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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책&(421호)에서 '로쟈의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이달의 주제는 '의사들'로 골랐다. 조슈아 퍼퍼와 스티븐 시나의 <닥터 프랑켄슈타인>(텍스트, 2013)이 출간된 게 계기였는데, 관련서를 찾다가 아툴 가완디의 책들을 발견한 게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책&(13년 8월호) 세상을 뒤집는 의사들

 

한때 잘못 이해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히포크라테스의 잠언에서, 실은 ‘예술’이 ‘의술’을 뜻한다는 건 이제 상식이 됐다. 더 정확하게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짧고, 의술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까마득하구나.” 곧 ‘의술의 길은 멀다’라는 게 히포크라테스의 진의에 가깝다. 사정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히포크라테스의 후예인 의사들은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으매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라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낭독하며 의사의 길로 접어든다. 그러나 현대과학의 비약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 의학은 완벽하지 않으며 의술의 길은 여전히 멀다. 그런 조건에서 의사의 역할은 무엇이고 어떤 길을 걷고 있는가. 이달에는 의사들의 세계를 다룬 책을 몇 권 들여다보기로 하자.

조금 파격적인 서두는 어떨까. 미국의 법의학자 조슈아 퍼퍼와 스티븐 시나가 쓴 <닥터 프랑켄슈타인>(텍스트, 2013)은 의사들의 어두운 행각을 다룬 ‘의료 잔혹사’라고 할 만한 책이다. 원제 자체가 ‘의사는 언제 죽이는가(When doctors kill)’이다. 특별한 상상력이 필요한 건 아니다. 알다시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과 군국주의 일본의 의사들은 집단학살과 생체 실험에서 무수한 잔학 행위를 저질렀다. 그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미국의 의사들도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한 비윤리적 실험으로 많은 이들을 다치게 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했다.

 

 


가령 1943년 미국 신시내티 대학병원의 연구원들은 ‘차가운 온도가 정신이상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서 정신장애 환자 16명을 120시간 동안 영하 1도의 냉장실에 가두었다. 뉴욕대학의 솔 크루그먼은 1956년부터 1972년까지 한 공립학교에 다니는 정신이상 아동을 대상으로 간염 감염 연구를 진행했다. 아이들에게 감염된 혈청을 주사하거나 간염 환자의 배설물을 먹여 의도적인 감염실험을 하면서도 부모에게는 간염 백신을 주사한다고 속여서 동의서를 받아냈다. 그럼에도 크루그먼은 1972년에 미국 소아과학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한다. 그나마 이런 정도는 책에서 언급된 온갖 ‘범죄’에 비하면 약소한 사례에 속한다. 그렇다고 고발이나 폭로가 저자들의 의도는 아니다. “그저 의사가 언제, 어떻게 왜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가는지 그 정황을 정확히 전달하고자 할 뿐”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닥터 프랑켄슈타인’만이 의료살인을 저지르는 건 아니다. 좋은 의사들도 과실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때론 나쁜 의사가 될 수 있다. 아툴 가완디의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소소, 2003) 부제대로 ‘볼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이다. 외과 레지던트로서의 경험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는 저자는 현대의학이 아직 “불완전한 과학이며, 부단히 변화하는 지식, 불확실한 정보, 오류에 빠지기 쉬운 인간의 모험이며, 목숨을 건 줄타기”라고 담담히 인정한다. 그런 상황에서는 의사도 초인이 아닌 이상 실수를 저지를 수 있고, 태만에 빠질 수도 있다.

 

저자가 드는 사례 중 하나는 정형외과 의사 행크 굿맨이다. 솜씨가 뛰어난 최고의 정형외과의였고 의대생들이 주는 교수상까지 받았지만 과중한 스케줄에 노출되면서 그는 차츰 의료에 무감각해졌다. 가장 바쁜 의사로서 주당 100시간까지 일을 했던 굿맨은 점차 사소한 일정 변동에도 참지 못하게 됐고 환자들에게 어이없는 결정을 내리면서 의료소송에 연이어 휘말리는 ‘평범한 나쁜 의사’가 됐다.

