것을 강대국이 약소국을 억압했다는 관점으로 보는 것은 좀 무리가 있을 것 같네요.
 

귀가길에 읽은 칼럼 하나를 스크랩해놓는다. 한국일보의 '육상효의 유씨씨' 란이다. '유씨씨'는 'You See Culture'를 뜻하는 걸로 돼 있다. 이 칼럼란을 읽은 건 오늘이 처음인데, 한류에 대해 던지고 있는 질문들이 이모저모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준다. 소제목을 따서 말하자면, '한류 열풍의 실체는 무엇일까?' '아시아적 삶이란 무엇일까?' 등이 그 생각해볼 거리이다. 답도 누가 적어주면 좋겠지만...  

한국일보(09. 11. 12) 한류에 관한 질문

혹시 일본에서의 한류(韓流) 열풍이 그들의 무의식 속에 깊이 내재된 식민지에 대한 향수로부터 기인한다면 어쩌겠는가? 그래서 일본 한류 팬의 대부분이 중년 이상의 어른들이고, 한류의 시작이 된 드라마들이 <겨울연가> 같은 노스탤지어를 기본 정서로 하는 드라마들이었던 것은 아닌가?

한류 열풍의 실체는?
아니면 혹시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각국의 한류 열풍의 정체가 우리가 재빨리 복사하고 습득한 서구식, 아니 더 정확히는 미국식 생활방식과 문화의 대리 전달이라면 어쩌겠는가? 그래서 그들의 한류는 한국의 아이돌 가수들이나 도시적 감수성이 과도하게 치장된 드라마들에 대한 열광인 것은 아닌가?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서 미국이나 서구로 진출하지 못하는 것도 그쪽 나라들에서는 자신들의 복제품을 굳이 다시 볼 이유가 없어서인 것은 아닌가?

한류라는 단어와 현상이 생겨난 지 10년이 지나가는 지금 한류는 무엇인가? 문화인가, 산업인가? 혹은 그 둘을 다 포괄하는 문화 산업인가? 문화 산업이라는 말은 결국은 산업이라는 말 아닌가? 그래서 그 동안에 그렇게 한류의 경제적 효과를 증명하는 각종 통계 수치들이 난무했던 것인가? 그런데 그 수치들을 동반한 주장들이 그려왔던 장밋빛 전망대로라면 한류는 지금 우리가 보는 것보다는 훨씬 더 엄청난 현상이어야 하지 않는가?

한국에서조차 막장 드라마라고 비난 받던 드라마들이 한류의 위세로 수출돼 나가 벌어진 일은 무엇인가? 한국에서조차 가창력이 문제되던 아이돌 가수들이 아시아 각국으로 진출해서 얻는 것은 무엇일까? 일본의 성인들이 자신들의 노스탤지어를 위로 받는 방법을 자신들의 문화 속에서 찾아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보다 훨씬 맹렬한 속도로 서구화하고 있는 아시아 각국이 그들 스스로 서구의 경험을 문화적으로 복제해내는 방법을 찾아내면 어떻게 될 것인가?

혹시 한류는 지금 아시아 각국에서 생겨난 하드웨어적 인프라와 그 하드웨어를 채울 소프트웨어적인 인프라 사이의 간극을 채우는 일시적인 문화현상이 아닌가? 다시 말하면 방송국 설비와 송출의 시스템은 있으나 그 안을 채울 자국의 콘텐츠가 없을 때 일시적으로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역할은 아닌가? 과거 우리 TV의 황금시간 대를 채우던 <타잔> <6백만 불의 사나이> 등의 미국 드라마와 우리의 극장들을 채우던 홍콩 영화들이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우리의 콘텐츠로 대체된 것처럼 한류도 어느 날 그렇게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그러면 지금은 한류의 대중문화 작품들 속에 무엇을 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될 때는 아닌가? 일방적 산업 논리에서 벗어나서 한류 드라마와 노래와 영화 들 속에 과연 우리는 무엇을 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될 때는 아닌가? 과연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일까? 아니면 가장 서구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일까? <선덕여왕>과 <아이리스>를 오가는 이 질문들 속에 도사린 함정은 무엇일까? 



