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중앙일보의 북섹션에서 '올해 당신을 움직인 책은 무엇입니까'란 질문에 답한 짧은 책소개를 옮겨놓는다. 올해의 책을 여럿 추천한 바 있는데, 그 가운데 권헌익, 정병호의 <극장국가 북한>(창비, 2013)에 대한 소개를 청탁받아 적었다. 올해 나온 북한 관련서로서는 가장 중요한 책이고, 또 사회과학 분야를 통틀어서도 가장 인상 깊은 책 가운데 하나다.

 

 

 

중앙일보(13. 12. 28) 2013년 나를 움직인 책

 

“도대체 북한은 어떻게 돼먹은 나라야?” 이런 질문이 개탄이 아니라 진지한 관심의 표명이라면 <극장국가 북한>은 가장 먼저 읽을 만한 책이다. ‘이해할 수 없는 나라’로 치부되곤 하는 북한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 그것도 상당히 정교한 이론적 틀을 적용해 북한을 명쾌하게 들여다보게 한다. 인류학자인 두 저자는 “북한 정치체제에는 미스터리가 없다. 북한이란 국가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가 아니다”고 단언한다.

어째서 삼대세습을 밀어붙였으며, 심각한 경제난에도 체제는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 그 비밀을 풀어주니 ‘북한이라는 국가의 이념과 창건신화, 그리고 현실에 관한 최고의 연구’라는 브루스 커밍스의 찬사가 과장이 아니다.

 

두 저자는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카리스마 권력이란 개념을, 그리고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에게서 극장국가란 개념을 빌려온다. 베버에 따르면 카리스마 권력은 전통적·합리적 권력이 실패할 때 대두한다. 카리스마적 인물은 새로운 질서를 창출해내지만 문제는 권력자가 세상을 떠나면 그 권력이 지속될 수 없다는 데 있다.

하지만 북한은 ‘혁명예술’이라 불리는 다양한 선전양식을 고안했다. 카리스마 권력과 극장국가의 결합! 하지만 카리스마 귄력에 대한 숭배는 정치와 행정의 과도한 중앙집중과 민주 원리의 파괴를 가져왔고 시민사회의 경제적·도덕적 토대를 무너뜨렸다. 카리스마 권력이 주도하는 극장국가의 한계다.

북한은 이 한계를 인식하고 극장국가를 끝장내는 투쟁에 나설 수 있을까. 북한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미래도 달린 일이라면 우리의 긴박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그런 대비를 위해서라도 필독할 만하다.

 

13. 12. 28.

 

 

 

P.S. 좋은 책의 미덕은 다른 책에 대한 관심도 부추긴다는 점이다. 베버와 기어츠의 책뿐 아니라 저자들은 북한 관련서의 전반적인 현황에 대해서도 알게 해주는데, 그중 찰스 암스트롱의 <북한 혁명 1945-1950>(2003), 타치아나 가브루센코의 <문화전선의 전사들>(2010), 김숙영의 <환영의 유토피아>(2010) 등이 2000년대 이후에 나온 중요한 연구 성과로 꼽힌다(물론 이런 책들은 국내에 소개돼 있지 않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말이 남한에서는 통하지 않는 듯싶다).

 

 

 

브루스 커밍스의 <북한>(2004)은 <김정일 코드>(따듯한손, 2005)로 번역됐었지만 이마저도 절판된 지 오래다. 국내 학자들의 북한학 연구 수준이 궁금해서 내친 김에 어제는 <현대 북한학 강의>(사회평론, 2013)도 주문했다.

