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분야에 속하지만 좀 생소한 제목의 책 두 권을 묶는다. 조슈아 알렉산더의 <실험철학>(필로소픽, 2015)과 루이스 부치아렐리의 <공학철학>(서광사, 2015)이다. 각각 입문서 성격의 책.

 

 

좀더 도발적인 것은 <실험철학>인데, '실험철학' 자체가 새로운 분야이자 '철학운동'이라 한다.

실험철학은 철학 및 메타철학의 문제들을 연구하기 위해 심리학과 인지과학의 실험조사 방법을 사용하는 혁신적인 분야이다. 이 책은 실험철학의 목적과 방법을 전통적 분석철학과 비교하여 세부적이고 도발적으로 소개한다. 또한 실험철학의 전혀 다른 철학적 강령, 강점과 약점 및 철학에 대한 기여를 고찰하고, 역사적 맥락을 검토하며, 그에 대한 비판도 함께 다룬다. 

<공학철학>은 '공학과 철학'이란 주제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룬다.

루이스 L. 부치아렐리가 네덜란드의 델프트 공과대학에 초빙교수로 강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저술한 책. 저자는 공학과 철학이 서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엔지니어들이 자신들의 디자인을 충분히 생각하고, 자신들의 생산품에서 발견되는 오작동을 다루며, 그들이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방식은 우리가 철학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을 경우 더 잘 이해된다고 말한다.

여하튼 두 권 모두 이공계 전공자들이 더 관심을 가질 만한 철학서란 점에서 공통적이다.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다...

 

15.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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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 베스트셀러에까지 올라온 에코 앤솔로지 시리즈의 신간 <전설의 땅 이야기>(열린책들, 2015)를 어떻게 할 것인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에 더 눈에 띄는 책이 고민을 없애주었다. <글래머의 힘>(열린책들, 2015). 부제는 '시각적 설득의 기술'인데, 가격이 <전설의 땅 이야기>의 절반도 안 된다(<궁극의 리스트>도 같은 시리즈의 책이다). 분량은 똑같이 480쪽.

 

 

소개에 따르면, "사회과학 전반과 패션을 활동 무대로 하는 작가이자 칼럼니스트, 강연자인 버지니아 포스트렐은 글래머가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또 이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탐구한다." 저자는 '글래머에 대하여'라는 TED 강연으로도 유명하다고. 여하튼 '글래머의 힘'과 '전설의 땅' 사이에서 아주 잠깐 망설이다가, 나는 <글래머의 힘>을 주문하기로 했다. 심지어 원서도. <전설의 땅 이야기>를 구입할 비용이면 그 정도는 카바가 될 수 있기에. 이런 게 '글래머의 힘'이 아닐까...

글래머란 무엇일까? 이 단어를 들을 때 한국인이라면 십중팔구 한 가지 이미지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바로 <(가슴이) 풍만한 여자>. 그러나 글래머는 사실 <풍만함>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딱히 <여성>을 지칭하는 말도 아니다. 글래머는 사전적으로 화려함과 매력, 부티, 귀티 등을 뜻하는 중의적인 단어다. 그래서 하나의 단어로 옮기기가 무척 까다롭다. 사회과학 전반과 패션을 활동 무대로 하는 작가이자 칼럼니스트, 강연자인 버지니아 포스트렐은 이 책에서 글래머가 진정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또 이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탐구한다. 포스트렐에 따르면 글래머란 시각으로 설득하는 수사학, 즉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이다. 글래머는 관객에게 말을 건다. 그로 하여금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매력>을 느끼게 만들고, 상상하고 열망하도록 나아가 실제로 행동하도록 설득하는 마법과도 같은 장치이자 기술이다.

15.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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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 마이클 무어와 프랜시스 골딘이 엮은 <사회주의 미국을 상상하다>(어마마마, 2015)를 고른다. "미국에서 사회주의를 지향하며 활동하고 있는 교수, 영화감독, 작가, 언론인, 변호사, 인권 및 노동운동가 등 다양한 직업의 저자들이 현대 미국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파헤치고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다양한 분야의 상상력을 펼치면서 미래의 사회주의 국가로서 미국의 비전을 제시한 책이다. 정치체제, 경제구조, 법률, 여성노동, 주택문제, 교육, 의료, 예술, 과학기술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 30여 편의 글을 모았다."

 

 

잠시 '사회주의 한국을 상상하다'란 제목의 책이 나올 수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별로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그런 상상 자체가 불온시되는 게 분단체제의 또다른 대가이리라.

 

한편 <사회주의 미국을 상상하다>가 떠올려주는 책은 세이무어 마틴 립셋의 <미국 예외주의>(후마니타스, 2006)다. 바로 부제가 '미국에는 왜 사회주의 정당이 없는가'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역사, 특히 민주주의의 발달 역사는 유럽과는 크게 상이하다. 사회주의가 민주주의 발전에 중심적인 역할을 한 유럽의 여러 학자들은 신생 국가였던 미국이 곧 자연스레 사회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은 그러한 발전 경로를 완전히 벗어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나아갔다. 이렇게, 미국은 어느 나라와도 다르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이 말하는 '미국 예외주의'이다. 이 책의 의문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미국에는 왜 사회주의 정당이 없는가"라는 부제처럼, 왜 미국에서는 사회주의가 실패했는가, 왜 미국은 지금까지의 예외적인 경로를 걷게 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풀어보고자 하는 것. 정치학자로서 평생에 걸쳐 미국 예외주의를 연구해온 지은이가 그 해답을 제시한다.

