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요하네의 우산
김살로메 지음 / 문학의문학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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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곳에서라면 어디에나 있는 ‘관계’. 그 다양한 맥락 속에 거짓과 위선, 희망과 진실이 한데 엉킨 삶의 모습이 있다. 김살로메의 소설집 《라요하네의 우산》에는 관계 맺기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인간 사이의 관계 맺기는 이 소설에서 중요한 핵심이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서로의 상처를 캐고 보듬는 가운데 얻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이 작품은 보여준다. 관계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은 운명적으로 자신의 타자가 된다. 작가는 “내 안의 위선과 진실, 내 안의 악마성과 순진성 사이에 소설이 존재”[1]한다고 말한다. 이런 이중성 때문에 일상의 삶은 흔들리고 부서진 것이 되며, 때로는 그것마저 실재감을 잃어버린 환상으로 빠져들기도 한다. 타인과의 관계 맺기 역시 불모와 불가능, 변질로 끝나기 십상이다. 자아의 정체성이든, 타자와의 관계든 거기에는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일’[2]이 깃들여 있다. 그럼에도 작가는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일’을 공감하고 탐색하는 자세가 삶을 구성하는 능동적인 힘임을 믿는다.

 

『알비노의 항아리』의 주인공들은 빙 둘러 가는 접촉을 통해 힘겹게 관계 맺고 있다. 남편과 아내는 너무 다르다. 남편은 굳건한 일상의 틀을 지키면서 평범하게 살아가지만, 아내는 피부와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는 알비노(Albino)라는 희귀 질환을 겪고 있다. 이 병의 원인에 대해 사람들의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아내는 태어날 때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선입견 속에 살아간다. 일상의 세계는 인간끼리의 접속이 힘들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 아내의 소변을 정력제로 확신하는 남편의 어머니는 말해지지 않은 부부 사이 마음의 틈을 점점 벌어지게 한다. 언제 깨질지 모른다. 아무리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만 언제 깨질지 모른다. 그러나 마침내 부부는 서로 참다운 사랑을 확인함으로써 합일될 수 있는 관계에 도달한다.

 

『암흑 식당』은 자신에게 부과된 강제적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욕망을 보여준다. 우리 자신들이 모순적으로 겪고 있는 내면적 그늘을 남다르게 포착해내는 깊이를 내보이고 있다. 암흑 식당은 형상이 유발하는 선입관과 현혹이 완전히 차단되는 장소다. 그래서 지겨운 일상에서 눈을 돌려 암흑 식당 안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는 은밀해서 달콤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의 가면을 벗기 위해 진짜 가면을 쓴 암흑 식당 손님들의 기이한 관계 맺기는 타인의 욕망 대상이 된다. 섹스는 이성적 합일을 완성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체험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섹스조차도 그토록 열망한 사랑의 확인이 아니라 현대인의 불행을 보여준다.

 

작가는 『라요하네의 우산』에서 불안한 인간의 내면을 무심하게 드러내면서 동시에 조각난 사건들을 보여주면서도 어떤 가능한 자기만의 세계를 그려낸다. 소설의 등장인물 샌드리는 시메트리(symmetry) 증후군에 시달린다. 그녀는 ‘균형’이라는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고 그 이미지의 압박감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이 소설에서 언급되는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은 샌드리가 자신의 삶 속에 묻혀 있는 상처를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자기 앞의 생》은 합리적인 우리 삶의 심층에 자리 잡은, 남모르게 앓고 있는 고통에 주목하는 문학 고유의 영역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평범하게 보이는 일상적 관계의 뒷면에는 잊힌 상처가 있다. 그것은 선천적으로 기형적인 육체의 아픔일 수도, 인간 사이에서 주고받는 고통의 기억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두는 상처라는 이름으로 서로 소통할 수 있다. 《라요하네의 우산》의 매력은 요란스런 사건의 전개 대신 일상생활 속 아픔과 극복 과정을 잔잔한 어투로 복원해 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정신적 상처와 결핍의 모습은 생활을 통해 간간이 새어 나오는 슬픔이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상대방에게 속이지 않고, 또 자신을 속이지 않고, 자신의 나약함을 상대방의 결점을 그대로 받아들여 이해하고 안아줄 수 있는 것. 그것이 이 소설집에서 확인할 수 있는 상처 치유력을 가진 정신적 약재들이다. 관계의 어긋남에서 비롯된 상처란 다시 관계 속에 던져져야만 진실하게 아물어 갈 수 있다.