 

 

<극장국가 북한>의 배경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은 북한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다룬 책들인데, (곧 개정판이 나온다고 하는)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웅진지식하우스, 2004)와 <북한의 역사1,2>(역사비평사, 2004)가 있다. 새해엔 북한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이해 수준도 한 단계 높일 수 있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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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시사IN(328호)의 별책부록으로 '2013 행복한 책꽂이'다. 해마다 '<시사IN>이 선정한 올해의 책'을 특집으로 꾸미고 있는데, 인문사회분야의 추천위원으로 선정을 거들었고 '올해의 책' 가운데 하나로 박해천의 <아파트 게임>(휴머니스트, 2013)에 대한 리뷰도 맡아 썼다. 올해 인문사회분야 올해의 책으론 엄기호의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따비, 2013), 한윤형의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어크로스, 2013)도 나란히 꼽혔다. <아파트 게임>에 대한 리뷰를 옮겨놓는다.

 

 

 

시사IN(13. 12. 28) 코믹하다 '호러'되는 아파트 이야기

 

직함은 ‘디자인 전문가’이지만 이쯤 되면 ‘아파트 전문가’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자음과모음)에 이어서 <아파트 게임>(휴머니스트)을 통해서 한국 중산층의 보편적 경험과 욕망을 낱낱이 까발리고 있는 저자 박해천을 두고 하는 말이다. ‘대한민국 중산층 웃지 못할 흥망사’란 문구가 암시하듯, 세대별로 아파트 게임 참여자들을 묘사한 그의 ‘비평적 픽션’은 자못 코믹하기까지 하다. 물론 그가 거울을 들이대며 비춰주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얼굴이라는 게 문제다.


인상적인 문제제기는 처음에 프랑스 지리학자에게서 나왔다. 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 공화국>(후마니타스)이 우리의 무릎을 치게 한 것이다. 줄레조의 고백에 따르면 “1990년 처음 서울을 방문해 아파트 단지의 거대함에 충격을 받은 이후” 어떻게 이런 대단지 아파트가 양산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그것이 박사학위논문의 주제가 되었다. 외부자의 시선으로 볼 때, 한국의 아파트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특징지을 만큼 특별했다. 이런 나라가 따로 없다는 뜻이다.

 
줄레조 역시 아파트 거주민으로 한국적 의미의 중간계급인 ‘도시 중산층’을 지목했다. 그는 여러 사례를 제시했는데, 도시 중산층의 전형 김 아무개씨에 대한 기술은 이렇다. “50대 초반의 김모 씨는 전업주부다. 그녀의 남편은 대기업 계열 회사의 부사장이고 두 자녀를 두었다. 큰아이는 이웃의 서초고등학교에 다니고 둘째는 아직 중학생이다.” 박해천의 비평적 픽션은 이를 좀더 세련되게 만들었다. 가령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 세대의 이야기는 이런 식이다. “꽤 알려진 기업에 다니고 있는 ‘58년 개띠’ 박모 씨. 지방의 명문고와 서울의 명문대를 졸업한 그는 1980년대에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IMF 구제금융 체제에서도 꿋꿋이 버티며 임원 자리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은퇴를 앞둔 지금 그의 자산은 목동의 아파트 단지 한 채가 전부다.”


이런 인물들이 아파트 게임의 플레이어이자 아파트를 둘러싼 중산층 흥망사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20세기 후반기 한국 사회를 지탱해온 성장 신화는 바로 이 중산층의 성장 신화였다. 하지만 이제 그 신화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시점에 이르러 박해천은 이 신화의 이면을 들여다 보자고 제안한다. 그것은 아파트 게임의 이면이면서 세대론의 이면이다.


한국의 기성세대는 저마다 4.19 세대, 유신 세대, 386 세대 등을 자임하면서 권력에 항거했던, 곧 ‘아버지’에 맞섰던 자신의 청춘을 예찬한다. 하지만 이는 가족 로망스의 1막에 불과하다. 그들도 곧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며 밥벌이에 나서야 하는 아버지가 됐기 때문이다. 이때 시작되는 가족 로망스의 2막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 아파트이다. 아파트를 한국 중산층의 ‘무의식’이라고 해야 할까.