곧 사회주의 미국에 대한 상상은 '미국 예외주의'와 충돌한다. 미국의 예외적인 경로가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일까. 미국 예외주의는 아직도 유효할까. 이모저모 생각할 거리들이 생긴다. 그런 의미에서도 같이 읽어봄직하다...

 

15. 10.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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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미우라 쿠니오의 <인간 주자>(창비, 1996)를 읽고, 너무 소략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280쪽 분량이어서 평전으로는 가벼운 축에 속하는 책이었다. 당시로선 주자에 관한 유일한 평전이 아니었나 싶은데, 그래도 좀더 분량이 있는 책이 나오면 좋겠다 싶었다. 수징난의 <주자평전>(역사비평사, 2015)이 예고되었을 때 '드디어 나오는군!'이란 느낌을 가졌던 건 그 때문이다.

 

 

그리고 실물이 나왔다. 한데, 상하권 2,400쪽 분량에 책갑만 해도 90,000원대에 이른다(10% 할인가가 88,200원이다). 내가 예상한 분량의 서너 배가 넘는다! 이 정도로 자세한 평전이 나올 만큼 주자에 대해서 그렇게 많은 정보가 알려져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좀 과하다는 느낌이다. '주자 매니아'라도 되지 않는 이상 쉽게 책을 손에 들기는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게다가 독파하려고 한다면 일주일은 꼬박 소요될 듯하다).

 

<인간 주자>가 좀 모자란 듯했다면, <주자평전>은 많이 넘친다. 그게 주자에 대한 내 관심이나 기대치에 비추어 그렇다는 얘기니 독자들마다 사정은 다를 것이다. <인간 주자>도 과도하게 여겨질 독자도 있을 터이고, <주자평전>의 압도적인 분량이 흐뭇한 독자도 없으란 법이 없다. 

주희의 탄생에서 청소년기를 거쳐 학자로서의 삶,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의 인생이 상세히 펼쳐진다. 그의 위대한 학문이 여러 학자와의 논변을 거쳐 완성되어가는 과정은 물론이고, 과거에 급제한 뒤 외직으로 보임되어 지방관으로서 펼친 행정, 그리고 평생 고종, 효종, 광종, 영종이라는 네 황제를 섬겼지만 조정에서 경연관으로 실제로 근무한 것은 고작 46일에 불과한 기간에 펼친 정치 이론이 생생하게 전개되고 있다.

여하튼 <주자평전>은 내 관심을 초과한다. 관심 작가의 평전이었다면 또 느낌이 다를 수 있겠지만, 국내 소개된 니체나 헤겔 평전보다 몇 배 두꺼운 주자평전을 읽는다는 건 나로선 과욕으로 여겨진다. 그저 노작이 번역됐다는 사실에 만족할 따름이다...

 

15. 0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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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좀 길다. <왜 우리는 행복을 일에서 찾고, 일을 하며 병들어 갈까>(책세상, 2015). 대개의 직장인이라면 바로 공감하지 않을까. 부제는 '번아웃 시대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 저자는 요아힘 바우어로 독일의 신경생리학자다. 알게 모르게 꽤 많은 책들이 소개된 저자(알라딘에서는 '요하임 바우어'란 오기로도 검색된다). 그 가운데 <공감의 심리학>(에코리브르, 2006)이 반응이 좋은 편. 그리고 아마도 이번 책이 어필할 만하다.

 

노동이 우리의 삶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여, 노동으로 인한 건강 문제의 원인을 밝히고 일과 조화를 이루는 행복한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책. 노동은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인지, 과거의 노동 환경은 어떠했는지, 노동의 가치는 어떤 사상적 맥락에서 형성되었는지, 일과 삶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지 등 노동과 관련된 다양한 담론을 신경생물학적, 심리적, 철학적, 역사적 관점에서 고찰한다.

 

 

노동 문제를 다룬 책으로 눈에 띄는 국내서는 김혜진의 <비정규 사회>(후마니타스, 2015)다. "비정규직 사회를 보여 주는 한편,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는 아이러니를 넘어선 세상을 상상하는 책"이다. 노동현실의 또다른 지표가 '최저시급'인데, 2016년 최저시급 6030원의 결정과정을 다룬 <이런 시급 6030원>(북꼼마, 2015)도 시급노동자들이 필독해볼 만하다. 글로벌 노동시장에서의 노동 착취에 대해서는 코린 코리아의 <보이지 않는 손>(나눔의집, 2015)도 '보이는 책'이다. '16인의 노동자들이 들려주는 노동착취의 현실'이 부제. 어떻게 나온 책인가.

노동자의 삶을 통해 글로벌 경제의 이면을 들려주는 책. 저자는 "이 물건을 만든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라는 호기심 어린 궁금증으로 전 세계의 노동자들을 만나 구술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아동노동, 강제노동, 저임금, 장시간 노동, 불안정 고용, 열악한 노동환경, 이주노동자라는 불안한 신분 등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관련 문제들을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 듣게 되었다.

 

대체로 노동 문제를 다룬 책들의 판매는 저조한 편이다. 책에서 다루는 저임금 노동자들이 책의 독자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송곳>의 독자이기는 할까. 그런 현실을 고려한다면 다른 형식의 책이 필요해 보인다...

 

15. 0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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