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랭크 맥린 (다른세상, 2011년)

* 《로마인 이야기 11 : 종말의 시작》 시오노 나나미 (한길사, 2003년)

 

 

과거 동 · 서양의 왕가들은 순수한 혈통을 지키기 위해 근친혼을 했다. 《명상록》의 저자 로마 오현제(五賢帝)의 한 사람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사촌지간인 파우스티나(Faustina)와 결혼했다. 마르쿠스의 일대기와 《명상록》을 같이 읽어보게 되면 황제의 결혼 생활이 실제로 어떤지 궁금할 수 있다. 역사가들은 이 주제에 상당히 흥미로워했다. 프랭크 맥린(F. McLynn)과 (역사가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지만) 시오노 나나미(Shiono Nanami)는 고대 문헌들을 토대로 황제의 결혼 생활을 주목 · 분석했다.

 

정설에 따르면 마르쿠스의 아내 파우스티나는 ‘정숙하지 못한 아내’로 알려졌다. 그런데 마르쿠스는 《명상록》에 아내에 향한 헌사를 남겼다.

 

 

“너무도 순종적이고, 너무도 사랑스러우며, 너무도 소탈한, 너무도 좋은 여인.”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456쪽)

 

 

“더없이 다소곳하고 더없이 다정하고 무엇보다도 전혀 꾸밈이 없는 여자” (《로마인 이야기 11 : 종말의 시작》 158쪽)

 

마르쿠스와 파우스티나가 부부로서 함께 지낸 생활은 30년. 그 짧지 않은 세월 속에 파우스티나는 14명 혹은 15명의 자식을 낳았다. 시오노 나나미는 파우스티나가 다산한 사실만 가지고 두 사람의 성생활이 활발했으며 결혼 생활이 행복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서술했다. 시오노 나나미가 역사가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가끔 그녀는 역사를 서술할 때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다. 물론, 성생활이 부부의 행복에 무척 중요하다. 그렇지만 성관계를 더 많이 한다고 해서 무조건 부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성관계의 빈도보다는 부부 간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 만족감을 느끼는 성관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1]

 

 

 

 

 

 

 

 

 

 

 

 

 

 

 

 

* 《고대 로마인의 성과 사랑》 알베르토 안젤라 (까치, 2014년)

 

 

로마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사랑’해서 결혼하고, 섹스하지 않았다. 로마인은 결혼을 가문과 국가의 기강을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할 사회적 규범으로 받아들였다.

 

마르쿠스 시대의 역사가들은 파우스티나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를 근거로 현대의 역사가들과 《명상록》의 번역가들은 파우스티나가 결점이 많은 아내로 소개했다. 프랭크 맥린은 파우스티나의 부정적인 측면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 번째 근거, 정치 문제에 지나치게 간섭했던 것. 두 번째 근거는 고집 세고 잔소리가 심한 황후의 성격이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Xanthippe)와 닮았다는 점. 마지막으로 황후가 바람기를 주체하지 못해 방탕한 생활을 했다는 점이다. 마르쿠스와 파우스티나는 완전 정반대의 성격이다. 마르쿠스는 늘 차분한 성격에, 어떤 일에 대해서 신중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성관계를 좋아하지 않았다. 파우스티나 입장에서는 굼뜨고, 무미건조한 남편이 답답해 보일 수밖에 없다.

 

고대의 역사가들은 동시대의 황제에 대판 평을 다분히 주관적으로 서술하는 경향이 있다. 역사가가 어떠한 사료를 참고했는가에 따라 한 인물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그 사료를 참고한 학자는 자신의 입맛에 맞게 역사를 편집한다.

 

시오노 나나미는 마르쿠스 시대의 역사가들의 증언을 참고할 뿐 비중 있게 보지 않는다. 그녀는 고대의 사료를 무시하고, 파우스티나가 ‘현모는 아니었지만, 틀림없이 양처였을 것’이라고 썼다. 그 근거로 《명상록》에 있는 아내를 위한 헌사인데, 솔직히 이것만 가지고 파우스티나를 ‘양처’라고 추측하기에는 근거가 빈약하다. 시오노 나나미는 파우스티나가 전장으로 향한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홀로 기다렸으며 병사들의 기지에 방문할 정도로 남편 못지않게 존경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파우스티나를 ‘악처’로 보는 프랭크 맥린의 주장과 충돌한다.