모두가 아파트 매매의 시세차익을 노리며 중산층으로 가는 사다리에 매달려 있는 동안 간과된 것은 “아파트가 고도성장을 통해 축적된 사회적 부를 시세 차익이라는 형태로 그 소유자들에게 배분하는 사회 시스템이라는 사실”이다. 이 사회적 부는 복지 제도를 통해서 배분, 환원되어야 했지만 한국사회는 그것을 투기장의 경품으로 만들었다. 이 무지와 무관심은 막대한 사회적 고통을 대가로 지불하게 돼 있다. 아파트 게임의 2막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는 셈이랄까. 자못 코믹한 아파트 이야기가 ‘호러’로 바뀌는 지점에 우리는 와 있다. 아파트 게임은 무서운 게임이다.

 

13. 12. 24.

 

 

P.S. 올해 나온 아파트와 부동산 관련서로 더 읽어볼 만한 책은 박철수의 <아파트>(마티, 2013), 박인석의 <아파트 한국사회>(현암사, 2013), 선대인의 <선대인, 미친 부동산을 말하다>(웅진지식하우스, 2013)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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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공지다. 푸른역사아카데미의 내년 첫 월요강의 주제는 미국문학으로 잡았다. '로쟈와 함께 읽는 미국문학'이다. 8주간의 강의에서 집중적으로 읽어보려고 하는 건 20세기 전반기의 대표적 작가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포크너, 세 명이다. 강의 소개와 일정을 옮겨놓는다(http://cafe.daum.net/purunacademy/8Bko/132).

20세기는 미국의 세기였습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그리고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미국은 서방세계의 지도국으로 성장했지요. 문학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20세기 초만 해도 헨리 제임스나 T.S. 엘리어트 같은 미국 문인들은 자기 나라의 문화적 후진성과 지방성을 한탄했지만, 이후 미국문학은 다양성과 활기찬 실험성을 토대로 세계적인 작가들을 배출합니다. 그 대표 주자는 바로 미국의 꿈과 재즈 시대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 모더니즘의 거장이며 현대적 문체를 창조했다는 평가를 받은 '어니스트 헤밍웨이', 현대 미국소설의 위상을 세계적인 문학의 위치로 올려놓은 '윌리엄 포크너'입니다. 20세기 초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세 명의 작가와 그들의 대표 작품을 로쟈 선생님 강의로 만나봅니다.

강의일정
1월 06일 ~ 2월 24일 (8주)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30분 ~ 9시 30분

 

1. 1월 06일 피츠제럴드, <낙원의 이편>

 

 

2. 1월 13일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3. 1월 20일 헤밍웨이,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4. 1월 27일 헤밍웨이, <무기여 잘 있어라> 
 

 

5. 2월 03일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6. 2월 10일 포크너, <소리와 분노>

 


7. 2월 17일 포크너,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8. 2월 24일 포크너, <곰>

 

 

13. 12. 11.

 

P.S. 참고로 강의에서 읽을 작품은 복수의 번역본이 있는 경우 가장 많이 읽히는 걸로 골랐다. 한편으론 세 작가의 대표 장편 가운데 하나씩 빠졌는데, 피츠제럴드의 <밤은 부드러워>,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포크너의 <압살롬, 압살롬>이 그것이다. 제한된 일정이 가장 큰 이유이며, 또 다른 이유는 세계문학전집판의 <밤은 부드러워>의 번역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언젠가 이 세 작품도 마저 다룰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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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책&(425호)에 실은 '로쟈의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이달의 주제로 잡은 건 '쓰레기'다. 최근 몇 년간 쓰레기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해주는 책들이 여럿 출간돼 주제로 삼았다. 인구 문제와 함께 시한폭탄으로 여겨지는데, 앞으로도 인류가 이 문제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책&(13년 12월호) 쓰레기의 재구성

 

“궁금해요. 쓰레기가 엄청 많잖아요. 가장 걱정스러운 건 언젠가 이 쓰레기를 쌓아둘 곳이 없어질 게 분명하다는 점이죠.”

