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알라딘/북플 시스템에 시비 거는 반골 성향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다. 이러다가 서재의 평화를 무너뜨리는 '병신년' 문제아로 찍힐 것 같다. 개인적으로 ‘북플 친구’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친구 대신에 ‘이웃’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친구와 이웃. 의미상으로 유사한 점이 있지만, 엄연히 말하면 구체적으로 가리키는 대상이 다르다. 친구는 가깝게 사귀는 사람이다.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는 존재다. 이웃 역시 친근한 감정으로 만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이웃과 친구의 정의가 모호해진다. 그렇다면 국어사전을 뒤적여보자. 사전에서 나오는 ‘이웃’의 정의는 이렇다. 나란히 또는 가까이 있어서 경계가 서로 붙어 있는 것. 그래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는 이웃의 정의를 아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대체로 근린의식(近隣意識)을 갖는 범위의 사람이나 지역공동체를 뜻하지만, 이러한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이웃사촌이라는 말처럼 사회적 거리의 가까움도 포함된다. 그러나 이웃은 근린의식에 따른 친밀감으로만 연결되어 있지 않고 이웃이기 때문에 오히려 갈등관계에 있는 경우도 많다.

 

 

보통 이웃이라 하면 흔히 가깝고 친한 사이를 강조한다. 우리는 항상 이웃을 친구의 의미와 가깝게 사용한다. <응팔> 드라마의 ‘쌍문동 태티서’처럼 서로 언니, 동생하면서 마치 가족처럼 정겹게 지내는 이웃이 있다. 서로 말이 통하는 가족 같은 이웃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이 착한 이웃들은 어디로 ‘가’셨는지 주변에 족 같은 이웃이 많아졌다. 오늘날의 이웃은 먹고사니즘에 자유롭지 못해 아옹다옹 싸우면서 지내는 옆 사람일 뿐이다. 내 살 길 바쁘다 보니 서로 챙겨줄 여유도 없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이웃의 의미는 복잡하다. 단순하지 않다. 좋은 의미만 있는 것도 아니다. 친밀감을 느끼던 이웃의 심(心)지에 갈등의 불이 붙이는 순간, 피로를 유발하는 골치 아픈 이웃으로 돌변할 수 있다. 남북 대치 상황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이웃 간의 냉전 상황이다. 그동안 참고 지냈던 분노가 폭발하면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복수전으로 펼쳐진다. 층간 소음 전쟁이 일어난다.

 

 

 

 

 

 

 

 

 

 

 

 

 

 

 

 

 

 

 

 

 

 

 

알라딘/북플 친구가 100명이든 1,000명이든 여기서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숫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 영국의 인류학자 로빈 던바는 사회집단의 크기가 커질수록 그 모임을 유지하기 위해서 더 큰 두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뇌의 신피질이 클수록 교류하는 친구가 많아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던바는 적절한 친구 수로 150명을 제안했다. 이것이 바로 ‘던바의 수’다. 150명은 다소 많은 것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서로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를 느끼고 친교를 쌓아야겠다는 의무감을 느끼는 존재를 모두 합하면 이 정도는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말은 평균적인 수라고 하지만, 150명은 너무 많다. 솔직히 한 번 이상 만난 적 있는 200명의 전화번호가 있는 전화번호부를 가지고 있어도 실제로 안부 인사를 하는 사람이 열 명 넘을까 말까 한다. 진짜로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에게만 연락하게 된다. 연락이 뜸하고, 연락 횟수가 적은 친구일수록 그 사람이 뭐 하고 지내는지 관심이 없다. 알라딘/북플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알게 돼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면 몇 년 전부터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던 이웃 알라디너와의 관계가 소홀해진다.

 

영장류는 온종일 상대의 털을 매만진다. 털에 있는 기생충을 잡아낸다. 자, 내가 네 털에 있는 기생충을 잡아줬으니 너도 내 털 좀 만져 줘. 영장류는 털 고르기 행동으로 서로에게 보상을 주고받는다. 이러한 관계가 두터울수록 유대감이 형성되고 집단 내 동질감이 강화된다. 털 고르기를 거부하고 혼자 노는 영장류는 집단으로부터 외면을 받는다. 친하게 지낼 수가 없게 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친하게 지낼 수 없는 상대방을 멀리하고, 자신과의 친밀도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만나려고 한다. 이러한 사회적 인지력의 차이에 따라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의 숫자가 결정된다.

 

부족한 점이 많고, 늘 재미없는 책 이야기만 남기는 나를 좋게 봐주시는 이웃들이 정말 고맙다. 나는 보답의 차원으로 항상 로그인하고 이웃의 글에 ‘좋아요’를 누른다. 비회원 상태에서 ‘좋아요’를 누르면 서재 지수 합산이나 서재의 달인 선정 과정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친하게 지낸다고 해서 즐거운 기분이 한결같을 수만 없다. 언젠가는 사소한 갈등의 불씨 하나로 인해 서로에게 깊은 상처만 얻고 남남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예상치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을 각오하고 알라딘/북플에서 노는 중이다. 지나친 긍정은 독이다. 정이 많은 사람이 갈등과 이별의 순간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무기력한 시간 속에서 헤맨다. 행복한 만남이 있으면 아쉬운 이별이 있는 법. 이것이 바로 '이웃'이라는 이름의 사람들이 모여서 만나는 네트워크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 알라디너 유형에 관한 내용만 삭제했습니다. 내용이 너무나 주관적인데다가 알라디너 간의 위화감이 형성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서 삭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개인 사정으로 인해 블로그 답글을 확인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그분들의 상황을 헤아리지 못하고 안 좋은 쪽으로 표현했습니다. 제가 상대방을 함부로 재단하거나 평가하는 내용을 썼습니다. 앞으로 그러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또 한 번 이런 실수를 하면 혼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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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6-02-16 13:27   좋아요 2 | URL
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실수는 더더군다나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객관적이어야 할 역사조차도 사실은 힘 있는 자들의 주관적 시선이 들어가 있잖아요. 뉴스 기사도 방송사나 신문사의 입장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곳에 쓰여지는 글들은, 그래서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글에 공감하느냐 반박하느냐는 온전히 읽는 이들의 몫이 아닐까요?^^
알라딘의 이웃에 대한 주제를 던져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역할을 하셨습니다ㅎㅎ(사실 님의 글을 읽고 몇 달째 `대답없는 너`를 슬그머니 삭제하고 나름 후련해했다는ㅋㅋ^^;)

cyrus 2016-02-16 13:36   좋아요 1 | URL
다행히 제 생각에 반박한 분은 없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글을 수정한 것이 아닙니다. ㅎㅎㅎ

그래도 이런 글을 공개하면서 이웃분들의 진솔한 생각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나비종 2016-02-16 13:40   좋아요 2 | URL
이해합니다, 격하게 공감한 1인으로서ㅎㅎ
이런 주제를 던져주시는 것, 바람직합니다. 저도 덕분에 다른 분들의 생각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작은 독서토론의 장이 연상되었습니다~^^

alummii 2016-02-16 16:45   좋아요 1 | URL
저도 대답없는 너...에 격하게 공감했는데요 뭘ㅎㅎㅎ 오늘 저도 친구 정리 좀 하고 와써요.... 쓰읍ㅋㅋ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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