 

파우스티나를 크산티페와 동일한 인물로 보는 맥린의 관점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소크라테스는 가정을 소홀히 한 남편이다. 남들과 달리 평범하지 않는 남편 때문에 크산티페는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파우스티나는 악처도 양처도 아니다. 그저 자신과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남편을 만나 고생하면서 살다간 여인이었다. 이 두 사람이 합의 이혼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로마의 여성은 남편 그리고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정숙’하도록 살아야 했다. 본능을 숨기면서까지 품위를 유지하면서 지내는 일이 답답했을 터. 로마 남성들은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마음껏 성적 쾌락을 누릴 수 있었지만, 여성들은 평생 남편의 울타리에 갇혀 지냈다. 그녀들이 조금이라도 바람을 피우면 가문과 남편을 욕보이는 부도덕한 행동이라고 비난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바람을 피운 파우스티나를 옹호하는 건 아니다. 그녀가 그렇게 살아야 했던 원인을 단순히 그녀 개인의 결점으로만 보는 관점에 동의하지 않을 뿐이다. 아무리 많은 사료가 남아 있다고 해도 그것만 가지고 한 사람을 평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음침한 마음! 여자 같으며 완고한 마음, 사납고 어린애 같으며 짐승 같고 어리석으며 교활하고 상스러우며 부정적이고 폭군적인 마음. (《명상록》 제4장, 황문수 역)

 

 

정말 마르쿠스는 파우스티나를 진심으로 사랑했을까? 부부가 행복하게 살았는지 아니면 ‘황제’의 명예가 조금이라도 손상되지 않기 위해 부부가 30년 동안 끝까지 참고 지냈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만약 마르쿠스가 아내를 싫어했다면, 《명상록》 제4장에 나오는 저 문장이 아내를 향한 마르쿠스의 진심일 수도 있다. 파우스티나의 진짜 품성과 기질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늘 논란거리가 되어 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2]

 

 

 

[1] 『1주일에 한 번 성관계 맺는 부부가 가장 행복』 뉴시스, 2015년 11월 19일

[2]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4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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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1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21 13:47   좋아요 1 | URL
결혼과 섹스가 인생의 의무가 되는 바람에 이 둘 다 못 하면 ‘등신‘ 취급 받습니다. 둘 다 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도 있는데 이를 무시하는 사회의 편견이 가혹합니다.

2017-02-21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21 17:20   좋아요 1 | URL
속 시원하게 해주는 사이다 말씀입니다! ^^

북프리쿠키 2017-02-21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오노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에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요.
세월이 훌쩍 흐른 지금 십자군이야기를 읽으니 보는 관점에 따라 상당부분 취사선택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싸이러스님의 비판적 읽기에 또 배우고 갑니다.^^;

cyrus 2017-02-21 17:25   좋아요 1 | URL
제가 어렸을 때 시오노 나나미를 역사가로 믿었고 <로마인 이야기>를 직접 사서 읽었습니다. 고딩 때 공부하느라 7권까지 사다 말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시오노 나나미를 비판하는 입장을 본 이후부터 저 역시 역사를 보는 관점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무조건 믿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비판적으로 보는 능력은 많이 부족하지만, 같은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살펴볼려고 합니다. 머리가 아프지만, 이렇게라도 여러 번 시도를 해볼려고요. 귀찮다고 안 하면, 역사를 자신이 믿고 싶은 한 가지 관점만 보게 됩니다. 박사모처럼 말이죠. ^^;;
 

 

 

 

 

 

 

 

 

 

 

 

 

 

 

 

 

 

 

 

 

 

* 책표지 사진이 없는 책 : 《명상록 · 행복론》 아우렐리우스 · 세네카 (범우사, 1994년)

* 《명상록》아우렐리우스 (도서출판 숲, 2005년)

 

 

 

2013년 올재 클래식스 6번째 시리즈로 발간된 《명상록》은 황문수 씨가 번역했다. 이 번역자의 약력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인터넷 서점의 ‘작가 소개’에 따르면 황문수 씨는 경희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지냈다고 한다. 70~80년대에 나온 철학 서적들, 특히 버트런드 러셀, 플라톤, 칼 야스퍼스, 윌 듀란트 등의 저서를 번역했다. 《명상록》도 마찬가지다. 사실 황문수 씨 번역의 《명상록》은 1974년 범우사에서 펴낸 책이다. 이때 나온 책의 부제는 ‘자성록(自省錄)’이다. 1987년에 세네카의 글과 함께 수록한 번역본이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는데, 제목이 《명상록 · 행복론》이다. 《행복론》의 번역은 최현 씨가 했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범우사판 《명상록》은 최현 씨가 번역한 것이다. 거의 절판된 거나 다름없는 황 씨 번역의 《명상록》을 사단법인 올재가 재출간한 것으로 보인다.

 

오래된 서양 고전 번역본들은 거의 일역본을 중역한 것이다. 황 씨 번역의 《명상록》도 일역본을 중역했을 가능성이 있다. 황 씨의 문장에 지금은 잘 쓰지 않는 한자어가 많은 편이다. 한자에 생소한 젊은 독자들은 《명상록》의 진미를 느끼는 데 어려울 수 있다. 천병희 교수의 《명상록》은 그리스어 원전을 옮긴 번역본인데, 여기도 문장 속에 생소한 한자어가 몇 개 있다. 그래도 번역자 입장에서는 우리말로 풀이하기 어려운 문장을 번역하기 위해 최대한 원문과 비슷한 의미의 한자어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프랭크 맥린 (다른세상, 2011년)

 

 

