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전철에서 읽은 칼럼을 옮겨놓는다. 월요일을 제외한 평일에는 주로 경향신문을 손에 드는데, 요즘은 전철역 가판에서 가장 먼저 바닥을 드러낸다. 몇 부 안 갖다 놓는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덕분에 다른 가판까지 걷기 운동을 해야 했다. 요즘 쏟아지고 있는 칼럼들이 대부분 겨냥하고 있는 것은 단연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 '파문'이다. 아래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의 칼럼은 이 문제를 원론적인 차원에서 민주주의와 결부시키고 있어서 흥미를 끈다. "민주주의에서 통치엘리트의 이상적 모습은 평균적인 시민의 삶과 가까이 닮는 데 있다"는 원론은 민주주의의 딜레마와 함께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한다.
경향신문(08. 05. 09) [정동칼럼]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민주주의에서 통치엘리트의 이상적 모습은 평균적인 시민의 삶과 가까이 닮는 데 있다. 정치학에서 '근접성' 내지 '유사성'이라고 개념화하는 이 원칙은 통치자의 관점과 평범한 다수 시민의 관점이 수렴될 수 있는 심리적 기초를 설명해준다.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의 '신뢰'를 강조했던 영국의 정치철학자 존 로크 역시, 근본적으로 신뢰는 통치자와 피통치자 모두가 한 사회의 공동 구성원이라는 일체감을 갖는 데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지금 이명박 정부에서 이 근접성과 신뢰의 원칙은 깨졌다.
미국의 가치만 쫓는 1% 정권
최근 공개된 고위공직자 신상 자료들은 이명박 정부 통치엘리트들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내각의 80%, 청와대 수석의 100%는 전체 세대의 2%에 해당하는 종부세 납부 대상자들이다. 자녀 중 외국 국적을 가진 비율은 보통사람들의 경우 1만 명 가운데 6명이 안 되는 반면 이들은 5명의 1명꼴이다. 병역면제 처분을 받은 비율 역시 일반 시민의 6배나 많다. 국내 외제차 점유율은 갓 5%를 넘었는데 이들이 보유한 외제차 비율은 30%를 훌쩍 넘는다. 석, 박사 학위보유자 가운데 미국 대학 출신은 65%에 다다른다. 이들은 누구와 닮았는가? 평균적인 시민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사회 최상층을 대표하는 '1% 정권'이란 말은 크게 틀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더 중요한 특징이 있다. 그것은 이들 통치엘리트들의 삶의 경험과 가치지향이 우리 사회공동체 안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익숙하게 생각하고 중요시하는 준거 집단은 우리사회 밖에 있다. 한미동맹을 거의 체제이념의 수준으로 격상시킨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볼 수 있듯, 이들이 가까이 다가가려는 것은 미국이다. 그것도 미국의 보통사람들이 경험하는 실제의 미국이 아니다. 단지 우리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따라서 우리가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 절대 분리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물신화된 미국이다. 우리 사회 절대다수의 구성원들을 크게 실망, 분노시켰던 영어몰입교육 정책이나 무대책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 결정이 가능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시민들이 왜 분노하는지 알길
재밌는 사실은 이들이 시민들의 반응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것이다. 영어를 배울 바에야 미국인처럼 하는 게 낫고 미국사람들 먹는 소고기를 우리도 먹으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던 그들은, 시민들이 왜 화를 내는지 몰랐다. 새벽부터 일하고 밤새워 협상준비를 한 이들에게 시민들의 반응은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정 싫다면 업자들이 수입 안 할거고 수입해도 안 먹으면 된다는 발상은 그래서 표출될 수 있었다. 이는 그들이 스스로를 객관화해 볼 능력까지 결여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정치는 근본적으로 편을 나누는 것이다. 이는 모든 정치조직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명박 정부의 방식은 스스로에게 파국에 가까울 만큼 자해적이었다. 우리 밖의 미국에서 편을 얻는 성과는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 대가는 컸다. 초중고 학생들에게마저 조롱거리가 되었다. 영어몰입교육 정책은 다소 정서적인 상처만 남기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이번 소고기 협상 파동은 다르다.
이건 보통 말하는 '운동권 이슈'가 아니라 일반 시민 모두를 위협하는 실생활 이슈이자, 미국이 인정하지 않는 한 되돌이키기 어려운 '정치적 외통수'가 되었다. 어떻게 하나의 정치 쟁점이 절대다수의 시민들로 하여금 한 의견을 갖도록 만들 수 있을까. 그야말로 외국군의 침략 상황에서나 가상해볼 수 있는 유사 민족문제적 현상이 등장한 것이다. 누군가 이 정부를 꼭두각시 친미정권이라 한들 이를 탓하기만도 어려운 지경이다. 좀 닮은 구석이 있어야 할텐데 우리와 달라도 너무 다른 이 정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박상훈 | 후마니타스 대표)
08. 05. 09.
