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보수를 찾습니다 - 우리가 잃어버린 보수의 가치
로저 스크러튼 지음, 박수철 옮김 / 더퀘스트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전통주의, 분단, 지역주의 등 여러 가지 변수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우리 사회의 이데올로기 지형도에서 보수주의를 명확하게 규정하기는 어렵다. 지키고자 하는 질서 · 가치가 분명치 않다. 반공 이념의 논리에 경도된 사회적 성향을 말하는가. 아니면 안정 추구의 논리를 그렇게 부르는가. 일단 사회의 기본 틀이 유지되는 한도 내에서 온건한 변화를 수용하는 사람들을 주류인 보수주의자라고 무리하게라도 규정키로 하자.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중산층은 심하게 흔들리고, 재벌은 다수 국민의 원망과 불신을 받아왔다. 이들이 아니라면 서민들이 보수주의자인가. 그럴 리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보수를 단순히 반공주의로 간주해 자신들을 보수로 이해하고, 보수 야당 세력을 진보라고 비판해 온 군부 독재의 기준이 보수-진보 논쟁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또한, 서구의 보수는 군부 독재에도 또 지역주의에도 근거하지 않지만, 한국의 보수는 친일 세력에 그 뿌리를 두고, 독재와 지역주의와 반공 이념에 의존했다. 비생산적인 우리나라 정치는 흑백논리의 불모다. 이분법에 찌든 보수주의자들에겐 조화와 절충이 용납되지 않는다. 양보나 타협은 곧 변절이나 패배로 치부될 뿐이다. 중도나 중용 역시 용인되지 않는다. 회색분자로 매도의 대상이 될 뿐이다. 그런 행태가 ‘내 편’은 무조건 따르고 ‘네 편’은 무조건 내치는 패거리 문화로 이어진다.

 

한국에 ‘자칭’ 보수주의 세력은 있어도 보수주의의 정의가 없다. 보수 철학을 근간으로 하더라도 합리적 보수라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리도 투명하고 공정해야 하고, 사회정의에 부합돼야 한다. 영국의 보수주의 사상가 로저 스크러튼의 《합리적 보수를 찾습니다》는 보수주의에 대해 냉정한 성찰을 하는데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이 책은 서양의 지적 전통 위에서 보수주의의 이념적 기원과 그 전개과정을 특유의 관점으로 서술하면서 보수주의의 복잡한 전개과정을 분석해 보여준다.

 

보수주의는 계몽주의를 내세운 근대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통과의 가차 없는 단절을 바라는 계몽주의가 정점에 달했던 프랑스혁명의 이데올로기적 · 정치적 반응의 결과로 나온 것이 보수주의다. 이처럼 근대성의 부정에서 나온 것이 보수주의였고 근대성의 대변자로 자임한 것이 자유주의였다. 고전적 보수주의를 단순히 수구나 반동(反動)으로 받아들인다면 잘못된 해석이다. 고전적 보수주의는 점진주의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옛것만을 수구하거나 새로운 사회변화에 역행하는 반동과 다르기 때문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점진적인 개혁에도 찬성한다. 이들이 개혁하는 목적은 나라와 자기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런 점에서 개혁이 진보주의자들의 전유물이 아닌 셈이다. 1970년 이후 보수주의는 변신을 시도한다. 당시 진보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항했던 보수주의는 하이에크의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수용한다.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포용한 보수주의를 신자유주의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보수주의는 냉전 시대부터 시작해서 극우만이 보수인양 이야기된다. 서구처럼 근대적 의미에서의 보수주의를 한 번도 제대로 경험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보 세력과의 공정한 대화와 논쟁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 간의 대화는 이념에 치우친 이익집단의 싸움판으로 변질했다. 보수주의가 살 길은 도덕성을 회복하고, 보수 이념에 맞는 개혁을 지지하면서 원칙을 지켜나가야 한다. 스크러튼이 내세우는 보수주의의 핵심 원칙은 ‘자유’와 ‘책임’이다.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주위의 의견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얘기만 고집스럽게 세우는 보수 세력은 자기성찰의 능력이 원천적으로 결여된 극우주의자라고 해야 마땅하다. 다양성의 가치와 덕목을 거스르는 극우주의자는 법을 무시하고, 관용을 허용하지 않는다. 여기에 무슨 자유와 도덕이 있으며, 어떻게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있겠는가.