《명상록》의 저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는 로마 전성기에 등장한 5현제 중의 한 사람이다. 마르쿠스가 통치한 시기는 태평성대를 구가했지만, 역시 나라의 정세가 흔들리는 크고 작은 위기가 여러 차례 있었다. 홍수와 지진 등의 자연재해가 발생해서 인명피해가 생겼고, 설상가상 전염병까지 퍼지기도 했다. 외세의 침략에도 시달렸다. 중동에 위치한 파르티아 제국과 훈 족의 위협으로 로마 제국의 국경 지역으로 이주한 게르만 족의 위협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황제는 독서와 사색을 즐기는 학구적인 성격이었다. 마르쿠스 통치 시절의 역사학자는 내성적인 황제가 감당해야 할 운명이 너무나도 어려운 과제였다고 기록했다. 19년 동안의 통치 기간은 황제 입장에서는 힘겨운 시기였다. 그래도 마르쿠스는 현실을 회피하지 않았고, 전쟁을 진두지휘해 모범을 보였다. 외세로부터 로마를 지켜내기 위해 노력한 그는 고전 문헌들로 가득한 서재가 아닌 전쟁 막사에서 숨을 거두었다.

 

마르쿠스는 하드리아누스(Hadrianus)의 아들이자 그의 후계자인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의 양자로 들어왔다. 어린 마르쿠스를 유난히 아꼈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그에게 ‘진실한 아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마르쿠스는 천성적으로 착한 사람이었다. 그가 얼마나 착했으면 로마 전역에 아내의 추문이 알려졌는데도 결코 아내를 꾸짖지 않았다. 마르쿠스는 《명상록》에 아내를 좋게 표현했다.

 

내 아내가 그토록 고분고분하고 곰살궂고 검소한 것도, 내 자식들을 위하여 유능한 스승들을 구한 것도 신들 덕분이다. (천병희 역, 《명상록》 제1장 30쪽)

 

마르쿠스는 상대방의 결점을 비판하는 성격의 인물이 아니었다. 자신과 함께 아우렐리우스 가문의 양자로 들어왔고, 같은 해에 공동 황제로 임명된 루키우스 베우스(Lucius Verus)의 잘못을 따끔하게 지적하기보다는 그가 스스로 반성할 수 있도록 부드럽게 대했다고 한다. 루키우스 베우스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마르쿠스는 죽을 때까지 단독 황제의 자리를 유지했다.

 

 

 

 

 

 

 

 

 

 

 

 

 

 

 

 

 

* 《비판이란 무엇인가? / 자기 수양》미셸 푸코 (동녘, 2016년)

 

 

 

 

《명상록》을 보면 마르쿠스가 로마의 황제라는 의식과 신분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자기성찰에 충실했던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미셸 푸코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삶에 가장 해로운 것들, 즉 권위에 대한 탐욕, 집착,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에 ‘통치받지 않으려고’ 했다.[1] ‘황제’, ‘대통령’ 등 권위와 관련된 이름을 누구나 가지는 순간, 그 권위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민 위에 군림하려고 든다. 이럴 때 국민의 권리는 유린당하고, 국민과 유리된 권위가 통치하는 국가는 파멸에 직면한다. 자신에게 채찍질하는 마르쿠스의 비판적 글쓰기는 ‘자발적 불복종의 기술’[2]이다.

 

마르쿠스는 젊었을 때에 해야 할 일들 중 하나로 ‘대화편’을 써야 한다고 했다. (《명상록》 제1장) 이 ‘대화’는 나 자신을 사유하는 존재로서 스스로 묻고 답하는 행동이다. 그건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는 일이다.

 

지금 나 자신의 영혼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어떤 경우에나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야 하며, 지배적 원리라고 불리는 나의 이 부분을 나는 지금 어떤 일에 사용하고 있는가를 음미해야 한다. 지금 나의 영혼은 어떤 영혼인가? (황문수 역, 《명상록》 제5장 71쪽)

 

자기 수양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반성을 통해 자신의 감정 및 행동을 분명히 인지하고, 그것을 솔직하게 표현하면 된다. 푸코는 비판의 기능이 있는 자기 수양을 ‘배운 것을 버리는 것(de-disccere)’이라고 했다. 자기 수양은 상대방의 타당한 비판을 받아들일 줄 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평생 몸에 배야 할 기본 덕목이다.

 

내가 올바르게 생각하지도 않으며 올바르게 행동하지도 못한다고 나에게 설득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즐거이 나의 태도를 바꾸겠다. 나는 진리를 추구하고 있으며, 진리로 말미암아 해를 입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류와 무지에 안주하는 사람은 해를 입는다. (황문수 역, 《명상록》 제6장 85쪽)

 

