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전철에서 읽은 칼럼을 옮겨놓는다. 월요일을 제외한 평일에는 주로 경향신문을 손에 드는데, 요즘은 전철역 가판에서 가장 먼저 바닥을 드러낸다. 몇 부 안 갖다 놓는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덕분에 다른 가판까지 걷기 운동을 해야 했다. 요즘 쏟아지고 있는 칼럼들이 대부분 겨냥하고 있는 것은 단연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 '파문'이다. 아래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의 칼럼은 이 문제를 원론적인 차원에서 민주주의와 결부시키고 있어서 흥미를 끈다. "민주주의에서 통치엘리트의 이상적 모습은 평균적인 시민의 삶과 가까이 닮는 데 있다"는 원론은 민주주의의 딜레마와 함께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한다.

경향신문(08. 05. 09) [정동칼럼]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민주주의에서 통치엘리트의 이상적 모습은 평균적인 시민의 삶과 가까이 닮는 데 있다. 정치학에서 '근접성' 내지 '유사성'이라고 개념화하는 이 원칙은 통치자의 관점과 평범한 다수 시민의 관점이 수렴될 수 있는 심리적 기초를 설명해준다.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의 '신뢰'를 강조했던 영국의 정치철학자 존 로크 역시, 근본적으로 신뢰는 통치자와 피통치자 모두가 한 사회의 공동 구성원이라는 일체감을 갖는 데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지금 이명박 정부에서 이 근접성과 신뢰의 원칙은 깨졌다.



미국의 가치만 쫓는 1% 정권
최근 공개된 고위공직자 신상 자료들은 이명박 정부 통치엘리트들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내각의 80%, 청와대 수석의 100%는 전체 세대의 2%에 해당하는 종부세 납부 대상자들이다. 자녀 중 외국 국적을 가진 비율은 보통사람들의 경우 1만 명 가운데 6명이 안 되는 반면 이들은 5명의 1명꼴이다. 병역면제 처분을 받은 비율 역시 일반 시민의 6배나 많다. 국내 외제차 점유율은 갓 5%를 넘었는데 이들이 보유한 외제차 비율은 30%를 훌쩍 넘는다. 석, 박사 학위보유자 가운데 미국 대학 출신은 65%에 다다른다. 이들은 누구와 닮았는가? 평균적인 시민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사회 최상층을 대표하는 '1% 정권'이란 말은 크게 틀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더 중요한 특징이 있다. 그것은 이들 통치엘리트들의 삶의 경험과 가치지향이 우리 사회공동체 안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익숙하게 생각하고 중요시하는 준거 집단은 우리사회 밖에 있다. 한미동맹을 거의 체제이념의 수준으로 격상시킨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볼 수 있듯, 이들이 가까이 다가가려는 것은 미국이다. 그것도 미국의 보통사람들이 경험하는 실제의 미국이 아니다. 단지 우리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따라서 우리가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 절대 분리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물신화된 미국이다. 우리 사회 절대다수의 구성원들을 크게 실망, 분노시켰던 영어몰입교육 정책이나 무대책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 결정이 가능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시민들이 왜 분노하는지 알길
재밌는 사실은 이들이 시민들의 반응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것이다. 영어를 배울 바에야 미국인처럼 하는 게 낫고 미국사람들 먹는 소고기를 우리도 먹으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던 그들은, 시민들이 왜 화를 내는지 몰랐다. 새벽부터 일하고 밤새워 협상준비를 한 이들에게 시민들의 반응은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정 싫다면 업자들이 수입 안 할거고 수입해도 안 먹으면 된다는 발상은 그래서 표출될 수 있었다. 이는 그들이 스스로를 객관화해 볼 능력까지 결여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정치는 근본적으로 편을 나누는 것이다. 이는 모든 정치조직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명박 정부의 방식은 스스로에게 파국에 가까울 만큼 자해적이었다. 우리 밖의 미국에서 편을 얻는 성과는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 대가는 컸다. 초중고 학생들에게마저 조롱거리가 되었다. 영어몰입교육 정책은 다소 정서적인 상처만 남기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이번 소고기 협상 파동은 다르다.

이건 보통 말하는 '운동권 이슈'가 아니라 일반 시민 모두를 위협하는 실생활 이슈이자, 미국이 인정하지 않는 한 되돌이키기 어려운 '정치적 외통수'가 되었다. 어떻게 하나의 정치 쟁점이 절대다수의 시민들로 하여금 한 의견을 갖도록 만들 수 있을까. 그야말로 외국군의 침략 상황에서나 가상해볼 수 있는 유사 민족문제적 현상이 등장한 것이다. 누군가 이 정부를 꼭두각시 친미정권이라 한들 이를 탓하기만도 어려운 지경이다. 좀 닮은 구석이 있어야 할텐데 우리와 달라도 너무 다른 이 정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박상훈 | 후마니타스 대표)

08. 05. 09.

P.S. 오늘 입력된 인터넷 기사에는 미주 한인 주부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 반대 성명서를 냈다고 한다.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8. 05. 09) 美 한인주부들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 반대”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 주부들이 한국에 미국산 쇠고기가 전면개방되는 것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쇠고기 수입 재협상 실행을 요구하는 미주 한인 주부들의 모임’이라는 단체가 7일(현지시간) 한인회의 기자회견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성명서’를 냈다. 이들은 “최근 미국 내 일부 한인회에서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에 큰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낀다”며 “일부 한인회의 주장이 마치 미주 한인 전체를 대표하는 것인 양 잘못 전달되고 있는 상황에 우려를 표한다”고 성명서를 낸 이유를 밝혔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미국 내에서도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안감과 불신은 커져가고 있다”면서 “올해 미국 축산업계는 도축 직전 소의 건강상태를 확인해야 하는 현행법을 어기고 광우병의 증세가 의심되는 소를 도축하고, 이 쇠고기가 학교 급식용을 비롯, 미전역의 시장에 유통돼 결국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쇠고기 리콜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어 “지난달 4일 캔자스의 한 업체가 광우병 위험물질인 편도를 제거하지 않은 채 유통했다가 결국 냉동 소머리 40만6000파운드를 자발적으로 리콜한 바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성명은 “이같은 사례들은 미국 내에서 조차 쇠고기 안전성 검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며 “1%도 되지 않는 광우병 검사비율로 미국 쇠고기의 안전성을 장담하기에는 큰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 다음은 성명서 전문.



미주지역에 거주하는 한인주부들은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을 반대하며 재협상을 촉구합니다!!

가족의 건강과 식탁을 책임지고 있는 미주 한인주부들은 금번 미국 쇠고기 협상으로 앞으로 광우병 위험에 노출될지도 모를 한국동포들에 대한 우려와 걱정에 시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미국 내에서도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안감과 불신은 커져가고 있습니다. 올해 미국 내 축산업계는 도축 직전 소의 건강상태를 확인해야 하는 현행법을 어기고 광우병의 증세가 의심되는 소를 도축하였고 이 업체의 쇠고기가 학교 급식용을 비롯 미전역의 시장에 유통되어 결국 미국 역사상 최대규모의 쇠고기 리콜을 야기했습니다.

또한 지난달 4일, 캔자스의 Elkhorn Valley Packing LLC 라는 업체는 광우병 위험물질인 편도를 제거하지 않은 채 유통했다가 결국 냉동 소머리 40만6000 파운드를 자발적으로 리콜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 캔자스 주 고급 육 생산업체인 Creekstone Farms에서 소 뼈 파동으로 막힌 일본 수출시장을 열기 위해 업체내의 자발적인 전수검사의 의지를 밝혔지만 미 농무부가 이를 최근에 불허하였습니다. 업체의 자발적인 검사마저 가로막는 미농무부의 태도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의심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사례들은 미국 내에서 조차 쇠고기 안전성 검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더욱이 미국 내에서 동물성 사료는 아직도 사용이 완전히 금지되지 않았으며, 비인도적이고 비위생적인 축산환경 또한 지속적으로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1%도 되지 않는 광우병 검사비율로 미국 쇠고기의 안전성을 장담하기에는 큰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최근 미국 내에서도 유기농 쇠고기나 풀 혹은 식물성 사료를 먹여 키운 쇠고기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호주 및 뉴질랜드 등 광우병 청정지역에서 수입된 쇠고기의 소비 또한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미국 내 쇠고기 소비행태가 이같은 변화를 보이고 있고 쇠고기 안전성에 대한 불안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미주한인회는 미주 동포들이 먹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는 무조건 안전하다는 식의 성명을 발표하여 마치 이것이 전체 미주 한인들의 목소리인 양 사실을 왜곡하고 여론을 호도하고 있는 바, 이에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230만 재미동포 중 미 축산업의 실태를 알고 있는 한인들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과 위생성에 비판적 의견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산 쇠고기 소비에 더더욱 신중을 기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현재 미국의 축산 환경은 육우 사육, 광우병 검사, 도축 그 어느 과정에서도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데, 이번 협상의 결과로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되더라도 한국은 수입거부권조차 없이 국제수역사무국의 결정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검역주권도 없이 30개월 이상 소의 살코기와 30개월 이하 소의 뼈, 내장까지 모조리 수입을 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금번 미국 쇠고기 협상결과는 국민의 입장에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이에 정부는 국민건강과 검역주권을 포기한 채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해제한 졸속적인 금번 협상을 무효화하고, 재협상을 추진 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입니다.

2008년 5월 7일

쇠고기 수입 재협상 실행을 요구하는 미주 한인주부들의 모임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비80 2008-05-09 11:46   좋아요 0 | URL
그들은 정말 모릅니다. 국민들의 지적을 받아도 정말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사고 체계 자체가 다른 경계 밖의 부류들입니다. 사과하고 반성한다고 말하지만 깊숙한 곳에서는 자신들의 행위가 옳다고 믿는 신념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듯 합니다. 그걸 바꾸기는 좀 힘들지 않을까요.

로쟈 2008-05-10 11:06   좋아요 0 | URL
후안무치인지 지능미달인지, 어리석은 것인지 사악한 것인지 요즘 헷갈리고 있습니다...

L.SHIN 2008-05-09 16:22   좋아요 0 | URL
휴 - 이젠 한숨만 나옵니다.

로쟈 2008-05-10 11:07   좋아요 0 | URL
한숨으로라도 해결이 되면 좋겠지만.--;

2008-05-09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10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10 1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5-09 23:51   좋아요 0 | URL
후마니타스에서 좋은 책을 많이 내는 것은 좋은데 가끔 서점에 가서 그 목록을 보면 저게 얼마나 팔릴까 하는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예요.
미주한인회 면면들을 보니 가장 비호감 계층이라는 늙고 기름기 잘잘 흐르는 남자들...

로쟈 2008-05-10 11:10   좋아요 0 | URL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나 <김앤장>처럼 제법 나가는 책들도 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5-10 22:26   좋아요 0 | URL
한겨레나 경향신문 보면 그런 책이 잘 나가는 것 같지만 제 주변에는 최장집이 누군지 아는 사람은 직장인이고 학생이고 한 명도 없습니다.뭐 꼭 알아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만...

로쟈 2008-05-11 11:17   좋아요 0 | URL
광주가 변방이란 소리는 자주 듣지만 그 정도인가요? 책은 알라딘에서도 꽤 팔려나갔는데...