 

보수주의자는 현실 세계의 관행들이 자신의 철학과 다르다고 격분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차분하게 개혁방안을 기획하고 설득을 통해 국민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합리적인 보수주의자다. 우리 사회의 역할에 합당한 보수주의자의 품격이 없다. 대통령의 대통령다움이 없고, 언론의 언론다움이 없고, 지식인의 지식인다움이 없다. 법과 도덕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집단적 광기가 작동되다 보니 배려도 관용도 따뜻함도 없다. 한 사회 전체가 성숙하려면 성찰과 배려가 행동 속에서 조화를 이뤄야 한다. 가치를 사회 속에 실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보수주의는 ‘이승만과 박정희 얼굴의 보수주의’가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한 보수주의’다. 전자는 ‘차이’와 ‘이견’을 낯설어하고 비정상으로 여기는 문화적 유전자가 있다. 미래의 후손에게 이승만과 박정희의 업적을 가르치려고 한다. 반면 후자는 인간의 한계를 잘 알고 있으며 늘 책임을 자신에게 찾는다. 또 과거의 지혜를 미래의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노력한다. 보수는 희생과 책임의 상징이다. 보수는 그 사회의 책임 있는 중심 세력으로서 공동체를 위해 더욱 헌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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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2-04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때론 보수주의자가 다수주의자로 보이곤 합니다. 자신들의 의견, 지지자가 더 많으니(자의적이면서, 통계도 자의적ㅎ) 옳다라고 말하는 억지주장들을 보면. 어떤 주의자라 할 때 그 합리성에는 늘 한계가 있죠.
케이시 <장소의 운명>에서 흥미로운 제시가 있습니다. 세계 대전 속에서 장소를 한꺼번에 잃은 사람들에겐 추구해야 될 가치가 달라졌다고. 그래서 핵무기는 모든 장소를 없앨 공공의 적. 이데올로기는 장소를 잃은 사람들에겐 잃지 않을 정신적 장소였을 겁니다. 즉 한국에서 6.25 이후 공고해진 반공주의가 단순히 어떤 세력의 공작이나 세뇌로만 뿌리를 내린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죠. 그렇더라도 한국의 보수주의는 대수술이 필요합니다.
보수주의든 진보주의든 집단 이기가 아닌 공동체주의로 작동할 한국이길 기원합니다

cyrus 2017-02-04 16:52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말로만 ‘보수 개혁’만 외치지 말고, 국민들이 수긍할 수 있는 보수주의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보수 개혁’을 지향하는 바른정당 소속 정치인들은 어떻게든 표심을 얻어 보려고 새누리당과 선을 긋는데, 그런 단기적인 행보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샤벳 2017-02-04 21:07   좋아요 0 | URL
동감

yureka01 2017-02-04 1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흔히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보수는 상당히 왜곡되었죠. 지켜야할 가치로운 것이란 보편적이고 타당성을 담보로 해야하거든요.정의.믿음.신뢰.정직.이런가치가 역사성을 가진 보수거든요.그런데 작금의 보수는 안보라는 구실로 권력에 빌붙어서 꼴통이 되었죠.

cyrus 2017-02-04 16:54   좋아요 0 | URL
새누리당이 ‘안보’만 찾는 바람에 정작 ‘자유’와 ‘정의’, ‘신뢰’의 가치 전부 잃어버렸습니다.

qualia 2017-02-04 20:10   좋아요 0 | URL
새누리당 무리들의 안보는 그들만의 안보죠. 기득권을 위한 안보, 친일/외세의존세력을 위한 안보, 사적 정권 유지를 위한 안보일 뿐입니다. 그것을 나라와 민족, 국민을 위한 안보로 위장한 것일 뿐입니다.

공정한 탄핵 심판에 전념해야 할 헌재 위원 중에 특정 종교인인 한 위원이 극우 세력 언론과의 (기획) 인터뷰에서 좌빨,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나라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고 황당하기 짝이 없는 개솔(bullshit)을 운운하더군요. 다는 아닙니다만, 지금 한국의 50~60대 이상 세대 중 대부분이 저런 개솔스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탄핵은 물 건너간 것이 아니냐 이런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제발 제가 틀리길 바랍니다만.)

이 지독히도 노예스런 국민들과 그 나라, 한국은 구제불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충격적이고 굴욕적인 사건을 거듭해서 겪어도, 나라가 절단나고 다시 망해도 궁극적으로는 결코 깨닫지 못할 국민이고 민족이고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과격하게 보일 텐데요. 저도 그건 압니다만, 한국/한민족은 반드시 망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역사가 미래를 예견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미래에 인구폭발, 기후격변, 전세계적 식량부족, 자원고갈 등등의 사태가 벌어질 것이 확실시되고, 핵무기 따위 가공할 대량파괴 무기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고, 강대국 간의 충돌 위험성도 점점 더 증가하고 있는 추세로 볼 때, 인류사에서 3차대전이나 그에 준하는 전쟁 발발은 필연이라고 봅니다. 헌데 역사 속에서 우리 한국/한국인들이 어떻게 각종 대규모 전쟁에 임해왔는가를 살펴보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고 봅니다. 2차대전 말기 패망해가는 일제한테 선전포고 하나 못한 한국/한국인들이었죠. 너무나 비굴하고 너무나 수동적인 노예들의 필연적 행동 양태였던 것입니다. 독립은 남들이 가져다준 것이었지 우리가 자력으로 쟁취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지금이 21세기라서 달라진 것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외세 의존 성향과 동족끼리의 대결의식은 더 강화됐고, 한반도가 남북, 전라/경상으로 사분오열됐으니 훨씬 더 악화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쭝궈, 닛뽕, 러시아, 미국, 등등의 자국 이기주의, 제국주의적 성향도 현대적 방식으로 더욱 강화되었고, 강대국끼리의 적대적 공존을 위해 그들끼리 밀약하고 그들 마음대로 약소국의 생사여탈권을 결정할 수 있는 국제정치역학적 환경도 더욱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았던 구한말에 견줘볼 때 지금이 결코 더 나아 보이진 않습니다. 그 정반대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결론은 한국은 망할 것이고 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외세와 대결하기는커녕 자기 민족끼리 피를 흘리며 극렬한 대결에 광분하는 어리석은 민족은 필연적으로 멸망에 이를 것이고 또한 반드시 멸망해 없어져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자연법칙이고 인류의 당위일 것입니다.
 