배운 것을 버리는 것. 내가 스스로 발견한 결점이든 상대방이 알려준 내 결점이든 이를 과감히 떼어내는 삶의 태도는 한 인간이 평생 살면서 치러야 할 투쟁이다. 혼자 투쟁하려면 이를 실천하려는 충분한 힘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마르쿠스와 푸코는 자기 수양을 위한 훈련법으로 ‘글쓰기’를 강조한다. 이들의 제안은 비판적 목소리를 ‘비난’으로 매도하고, 잘못에 대한 반성을 선행하지 않는 세상을 되돌아보게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비판을 감내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자신의 결점을 들춰낼 줄 아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이게 안 되는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너무 많다. 박 씨, 최 씨, 그리고 그 두 사람을 보호하려고 매 주말마다 영혼 없이 태극기를 휙휙 휘날리는 사람들. 이들은 사회에서 배운 낡고 편협된 것들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못 버릴 듯하다. 과거의 쓰레기들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말고, 무덤에 갈 때 남김없이 들고 가길 바란다. 이건 그들에 향한 악의에 찬 저주가 아니다. 더 나은 세상으로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간곡히 부탁하는 말이다.

 

 

 

 

[1] 미셸 푸코 《비판이란 무엇인가? / 자기 수양》 46쪽

[2] “비판은 자발적 불복종의 기술, 숙고된 불복종의 기술일 것입니다.” (같은 책,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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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1 0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21 08:03   좋아요 1 | URL
이 책은 언제 읽어도 좋은 문장들을 많이 만납니다. 필사하기 참 좋은 책입니다. ^^

우마우마 2017-02-21 0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다시 읽어보고 싶어져요. 고등학교 때 왠지 멋있어 보여서 명상록을 샀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뭘 알고 읽었나 싶어요. ㅎㅎ 남기신 댓글처럼 필사를 해볼까 싶어집니다.

cyrus 2017-02-21 12:35   좋아요 0 | URL
<명상록>이 처음 읽을 땐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해보니까 곱씹을만한 글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제가 노인이 돼서 <명상록>을 다시 읽으면 책을 대한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아폴로도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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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는 서양인들의 인생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신화에 담겨 있는 온갖 유형의 이야기는 서양 예술의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해 왔다. 아폴로도로스의 《Bibliotheke(비블리오테케)》는 신화의 내용과 신화 속의 영웅들이 벌인 행동 및 사건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된 문헌이다. 특히 각기 다른 출전에 따른 이설들을 꼼꼼히 구별하여 주석으로 정리했고, 신과 영웅들의 계보를 수록하여 신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아폴로도로스는 기원전 2세기에 활동한 아테네 출신의 문법학자로 알려졌다. 그가 남긴 문헌 제목이 ‘비블리오테케’, 우리말로 풀이하면 ‘도서관’이다. 소크라테스는 ‘문자는 진리가 아니라 사이비 진리일 뿐’이라며 생각의 문자화를 경계했다. 그러나 생각은 끊임없이 문자로 기록됐고 도서관은 진리의 보관소라는 신성한 장소가 되었다. 지금은 파괴되어 사라져버렸지만 ‘세상의 모든 책’을 정리한 곳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었다면, ‘세상의 모든 그리스 신화’를 정리한 책은 《비블리오테케》이다. 아폴로도로스가 인용한 고대 문헌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와 고대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의 《일과 날》 등이 있다.

 

그리스 신화가 다양한 형태로 우리나라에 소개됐지만,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해 단편적인 이야기 묶음으로 편집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다 보니 원전의 묘사가 삭제되거나 윤색되어 흥미 위주의 신화 편집이 주류를 이루게 됐다. 그동안 우리는 《비블리오테케》와 같은 원전을 1차 문헌으로 삼아 후대에 편집된 2차 문헌으로 신화를 접했다. 이는 신화 체계를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대부분 사람은 신화를 ‘허위로 가득한 재미있는 이야기’, ‘상상력의 보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화 모음집을 만든 아폴로도로스와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화 자체를 허구 아닌 진실이자 역사로 이해했다. 그래서 그리스 신화의 원전을 읽을 땐 신화를 고대 그리스의 세계관이자 사상체계로 봐야 한다. 신화를 재미로 보는 건 문제없으나 흥밋거리로 신화를 이해하는 태도와 고대 그리스인의 관점에서 신화를 이해하는 태도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비블리오테케》는 순수한 그리스 신화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문헌이다. 호메로스의 작품과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비하면 이야기가 몰입력 있게 전개되지 않는다. 아폴로도로스는 기존의 그리스 신화들을 두루 간추려 모아 정리했다. 그래서 《비블리오테케》에는 독자의 흥미를 이끄는 서사적 갈등 구조가 눈에 띄지 않는다.

 

가령, 아폴로도로스는 아르테미스(Artemis, 사냥의 여신)의 분노로 사슴으로 변한 사냥꾼 악타이온(Actaeon) 이야기를 무미건조하면서도 아주 간략하게 설명한다.

