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이나 외신이나 별로 좋은 뉴스가 없는 아침에 눈에 띈 책 두 권에 대해 간단히 적는다. 관심분야(지적 '나와바리'라고 할까)의 책들이어서인데, 조너선 컬러의 <문학이론>(교유서가, 2016)과 노엘 캐럴의 <비평철학>(북코리아, 2015)다. <비평철학>은 발행일이 작년말인데 왜 이제야 신간으로 올라오는지 모르겠지만.

 

 

예일대에서 영문학과 비교문학을 강의하는 컬러의 <문학이론>은 이미 동문선에서 같은 제목으로 한 차례 나왔던 책이다. 이번에 '첫단추 시리즈'로 다시 나왔는데, 원저는 '아주 짧은 입문서' 시리즈의 하나다. 저자는 <구조주의 시학>이란 책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문학 전공자들 외에는 친숙한 이름이 아닐 듯하다. 다만 <문학이론>은 좀더 폭넓게 읽힐 수 있는 책이다(라고 적지만, 사실은 대학 영문과생 정도는 돼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대개의 문학이론서들처럼 다양한 비평 학파를 소개하는 대신에 이론적인 주제 혹은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게 특징이다.

 

 

문학이론 입문서로 가장 많이 읽히는 테리 이글턴의 <문학이론 입문>(창비, 1989)를 제외하면(여러 차례 언급했다) 라만 셀던(레이먼 셀던)의 <현대문학이론>이 표준적인데, 국내에도 번역본이 여러 종 나왔었다. 가장 최근에 나온 <현대문학이론>(경문사, 2014)은 원저 5판을 옮긴 것이다(영어권에서도 교과서 격으로 읽히는 듯하다). 이 책이야말로 학파별(입장별)로 문학이론을 소개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노엘 캐럴에 대해서는 영화이론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관심분야가 넓다. 예술철학과 문학철학까지 다 카바하고 있다(작년에 나온 루틀리지 컴패니언 시리즈 <문학철학>의 편집자이기도 하다). 이번에 나온 건 '행동하는 지성' 시리즈의 <비평에 대하여>(원제)다.  

"비평에 대한 본질과 요소를 알려주는 책. '비평'은 '분리하다'를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왔다. 저자는 비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에 적절한 제대로 된 의미의 비평은 단순한 의견 제시 이상으로 객관적일 수 있다고 믿는다. 비평적 판단을 함에 있어서 많은 양의 사실적인 문제들이 객관적으로 확인될 수 있고, 그래서 이들이 비평적 주장의 참인지 거짓인지, 그럴듯한지 아닌지를 지지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평이 본질적으로 이유에 근거한 평가라는 가설을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원저 표지에 워홀의 브릴로 박스가 자리하고 있는 걸로 보아 비평에서도 예술비평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미학 전공자인 이해완 교수가 역자다). 아서 단토의 추천사는 이렇다. "이런 책은 없다. 명료하고 날카로우며, 위트가 있고 영리하며, 전문적이고 인정이 넘친다. 읽고 나면 독자들은 더 나은 평론가, 분명히 더 나은 철학자가 된다." 그런 점에서는 <문학이론>도 마찬가지겠다. 최소한 더 나은 독자가 되게끔 해줄 것이다...

 

16. 03.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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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서울은 아니다. <데카르트의 사라진 유골>(옥당, 2013)의 저자 러셀 쇼토에 따르면 암스테르담이다. 삼일절 아침에 불경한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책제목을 보자 문득 이곳을 떠나고 싶어졌다. 간다면 암스테르담. '이주의 발견'으로 꼽는다.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도시, 암스테르담>(책세상, 2016).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암스테르담에 있는 '존애덤스연구소(John Adams Institute)'의 소장으로 일하면서 암스테르담에 깊이 매료된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러셀 쇼토의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암스테르담 곳곳을 누비면서 직접 수집한 역사적인 사건들과 이야기를 경쾌하고 위트 있는 문장으로 전한다. 암스테르담의 전 시장 요프 코헌, 안네 프랑크와 어린 시절 함께 뛰놀았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가 죽음의 문턱에까지 다녀온 프리다 멘코, 1960년대에 '프로보운동'을 이끌었던 룰 판 다윈 등 역사의 산 증인과 나눈 인터뷰 내용들은 이 도시에서 화려하게 피어난 '자유'와 '진보'의 역사를 생생하게 구체화한다."

어떤 도시를 방문할 때 필참해야 할 책이 있다는 건 다행한 일이다. 나처럼 없던 욕망도 부추기는 책.