 

 

 

 

 

 

 

‘문학과지성사’는 1975년에 창립된 출판사다. 내가 소장한 ‘문학과지성사’ 출판물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 프랑수아 비용의 《유언시》다. 초판 발행연도가 1980년 12월 1일이다. 이때 나온 책의 가격이 2,500원이다. 이 책을 알라딘 온라인 중고샵에 샀을 때 가격은 12,000원이었다. 이 정도 가격이면 비교적 싼 편이다. 프랑수아 비용(Francois Villon)은 프랑스 중세 말기에 활동한 시인이다. 예전에 이 시집을 다룬 졸문 두 편을 쓴 적이 있어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관련 글 :

[두 사형수를 위한 보헤미안 랩소디] (2012년 8월 23일 작성)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유증합니다] (2016년 5월 21일 작성)

 

 

 

 

 

 

 

 

 

헌책방이나 알라딘 중고매장에 가면 항상 사는 책이 ‘문학과지성 시인선’, ‘문지 스펙트럼’ 그리고 ‘대산세계문학총서’ 시리즈다. ‘문지 스펙트럼’을 제외하면 나머지 두 출판물 시리즈는 지금도 계속 발행 중이다. 다만, 나온 지 오래된 책은 절판되었다.

 

 

 

 

내가 모은 ‘문학과지성 시인선’ 목록을 살펴보면 ‘김갑수’가 쓴 시집이 눈에 띌 것이다. 맞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 ‘김갑수’가 맞다. 연기자 김갑수 말고 종편 방송에 자주 출연하는 문화평론가 김갑수를 말한다. 원래 이 분은 시인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1984년에 시를 발표했고, 첫 번째 시집이 바로 ‘문학과지성 시인선 No. 84’ 《세월의 거지》다. 사실은 김갑수 씨가 시인이었다는 사실을 이 시집을 사면서 알게 됐다. 처음에 시집의 저자 이름을 봤을 때 동명이인인 줄 알았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No. 10’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은 김광규 시인의 처녀시집이다. 이 시집에 고등학생 문학 교과서에 수록된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가 있다. 역시 같은 시집에 수록된 『도다리를 먹으며』와 함께 언어영역 문제집이나 모의고사 지문으로 등장한다. 이 두 편의 시는 학창시절 문학 수업시간을 통해 알게 됐다. 개인적으로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를 좋아한다.

 

 

 

 

 

1976년 <문학과지성> 겨울호에 첫 선을 보인 조세희의 연작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은 1970년대의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위대한 작품이다. 어둡고 짙은 산업화 시대의 그늘 속에 살아가는 하층민의 삶을 담아낸 이 작품은 조세희의 대표작으로 크게 각인됐다. 그래서 《난쏘공》 이후에 나온 작품들 역시 문학적 가치가 있음에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1983년에 출간된 《시간여행》은 조세희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난쏘공》이 1970년대 시대상을 소재로 한 작품이었다면, 《시간여행》은 1980년대 시대상을 조명한 작품이다. 두 작품을 굳이 세세하게 비교하면서 읽지 않아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숫자만 달라졌을 뿐, 우리 사회의 그늘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아니, 사회 전체를 뒤덮는 그늘의 범위가 더 커지고 말았다. ‘난장이’로 비유된 사회적 약자들의 꿈이 과거보다 더 이루어지기 어려워졌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저자 노르베르토 보비오(Norberto Bobbio, 1909~2004)는 이탈리아의 정치학자이다. 그는 ‘자유’를 표방하는 자유주의자와 ‘평등’을 강조하는 민주주의자(혹은 사회주의자) 간의 길고 긴 대립의 과정을 분석하면서 이 서로 다른 정치적 개념의 결합을 모색한다. 조국 교수는 이 책을 추천하면서 여전히 낡은 이념에 사로잡힌 ‘얼치기 좌파’들이 읽어야 하는 필독서로 소개했다. 그렇지만 요즘 혼란스러운 시국을 생각한다면, ‘얼치기 좌파’보다는 ‘가짜 우파’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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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2-03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이제는 구하기 힘든 멋진 책이 많군요! 흥미롭게 잘 봤습니다!

cyrus 2017-02-04 10:31   좋아요 0 | URL
절판된 책들은 출판사 창고에서도 찾기 어려울 겁니다. 출판사는 책을 만들 때 반드시 비매품 보관용 한 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책 한 권 펴내는 일이 출판사의 역사가 되니까요. ^^