 

 

 

 

 

아쿠실라오스에 따르면 그렇게 죽은 것은 그가 세멜레에게 구혼하는 바람에 제우스가 노했기 때문이라고 하나 대부분의 작가에 따르면 그가 아르테미스가 목욕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여신이 당장 그를 사슴으로 바꿔버리고 쉰 마리나 되는 그의 개떼를 미치게 하자 주인인 줄도 모르고 그를 잡아먹었다는 것이다. (201쪽)

 

 

악타이온 이야기를 인상 깊게 본 독자라면 아폴로도로스의 문장을 보고 허전하게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설명에는 극적인 긴장감 자체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를 쓴 오비디우스는 길을 헤매던 악타이온이 불행하게도 아르테미스가 목욕하는 광경을 보게 되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생동감 있게 묘사했다. 《변신 이야기》에서는 아르테미스가 저주를 담아 악타이온의 얼굴에 물방울을 뿌리는 장면이 나오지만, 《비블리오테케》는 그 결정적인 장면이 없다. 오비디우스는 신화 속 등장인물에게 질투나 선망 등 인간의 다양한 감정들을 부여하여 역동성을 강조했다면, 아폴로도로스는 그동안 알려져 있던 그리스 신화들을 모아 ‘지식’이라는 일관된 형태로 엮어냈다.

 

《비블리오테케》를 읽는 일은 독자가 신화를 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을 뿐인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삼라만상의 진리를 아우르고자 했던 인류의 야심이 묻어나는 지식의 보고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이 책으로 서양문화의 기저를 흐르고 있는 신화의 정수를 뽑아낼 수 있다. 방대한 신들의 계보를 이해하는 일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조급해하지 않고 깊이 생각하며 천천히 읽어 나간다면, 신화를 보는 시각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긴다. 신화는 ‘과거를 알기 위한 지식’이지만, ‘오늘날 알아야 할 상식’이 아니다. 신화는 하나의 시원에서 출발해 가지를 뻗음으로써 다양한 양식으로 발전했다. 가장 나중에 자란 가지 하나에 '상식’이라는 이름을 붙여졌고, 우리는 그것만 가지고 ‘신화’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착각했다. ‘신화’라는 나무 전체를 보지 못한 채 나뭇가지 하나만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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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7-02-20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있었네요ㅎ
싸이러스님의 실천이 부럽습니다.
읽어야지~읽어야지 했는 책들이
기억속으로 까마득히..특히 어렵고 두꺼운 책들은 더더욱 미루게 되더라구요ㅎ
우선에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부터
읽어봐야겠네요^^
그리스로마신화는 진짜 오랫동안
공들여 읽을 가치가 있는 듯.
예전에 읽은 한호림의 <뉴욕에헤르메스가산다>에서보면
유럽의 길거리, 간판, 음악, 예술 등에
신들의 상징물이 있더라구요.
신화를 모르고서 유럽문화를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을까요^^;

cyrus 2017-02-20 18:42   좋아요 1 | URL
이윤기 씨가 번역한 <변신 이야기>와 어렸을 때 읽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만 보고, 신화를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제가 무슨 계기가 있어서 원전 신화를 읽었는데요, 제가 큰 착각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신화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내용이 많았어요.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하는 것처럼 신화의 세계에 진입했는데, 열심히 읽어나가야겠어요. 북프리쿠키님이 댓글로 언급하신 신화 책도 참고하겠습니다. ^^

구름물고기 2017-02-20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아이디도 그리스와 관련있네요 어울리는 책인걸요 ㅎ

cyrus 2017-02-20 18:46   좋아요 0 | URL
제 닉네임의 발음 때문에 그리스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ㅎㅎㅎ 그리스를 좋아해서 cyrus라고 정한 건 아닙니다. ^^;;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 와이다 준이치 사진 / 문학동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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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읽는 책과 소장하는 책이다. 책은 그 속에 담긴 내용이 중요하고 또 그것이 존재가치가 된다. 흔하지는 않지만, 책이라는 물체 자체가 소유주의 목적이 되는 경우도 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일컫는 ‘애서가’와 구별해 이처럼 소장가치 높은 책을 모으는 사람을 ‘장서가’라고 한다. 책의 역사는 애서가와 장서가의 역사이기도 하다.

 