아시아적 삶과 정체성
한류가 아시아적 현상이라면 아시아적 삶이란 무엇일까? 최근에 부쩍 활발한 동아시아 논의들이 겨냥하는 곳이 '서구의 학습이 곧 근대화'라는 패러다임이 지배해왔던 20 세기를 극복하고 아시아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지점이라면, 한류라는 아시아적 현상이 담아야 할 것은 아시아적인 그 어떤 것은 아닐까?

한국도 아니고, 보편이라는 이름 속에 음험하게 도사린 서구도 아닌, 아시아적 감수성으로 아시아적인 휴머너티을 담아내는 것이 한류의 몫이 아닐까? 그것만이 이데올로기와 정치가 빠르게 해체되고 다시 생성되는 21 세기의 아시아에서 한류라는 피상적인 문화적 현상이 진정하게 내면화하는 길이 아닐까?(육상효 인하대 교수·영화감독) 

09. 11. 12.  

P.S. 파주 어딘가 세워진다는 '한류우드'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2000년대 이후의 한류 열풍 탓에 한류에  대한 책들도 많이 출간돼 있다(돈이 모이는 곳에 책도 넘치기 마련이다). 배용준 사진집을 갖추고 있지 못하지만, 한류에 대한 책 몇 권 정도는 도서관에서 대출해볼 용의도 있다. 그 후보 몇 권을 골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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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i 2009-11-12 23:32   좋아요 0 | URL
요즘 가는 데마다 선덕여왕과 아이리스 얘기더라구요. 저는 덕만이가 남주인줄 알았는데... 로쟈님도 보세요? ^^ 미실어록도 나올 듯...

로쟈 2009-11-12 23:56   좋아요 0 | URL
저는 보지 않는데, 아이가 즐겨봅니다.^^

딸기 2009-11-13 02:48   좋아요 0 | URL
제가 보기엔 참 이상한 글이로군요.

"그들의 무의식 속에 깊이 내재된 식민지에 대한 향수"가 뭘까요?
그들은 무의식 속에도 식민지에 대한 향수가 내재돼 있다는 거, 확실한가요?

한국에서조차 가창력이 문제되던 아이돌 가수들이라...
그럼 저 사람은 한류 컨텐츠의 '수준'을 말하고 있는 건가요?
아니면 기본적으로 한류 컨텐츠는, 일본인들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내용들이다,
뭐 이런 얘기를 하는 걸까요?

"한국에서조차 막장 드라마라고 비난 받던 드라마들이 한류의 위세로 수출돼 나가 벌어진 일은 무엇인가? 한국에서조차 가창력이 문제되던 아이돌 가수들이 아시아 각국으로 진출해서 얻는 것은 무엇일까? 일본의 성인들이 자신들의 노스탤지어를 위로 받는 방법을 자신들의 문화 속에서 찾아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보다 훨씬 맹렬한 속도로 서구화하고 있는 아시아 각국이 그들 스스로 서구의 경험을 문화적으로 복제해내는 방법을 찾아내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건 궤변으로 들리는데요?

1. 일본인들에겐 식민지에 대한 향수가 내재돼 있다.
2. 그래서 그들은 노스탤지아를 위로받아야/위로받고자 한다.
3. 그런데 일본 문화에는 그런 컨텐츠가 아직 없다.
4. 그래서 한국 것을 보면서 좋아한다.
5. 한류 문화상품은 일본인들의 식민지 노스탤지아를 충족시켜주는 종류의 것들이다.

좀 어이가 없는데요.

현대적인 것, 도시적인 것=서구화 지향
이 도식으로 아시아 한류 전체를 설명하는 것도 웃기고요.

"보편이라는 이름 속에 음험하게 도사린 서구"라...
뭐, 그런 것도 많지요.
그런데 사례와 근거는 없이 추측과 단정과 자극적이고 오만한 표현 뿐이네요.