해피북 2017-02-04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앙! 헌책방을 자주 다니신다셨는데 이런 보물을 찾으셨군요 ㅎㅎ 그런데 김갑수님이 ㅋㅋ 시인이셨다는건 몰랐어요. 강적들이나 황금알에 나오셔서 가끔 봤는데 시인이라니 왠지 느낌이 달라지네요 ㅋㅡㅋ

cyrus 2017-02-04 10:40   좋아요 0 | URL
비록 사기만 해놓고 읽지 않은 책이 꽤 많지만, 이런 이벤트에 응모하기 위해서 사 모으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

김갑수씨를 처음에는 클래식 음악과 커피를 좋아하는 문학평론가인 줄 알았어요. 시집을 내셨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어요. <세월의 거지>가 김갑수씨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입니다.
 
라요하네의 우산
김살로메 지음 / 문학의문학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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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곳에서라면 어디에나 있는 ‘관계’. 그 다양한 맥락 속에 거짓과 위선, 희망과 진실이 한데 엉킨 삶의 모습이 있다. 김살로메의 소설집 《라요하네의 우산》에는 관계 맺기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인간 사이의 관계 맺기는 이 소설에서 중요한 핵심이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서로의 상처를 캐고 보듬는 가운데 얻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이 작품은 보여준다. 관계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은 운명적으로 자신의 타자가 된다. 작가는 “내 안의 위선과 진실, 내 안의 악마성과 순진성 사이에 소설이 존재”[1]한다고 말한다. 이런 이중성 때문에 일상의 삶은 흔들리고 부서진 것이 되며, 때로는 그것마저 실재감을 잃어버린 환상으로 빠져들기도 한다. 타인과의 관계 맺기 역시 불모와 불가능, 변질로 끝나기 십상이다. 자아의 정체성이든, 타자와의 관계든 거기에는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일’[2]이 깃들여 있다. 그럼에도 작가는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일’을 공감하고 탐색하는 자세가 삶을 구성하는 능동적인 힘임을 믿는다.

 

『알비노의 항아리』의 주인공들은 빙 둘러 가는 접촉을 통해 힘겹게 관계 맺고 있다. 남편과 아내는 너무 다르다. 남편은 굳건한 일상의 틀을 지키면서 평범하게 살아가지만, 아내는 피부와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는 알비노(Albino)라는 희귀 질환을 겪고 있다. 이 병의 원인에 대해 사람들의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아내는 태어날 때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선입견 속에 살아간다. 일상의 세계는 인간끼리의 접속이 힘들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 아내의 소변을 정력제로 확신하는 남편의 어머니는 말해지지 않은 부부 사이 마음의 틈을 점점 벌어지게 한다. 언제 깨질지 모른다. 아무리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만 언제 깨질지 모른다. 그러나 마침내 부부는 서로 참다운 사랑을 확인함으로써 합일될 수 있는 관계에 도달한다.

 

『암흑 식당』은 자신에게 부과된 강제적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욕망을 보여준다. 우리 자신들이 모순적으로 겪고 있는 내면적 그늘을 남다르게 포착해내는 깊이를 내보이고 있다. 암흑 식당은 형상이 유발하는 선입관과 현혹이 완전히 차단되는 장소다. 그래서 지겨운 일상에서 눈을 돌려 암흑 식당 안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는 은밀해서 달콤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의 가면을 벗기 위해 진짜 가면을 쓴 암흑 식당 손님들의 기이한 관계 맺기는 타인의 욕망 대상이 된다. 섹스는 이성적 합일을 완성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체험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섹스조차도 그토록 열망한 사랑의 확인이 아니라 현대인의 불행을 보여준다.

 

작가는 『라요하네의 우산』에서 불안한 인간의 내면을 무심하게 드러내면서 동시에 조각난 사건들을 보여주면서도 어떤 가능한 자기만의 세계를 그려낸다. 소설의 등장인물 샌드리는 시메트리(symmetry) 증후군에 시달린다. 그녀는 ‘균형’이라는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고 그 이미지의 압박감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이 소설에서 언급되는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은 샌드리가 자신의 삶 속에 묻혀 있는 상처를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자기 앞의 생》은 합리적인 우리 삶의 심층에 자리 잡은, 남모르게 앓고 있는 고통에 주목하는 문학 고유의 영역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평범하게 보이는 일상적 관계의 뒷면에는 잊힌 상처가 있다. 그것은 선천적으로 기형적인 육체의 아픔일 수도, 인간 사이에서 주고받는 고통의 기억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두는 상처라는 이름으로 서로 소통할 수 있다. 《라요하네의 우산》의 매력은 요란스런 사건의 전개 대신 일상생활 속 아픔과 극복 과정을 잔잔한 어투로 복원해 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정신적 상처와 결핍의 모습은 생활을 통해 간간이 새어 나오는 슬픔이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상대방에게 속이지 않고, 또 자신을 속이지 않고, 자신의 나약함을 상대방의 결점을 그대로 받아들여 이해하고 안아줄 수 있는 것. 그것이 이 소설집에서 확인할 수 있는 상처 치유력을 가진 정신적 약재들이다. 관계의 어긋남에서 비롯된 상처란 다시 관계 속에 던져져야만 진실하게 아물어 갈 수 있다.

