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귀가길에 들고 온 책의 하나는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출간되는 계간 영문잡지 '_list'(14년 봄호)다. 논픽션 쪽 책 두 권에 대한 짧은 소개글을 실었기 때문인데, 그 두 권이 김은주의 <한국의 여기자, 1920-1980>(커뮤니케이션북스, 2014)과 전상인의 <편의점 사회학>(민음사, 2014)이다. 잡지에는 약간 축약된 형태로 영어로 번역돼 실렸다. 초고를 옮겨놓는다.

 

 

 

Pioneering Reporters

 

이 책은 언론인 저자가 쓴 ‘한국 여기자 열전’이다. 한국에서는 여성 기자를 ‘여기자’라고 부른다. 남자 기자는 ‘남기자’라고 하지 않고 그냥 ‘기자’라고 부른다. 기자는 으레 남성의 직업이라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여기자’라는 말은 한국 언론사에서 여성 기자가 얼마나 드물고 이례적이었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그럼에도 언론사에 큰 족적을 남긴 대표 여기자들의 무게감은 작지 않다.

 

저자는 192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활약한 여기자 아홉 명의 활동을 시대상과 함께 그려냈다. 최초의 여기자 이각경이 <매일신보>에 입사한 1920년부터 한일 고대사 연구자로도 이름을 날리게 되는 이영희가 <한국일보>를 퇴사하는 1981년까지다. 이들 여기자들의 삶과 활약상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과 한국전쟁, 자유당 정권과, 박정희 집권 전기(前期), 그리고 유신시대를 지나온 한국 현대사의 거울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여기자는 “당대에 가장 첨단을 걷는 여성”으로서 기자이자 선각자였고 또 지사(志士)였다. 여성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였고, 문학가나 문필가로서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때로는 장관으로 발탁돼 국가정책을 다루거나 국회의원으로서 의정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저자는 한국에서 여기자의 삶이 대략 두 가지 흐름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하나는 ‘선각자로서의 여기자’로서 “배운 여성으로서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계몽적인 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작가로서의 여기자’다. 문학의 뜻을 둔 이들이 자기 작품을 신문에 싣기 위해서, 단순히 글을 쓰는 것을 즐겨서 기자직에 몸을 담은 경우도 많았다. 이들은 역사 연구자나 집필가로도 크게 활약했다.

 

Consumer Convenience

 

<아파트에 미치다>(2009)에 이어서 사회학자 전상인이 편의점을 고찰의 주제로 삼았다. 편의점을 통해 우리 시대의 삶과 사회를 말하기 위해서다. 왜 편의점인가? 저자의 비유에 따르면, 아파트가 한국의 ‘국민 주택’이라면 편의점은 ‘국민 점포’다. 인구 대비 편의점 밀도로 따지면 최초 발상지 미국은 물론 최대 발흥지 일본과 대만을 제치고 한국이 세계 최고수준이다. 1989년에야 처음 생겨났지만 편의점은 프랜차이즈 체인 방식을 통해 급성장해 2012년 말을 기준으로 전국에 2만 4559개가 넘는 편의점이 분포해 있고, 하루 방문객만 880만 명 이상이다.


편의점의 이러한 확산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일반적인 차원에서, 편의점은 “형식적 관료주의가 최고조에 달한 공간이자 사회의 맥도널드화가 집약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유통현장”이다. 근대 합리주의와 소비자본주의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편의점은 1990년대 세계화‧개방화 물결을 타고 들어와 신세대의 서구식 생활문화에 대한 선망과 동경을 자극하면서 한국인의 일상을 장악했다. 편의점은 한국사회의 세계화를 말해주는 지표다.


하지만 ‘편의점 제국’의 이면도 간과할 수 없다. 편의점이 푸드점화 하는 것이 한국의 편의점 영업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데, 그 배경은 사회적 양극화이다. 경제적 약자들이 혼자서 끼니를 때우는 공간으로 자리 잡으면서 한국의 편의점은 ‘88만원 세대의 밥집’이 됐다. 또 ‘편돌이’라고 불리는 편의점 ‘알바’는 법정 최저시급보다도 못한 보수를 받기도 하는 대표 직종이다. 편의점이 오늘의 한국사회를 들여다보게 해주는 거울인 이유다.

 

14. 0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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