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미우라 쿠니오의 <인간 주자>(창비, 1996)를 읽고, 너무 소략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280쪽 분량이어서 평전으로는 가벼운 축에 속하는 책이었다. 당시로선 주자에 관한 유일한 평전이 아니었나 싶은데, 그래도 좀더 분량이 있는 책이 나오면 좋겠다 싶었다. 수징난의 <주자평전>(역사비평사, 2015)이 예고되었을 때 '드디어 나오는군!'이란 느낌을 가졌던 건 그 때문이다.

 

 

그리고 실물이 나왔다. 한데, 상하권 2,400쪽 분량에 책갑만 해도 90,000원대에 이른다(10% 할인가가 88,200원이다). 내가 예상한 분량의 서너 배가 넘는다! 이 정도로 자세한 평전이 나올 만큼 주자에 대해서 그렇게 많은 정보가 알려져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좀 과하다는 느낌이다. '주자 매니아'라도 되지 않는 이상 쉽게 책을 손에 들기는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게다가 독파하려고 한다면 일주일은 꼬박 소요될 듯하다).

 

<인간 주자>가 좀 모자란 듯했다면, <주자평전>은 많이 넘친다. 그게 주자에 대한 내 관심이나 기대치에 비추어 그렇다는 얘기니 독자들마다 사정은 다를 것이다. <인간 주자>도 과도하게 여겨질 독자도 있을 터이고, <주자평전>의 압도적인 분량이 흐뭇한 독자도 없으란 법이 없다. 

주희의 탄생에서 청소년기를 거쳐 학자로서의 삶,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의 인생이 상세히 펼쳐진다. 그의 위대한 학문이 여러 학자와의 논변을 거쳐 완성되어가는 과정은 물론이고, 과거에 급제한 뒤 외직으로 보임되어 지방관으로서 펼친 행정, 그리고 평생 고종, 효종, 광종, 영종이라는 네 황제를 섬겼지만 조정에서 경연관으로 실제로 근무한 것은 고작 46일에 불과한 기간에 펼친 정치 이론이 생생하게 전개되고 있다.

여하튼 <주자평전>은 내 관심을 초과한다. 관심 작가의 평전이었다면 또 느낌이 다를 수 있겠지만, 국내 소개된 니체나 헤겔 평전보다 몇 배 두꺼운 주자평전을 읽는다는 건 나로선 과욕으로 여겨진다. 그저 노작이 번역됐다는 사실에 만족할 따름이다...

 

15. 0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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