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분야의 책 두 권을 '이주의 발견'으로 고른다. 글렌 그린월드 등의 <감시국가>(모던타임스, 2015)와 요시다 도오루의 <정치는 감정에 따라 움직인다>(바다출판사, 2015)다. '스노든 시리즈'의 두번째 책으로 나온 <감시국가>는 '국가감시에 관한 우리 시대 정상급 논객들의 라이브 토론 배틀'이 부제다. 어떤 책인가.

 

미 국가안보국의 무차별 감시에 관한 세계 정상급 논객들의 멍크 디베이트를 엮었다. 멍크 디베이트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연 2회 각 분야의 최고 권위자나 전문가가 특정 주제를 놓고 벌이는 토론회다. 2인 1조를 이룬 패널들이 일종의 토론 배틀을 벌인다. 토니 블레어, 헨리 키신저, 니얼 퍼거슨, 폴 크루그먼 등 최고의 권위자와 석학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어 지적 쾌감을 줄뿐 아니라, 토론 전후로 찬반 투표를 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의 생각이 바뀌는지, 어느 팀이 승리했는지 보는 재미도 준다. 

국가의 무차별 감시는 물론 미국의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대테러 방비를 명분으로 국정원의 권한을 강화하려는 '테러방지법'이 국회에 계류중이기 때문이다. 법안이 통과된다면 더 강화된 감시와 무차별 사찰은 손바닥 보듯이 예견되는 상황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학습하기 위해서라도 일독해봄직한 책이다.

 

 

<정치는 감정에 따라 움직인다>는 '이성의 정치를 뒤집는 감정의 정치학'이 부제다. 감정사회학에 견주어 감정정치학이라고 줄여 부를 수 있겠다.

저자는 실제 정치를 움직이는 것이 이성보다는 감정임을 보여 준다. 그동안 간과했던 정치가 지닌 비합리성 혹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성 때문에 생겨나는 정치의 측면을 밝힌다. 그렇게 정치를 파악하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의 측면을 밝히기 위해 저자는 여러 학자의 이론과 사례, 한나 아렌트를 비롯한 많은 사상가의 담론 사이를 종횡무진 누빈다.

사실 그동안 '간과했다'는 사실 자체가 미스터리일 정도로 정치는 이성이 아닌 감정에 좌우돼왔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이익(돈)이 있겠다.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감정이 더 나은 정치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한 독자라면 역시 손에 들어봄직하다...

 

15.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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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고대사에 관한 책 두 종을 같이 묶는다. 고전학자 제임스 롬의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눈물>(섬섬, 2015)과 콜린 맥컬로의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의 두번째 이야기 <풀잎관(전3권)>(교유서가, 2015)이다.

 

 

<알렉산드로스>가 다루는 건 알렉산드로스의 사후10-20년이다. 광대한 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드로스가 불과 32살에 갑작스레 죽었다. 공식적인 후계자가 없는 상태에서 그가 남긴 말은 "가장 강한 자에게" 한마디였다고. 가장 강한 자가 그가 남긴 제국의 왕관을 쓰라는 것이다. 이후엔 물론 예측가능한 일이 벌어진다. "제2의 알렉산드로스가 되려는 자들이 벌이는 죽음의 후계자 시합. 무덤 속 비밀로 봉인되었던 제국의 야망과 전쟁과 몰락. 역사상 가장 뜨겁고 잔혹했던 알렉산드로스 사후 10년이 펼쳐진다."


시황제의 진제국과 마찬가지로 알렉산드로스의 제국도 그의 사후 그냥 흐지부지하다 몰락한 것으로만 알고 있는데, 자세한 내막이 펼쳐진다니까 흥미를 갖게 된다. 저자 롬 교수에 대해서 "존경스런 학자인 동시에 타고난 스토리텔러"라고 한 평판도 기대치를 높여준다. 저자는 로마시대를 다룬 책도 갖고 있는데, <네로의 법정에 선 세네카> 같은 책이다. 세네카 이야기도 알렉산드로스의 이야기만큼이나 흥미진진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 여름에 나온 1부 <로마의 일인자>에 이어서 겨울을 문턱에 두고 2부 <풀잎관>이 나왔다. 전자가 여름휴가용이었다면 후자는 겨울나기용이라고 할까(7부작 대작의 이제 2부이므로 아직도 긴 여정을 남겨놓고 있다). 제목의 '풀잎관'은 로마 최고의 군사 훈장이라 한다.

1부 <로마의 일인자>에서는 그리스어도 못하는 이탈리아 촌놈으로 재력을 가진 군인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카이사르 가문과 정략결혼을 함으로써 출신의 콤플렉스를 보완하고 양극화가 절정에 달한 시대의 틈을 활용해 특유의 정치력과 수완으로 로마 최고의 권력자로 자리잡는 모습을 그렸다면, 2부 <풀잎관>에서는 주인공이 술라다. 술라가 본격적으로 야망을 드러내며, 전성기를 지나 노쇠한 마리우스의 그늘을 벗어나 그와 겨루면서 목숨 건 투쟁을 펼친다.한 <풀잎관>의 주요 줄기인 로마에 대한 이탈리아인들의 불만과 폰토스의 왕 미트리다테스 6세의 야욕으로 인한 로마와의 참혹한 전쟁, 나아가 이로 인해 복잡하게 얽히는 로마 내부의 정세와 인물들 간의 갈등 장면에서 역사와 스토리를 엮는 저자의 뛰어난 역량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로마의 일인자>에서도 그랬지만 말 그대로 로마의 목욕탕 속에 푹 잠기게끔 하는 강력한 스토리텔링의 힘을 다시 한번 기대해봐도 좋겠다...