 

스티븐 소더버그의 영화 <섹스, 거짓말, 비디오테이프>(1989)에서 앤디 맥도웰이 의사에게 털어놓는 고민이다. 당시만 해도 관객들은 쓰레기 문제를 한 신경증 환자의 고민으로 치부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의 문제가 됐다. 문명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모두가 쓰레기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도래했다. 일상적으로 배출해내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쓰레기가 우리 시대의 표지라면, 이제 더 쌓아둘 곳도 없어지기 전에 어떤 실천과 결단이 필요한지 생각해보는 건 의무다. 12월에는 이와 관련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책 몇 권을 살펴보자.

 

  


먼저 현황부터 파악해보자. 언론인이자 영화제작자 헤더 로저스의 <사라진 내일>(삼인, 2009)은 쓰레기의 발생에서 처리까지 그 흐름을 알기 쉽게 소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주에서 지구를 볼 때 중국의 만리장성과 함께 눈에 띄는 문명의 흔적이 뉴욕 시 남서부의 거대한 쓰레기 매립지 '프레시킬스'라 한다. 세계 최대 소비국가인 만큼 배출하는 쓰레기양에 있어서도 미국은 단연 세계 최고다. 전체 세계 인구의 4퍼센트가 살고 있을 뿐이지만, 미국인은 지구 자원의 30퍼센트를 소비하고 전체 쓰레기의 30퍼센트를 생산한다. 미국인 1인당 하루에 2킬로그램의 쓰레기를 쏟아낸다.


미국적 삶이 번영을 뜻한다면 쓰레기는 그 지표이자 이면이다. 쓰레기의 역사가 인류 역사만큼 유구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쓰레기는 근대 산업화의 새로운 발명품이다. 미국의 경우, 17세기와 18세기 이민자들은 너무 가난해서 공산품이란 걸 써보지 못했으며 일상에서 버릴 것도 없었다. 깨진 도자기나 음식물 찌꺼기 정도가 그들이 버릴 수 있는 쓰레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쓰레기로 버려진다. 내용물이 비워지자마자 포장재는 곧장 쓰레기로 전락한다. 미국 제품의 약80퍼센트가 딱 한번 사용되고 버려지지만 재활용률은 미미하다. 대량 소비사회가 낳은 환경재앙이 코앞에 있다.


<사라진 내일>이 쓰레기 문제의 개관에 해당한다면, 퓰리처상 수상 경력의 언론인 에드워드 흄즈의 <102톤의 물음>(낮은산, 2013)은 최신판 종합보고서다. ‘쓰레기에 대한 모든 고찰’이란 부제에 걸맞게 쓰레기 문제의 모든 것을 다루고 실천적 제안까지 제시한다. 제목의 ‘102톤’이란 수치가 눈에 띄는데(원제는 ‘쓰레기학’이다) 미국인 한 사람이 평생 동안 만들어내는 쓰레기양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실상의 일부일 뿐이다. 개인이 배출하는 쓰레기양이 그렇다는 것이고, 산업 쓰레기를 포함한 미국의 전체 쓰레기 배출량은 매년 100억 톤에 이른다. 이를 환산하면 미국인은 연 평균 35톤, 평생 2700톤의 쓰레기를 남기는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을 상대로 한 무역에서 미국의 수출품 1위와 2위가 폐지와 고철이라는 점이다. “한때 세계 모든 나라를 위해 물건을 생산하던 미국이 중국의 쓰레기 분쇄압축기로 변모한 것이다.” 하지만 폐기물 수출이 쓰레기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미국을 기준으로 하자면 우리는 ‘102톤의 유산’이 어떻게 생겨난 것이며 그로부터 벗어날 방도는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저자의 대안은 상식적이게도 ‘낭비 없는 삶’이다. 쓰레기가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 즉 기후 변화와 석유 정점, 에너지 비용 상승 등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자각과 함께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다. 원치 않는 물건들을 거부하고, 중고품을 사용하며, 생수 구매와 식료품 비닐봉지 사용을 중단하는 것 등이 그가 제안하는 구체적 실천방안이다.