로쟈 2009-11-13 09:37   좋아요 0 | URL
저는 한류의 실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읽었는데요.^^ 일본내 한류의 실상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전에 TV에서 다뤄진 걸 보니 노스텔지어보다는 배용준 같은 배우들의 이미지가 어필하는 것 같더군요. 동남아 한류에 대해서 한시적인 콘텐츠 채우기일 수 있다는 시각은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딸기 2009-11-16 15:58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대로, 한류의 실체에 대한 문제제기이고, 동남아 한류는 한시적인 컨텐츠 채우기일 수 있다는 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시비를 걸고 나선 것은, '일본'이라는 존재에 대해 편협하게 해석하고 국수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저 글에도 그대로 드러나있는 듯 싶어서예요. 우리가 반드시 '아시아적인 것'을 담아야 한다는 발상도 그렇고... '한류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서도 문화적인 편협함이 드러난다는 거죠.
이집트와 브라질에서도 겨울연가가 유행한다는데... 그럼 앞으론 한류에 중동적인 것과 중남미적인 것까지 담아야 하나요(농담임다) 차라리 '보편적인 인류의 고민을 담자'고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ㅎㅎ

로쟈 2009-11-16 20:55   좋아요 0 | URL
필자가 질문들만 나열해놓았는데, 딸기님이 답변을 쓰셔도 좋을 것 같아요.^^

카스피 2009-11-13 13:32   좋아요 0 | URL
뭐 일본내 한류에 대해서 식민지 시대의 향수때문이라는 것은 무척 오버스럽습니다.사실 배용준에 의해서 촉발된 이른바 한류 열풍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주로 30~50대의 주부층이지요.이들이 식민지 시대의 향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수긍하기 힘들지요.좀 간단히 생각하자면 일본 아줌마들 구미에 맞는 드라마가 그간 없다가 겨울연가가 그녀들의 마음에 맞았다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뭐 동남아 한류는 로쟈님 말씀이 맞는것 같네요.우리가 한때 홍콩영화,일본가요에 심취했다가 이를 벗어났듯,동남아도 자국 문화가 발전하면 더이상 한류를 찾지 않겠지요

로쟈 2009-11-14 10:38   좋아요 0 | URL
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펠릭스 2009-11-14 22:05   좋아요 0 | URL
우리안으로 동남아 사람이 들어오는(국제결혼,코리아드림)것과 관련하여 한류열풍이 한 몫을 한다면 그것은 문화적 피드백 속성을 지니고 있겠지요.

로쟈 2009-11-15 12:27   좋아요 0 | URL
네, 그런 부분도 있는데, 양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에 도달한 것인지 조사가 좀 필요해 보입니다...
 
블룩과 출판권력의 재편

올 한해 출판계를 결산하는 한국일보의 연재기사에서 '블룩(blook)'을 다룬 꼭지를 옮겨놓는다. 블록에 대해서는 나도 한 발을 담그고 있기 때문인데, 기사에서도 언급이 되고 있다. 더불어, 자세히 보니 관련이미지가 '로쟈의 저공비행'이기도 하다. 다시금 바닥이 좁구나란 생각이 드는데, 내년에는 더 많은 블로거들의 더 풍성한 '블룩'이 햇빛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흠, 나부터도 어서 2, 3탄을 준비해야 할까...

 

한국일보(09. 11. 12) [책의 풍경, 2009] <4> 블룩(blook)의 시대

"아이템은 풍부한데, 마땅한 필자가 없다." 풍부한 자본력과 인적 네트워크를 갖춘 일부 대형 출판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내 출판사들의 고민거리다. 쓰기만 하면 몇만부가 팔리는 일급 필자는 언감생심, 5,000~1만부 정도를 꾸준히 팔 수 있는 작가군의 확보가 이들의 과제다. 전문성과 필력, 취재력을 갖춘 '재야의 고수'는 과연 어디에 숨어있을까? 2003~2004년께부터 누구에게나 친숙해진 블로그가 그 시름을 크게 덜어줬다. 블로그 콘텐츠를 책으로 출간한 '블룩'(blookㆍblog와 book의 합성어)이 베스트셀러의 20%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처럼, 국내 출판계도 인기 블로거들을 필자로 활용함으로써 '블룩의 시대'를 열었다. 온라인의 대중성ㆍ개방성ㆍ정보공유성에 기반한 '블룩의 시대'는 대중이 더 이상 '책'으로 상징되는 지식의 소극적 수용자가 아니라, 그 적극적 생산자이자 유통자가 됐다는 문화사적 의미를 지닌다. 