 

 

 

 

[1] 작가의 말, 317쪽

[2] 『라요하네의 우산』 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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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2-03 1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럼요..관계함으로써 상처가 없을 수가 없죠..서로 생채기를 내고..다시 보듬고..그래서 아물고 ...그러므로써 관계가 더 단단해져야하거든요..문제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이거 없다면 관계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니까요. 가급적이면 서로가 상처를 주고 받기보다는 위로와 헌신과 희생으로 오고가면 더 좋겠지요.....

cyrus 2017-02-03 17:13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면 감정이 상하는 일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살면서 겪어야 할 일입니다. 서로 간에 감정이 다치지 않도록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정말 중요합니다. 이게 안 되면 어렵게 맺은 관계를 회복하기 어려워요.

페크pek0501 2017-02-03 15: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고통스럽거나 부끄러운 일’이 나만의 경험이 아니고 다른 누구도 겪은 일이라는 걸 확인할 때 위로가 됩니다. 그래서 요즘 공감하는 친구가 참 필요한 거구나, 친구 없는 사람은 외롭겠구나, 생각하게 되어요.
제일 듣기 싫은 말 중 하나는 ‘복에 겨워 그러는거야.˝라는 말이에요. 같은 일이라도 사람에 따라서 느끼는 강도가 다름을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 모두요...

cyrus 2017-02-03 17:16   좋아요 0 | URL
오늘 본 인터넷 뉴스 내용인데요, 30대 이후부터 친구 수가 줄어든다고 합니다. 저도 20대 후반을 살아오면서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나를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친구가 소중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2017-02-03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03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04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04 1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살다 살다 내가 라이트노벨을 읽게 될 줄이야. 크툴루 신화 아니었으면 냐루코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소라 만타(あいそら まんた)의 《기어와라! 냐루코 양》(약칭 ‘냐루코 양’)이 정말 재미있어서 애니메이션까지 찾아봤다.

 

 

 

 

고등학생 시절에 밤 새면서 만화를 본 적이 있었다. 지금은 어린이용 만화 전문 케이블 채널이 되어버렸지만, 옛날 '투니버스' 리즈 시절에 해주던 만화들이 참 재밌었지... (아련) 십 년 전 만화를 푹 빠졌던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나서 좋았다. 다만, 잠을 미루면서까지 만화를 보게 되니까, 다음 날 아침을 맞이할 때 피로감이 잔뜩 몰려왔다. 이래서 학창 시절이 좋은 거다.  

 

《기어와라! 냐루코 양》은 아이소라 만타의 데뷔작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가장 뛰어난 신인 라이트노벨 작가에게 주는 ‘GA문고대상 우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비록 대상에 오르지 못했으나(이때 대상 수상작은 없었음) 《냐루코 양》은 첫 번째 GA문고대상 수상작으로 기억되기에 충분하다.

 

 

 

 

 

 

 

 

 

 

 

 

크툴루 신화를 소재로 한 작품치고는 상당히 가벼우면서도 지나치게 유쾌하다. 작품의 장르는 코미디다. 작가는 농담으로 《냐루코 양》의 장르를 ‘러브크래프트 코미디’라고 밝혔다. 음울하고, 절망적인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생각하면, 이걸 코미디물로 패러디한 작가의 패기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냐루코 양》을 GA문고대상에 응모했을 때 원제가 ‘꿈을 꾸면서 기다리노니(夢見るままに待ちいたり)’였다. 이 말은 크툴루(Cthulhu)를 소환할 때 부르는 주문이다.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의 부름』(《러브크래프트 전집 1》 수록)에 나와 있다.

 

 

Ph'nglui mglw'nafh Cthulhu R'lyeh wgah'nagl fhtagn

(픈글루위 미글와나프 크툴루 리예 와그나글 프타근)

 

리예에 있는 집에서 죽은 크툴루가 꿈을 꾸며 기다리고 있다.

 

리예 : 크툴루가 잠들어 있다는 (가상) 도시

 

 