 

 

 

 

[1] 작가의 말, 317쪽

[2] 『라요하네의 우산』 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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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2-03 1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럼요..관계함으로써 상처가 없을 수가 없죠..서로 생채기를 내고..다시 보듬고..그래서 아물고 ...그러므로써 관계가 더 단단해져야하거든요..문제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이거 없다면 관계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니까요. 가급적이면 서로가 상처를 주고 받기보다는 위로와 헌신과 희생으로 오고가면 더 좋겠지요.....

cyrus 2017-02-03 17:13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면 감정이 상하는 일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살면서 겪어야 할 일입니다. 서로 간에 감정이 다치지 않도록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정말 중요합니다. 이게 안 되면 어렵게 맺은 관계를 회복하기 어려워요.

페크pek0501 2017-02-03 15: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고통스럽거나 부끄러운 일’이 나만의 경험이 아니고 다른 누구도 겪은 일이라는 걸 확인할 때 위로가 됩니다. 그래서 요즘 공감하는 친구가 참 필요한 거구나, 친구 없는 사람은 외롭겠구나, 생각하게 되어요.
제일 듣기 싫은 말 중 하나는 ‘복에 겨워 그러는거야.˝라는 말이에요. 같은 일이라도 사람에 따라서 느끼는 강도가 다름을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 모두요...

cyrus 2017-02-03 17:16   좋아요 0 | URL
오늘 본 인터넷 뉴스 내용인데요, 30대 이후부터 친구 수가 줄어든다고 합니다. 저도 20대 후반을 살아오면서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나를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친구가 소중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2017-02-03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03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04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04 1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살다 살다 내가 라이트노벨을 읽게 될 줄이야. 크툴루 신화 아니었으면 냐루코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소라 만타(あいそら まんた)의 《기어와라! 냐루코 양》(약칭 ‘냐루코 양’)이 정말 재미있어서 애니메이션까지 찾아봤다.

 

 

 

 

고등학생 시절에 밤 새면서 만화를 본 적이 있었다. 지금은 어린이용 만화 전문 케이블 채널이 되어버렸지만, 옛날 '투니버스' 리즈 시절에 해주던 만화들이 참 재밌었지... (아련) 십 년 전 만화를 푹 빠졌던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나서 좋았다. 다만, 잠을 미루면서까지 만화를 보게 되니까, 다음 날 아침을 맞이할 때 피로감이 잔뜩 몰려왔다. 이래서 학창 시절이 좋은 거다.  

 

《기어와라! 냐루코 양》은 아이소라 만타의 데뷔작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가장 뛰어난 신인 라이트노벨 작가에게 주는 ‘GA문고대상 우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비록 대상에 오르지 못했으나(이때 대상 수상작은 없었음) 《냐루코 양》은 첫 번째 GA문고대상 수상작으로 기억되기에 충분하다.

 

 

 

 

 

 

 

 

 

 

 

 

크툴루 신화를 소재로 한 작품치고는 상당히 가벼우면서도 지나치게 유쾌하다. 작품의 장르는 코미디다. 작가는 농담으로 《냐루코 양》의 장르를 ‘러브크래프트 코미디’라고 밝혔다. 음울하고, 절망적인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생각하면, 이걸 코미디물로 패러디한 작가의 패기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냐루코 양》을 GA문고대상에 응모했을 때 원제가 ‘꿈을 꾸면서 기다리노니(夢見るままに待ちいたり)’였다. 이 말은 크툴루(Cthulhu)를 소환할 때 부르는 주문이다.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의 부름』(《러브크래프트 전집 1》 수록)에 나와 있다.

 

 

Ph'nglui mglw'nafh Cthulhu R'lyeh wgah'nagl fhtagn

(픈글루위 미글와나프 크툴루 리예 와그나글 프타근)

 

리예에 있는 집에서 죽은 크툴루가 꿈을 꾸며 기다리고 있다.

 

리예 : 크툴루가 잠들어 있다는 (가상) 도시

 

 