나는 책을 좋아하여 자주 서점에 들르는 편이지만 장서가는 못 된다. 장서가는 애서가와 달리 많은 장서와 함께 고서, 초판본, 저자 서명본 등 진귀한 책들을 갖고 있게 마련이니 말이다. 책을 좋아하다 보니 약간 무리를 해서라도 사들이는 버릇으로부터 지금도 자유롭지 못하다. 어렸을 때부터 멋진 서가를 가졌으면 하는 꿈을 꾸었다. 책이 좋아 책을 사다보니 자연스럽게 책이 쌓여가고 쌓여있는 책들을 바라보면서 그다음은 멋진 서가를 한 번쯤 그려보는 것이다. 사실 책이란 그 주인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면 한순간에 천덕꾸러기로 변해버리고 만다. 집에 책이 많다 보면 이사를 해야 할 때가 가장 고역이다. 그래도 책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책이 전해주는 말할 수 없는 큰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웬만한 애서가라면 책꽂이에서 다치바나 다카시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터다. 일본의 저널리스트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한마디로 책에 미친 사람이다. 하도 책을 많이 사는 바람에 아예 책만을 보관하는 ‘고양이 빌딩’을 따로 지었다. 부러운 이야기지만 모두가 다치바나처럼 살 수는 없다. 또한, 멋진 서가를 갖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쉽게 서가를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서가란 단순히 책이 놓여 있는 곳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인의 모습이 투영된 책의 공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치바나는 서가를 들여다보면 서가 주인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보인다고 한다. 고대 로마의 문장가 키케로는 ‘책 없는 방 안은 영혼이 없는 육체와 같다’고 말했다. 다치바나는 키케로처럼 서재를 정리하고 나면, 자신의 집에 새로운 정신이 깃든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그의 영혼이 지식을 충만하지 못해 홀쭉했더라면 그의 서재는 살아 숨 쉬지 못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는 애서가와 장서가들을 매료시킬 만한 멋진 정보로 가득 찬, 책에 대한 책이다. 흔히 책에 관한 책은 좀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저자들은 바른 독서법을 알려주겠다며 속독법과 슬로 리딩, 초병렬 독서법 등 다양한 기술을 판매한다. 명문대 진입을 대비해 어려서부터 책을 읽어야 하며, 세상을 지배하는 0.1%의 비밀을 알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고 현혹하기도 한다. 이런 책에 관한 책을 쓰는 사람은 대체로 유명한 사람이자, 화려한 애서가들이다. 책을 다룬 책들은 대개 점잔을 부리는 경우가 많은데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는 전혀 그렇지 않다. 다치바나는 사소한 자기 고백에서 출발해 지금까지 몸으로 체득한 지적 자산들과 어디 가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책 뒷담화를 두루 섞어 냈다.

 

다치바나는 처음 문학에 관심을 두었으나 세계에 대한 철학적 인식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독서의 방향이 바뀌었으며 그것이 결국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등 전방위적으로 넓어졌다고 말한다. 그는 문학을 거의 읽지 않는다. 국내에 다치바나의 존재감을 알리게 한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에 그 이유가 자세히 나온다. 잡지사 초년 시절 선배에 의해 문학만을 읽는 독서 행태를 지적받고 나서 논픽션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는 픽션의 세계가 논픽션에 비하면 얼마나 보잘것없는 지를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문학을 좋아하는 애서가 입장에서는 인간의 감정과 고뇌, 사랑을 다룬 문학을 외면하는(?) 그의 독서 편력을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를 읽어보면 그의 지적 열망이 어린 시절의 문학 독서에서 내공이 쌓여 폭발하기 시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관심사가 다른 곳으로 이동해 간 것뿐이다. 그는 예전에 읽은 소설책도 고양이 빌딩 서재에 보관해두었다. 최신 보고서 속에 담긴 지식도 중요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되풀이하여 새롭게 읽는 책의 존재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삶 자체가 ‘독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다치바나도 약간 허술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호기심과 지적 욕구가 넘치는 그의 모습을 보면 고양이 빌딩 서재의 책 배열 방식이 체계적으로 되어 있을 거로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가끔 주제와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책이 서재에 꽂힌 경우가 있다. 다치바나는 그런 경우를 애서가의 결점이라고 보지 않는다. 분류가 잘못된 책이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그 책이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딘지를 언급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 분야를 솔직하게 언급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저는 소쉬르에 대해서는 그다지 소상히 알지 못합니다. 편의적으로 모아두었을 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건, 요컨대 서가는 그 소유자의 지적 편력의 단면이라는 점입니다. (416쪽)

 

사놓고도 한 번도 펼치지 못한 책들이 아주 많다. 그를 동경하면서 책을 사 모았던 독자 입장에서는 그의 말이 조금은 위안이 된다. 지적 욕구가 넘쳐도 어떤 주제건 아는 게 없어 뭘 읽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다치바나도 그런 상황을 한 번쯤은 겪었으리라. 그래서 그의 서재는 독서를 통해 자신의 관심사를 좁히고, 글을 쓰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나타나 있다. 이 책들을 사기 위해 지불했던 돈은 땀의 결정체이기 때문에 그가 책을 접하면서 공부한 노력이 책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치바나의 서재에는 ‘의심스러운 책’들도 가득하다. 여기서 ‘의심스러운 책’이란 오컬트, 신비주의, 유사 과학 등 일반적으로 황당하면서도 거짓말 같은 내용을 소개한 것이다. 심지어 지하철 독가스 테러로 세계를 경악시킨 옴 진리교 관련 서적도 고양이 빌딩에 보관되어 있다. 그렇지만 다치바나는 ‘의심스러운 책’들을 그냥 재미로 읽을 뿐이다.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과도한 믿음에 빠지지 않는다. 비록 그 책들이 지적 영양분을 제공하기에 너무 부족한 것들이지만, 다치바나는 이런 책들도 거대하고도 복잡한 세상을 보여주는 일종의 지표로 여긴다. 종종 다치바나가 언급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서두처럼 ‘인간은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서 다치바나는 이런 인간의 본능이 남아 있는 책의 세계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거로 장담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는 소수의 애서가와 장서가를 위한 책이다. 책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고자 하는, 책 욕심이 넘치는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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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부인 2017-02-18 21:2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가끔 저에게 책을 잔뜩 넘기겠다고 하시는 지인들이 있는데..그럴때마다 전, 아파트 한 평을 늘여주신다면.. 기꺼이 받겠다고 말하곤 하죠. 책욕심은 늘 나지만, 이제 40을 넘기고나니 한편 소소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긴 하고요. 그리고 암만 생각해도 서울이나 서울 근교를 떠날 용기도 나지않고 그렇다고 아파트 평수를 늘릴수도 없겠단 생각에 그저 도서관 옆 작은 평수의 아파트에서 사는 게 가장 좋을듯 합니다..ㅋ 제 한국집은 두개의 시립도서관을 옆 옆으로 끼고 있는 이유가 바로...여기에...ㅋㅋ