신인 작가의 데뷔작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독자의 마음을 어떻게든 사로잡으려고 하는 티가 난다. 그래서 조금은 억지스럽고 어설픈 면이 있다. 사실 《냐루코 양》에도 신인 작가로서의 과욕이 넘쳐흐른다. 인물들 간의 대사는 크툴루 신화뿐만 아니라 유명 일본 만화, 영화, (일본)가요 등을 시도 때도 없이 패러디하는데 보는 이를 혼돈 속으로 밀어붙인다. 내가 이 표현을 일부러 과장한 게 아니다. 작가가 패러디한 것을 따로 정리하려면 책 한 권으로 부족할 수 있다. 패러디와 관련된 배경지식 없이 만화를 보게 되면 ‘일본인 출신 덕후’가 아닌 이상 인물이 내뱉는 사소한 말 한마디와 특별한 행동이 패러디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냐루코 양》을 라이트노벨로 읽든, 만화로 보든 적어도 크툴루 신화는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크툴루 신화가 뭔지 모른 채 《냐루코 양》을 보면 산만한 코미디물처럼 느껴질테고, 크툴루 신화를 이해한 뒤에 《냐루코 양》을 보게 되면 ‘러브크래프트 코미디’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냐루코 양》의 여주인공 냐루코(ニャル子)는 니알라토텝(Nyarlathotep)을 모티브로 한 인물이다. 냐루코라는 이름은 니알라토텝의 일본식 발음 ‘냐루라토호테프’에서 유래되었다. 냐루코는 우주에서 활동하는 행성보호기구 소속 요원(우주 수사관)이며 ‘니알라토텝 성인(星人)’이다. 그러니까 냐루코는 니알라토텝이 아니라 ‘니알라토텝의 성질을 가진 외계인’이다. 냐루코의 트레이드 마크인 회색빛 아호게(アホ毛, 우리나라에서는 ‘바보털’로 알려져 있음)는 니알라토텝의 거대하고도 뾰족한 촉수를 떠올린다. 냐루코는 우연히 지구에서 외계조직을 무찌르는 과정에서 야사카 마히로(やさか まひろ)라는 소년에 한 눈에 반해버린다. 지구에 남아서 일을 한다는 핑계로 마히로의 집에 얹혀살면서 마히로에게 직설적으로 애정 공세를 펼친다. 그러나 마히로는 냐루코의 지나친 구애를 부담스러워한다.

 

《냐루코 양》은 '하렘물'이다. 즉, 남자 주인공 한 명이 여러 명의 여자 인물들에게 둘러싸여 산다는 줄거리로 구성되었다. 마히로의 집에는 냐루코뿐만 아니라 쿠우코(クー子), 하스타 군(ハスター君)도 살고 있다.

 

 

 

 

 

 

 

 

 

쿠우코는 불의 속성을 가진 ‘크투가(cthugha) 성인’이다. 크투가는 러브크래프트의 후계자이자 지금의 크툴루 신화를 창조하는 데 기여한 어거스트 덜레스(August William Derleth)의 작품에 등장하는 존재이다. 크투가는 땅의 지배자 니알라토텝과 천적 관계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쿠우코는 냐루코를 좋아하는 ‘변태’ 백합(Girl’s Love) 기믹으로 등장한다. 냐루코도 마히로에 접근할 때 섹드립을 날리는 편인데, 쿠우코는 이보다 더 심하다. 하지만 이미 마히로에게 푹 빠진 냐루코는 자신의 천적이나 다름없는 쿠우코의 애정을 단호히 거부한다.

 

 

 

 

 

 

 

 

 

 

 

하스타 군은 바람의 지배자 ‘하스터(Hastur) 성인’이다. 하스터는 플레아데스 성단에 위치한 세라에노(Celaen)라는 행성을 지배한다. 그래서 하스타 군의 직업이 작중에서 세라에노 도서관 사서로 소개됐다. 하스타 군은 소녀 같은 귀여운 소년 이미지로 등장하는데, 마히로를 좋아한다. 그를 얼마나 좋아하면, 하스타 군은 자기가 직접 마히로의 아기를 낳고 싶다고 말할 정도다. (도대체 이 녀석의 성 정체성이 뭐냐?)  

 

 

 

 

 

 

 

 

 

 

 

 

 

 

 

 

 

 

 

장 널리 알려진 하스터의 생김새는 노란 로브(robe, 무릎 아래까지 오는 긴 가운)를 두른 인간의 형태이며 ‘옐로 사인(Yellow sigh)’이라는 이름의 표식을 들고 다닌다.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의 소설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자』(《러브크래프트 전집 2》 수록)에서 하스터를 처음 언급했지만, 사실 지금의 하스터를 있게 해준 결정적인 작품이 바로 로버트 체임버스(Robert Williams Chambers)의 소설집 《노란 옷의 왕》(우리나라에서는 ‘노란 옷 왕 단편선’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됐다)이다. 러브크래프트는 체임버스의 소설에서 하스터를 창조하는 데 필요한 영감을 얻었다.

 

 

 

 

 

 

 

 

 

 

 

 

 

 

 

 

 

 

 

《냐루코 양》를 보다 보면 패러디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크툴루 신화와 관련된 재미있는 대사와 장면을 발견하면, 웃음이 안 나올 수가 없다. 라이트노벨과 만화를 보기 전에, 《도해 크툴루 신화》(AK커뮤니케이션즈, 2010년)와 《크툴루 신화 대사전》(AK커뮤니케이션즈, 2013년)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특히 《크툴루 신화 대사전》은 《냐루코 양》에서 패러디되었거나 인용된 크툴루 신화의 개념이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의 전체 제목이 ‘게임 · 애니메이션 · 라이트노벨 마니아들을 위한 크툴루 신화 대사전’이다. 《냐루코 양》을 덕질하기에 유용한 참고서다.