털세곰 2008-05-11 12:20   좋아요 0 | URL
이 문제에 대해서만 로쟈님 서재에 댓글 남기는데(쑥스^^), 쇠고기 문제는 결국 이명박이 풀어야 합니다. 아무 생각없는 그 인간이 한미관계 복원해야 하고 어떻하면 미국에 안겨줄 그럴듯한 선물 하나 챙겨야하나, 특히 이번에는 잘 하면 크로포드 목장은 힘들어도 캠프 데이비드 정도는 불러줄것 같은데,,, 하는 상황에서 자기가 결정하고 지시한 사항입니다. 그렇지않다면야 아무리 '영혼'이 없는 공무원들이라 할 지라도 불과 6개월 전의 수입불가, 안전성문제 심각 등의 태도를 180도 바꾸기는 힘들 것입니다. 다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으니 그에 맞춰 움직이는 것일 뿐입니다. 이 모든 사태의 vinovnik인 이명박, 결자해지해야 합니다.

로쟈 2008-05-11 12:27   좋아요 0 | URL
제가 보기엔 '결자'이긴 하니 '해지'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한국내 반미감정을 고려해서 미국정부가 결단을 내리는 게 더 현명하고 빠른 게 아닐까 싶어요.--;

김상호 2008-05-11 12:58   좋아요 0 | URL
눈팅만 하는 팬인데 첨으로 댓글 남기네요. 얼마전에 사람들과 이명박 뒷담화를 까는데..흥미로운 말이 나오더군요. 이명박은 우리가 보통 정치인에 대해 혐오하는 정치인의 덕목마저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읍니다. 그러니깐 속마음은 어떻든 민의을 따르는 척이라도 하고 정적과 협상도 하고..이런것 조차도 없이 무조건 밀어붙이는 거죠. 생전처음 정치인의 덕목이 가치있다고 느낀 순간입니다.
아 글구 전여옥이 작금의 현실에 대해 악령이 출몰하는 사회 어쩌고 하며 칼세이건 팔아먹는데는 정말 맛이가더라구요.

로쟈 2008-05-11 22:22   좋아요 0 | URL
보통 정치인들이 위선적인데, MB는 그런 걸 싫어하는 것이죠. 그냥 노골적으로 밀어붙입니다. 아마도 유일한 위선적 언사는 '국민'이란 상용어 같습니다. 아니면 그마저도 단지 다르게 정의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털세곰 2008-05-11 17:23   좋아요 0 | URL
역시 우문현답의 대가, 로쟈님이시네요^^. 결자는 맞아도 '해지'의 능력은 결코 그 인간에게 없다는 것... 결국 주변에서 우리가 그 사람을 현재의 직분에서도 '해지'시켜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로쟈 2008-05-11 22:23   좋아요 0 | URL
총선을 너무 일찍 치른 게 유감스러울 따름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5-11 22:16   좋아요 0 | URL
대학가 인문사회 전문점이 없어진 것도 10년이 훨씬 더 되었고 며칠 전 개신교 서점 한 곳을 갔더니 그 곳은 그동안 점점 한국 신학 연구소에서 나온 책을 진열대에서 줄여 오더니 이젠 한 권도 없이 다 반품해 버렸더군요.그래도 그 연구소가 괜찮은 책을 내는데...다행히 가톨릭 서점엔 분도출판사(해방신학 번역으로 유명한 곳)책들은 많이 비치해 놨어요.제 주변에는 그런 형편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죠.

로쟈 2008-05-11 22:26   좋아요 0 | URL
그래도 몇몇 분들이 지역의 독서문화 진작을 위해 애쓰고 계시다는 기사는 읽은 기억이 납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5-11 22:48   좋아요 0 | URL
도서관 직원 중 몇몇이 좀 친절한 사람들이 있어요.물론 안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요.
 

잠시 읽어보다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기사를 옮겨온다(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80504095610). 이번 '광우병' 사단을 불러일으킨 한미간의 합의문 내역에 대한 법학자의 해석인데, 그에 따르면 이번 협상 결과를 정부는 은폐했다. 그리고 그 핵심이란 건 '굴욕'이다. 이 해석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정확한 해명이 듣고 싶다. 

프레시안(08. 05. 04) [송기호 칼럼] 국민이 몰랐던 네 가지 진실  

나폴레옹의 진짜 업적은 전쟁 승리보다는, 나폴레옹 법전(Code Napoleon)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법전은 최초의 근대적 민법으로, 사유 재산제와 계약 자유를 담았다. 그리고 그의 법은 나폴레옹 자신의 말처럼 영원히 사라지지 않았다. 나폴레옹은 민법을 만들 때, 조문의 해석에 다툼의 소지가 전혀 없는 완벽한 법을 만들고 싶었다. 그는 완성된 법전에 만족하면서, 이 정도면 장차 어떤 프랑스인이 읽더라도 그 의미가 명확할 것이라며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하지만, 바로 그 다음날에, 파리에서는 그의 법률 조항의 의미를 놓고 해석론의 대립이 발생했다고 한다.
  
아무리 훌륭한 법이라도 그 해석에서 다툼이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서로 언어와 가치가 다른 나라 대 나라 사이의 합의문을 놓고 그 해석에 다툼이 없을 수 없다. 그래서 아예 1969년에, 유엔 회원국은 비엔나에 모여,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이라는 것을 만들어, 그 안에 국가 간의 합의문을 어떻게 해석할 지 그 원칙을 정해두기까지 했다. 여기서 합의된 일반 원칙은, "합의문의 문맥에 부여되는 통상적인 의미(ordinary meaning to be given to the terms of the treaty)"에 따라 해석한다는 것이다.
  
나라 간 합의문의 해석의 출발은 그 문항의 문언이다. 아무리 훌륭한 법률가라도 조문 없이 해석을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정운천 농림부 장관은 지난 4월 18일 미국과의 쇠고기 광우병 검역 협상을 타결하면서도 합의문을 공개하지 않았다. 대신 보도 자료만을 냈다. 법률가가 합의문 문항을 보지 못하고, 보도 자료를 보고 그 의미를 새겨야 한다면 이는 불행한 일이다. 법률가에게 필요한 것은 조문이지 보도 자료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즉시, 미국과의 합의 내용을 정확히 해석하고자, 농림부 장관에게 합의문 영문본과 한글본 공개를 청구했다.


  
은폐 1 : 국제수역사무국 결정 없이 검역 주권 행사 못한다
나는 농림부 장관의 공개를 기다리면서, 보도 자료라도 읽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보도 자료였다.  

미국 내에서 추가로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할 경우 미국 측은 즉시 역학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한국 정부에 통보하고 상호 협의키로 하였으며, 동 역학조사 결과가 미국의 광우병 위험에 대한 국제수역사무국의 광우병 위험 통제국 지위에 반하는 상황일 경우 수입을 전면 중단키로 하였음.


가슴이 꽉 막혔다. 알다시피,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창설 회원국이다. 그리고 세계무역기구 위생검역협정(SPS 협정)이 보장하는 검역 주권을 누리고 있다. 특히 국제 검역법은 조류독감, 광우병 등과 같이 확실한 과학적 설명을 하기 어려운 전염병에 대하여, 관련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한 경우라도 회원국이 잠정적으로 검역 조치를 취할 국제법적 권한을 주고 있다. 해당 조문을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관련 과학적 증거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 회원국은 이용가능한 적절한 정보를 토대로 잠정적으로 위생 검역 조치를 취할 수 있다. (In cases where relevant scientific evidence is insufficient, a Member may provisionally adopt sanitary or phytosanitary measures on the basis of available pertinent information…) : 위생검역협정 5조 7항


만일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할 경우, 이는 일단 미국의 광우병 통제 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 미국에서 왜 광우병이 추가 발생했고, 그 위험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과학적으로 정확히 판명하여 거기에 맞는 수준의 검역 조치를 취하자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바로 위 조문은 이와 같이 관련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할 경우라도, 그 시점에서 여러 이용 가능한 자료를 토대로 잠정적으로 검역 조치를 취할 권한을 한국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에서의 광우병 추가 발생을 급히 살펴보고, 필요한 경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잠정 중단할 수 있다. 일단 그렇게 해 놓고 나서, 광우병 추가 발생에 대한 과학적 조사를 한 후, 심각하지 않은 사건으로 밝혀질 경우에는 다시 수입을 하면 된다. 이는 국제법이 보장한 한국의 검역 주권이다. 그리고 이는 농림부 장관의 고시인 '지정 검역물의 수입 금지 지역'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이 고시는 악성 가축 전염병인 광우병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때에도 수입 금지 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제5조(수입 금지 등) 농림부장관은 제3조 제1항의 수입 금지 지역으로 지정되지 아니한 지역에서 악성 가축 전염병이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때에는 법 제32조의 규정에 의하여 당해 지정 검역물의 수입을 금지하거나 법 제52조 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검역 중단·출고 중지 등 당해 병원체의 국내 유입 방지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위 농림부 보도 자료는 한국이 국제법적으로 누리고 있는 잠정 조치 권한과 농림부 고시 규정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미국에서 오늘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하더라도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미국의 역학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미국산 쇠고기를 계속 수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일은 미국의 역학조사 결과가 나온 다음이다. 그 결과가 "미국의 광우병 위험에 대한 국제수역사무국의 광우병 위험 통제국 지위에 반하는 상황일 경우"가 아니면, 미국산 쇠고기를 계속 수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무엇을 기준으로 위와 같은 "상황"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단 말인가? 나는 도저히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농림부 장관의 합의문 영문본 공개를 기다리고 있었다. 뜻밖에도, 농림부 장관은 지난 4월 22일, 미국과의 합의 내용을 입법 예고를 했다. 이제 위 보도 자료는 이렇게 5항으로 조문화되어 있었다.
  

5. 미국에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하는 경우, 미국 정부는 즉시 철저한 역학조사를 실시하여야 하고 조사 결과를 한국 정부에 알려야 한다. 미국 정부는 조사 내용에 대해 한국 정부와 협의한다. 추가 발생 사례로 인해 국제수역사무국의 미국 광우병 지위 분류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경우 한국 정부는 쇠고기와 쇠고기 제품의 수입을 중단할 것이다.


법률가의 눈으로 보았을 때, 이는 앞의 보도 자료와 다르다. 앞에서는 마치 미국의 역학조사 결과를 통보받은 한국이 마치 어떤 독자적 상황 판단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위 입법 예고안에서는 미국의 조사 결과는 조사 결과일 뿐이다. 닫혀 있다. 그리고 한국의 자주적 권한은 점점 사라진다. 아예 문장의 주어가 "추가 발생 사례"라고 하는 과거의 사건, 곧 한국이 개입할 수 없는 사건이 된다. 그리고 국제 기구의 지위 분류라는 사건에 한국이 개입할 여지도 없다.
  
나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애써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위 조항을 다시 읽었다. 한국의 실낱같은 희망처럼 보이는 단어로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경우"를 새겼다. "영향"이란 말의 통상적인 의미는 "어떤 사물의 효과나 작용이 다른 것에 미치는 일"이다. 미국에서 광우병 추가 발생은 본질상 미국의 광우병 등급 지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런데 누가 부정적 영향 여부를 결정할 것인가? 결국 내겐 합의문 영문본이 필요했다.
  
