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예스의 '명사의 서재' 코너에 실린 짧은 인터뷰를 옮겨놓는다(http://ch.yes24.com/Famous/Index/409). 질문에 답한 내용이 간추려 편집됐다.

 

 

한글을 깨친 이후에 자연스럽게 책과 접하게 됐고, 이후에 특별히 멀어진 기억은 없고요. 초등학교 3학년경부터 특히 독서에 빠져 지낸 듯합니다. 책을 보면서 밥을 먹는다고 자주 혼난 기억이 납니다. 독서의 계기가 따로 없었네요.

요즘 독서 계획은 단기적 측면과 장기적 측면으로 나눠서 볼 수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여러 강의와 원고와 관련한 책을 읽고, 또 매주 화제가 될 만한 책을 독서거리로 삼고 있습니다. 가령 미국의 노예제도에 관한 책들과 종교개혁을 주제로 한 책들을 몇 권 구했고, 세르반테스와 라틴아메리카 문학에 관한 책들도 몇 권 더 주문해놓은 상태입니다. 장기적으로는 문학과 철학, 역사에 대한 제 나름의 입문서를 계획하고 있어서 그와 관련한 책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도서 외에도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 키에슬롭스키의 영화들을 좋아했습니다. 에미르 쿠스투리차와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도 좋아합니다. 빔 벤더스와 왕가위도 좋아했고요. 왕가위의 <아비정전>, 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 쿠스투리차의 <집시의 시간> 등을 꼽아두겠습니다. 그렇게 꼽게 되는 영화들이 10여 편은 되는 것 같은데, 매 시기 ‘이런 영화도 있구나’란 경탄과 위로를 건네준 작품들입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본 영화는 <또 하나의 약속>입니다.

제 온라인 서재 이름은 ‘로쟈의 저공비행’입니다. 작업실을 갖게 된다면 고졸한 이름을 궁리해보겠습니다. 필명 ‘로쟈’는 소설 『죄와 벌』의 주인공 로지온 라스콜니코프의 애칭입니다. 로지온의 애칭이에요. 특별한 이유는 없고, 러시아문학에서 친숙한 주인공이 마침 떠올라서 쓰게 됐습니다.

 



최근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 19세기 푸슈킨에서 체호프까지』를 펴냈습니다. 러시아혁명 이후 사회주의 국가의 수립과 그 해체가 이루어진 20세기를 앞둔 19세기에 러시아 문학을 꽃피웠던 작가들을 중심으로 다루었습니다. 이 책을 계기로 러시아문학에 관심을 갖고 읽게 됐다는 소감을 접할 때 가장 뿌듯합니다. 일종의 입문서이자 안내서로서 자기 역할을 했다는 의미니까요. 많은 분들에게 러시아문학과 만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14. 04.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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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귀가길에 들고 온 책의 하나는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출간되는 계간 영문잡지 '_list'(14년 봄호)다. 논픽션 쪽 책 두 권에 대한 짧은 소개글을 실었기 때문인데, 그 두 권이 김은주의 <한국의 여기자, 1920-1980>(커뮤니케이션북스, 2014)과 전상인의 <편의점 사회학>(민음사, 2014)이다. 잡지에는 약간 축약된 형태로 영어로 번역돼 실렸다. 초고를 옮겨놓는다.

 

 

 

Pioneering Reporters

 

이 책은 언론인 저자가 쓴 ‘한국 여기자 열전’이다. 한국에서는 여성 기자를 ‘여기자’라고 부른다. 남자 기자는 ‘남기자’라고 하지 않고 그냥 ‘기자’라고 부른다. 기자는 으레 남성의 직업이라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여기자’라는 말은 한국 언론사에서 여성 기자가 얼마나 드물고 이례적이었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그럼에도 언론사에 큰 족적을 남긴 대표 여기자들의 무게감은 작지 않다.