 

 

 

※ 제목의 유래 : 후시미 츠카사(伏見 つかさ)의 라이트노벨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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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7-02-02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툴루 신화는 생소하네요. 러브크래프트 덕후다우십니다. ^^

cyrus 2017-02-03 12:29   좋아요 0 | URL
제가 판타지 분야의 소설을 잘 안 읽습니다. 톨킨의 소설도 안 읽어봤어요. 크툴루 신화는 제가 유일하게 관심 있는 판타지물입니다. ^^

꼬마요정 2017-02-02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브크래프트가 만든 크툴루 신화와 그를 계승하는 작가들... 멋집니다. 모르는 것도 없으십니다~~^^

cyrus 2017-02-03 12:32   좋아요 0 | URL
외국의 러프크래프트 덕후들에 비하면 많이 모자릅니다. ^^;;

뽈쥐의 독서일기 2017-02-03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허허 글쓴 사람이 누군지 두번세번 봤어요..ㅎㅎ
새로운 취향을 존중해드립니다!

cyrus 2017-02-03 17:26   좋아요 0 | URL
이제 독서 취향을 조금씩 바꿔보려고요. 변화를 주고 싶습니다. ^^

레삭매냐 2017-02-03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나 취향이 다양하시다는 -

cyrus 2017-02-03 17:27   좋아요 0 | URL
선호하는 취향이 많을수록 좋은 것 같습니다. ^^;;
 
개소리에 대하여
해리 G. 프랭크퍼트 지음, 이윤 옮김 / 필로소픽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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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의도적으로 상대를 속이려는 게 아니라면 말과 글을 제대로 가리는 게 배운 사람의 도리다. 애써 말과 글을 깨우치는 목적이 그렇다. 어설픈 지식을 뽐내고자 함이 아니다. 사리를 제대로 분별하기 위함이다. 이제 학사 학위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만큼 배운 사람이 차고 넘친다. 그런데 말과 글의 오용이 차고 넘쳐 외려 사람을 짐승보다 못하게 만드는 세상이 되었다.

 

 

 

 

 

가장 저급하게 오용된 말과 글은 한마디로 ‘개소리(Bullshit)’라고 할 수 있겠다. 국어사전에서는 개소리를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조리 없고 당치 않은 말’을 저속하게 부르는 말로 정의하고 있다. 형태와 소리는 글이고 말이겠으나 그것은 개 짖는 소리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 철학자 해리 G. 프랭크퍼트(Harry Gordon Frankfurt)는 개소리와 거짓말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개소리가 얼마나 위험한 말인지 진지하게 분석한다. 그가 쓴 책 《개소리에 대하여》의 요점은 진리 또는 진실에 무관심한 사람일수록 헛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주필이 운영하는 인터넷 팟캐스트 ‘정규재 TV’와 단독 인터뷰를 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 사과에 대해서 이런 충고를 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그냥 사과를 하면 안 된다. 그냥 잘못해도 버텨야 한다.”[1]

 

 

대국민 담화를 통해 사과한 대통령에게 ‘잘못해도 버텨야 한다’라고 충고한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대통령은 순진하게 이 말 한마디를 믿고 있다. 그리고 검찰과 특검 수사로 밝혀진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모든 범죄행위를 부정했다. 모든 탄핵사유를 인정 못 하는 것은 물론이고, 촛불 민심 자체도 부정하고 나섰다.

 

 

“국민들께서 응원을 해주시는 것에 대해서 제가 힘들지만 그 힘이 납니다.”

 

“오붓한 분위기에서 즐거운 명절 보내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2]

 

 

대통령이 자신을 응원해준다고 믿는 ‘국민’이란 누굴까? 설마 돈 받고 친박 집회에 모인 박사모?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2016년 11월부터 대통령의 지지율은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아무리 무너져도 쉽게 무너지지 않은 유일한 희망인 ‘콘크리트 보수층’이 건재해도 대다수 국민의 뜻을 철저히 무시하는 대통령의 인식은 문제가 있다. 특히 명절 인사는 아예 가관이었다. 석 달 동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사회가 혼란스럽고 경제마저 팍팍해서 국민은 분노하는데 대통령은 천하 태평한 소리를 했다. 이 판국에 국민의 ‘분노’를 한가하게 ‘걱정’과 ‘루머’로 치부해 버리는 상황인식은 정말이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정말 심각하게도 대통령은 현상을 분별해서 인지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정규재 주필은 대통령이 ‘여전히 총기가 있는 분’이라고 아부성 발언을 했는데, 그의 말은 거짓말이라기보다는 대통령의 ‘개소리’를 대단하게 받아들이거나 쉽게 분간하지 못하고 있다. 거짓말은 의도적으로 진실을 왜곡한다. 정 주필은 크게 떨어질 대로 떨어진 대통령의 인지도를 다시 올리기 위해서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을 직접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해서 크게 문제 삼고 싶지 않다. 다만, 대통령의 직무유기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는 정 주필의 태도가 훨씬 심각하다. 그는 대통령의 ‘개소리’를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개소리하는 사람이나 개소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나 둘 다 공통으로 자기반성의 능력이 약하다.