 

 


한편 쓰레기의 역사를 일람해보는 것도 쓰레기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혀줄 것이다. 역사학자 수전 트레이서의 <낭비와 욕망>(이후, 2010)은 마음에 안 들거나 쓰기 싫어졌다는 이유로 물건을 내버리는 일이 현대문명사회의 큰 특징이라고 지적하는데, 너덜너덜해지거나 망가지지 않은 옷이나 가구를 버리는 건 20세기 중반까지도 일반인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령 <알뜰한 미국 가정주부>란 책의 1835년판은 돼지 여물통을 자주 들여다보면서 기름 모으는 통에 들어가야 할 것이 돼지한테 가지 않도록 잘 살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런 태도를 낭비를 줄이기 위한 ‘오래된 지혜’로 삼을 수 있을까.

 

혹은 직접 쓰레기를 수집하는 체험을 해보는 것도 쓰레기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교정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른다. 제프 패럴의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시대의창, 2013)는 대학교수직을 박차고 8개월간 길거리에서 남이 버린 물건을 수집해 재활용한 경험을 기록하고 있다. 범죄학자로서 그는 ‘소비와 낭비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가진 가장 큰 파괴행위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그런 소비와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라면 물건이 생산되고 소비되어 쓰레기로 버려지기까지 ‘물건의 일생’을 추적한 애니 레너드의 <물건 이야기>(김영사, 2011)도 필독해볼 만하다. 알면 사랑한다는 경구에 빗대자면, 알면 아끼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13.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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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사회학자 송호근 교수의 <시민의 탄생>(민음사, 2013)에 대한 서평을 청탁받아 쓴 것인데, 묵직한 문제의식과 통찰을 유려한 문체로 실어나르고 있는 수작이다. 저자의 전작 <인민의 탄생>(민음사, 2012)과 정치학자 최정운 교수의 <한국인의 탄생>(미지북스, 2013)와 겹쳐 읽으면 좋겠다(그런 생각으로 두 권을 찾았지만 끝내 아직 못 찾고 있다. 책을 구입하고도 못 읽는 신세라니!). 3부작의 마지막 권인 <현대 한국 사회의 탄생>도 출간을 고대한다.   

 

 

 

중앙일보(13. 12. 07) 문자와 동학, 근대 시민을 깨우다

 

한국에서 근대국가와 근대사회, 그리고 근대인은 언제 출현했는가. 사회학자 송호근 교수가 화두로 삼은 물음이다. 서양의 근대가 뚜렷하고 분명한 모습을 띠고 있기에 그 기원과 진화 양상을 충분히 재구성해볼 수 있지만 한국은 사정이 그렇지 않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한국의 근대는 그 기원과 진화의 궤적이 모호하다. 한국 현대사회의 특질에 대한 분석에 몰두해온 사회학자로서 명확히 해명되지 않는 이 기원의 문제에 항상 갈증을 느껴왔다는 그가 결국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물론 근대의 기점과 성격에 관한 연구가 없지 않았다. 아니 한국사 연구의 뜨거운 쟁점 가운데 하나였다. 과문하지만 상식에 기대보면,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함께 비로소 서양식 근대가 이식됐다고 보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한쪽에 있다. 반면 다른 쪽엔 18세기에 이미 토지 소유관계의 변화와 함께 근대 자본주의의 맹아가 싹텄다고 보는 자생적 근대화론이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에 따르면 일본의 식민지배는 긍정과 부정의 양면적 성격을 띠며, 자생적 근대화론에 따르면 일본의 지배는 우리의 자생적 근대화의 길을 차단하고 굴절시킨 혐의를 피할 수 없다. 그 외에 근대라는 역사적 범주가 서양사를 기준으로 한 것이며 한국사의 특수성은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이라는 일반적 틀로 재단하기 어렵다는 근대 회의론도 있다.