 

 

암스테르담 관련서라면 이언 매큐언의 <암스테르담>과 데이비드 리스의 <암스테르담의 커피 상인> 등도 찾아볼 수 있지만 모두 절판됐다. 암스테르담이 배경인 소설. 남은 건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마로니에북스, 2009) 정도.

 

 

내게 '물위의 도시' 암스테르담을 떠올리게 하는 가장 강력한 책은 카뮈의 <전락>이다. 이 역시 암스테르담이 배경인 소설. 그리고 아주 오래전에 쓴 자작시('물위의 암스테르담')의 일부.


태엽이 풀리는 소리에 잠이 깬다 눈이 감긴다 눈을
뜬다, 눈을 뜨면 간장에 물 탄 듯이 아침은 온다 

2  
나는 점점 더 나빠져 가는 그이들의 예절을 얘기하고 있는 거야
나는 그런 얘기나 반나절 동안 주절거리고 있는 거야
지금 제대로 듣고 있는 거야, 제대로 듣고 있냐고?
나는 한 나무의 변두리에 주저앉아 눈에 익은 그림자들을 보고 있어
나는 이때쯤 살갗에 모이는 소금들을 부끄러워하지 
나는 이젠 더 참을 수 없는 그이들의 예절을 얘기하고 싶어
나는 등나무 꽃 그늘 아래로 옮겨갈 테야

눈물보다도 맑은 물위에 눈꽃들이 떨어지는 걸 보고 싶어 

(...)

그래 그이들의 예절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 자꾸 떠나고 싶어지는 이유겠다...

16. 03.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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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테러방지(빙자)법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제목으로는 '이주의 책'에 딱 부합하는 책이 나왔다.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문학동네, 2016).

 

"저자 스르자 포포비치는 뭔가 사소한 것, 적절한 것, 그러면서도 성공적일 수 있는 것, 그것 때문에 죽거나 심한 폭력을 당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크게 꿈꾸고 작게 시작하기, 미래에 대한 비전 갖기, 웃음행동주의 실천하기, 탄압에 역풍 불러일으키기가 비폭력 운동의 토대라면, 이를 견고하게 쌓아올릴 비폭력 투쟁의 기본 원칙이 운동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 스르자 포포비치는 세르비아 출신의 사회운동가. 그리고 책은 만화다, 라고 착각했지만 아니다. 알고 보니 굽시니스트의 웹툰이 책소개에 들어가 있을 뿐이다. 저자의 새로운 혁명론은 직접적인 경험에서 나왔다.

"1990년대 중반, ‘인종 청소’라는 말로 유명한 독재자 밀로셰비치의 폭압하에 있던 세르비아의 한 기타리스트는 새로운 전략을 제안한다. 바로 ‘비폭력 행동주의’였다. 그러나 그가 이야기하는 ‘비폭력주의’는 간디나 마틴 루서 킹 목사에게 없었던 한 가지, ‘유머’를 핵심전략으로 삼았다. 포포비치는 상투적이고 반복적이어서 그 누구의 관심도 더이상 쉽게 끌어내지 못하는 집회 방식에서 벗어나, 록 콘서트처럼 역동적이고, 누구나 원할 만큼 ‘힙’하며,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넘치는 시위 방법을 제안한다. 너무나 잔혹해서 아무도 그를 쓰러뜨릴 수 없다고 여겨졌던 세르비아의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오트포르! 운동의 시작이었다."

 

만화가 굽시니스트의 추천사가 핵심을 짚고 있다. 

"독재 타도에 있어서 산전수전 다 겪은 한국인들 앞에서 세르비아인들이 감히 뭔가 아는 척할 거리가 있다고? 가소로운 기분이 들 수 있겠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한국인들의 영광은 이미 옛것이 되었고, 독재 타도의 최신 트렌드는 세르비아인들이 선도해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재 타도 시장에 한류 열풍을 다시 불러일으키기 위해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도 한때는 독재를 무너뜨린 전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도대체 언젯적이란 말인가. 아, 옛날이여...

 

16. 0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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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를 제목으로 단 두 권의 책을 같이 묶는다. 인류학자이자 사회운동가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관료제 유토피아>(메디치미디어, 2016)와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사회주의, 생동하는 유토피아>(오월의봄, 2016)다. 의미가 같지는 않다. 바우만의 사회주의 유토피아가 지속적인 탐험과 지향점을 뜻한다면, 그레이버의 관료제 유토피아(원제는 '규칙의 유토피아')는 반어적인 명명이다.

 

 

<관료제 유토피아>의 요지는 책소개를 통해서 대략 어림해볼 수 있다. '관료제 유토피아'란 말은 '전면적 관료화'의 의미로 이해해도 좋겠다.