신인 작가의 데뷔작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독자의 마음을 어떻게든 사로잡으려고 하는 티가 난다. 그래서 조금은 억지스럽고 어설픈 면이 있다. 사실 《냐루코 양》에도 신인 작가로서의 과욕이 넘쳐흐른다. 인물들 간의 대사는 크툴루 신화뿐만 아니라 유명 일본 만화, 영화, (일본)가요 등을 시도 때도 없이 패러디하는데 보는 이를 혼돈 속으로 밀어붙인다. 내가 이 표현을 일부러 과장한 게 아니다. 작가가 패러디한 것을 따로 정리하려면 책 한 권으로 부족할 수 있다. 패러디와 관련된 배경지식 없이 만화를 보게 되면 ‘일본인 출신 덕후’가 아닌 이상 인물이 내뱉는 사소한 말 한마디와 특별한 행동이 패러디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냐루코 양》을 라이트노벨로 읽든, 만화로 보든 적어도 크툴루 신화는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크툴루 신화가 뭔지 모른 채 《냐루코 양》을 보면 산만한 코미디물처럼 느껴질테고, 크툴루 신화를 이해한 뒤에 《냐루코 양》을 보게 되면 ‘러브크래프트 코미디’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냐루코 양》의 여주인공 냐루코(ニャル子)는 니알라토텝(Nyarlathotep)을 모티브로 한 인물이다. 냐루코라는 이름은 니알라토텝의 일본식 발음 ‘냐루라토호테프’에서 유래되었다. 냐루코는 우주에서 활동하는 행성보호기구 소속 요원(우주 수사관)이며 ‘니알라토텝 성인(星人)’이다. 그러니까 냐루코는 니알라토텝이 아니라 ‘니알라토텝의 성질을 가진 외계인’이다. 냐루코의 트레이드 마크인 회색빛 아호게(アホ毛, 우리나라에서는 ‘바보털’로 알려져 있음)는 니알라토텝의 거대하고도 뾰족한 촉수를 떠올린다. 냐루코는 우연히 지구에서 외계조직을 무찌르는 과정에서 야사카 마히로(やさか まひろ)라는 소년에 한 눈에 반해버린다. 지구에 남아서 일을 한다는 핑계로 마히로의 집에 얹혀살면서 마히로에게 직설적으로 애정 공세를 펼친다. 그러나 마히로는 냐루코의 지나친 구애를 부담스러워한다.

 

《냐루코 양》은 '하렘물'이다. 즉, 남자 주인공 한 명이 여러 명의 여자 인물들에게 둘러싸여 산다는 줄거리로 구성되었다. 마히로의 집에는 냐루코뿐만 아니라 쿠우코(クー子), 하스타 군(ハスター君)도 살고 있다.

 

 

 

 

 

 

 

 

 

쿠우코는 불의 속성을 가진 ‘크투가(cthugha) 성인’이다. 크투가는 러브크래프트의 후계자이자 지금의 크툴루 신화를 창조하는 데 기여한 어거스트 덜레스(August William Derleth)의 작품에 등장하는 존재이다. 크투가는 땅의 지배자 니알라토텝과 천적 관계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쿠우코는 냐루코를 좋아하는 ‘변태’ 백합(Girl’s Love) 기믹으로 등장한다. 냐루코도 마히로에 접근할 때 섹드립을 날리는 편인데, 쿠우코는 이보다 더 심하다. 하지만 이미 마히로에게 푹 빠진 냐루코는 자신의 천적이나 다름없는 쿠우코의 애정을 단호히 거부한다.

 

 

 

 

 

 

 

 

 

 

 

하스타 군은 바람의 지배자 ‘하스터(Hastur) 성인’이다. 하스터는 플레아데스 성단에 위치한 세라에노(Celaen)라는 행성을 지배한다. 그래서 하스타 군의 직업이 작중에서 세라에노 도서관 사서로 소개됐다. 하스타 군은 소녀 같은 귀여운 소년 이미지로 등장하는데, 마히로를 좋아한다. 그를 얼마나 좋아하면, 하스타 군은 자기가 직접 마히로의 아기를 낳고 싶다고 말할 정도다. (도대체 이 녀석의 성 정체성이 뭐냐?)  

 

 

 

 

 

 

 

 

 

 

 

 

 

 

 

 

 

 

 

장 널리 알려진 하스터의 생김새는 노란 로브(robe, 무릎 아래까지 오는 긴 가운)를 두른 인간의 형태이며 ‘옐로 사인(Yellow sigh)’이라는 이름의 표식을 들고 다닌다.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의 소설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자』(《러브크래프트 전집 2》 수록)에서 하스터를 처음 언급했지만, 사실 지금의 하스터를 있게 해준 결정적인 작품이 바로 로버트 체임버스(Robert Williams Chambers)의 소설집 《노란 옷의 왕》(우리나라에서는 ‘노란 옷 왕 단편선’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됐다)이다. 러브크래프트는 체임버스의 소설에서 하스터를 창조하는 데 필요한 영감을 얻었다.

 

 

 

 

 

 

 

 

 

 

 

 

 

 

 

 

 

 

 

《냐루코 양》를 보다 보면 패러디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크툴루 신화와 관련된 재미있는 대사와 장면을 발견하면, 웃음이 안 나올 수가 없다. 라이트노벨과 만화를 보기 전에, 《도해 크툴루 신화》(AK커뮤니케이션즈, 2010년)와 《크툴루 신화 대사전》(AK커뮤니케이션즈, 2013년)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특히 《크툴루 신화 대사전》은 《냐루코 양》에서 패러디되었거나 인용된 크툴루 신화의 개념이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의 전체 제목이 ‘게임 · 애니메이션 · 라이트노벨 마니아들을 위한 크툴루 신화 대사전’이다. 《냐루코 양》을 덕질하기에 유용한 참고서다.