그런데 농림부 장관은 지난 28일에, 내게 통지를 했다. 아직 자구 수정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문본 공개를 거부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지난 22일에 그 한글본을 입법 예고를 할 수 있었을까? 결국 영문본을 보기 위해 농림부 장관을 제소하는 수밖에 없었다. 통상법을 한다는 법률가가 통상법 조문을 보려면 장관을 제소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내게는 미국의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 온 합의문 영문본이 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영문본을 보고 해석하지만, 나는 소송에서 장관으로부터 당당히 영문본을 건네받을 것이다. 앞으로 통상법과 식품법을 하려는 후학들을 위해서라도, 꼭 그렇게 할 것이다. 마침내 영문 합의문의 문항을 보면서 해석의 궁금증은 모두 풀렸지만, 결론은 비참했다. 이렇게 되어 있었다.
  

5. In the event (an) additional case(s) of BSE occur(s) in the Untietd States, the US government shall immediately conduct a thorough epidemiological investigation and inform the Korean government of the results of the investigation. The U.S. government will consult with the Korean government about the findings of the investigation. The Korean government will suspend the importation of beef and beef products if the additional case(s) results in the OIE recognizing an adverse change in the classification of the U.S. BSE status. (미국에서 광우병 추가 사례(들)이 발생하는 경우, 미국 정부는 즉시 철저한 역학조사를 실시하여야 하고 조사 결과를 한국 정부에 알려야 한다. 미국 정부는 조사 사항에 대해 한국 정부와 협의한다. 미국 광우병 추가 발생 사례(들)이 국제수역사무국의 미국 광우병 지위 분류 '하향 변경(adverse change)' '공인(recognizing)'으로 귀결되는 경우 한국 정부는 쇠고기와 쇠고기 제품의 수입을 중단할 것이다.)


명확했다. 마치 나폴레옹이 만들려고 했던 민법처럼, 위 조항은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었다. 한국은 미국에서 광우병이 아무리 많이 발생하더라도 자주적으로 검역 주권을 행사할 수 없다. 모든 것은 농림부 장관이 그토록 사랑하는 국제수역사무국에 달려 있다.
  
영문본과 한글본을 대조하면서, 나는 농림부 장관의 능력을 재발견했다. 그는 영문 합의문에는 있는 "case(s)"의 복수 명사를 한글 보도 자료와 입법 예고안에서 제대로 번역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합의문의 "adverse change"를 한글에서는 "반하는 상황" 혹은 "부정적인 영향"으로 옮겼다. 아마도 농림부의 영어 사전에서는 "change"란 "상황" 혹은 "영향"이라고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매우 유감스러운 것은 농림부 장관의 유능한 대가로, 한국은 WTO 회원국으로서 가지고 있는 잠정 조치 권한, 그러니까 국제법에 의하여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중요한 법적 권한을 포기했다. 이것은 헌법 위반 행위이다. 그 어떠한 장관도 국회의 동의 없이 주권의 제약을 가져오는 합의를 외국과 할 수는 없다.



  
은폐 2 : 미국 쇠고기의 월령 표시는 어떻게 되는가?
농림부 장관의 능력은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 핵심적인 부분에서, 그의 능력은 빠짐없이 발휘되었다. 쇠고기 월령 구분제를 보자. 30개월령이 넘은 쇠고기를 포장 상자에 표시하도록 하는 문제(Marking requirements for OTM meat)는 한국으로서는 검역의 실효성을 좌우하는 본질적 문제이다. 눈앞의 쇠고기나 등뼈만을 달랑 보고 그 나이를 판별할 수 있는 검역 공무원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의 검역 기준에는 미국 정부의 검역 공무원은 쇠고기 수출 검역 증명서에 반드시 소의 월령이 30개월 미만임을 확인한다는 서명을 해야 했다(19조 1항). 그런데 농림부는 이 문제에 대하여 예의 그 보도 자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번 협상에서 주요한 쟁점으로 부각된 수출 검역 증명서상의 도축 소 월령 표시 여부와 관련해서는 개정된 수입 위생 조건 발효 후 180일간 등뼈가 정상적으로 포함되어 가공되는 티-본 스테이크 수출품 등에 한해 해당 쇠고기가 30개월령 이하임을 표기하고 180일 이후 계속 표시 여부에 대해 추가 협의키로 하였음….


이 보도 자료가 우리에게 정말로 말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이었나? 미국 검역 공무원이 발행하는 수출 검역 증명서에, 도축소의 월령 표시를 하지 않기로 한국이 합의해 주었다는 것이다. 미국 공무원이 수출 검역 증명서에 기재해야 할 사항에서 소 월령 표시는 삭제되었다(합의문 22조 1항). 이로써 미국 정부는 개개의 쇠고기 제품에 대한 월령 보장 책임에서 벗어났다. 미국 도축장의 입장에서는 한국으로 선적되는 제품에 대해 미국 정부로부터 쇠고기 월령 확인을 받아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가 사라졌다.
  
나의 해석이 맞는다면, 앞으로 한국의 검역 공무원은 초능력자가 돼야 한다. 노무현 정부 때 그는 쇠고기 상자에서 뼈와 살을 구별하면 되었다. 소의 나이는 미국 공무원이 보장해 주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보이지 않는 미국 도축업자를 직접 상대해야 한다. 눈앞의 등뼈가 실은 30개월령이 넘는 소의 광우병 위험 부위인데도 미국 도축업자가 그만 나이를 잘못 감별하는 바람에 한국으로 불법 수출된 것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을 보고? 나의 해석대로라면 단지 그 등뼈만을 보고.
  
그래서 미국 도축장을 직접 철저 현지 점검하시겠다고? 불가능하다. 첫째, 노무현 정부의 기준에서는 한국이 개별 승인해 준 도축장만이 한국으로 쇠고기를 수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 농무부의 검사를 받는 모든 도축장이 자격이 있다. 둘째, 노무현 정부 시절의 기준에서는 한국 검역관은 모든 미국 도축장에 대해 현지 점검 권한을 가졌다. 그리고 중대한 위반을 적발해서 해당 작업장에서 한국으로의 수출 작업이 중단되도록 요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대표성 있는 표본에 대해서만 현지 점검을 할 수 있다. 한국이 도축장에서 중대한 위반을 적발하더라도 그 결과를 미국정부에 통보할 수 있을 뿐이다(8항). 이 표본에 포함되지 않으면, 미국의 도축장은 한 차례 정도의 심각한 위반을 저질러도 한국의 현지 점검 대상에 들어가지도 않는다(24항).


  
은폐 3 :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 전수 검사를 할 수 없다
더 놀라운 것은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전수 검역 검사를 할 권한을 정면으로 포기했다(는 점이다). 물론 연간 약 2억3000만㎏ 의 미국산 쇠고기 선적 물량을 전수 검사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특별 점검 대상이 되는 도축장의 제품이라든지, 혹은 특정 상황에서는 전수 검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합의문 영문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23. If an SRM is found, FSIS will conduct an investigation to determine the cause of the problem. Product produced by the pertinent meat establishment shall continue to be eligible for import quarantine inspection. However, the Korean government will increase the rate of inspection of subsequent beef and beef products from the meat establishment. After the Korean government inspects five lots of equal or greater quantity of the same product without finding a food-safety hazard, the Korean government shall apply its standard inspection procedures and rates.(광우병 특정 위험 부위가 발견될 경우, 미국 식품안전검사국은 그 원인을 판정하기 위한 조사를 진행할 것이다. 해당 도축장에서 생산된 제품은 한국의 수입 검역 검사를 받을 자격을 계속 가져야 한다. 단, 한국 정부는 해당 도축장의 향후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에 대한 검사 비율을 높일 것이다. 동등 혹은 그 이상의 수량인 동일 제품 5개 수입분에 대해 한국 정부가 검사를 한 후, 식품 안전 위해 요인을 발견하지 못할 경우, 한국 정부는 표준 검사 절차와 비율을 적용해야 한다.)


이 조항이 존재하는 한,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검사에서는 표준 검사 비율을 적용해야 한다. 즉 전수 검사는 안 된다. 이렇게 새기지 않는다면, 이 조항은 존재 의의를 잃는다. 왜냐하면, 눈으로 보다시피 광우병 위험 특정 부위가 발견된 경우라 해도, 한국은 그저 검사 비율을 높일 수 있을 뿐이고, 그것도 5회 검사 합격이면 그 비율을 다시 내려야만 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런 조항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전수 검사를 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국제법의 조약 해석 원칙에 어긋난다. 조약을 해석하는 데에서, 어느 조약 문구를 무의미하게 하는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국제법상 인정되지 않는다(effective interpretation principle).
  
농림부 장관의 능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합의문 시행 후 180일이 지나면, 한국의 소비자는 눈앞의 갈비 스테이크(티본 스테이크)만 보고, 그 월령을 구별할 능력을 지녀야 한다. 앞에서 보았던 보도 자료는 마치 180일 이후 계속 표시 여부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180일이 지나면 갈비 스테이크 월령 표시 제도는 폐지된다. 대신 한국과 미국의 협의가 시작될 뿐이다. 이 협의에서 미국은 자신에게 불리할 경우, 결코 갈비 스테이크 월령 표시 제도 부활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합의문 부칙 3항에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The Korean government and the U.S. government agree to have consultations upon the completion of the 180 day period with a view to addressing concerns after reviewing the notation's effect on beef trade and its inspection.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는 180일 기간이 다하면, 쇠고기 교역과 검사에 미치는 표시의 영향을 검토한 다음, 관심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협의를 진행하기로 합의하였다.) : 부칙 3항


은폐 4 : 미국에서는 '주저앉는 소' 등의 뇌, 척수를 동물 사료로 사용한다
  
글이 길어지지만, 마지막으로 농림부의 노력이 얼마나 핵심적 주제를 대상으로 일관되게 진행되는 지를 확인하자. 농림부는 지난 2일, 그러니까 기자들과의 이른바 끝장 토론에서 미국의 이른바 강화된 사료 조치를 놓고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관련 문답 자료'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모든 광우병 감염 소, 30개월 이상 된 소에서 광우병 위험 물질이 있을 수 있는 뇌나 척수를 제거하도록 하였고, 30개월 미만 소라 하더라도 도축 검사에 합격하지 못한 소의 경우 돼지 사료용으로 사용을 금지하고 있어 사료로 인한 광우병 추가 감염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임(2면).


그러나 나는 미국의 사료 조치에 대해 달리 해석한다. 미국의 사료 조치는 '주저앉는 소'와 같이, 사람의 식용을 위한 도축 검사에 합격하지 못해 식용 부적합 처리된 소라도 30개월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그 뇌와 척수마저도 동물 사료로 급여하도록 하는, 그런 것이다. 그 원문은 이렇다(73FR22720).
  