 

 


그렇다고 나쁜 소식만 있는 건 아니다. 그러한 의료 현실은 더 나아져야 하고 실제로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 아툴 가완디는 <닥터, 좋은 의사를 말하다>(동녘사이언스, 2008)에서 의료현장이 어떻게 개선될 수 있으며 좋은 의사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는지 살핀다. 그는 의료계가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세 가지 핵심요소로 성실함과 도덕적 투명성, 그리고 새로운 사고를 든다. 외과의 수련과정을 마치고 인도에 교환의사로 간 저자가 하루는 중증 뇌수종(뇌척수액이 정상적으로 빠져나가지 못해 두개골을 팽창시키고 뇌를 압박하는 질환)에 걸린 한 살배기 아이를 보게 된다. 긴급한 수술이 필요했지만 신경외과 전문의도 없고 수술 장비와 무균튜브도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외과의들은 열악한 도구를 이용해 두개골에 구멍을 뚫는 수술을 시작했고 동네시장에서 모사품 튜브를 소독하여 무균튜브를 대신했다. 그렇게 과감한 결단과 사고의 전환으로 한 아이의 생명을 구해낼 수 있었다. ‘좋은 의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좋은 의사’라고 하면 199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한 ‘국경없는의사회’도 빼놓을 수 없다. 2년간 직접 국경없는의사회에서 활동하며 겪은 일들을 기록한 신창범의 <국경 없는 괴짜들>(한겨레출판, 2013)은 전 세계 분쟁지역과 자연재해 지역에서 아무런 차별 없이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구호 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의 활동상을 생생하게 전한다. 더불어 베네수엘라의 공공 의료혁명을 다룬 스티브 브루워의 <세상을 뒤집는 의사들>(검둥소, 2013)은 ‘좋은 의사’를 넘어서 ‘좋은 의료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사회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요시타 타로의 르포르타주 <의료천국, 쿠바를 가다>(파피에, 2011)와 함께 읽어볼 만하다.

 

13. 0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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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프레시안 books'에 실린'3인 1책 수다'를 옮겨놓는다(전문은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30809150602§ion=04 참조). '납량특집'으로 다루게 된 작품이 제임스 엘로이의 (알에이치코리아, 2013)이다. 영화는 흥미롭게 봤지만 하드보일드 느와르 장르에 대해선 과문하다 보니 김용언 기자의 설명을 듣는 청문회 형식이 됐다. 김용언 기자는 <범죄소설>(강, 2012)의 저자이기도 하다...

 

 

 

프레시안(13. 08. 09) 천사들이 노래하는 '죽음의 도시', 연쇄 살인마 알고 보니… 

 

김용언 : 예전에 무척 재밌게 읽었던 소설이고 현대 하드보일드 누아르 소설에서 손꼽히는 작품이기 때문에 주저 없이 을 8월의 '납량 특집' 책으로 골랐습니다. 그런데 일단 분량이 어마어마하고 워낙 장대한 세월에 무수히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책인지라, 제임스 엘로이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더라고요. 아무래도 오늘은 미스터리 장르의 팬인 제가 말을 많이 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이 소설에 대한 선생님들의 첫인상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이현우 : 예전에 봤던 커티스 핸슨 감독의 동명 영화만 믿고 골랐다가….(웃음)

이권우 : 전 그나마도 다른 영화와 착각했었습니다. <유주얼 서스펙트>의 원작인 줄 알았거든요.(웃음)

 



김용언 : 커티스 핸슨 감독의 영화는 소설에서 굉장히 많은 부분을 덜어낸 버전인데요, 이 영화는 199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받았지요. 이 정도 분량의 소설을 2시간 20분짜리로 깔끔하게 정리했다는 점에서 당연히 탈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도 각색의 모범으로 불리는 작품이에요. 그에 비해 제임스 엘로이의 또 다른 대표작 <블랙 달리아> 같은 경우,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2006년 영화화했지만 설득력 있는 각색에 완전히 실패한 경우입니다.