 

저자는 192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활약한 여기자 아홉 명의 활동을 시대상과 함께 그려냈다. 최초의 여기자 이각경이 <매일신보>에 입사한 1920년부터 한일 고대사 연구자로도 이름을 날리게 되는 이영희가 <한국일보>를 퇴사하는 1981년까지다. 이들 여기자들의 삶과 활약상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과 한국전쟁, 자유당 정권과, 박정희 집권 전기(前期), 그리고 유신시대를 지나온 한국 현대사의 거울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여기자는 “당대에 가장 첨단을 걷는 여성”으로서 기자이자 선각자였고 또 지사(志士)였다. 여성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였고, 문학가나 문필가로서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때로는 장관으로 발탁돼 국가정책을 다루거나 국회의원으로서 의정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저자는 한국에서 여기자의 삶이 대략 두 가지 흐름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하나는 ‘선각자로서의 여기자’로서 “배운 여성으로서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계몽적인 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작가로서의 여기자’다. 문학의 뜻을 둔 이들이 자기 작품을 신문에 싣기 위해서, 단순히 글을 쓰는 것을 즐겨서 기자직에 몸을 담은 경우도 많았다. 이들은 역사 연구자나 집필가로도 크게 활약했다.

 

Consumer Convenience

 

<아파트에 미치다>(2009)에 이어서 사회학자 전상인이 편의점을 고찰의 주제로 삼았다. 편의점을 통해 우리 시대의 삶과 사회를 말하기 위해서다. 왜 편의점인가? 저자의 비유에 따르면, 아파트가 한국의 ‘국민 주택’이라면 편의점은 ‘국민 점포’다. 인구 대비 편의점 밀도로 따지면 최초 발상지 미국은 물론 최대 발흥지 일본과 대만을 제치고 한국이 세계 최고수준이다. 1989년에야 처음 생겨났지만 편의점은 프랜차이즈 체인 방식을 통해 급성장해 2012년 말을 기준으로 전국에 2만 4559개가 넘는 편의점이 분포해 있고, 하루 방문객만 880만 명 이상이다.


편의점의 이러한 확산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일반적인 차원에서, 편의점은 “형식적 관료주의가 최고조에 달한 공간이자 사회의 맥도널드화가 집약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유통현장”이다. 근대 합리주의와 소비자본주의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편의점은 1990년대 세계화‧개방화 물결을 타고 들어와 신세대의 서구식 생활문화에 대한 선망과 동경을 자극하면서 한국인의 일상을 장악했다. 편의점은 한국사회의 세계화를 말해주는 지표다.


하지만 ‘편의점 제국’의 이면도 간과할 수 없다. 편의점이 푸드점화 하는 것이 한국의 편의점 영업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데, 그 배경은 사회적 양극화이다. 경제적 약자들이 혼자서 끼니를 때우는 공간으로 자리 잡으면서 한국의 편의점은 ‘88만원 세대의 밥집’이 됐다. 또 ‘편돌이’라고 불리는 편의점 ‘알바’는 법정 최저시급보다도 못한 보수를 받기도 하는 대표 직종이다. 편의점이 오늘의 한국사회를 들여다보게 해주는 거울인 이유다.

 

14. 0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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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공지다. 푸른역사 아카데미에서 4월과 5월에(5월과 6월로 조정됐다) 미국문학 강의를 진행한다(신청은 http://cafe.daum.net/purunacademy/8Bko/153). 지난 겨울의 '로쟈와 함께 읽는 미국문학'(http://blog.aladin.co.kr/mramor/6744279)의 후속편인데, 제목도 '로쟈의 미국문학 서플먼트'가 됐다. 5월에는 스타인벡의 작품을 읽고, 6월에는 포크너와 헤밍웨이, 피츠제럴드의 장편소설을 마저 읽는다. 이들 작가에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강의는 매주 월요일 저녁 7:30-9:30에 진행하며 공휴일인 5월 5일은 휴강이다. 구체적 일정은 다음과 같다.

  

5월

 

1. 5월 12일_ 스타인벡, <생쥐와 인간>(1937) 

 

 

2. 5월 19일_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1939)

 

 

 

3. 5월 26일_ 스타인벡, <에덴의 동쪽>(1952)  

 

 

6월

 

1. 6월 02일_ 포크너, <팔월의 빛>(1932)

 

 

 

2. 6월 09일_ 포크너, <압살롬, 압살롬>(1936)

 

 

3. 6월 16일_ 헤밍웨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

 

 

 

4. 6월 23일_ 피츠제럴드, <밤은 부드러워>(1942)  

 

 

 

14. 03. 20./ 14. 0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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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인'의 독서카페 코너에 쓴 글을 옮겨놓는다. 이달에 글거리로 삼은 것은 지난달 말에 방한하기도 한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자음과모음, 2012)이다. 다시 읽고 쓴 글이기에 제목도 '다시 읽는다는 것에 대하여'라고 붙였다. 다시 읽은 덕분에 종교개혁(사사키 아타루는 '대혁명'이라고 부른다)에 관한 책들도 여럿 더 구했다. 그가 말하는 '12세기 해석자 혁명'과 관련한 책도 더 나왔으면 싶다. 박사학위논문을 바탕으로 한 주저 <야전과 영원>이 번역중인 걸로 아는데 출간을 고대한다.