 

프랭크퍼트는 사람들은 거짓말에 분노를 일으키거나 비판을 하는 반면에 개소리는 관대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저자는 사람들이 개소리를 거짓말보다 관대해지는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이것을 우리 독자들을 위한 연습문제로 남겨뒀다. 사실 나는 거짓말과 개소리를 구분하는 프랭크퍼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실에 무관심하거나 진실 앞에서 미적거리는 반응이 거짓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똥이니 된장인지 구분하는 아이들도 개념과 상식을 집에 놔둔 채 내뱉는 공인의 개소리에 분노할 줄 안다. 그래서 우리는 어이없고, 주먹을 부르는 개소리를 ‘망언’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이 정치 분야에만 있겠는가. 양심을 저버리면서까지 불편한 진실 앞에 눈감은 언론인과 지식인들, 장병이 된 대한민국 청년들을 ‘나라의 아들’로 치켜세우면서 병들거나 다치면 온갖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회피하는 군대. 더 열거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1] [2] 다섯 가지로 추려본 박 대통령 인터뷰 ‘문제의 발언’ (JTBC, 2017년 1월 26일)

 

※ 글 제목의 유래 : “야!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하라!” (링크 참고: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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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17-02-02 1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발 다음엔 말과 글을 바로 쓸 수 있는 사람이 국가 원수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cyrus 2017-02-02 19:19   좋아요 0 | URL
말을 똑바로 하고, 글을 잘 쓰고, 이 언어들을 실천으로 잘 옮기는 국가 원수를 보고 싶습니다.

캐모마일 2017-02-02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제가 요즘 고민하는 문제였고 전에 한번 회원분의 서평을 읽고 넘어갔는데, 오늘은 가려운 등을 누가 긁어준 기분이 듭니다. 그만큼 제목과 서평에 공감이 가네요. 요즘 시국은 두말할 것도 없고 개인적인 주변에서 왜 이렇게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아는 것인양 두루뭉술하게 말하고, 진짜 자기가 그렇게 믿어서 말하는건지 임시변통으로 둘러대는건지 사람들과 대화할 때 답답한 적이 많아서

캐모마일 2017-02-02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럴까 안타까웠습니다. 스스로도 많이 돌아보게 됐구요. 주제가 시국과 어울리고 개인적으로도 놀랐습니다. 좋은 서평 읽고 갑니다.

cyrus 2017-02-02 19:25   좋아요 2 | URL
캐모마일님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밖에 나가면 개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죠. 특히 정치나 페미니즘을 주제로 대화를 나눠 보면 답답한 사람들을 보게 되죠. 여기 온라인 공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역시 진리를 알고 있는 것처럼 글을 썼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가 제가 잘못한 사실을 알린다면 그 잘못을 인정하여 바로 잡고 싶습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이런 대화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해피북 2017-02-02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순실이 억울하다며 고성을 지르는거나 아직까지도 자신을 지지해주는 국민이 있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대통령이나 사람의 마음이란게 얼마나 단단하면 저렇게까지 버티고 할 수 있는지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요즘 어른들은 툭하면 최순실도 그렇게 뻔뻔하게 하고 사는데 너희는 왜 그렇게 못하니 좀 세상을 뻔뻔하게 살어 라는 말씀 자주하셔요. 그래서 우스겟소리로 모든 이야기는 순실이로 끝난다고 하죠. 무튼 저도 시원한 글 잘 읽고갑니다^~^

cyrus 2017-02-02 19:51   좋아요 0 | URL
더 웃긴 건 여자 배구 선수가 올스타전에서 최순실 패러디했다고 그녀를 ‘좌빨‘이라고 비난한 사람들입니다. 그 선수는 최순실 패러디를 자발적으로 준비한 것이 아니라 올스타전을 주관한 배구연맹이 선수에게 하라고 지시했을 뿐입니다. 그냥 웃고 넘기면 될 일을 이념의 색안경으로 보는 사람들이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개소리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아요. ^^;;

2017-02-02 1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02 19:59   좋아요 0 | URL
둘 다 나쁘지만, 그래도 가장 나쁘고 위험한 부류가 후자입니다. 기회주의자들입니다.

꼬마요정 2017-02-02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철판입니다. 반성하고 자중하지 않아 다행입니다. 한 푼어치의 동정도 아깝습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인 줄도 몰랐습니다ㅠㅠ

cyrus 2017-02-03 12:33   좋아요 0 | URL
네. 죗값을 받아도 용서하고 싶지 않습니다.