 

15. 11. 21.

 

 

P.S. 컬린 맥컬로판 '로마인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읽을 거리이지만, 로마사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켜줄 수 있는 '살아있는 역사'이기도 하다. 길잡이가 될 만한 가이드북들과 같이 읽는다면 금상첨화겠다. <처음 읽는 로마사>(교유서가, 2015)를 출발점 삼아서 <로마 공화정>과 <로마 제국>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추천할 만하다. 하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으니 정해진 경로가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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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책이 또 한권 번역되었다. <변화의 주체>(논밭출판사, 2015). 제목이 생소해서 찾아보니 원저는 유럽대학원 강의록(영어판)으로 2013년에 나온 책이다.

 

바디우는 2010~12년 사이에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세계를 바꾼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주제로 일련의 강의를 하였고, 같은 주제를 가지고 2012년 여름에 스위스의 사스페(Saas-Fee)에 자리한 유럽대학원(European Graduate School)에서 영어로 강의하였다. <변화의 주체>는 바로 유럽대학원에서 2012년 8월 8일~13일에 걸쳐 이루어진 일련의 강의에 대한 녹취록이다.

강의록인 만큼 분량이 많지는 않다. 원저는 142쪽 분량. 하지만 번역본은 395쪽으로 두 배가 훌쩍 넘는다. 이유는? 역자의 이전 번역작인 <모호한 재앙에 대하여>(논밭출판사, 2013)에 대해 언급할 때 지적한 바 있는데, '역자의 번역노트' 때문이다. 목차를 보니 295-395쪽까지, 그러니까 100쪽이 이 번역노트로 채워져 있다. 통상적이진 않다. 바디우 번역서인지 역자의 저서인지 헷갈리기 때문이다(모호한 번역서?). 역자는 "알랭 바디우의 <모호한 재앙에 대하여>와 안토니오 네그리의 <욥의 노동>등을 번역하였다. 천안에서 한우를 키우며 농사를 짓고 있다"고만 소개된다. <욥의 노동>도 구입했는데, 현재는 절판된 상태다. 한우 농사를 지으며 철학서를 번역하는 분이 있다는 건 신선하지만 깔끔하게 번역서만 내놓았다면 더 좋았겠다. 과도한 분량의 역자노트를 매번 붙이는 것은 식상하다...

 

15.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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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 세상을 떠난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신작이 나왔다. <파열의 시대>(까치, 2015)다. 원저도 2014년에 나왔으니까 그의 유작이다. 1964년부터 2012년 사이에 쓴 글들을 모았다고 한다. 부제는 '20세기의 문화와 사회'. 알다시피 그의 20세기사는 <극단의 시대>(까치, 1997)로 갈무리된 바 있다. <파열의 시대>는 <극단의 시대>의 보충이자 부록으로도 읽을 수 있겠다.

 

20세기가 진행되면서 공산주의와 극단적 민족주의에서 다다이즘과 정보기술의 출현에 이르는, 수없이 많은 새로운 운동과 이데올로기를 직면했던 세기말 부르주아 문화를 다루고 있다. 홉스봄은 19세기 말의 호시절을 꽃피게 했고 동시에 그것을 해체시키는 씨앗을 품었던 상황들, 즉 온정주의적 자본주의, 세계화 그리고 대중 소비사회의 도래를 분석한다. 또한 자유로운 지식인의 황금시대가 흘러가는 것을 기록하고 있으며, 잊혀진 위인들의 삶을 탐구한다. 예술과 전체주의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고 초현실주의, 여성 해방 그리고 미국 카우보이의 신화와 같은 다양한 사회현상들을 꼼꼼히 비평한다. 더할 나위 없는 상상력과 노련함이 대사상가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이 책은 20세기의 위대한 현대 사상가 홉스봄이 전하는 마지막 이야기이다.

 

같은 20세기사라는 점에서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서 기획한 <르몽드 20세기사>(휴머니스트, 2014), 토니 주트의 <20세기를 생각한다>(열린책들, 2015), 그리고 강만길 선생의 <20세기 우리 역사>(창비, 2009) 등을 꼽아본다.

 

 

홉스봄의 책으론 <파열의 시대> 외에도 <노동의 세계>와 <노동자>가 더 나와 있고, 국내에도 소개됨직하다(아마도 번역중이지 않을까 싶다). 밀리기 전에 미리미리 읽어두어야겠다...

 

15.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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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으로 가장 눈에 띄는 '이주의 발견'감은 데이비드 앤서니의 <말, 바퀴, 언어>(에코리브르, 2015)다. '유라시아 초원의 청동기 기마인은 어떻게 근대 세계를 형성했나'란 부제가 내용을 어림하게 해주는데, 제목만 보자면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고고학과 언어학은 물론 신화학.인구학.사회학.동물학.식물학.지질학 등의 방법을 망라해 황량한 초원의 선사 시대를 복원해내고, 이를 다시 역사 시대와 연결한 역작이다. 저자는 언제 인도.유럽 공통조어가 생겨나서 어떻게 확산하고 특정한 지역에 정착해 진화했는지를 밝히고자 언어학과 고고학이라는 두 바퀴가 달린 수레를 타고 유라시아 전역을 종횡무진 달린다.

소개에 따르면 미국 고고학회가 주는 '2010년 최고의 과학책 상'을 수상한 책이기도 하다. 고고학 책을 읽을 기회는 드문데, 언어학과 연결해서 다룬다고 하니까 관심을 갖게 된다. 어찌하다 보니 원서를 먼저 구입했는데, 번역본도 곧 입수해봐야겠다...

 

15.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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