입장은 다르지만 근대의 핵심을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국민국가라는 정치체제의 결합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자본주의 근대로 나갈 수 있는 역량을 일제의 강점 이전에 우리가 갖고 있었느냐 없었느냐가 주된 쟁점이었다.

 

 

하지만 전작인 『인민의 탄생』에서와 마찬가지로 송 교수는 ‘공론장 분석’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을 채택한다. 공론장의 구조변동에 관한 하버마스에 선구적 연구에 기대어 저자는 공론장의 분석을 아예 조선의 전반적 역사 변동과정을 설명하는 통시적 분석틀로 삼는다. 책의 부제가 ‘조선의 근대와 공론장의 지각 변동’으로 붙여진 이유다. 저자는 “조선의 역사 변동은 공론장 구조 변동의 역사”라고까지 말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19세기 중반 이후 조선은 한 시대가 저물고 질적으로 전혀 다른 시대가 다가오는 전환기였다. 이 전환기를 가리키는 이름이 ‘말안장 시대’(1860~94)다. 1860년대 전국 각지에서 봉건 질서와 지배층에 반기를 든 민란의 시대가 도래했고, 저자의 표현으로 문자해독력을 갖춘 ‘문해인민’(文解人民)은 주체의식과 존재론적 자각을 갖게 된 ‘자각인민’으로 진화했다. 이 시대를 특징짓는 건 양반 공론장의 쇠퇴와 평민 공론장의 확대다.

19세기 전반기 60년간의 세도정치로 인해 조선을 지탱해온 지식과 권력의 선순환이 차단되고 차츰 서양의 위협과 직면하면서 더 이상 성리학적 천(天) 개념은 유지되기 어려웠다. 문명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천 개념의 변용이 불가피했지만, 지배층이 내세운 위정척사(衛正斥邪)와 동도서기(東道西器), 문명개화 등의 세 가지 태도는 여전히 ‘지배층의 천’만을 고려한 것 일뿐 ‘인민의 천’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인민의 천은 동학에서 새로운 근거를 마련하게 되는데, 동학은 인민도 스스로 천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매우 파격적인 ‘종교 개혁’이었다. 이렇듯 지배층의 천과 인민의 천이 분리되면서 역사 또한 지배층의 역사와 인민의 역사로 분리되며, 이 두 역사는 1894년에 서로 충돌하면서 모두의 실패로 끝난다.

말안장 시대에 이어지는 시대가 갑오정권에서 대한제국에 이르는 근대 이행기이다. 공론장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시기는 지식인 공론장이 형성되고, 평민 공론장이 세속적 평민 공론장으로 부활하며, 이 두 공론장이 서로 연대하고 공명한다는 데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대한제국의 근대화가 제대로 추진됐다면 개인은 시민으로, 사회는 시민사회로 자연스레 이행해갈 수 있었을 터이지만, 불행히도 국권 침탈과 함께 그 과정은 중단됐다. 그 결과 시민의 탄생은 “식민 통치하에서 유일하게 허용된 상상력의 공간, 문학의 영역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시민의 탄생』은 자각인민이 근대적 개인을 거쳐 시민으로 태어나는 과정을 면밀하게 추적한다. 근대적 개인과 시민을 구분하는 점이 흥미로운데, 근대적 개인이 사회를 구성하는 주체라면 저자는 개인과 사회가 근대성을 획득해가는 과정에서 개인은 시민으로 발전한다고 본다.

 

이러한 접근 시각과 용어들이 ‘송호근판’ 한국 근대 기원론의 강점이다. 저자는 한편으로 공론장 분석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을 적용함으로써 한국 근대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조망을 제시하며, 다른 한편으론 공론장의 구조 변동에 대응하여 인민이 어떠한 주체로 진화해가는가를 단계별로 기술한다. 전례 없는 시도이자, 한국 근대사의 전개과정에 대한 안목과 이해를 획기적으로 넓혀주는 중요한 성과로 읽힌다.

 

13. 1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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