The FDA is amending the agency's regulations to prohibit the use of certain cattle origin materials in the food or feed of all animals. These materials include the following: The entire carcass of 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y(BSE)-positive cattle; the brains and spinal cords from cattle 30 months of age and older; the entire carcass of cattle not inspected and passed for human consumption that are 30 months of age or older from which brains and spinal cords were not removed; tallow that is derived from BSE-positive cattle; tallow that is derived from other materials prohibited by this rule that contains more than 0.15 percent insoluble impurities; and mechanically separated beef that is derived from the materials prohibited by this rule. These measures will further strengthen existing safeguards against BSE. (미국 식약청은 소에서 나온 특정의 물질을 모든 동물 사료로 급여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규정을 개정한다. 이 사료 급여 금지 물질에는 다음이 포함된다. 광우병 감염 소의 전체 부위, 30개월령이 넘은 소의 뇌와 척수, 30개월령이 넘는 소로서 도축 검사에 합격하지 못해 식용 부적합 처리된 소에서 뇌와 척수를 제거하지 않은 경우 그 소의 전체 부위, 광우병 감염 소에서 나온 우지, 이 규정에서 금지 물질로 정한 것에서 나온 우지로서 불용성 불순물 함유가 0.15% 이상인 것, 그리고 이 규정에서 금지 물질로 정한 것에서 나온 기계적 분리육. 이러한 조치는 현행 광우병 안전 조치를 더 강화시켜 줄 것이다.)


이를 두고, 농림부는 "30개월 미만 소라 하더라도 도축 검사에 합격하지 못한 소의 경우 돼지 사료용으로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바로 이 문제에 대하여, 미 식약청은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73FR22733).
  

Further, the regulations were revised to exclude from the definition of CMPAF certain cattle that have not been inspected and passed for human consumption. Under the proposed rule, cattle that were not inspected and passed for human consumption were excluded from the definition of CMPAF if their brains and spinal cords were removed. The final rule was revised to indicate such cattle are not considered CMPAF if the animals were shown to be less than 30 months of age, regardless of whether the brain and spinal cord have been removed. (또 당해 규정은 도축 검사에 합격하지 못해 식용 부적합 처리된 특정 소를 사료 급여 금지 물질의 정의에서 제외하도록 개정되었다. 종래의 입법 예고에서는 도축 검사에 합격하지 못해 식용 부적합 처리된 소는 그 뇌와 척수가 제거되어야 사료 급여 금지 물질의 정의에서 제외했었다. 본 최종 규정에서는 그런 소라도 뇌와 척수의 제거를 불문하고 30개월령 미만인 경우에는 사료 금지 물질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이를 개정한다.)


나폴레옹이 그랬던 것처럼, 모든 조항에 항상 유일한 해석을 요구하는 것은 실패한다. 나의 해석이 틀릴 수 있다. 그러나 내가 학자적 소신으로 문언적으로 살펴보았을 땐, 이건 굴욕의 합의문이다. 그리고 핵심적인 굴욕은 은폐되었다.(송기호/변호사·조선대법대 겸임교수)

08. 05. 04.

P.S. 프레시안의 후속기사로는 진중권의 '대중은 무엇에 분노하는가?'(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40080505124327) 참조.


댓글(23) 먼댓글(1)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Dead Cow Walking
    from 암흑의마법에서정의의칼로 2008-05-05 11:52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생각합니다. 예전처럼 어려운 용어들, 특히 확률, 유전자, 통계 용어가 난무하고, 금방 이에 익숙해져 이를 구사하게 되었습니다. 석유로 만든 물건들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주변에 소/돼지로 만든 물건과 음식 또한 아직도 다양하다는 지식도 새삼스레 알게 되었습니다. 국민(투표권을 갖지 못한 유아, 어린이, 미성년자를 포함함), (검역)주권, 정치(탄핵)라는 추상용어가 쇠고기라는 상품 속에 담겨진 '돈'과 '과학'그리고 '미국'이..
 
 
yoonakim 2008-05-04 23:11   좋아요 0 | URL
소고기 먹고 광우병으로 죽는거보다 속이 터져서 먼저 죽겠음돠!

로쟈 2008-05-05 16:56   좋아요 0 | URL
당분간 뉴스를 끊으셔야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5-04 23:24   좋아요 0 | URL
야...내용이 어렵네요.두 번 째 읽고 있습니다.그런데 이번 협상에 참여한 한국대표단들이 부른 노래가 <다 줄거야>라는 소문이...

로쟈 2008-05-05 16:50   좋아요 0 | URL
근거 없는 거 같진 않습니다. 협상인지 접대인지...

Mephistopheles 2008-05-05 03:11   좋아요 0 | URL
혈압이....파바박....대체 무슨 생각으로 협상에 임했을까요??

로쟈 2008-05-05 16:49   좋아요 0 | URL
영어로 협상하느라 국적도 혼동한 모양입니다...

순오기 2008-05-05 13:10   좋아요 0 | URL
책임자들이 어떤 생각으로 협상에 임하는지 의문이군요. 개인이나 국가적인 자존심을 팽개쳐버린 인간들만 2MB정부에 있나 봐요.ㅠㅠ

로쟈 2008-05-05 16:49   좋아요 0 | URL
'국익' 개념이 일반 국민들과는 다른가 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5-05 22:03   좋아요 0 | URL
그런데 5번에서 adverse change가 뭔가요?

로쟈 2008-05-05 23:06   좋아요 0 | URL
'하향 변경'이란 뜻의 전문용어라면 '부정적인 영향'이란 농림부의 번역은 애매모호합니다. '전문가'가 없는 듯...

Koni 2008-05-05 22:44   좋아요 0 | URL
대체 이런 협상으로 우리나라 정부가 얻고자 했던 건 무엇입니까? 단체로 미치기라도 한건지...

로쟈 2008-05-05 23:07   좋아요 0 | URL
미국 정부의 '박수'겠지요...

노이에자이트 2008-05-05 23:12   좋아요 0 | URL
전문용어라 참 어렵군요.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실용을 표방하지만 이번 일로 보면 알겠지만 장사도 잘 못해요.그리고 굉장히 교조적인 이념에 얽매어 있어요.한미동맹을 너무 이념적으로만 접근하고 있어요.미국 외에 다른 나라를 섬기지 말라면서...

로쟈 2008-05-05 23:15   좋아요 0 | URL
거기가 원조 '하나님의 나라'라서 그런지도...

노이에자이트 2008-05-06 00:23   좋아요 0 | URL
근본주의,원리주의는 원래 미국의 보수적 개신교들이 성경해석하는 방법을 가리키는 말인데 자기들 보고 근본주의자라고 하면 되게 싫어해요.우리나라 근본주의 개신교는 한 술 더 뜹니다.
그런데 뉴욕 한인회의 성명서는 정말 가관...그 회장이 미국의 쇠고기 유통업자랍니다.

로쟈 2008-05-06 13:51   좋아요 0 | URL
그런 미국에서도 근본주의 교파는 많지 않은 걸로 아는데, 언젠가 보니 한국교회의 경우는 80%더군요...

짱구아빠 2008-05-06 17:49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서는 로쟈님 서재를 흄쳐보기만 했는데요,쇠고기 협상과 관련된 좀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자 님의 서재에 실린 글을 제 서재로 퍼담아 가도 괜찮을지요??

로쟈 2008-05-06 19:46   좋아요 0 | URL
저도 가져온 글들인데요, 뭐. 당연히 괜찮습니다.^^

L.SHIN 2008-05-06 18:10   좋아요 0 | URL
미쳐....
"숭례문이 불타거나 손실되면 차후 나라가 망한다" 라는 어떤 이의 역사 전력을
정리해 놓은 글을 읽었는데, 그게 자꾸 마음에 맴도는군요.
사신은 뭐하나~ 저것들 안 잡아가고. ㅡ.,ㅡ

로쟈 2008-05-06 19:47   좋아요 0 | URL
당초 미국 협상단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적극적으로 퍼준 것 같더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05-07 00:42   좋아요 0 | URL
근본주의라는 교파 자체가 있는 게 아니랍니다.대충 뭉뚱그려서 보수적 복음주의라 하죠.여러 교파가 망라되어 있어요.간단히 말해서 성경 축자 영감설을 믿는 이들이죠.당연히 창조론 신봉자들이구요.
근데 오늘 뭐 끝장토론이라나 뭐라나 봤더니 역시 adverse change가 문제더군요.아...그런데 민동석 씨,그 사내 정말 베짱 두둑하고 말도 잘하더군요.눈을 부릅뜨고 기자들한테 한마디도 안 지고...어깨도 떡 벌어지고...

털세곰 2008-05-08 22:47   좋아요 0 | URL
이 소식 때문에 황금같던 저번주 연휴를 그냥 공쳤습니다. 비록 늦었지만 서둘렀으면 그래도 마감 조금 넘겨 접수시킬 수 있었던 원고도 있었는데...
그것 뿐 만은 아니지만, 정말 이명박은 대통령감은 결단코 네버 아니고, 나라 운영이란 그냥 빨리빨리 그해 보이는 실적만 내면 되고 이윤만 어떻해든지 많이 남기면 되는 '좀 더 큰 규모'의 회사 경영정도로 밖에 안 보는 것 같습니다.
이명박에 대해 저는 요즘 울컥울컥 <살의>를 느낍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5-09 00:18   좋아요 0 | URL
이윤도 잘 못 남기던데요.
 

최근 사회적으로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질좋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전면' 개방이다. 미국의 눈치를 볼지언정 적어도 국민 여론에는 개의치 않는 새정부의 '과단성'을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인데, 덕분에 개인적으론 육식 대신에 채식 위주로 식단을 바꿀까도 고려하고 있다. 최소한 이제까지 즐겨먹던 탕종류를 먹는 일은 아주 드물어질 것이다(정부가 바뀌면 식단도 바뀐다!). 하지만 걱정이 되는 건 고기를 좋아하는 딸아이의 식성이다. 학교에서는 급식을 먹으니 아이는 직접적으로 미국산 쇠고기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학교 급식에 한우를 쓰도록 하겠다는 대통령의 립서비스를 곧이 곧대로 믿지 않는다면). 나 혼자 안 먹으면 말지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런 생각에 이 사안과 관련된 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284775.html). 

한겨레21(08. 04. 29) 안 먹을 수 없는 너

이명박 대통령은 “질 좋은 (미국산) 고기를 들여오면 시민들이 값싸고 좋은 고기 먹는 것에 도움이 된다. 마음에 안 들면 적게 사면 된다”고 말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타결 뒤, 일본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다. 과연 그럴까? 물론 부유층이라면 먹고 싶지 않으면 사먹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서민들은 먹고 싶지 않더라도 먹을 수밖에 없다. 아이들과 노동자, 병원 환자들이 미국 수입 쇠고기의 1차 타깃이 된다.