cyrus 2017-02-19 08:49   좋아요 1 | URL
이제 책 보관할 공간이 부족하니까 서평단 신청을 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저도 이사를 하게 되면 도서관과 거리가 가까운 곳으로 정하고 싶어요. ^^

꼬마요정 2017-02-18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항상.. 책 놓을 공간과 책을 살 수 있는 능력이 갖고 싶었답니다... 책을 빨리 읽고 소화할 능력은 덤으로 갖고 싶구요. 이 생에서는 힘들 듯 합니다만. ㅜㅜ

cyrus 2017-02-19 08:50   좋아요 0 | URL
저도 요즘 책을 빨리 읽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

북프리쿠키 2017-02-18 23: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 욕심은 많지만
소장은 되도록이면 적게 추리고 싶네요
서재는 간소하고 단촐하게~
책 읽는 공간을 편의성이나 분위기를 중점적으로 제 색을 입히고 싶은 게 저의 소박한 바람입니다.
단 소장책은 그 누구보다 깊은 사유를 통해
수시로 집어들어 내 것으로 만들고 싶네요^^

cyrus 2017-02-19 08:52   좋아요 0 | URL
미래에 이런 책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책을 소박하게 보관하는 법을 소개하는 책이요. ^^

2017-02-19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19 09:25   좋아요 1 | URL
이제 정신 차리고 치열하게 읽으려고요. 만약 제가 20대였을 때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를 읽었으면, 넓은 서재를 갖추고 싶은 부러운 마음이 들었을거예요. 그런데 저도 이제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동경보다는 남은 생에 책을 열심히 읽어야겠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

잠자냥 2017-02-19 1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픽션의 세계가 논픽션의 세계에 비해 보잘것없다는 지은이의 의견에 저는 반대합니다! ㅎㅎㅎ

cyrus 2017-02-19 16:31   좋아요 3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치바나를 좋아해도 그 주장만큼은 반대합니다. 논픽션의 세계가 픽션의 세계보다 재미있고, 상상 초월하는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아주 불쾌한 기억이지만, 최순실과 박근혜 게이트가 그런 경우죠. 그렇지만, 이것만 가지고 논픽션의 세계가 픽션의 세계보다 흥미롭다고 볼 수 없습니다. 픽션의 세계가 먼 훗날에 논픽션의 세계가 되곤 하는데, 전 두 가지 세계를 대립하는 관계로 보고 싶지 않습니다. 상호 연결하는 관계로 보고 싶어요. 아서 C. 클라크의 소설 속 내용이 현실에 나타나는 경우가 있듯이 픽션의 세계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픽션의 세계를 존중합니다. ^^

쉽싸리 2017-02-19 2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빌려다 놨는데요, 고양이 빌딩 전면 모습이 없어서 대실망했어요...

cyrus 2017-02-19 23:46   좋아요 0 | URL
저도 컬러로 된 건물 전체 사진이 있을 줄 알았어요.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에 건물 전면 모습 사진 한 장이 있는데 흑백 사진입니다. 구글에 고양이 빌딩을 검색하면 사진이 나옵니다. ^^

꼼쥐 2017-03-02 16: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등 수상을 축하드려요~~^^

cyrus 2017-03-02 16:3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꼼쥐님은 교보문고에 리뷰를 작성하셔서 3등 수상하셨던데 축하드립니다. ^^
 

 

 

 

 

 

 

요즘 ‘탕진잼’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이냐면 ‘소소하게 낭비하는 재미’를 말합니다. ‘탕진잼’은 경기 불황 속에 적은 가격으로 물건을 왕창 사는 소비 형태를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해도 소소한 사치를 누리고 싶은 젊은 층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그런 연령층에 속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생활이 팍팍해도 책을 삽니다. 도서정가제 도입 이후부터 신간 도서 구매 횟수가 줄어들고, 중고서점이나 헌책방을 찾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중고서점과 헌책방은 적은 금액으로도 읽을 만한 책들을 최대한 많이 살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중고서점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중고서점에 읽고 싶은데 구하기 힘든 책이 보이면 안 살 수가 없거든요. 이런 책들은 대부분 절판된 상태인데요, 출간연도가 오래된 것은 도서관에서도 볼 수가 없어요. 매달 도서관에 새 책이 들어오면, 오래된 책은 창고 같은 서고에 따로 보관됩니다. 그 책을 보려면 사서에게 얘기해야 합니다. 오래 걸리는 일은 아니지만, 저처럼 오래된 책을 읽고 싶은 독자 입장에서는 사서에게 매번 부탁하는 일이 껄끄럽습니다.