 

 

 

※ 제목의 유래 : 후시미 츠카사(伏見 つかさ)의 라이트노벨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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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7-02-02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툴루 신화는 생소하네요. 러브크래프트 덕후다우십니다. ^^

cyrus 2017-02-03 12:29   좋아요 0 | URL
제가 판타지 분야의 소설을 잘 안 읽습니다. 톨킨의 소설도 안 읽어봤어요. 크툴루 신화는 제가 유일하게 관심 있는 판타지물입니다. ^^

꼬마요정 2017-02-02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브크래프트가 만든 크툴루 신화와 그를 계승하는 작가들... 멋집니다. 모르는 것도 없으십니다~~^^

cyrus 2017-02-03 12:32   좋아요 0 | URL
외국의 러프크래프트 덕후들에 비하면 많이 모자릅니다. ^^;;

뽈쥐의 독서일기 2017-02-03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허허 글쓴 사람이 누군지 두번세번 봤어요..ㅎㅎ
새로운 취향을 존중해드립니다!

cyrus 2017-02-03 17:26   좋아요 0 | URL
이제 독서 취향을 조금씩 바꿔보려고요. 변화를 주고 싶습니다. ^^

레삭매냐 2017-02-03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나 취향이 다양하시다는 -

cyrus 2017-02-03 17:27   좋아요 0 | URL
선호하는 취향이 많을수록 좋은 것 같습니다. ^^;;
 
개소리에 대하여
해리 G. 프랭크퍼트 지음, 이윤 옮김 / 필로소픽 / 201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의도적으로 상대를 속이려는 게 아니라면 말과 글을 제대로 가리는 게 배운 사람의 도리다. 애써 말과 글을 깨우치는 목적이 그렇다. 어설픈 지식을 뽐내고자 함이 아니다. 사리를 제대로 분별하기 위함이다. 이제 학사 학위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만큼 배운 사람이 차고 넘친다. 그런데 말과 글의 오용이 차고 넘쳐 외려 사람을 짐승보다 못하게 만드는 세상이 되었다.

 

 

 

 

 

가장 저급하게 오용된 말과 글은 한마디로 ‘개소리(Bullshit)’라고 할 수 있겠다. 국어사전에서는 개소리를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조리 없고 당치 않은 말’을 저속하게 부르는 말로 정의하고 있다. 형태와 소리는 글이고 말이겠으나 그것은 개 짖는 소리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 철학자 해리 G. 프랭크퍼트(Harry Gordon Frankfurt)는 개소리와 거짓말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개소리가 얼마나 위험한 말인지 진지하게 분석한다. 그가 쓴 책 《개소리에 대하여》의 요점은 진리 또는 진실에 무관심한 사람일수록 헛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주필이 운영하는 인터넷 팟캐스트 ‘정규재 TV’와 단독 인터뷰를 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 사과에 대해서 이런 충고를 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그냥 사과를 하면 안 된다. 그냥 잘못해도 버텨야 한다.”[1]

 

 

대국민 담화를 통해 사과한 대통령에게 ‘잘못해도 버텨야 한다’라고 충고한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대통령은 순진하게 이 말 한마디를 믿고 있다. 그리고 검찰과 특검 수사로 밝혀진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모든 범죄행위를 부정했다. 모든 탄핵사유를 인정 못 하는 것은 물론이고, 촛불 민심 자체도 부정하고 나섰다.

 

 

“국민들께서 응원을 해주시는 것에 대해서 제가 힘들지만 그 힘이 납니다.”

 

“오붓한 분위기에서 즐거운 명절 보내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2]

 

 

대통령이 자신을 응원해준다고 믿는 ‘국민’이란 누굴까? 설마 돈 받고 친박 집회에 모인 박사모?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2016년 11월부터 대통령의 지지율은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아무리 무너져도 쉽게 무너지지 않은 유일한 희망인 ‘콘크리트 보수층’이 건재해도 대다수 국민의 뜻을 철저히 무시하는 대통령의 인식은 문제가 있다. 특히 명절 인사는 아예 가관이었다. 석 달 동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사회가 혼란스럽고 경제마저 팍팍해서 국민은 분노하는데 대통령은 천하 태평한 소리를 했다. 이 판국에 국민의 ‘분노’를 한가하게 ‘걱정’과 ‘루머’로 치부해 버리는 상황인식은 정말이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정말 심각하게도 대통령은 현상을 분별해서 인지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정규재 주필은 대통령이 ‘여전히 총기가 있는 분’이라고 아부성 발언을 했는데, 그의 말은 거짓말이라기보다는 대통령의 ‘개소리’를 대단하게 받아들이거나 쉽게 분간하지 못하고 있다. 거짓말은 의도적으로 진실을 왜곡한다. 정 주필은 크게 떨어질 대로 떨어진 대통령의 인지도를 다시 올리기 위해서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을 직접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해서 크게 문제 삼고 싶지 않다. 다만, 대통령의 직무유기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는 정 주필의 태도가 훨씬 심각하다. 그는 대통령의 ‘개소리’를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개소리하는 사람이나 개소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나 둘 다 공통으로 자기반성의 능력이 약하다.