 

 

 

독서인(14년 3월호) 다시 읽는다는 것에 대하여

 

일본의 젊은 인문학자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자음과모음)을 다시 읽었다. 처음 나왔을 때 리뷰도 쓰고 2쇄를 찍을 때 편집자의 요청으로 추천의 말까지 붙인 책이지만 다시 읽어도 흥미로웠다. 새로운 것을 읽기보다는 다시 읽는 걸 좋아한다는 게 저자의 독서관이기에, 그의 책을 다시 읽는 건 저자의 독서법을 실천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읽으면 물론 읽고 잊어버린 것을 되살리게 된다. 또한 줄거리나 핵심 주제에 집중하느라 주목하지 않았던 책의 세부에 대해서도 눈길을 주게 된다. 사사키 아타루가 말하는 독서는 그때 비로소 시작된다. 무엇이 독서인가. 니체처럼 자신을 ‘다이너마이트’라고 스스럼없이 말한 저자들과의 만남이다. “서점이나 도서관이라는 얼핏 평온해 보이는 곳이 바로 어설프게 읽으면 발광해버리는 사람들이 빽빽 들어찬, 거의 화약고나 탄약고 같은 끔찍한 장소라고 느낄 수 있는 감성을 단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저자들이란 보통 죽은 자들이어서 서재나 도서관은 마치 ‘공동묘지’ 같다고 한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를 뛰어넘는다고 할까.

 


책이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발물 같은 것이기에 책을 너무 가까이하는 건 위험하다. 그렇다고 염려할 건 없다. 우리의 자연스런 방어기제도 이에 맞추어 작동하기 때문이다. 사사키 아타루는 읽어도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고 ‘어쩐지 싫은 느낌’이 들어서 책을 덮어버리는 것이야말로 ‘독서의 묘미’라고 한 작가 후루이 요시키치의 말을 인용한다. 이 ‘자연스러운 자기 방어’ 기제 덕분에 설사 감명 깊게 읽었더라도 곧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읽기는 이러한 본능을 거스르는 행위다. 잊어버린 것을 다시 소환하고 상기함으로써 책이라는 폭탄의 위험성을 감수하는 행위다. 다이너마이트를 끌어안는 행위? 맞다, 그것은 미친 짓이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 쓴 것은 읽을 수가 없다는 게 사사키 아타루의 생각이다. 다른 사람의 꿈을 그대로 본다면 우리가 미쳐버릴지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책을 통해서 타인의 생각과 정서, 감각에 접속한다는 것은 섬뜩한 노릇이다. 그것이 진짜 고백을 담고 있는 진짜 책이라면 말이다. 그런 책은 본질상 난해하고 무료하다. 읽을 수가 없다. 가령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 같은 소설이나 황병승의 <여장남자 시코쿠> 같은 시집을 어떻게 읽겠는가.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하지만 그래도 뭔가에 끌려서 읽게 된다면, 읽어버리게 된다면 우리는 자기 안에 똑같은 광기를 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인생이 바뀔 것이다. “왜 소설을 쓰는가?”란 질문에 “소설을 읽어버렸으니까.”라고 답한 일본 작가 고토 메이세이처럼. 읽어버린 이상 쓰지 않을 수 없다. “나에게는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 세계, 독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불가피한 세계와의 조우다.


여기까지가 하룻밤 이야기로서 일종의 서론이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일종의 광기이고 도박이라는 점을 미리 밝히고서 사사키 아타루는 본격적으로 혁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파울 첼란의 시구를 제목으로 가져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의 부제가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이란 걸 다시 확인하게 되는 대목이다. ‘책과 혁명’이라고 했지만, 둘은 접속사 ‘과(and)’보다는 ‘혹은(or)’을 통해 만난다. 사사키 아타루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혁명에 관한 책’이나 ‘책을 통한 혁명’이 아니라 ‘혁명으로서의 책’ 혹은 ‘책이 된 혁명’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례들이 있는가. 서양 종교사학을 전공한 사사키 아타루는 특히 그가 ‘대혁명’이라고 부르는 루터의 종교개혁, 무함마드의 혁명, 그리고 12세기 해석자 혁명을 대표적 사례로 꼽는다.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서 그는 “과거의 혁명이 아무리 피로 물들었다고 하더라도 혁명의 본질은 폭력이나 주권 탈취가 아니라 텍스트를 다시 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곧 ‘텍스트의 변혁’이 혁명이다. 그는 말의 넓은 의미에서, 문학이야말로 혁명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예술의 한 갈래를 지칭하는 좁은 의미의 문학이 아닌, 글로 쓰인 것 전체를 통칭하는 ‘문학’이다.