스타 블로거들, 출판계 스타로
인기 블로그의 콘텐츠를 책으로 출판하는 시도는 요리ㆍ육아ㆍ화장ㆍ여행 등 실용ㆍ취미 분야에서 시작됐다. 주부 김은주(33)씨가 2004년부터 싸이월드에서 운영하던 인기 육아블로그의 내용을 책으로 묶은 <예성맘의 우리아이 10년 밥상>(2006), <예성맘의 우리아이 평생밥상>(2008)은 6만부 이상 판매됐다. 평범한 주부였던 김씨는 TV 광고에도 출연했고 3~4권의 새 책 출간이 예약된 '귀하신 필자'가 됐다. 



취미ㆍ실용 분야 스타 블로거들의 성공 이후 다양한 분야의 블로거들이 스타 필자로 각광받게 됐다. 젊은 미술인들에 주목하며 미술계의 숨은 이야기를 전하는 '문화의 제국'이라는 블로그로 온라인 스타가 된 김홍기(37)씨의 블룩 <샤넬, 미술관에 가다>(2008), <하하 미술관>(2009)도 각각 1만부 이상 팔렸다. 인터넷 논객으로 불리는 한윤형(26)씨는 정치ㆍ사회 분야의 스타 블로거. 그의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2009)는 6개월 만에 2쇄를 찍었다. 지성사의 흐름을 짚고 인문학 신간을 소개하는 인기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의 운영자 이현우(41)씨의 <로쟈의 인문학 서재>(2009)도 그 분야에서는 손꼽히는 책이다. 고양이, 편의점, 팝업북, 골목, 장난감 등 소소한 소재에 대한 전문 블로거들을 주목한 출판사 갤리온의 '작은 탐닉' 시리즈는 모두 20권으로 출간돼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출판사로 들어온 원고를 보고 필자를 구하는 고답적인 방식에서 신문이나 잡지 등으로 알려진 필자 찾기, 인맥 동원하기 등 기존 방식과 달리 블로그는 이처럼 묻혀있던 저자군을 발굴하는 수원지로 자리매김했다. 배영진(40) 갤리온 주간은 "'작은 탐닉' 시리즈의 경우 1~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우연히 찾아낸 필자들"이라며 "블로그는 가장 손쉽게 예비 저자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자 저자와 출판사를 연결해주는 새로운 채널"이라고 말했다. <하하 미술관>을 기획한 미래인 출판사의 황인석(39) 편집장은 "블로거들은 정보가 공개돼 있으며 이메일 연락도 수월해 섭외도 용이하다. 중소 규모 출판사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기획ㆍ편집 중요성 더 높아져
블로그가 출판의 새로운 콘텐츠 공급원으로 각광받는 이유는 콘텐츠 내용이 소비자ㆍ독자 친화적이기 때문. 주로 취미ㆍ실용 분야의 블로거들이 초기부터 성공한 점이 이를 증명한다. 하루 수백~수천명에 이르는 블로그 방문자 수에서 시장성도 어느 정도 검증되는 점, 블로거들이 대부분 사진 판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제작단가도 낮출 수 있다는 점, 기존 필자에 비해 선인세 등 초기 자금을 적게 투입해도 된다는 점도 블룩의 매력이다.

그러나 블로그의 인기나 블로거의 스타성이 곧장 출판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온라인과 활자라는 매체의 형식이 다르기 때문에 블로그의 콘텐츠를 가공하는 정교한 편집ㆍ기획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기획한 산책자 김수한(39) 주간은 "책은 전체 블로그 내용의 5%도 소화하지 못했다"며 "어떤 식으로 텍스트를 재배치할 것인가, 사진 숫자는 얼마나 줄일 것인가, 문체는 어떤 식으로 바꿀 것인가 등 컨셉을 가다듬는 데 1년 가량 걸렸다"고 말했다.

블로거 네트워크가 책 구매로 연결되는가에 대해서도 회의적 시각이 있다. 황인석 미래인 편집장은 "온라인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노는 데 길들여진 블로그 방문자들을 전통적인 활자매체로 유도하는 일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콘텐츠의 내용보다는 방문자 수에 집착하거나, 기존 지식과 정보의 짜깁기에 불과한 블로그가 태반인 만큼 이를 선별하는 출판기획자들의 섬세한 시각과 치밀한 기획, 마케팅 전략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연구부장은 "1인 미디어 시대를 대변하는 블로그는 콘텐츠의 전시장이자 재야의 고수를 발굴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라며 "그러나 아직까지는 블룩이 주로 실용서 범주에 머무르고 있으며 비실용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느냐가 향후의 과제"라고 말했다.(이왕구기자) 

09. 11. 12.  