P.S. 오늘 입력된 인터넷 기사에는 미주 한인 주부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 반대 성명서를 냈다고 한다.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8. 05. 09) 美 한인주부들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 반대”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 주부들이 한국에 미국산 쇠고기가 전면개방되는 것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쇠고기 수입 재협상 실행을 요구하는 미주 한인 주부들의 모임’이라는 단체가 7일(현지시간) 한인회의 기자회견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성명서’를 냈다. 이들은 “최근 미국 내 일부 한인회에서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에 큰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낀다”며 “일부 한인회의 주장이 마치 미주 한인 전체를 대표하는 것인 양 잘못 전달되고 있는 상황에 우려를 표한다”고 성명서를 낸 이유를 밝혔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미국 내에서도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안감과 불신은 커져가고 있다”면서 “올해 미국 축산업계는 도축 직전 소의 건강상태를 확인해야 하는 현행법을 어기고 광우병의 증세가 의심되는 소를 도축하고, 이 쇠고기가 학교 급식용을 비롯, 미전역의 시장에 유통돼 결국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쇠고기 리콜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어 “지난달 4일 캔자스의 한 업체가 광우병 위험물질인 편도를 제거하지 않은 채 유통했다가 결국 냉동 소머리 40만6000파운드를 자발적으로 리콜한 바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성명은 “이같은 사례들은 미국 내에서 조차 쇠고기 안전성 검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며 “1%도 되지 않는 광우병 검사비율로 미국 쇠고기의 안전성을 장담하기에는 큰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 다음은 성명서 전문.
미주지역에 거주하는 한인주부들은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을 반대하며 재협상을 촉구합니다!!
가족의 건강과 식탁을 책임지고 있는 미주 한인주부들은 금번 미국 쇠고기 협상으로 앞으로 광우병 위험에 노출될지도 모를 한국동포들에 대한 우려와 걱정에 시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미국 내에서도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안감과 불신은 커져가고 있습니다. 올해 미국 내 축산업계는 도축 직전 소의 건강상태를 확인해야 하는 현행법을 어기고 광우병의 증세가 의심되는 소를 도축하였고 이 업체의 쇠고기가 학교 급식용을 비롯 미전역의 시장에 유통되어 결국 미국 역사상 최대규모의 쇠고기 리콜을 야기했습니다.
또한 지난달 4일, 캔자스의 Elkhorn Valley Packing LLC 라는 업체는 광우병 위험물질인 편도를 제거하지 않은 채 유통했다가 결국 냉동 소머리 40만6000 파운드를 자발적으로 리콜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 캔자스 주 고급 육 생산업체인 Creekstone Farms에서 소 뼈 파동으로 막힌 일본 수출시장을 열기 위해 업체내의 자발적인 전수검사의 의지를 밝혔지만 미 농무부가 이를 최근에 불허하였습니다. 업체의 자발적인 검사마저 가로막는 미농무부의 태도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의심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사례들은 미국 내에서 조차 쇠고기 안전성 검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더욱이 미국 내에서 동물성 사료는 아직도 사용이 완전히 금지되지 않았으며, 비인도적이고 비위생적인 축산환경 또한 지속적으로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1%도 되지 않는 광우병 검사비율로 미국 쇠고기의 안전성을 장담하기에는 큰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최근 미국 내에서도 유기농 쇠고기나 풀 혹은 식물성 사료를 먹여 키운 쇠고기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호주 및 뉴질랜드 등 광우병 청정지역에서 수입된 쇠고기의 소비 또한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미국 내 쇠고기 소비행태가 이같은 변화를 보이고 있고 쇠고기 안전성에 대한 불안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미주한인회는 미주 동포들이 먹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는 무조건 안전하다는 식의 성명을 발표하여 마치 이것이 전체 미주 한인들의 목소리인 양 사실을 왜곡하고 여론을 호도하고 있는 바, 이에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230만 재미동포 중 미 축산업의 실태를 알고 있는 한인들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과 위생성에 비판적 의견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산 쇠고기 소비에 더더욱 신중을 기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현재 미국의 축산 환경은 육우 사육, 광우병 검사, 도축 그 어느 과정에서도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데, 이번 협상의 결과로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되더라도 한국은 수입거부권조차 없이 국제수역사무국의 결정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검역주권도 없이 30개월 이상 소의 살코기와 30개월 이하 소의 뼈, 내장까지 모조리 수입을 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금번 미국 쇠고기 협상결과는 국민의 입장에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이에 정부는 국민건강과 검역주권을 포기한 채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해제한 졸속적인 금번 협상을 무효화하고, 재협상을 추진 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입니다.
2008년 5월 7일
쇠고기 수입 재협상 실행을 요구하는 미주 한인주부들의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