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을 맞아 밀린 일들을 해치우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밀린 피로를 푸는 하루가 되었다. 하긴 좋지 않은 컨디션에서 생산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없을 터이니, 좋은 휴식도 일 못지 않게 중요하다. 서재 일도 꽤 밀려 있지만 그냥 느긋하게 '이주의 발견'에 대해서만 적기로 한다(아직 연휴에 여유가 있다는 게 비빌 언덕이다). 윌리엄 데레저위츠의 <공부의 배신>(다른, 2015). '왜 하버드생은 바보가 되었나'가 부제다. 하버드대보다는 예일대의 사례가 많이 나오고 있음에도 그렇게 붙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청어람미디어, 2002)를 염두에 둔 제목이겠다.



원저의 부제는 '잘못된 미국 엘리트 교육과 의미 있는 삶의 길'이다. <똑똑한 양떼>가 원제. 예일대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던 저자가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자아성찰과 고독, 정신적인 삶의 가치 등에 대해서 생각해보라고 말하자, 한 학생이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반문했단다. "우리가 그저 '똑똑한 양떼'에 불과하다는 건가요?" 책의 제목은 그 질문에서 가져온 듯한데, 저자의 과녁은 공부 잘하는 우수한 학생들을 결국은 '똑똑한 양떼'로 만드는 데 그치는 엘리트 교육 시스템이다. 학생에서 교수까지 아이비리그에서 24년을 보낸 저자는 이렇게 토로한다.
엘리트 교육 시스템은 똑똑하고 유능하며 투지가 넘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하고 소심하고 길을 잃고 지적 호기심이라고는 거의 없는, 목표의식이 부족한 학생들을 만들어낸다. 이들은 특권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같은 방향으로 온순하게 걸어간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지만, 왜 그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
이런 문제의식을 담은 '엘리트 교육의 허점'이란 평론을 저자는 2008년에 발표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공부의 배신>은 이를 더 자세하게 다룬 책이다. 찾아보니 뉴욕타임스와 뉴요커에 장문의 서평이 실렸고 베스트셀러에도 올랐다. 미국의 대학사회에 여론 주도층에 꽤 어필한 책으로 보이는데, 미국의 '좋은 대학'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책이 국내에서는 어떤 반응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대학평가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대학들 아닌가). 추천사를 쓴 김정운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은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좋은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이 책을 무조건 읽어야 한다. '후진 대학'에 다닌다는 열등감에 젖어 있는 학생들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읽어야 한다. 사교육 기관의 '불안 마케팅'에 마음 졸이는 부모들도 한번쯤 펼쳐봐야 한다. '좋은 대학'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모든 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도대체 '좋은 대학'이 왜 한국사회에 필요한지 고민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중간시험을 치르고 며칠 휴식을 취하고 있을 중고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한번 일독해봄직하다(학생들이 시간이 없다면 학부모라도).



한편 저자는 제인 오스틴 전문가이고 <제인 오스틴의 교육>(2011)이란 책을 갖고 있다. <제인 오스틴에게 배우는 사랑과 우정과 인생>(재승출판, 2011)이라고 번역된 책이다(저자가 '윌리엄 데리지위츠'로 표기돼 있다). 학술서로는 <제인 오스틴과 낭만주의 시인들>(2005)이 있다. 오스틴에 대해서는 종종 강의를 하게 되기에 관심이 가는 책들이다...
15. 05. 01.



P.S. 참고로, 미국 대학교육의 문제점을 다룬 책은 몇 권 나와 있다. 다시 언급하자면, 소스타인 베블런의 <미국의 고등교육>(길, 2014), 앤드류 해커 등의 <비싼 대학>(지식의날개, 2013), 프랭크 도너휴의 <최후의 교수들>(일월서각, 2014) 등이다. 우리의 현실과는 다른 면도 있지만,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그럴 만한 역량이 우리에게 있는지는 의문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