P.S. 블룩 얘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알라딘 리뷰계의 지존이라 할 파란여우님의 블룩 <깐깐한 독서본능>(21세기북스, 2009)이 내주에 출간될 예정인 것으로 안다. 바야흐로 개봉박두다! 기회가 닿아서 책의 몇 꼭지를 미리 읽어볼 수 있었는데, 알라딘마을의 수준(독서본능!)을 대변하고 있는 듯싶어서 정겹고 부듯했다(우리동네 사람이 '깐깐한' 건 자랑거리다). 자칭 '알라디너'라면 고대할 일이며, 필독해마지 않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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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09-11-12 15:52   좋아요 0 | URL
정말 좋은 블로거들의 블로그들이 많은데 저는 역시 종이책이 좋은지라 이런 현상이 매우 반갑습니다. 앞으로도 게속 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로쟈님도 2,3탄 준비하셔야죠?ㅎㅎ

로쟈 2009-11-13 00:20   좋아요 0 | URL
블로거 천만시대라고도 하므로, 블로거가 책을 내는 일이 조만간 뉴스거리에서 빠지게 되지 않을까 해요. 저야 준비는 하고 있지만 마음보다 손은 언제나 더딘 편이어서...^^;

빵가게재습격 2009-11-12 21:1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로쟈님. 체일요양(?)중에 잠시 들렀습니다. 로쟈님 책은 쟁여놓고 다 읽지 못했는데, -<차라투스트라...>와 <누가 슬라예보 지젝을...>사이에 끼워 놓았습니다. 앞 뒤 두 권을 겨우 읽고 나서 로쟈님 책을 열어보야지...하고있는데, 게을러서 언제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파란여우님의 책이 필독! 이라면 과제가 하나 더 늡니다. 건강하세요.^^

로쟈 2009-11-13 00:21   좋아요 0 | URL
네, 건강의 안 좋으신 것 같던데, 요양 잘 하시길. 사실 '요양객'은 저의 로망 중의 하나인데요.^^;

빵가게재습격 2009-11-13 14:49   좋아요 0 | URL
생각만큼 즐겁지 않습니다...오히려 괴롭다(?)고 하는 편이 진실에 좀 더 가깝습니다.--;;;;

로쟈 2009-11-14 10:37   좋아요 0 | URL
빨리 쾌유되시길 바랍니다.^^;

펠릭스 2009-11-14 22:24   좋아요 0 | URL
들리는데 길들려진 블로거지만 덕분에 이런저런 책들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로쟈 2009-11-15 12:28   좋아요 0 | URL
부수효과죠.^^
 
'수레바퀴 밑에서'와 '데미안'의 차이

이번달 '출판저널'에 실은 '로쟈가 읽은 책 속의 한 장면'을 옮겨놓는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다루고 있으며, 지난달에 읽은 <데미안>의 한 장면을 이어받은 것이기도 하다. 지면에는 첫문단과 끝에서 두번째 문단이 누락됐는데, 여기서는 되살려놓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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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저널(09년 11월호) 가장 널리 알려진 책이면서 니체의 가장 난해한 책 

헤세가 13살 때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구절들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저는 니체의 추종자가 아닙니다. 그의 철학의 핵심은 말하자면 도덕의 살해인데요, 그것은 저에게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 관점은, 제 종교는 경건하지만 도덕으로부터는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저는 니체가 철학자로서 결코 오래 갈 것 같지 않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태도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 듯하다. 그의 자전적 소설 <데미안>에는 대학생이 된 싱클레어가 니체를 탐독하는 것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대학에서의 ‘공장식’ 강의에 실망한 싱클레어는 교외의 낡은 집에서 자기 자신만을 위해 모든 시간을 쓰기로 한다. “내 책상 위에는 니체가 몇 권 놓여 있었다. 니체와 함께 살았다. 그의 영혼의 고독을 느꼈다. 그를 그침없이 몰아간 운명의 냄새를 맡았다. 그와 함께 괴로워했다. 그토록 가차없이 자신의 길을 갔던 사람이 존재했다는 것이 행복했다.”  