프리온,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나

서울 강북의 한 중학교. 이곳 학생들은 한 끼 급식비로 2500원을 낸다. 교육청에서 보조금이 일부 나온다. 하지만 한 끼 식사에 들어가는 식재료비는 1200원에 그친다. 나머지는 위탁급식 업체의 인건비와 이윤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이 학교에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급식 메뉴로 불고기와 쇠고깃국, 우거지탕을 각각 올린다. 여기에 들어가는 쇠고기는 모두 오스트레일리아산이다. 우거지탕은 수입 고기를 뼈째로 고아 국물을 만든다. 고기는 등급이 낮은 것을 쓴다. 수입 쇠고기는 1kg당 7천원이다. 돼지고기 1kg은 4천원이다. 1kg당 3만원이 넘는 한우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이 학교 급식 담당자는 “미국산 쇠고기가 오스트레일리아산보다 싸게 들어온다고 한다.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면 그걸 쓸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병원의 환자 급식과 회사의 직원식당, 대학교 내 학생식당 등도 사정은 비슷하다. 서울의 한 정형외과 병원. 이 곳에선 교통사고 등으로 골절상을 입은 환자 80여명이 입원해 있다. 이 곳 역시 급식용으로 수입 쇠고기를 쓴다. 환자들은 병원 급식 담당자에게 뼈를 고아서 만든 곰탕이나 설렁탕, 우거짓국을 많이 달라고 한다. 뼈를 고은 음식을 많이 먹을수록 부러진 뼈가 빨리 나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곳의 급식 담당자도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가락시장에서 호주산 수입 쇠고기를 사 오는데, 미국산이 싸다면 그걸 사올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픈 데 나으라고 고기요리를 해주는데 오히려 (광우)병에 걸리면 어떻게 될지 걱정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빗장이 완전히 풀렸다. 이명박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캠프 데이비드 별장 정상회담을 앞둔 4월18일 농림수산식품부가 발표했다. 2003년 12월 광우병 사태로 수입이 금지된 지 4년5개월 만이다. 시민들은 LA갈비는 물론 미국산 곰탕, 곱창까지 먹게 됐다. 몇 개월 전까지 살코기에서 뼛조각 하나만 발견돼도 미국으로 돌려보내던 정부가 뼈를 통째로 수입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틀었다. 국민에게 설명이나 이해를 구하는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부의 전격 발표에 불안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송기호 통상 전문 변호사(조선대 법대 겸임교수)는 “올 2월 보건복지부가 낸 ‘인간광우병 관리 지침’ 2차 개정판에선 감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소의 뇌와 척수를 먹지 말라고 했다. 광우병이 발생한 나라에서 쇠고기를 수입하는 것을 규제하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자신들이 주장한 것과 180도 다른 방향으로 수입 쇠고기 정책을 바꾸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책 담당자들은 오히려 안이한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 민동석 농림수산식품부 농업통상정책관은 4월22일 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에서 자유로운가’라는 질문에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만 제거하면 99.9% 안전하다. 마치 독을 제거한 복어를 우리가 아무런 걱정 없이 먹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광우병은 국제수역사무국(OIE)이 주요 관리 대상으로 삼는 사람·동물 공통 전염병 중 하나다. 복어 독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위험하다. 광우병의 원인 물질은 ‘프리온’(prion)이란 단백질 입자다. 프리온이란 말은 ‘단백질’(protein)과 바이러스의 최소 단위인 ‘비리온’(virion)에서 따왔다.

끓여먹고 고아먹는 우리 식문화

프리온은 단백질 형태여서 익혀도 파괴되지 않고, 약간만 소비해도 몸에 전이된다. 일단 전이되면 잠복 기간이 10년에서 20년에 이른다. 프리온이 정상 세포의 변형을 일으키기 전까지 감염 여부조차 확인하기 어렵다. 뇌·척수 등 SRM에서 프리온이 자주 발견된다. 하지만 살코기와 소변, 혈액 등에서도 발견됐다는 보고도 있다. 이처럼 무시무시한 프리온에 서민들의 식탁은 노출돼 있다. 부유층이 주로 찾는 백화점에선 미국산 수입 쇠고기를 팔지 않는다. 한우만 판다. 백화점들은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더라도 당분간 팔지 않겠다고 했다. 신세계 홍보실의 한 과장은 “2000년대 초반까지는 미국산 수입 쇠고기를 매장에서 팔았으나, 2003년 미국 광우병이 문제가 된 뒤부터 미국산 수입 쇠고기를 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민들이 즐겨 찾는 대형 할인마트에선 미국산 수입 쇠고기를 판다.

고급 음식점이 아니라면 식당 음식에도 수입 쇠고기가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전통적인 식습관은 고기를 직접 먹는 것이 아니라 끓여서 먹는 방식이다. 적은 양으로 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거나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서였다. 양지머리나 아롱사태로 국을 끓일 때도 고기를 오랫동안 푹 고아서 국물을 낸다. 그래서 식당 메뉴의 대부분에는 쇠고기가 들어간다. 부대찌개, 사골곰탕, 우거지곰탕, 쇠고기국밥, 쇠고기볶음, 설렁탕, 우족탕, 순댓국, 우거지갈비탕, 도가니탕, 해장국, 갈비탕, 냉면, 뚝배기불고기, 너비아니 등 손가락으로 다 꼽지 못할 정도다. 뿐만 아니다. 햄버거를 비롯한 모든 패스트푸드, 대기업에서 만드는 조미료, 간식으로 먹는 죽, 라면 스프에도 쇠고기가 들어간다. 쇠고기에서 추출한 젤라틴은 알약 캡슐에도 들어간다. 허름한 식당에서 먹는 소머리국밥에서, 또는 쇠고기를 잘게 썰어 만든 햄버거에서도 프리온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여론이 들끓자, 정부는 4월21일 미국산 수입 쇠고기 대책을 내놓았다. 지금까지는 300㎡(약 90평) 이상 대형음식점 구이용 쇠고기에만 원산지 표시 의무를 적용했다. 6월22일부터는 100㎡(약 30평) 이상 일반음식점에서도 구이용 쇠고기뿐만 아니라 갈비탕·튀김·찜·육회용 쇠고기도 원산지를 밝히도록 했다. 또 원산지 표시 단속 권한도 농산물품질관리원이 갖도록 했다. 하지만 여전히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수입 쇠고기를 한우로 속여 팔다 적발된 유통업체는 390여 곳이었다. 해마다 10%씩 증가하는 추세다. 또 여전히 단속 대상에서 빠지는 규모 100㎡ 미만 음식점은 전체 음식점의 절반이 넘는 55%에 이른다.

김성훈 상지대 총장(전 농림부 장관)은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이익이 중요하다. 따라서 국민건강은 개인사업주나 가공업체가 아니라 국가가 책임질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김 총장은 “쇠고기 협상은 너무나 무책임하게 결론 났다. 우리나라에서 광우병이 발생한다면, 대통령과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을 벌여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 연대’ 정책국장도 “닭이나 오리를 충분히 끓여 먹는다면 조류 인플루엔자에 걸릴 위험은 없다. 그런데 왜 일본과 중국은 우리나라 닭고기를 수입하지 않을까. 자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다. 국민건강은 국가가 지켜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부 언론들은 ‘미국 사람도 먹고, 재미동포도 먹는데 우리는 왜 못 먹느냐’고 문제를 제기한다. 이에 대해 김성훈 총장은 “미국 사람들이 먹는 쇠고기의 97%는 20개월 미만 소의 고기다. 또 뼈까지 고아 국물을 먹는 음식문화의 차이점을 인식하지 못한 무책임한 주장”이라고 말했다.

닭·돼지고기 값도 떨어뜨릴 것

세계적으로 광우병은 대부분 30개월 이상 된 소에서 발견됐다. 그래서 그동안 30개월 미만 소의 고기만 수입했으나 이번에 나이 제한이 철폐되면서 앞으로는 30개월 이상 자란 소의 고기도 수입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이 우리에게 제출하게 돼 있는 수출검역증명서에 소의 나이를 표시하지 않아도 되는 점 역시 문제다. OIE는 30개월 이상의 소에선 뇌·두개골·척수·눈·등뼈 등 7가지를 빼고 수입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30개월 이하면 편도와 소장 끝만 빼면 된다. 우리 쪽은 협상 기간에 계속 나이 표시를 요구했으나, 미국이 거부했다. 단, SRM의 하나인 등뼈가 들어가는 ‘T-본’ 스테이크만, 그것도 180일 동안만 ‘30개월 미만’이라는 나이를 표시하는 선에서 협상을 마쳤다. 나머지 SRM의 경우 미국이 나이에 맞춰 제대로 제거해주기를 믿는 수밖에 없게 됐다.

마지막으로,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도 우리 정부가 즉각 수입이나 검역을 중단할 수 없게 됐다. 현재는 미국 검역 시스템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우리 정부가 자체 판단에 따라 수입을 전면 금지할 수 있다. 하지만 타결된 위생 조건에선 미국이 자체 역학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우리 정부에 통보하기만 하면 된다. 이 때문에 정부의 쇠고기 협상은 국민건강권과 검역주권을 내팽개쳤다는 비판을 받는다. 김동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활동가는 “애초 정부는 마지노선으로 나이 표시만은 지키려 했지만, 이마저도 지키지 못했다. 굴욕적인 협상이었다. 정부가 한-미 FTA 타결과 국민건강권을 맞바꾼 것”이라고 비판했다.

수입 쇠고기는 대체재인 돼지고기와 닭고기 값도 떨어뜨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산 뼈 있는 쇠고기가 들어오면 돼지고기 값은 13~20%까지 급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산지 소값도 폭락하고 있다. 농민들이 소값이 더 떨어질 것으로 보고 소를 팔려고만 하지 사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 논란은 정치권으로 번지고 있다. 통합민주당,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등 야권 3당은 4월23일 국회 차원의 청문회 개최를 추진하는 데 합의했다. 이에 한나라당은 야 3당의 청문회 추진은 “정치 공세”라며 TV 공개토론을 하자고 역제안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쇠고기 협상은 이미 1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 쪽과 합의해 개방을 약속한 사안”이라고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해 하고 있다. 이러는 사이 국민들은 ‘러시안 룰렛’처럼 언제 어디에서 ‘프리온’을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한겨레21> 정혁준 기자)

08. 04. 29.


댓글(35)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ephistopheles 2008-04-29 19:40   좋아요 0 | URL
입에서 욕이 맴맴 돌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식육용으로 어떤 고기가 들어갈까요?

로쟈 2008-04-29 21:34   좋아요 0 | URL
당근 한우가 아닐까요?..

Sati 2008-04-29 19:43   좋아요 0 | URL
미국 정부사절단 올 때마다 미국산 소고기 특스테이크를 대접하면 가관이겠군요.

로쟈 2008-04-29 21:34   좋아요 0 | URL
특스테이크라면 먹을 만하지 않을까요?^^;

셀나 2008-04-30 18:11   좋아요 0 | URL
차라리 사골을 푹 고아서 방한 기간 내내 물처럼 마시게 해 드리죠.

biosculp 2008-04-29 20:33   좋아요 0 | URL
광우병에 과장이 심하다면 돌날라오는 분위기죠.
참고해볼만한 글하나입니다.

http://gene.postech.ac.kr/bbs/zboard.php?id=job&page=1&sn1=&divpage=3&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6504

로쟈 2008-04-29 21:41   좋아요 0 | URL
브릭에 올라온 글도 봤는데, 한국식 식문화의 특수성에 대해서는 고려하고 있지 않은데요. 전세계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먹는다고 하지만, 그 뼈와 내장을 고아서 먹는 나라가 더 있는지요? 발병 확률이 높지는 않더라도 우리가 시범 케이스가 될 확률은 높아지는 거 아닐까요? 척수가 가장 위험한 부위라고 하니까..

파란여우 2008-04-29 22:26   좋아요 0 | URL
육식문화권인 유럽조차 미국산 쇠고기는 10%에 불과합니다.
광우병 과장설은 아직 그 피해자가 말라리아나 결핵 환자 숫자만큼
공식적으로 통계발표가 나오지 않았으므로
이 역시 체감성에서 떨어지는 설이라고 여깁니다.
또한 광우병 유발이 없다고 해도 사육과정이 엉망진창인 고기를
먹어도 된다는 논리는 타당치 않다고 봐요.

