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인'의 독서카페 코너에 쓴 글을 옮겨놓는다. 이달에 글거리로 삼은 것은 지난달 말에 방한하기도 한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자음과모음, 2012)이다. 다시 읽고 쓴 글이기에 제목도 '다시 읽는다는 것에 대하여'라고 붙였다. 다시 읽은 덕분에 종교개혁(사사키 아타루는 '대혁명'이라고 부른다)에 관한 책들도 여럿 더 구했다. 그가 말하는 '12세기 해석자 혁명'과 관련한 책도 더 나왔으면 싶다. 박사학위논문을 바탕으로 한 주저 <야전과 영원>이 번역중인 걸로 아는데 출간을 고대한다.

 

 

 

독서인(14년 3월호) 다시 읽는다는 것에 대하여

 

일본의 젊은 인문학자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자음과모음)을 다시 읽었다. 처음 나왔을 때 리뷰도 쓰고 2쇄를 찍을 때 편집자의 요청으로 추천의 말까지 붙인 책이지만 다시 읽어도 흥미로웠다. 새로운 것을 읽기보다는 다시 읽는 걸 좋아한다는 게 저자의 독서관이기에, 그의 책을 다시 읽는 건 저자의 독서법을 실천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읽으면 물론 읽고 잊어버린 것을 되살리게 된다. 또한 줄거리나 핵심 주제에 집중하느라 주목하지 않았던 책의 세부에 대해서도 눈길을 주게 된다. 사사키 아타루가 말하는 독서는 그때 비로소 시작된다. 무엇이 독서인가. 니체처럼 자신을 ‘다이너마이트’라고 스스럼없이 말한 저자들과의 만남이다. “서점이나 도서관이라는 얼핏 평온해 보이는 곳이 바로 어설프게 읽으면 발광해버리는 사람들이 빽빽 들어찬, 거의 화약고나 탄약고 같은 끔찍한 장소라고 느낄 수 있는 감성을 단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저자들이란 보통 죽은 자들이어서 서재나 도서관은 마치 ‘공동묘지’ 같다고 한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를 뛰어넘는다고 할까.

 


책이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발물 같은 것이기에 책을 너무 가까이하는 건 위험하다. 그렇다고 염려할 건 없다. 우리의 자연스런 방어기제도 이에 맞추어 작동하기 때문이다. 사사키 아타루는 읽어도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고 ‘어쩐지 싫은 느낌’이 들어서 책을 덮어버리는 것이야말로 ‘독서의 묘미’라고 한 작가 후루이 요시키치의 말을 인용한다. 이 ‘자연스러운 자기 방어’ 기제 덕분에 설사 감명 깊게 읽었더라도 곧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읽기는 이러한 본능을 거스르는 행위다. 잊어버린 것을 다시 소환하고 상기함으로써 책이라는 폭탄의 위험성을 감수하는 행위다. 다이너마이트를 끌어안는 행위? 맞다, 그것은 미친 짓이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 쓴 것은 읽을 수가 없다는 게 사사키 아타루의 생각이다. 다른 사람의 꿈을 그대로 본다면 우리가 미쳐버릴지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책을 통해서 타인의 생각과 정서, 감각에 접속한다는 것은 섬뜩한 노릇이다. 그것이 진짜 고백을 담고 있는 진짜 책이라면 말이다. 그런 책은 본질상 난해하고 무료하다. 읽을 수가 없다. 가령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 같은 소설이나 황병승의 <여장남자 시코쿠> 같은 시집을 어떻게 읽겠는가.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하지만 그래도 뭔가에 끌려서 읽게 된다면, 읽어버리게 된다면 우리는 자기 안에 똑같은 광기를 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인생이 바뀔 것이다. “왜 소설을 쓰는가?”란 질문에 “소설을 읽어버렸으니까.”라고 답한 일본 작가 고토 메이세이처럼. 읽어버린 이상 쓰지 않을 수 없다. “나에게는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 세계, 독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불가피한 세계와의 조우다.