은 제임스 엘로이의 'L.A. 4부작' 중 한 편입니다. <블랙 달리아>가 1편, 이 작품은 3편이에요.

 

 

이권우 : 2편은 뭐에요?

김용언 : 이건 번역이 안 되었는데요. <빅 노웨어(The Big Nowhere>라는 작품이고, 4편이 <화이트 재즈(White Jazz)>입니다. 1940년대 말에서 50년대 말의 L.A.를 배경으로 한 범죄소설 시리즈입니다.

이권우 : 연작은 아니겠군요.

김용언 : 예, 그런데 살짝 겹치는 인물은 있어요. 예를 들어 <블랙 달리아>에 나오는 경찰 고위 간부 밀러드가 에도 등장합니다. 부패한 경찰 더들리 스미스와 대립각을 세우다 심장마비로 죽는 강직한 경찰이지요. 또 의 에드먼드 엑슬리와 더들리 스미스는 <화이트 재즈>에도 등장한다고 해요. 이들 작품은 모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대 L.A.가 어떤 지옥도였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이권우 : 로스앤젤레스는 도시 이름을 잘못 정한 것 같아요. 아니, 잘 정한 건가?(웃음)

김용언 : 천사들의 도시라니, 무척 역설적인 이름이죠.

살해당한 어머니를 위한 글쓰기
이권우 : 그러니까 에서 어머니의 죽음 이후 여성들이 폭력에 노출되는 걸 견디지 못하는 경찰 버드가 엘로이 자신의 모습인 거지요? 실제 작가가 10살 때 어머니가 살해당했는데 미제 사건으로 남은 걸 비춰봐선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드네요.


김용언 : 네, 맞습니다. 제임스 엘로이의 자전적 논픽션 <내 어둠의 근원>(이원열 옮김, 시작 펴냄)을 보면 그의 과거가 생생하게 드러납니다. 1958년 엘로이의 어머니가 끔찍하게 살해당했을 무렵, 어차피 별 볼일 없는 서민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비슷한 시기 유명한 갱스터의 살인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아예 주목을 받질 못했어요. 그 갱스터는 에도 등장하는 실존 인물인데요, 배우 라나 터너와 사귀는 이탈리안 갱스터 자니 스톰파나토를 기억하실 겁니다. 라나 터너의 딸이 그를 죽여 버리는 바람에 미국 전체가 들썩거렸고, 그 때문에 엘로이의 어머니 사건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혔지요.

어머니와 그런 식으로 헤어지고 난 경험이 소년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는 뻔합니다. 엘로이는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술과 마약에 절어 청년기를 보냈어요. 결국 재활에 성공한 뒤 독학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죠. 그는 일생 내내 자신을 괴롭힌 사건을 직접 해결하기 위해 어머니 사건을 몇 십 년 만에 다시 들춰보며 마치 자신의 소설 속 탐정처럼 치열하게 추적해갑니다. 그 내용이 <내 어둠의 근원>에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어요.

<블랙 달리아> 역시 어머니 사건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1947년 벌어진 무명배우 엘리자베스 쇼트 살인사건을 모델로 하고 있어요. 어머니가 죽기 10년 전 쯤 벌어진 이 사건에 엘로이는 어린 시절부터 끈질긴 집착을 보였다고 합니다. 말할 수 없이 잔혹한 방식으로 살해당한 엘리자베스 쇼트 역시 엘로이의 어머니처럼 복잡한 남자관계 때문에 오히려 용의자를 찾기 어려웠고 호기심 어린 스캔들의 대상으로만 떠돌았지요. 엘로이는 <블랙 달리아>에서 극화한 엘리자베스 쇼트 사건을 통해 자신의 어머니를 되살려낸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블랙 달리아>의 서문에는 아예 "어머니, 스물아홉 해가 지난 지금에야 이 피 묻은 고별사를 바칩니다"라고 쓰기도 했어요.