로쟈 2008-04-29 22:50   좋아요 0 | URL
네, 공감입니다. 싱어의 주장대로 먹고 살 만하다면, 이젠 '먹을거리와 윤리학'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4-29 23:44   좋아요 0 | URL
가축을 공장생산품처럼 대량사육하는 방식 자체를 반성해야 합니다.싱어의 주장은 맞아요.예전에 업톤 싱클레어의 <정글>을 읽고 옛날 미국은 빈민들이 먹는 육가공품이 따로 있고 부자가 먹는 육가공품이 따로 있었군...했는데 지금도 미국은 마찬가지라고 하네요.우리나라도 얼마전부터 일본식용소인 화우를 비싼 값으로 주문해먹는 사람들이 있던데...그냥 우리집 뒷산에서 나물이나 뜯어 먹어야겠어요.쑥은 이제 써서 안되고 머위대나 잘라먹어야죠.그리고 우리나라 식용견 사육장도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개를 키워 성질이 사나와요.덩치만 키우려고 투견종자까지 섞어 품종을 만들어가지고 성격도 얼마나 사나운지 일단 밖으로 튀어나왔다하면 맹수가 따로 없어요.1년에 몇명씩 물려죽잖아요.올해초엔 개농장 주인의 며느리인 스무살 먹은 캄보디아 새색시가 물려죽었죠.이 개들은 주인이고 뭐고 없어요.밥주다 물려죽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닭이나 소도 좁은 공간에서 키우면 성격이 이상해져요.

로쟈 2008-04-30 00:02   좋아요 0 | URL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biosculp 2008-04-29 23:51   좋아요 0 | URL
몇몇 토론을 보니 미국도 스튜나 스프를 만들때 소뼈 그래도 고아서 만든다고 하더군요.
식습관이 꼭 우리만 특별한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소고기 개방찬성입장은 아닙니다.

로쟈 2008-04-30 00:02   좋아요 0 | URL
우리가 탕을 먹는 수준만큼은 아니겠죠. 말씀대로 '확률' 문제인데, 우리가 가장 높은 확률에 노출될 거라는 건 부인하기 어려운 거 아닐까요?..

마늘빵 2008-04-30 00:03   좋아요 0 | URL
"FTA는 해야하고, 그 다음은 소비자 몫"이라고 했다는데, 결국 돈 있는 놈들은 한우 골라 먹고 없는 소비자는 광우 먹으란거죠. -_- 소비자 몫이면 그거죠 머.

로쟈 2008-04-30 00:07   좋아요 0 | URL
어제 최신버전으로는 FTA와 무관한 '설겆이'라고 표현하더군요.--;

마노아 2008-04-30 00:09   좋아요 0 | URL
저녁 무렵에 kbs스페셜을 다시 보았는데 화면을 끝까지 보고 있자니 후덜덜 떨렸습니다.
의료보험 민영화 추진도 무서웠지만 미국산 쇠고기 개방은 더 끔찍하게 무섭더군요.

로쟈 2008-04-30 23:08   좋아요 0 | URL
미리부터 여름 극장가 모드가 된 건가요?^^;

섬나무 2008-04-30 09:13   좋아요 0 | URL
에밀 시오랑의 '독설의 팡세'를 읽으면 낄낄대면서 두려워지고 그러던데요
의지 결핍자들만이 생각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므로 그들만이 생각을 해야할 것이다. 적극적인 인간들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면, 일상의 조용한 무질서가 비극 체계로 돌변한다./
이 문장에서 나를 배꼽잡게 한 건 의지결핍자였구 나를 두렵게 한 건 적극적인 인간들. 특히 명박씨가 대표적으로 떠올랐는데 도대체 우린 어느 정도의 비극체계로 돌진하게 될까요.
정말 두렵습니다. 누가 명박씨 생각 좀 안하게 해줄 수 없을런지...


로쟈 2008-04-30 23:07   좋아요 0 | URL
진중권 인터뷰에 보니, 이대통령에게 가장 우려하는 점을 묻는 질문에 "이분이 잠을 안 잔다는 것"이라고 해놓았더군요...

섬나무 2008-05-01 11:53   좋아요 0 | URL
잠을 안 자는 게 우려된다... ㅎㅎㅎ

비공개 2008-04-30 17:33   좋아요 0 | URL
이제 아프지도 말아야겠네요. 약 캡슐에도 소고기가 들어간다니,, 라면도 끊고, 정말 채식주의자가 되어야겠습니다..

로쟈 2008-04-30 23:04   좋아요 0 | URL
대에충 먹고 사는 일이 이젠 어려워질 거 같습니다...

털세곰 2008-05-01 01:22   좋아요 0 | URL
무릇 사람은 자신의 그릇 크기가 있다는 생각을 점점 굳힙니다. 이명박이란 인간은 한 회사 사장 정도하면 딱이었던 인물크기입니다. 그 이상(왠 시장???)도 그 이하도 결코 아닙니다. 본인의 손발은 부지런히 움직일지 모르나, 그 결과는, 본인의 선한 의도와는 심히 벗어나있고, 그런 인간에게 맞는 역할을 찾아주지 못한 것은 결국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이걸 그 사람 본인이 깨치지 못한다는 것, 설령 깨쳤더라도 그 자리에서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 행여나 본인은 내려가고 싶어해도 주변에서 말린다는 것... 모두 비극입니다.
문제는 그 비극으로 슬퍼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재앙적 파멸을 가져온다는 것이지요. 더 큰 파멸에 비하면 더 작은 파멸이 이로워야합니다.
오늘 누가 그러더군요. 이명박 대통령 각하 체포조가 발동하면 자기 기부금 내겠다고...
저 역시 아낌없이 희사할 것 같습니다.

털세곰 2008-05-01 01:23   좋아요 0 | URL
아 어디선가 들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인물형은 "신념에 찬 또라이"라고 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훠얼씬 나을 것은 이 신념에 찬 또라이는 자신의 신념을 실현하고자 광분합니다. 거기다 힘까지 쥐어져있다면... 오호라 통재라

로쟈 2008-05-01 23:34   좋아요 0 | URL
별로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저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섬나무 2008-05-01 14:25   좋아요 0 | URL
pd수첩 쇠고기 수입 방영으로 네티즌들이 들끓고 있는데 모든 언론매체는 아주 조용합니다.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 이명박씨는 밀어부치고 독단적으로 결정하던 ceo시절의 습관에 익숙한 게 아닐까 싶어요.그가 사용하는 섬긴다는 단어의 뜻은 다른 것인가 싶습니다. 어제 오늘 컴에서 떠나지지 않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아주 기이한 행태의 근원이 너무 빨리 밑천을 드러내는 게 감탄스러울 지경입니다. '설겆이'라니... 그럼 걍 설겆이나 하시지 왜 밥그릇은 박살내는지 모르겠네요.

로쟈 2008-05-01 23:39   좋아요 0 | URL
사태가 너무 분명하고 노골적이어서 오히려 '난해할' 정도입니다. 요즘 정세는....

네모선장 2008-05-01 14:54   좋아요 0 | URL
보수주의자들이 10년만에 정권을 잡았습니다.
그간 사회의 변화를 뼈저리게 느끼며 자신들의 관점에서 반성에 반성을 하여 정권을 잡았습니다. 제 생각엔 언론매체가 저리도 조용하다면 나름대로 대응을 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로쟈 2008-05-01 23:38   좋아요 0 | URL
학습기간이 앞으로도 거진 '5년'이란 건 상당히 비싼 대가가 아닌가 싶네요...

섬나무 2008-05-01 16:11   좋아요 0 | URL
진중권씨 오늘 아침 평화방송-라디오-인터뷰를 읽었는데요 어디서도 언급되지 않는 네티즌들의 움직임을 전하네요. 근데 진중권씨 쎄네요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같은 한 사람 자른다고 뭐가 달라지겠냐, 지금 청와대 브레인들은 모두 광우병 걸린 두뇌 같다... 국민들이 이제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해놨는지 알게 되는 거다. 그럼 현 정부엔 더 기대할 게 없단 말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좋은 말씀 한 마디 해주신다면? 모르면 사람들이 시키는대로라도 하면 되지요. 자신들의 능력의 한계를 제대로 알고.
음... 그래두 속이 갑갑하네요.

로쟈 2008-05-01 23:35   좋아요 0 | URL
이번주 시사인 특집이 '진중권을 논하다'입니다. MB 덕분에 요즘 가장 바쁜 논객이더군요...

Koni 2008-05-01 18:02   좋아요 0 | URL
저는 채식주의자인데, 친구들로부터 "채식주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니?" 하는 질문을 듣고 있습니다. 물론 그게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럴 생각도 없는, 질문이 아닌 푸념이란 건 알지만요. 무서운 시대입니다.
친구들과의 대화는 엉뚱하게도, "난 이명박 안 찍었어!"라는 양심 선언으로 끝이 납니다...

로쟈 2008-05-01 23:37   좋아요 0 | URL
한번에 완전채식주의자가 되긴 어렵겠지만 저도 최소한 '양심적인 잡식주의자' 정도는 돼야 하지 않나 생각중입니다...

소경 2008-05-02 16:48   좋아요 0 | URL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일부만 읽었는데, 대체로 선뜻 동의하기 어렵더군요. 이후 채식주의에 대한 토론때 어김없이 기업화한 가축 사육 방식에 대해서 비판이 나오고, 1500원짜리 삽겹살을 먹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는데, 고기의 식감을 좋아하는 저로써는 갈등 되더군요. 물론 당일 학과 행사 이후 먹었던 갈비찜을 어정쩡하게 바라보면서도 입에 들어가긴 하더군요. (비판은 못하고 제나름대로 고기가 주는 보양/신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에 대한 생각만 말 못하고 머리에 맴맴 울리더군요. 김준평처럼;;)

따우리~* 2008-05-03 13:01   좋아요 0 | URL
아~ 진짜 요즘들어 신문보는 것이 티비 보는 것이 너무 무서워서
페이지를 못넘기고 채널을 못 돌리 겠습니다.
5년동안 계속이러면 곤란한데 말이죠..
 

내일 아침신문의 '김우창 칼럼'을 미리 읽어본다. 지난 총선에 대한 평가를 담고 있는데, 어디에서부터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모든 좋은 정치는 삶의 근본적 보수성을 존중하는 정치이다. 삶의 근본은 생명의 보존이다. 물론 생명의 보존은 적절한 현실적 조건을 확보함으로써 가능해진다.(...)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 최소의 조건은 의식주의 확보이다."라는 대목이 눈에 띈다. 언젠가 나도 적은 바 있는데, "유기체의 생존은 ‘항상성(호메오스타시스)’이라는 걸 조건으로 한다. 항상성이란 건 ‘기브 앤 테이크’, 즉 주고받는 타협을 통해서 유지된다. 단칼에 자결하지 않고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는 일은 언제나 그러한 ‘타협’을 전제로 한다. 그것이 인간조건이다." '대중의 보수화'를 말하기 전에 삶의 근본적 보수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해보인다...