 

프랭크퍼트는 사람들은 거짓말에 분노를 일으키거나 비판을 하는 반면에 개소리는 관대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저자는 사람들이 개소리를 거짓말보다 관대해지는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이것을 우리 독자들을 위한 연습문제로 남겨뒀다. 사실 나는 거짓말과 개소리를 구분하는 프랭크퍼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실에 무관심하거나 진실 앞에서 미적거리는 반응이 거짓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똥이니 된장인지 구분하는 아이들도 개념과 상식을 집에 놔둔 채 내뱉는 공인의 개소리에 분노할 줄 안다. 그래서 우리는 어이없고, 주먹을 부르는 개소리를 ‘망언’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이 정치 분야에만 있겠는가. 양심을 저버리면서까지 불편한 진실 앞에 눈감은 언론인과 지식인들, 장병이 된 대한민국 청년들을 ‘나라의 아들’로 치켜세우면서 병들거나 다치면 온갖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회피하는 군대. 더 열거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1] [2] 다섯 가지로 추려본 박 대통령 인터뷰 ‘문제의 발언’ (JTBC, 2017년 1월 26일)

 

※ 글 제목의 유래 : “야!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하라!” (링크 참고: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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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17-02-02 1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발 다음엔 말과 글을 바로 쓸 수 있는 사람이 국가 원수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cyrus 2017-02-02 19:19   좋아요 0 | URL
말을 똑바로 하고, 글을 잘 쓰고, 이 언어들을 실천으로 잘 옮기는 국가 원수를 보고 싶습니다.

캐모마일 2017-02-02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제가 요즘 고민하는 문제였고 전에 한번 회원분의 서평을 읽고 넘어갔는데, 오늘은 가려운 등을 누가 긁어준 기분이 듭니다. 그만큼 제목과 서평에 공감이 가네요. 요즘 시국은 두말할 것도 없고 개인적인 주변에서 왜 이렇게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아는 것인양 두루뭉술하게 말하고, 진짜 자기가 그렇게 믿어서 말하는건지 임시변통으로 둘러대는건지 사람들과 대화할 때 답답한 적이 많아서

캐모마일 2017-02-02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럴까 안타까웠습니다. 스스로도 많이 돌아보게 됐구요. 주제가 시국과 어울리고 개인적으로도 놀랐습니다. 좋은 서평 읽고 갑니다.

cyrus 2017-02-02 19:25   좋아요 2 | URL
캐모마일님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밖에 나가면 개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죠. 특히 정치나 페미니즘을 주제로 대화를 나눠 보면 답답한 사람들을 보게 되죠. 여기 온라인 공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역시 진리를 알고 있는 것처럼 글을 썼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가 제가 잘못한 사실을 알린다면 그 잘못을 인정하여 바로 잡고 싶습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이런 대화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해피북 2017-02-02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순실이 억울하다며 고성을 지르는거나 아직까지도 자신을 지지해주는 국민이 있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대통령이나 사람의 마음이란게 얼마나 단단하면 저렇게까지 버티고 할 수 있는지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요즘 어른들은 툭하면 최순실도 그렇게 뻔뻔하게 하고 사는데 너희는 왜 그렇게 못하니 좀 세상을 뻔뻔하게 살어 라는 말씀 자주하셔요. 그래서 우스겟소리로 모든 이야기는 순실이로 끝난다고 하죠. 무튼 저도 시원한 글 잘 읽고갑니다^~^

cyrus 2017-02-02 19:51   좋아요 0 | URL
더 웃긴 건 여자 배구 선수가 올스타전에서 최순실 패러디했다고 그녀를 ‘좌빨‘이라고 비난한 사람들입니다. 그 선수는 최순실 패러디를 자발적으로 준비한 것이 아니라 올스타전을 주관한 배구연맹이 선수에게 하라고 지시했을 뿐입니다. 그냥 웃고 넘기면 될 일을 이념의 색안경으로 보는 사람들이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개소리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아요. ^^;;

2017-02-02 1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02 19:59   좋아요 0 | URL
둘 다 나쁘지만, 그래도 가장 나쁘고 위험한 부류가 후자입니다. 기회주의자들입니다.

꼬마요정 2017-02-02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철판입니다. 반성하고 자중하지 않아 다행입니다. 한 푼어치의 동정도 아깝습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인 줄도 몰랐습니다ㅠㅠ

cyrus 2017-02-03 12:33   좋아요 0 | URL
네. 죗값을 받아도 용서하고 싶지 않습니다.

레삭매냐 2017-02-03 1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지부조화와 자기합리화를 원없이 보고 있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나요.

비정상이 정상을 대신하는 현실이 초현실적입니다 정말로.

cyrus 2017-02-03 17:28   좋아요 0 | URL
비정상적인 생각과 언행을 하는 지도자를 여전히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초현실적입니다. 가면 갈수록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