이권우 : 제임스 엘로이의 소설을 이번에 처음 접했는데, 원래 이렇게 길고 복잡한 스타일인가요?

김용언 : 네.(웃음) <블랙 달리아>도 수많은 주인공들이 복잡하게 얽힌 사건을 이해하려면 상당한 두뇌 회전이 필요한 작품입니다.

이현우 : 이게 제임스 엘로이만의 특징인지, 아니면 하드보일드 누아르 장르가 일반적으로 이런 스타일인지 궁금하네요.

 

 

김용언 : 하드보일드가 대체로 이런 스타일이긴 한데, 엘로이가 또 강박적으로 핍진성을 따지면서 무척 자세하게 모든 것을 역사지리학적으로 기술하려는 작가인 것도 맞아요. 아마 똑같이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다룬 작가로는 <안녕, 내 사랑><빅 슬립>(박현주 옮김, 북하우스 펴냄)의 레이먼드 챈들러가 원조 격일 텐데, 엘로이 소설은 챈들러 소설보다 서너 배는 더 복잡한 것 같아요.

이현우 : 엘로이가 챈들러를 깎아내렸던데요.(웃음) 본인이 훨씬 더 잘 쓴다고 자부하면서.

김용언 : 하지만 제 생각엔 챈들러를 깎아내릴 이유가 전혀 없었어요.(웃음) 두 사람 스타일이 굉장히 비슷하거든요.

L.A.의 폭력의 역사
이권우 : 지나치게 꼬이고 복잡한 소설인데, 이 장르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마저 너무 불친절한 건 아닌가요?

이현우 : 리뷰를 몇 개 찾아보니까 은 한 달 동안 읽는 소설이라는 표현이 있더군요. 하지만 그 동안 내내 즐겁게 몰입하며 읽는다고 합니다. 이건 태도 문제인 듯 싶어요. 복잡하기 때문에 책장을 덮는 게 아니라, 복잡하기 때문에 아주 꼼꼼하고 주의 깊게 읽게 되는 거지요. 충성도가 높은 독자를 위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권우 : 워낙 등장인물이 많고 긴 시간 동안 벌어지는 얘기다보니, 아예 계보도를 그려서 책 앞에 붙였다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워낙 작가가 인물을 생생하게 묘사하기 때문에, 그 특징을 기억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흐름을 따라갈 순 있더라고요. 하지만 결코 편한 스타일은 아니지요. 장르소설 독자가 아닌 입장에선 책을 읽는 내내 방해물이 많다는 느낌이었어요. 미스터리 장르 팬들은 이런 소설에 왜 호감을 갖는지 궁금합니다.

김용언 : 특히 현대 하드보일드 미스터리가 대체로 방대한 인물과 사건을 다루는 경향은 분명히 있습니다. 범죄를 통해 어떤 사회의 초상화를 완성하려다보니, 현대사회의 복잡한 측면을 의도적으로 자세하게 묘사하는 특징은 공통적이에요.

제 생각엔 이렇습니다. 의 세 주인공, 다혈질의 버드와 부잣집 도련님 에드먼드, 할리우드와 친밀한 잭 모두에게는 숨기고 싶은 비밀과 상처가 있습니다. 같은 L.A. 경찰국에 근무하지만 물과 기름처럼 겉돌기만 하던 이 세 사람이 '밤부엉이 커피숍' 살인사건을 계기로 어쩔 수 없이 결합합니다. 각기 다른 목적이 있었지만, 몇 년 동안 '밤부엉이 커피숍' 이면의 거대한 음모를 추적하다보니 인정하고 싶지 않던 상처를 서로에게 노출시키고, 결국 어떻게든 극복하게 되지요.

그 방식이 사실 되게 폭력적입니다. '악에는 악으로'의 공식인데, 그런 폭력적 희생제의를 통해 사건 해결과 스스로의 상처 치유를 동시에 성취합니다. 그 결말이 아주 깨끗하고 정의로운 해결이 아니고, 심지어 경찰 내부의 근본적인 부패의 핵심을 제거하는 데에는 실패하기까지 하죠. 그런데 제 생각엔, 그런 개운하지 못한 결말마저도 작가가 집요하게 추구하는 핍진성의 측면과도 잘 맞는 것 같아요.