여기서 싱클레어-헤세가 느낀 행복은 니체의 운명에서 자기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 ‘개인주의자’를 발견한 행복이 아닐까? 어떤 개인주의인가? 그가 <데미안>의 서문에 적은 놓은 의미에서의 개인주의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하지만, 니체의 교훈이 과연 그렇게만 정리될 수 있을까?      

싱클레어의 책상에도 놓여있었을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그 자기 자신에 이르는 길을 세 단계로 묘사했다. 낙타와 사자와 어린아이가 그것이다. 니체는 다윈의 진화론에 크게 고무되었지만 종의 진화라는 관점, 곧 하나의 종으로서 다수의 인간 무리가 오랜 세월에 걸쳐 아무런 목표점 없이 진화한다는 다윈의 생각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에게 진화는 선택된 개인의 진화였고 그 목표는 인간의 자기극복으로서의 초인(위버멘쉬)이어야 했다. 그 초인에 이르는 길로 제시한 것이 낙타가 사자가 되고, 사자가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야 하는 정신의 세 단계 변화다.  

낙타란 짐을 지는 정신이다. 무거운 짐을 기꺼이 짊어지고 총총히 사막으로 들어간다. 낙타는 “너는 해야 한다”는 주인의 명령에 순응하는 정신이다. 반면에 사자는 “나는 하고자 한다”라고 말하는 정신이다. 비록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지는 못하지만 사자는 그러한 창조를 위한 자유는 쟁취해낸다. 그리고 마침내 어린아이. 어린아이는 순진함이자 망각이고, 새로운 시작이자 놀이이며 저절로 굴러가는 바퀴이고, 최초의 운동이자 신성한 긍정이다. 여기서 니체는 신성한 긍정이야말로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무엇에 대한 긍정인가? 운명에 대한 긍정이고 영원회귀에 대한 긍정이다

역설적인 일이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의 가장 널리 알려진 책이면서 동시에 가장 난해한 책이다. 그 난해함은 니체가 ‘모든 사람을 위한, 그러나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이라는 부제를 통해서 스스로 예견한 것이기도 하다. 특히나 초인 사상과 함께 이 책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구성하는 영원회귀 사상은 많은 독자를 당혹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차라투스트라 자신에게도 수수께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3부의 두 번째 장인 ‘환영과 수수께끼에 대하여’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중력의 영(靈)인 난쟁이가 “진리는 모두 곡선이며 시간 그 자체는 원을 이루고 있다”는 순환론적 시간관을 먼저 들먹이자 그가 너무 쉽게 생각한다고 화를 낸다. 난쟁이는 그런 시간의 순환이 함축하는 영원회귀의 심오한 의미에 대해서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영원회귀란 무엇인가? 우리 모두가 이미 존재했었으며, 이제 또 시간의 오솔길을 달려가서 다시금 영원히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러한 자신의 사상 자체에 대해 섬뜩한 두려움을 느낀다. 그때 갑자기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에서 그는 까마득한 어린 시절에 들었던 개 짖는 소리를 상기해낸다. 그리고는 일찍이 본 적이 없는 무서운 환영을 본다.    

차라투스트라는 황량한 달밤에 험한 절벽 사이에 서 있다가 한 사람이 누워 있는 걸 본다. 곁에서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개가 울부짖고 있다. 젊은 양치기는 구역질을 하면서 크고 묵직한 검은 뱀을 입에 물고 있고, 역겨움과 공포에 질린 그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다. 차라투스트라가 아무리 손으로 뱀을 잡아당기려고 해도 소용이 없다. 그때 그의 안에서 “물어뜯어라! 대가리를 물어뜯어라!”라는 외침소리를 듣는다. “나의 두려움, 나의 미움, 나의 구역질, 나의 연민, 나의 선과 악이 한꺼번에 내 안에서 소리를 질러댔다.” 양치기는 그가 일러준 대로 뱀을 물어뜯어서 뱀 대가리를 멀찌감치 뱉어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는 이제 더이상 양치기도 인간도 아닌 자, 변화된 자, 빛에 둘러싸인 자로 웃고 있었다! 지금껏 지상에서 그처럼 웃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것이 차라투스트라가 본 환영의 내용이다. 그것은 환영이면서 동시에 예견이다. 그럼 수수께끼는 무엇인가? 차라투스트라는 ‘더없이 고독한 자’가 본 환영에 대해서 설명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대 비유 속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던가? 그리고 언젠가 오고야 말 그 자는 누구인가? 뱀이 입속으로 들어간 양치기는 누구인가? 그러니까 가장 무겁고 가장 검은 것이 목구멍으로 기어 들어갈 인간은 누구인가?” 이것이 그가 묻는 수수께끼다.  