 

 

이 문학 행위는 통상 두 단계로 구성된다. 읽기와 쓰기다. 가령 마르틴 루터가 한 일은 무엇이었던가. 수도원에서 철저하게 성서를 읽는 일이었다. 성서를 읽고 또 읽었고 베껴 적었다. 라틴어도 그리스어도 히브리어도 공부하여 읽었다. 그러한 독서 끝에 그는 당시 기독교 세계의 질서가 성서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다시 말해서 아무런 근거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루터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이 세계엔 교황과 추기경이 있고 대주교와 주교가 있으며 그들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건 성서에 쓰여 있지 않았다. 그럼 뭐란 말인가.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미친 것일까, 아니면 이 세계가 미친 것일까?” 키르케고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루터는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이런 질문과 조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성서를 읽고 나자 루터는 이제 쓸 수밖에 없다(루터 전집은 무려 127권에 달한다고 한다). 1517년 루터는 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는 95개조의 반박 의견서를 발표한다. 당시 독일은 문맹률이 95퍼센트에 달했던 사회였지만 다행스럽게도 인쇄술의 혁신으로 그의 견해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종교개혁이라는 대혁명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이어서 루터는 라틴어 성서를 독일어로 옮기는 일에 착수한다. 1522년 9월에 처음 출간된 독일어 <신약성서>(통칭 <9월 성서>)는 가격이 소 한 마리 값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고 한다. 독일어로 쓴다 하더라도 당시는 식자율은 5퍼센트에 불과했으므로 단지 인구의 5퍼센트만이 읽을 수 있을 뿐이었지만 루터는 자신의 문학행위, 곧 글쓰기를 중단하지 않았다. 1519년 루터 책의 출판 부수가 독일 전체 출판물의 3분의 1, 1523년에는 5분의 2에 달했을 정도라고 하니까 거의 전무후무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하여 그는 16세기 최대의 ‘문학자’가 된다. 루터가 “인쇄술, 그것은 신이 내려주신 최대의 은총이다”라고 말한 것도 지극히 온당해 보인다. 


루터의 혁명은 비단 기독교의 분열과 개신교의 분화를 의미하는 종교개혁 범주에만 가둬질 수 없다. 그의 혁명은 법의 혁명이기도 했다. 루터 사상의 핵심 개념으로서 ‘양심’이 오늘날까지도 재판의 준거가 되고 있다는 점이 대표적 사례다. 루터의 신학과 루터파 법학이 가져온 혁명적 변화에서 우리는 벗어나 있지 않다. 읽기와 쓰기는 그렇게 법제화로 귀결된다. 법이 바뀐다는 것은 세상의 근거가 바뀐다는 의미다. 혁명은 권력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근거를 새로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읽기다. 나른한 봄날이지만, 당신이 손을 뻗어 닿을 만한 곳에 책이 있기를!

 

14. 03. 13.

 

 

P.S. 다시 읽으니 수정할 대목도 눈에 띄었다. 50쪽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물결(The Waves)>은 이미 출간된 제목인 <파도>라고 표기되는 게 좋겠고, 294쪽에서 "푸코도 <성의 역사>를 내주겠다는 출판사를 찾지 못해 상당히 오랫동안 괴로워했으니까요. 당시 명편집자로 나중에 역사가가 되는 필리프(*필립) 아리에스의 형안에 의해 발탁될 때까지는 말이지요."에서 푸코가 출간에 애를 먹은 '처녀작'은 <성의 역사>가 아니라 그의 박사학위논문인 <광기의 역사>였다. 사사키 아타루가 잘못 말했거나 역자가 잘못 옮기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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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시사IN(338호)에 실은 리뷰 기사를 옮겨놓는다. 올리버 스톤과 타리크 알리의 대담 <역사는 현재다>(오월의봄, 2014)를 읽고 적었다. 덕분에 타리크 알리의 책들에 다시 관심을 갖게 돼 몇 권 더 주문했다(<1960년대 자서전>은 다시 구했다). 대담의 계기가 된 책 <캐리비안의 해적>도 번역되면 좋겠다...