 



사회학자 마이크 데이비스 같은 경우 L.A.의 역사를 기술한 책 <수정의 도시(City of Quartz)>에서 L.A.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가로 제임스 엘로이를 꼽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엘로이가 'L.A. 4부작'을 통해 "현대 L.A.의 역사를 성범죄와 악마적인 음모, 정치적 스캔들의 연속체로서, 하나의 지도로 완성시킨다"라고 평가하면서 "여기서 L.A.는 어떤 희망이나 빛도 남아있지 않고, 악은 법의학적인 진부함이 되어버렸다"고 썼어요. 그러니까 결말에 이르러서는 어떤 분노조차 일으키지 못할 정도로 과도한 부패가 로스앤젤레스 이곳저곳에 만연해 있다는 점을 적시한 작가라는 거지요. 게다가 80년대 말에 처음 등장한 'L.A. 4부작'이 1950년대 L.A.를 배경으로 하는데, 80년대 레이건 시대의 부패에 대한 작가의 환멸이 고스란히 반영되어있다는 지적도 해요.


에서도 디즈니랜드적인 공간이 계속 강조가 되잖아요. 에드먼드의 아버지 프레스톤과 월트 디즈니 같은 인물인 레이먼드 디털링이 건설한 꿈과 환상의 놀이공원 '드림 어 드림랜드'가 마지막에 이르러 무너지고, 아버지들은 전부 자살하며 끝장나지요. L.A.가 서부의 사막 위에 지어진 환상의 결정체 같은 도시라는 점을 상기해보면, 이 소설 속 디즈니랜드적인 공간이 부서지는 건 그런 환상의 파멸에 대한 명징한 비유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부분의 집단 자살에는 비판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웃음)


(...)

 

13. 0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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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서재 10주년 기념 인터뷰를 옮겨놓는다. 간단히 답했더니 그대로 실렸다(http://blog.aladin.co.kr/zigi/6515233).

 

 

 

Q. 알라딘 10주년을 맞이하여 축하 메시지

 

A. 알라딘 서재가 10주년을 맞았다고 하니, 알라딘과 더불어 꼬박 10년을 늙었다는 얘기네요.^^
감회가 없지 않지만, 그냥 쿨하게, "20주년때 봅시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느낌표도 없이!
분명 지금의 알라딘 서재가 10년전 모습과 다르듯이 10년 뒤 모습은 또 지금과 달라질 거라고 믿습니다. 그럼에도 알라딘 마을 정신 같은 게 있다면 유구하게, 변함없이 지탱될 거라고 또한 믿습니다. 알라딘 마을을 오고갔던 많은 분들이 즐거운 추억과 함께 '커밍홈'할 그날을 기다려봅니다.~


Q. 당신에게 알라딘 서재란?


A. 이젠 본명보다 '로쟈'란 필명으로 더 알려진 것처럼, 저의 진짜 서재도 알라딘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하루 쌓이는 책들 때문에 점점 숨이 조여오는 오프라인 서재보다는 바늘 끝에라도 올려놓을 수 있을 거 같은 알라딘 서재가 오히려 숨통입니다. 로쟈는 오늘도 알라딘 상공을 저공비행합니다.

 

 


Q. 지난 10년간 알라딘 서재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3가지만 알려주세요)

 

1. 아주 오래전 서재지기 초창기에 파란여우님이 알라딘 마을 '4대천왕' 중 하나로 꼽아주신 것. 서재활동이 주목받고 있다는 걸 처음 느끼게 됨.


2. 서재에 올렸던 글들을 바탕으로 편집하고 교정해서 첫번째 책 <로쟈의 인문학서재>(산책자, 2009)를 펴낸 일. 출간 이벤트도 벌였고, 연말엔 한국출판문화상까지 수상했다.