여기까지가 하룻밤 이야기로서 일종의 서론이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일종의 광기이고 도박이라는 점을 미리 밝히고서 사사키 아타루는 본격적으로 혁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파울 첼란의 시구를 제목으로 가져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의 부제가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이란 걸 다시 확인하게 되는 대목이다. ‘책과 혁명’이라고 했지만, 둘은 접속사 ‘과(and)’보다는 ‘혹은(or)’을 통해 만난다. 사사키 아타루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혁명에 관한 책’이나 ‘책을 통한 혁명’이 아니라 ‘혁명으로서의 책’ 혹은 ‘책이 된 혁명’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례들이 있는가. 서양 종교사학을 전공한 사사키 아타루는 특히 그가 ‘대혁명’이라고 부르는 루터의 종교개혁, 무함마드의 혁명, 그리고 12세기 해석자 혁명을 대표적 사례로 꼽는다.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서 그는 “과거의 혁명이 아무리 피로 물들었다고 하더라도 혁명의 본질은 폭력이나 주권 탈취가 아니라 텍스트를 다시 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곧 ‘텍스트의 변혁’이 혁명이다. 그는 말의 넓은 의미에서, 문학이야말로 혁명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예술의 한 갈래를 지칭하는 좁은 의미의 문학이 아닌, 글로 쓰인 것 전체를 통칭하는 ‘문학’이다.

 

 

이 문학 행위는 통상 두 단계로 구성된다. 읽기와 쓰기다. 가령 마르틴 루터가 한 일은 무엇이었던가. 수도원에서 철저하게 성서를 읽는 일이었다. 성서를 읽고 또 읽었고 베껴 적었다. 라틴어도 그리스어도 히브리어도 공부하여 읽었다. 그러한 독서 끝에 그는 당시 기독교 세계의 질서가 성서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다시 말해서 아무런 근거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루터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이 세계엔 교황과 추기경이 있고 대주교와 주교가 있으며 그들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건 성서에 쓰여 있지 않았다. 그럼 뭐란 말인가.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미친 것일까, 아니면 이 세계가 미친 것일까?” 키르케고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루터는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이런 질문과 조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성서를 읽고 나자 루터는 이제 쓸 수밖에 없다(루터 전집은 무려 127권에 달한다고 한다). 1517년 루터는 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는 95개조의 반박 의견서를 발표한다. 당시 독일은 문맹률이 95퍼센트에 달했던 사회였지만 다행스럽게도 인쇄술의 혁신으로 그의 견해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종교개혁이라는 대혁명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이어서 루터는 라틴어 성서를 독일어로 옮기는 일에 착수한다. 1522년 9월에 처음 출간된 독일어 <신약성서>(통칭 <9월 성서>)는 가격이 소 한 마리 값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고 한다. 독일어로 쓴다 하더라도 당시는 식자율은 5퍼센트에 불과했으므로 단지 인구의 5퍼센트만이 읽을 수 있을 뿐이었지만 루터는 자신의 문학행위, 곧 글쓰기를 중단하지 않았다. 1519년 루터 책의 출판 부수가 독일 전체 출판물의 3분의 1, 1523년에는 5분의 2에 달했을 정도라고 하니까 거의 전무후무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하여 그는 16세기 최대의 ‘문학자’가 된다. 루터가 “인쇄술, 그것은 신이 내려주신 최대의 은총이다”라고 말한 것도 지극히 온당해 보인다. 


루터의 혁명은 비단 기독교의 분열과 개신교의 분화를 의미하는 종교개혁 범주에만 가둬질 수 없다. 그의 혁명은 법의 혁명이기도 했다. 루터 사상의 핵심 개념으로서 ‘양심’이 오늘날까지도 재판의 준거가 되고 있다는 점이 대표적 사례다. 루터의 신학과 루터파 법학이 가져온 혁명적 변화에서 우리는 벗어나 있지 않다. 읽기와 쓰기는 그렇게 법제화로 귀결된다. 법이 바뀐다는 것은 세상의 근거가 바뀐다는 의미다. 혁명은 권력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근거를 새로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읽기다. 나른한 봄날이지만, 당신이 손을 뻗어 닿을 만한 곳에 책이 있기를!

 

14. 03. 13.

 

 

P.S. 다시 읽으니 수정할 대목도 눈에 띄었다. 50쪽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물결(The Waves)>은 이미 출간된 제목인 <파도>라고 표기되는 게 좋겠고, 294쪽에서 "푸코도 <성의 역사>를 내주겠다는 출판사를 찾지 못해 상당히 오랫동안 괴로워했으니까요. 당시 명편집자로 나중에 역사가가 되는 필리프(*필립) 아리에스의 형안에 의해 발탁될 때까지는 말이지요."에서 푸코가 출간에 애를 먹은 '처녀작'은 <성의 역사>가 아니라 그의 박사학위논문인 <광기의 역사>였다. 사사키 아타루가 잘못 말했거나 역자가 잘못 옮기지 않았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