경향신문(08. 04. 24) 삶의 근본적 보수성

이번 총선의 선거 결과에 대한 여러 해석 가운데 가장 명백한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다산연구소의 인터넷 논단 ‘다산포럼’에 실린 김민환 교수의 논평이다. 그것은 여당의 압도적 승리 또는 야당의 참담한 패배 이외의 다른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나라당과 그 주변부의 당선자들을 포함하면, 여권의 의석수는 185 석에 이른다. 지난번 총선에서 다수당이 되었던 민주당은 소수당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을 이끌 만한 사람들이 대거 낙선하여, 당의 그 조직과 향방에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더 중요한 것은 민심이 완전히 야당을 외면했고, 진보진영은 알아볼 만한 정체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김민환 교수는 지금까지 야당의 기반이 되었던 수도권에서 패배한 것을 이번 선거의 전형적인 사례로 든다. 이것이 여당 후보들의 뉴타운 공약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더 확실한 것은 그것을 넘어선 민심의 이반이 원인이라는 것이 김 교수의 견해이다. 그러나 이것은 뉴타운의 문제를 더 넓은 배경의 한 부분이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이 옳다는 말이지 그것이 요인의 하나가 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이것을 조금 자세히 생각해보는 것은 오늘의 정치 판도를 가늠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야당의 수도권 참패는 민심

뉴타운은 적어도 그 정책의 방향에서는 여당의 공약이라고만 할 수 없다. 선거에서 약속되고 있는 것이 개발, 재건축, 부동산 투기 이익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것을 적극적으로 추진 해온 것이 노무현 정부였다. 그런 점에서, 뉴타운을 포함한 개발 위주의 정책 방향에서는 여야에 크게 다른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지금의 시점에서 정책의 추진에 행정부와 서울시를 장악하고 있는 여당이 훨씬 능률적일 것임은 분명하다. 유권자들은 매우 논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런데 토건 개발 계획을 추진하면서도 노무현 정부는 그 정책 전반의 향방에 대해서는 다른 말을 했다. 부동산 가격의 앙등을 억제하겠다는 의지는 분명했고 또 그에 대한 조처가 있었다. 다만 그러한 조처들이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현실과 수사(修辭)의 모순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 자체가 여기에 대한 분명한 자기 이해를 가지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정부의 토건정책이 표방한 것은 균형 발전이었다. 또 거기에 추가하여 직업 창출의 의도가 있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 결과가 지가 상승과 부동산 투기열이었다.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은 의도가 현실의 움직임을 떠나 있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김민환 교수가 언급하고 있는 ‘좋은 정책포럼’이 내놓은 진보의 자구책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념을 줄이고 생활 현실을 존중하는 데로 돌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가상승과 부동산 투기가 없더라도 거대 토건 개발 계획은 그 자체로 국민 생활의 기반을 극도로 불안하게 하는 것이 되기 쉽다. 그것은 발붙이고 사는 땅에 계속적으로 지진이 이는 것과 비슷한 불안정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어떤 경우에나 토건이든 다른 것이든 거대 계획은 극히 조심스럽게 생각해야 하는 일들이다. 노무현 정부는 균형을 말하면서도 거대 계획들과 실생활의 균형을 조심스럽게 고려한 것이었다고 할 수 없다. 소비에트 시대의 여러 개발 계획과 자본주의 체제하의 부동산 사업을 다 같이 권력의 편의를 위하여 국민 생활의 재편성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정치학자가 있다. 정치는 대체로 이러한 유혹에 빠지기 쉬운 것이지만, 그래도 삶의 크고 작은 현실을 잊지 않는 것이 좋은 정치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시 미국의 진보주의자 폴 굿먼이 자신을 신석기 보수주의자라고 말한 것을 생각하게 된다. 모든 좋은 정치는 삶의 근본적 보수성을 존중하는 정치이다. 삶의 근본은 생명의 보존이다. 물론 생명의 보존은 적절한 현실적 조건을 확보함으로써 가능해진다. 그런데 이 조건은 사회와 정치의 발전 단계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정의된다. 위급한 상황에서 목숨만이라도 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적어도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 최소의 조건은 의식주의 확보이다. 그런 다음에는 물론 더 나은 의식주와 여가를 삶의 조건으로 생각하게 된다.

삶의 최소 조건의 확보라는 문제에서-그것이 어떻게 정의되든지 간에-그것을 위한 노력과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진보적인 정치 노선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정당성을 모두 내세우는 정치 집단은, 적어도 현대 사회에서 최소한 삶의 조건의 보편적 확보를 외면하지 못한다. 생존의 근본적 필요는 당파를 초월하여 그 자체로 모든 사람을 설복하는 어떤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넘어가는 다음 단계에서는 그러한 설득을 위한 압력은 점점 약화될 수밖에 없다. 더 나은 삶을 향한 욕망은 상호 이해와 협동 대신 물질적 자원과 사회적 인정을 선취하고자하는 경쟁이 되고, 치열한 투쟁이 된다.



인간주의 바탕 둔 정치 필요

장 자크 루소는 인간을 움직이는 근본적 동기로서의 두 개의 자아의식을 말한 일이 있다. 하나는 단순한 자기 보존의 의식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과의 우열 경쟁에서 자기를 확인하고자 하는 자기주장의 의식이다. 루소의 생각으로는 전자는 자연 상태의 인간의 심성이고 후자는 사회관계 속에 들어간 인간의 심성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어떤 조건하에서도 인간의 자아의식의 두 층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초적인 생존의 필요를 넘어간 다음에, 지배적인 것이 되는 것이 후자이다. 자유주의 정치사상은 이 경쟁적 자기의식을 자유의 표현으로 볼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희생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은 사회 발전을 위하여 불가피하다.

바다에서 밀물이 들어오면 모든 배가 뜨는 것과 같이 경제의 전반적 향상이 삶의 조건을 고루 향상하게 된다는 말은 이러한 자유 경쟁 또는 상호 투쟁의 이념을 조금 부드럽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보라고 하여, 거기에 따르는 희생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인가? 그렇게 하여 더욱 잘 사는 사회가 된다고 해도, 경쟁과 투쟁과 질시(嫉視)를 원리로 하는 사회가 참으로 살 만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루소는 경쟁과 투쟁과 질시로 쏠리는 사회의식을 협동적인 것으로 바뀌도록 하는 것이 사회 교육의 기본 과제라고 생각했다.

물질적 진보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우선적으로 생활의 물질적 수준의 향상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다른 진보주의자들은 거대 사회계획을 통하여 이것의 고른 분배를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진보주의의 사명은 기본적인 생존을 위해서는 물론 그것을 넘어 삶의 전반적인 향상을 추구함에 있어서도 그 노력이 개체적인 필요와 사회적인 협동과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일이다. 넓고 자상한 인간주의의 바탕에 서 있지 않은 진보의 정치는 쉽게 정치권력의 계획으로 끝난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노력으로 협동과 균형의 도덕적 풍토를 길러 나가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에는 여러 가지 투쟁의 외침은 있어도 인간주의적 깊이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08. 04. 23.

P.S. 참고로 칼럼에서 언급되고 있는 김민환 교수의 논평을 옮겨놓는다.

다산포럼(08. 04. 17) 끝은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다

총선이 끝났다. 여당인 한나라당이 153석을 얻은데 비해 야당인 민주당은 81석, 민주노동당은 5석을 얻는데 그쳤다. 자유선진당이나 친박연대 같은 보수 여권 당선자를 합하면 여권은 185석에 이른다.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간판으로 152석을 얻은 민주당 처지에서 보면 이번 총선 성적은 한 마디로 참담하다.  

의석의 절대 열세에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것은 야당의 대표급 인사들이 줄줄이 낙선한 일이다. 당 대표인 손학규 후보가 한나라당 박진 후보에게 역부족으로 무릎을 꿇었고, 이명박 후보와 대선에서 겨룬 정동영 후보는 한나라당이 긴급 투입한 정몽준 후보에게 길을 내주고 말았다. 김근태 김덕규 이상수 유인태 등 여권 거물들도 맥없이 무너졌다. 이제 그 당을 누가 이끌어갈지 걱정할 형편이 되었으니 보통 문제가 아니다. 



민심은 야당을 떠났다 
수도권을 고스란히 여당에 넘겨준 것도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지역별로 극명하게 표심이 갈리는 상황에서 언제나 선거의 승패를 좌우해온 수도권 민심이 미련 없이 야당을 외면하였음을 야권 사람들은 통절한 마음으로 재확인했을 것이다. 뉴타운 공약 때문에 졌다고 느끼는 야당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수도권 민심이 야당을 떠난 것은 오래전 일이다. 

선거 결과가 이런 지경인데도 어느 신문은 총선 결과를 논평하면서 “절묘한 표심”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이명박 정부가 다수당으로서 지배적인 지위는 누리되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정치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절묘하다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그런 표현이 그럴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야당의 시각에서 보자면 도저히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견제는 원칙적으로 야당이 하는 것이지 여권 주변부가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제 야당은 81명의 국회의원을 거느리고, 작심만 하면 구 여권 당선자를 끌어들여 2백석을 채우는 것도 어렵지 않은 거대 여당을 상대로 정치를 해야 한다. 독재시절에 야당은 의석이 적어도 민심이 뒷받침했다. 그러나 지금 민심은 결코 야당에 우호적이지 않다. 이 어려운 상황을 야당은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이런 지난한 물음에 ‘새로운 진보’를 지향하는 지식인 그룹이 좋은 답을 제시했다. 
 
‘좋은 정책포럼’이라는 지식인 모임이 내놓은 계명(誡命)은 열 가지다; 이념이 아닌 실생활에서 출발하자, 이상주의와 근본주의에 빠지지 말자, 국민의 평균적 정서와 동떨어진 정책을 제시하지 말자, 반시장경제 반기업 이미지를 탈각하자, 민주주의 단일차원만으로 사고하지 말자, 민족주의의 틀에 갇히지 말자, 국가안보를 중시하자, 북한 주민의 인권보장을 요구하자, 노동의 권리와 함께 윤리도 주장하자, 사회적 대화와 대타협을 지향하자. 어느 한 가지도 놓쳐서는 안 될 덕목이다. 

세상은 변하는 자의 것이다 
세상은 변하는 자의 것이다. 진보주의자들이 세상을 얻었다고 생각하며 변화에 게을렀다면 보수주의자들은 세상을 잃은 시점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선진화로’라는 새로운 기치를 내걸고 변화를 지향했다. 공안세력 냄새를 털어 내고 산업세력의 면모를 갖추려 애썼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스스로 변화한 보수주의자들이 그 과실을 향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제 진보주의자들이 변할 차례다. 80년대 운동권의 낡은 사고는 미련 없이 내팽개쳐야 한다. 진보주의자들은 스스로 변해 지금의 끝을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보수주의자의 변화가 진보주의자의 변화를 부르고 진보주의자의 변화가 다시 보수주의자의 변화를 부른다면 그 사회는 희망을 보장할 것이다.(김민환_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댓글(2) 먼댓글(1)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자그니의 생각
    from zagni's me2DAY 2008-05-05 13:41 
    모든 좋은 정치는 삶의 근본적 보수성을 존중하는 정치이다. 삶의 근본은 생명의 보존이다. 물론 생명의 보존은 적절한 현실적 조건을 확보함으로써 가능해진다
 
 
드팀전 2008-04-24 09:24   좋아요 0 | URL
'유기체의 항상성'이라는 것이 흔히 말하는 '자연적 보수주의'라는 것 아니겠습니까...그것이 '정치적 보수주의'와의 친화성이 높을 것이기에 그 '정치적인 측면'에서 그 고리에 어떤 홈을 팔 수 있는가..이것이 '진보'의 과제이자 또 '진보' 스스로도 성찰해야 하는 부분 아닐까 싶군요.
생물체의 입장에서 대중의 '호메오타시스'는 존재의 일반 조건이겠지요.그 존재 조건을 환원해서 정치적 보수주의를 순리인양 이야기하는 '실용주의자'(?) 많아서 깝깝하긴 합니다.

