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기념해야 할 연도로 <종의 기원>이 출간된 1859년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을 꼽고 있었지만, 이번주 '뉴스위크(한국판)'를 보니 표지 타이틀이 "베를린 장벽괴는 '1979년 4대사건'이 블렀다"이다. 4대사건이란 덩샤오핑의 미국방문, 대처리즘의 태동, 호메이니의 '이란혁명' 그리고 소련의 아프간 침공 등이다. 이 기사 덕분에 나대로 환기하게 된 사실은 '이란 혁명'과 '아프간 침공'에 대한 책이 드물다는 것.



뉴스위크의 기고자는 <돈의 역사>를 쓴 하버드대학 역사학 교수 닐 퍼거슨인데, 그에 따르면 1989년은 1979년에 비해 역사적인 비중이 떨어진다. 우리시대의 진정한 추세(중국의 부상, 이슬람의 과격화, 시장 원리주의의 성쇠)는 이미 그 10년 전에 시작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요지는 "진정한 혁명은 1979년에 시작됐다!"이다. 그의 주장을 좇는다면, 우리는 "우리시대의 진정한 추세"에 대해 절반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대해선 이웅현의 <소련의 아프간 전쟁>(고려대출판부, 2001)이 유일한 참고문헌인 듯싶지만 품절됐고, 이란 현대사와 이슬람 혁명에 대해 자세히 다룬 책도 거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건 유흥태의 <이란의 역사>(살림, 2008)란 문고본이 전부다(물론 범위를 '이슬람사'로 넒히면 책들이 없진 않다). 알라딘에서 검색되는 책에 한정하면 영어권에서도 생각만큼 많은 책이 나와 있진 않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차였는데, 이번주 신간 가운데 <이슬람 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한겨레출판, 2009)가 눈에 띄니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닐 퍼거슨은 "1979년의 가장 끔찍한 유산은 급진 이슬람주의다. 이 이념은 이란 지도자들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테러범과 테러 동조자들이 연결된 복잡하고 실체가 불확실한 네트워크에 자양분을 공급한다."라고 극도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지만, 그건 미국의 보수적 역사학자의 시각이고, 우리는 우리 나름으로 이란혁명 30주년의 의미를 따져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제비 한 마리가 봄을 가져다주지 않듯이, 책 한권이 우리의 궁금증을 다 해소해줄 수는 없겠지만, 또 한편 시작이 곧 반이므로. 그래서 관심도서로 올려놓으며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09. 11. 14) ‘폭풍전야’ 이란서 호메이니를 되새기다
“너의 모든 말과 행동을 지켜보거라… 나는 더 할 말이 없다… 머무르고 싶은 자는 남아 있고 그렇지 않는 자는 가도록 해라. 불을 끄거라. 나는 자고 싶구나.”
이란의 현대사를 새롭게 쓰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걸어왔던 사람이 남긴 마지막 말이다. 1989년 6월 3일, 병원 침상에 누운 87살의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이 말을 끝으로 끝없는 잠에 빠져들었다. 이란의 ‘국부’ 호메이니는 그렇게 떠났지만, “그의 영혼과 흔적은 아직도 이슬람 세계 곳곳에” 남아 있다. 올해는 이란 이슬람혁명 30주년이자, 호메이니 타계 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슬람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는 부제 그대로 ‘호메이니의 삶을 통해 본 이란 현대사’를 다룬 책이다. 우리나라의 대다수 사람들은 호메이니라는 인물, 이란이라는 나라에 대해 잘 모를 뿐 아니라, 왜곡된 정보와 시각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시각으로 전달되는 뉴스와 정보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란에 대한) 우리의 독자적 시각”을 갖는 것은 테헤란 대학에서 중동정치학을 공부한 한국인 유학생 1호인 유달승 한국외대 교수가 이 책을 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한 개인의 삶은 그 사회의 역사, 문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며, 1979년 이슬람 혁명이 “아무런 배경도 없이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신학을 공부하고 “절대적 정의가 구현되는 정부”를 꿈꿨던 호메이니는 사회 현실에 눈감는 보수적 이슬람원리주의인 ‘와하비즘’을 비판하면서 정치적 발언을 시작했다. 그에 대한 민중들의 지지가 높아갈수록 팔레비 왕조는 그를 박해했다.
1979년, 호메이니는 오랜 망명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이슬람혁명을 주도했다. 구호는 크게 세 가지였다. 자유, 자주, 이슬람공화국. “이슬람혁명은 반제반봉건 혁명”이었던 셈이다. 특히 이슬람 공화국은 일찍이 없었던 정치실험이자 자존의 청사진이었다. 이란은 이미 1905년 입헌혁명을 시도했을 만큼 중동 아랍지역에서 정치적으로 앞선 나라다. 호메이니의 원대한 꿈도 이슬람 가치와 근대 민주주의 원칙을 결합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힘의 논리는 세계 2위의 원유 매장량과 절묘한 지정학적 위치를 지닌 이란을 가만 두지 않았다. 영국과 미국은 이란의 내정에 끊임없이 개입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이란 정부를 전복하고 왕정을 부활시키는 쿠데타 공작을 꾸몄다. 호메이니는 “제국주의자들이 장악한 억압 정부를 타도하고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정의로운 이슬람 정부를 건설”할 것을 주창했다. 그 결과 다른 어느 나라보다 강력한 신정체제가 등장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다.
딱딱한 정치, 역사, 시사 문제들을 현장중계하듯 생동감 넘치게 서술한 것은 이 책의 미덕이다. 상황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사실적인 묘사는 마치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는 것 같은 감칠맛이 있다. 페르시아어를 쓰는 인도·유럽어족-아랍어를 쓰는 샘족, 조로아스터교-이슬람교, 칼리프-이맘, 시아파-수니파 등 이란과 주변국의 역사·문화적 특징들에 대한 풍부하고 재미있는 배경 지식들도 곁들였다.(조일준 기자)
09. 11. 14.


P.S. 개인적으로 닐 퍼거슨의 기고문에서 챙긴 것은 소련의 붕괴에 관한 몇 권의 연구서이다. 냉전사의 권위자인 존 루이스 개디스의 책이 표준적이라고 하고, 스티븐 코트킨이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고 있는 수정주의자라 한다. 코트킨의 책으론 <저지된 대결전>(2001/2008)과 <비문명사회>(2009) 등이 있다. 전자는 소련이 1970년대를 버텨낸 건 오로지 고유가 덕분이었다고 지적하며, 후자는 서방 지도자는 물론 동유럽 반체제 인사도 소련 붕괴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고. 흥미를 끄는 내용들이어서 한번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