3. 몇가지 논쟁에 연루됐던 일. 심지어 40자 리뷰 때문에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기도 했다. 서재활동의 기억할 만한 해프닝.

 

13. 08.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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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038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가라타니 고진이 신작 <자연과 인간>(도서출판b, 2013)을 읽고 적었다.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세계사의 구조>, <세계공화국>으로 나란히 읽을 만하다. <세계사의 구조>에 대한 프롤로그로, 또 에필로그로 말이다.

 

 

 

주간경향(13. 08. 13) 인간과 자연의 교환관계에 대한 고찰

 

일본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의 신간이 출간됐다.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의 11번째 책으로 나온 <자연과 인간>(도서출판b)이다. 개인적으로는 ‘가라타니 고진의 모든 책’을 읽을 의사를 갖고 있고, 또 그렇게 해왔기에 <자연과 인간> 또한 기꺼이 손에 들었다. 부제는 ‘<세계사의 구조> 보유’. 고진이 대표작 <세계사의 구조>를 보충한다는 의미인데, 역자는 <세계사의 구조>를 읽기 위한 최적의 입문서로도 추천하고 있다. <세계사의 구조>와 씨름했거나 씨름해 볼 독자에겐 더 없이 유용한 길잡이이자 격려라고 할까. 여러 논문 가운데 표제가 된 ‘자연과 인간’을 통해서 어째서 그러한지 짚어본다.

 

고진의 <세계사의 구조>는 교양양식으로 바라본 세계사의 전개과정을 해명한 문제작이었다. 생산양식의 관점에서 세계사의 전개를 설명한 마르크스의 시도를 보완하면서 동시에 교환양식론이라는 독보적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사상가’로서의 존재감을 각인시켜준 책이다. 다만 인간과 인간 사이의 교환관계에 초점을 맞춘 탓에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서는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 이에 대해 보충하면서 고진은 기본적으로 인간과 인간의 교환관계의 근저에 인간과 자연의 교환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야를 확대해 보자면, 지구는 엔트로피를 열로 우주에 방출함으로써 정상성을 유지하는 개방계이다. 태양광에서 고온열을 받아들여 저온열을 우주에 방출하는데, 이때 대기의 순환이 발생한다. 그리고 지구라는 시스템 아래에 생명계가 있다. 이 역시 열엔트로피를 대기에 방출함으로써 유지되는 정상개방계이다. 이런 시스템 하에 인간사회가 존재한다. 고진은 이러한 계층구조에서 인간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제한적이라고 본다. 지구온난화설을 의심하는 이유인데, 역사적으로 지구 대기의 온도 변화는 주로 태양활동의 변화에 의한 것이다. 인간이 과다 배출해낸 이산화탄소에 의해서 지구 전체의 환경 변화가 초래된다고는 볼 수 없다는 얘기다. 인간이 갖고 있는 거라면 원자폭탄이든 원전사고이든 원자력에 의해서 지구를 황폐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 정도다.

 

 

 

고진은 지구온난화설의 대두가 환경론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이것은 자본주의의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대응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규제함으로써 자본-국가는 석유나 천연가스를 직접 소유하지 못하더라도 그 사용권을 국제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그 여파로 1980년대에 고조되었던 반전운동이 시들해졌다는 점이다. 고진이 보기에 그것은 ‘자본-국가에 대한 대항운동의 총체적인 패배’의 결과이다.

 

자본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은 왜 일어났던가. 세계자본주의는 ‘일반적 이윤율의 저하’에 따라 주기적으로 경제위기에 봉착하게 되는데, 1870년대에는 제국주의로 나아감으로써, 그리고 1980년대에는 신자유주의를 통해서 이를 극복하고자 했다. 자본주의의 ‘외부’를 자본주의화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는 제국주의와 닮은꼴이다. 하지만 중국과 인도까지도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돼 경제성장을 달성한 시점에서는 더 이상 ‘외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종언이 불가피한 이유다.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자동적으로 끝나진 않는다. 자본-국가에 대항하는 운동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한 번 ‘제국주의 전쟁’을 반복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 고진의 전망이다. “사람들이 주권자인 사회는 국회의원 선거가 아니라 데모에 의해 가능합니다”라는 고진의 메시지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13. 08.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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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시사IN(308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앤서니 보개트의 <무성애를 말하다>(레디셋고, 2013)를 읽고 적었다. 이 주제로는 처음 나온 책이라 관련자료들에 대한 정보도 요긴한데, 번역본에는 누락된 듯싶어 아쉽다. 원서의 보급판이 나오길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 무성애에 관한 또다른 읽을 거리로는 <보스턴 결혼>(이매진, 2012)이 있다...