레삭매냐 2017-02-03 1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지부조화와 자기합리화를 원없이 보고 있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나요.

비정상이 정상을 대신하는 현실이 초현실적입니다 정말로.

cyrus 2017-02-03 17:28   좋아요 0 | URL
비정상적인 생각과 언행을 하는 지도자를 여전히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초현실적입니다. 가면 갈수록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아주 친밀한 폭력 - 여성주의와 가정 폭력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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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역에서 지금도 10분에 한 명꼴로 매 맞는 아내들이 계속 생기고 있다. 넓은 의미의 ‘아내 폭력’ 즉 언어와 정서적 폭력(욕설, 혐오 발언, 위협 등), 성적 학대까지 포함할 경우 더 커지리라 생각된다. ‘아내 폭력’의 문제를 더 이상 남의 일로만 치부할 수 없다. 결국 ‘아내 폭력’에 대한 우리의 안일한 생각이 폭력의 악순환을 더욱 부추기기 때문이다.

 

흔히 폭력을 쓰는 남편은 심리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가정 폭력 전문가들은 남편이 분노의 충동을 잘 조절하지 못해 자신의 좌절감과 스트레스를 손쉬운 가족 구성원에게로 향한다고 주장한다. 만만한 대상을 찾아 그 대상에게 자신의 상처(분노나 좌절감)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해소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내 폭력’은 단순히 분노조절 능력 결여로 생기는 형태가 아니다. 남편은 폭력이라는 수단을 통해 가장으로서의 권력과 통제의 힘을 드러내겠다는 무의식적 소망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남편은 자신이 가정 내에서 주도권을 확실히 가지고 있다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폭력 남편은 자신의 행동이 심각한 ‘범죄’로 인식하지 못한다. 폭력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일은 아내를 통제하기 위한 가부장제의 의무다.

 

폭력 남편을 처벌하는 과정에서 가해자로서의 인권 보호에 대한 주장이 끊이지 않는다. 고소당한 ‘아내 폭력’ 가해자들의 입장은 이렇다. 아내를 때리지 못하게 하는 법의 개입이 가정을 파괴할 수 있고, 남편의 권리를 무시한다. ‘아내 폭력’뿐만 아니라 성폭력 사건의 원인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고, 왜 가해자의 입장(또는 인권)을 존중하는 이유는 뭘까? ‘아내 폭력’을 피해 정도가 심한 ‘부부싸움’으로 인식하면, 남편 폭력의 심각성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심정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렇게 말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내 폭력’을 “아내가 맞아도 싸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가장인 남편이 가정을 다스리는 차원에서 어쩌다 폭력을 쓰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남편의 폭력으로 사망하는 아내들이 있다. 그녀들의 죽음이 어쩌다 일어난 과실치사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아내들은 죽음의 위협 속에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피해 아내들은 폭력이 두려워 남편의 비위를 최대한 맞추려 한다. 자신 스스로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데서 오는 무력감, 짓밟힌 자존심, 자녀들 앞에서의 수치감 등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한다.

 

피해 아내들이 폭력 남편과의 이혼을 망설이는 가장 주된 이유가 ‘자녀 문제’이다. 아이들로부터 아버지를 빼앗는다는 죄의식과 아이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때리는 남편을 쉽게 떠나지 못한다. 정희진은 남편에게 맞고 사는 아내 자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체면 문화’가 ‘아내 폭력’ 피해자들을 보호하지 못하게 하는 또 다른 원인으로 꼽았다. 이혼하는 여성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선입견이 차츰 사라지고 있으나 여전히 ‘아내 폭력’으로 이혼하는 여성에 향한 선입견은 피해 아내들의 발목을 잡는다. 이혼 뒤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가정을 파탄하게 한 여성’으로 비난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아내 폭력’의 실태는 가부장제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반영한다. 남편이 가장으로서 모든 식솔을 통제하고, 그 가장의 권위에 도전할 때 가차 없이 주먹을 휘두르는 일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은폐된다. 여성의 몸이 남성의 소유라는 인식 때문에 여성 폭력은 범죄로 인식되기 어려웠다. ‘아내 폭력’ 피해자들이 당한 고통을 고통 그 자체로 감싸 안지 못하고, 아내로서의 자격상실 문제로 받아들이는 논리 속에 함축된 의미는 위험하다. 혈연 및 부계 중심의 가족에 익숙한 사람들은 가정의 외형의 틀이 유지되면 가정을 지키는 것이고, 그 틀을 해체하는 것이 가정파괴라고 믿는다. 가정 유지가 여성으로서의 인권이 폭력에 희생된 아픔보다 우선해도 좋다는 것을 은연중에 지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정말 무서운 일이다. 가정은 일상생활을 오랫동안 같이 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타인의 시선이나 힘이 미치기 어려운 그 공간이 폭력적일 때 개인이 받는 상처는 더 깊고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만들고 지켜야 할 가정은 육체적 · 정신적으로 폭력적이지 않고 가족 구성원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있다. 평화로운 가정을 만드는 데 기여한 아내를 상처 입히고, 그 가정마저 파탄시킨 남편은 마땅히 처벌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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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2-01 21: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일 찌질한 놈이 자기 와이프에게 폭력 쓰는 놈입니다.그런 놈은 또 강자에겐 비굴하게 굴거든요.