로쟈 2008-04-24 10:30   좋아요 0 | URL
그런 '보수주의'의 입장에서 볼 때, 대운하 같은 거 하면 안된다는 것이죠!..
 

지난주에 삼성 특검 결과가 발표되었다. 조세포탈 등의 혐의에 대해서만 불구속 기소한다는 것이며 예상대로(?) 상식에 미치지 못하는 내용이다(아직 종결되지 않았지만 이 사건의 전말은 한국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데 아주 요긴한 자료가 될 듯하다. 그게 이 사건의 의의가 될까?). 이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남겨두게 됐는데, 애초에 이 비리사건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의 인터뷰기사와 재판부에 대한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08. 04. 19) "거짓말이었다면 나를 구속하라”

“나를 구속하라.” 말로는 누구나 삼성과 이건희 회장을 단죄할 수 있다. 조준웅(67) 삼성 특별검사도 지금으로부터 121일 전 특검에 임명되자 “검찰 등 수사기관이 어떤 특정인이나 특정 단체에 면죄부를 주기 위해 수사하는 것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특검팀이 내놓은 150여쪽에 이르는 수사결과 발표자료는 “차명주식은 이건희 회장 개인 것이 분명하다”고 거듭 밝혔다. 그러나 같은 발표자료에 등장하는 김용철(50) 변호사는 “신빙성이 의심되고, 모순에 차고, 수시로 변하는” 남자였다. 김 변호사가 ‘나를 처벌하라’고 나선 이유다.

18일 아침 김 변호사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새벽 3시까지 변호인들과 반박자료를 준비했다고 한다. 특수부 검사 출신인 그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참고인 진술을 저렇게 조목조목 물어뜯는 것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 “비자금과 로비 의혹을 대충 덮을 것은 예상했지만 나를 물어뜯을지는 정말 몰랐다”는 것이다.

특검팀은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 결과 발표문의 상당 부분을 ‘김 변호사의 진술이 얼마나 신빙성이 없는지’를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심지어 삼성 본관에서 돈을 주고받는 정황을 설명하기 위해 김 변호사가 특검팀에 그려준 사무실 약도조차 ‘로비는 없었다’는 결론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됐다. 그는 “사람 말을 비틀어서 저렇게도 만들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김 변호사는 특검팀의 로비 의혹 수사 태도에 넌더리를 쳤다. “압권은 특검팀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명단’입니다. 제가 삼성 법무팀장으로 있을 당시의 검찰 주요 보직자 명단을 내밀며 ‘확인’을 해 달라고 하더군요. 이들이 나중에 검찰총장이나 장관이 될 때 로비 의혹이 불거지면 ‘특검 수사에서 해명됐다’며 도와줘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죠. 환장하겠더군요.” 그는 확인해주지 않았다. 대신 마무리 조사를 받으며 “‘면죄부 조사면 더이상 진술 안 하겠다’는 내 말을 반드시 조서에 남겨 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특검팀에 출석해 20여 차례 조사받았다. “내 말이 앞뒤가 안 맞는다고 추궁당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런데 왜 수사 끝나고 나를 씹는지 모르겠네요.” 정작 수사 시작부터 종료까지 수시로 말을 바꾼 것은 삼성 쪽이었다. “<행복한 눈물>을 보세요. 애초 삼성 쪽은 홍라희씨가 샀다고 했다가 곧바로 아랫사람 착각이었다고 말을 바꿔요. 그런데 특검팀은 그걸 인정해주거든요.”

“수사 끝난 뒤 왜 나를 깎아내리는지 모르겠어”

그는 특검팀이 “(김용철과 삼성 가운데) 누가 수사 대상인지 전혀 모르는 거 같다”고 했다. 수시로 바뀌는 삼성 쪽 해명은 별다른 확인도 없이 그때마다 인정했던 특검팀을 삼성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특검팀을 얼마나 비웃을까요. 아마 고마워하지는 않을 겁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줄 필요는 없을 텐데’ 하면서.”

김 변호사는 이번 수사를 수술에 빗댔다. “의사가 수술 끝나고 뱃속에 가위 넣고 꿰매도 환자들은 몰라요. 우리도 특검팀이 뭘 수사했는지 모르잖아요?” 덜 도려낸 암세포는 나중에 온몸으로 퍼진다. “국가기관·언론·지식인을 모두 장악하고 있다는 삼성의 위력이 드러난 결과죠. 이 위력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악성종양입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성과는 역설적이게도 삼성의 힘을 다시 한번 확인한 데 있다고 김 변호사는 여기고 있다. “그 힘의 실체를 저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수사 결과가 저를 공격하지 않습니까?”

그는 특검팀 안에서 ‘빅딜’도 아닌 ‘그레이트 딜’이라는 말을 몇 번 들었다고 했다. “특검팀이 수사를 풀어갈 복안이 있다고 하길래 뭔가 했습니다. 이제 보니 불구속 기소를 하는 대신 돈의 원천을 덮어주고 수사를 검찰에 넘기지 않기로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로비 당사자들에게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한 김 변호사는 자신에게도 ‘거래’가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특검팀에서 ‘로비 의혹이 의심은 가지만 증거가 없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주겠다고 했습니다. 고소당한 게 문제되지 않도록 해주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검찰에서 원하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특검, 삼성인지 김용철인지 수사대상 헷갈려”

그는 “삼성이 수십년 동안 감춰 놓은 돈을 국가예산으로 찾아서 합법적으로 세탁까지 해준” 특검 수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수사 결과를 보고 믿을 국민이 있을까요?” 하지만 걱정도 많다. “한달 뒤에 누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겠습니까? 앞으로 어떤 사건을 구속 수사할 수 있겠습니까? 제헌절쯤 되면 벌써 집행유예 판결이 나지 않았을까요?”

그는 이건희 회장 일가와 삼성을 세속의 법정이 아닌 ‘역사의 법정’에 세우겠다고 했다. 불씨가 남으면 더 큰 불로 번지기 마련이다. “인생을 걸 만한 일을 진짜로 찾은 겁니다. 저나 사제단,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동참할 것입니다.” 수사 결과가 발표되던 날 밤 사제단 신부들은 김 변호사에게 “명예를 함께 지키자”고 했다고 한다. “사제단과 제가 제기한 의혹들이 거짓이라면, 세상을 이렇게 시끄럽게 한 죄는 엄청납니다. 거짓말이라면 허위사실로 세상을 흔든 죄를 물어 저를 구속시켜야 합니다.”(김남일 기자)



한국일보(08. 04. 19) 삼성 재판 맡은 민병훈 부장판사

조준웅 삼성 특별검사가 불구속 기소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 전ㆍ현직 삼성 경영진 10명에 대한 재판을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가 맡게 되면서 이 부의 민병훈(47ㆍ사시26회) 부장판사에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민 부장은 짧은 기간이라도 실형을 선고하고 수시로 법정구속을 할 정도로 양형이 엄중하다. 또 논리에 맞지 않는 검찰 주장에는 잇달아 무죄를 선고할 정도로 법 판단이 깐깐하다. 이에 따라 민 부장이 이번 사건을 맡은 게 삼성 측에 독이 될 지, 특검팀에 올가미가 될 지 그 향배가 주목된다.
18일 서울중앙지법 등에 따르면 당초 삼성 사건은 경제 전담 재판부인 형사 24부나 25부에 배당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법원은 “24부,25부에 사건이 많다”며 사건을 부패 전담 재판부인 형사23부에 배당했다.

민 부장은 개인적으로 삼성 사건에 상당한 관심과 의욕을 보여온 것으로 알려졌고, 법원이 이번 사건에 적극적인 민 부장에게 배당했다는 분석도 있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경제,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사건인데다 치열한 법리 공방이 예상되는 만큼 믿고 맡길 수 있는 재판장을 고른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민 부장은 일단 유죄가 인정되면 집행유예보다는 단기라도 실형을 선고하고, 자주 법정구속을 하는 등 양형이 엄중하기로 유명하다. 민 부장은 최근 사건의뢰인의 투자금 13억여원을 가로채 불구속 기소된 이모 변호사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그는 또 지난해 12월 제이유그룹에서 2억여원을 받아 불구속 기소된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원에 대해 “국회의원을 3차례나 지낸 사람이 공무원의 직무와 관련해 2억원이라는 거금을 받아 죄질이 나쁘다”며 징역 2년을 선고하고 역시 법정구속했다.

그렇다고 민 부장이 무조건 검찰의 기소 내용을 수용하는 판사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민 부장은 2006년 말 대검 중수부가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을 4차례나 기각, 법원과 검찰의 갈등을 촉발시킨 주인공이다. 이로 인해 당시 검찰은 민 부장을‘공공의 적 1호’로 꼽기도 했다. 그는 또 지난해 10억원 상당의 대출 사례금을 받아 기소된 상호저축은행 회장 사건에서 검사가 공소장에 도장만 찍고 실수로 서명을 빠뜨리자 “공소의 효력이 없다”며 공소기각 판결해 검찰을 경악케 했다.

이에 따라 삼성 사건에서 기소 내용이 받아들여질 경우 이 회장 등에 대한 처벌이 강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억원의 뇌물수수를 ‘나쁜 죄질’이라고 판단하는 민 부장에게 1,128억원의 양도소득세 포탈과 에버랜드 등에 끼친 2,500여억원 가량의 손실(배임)은 큰 범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꼼꼼하게 법리를 따지는 스타일상 특검팀 기소 내용이 전부 인정될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이 회장은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실을 보고만 받았을 뿐, 지시 부분은 부인하고 있다.

특검팀도 물증 없이 정황증거로만 기소한 것이어서 자칫 무죄가 선고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 부장은 특검법에 따라 1심 재판을 3개월 내에 끝내야 하는 만큼, 앞으로 석달간 서초동 법정은 치열한 공방으로 뜨겁게 달궈질 예정이다.(고주희기자)

08. 04. 19.

P.S. 흠 오늘이 4.19기념일이군...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늘빵 2008-04-19 12:46   좋아요 0 | URL
4.19인데 4.19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고, 삼성은 멀리 도망가고... (둘이 무슨 관계인거야) ( '')

로쟈 2008-04-20 10:08   좋아요 0 | URL
잊혀진 4.19란 기사는 보이더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04-19 23:28   좋아요 0 | URL
대통령은 임기가 있는데 재벌총수나 언론사주는 임기가 무제한이라서...중앙일보는 김용철을 노리고 있더니 결국 일제사격 시작했더군요.

로쟈 2008-04-20 10:08   좋아요 0 | URL
요즘은 다들 너무 '노골적'이예요.--;

2008-04-21 0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4-21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Koni 2008-04-21 09:27   좋아요 0 | URL
세상은 참 읽기 어려워요.

로쟈 2008-04-21 10:15   좋아요 0 | URL
읽기는 어렵지 않지만, 너무 꼬여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럴 때는 그냥 끊어버려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