 

 

시사IN(14. 03. 08) 올리버 스톤 감독 역사를 묻다

 

파키스탄 출신의 망명자이자 정치운동가 타리크 알리가 미국의 대표적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과 만나 역사에 대한 대담을 나눴다? <역사는 현재다>(오월의봄)의 제목과 저자가 일차적으로 말해주는 바였다. <뉴레프트 리뷰>의 편집위원이기도 한 타리크 알리의 책은 몇 권 소개된 적이 있기에 관심은 <플래툰>과 <7월 4일생>, <제이에프케이> 등의 감독 올리버 스톤에게 더 쏠렸다. 미국 현대사의 주요 인물과 사건에 대한 영화를 많이 찍어온 만큼 그가 역사에 대해 몇 마디 한다고 해서 이상할 건 전혀 없었다.

 

 


사정을 알고 보니 대담이라기보다는 스톤이 주로 질문하고 알리가 답한 인터뷰에 가까웠다. 12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 <알려지지 않은 미국의 역사>를 준비하던 올리버 스톤이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사를 다룬 알리의 책 <캐리비안의 해적>을 읽고서 직접 전화를 넣은 것이 시발점이었다. 올리버 스톤의 문제의식은 미국인들이 세계사는 차치하고 자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충격적일 만큼 무지하다는 데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아이들은 규격화된 역사 교육을 통해 포장된 형편없는 내용만 배웠어요. 아니면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거나.”


그런 문제의식에 호응해 타리크 알리는 미국 현대사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털어놓는다. 러시아혁명부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는 역사에 대한 성찰과 재평가다. 그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1917년 2월 혁명이 일어나 차르체제가 무너졌을 때 미국은 그간의 고립주의를 포기하고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로 결정한다. 이 참전을 계기로 북미 국가였던 미국은 본격적으로 세계무대에 진출하게 된다. 그리고 러시아에서는 그해 10월 레닌과 볼셰비키가 주도한 혁명을 통해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건설된다. 20세기 세계사의 대립구도가 이때 형성된다. 

 


러시아혁명의 의미는 무엇이었나.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 도처의 탄압받는 비참한 자들을 존중받게끔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러시아혁명이 가져온 희망이었다. 이 희망은 거꾸로 서구 열강과 자본가 계급의 공포를 부추겼다. 러시아혁명으로 인해 독일 노동자운동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자,혁명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힌 세력들은 파시즘을 발흥을 적극적으로 용인한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볼셰비키주의에 맞서는 수호자로 간주해서다. 무솔리니를 지지했던 윈스턴 처질은 대놓고 이렇게 말했다. “볼셰비키 세력을 막기 위해서라면 베니토 무솔리니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


볼셰비키 혁명의 충격과 확산을 차단하고 무력화하기 위한 담합은 내전이 벌어진 러시아에 반혁명군(백군)을 지원하기 위한 파병으로까지 이어진다. 러시아 내전은 혁명군(적군)의 승리로 돌아가지만, 4년간의 전쟁으로 인한 손실은 막대했다. 10월 혁명을 주도했던 페테르부르크 노동자의 30-40퍼센트가 사망했다. 그들의 빈자리는 러시아 노동계급의 전통과 무관한 시골의 소작농들로 채워졌고 이들을 토대로 스탈린 체제, 소비에트 관료주의 국가체제가 만들어졌다. 이것은 러시아혁명의 좌초를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볼셰비즘에 대한 방어책으로 유럽이 파시즘을 방조한 대가가 2차 세계대전이었다. 이 전쟁을 통해 미국은 대영제국의 바통을 이어받아 제국주의 강국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그 이면에 놓인 건 노동운동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었다. ‘볼셰비키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종교계까지 나섰고, 정부도 종교를 공산주의에 맞설 무기로 여기면서 미국은 매우 ‘종교적인 나라’가 됐다. 그리고 이후에는 세계 각지에서 자신의 이익과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가령 인도네시아의 공산당 세력을 무력화하기 위해 민족주의 지도자 수카르노를 몰아내고 잔인한 독재자 수하르토를 앉혔고, 그 과정에서 100만 명이 학살됐다. 불과 한 세대 전의 일이다.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무게를 느끼지 못한다면, 역사는 다시금 반복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역사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14. 03.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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