cyrus 2017-02-02 10:19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아내를 대놓고 무시하는 태도도 싫습니다. 이런 사람은 아내가 자신을 타일러도 크게 언짢아합니다.

푸른희망 2017-02-02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스에서 읽다가 일단 멈추고 집에서 천천히 읽었습니다.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폭력이 왜 자꾸 반복될까요?

cyrus 2017-02-03 12:36   좋아요 0 | URL
‘가정폭력‘ 문제를 아내 탓으로 돌리는 잘못된 인식이 사라져야 합니다. 가해자와 제3자가 피해자에게만 폭력 문제의 책임을 떠넘기면 법적 처벌이 약해집니다. 그래서 ‘가정 폭력‘이 비일비재합니다.
 

 

 

어제 알라딘 사이트에 접속 장애가 있었습니다. 책을 검색하는 데 로딩 시간이 좀 오래 걸렸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오류 메시지가 떴습니다. 그 날 바로 고객센터에 문의했는데요, 알라딘 고객센터 측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고객센터 직원이 접속 장애의 원인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설 연휴 이후로 사이트에 접속한 방문자 수가 갑자기 많아지는 바람에 기존의 서버가 감당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알라딘 서버 상태가 영 좋지 않아서 글 쓰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습니다.

 

 

 

 

 

퇴근하자마자 새로 알게 된 서점으로 향했습니다. ‘글수레라는 중고 책 전문 서점입니다. 서점 이름이 정말 예쁩니다. 태전삼거리를 지나 운전면허시험장사거리에 가면 서점을 금방 찾을 수 있습니다.

 

 

 

 

 

 

 

중고 책이라는 글자가 적힌 간판이 보입니다. 문 앞에 소포로 포장된 책들이 놓여 있습니다. 손님들이 주문한 책들입니다. 서점에 전화해서 원하는 책이 있는지 확인하고, 주문할 수 있습니다. 아동용 전집 같은 양이 많은 책을 팔 때 직접 가지고 오는 것보다 서점 사장님에게 전화하는 것이 편리합니다. 그러면 사장님이 직접 방문하여 그 자리에서 책을 매입합니다.

 

서점 안에 들어가면 왼쪽에 아동용 도서가, 오른쪽에 성인 독자들을 위한 단행본이 꽂혀 있습니다. 포털사이트에 대구 글수레를 검색하면, ‘글수레를 소개한 블로거의 글을 볼 수 있는데요, 서점 내부 전체를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책 상태는 깨끗한 편이었습니다. 책에 낙서가 있는 경우, 사장님은 작은 포스트잇 종이에 낙서가 있다는 사실을 적어 책 표지에 붙입니다. 이 정도면 알라딘 중고매장 뺨치는 수준입니다. 알라딘 중고매장에 팔기 힘들어 보이는 책도 몇 권 보였습니다. 이곳에 책을 팔아본 적이 없어서 서점 사장님의 매입 기준을 잘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책 상태가 비교적 좋으면, 출간연도가 꽤 오래된 책도 매입할 것 같습니다.

 

 

 

 

두 시간 동안 서점을 이리저리 둘러본 결과, 사고 싶은 책이 열 권 넘었습니다. 그중에 소장할 가치가 있는 책들을 골랐습니다. 헌책방이나 중고 책 서점에 가면 책을 고르는 우선 조건이 구하기 힘든 절판본입니다. 이곳에 제가 원하는 책들이 몇 권 발견했지만, 가격이 정가보다 비싸게 매겨져 있어서 아쉬운 입맛만 다셨습니다. 참고로, 서점에 법정 스님의 책 두 권 있었습니다. 두 권 모두 이미 구입한 것이었습니다. 한 권은 만 원 조금 넘었고, 다른 한 권은 만 원 이하의 가격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비싼 편은 아닙니다.

 

 

 

 

 

 

 

 

서점 출입문 오른쪽, 사장님이 앉아있는 계산대 위에 명함이 놓여 있습니다. 책을 파실 생각이 있으신 분이라면 서점에 방문할 때 명함을 꼭 챙기세요. 서점 영업 종료 시간은 오후 9시입니다.