이 수수께끼에 대한 답은 3부의 후반부에 들어 있는 ‘건강을 회복하고 있는 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가 “더 없이 깊은 심연의 사상”이라고 부른 영원회귀 사상에 대한 구역질 때문에 쓰러진 차라투스트라는 일주일 동안 창백한 얼굴로 몸을 떨면서 앓아눕는다. 마치 젊은 양치기가 목구멍을 문 뱀 때문에 공포감에 질려 쓰러져 누워있었던 것처럼. 일주일 후에야 기운을 차린 차라투스트라는 목구멍으로 기어 들어와 자신을 질식시킨 괴물의 머리를 물었다가 뱉어버렸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구제하느라 지쳐서 병이 났다고. 이제 병상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난 차라투스트라에게 그의 동물들은 이렇게 예찬한다. “보라, 그대는 영원회귀를 가르치는 자다. 그것이 이제 그대의 운명이다. 그대가 최초로 이 가르침을 행해야 한다는 것, 이 크나큰 운명이 어떻게 그대의 가장 커다란 위험이자 병이 아닐 수 있겠는가!”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다섯 번째 복음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구원’이라면, 차라투스트라의 복음은 ‘초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비견될 수 있는 것이 차라투스트라에게선 영원회귀가 아닐까?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구원에 이르는 문이라면, 영원회귀에 대한 긍정은 초인으로 넘어가기 위한 문턱이다.   

다시 헤세로 돌아가면,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독일 청년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해 쓴 <차라투스트라의 귀환>에서 그는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서 단지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여러 가지 일을 보고 겪으며 힘에 부치는 문제들을 해결하려 노력했고 그러다가 여러 번 상처를 입기도 했네. 하지만 그가 배운 것은 단 한가지뿐일세. 그는 바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배웠네. 이 깨달음이 바로 그의 진리이며 긍지일세. 자네들이 그로부터 배워야 할 점도 바로 이러한 깨달음일세.” 요컨대, 헤세는 니체의 추종자가 아니었다. 

09.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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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단 한 번뿐인 삶 VS 영원회귀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12-09 20:21 
    '출판저널'(12월호)에 실은 '로쟈가 읽은 책 속의 한 장면'을 옮겨놓는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다뤘는데, 지난달에 읽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이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에 대한 쿤데라의 해석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출판저널(09년 12월호) 인생의 매 순간이 반복된다면? “영원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들을 곤경에 빠뜨
 
 
람혼 2009-11-11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컨대, 헤세가 니체에게서 배운 건 거의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고나니 헤세의 <싯다르타>를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쟈 2009-11-11 19:02   좋아요 0 | URL
두 사람 관계가 궁금했는데, 아무래도 나 자신이 되는 것과 초인이 되는 건 좀 다르다고 봐야겠어요...

람혼 2009-11-11 19:20   좋아요 0 | URL
네, 사실 제가 드리고 싶었던 말씀도 바로 그겁니다.^^

헤세가 니체한테 뭘 배우기만 할 군번(?)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헤세의 '니체 수용사'는 나름 편협한 측면이, 더 적확히 혹은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포퓰리즘적' 측면이 다소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데미안> 또는 <차라투스트라의 귀환>(1919)의 경우도 흥미롭지만, 오히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와 헤세의 <싯다르타>(1922)를 비교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어쨌든 이래저래 독서의 욕망만 부채질해주고 계십니다...

로쟈 2009-11-11 19:31   좋아요 0 | URL
그건 람혼님 몫이예요.^^ 사실 불교와 니체 철학을 비교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윤회와 영원회귀의 차이 정도...

2009-11-12 0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12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