"저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현대 사회가 '전면적 관료화'가 된 현상에 주목한다. 정부 업무는 말할 것도 없고, 대기업, 금융, 학교에도 관료주의가 널리 퍼져있다. 권력 기관은 제도와 규제처럼 당연해 보이는 규칙을 통해 개인들을 손쉽게 통제한다. 절대왕정 시대와 비교하면 세상은 훨씬 더 관료제화 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신자유주의 시대가 옳고 그름을 떠나, '자유'라는 단어 자체가 모순이다. 저자는 현대 자본주의와 관료제 사이의 끈끈한 밀월관계와 이로 인해 파생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낱낱이 파헤친다. 또한 우리가 불만 속에서도 관료주의 체제에 속수무책으로 사로잡혀 있을 수밖에 없는 온갖 종류의 속임수나 덫들에 관해 조명하고, 우리가 자발적으로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하게 해준다."

 

그레이버의 책은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그린비,2009)이 처음 소개된 이후, <부채>(부글북스, 2011), <우리만 모르는 민주주의>(이책, 2015) 등이 출간되었다. 추세를 보아 마샬 살린스와 공저한 <왕들에 대하여>(2016)도 번역되지 않을까 싶고, 이 역시 기대되는 타이틀이다.

 

 

사회주의란 말은 역사적으로나 의미가 너무 확장되어 그 자체로는 심지어 모호해 보인다. '어떤 사회주의?'라는 질문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데, 바우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바우만의 사회주의란 어떤 사회주의인가를 먼저 물어야겠다. '생동하는 유토피아'라고 답할까?

"저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원래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연구하는 학자였고, 열렬한 사회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런 바우만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책이며, 또한 노골적으로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책이다. 그리고 바우만의 현대성 분석과 소비사회 비판이 왜 시작되었고, 어디에서 나왔는지 그 맥락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현대사회에 사회주의라는 '생동하는 유토피아'가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탐험한다. 현대사회의 유토피아로서 사회주의의 역할을 분석하고, 사회주의를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반문화로 제시하면서 오늘날의 사회주의가 가야 할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다."

원저는 2010년작. 이제껏 그래왔듯이 올해도 바우만의 책은 여러 권 소개될 듯싶다.

 

 

그 전에 밀려 있는 바우만도 몇 권 빨리 해치워야겠다. 읽는 속도가 쓰는 속도를 못 따라가다니...

 

16. 0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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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라고 적었지만 주관적인 느낌에 그렇다는 것이다) 키에르케고어에 관한 책이 출간됐기에 '이주의 발견'으로 고른다(키에르케고어의 이름 표기는 아직도 고정이 안 된 듯하다. '키에르케고르'와 '키에르케고어' 외에도 '키르케고르'와 '키아케고어'까지 쓰인다. 애초에 통용되던 키에르케고르를 현지 발음을 이유로 흔든 게 문제였고, 학계나 출판계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게 그 다음 문제다). 아르네 그뤤의 <불안과 함께 살아가기>(도서출판b, 2016). '키에르케고어의 인간학'이 부제다.

 

"저자 아르네 그뤤은 <불안의 개념>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해명으로 시작해, 불안의 문제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키에르케고어 인간학의 다른 핵심적인 주제들로 나아간다. 불안과 직간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실존', '자유', '절망', '역사', '윤리', '믿음', '시대비판' 등을 나머지 9개의 장에서 하나하나씩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것이다. 불안이라는 실존적 '근원현상'에서 출발하여 키에르케고어 사상 전반에 관한 균형 잡힌 조망을 획득할 뿐 아니라, 그의 인간학의 중심 모티브와 주제들에 대한 적확한 해석, 나아가 이들 사이의 복합적인 연관성에 대한 명료한 이해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

저자는 덴마크 철학자로 코펜하겐대학 교수이며 '키에르케고어 총서'의 공동편집자. 곧 키에르케고어 전문가다. 말의 좋은 의미에서 교과서적인 책이라고 해야겠다. 이번에 알게 되었는데, 같은 주제를 다룬 국내서로는 안상혁의 <불안, 키에르케고어의 실험적 심리학>(성균관대출판부, 2015)이 나와 있다. 미학 전공자의 책이란 점이 특이하다.

 

 

키에르케고어의 <불안의 개념>은 국내에 3-4종의 번역본이 있다. 나는 세 권을 갖고 있는데, 막상 찾으려고 하니 한권만 책장에 꽂혀 있다. 마땅한 가이드북이 나온 김에 오래 미뤄둔 독서에 나서도 좋겠다, 싶지만, 흠, 강의와 원고 일정을 생각하면 무리겠다. 더 불안해지면 읽어보는 걸로 해야겠다...

 

16. 0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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