 

 

 

 

 

 

어제 글수레에서 구입한 책들입니다. 예상보다 좋은 수확이었습니다. 네 권 모두 합한 구매 가격은 15,400원이었습니다. 프랑스의 문학평론가 조르주 풀레(Georges Poulet)프루스트적 공간과 존재의 변증법(동인, 1994)의 발견은 의외였습니다. 이 책은 알라딘, 교보문고, YES24, 심지어 네이버 책 정보에도 없습니다. 이 책은 프루스트적 공간존재의 변증법이라고 역자가 이름 붙인 발췌문을 번역한 것입니다. 프루스트적 공간1963년에 발표된 ‘L'Espace proustien’를 완역한 것이고, 존재의 변증법은 'Études sur le temps humain'의 표제 프루스트’를 발췌, 번역한 것입니다.

 

장 뤽 다발의 사진예술의 역사(미진사, 1991)는 낙서가 조금 있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고르니까 사장님이 책에 낙서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대답했습니다. 알라딘에는 초판 출간 연도가 1999년으로 되어 있는데요, ‘1991으로 수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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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2-01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스펙트럼 시리즈 또 한 권 겟~ 하셨네요^^
조르주 풀레 책은 저도 보고 싶네요. 웬만한 도서관에도 없는! 정말 득템~ 지만지에서 나온 조르주 풀레 <비평적 의식>도 읽어볼 만한 책이겠더군요.
80년대야 그렇다치고 90년대 책도 희귀책에 들어가는 건 한국 출판시장의 열악한 환경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cyrus 2017-02-01 16:40   좋아요 0 | URL
운이 좋았어요. 서점에 문지 스펙트럼 두 권이 있었습니다. 모옌의 <붉은 수수밭>과 발레리의 <말레르메를 만나다>였습니다. 원래 두 권을 살려고 했었는데, 모옌의 소설이 완역본으로 나왔기 때문에 발레리의 책만 구입했습니다. 발레리의 책을 읽기 위해서 문지에 나온 말라르메의 <시집>도 사야할 판입니다. ㅎㅎㅎ

교보문고나 예스24는 검색되지 않은 책을 등록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 거로 압니다. 알라딘도 이런 기능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책을 읽었는데, 미등록 도서라서 ‘마이리뷰’로 쓰지 못하는 상황이 답답합니다. ^^;;

2017-02-01 1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01 16:45   좋아요 0 | URL
어제 알라딘 웹사이트는 먹통이었고, 북플은 아무 문제없었던 점이 불만스러웠습니다. 고객샌터 직원이 어제 저녁에 서버량을 늘리겠다고 했는데, 그 이후로 원 상태로 복구된 것 같습니다. 사실 명절 기간에도 알라딘 서버 상태가 이상했습니다. 특히 모바일로 ‘알라딘 중고 매장’에 책을 검색했는데, 특정 지역 매장에 판매되는 책만 찾는 기능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오류 현상 때문에 데이터가 날라갔습니다... ^^;;

stella.K 2017-02-01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화로 그 책이 있는지 알아 볼 수도 있다니 아날로그적이네. 칠판 입간판도 그렇고. 구석을 살피는 거 보니 역시 헌책방 고수네.^^

cyrus 2017-02-01 16:47   좋아요 0 | URL
일요일에 심심해서 ‘대구 헌책방’으로 검색하니까 글수레 서점을 방문한 블로거의 글 세 편을 발견했어요. 첫 번째 글이 작년 10월에 작성되었으니까 생긴 지 얼마 안 된 것 같아요. ^^

:Dora 2017-02-01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틀비가 되고 싶다.. ㅡㅡ;˝

cyrus 2017-02-01 20:22   좋아요 0 | URL
가끔 바틀비처럼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

고양이라디오 2017-02-01 18: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르는 저자의 모르는 책들이라 어렵게만 보입니다ㅎㅎ 역시 헌책방 고수, 책 고수시군요! 좋은책 발견하셨다니 축하드립니다^^

cyrus 2017-02-01 20:28   좋아요 0 | URL
운이 좋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독서 문화가 빈약한 이 땅에 살고 있는 애서가 선배들이 아니었으면 헌책방을 방문하면서 책 사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을 겁니다. 그분들이 남긴 기록들, 리뷰나 헌책방 방문기 같은 글들을 보면서 책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습니다. 유익한 정보는 널리 알리면서 공유해야 합니다. ^^

2017-02-27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뿔레의 변증법 책은 저도 논문때문에 구하려고 했던 책인데 어디에도 없더군요. ㅜㅜ

cyrus 2017-02-28 13:08   좋아요 0 | URL
문학 관련 분야를 공부하셨군요. 원서마저 구하기 힘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