 

 

시사IN(13. 08. 10) 또 하나의 커밍아웃

 

무성애? 궁금증과 함께 의문을 품으며 손에 들 만한 책이 앤서니 보개트의 <무성애를 말하다>(레디셋고)이다. 과문했던 것인가 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무성애란 성 범주가 등장한 게 2000년부터라고 하고, 2004년에야 최초의 방대한 표본조사가 이루어졌다. 개념으로서 무성애가 탄생한 것은 10여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에 이어서 제4의 성적 취향이라고 할 무성애는 과연 무엇이고 무성애자는 어떤 사람인가.


먼저 무성애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겠다. 저자에 따르면 “남성이나 여성, 혹은 양성 모두에 대해 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무성애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아니 모호하다. 무성애라고 해서 로맨스가 결여된 것은 아니며 성적 매력과 로맨틱한 매력은 다르다고 하기 때문이다. 섹스와 로맨스는 서로 관계가 있지만 불가분의 관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고 해서 신체적 흥분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성 경험 자체만으로는 어떤 사람이 무성애자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없다. 무성애를 결정하는 것은 성행위의 결핍이 아니라 욕망의 결핍이다.  


인간이란 종은 분명 유성생식에 의해 진화돼왔는데, 무성애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직 분명한 메커니즘이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뇌세포의 형성과정과 성적 취향이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무성애는 유성생식을 하는 다른 동물에서도 나타난다. 숫양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암양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숫양이 55.6%인데 반해서 암양과 숫양 어느 쪽에도 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무성애 숫양이 12.5%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성애 숫양(22%)보다는 낮지만 동성애 숫양(9.5%)보다는 높은 비율이다. 인간의 경우는 어떤가. 2004년의 조사로는 1%가 무성애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무시할 수 있는 비율은 아니다. CNN의 인터넷 여론조사에서는 약 11만 명의 응답자가 가운데 6%가 자신을 무성애자라고 답하기도 했다.


무성애자는 대략 70%가 여성이라고 한다.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여성은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낮아서 자위 욕구가 상대적으로 약하고 타인에 대해 지속적으로 성적 매력을 느끼는 빈도도 낮다. 또 성애에 대해 상대적으로 유연하기 때문에 남성보다 사회적‧문화적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발기는 명확한 반면에 질의 반응은 미묘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남성이 성애에 있어서 목표 지향적인 데 비해 여성의 욕망은 좀더 모호한 것도 관계가 있다.


이렇게 무성애자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 여러 가지 곤란한 질문과 맞닥뜨리게 된다. 무성애 남성은 이성애 남성보다 덜 남성적인가, 혹은 무성애 여성은 이성애 여성보다 덜 여성적인가 따위 질문이다. 대다수 무성애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남성, 여성으로 규정하지만, 대략 13% 정도는 남성 혹은 여성으로 규정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예 성애가 관심 밖의 일이기 때문에 동성애자들처럼 적극적으로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주장하지는 않지만' 정당한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한 무성애 운동도 생겨났다. 무성애 웹사이트 에이븐을 통해서 “자신을 발견했다”는 무성애자도 늘고 있다. 저자는 성적 소수자로서 무성애자의 권리에 대한 요구와 투쟁이 이제 막 시작된 것 같다고 말한다. 우리의 성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라면, 무성애는 인간 이해의 새로운 확장이자 도전이라 할 만하다.

 

13. 08.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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