 

중고서점에 책을 살 때 예외가 있습니다. 정말 읽고 싶은 책이 아주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경우입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저렴한 가격의 절판본과 저렴한 가격의 일반 책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이 찾아옵니다. 이때 고민이 많아집니다. 일반 책은 갑자기 절판되지 않는 이상, 다음에 사도 됩니다. 그런데 그 날이 언제 올지 몰라요. 절판본을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합니다. 그야말로 운이 좋아야 합니다.

 

 

 

 

 

어제 퇴근하자마자 대구 상인점 중고서점을 찾았습니다. 그 이유가 그 매장에서 파는 책 한 권 때문이었습니다. 최근에 동생을 위해서 《작은 아씨들》 1, 2권을 샀습니다. 그 후에 중고서점을 검색했는데, 마침 중원문화 출판사에서 나온 《작은 아씨들》 3부가 서점에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책 상태는 ‘최상’이었고, 중고가가 착했습니다.

 

어제까지 제 계정에 있는 총 적립금이 3,500원 정도 있었습니다. 제가 사고 싶은 책과 동생 보고 싶은 책을 사는 데 쓰면서 남은 금액입니다. 이 가격으로 3,700원의 책을 사기에는 200원이 모자랍니다. 매일 알라딘 어플에 접속하면 받을 수 있는 1,000원 적립금이 있습니다. 그 적립금을 받으면 24시간 이내에 사용해야 합니다. 저는 그 적립금 덕분에 《작은 아씨들》 3부를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4부를 제외한 《작은 아씨들》 시리즈를 모으는 데 성공했습니다. 동생이 3부까지 다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읽으면 그만이니 적립금을 다 쓰는 것에 아깝지 않았습니다. 네, 이런 게 바로 ‘탕진잼’의 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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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8 15: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18 16:52   좋아요 0 | URL
이제 제 나이 서른인데, 서른 이후 십 년은 제가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마지막 시기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정말 샀던 책들을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

우민(愚民)ngs01 2017-02-18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명하십니다....^^

cyrus 2017-02-18 16:53   좋아요 0 | URL
현명하다기 보다는 그냥 운이 좋았습니다. 적립금이 조금 남아 있어서 다행입니다. ^^;;

겨울호랑이 2017-02-18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그야말로 첩보전을 방불케 하네요 ㅋㅋ 그리고, 저도 중고서점에서는 한없이 너그러워진다고 아내에게 한소리 듣고 있는 편이라 더욱 공감이 갑니다^^:

cyrus 2017-02-18 16:55   좋아요 1 | URL
어머니가 택배 받는 것을 싫어하셔서 온라인 주문이나 서평단 신청을 안 하고 있어요. 안 그래도 책장에 빈자리가 부족해서 보관할 공간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야금야금 사고 싶은 책을 사고 있습니다. ^^;;

붕붕툐툐 2017-02-18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때 책모으는 재미에 푹 빠진 적이 있는데, 아주 어렵게 세트를 다 완성했을 때의 뿌듯함이 떠오르네요~^^

cyrus 2017-02-18 20:0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진짜 그 감정이 생길 때가 책 엄청 좋아하는 사람들이 제일 행복해하는 순간입니다. ^^

레삭매냐 2017-02-18 2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고서점의 매력은 역시 단가와 희귀성이 아닐까요.
탕진잼의 유희에 빠진 이들은 굳이 당장 사지 않아도
될 책을 갖은 이유를 붙여서 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 중 하나겠죠 :>

어제 프랑크 디쾨터의 <해방의 비극>이 인근 램프의
요정에 나와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고 바로 달려가
서 사왔습니다. 부근에 저랑 독서취향이 비슷한 분이
계신지 거의 시간차 싸움이거든요. 먼저 사는 사람이
임자다.

최근 중국 당대소설들일 섭렵 중인데, 현대 중국의
모태가 되는 공산혁명 그리고 문화대혁명을 본격적
으로 다룬 책이라 그런지 진도가 짝짝 나가는 중입니다.

cyrus 2017-02-19 08:5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중고서점에서 원하는 책을 사는 일이 타이밍 싸움입니다. 운이 좋으면 득템할 수 있어요. 정말 간발의 차이로 책을 산 일이 있었어요. 제가 원하는 책을 먼저 집어들고, 검색대에 가서 다른 책 제목을 검색했어요. 그때 검색창에 다른 손님이 제가 득템한 책 제목을 검색했더군요. 정말 아찔했습니다. ㅎㅎㅎ

지금행복하자 2017-02-18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도 탕진잼을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

cyrus 2017-02-19 08:58   좋아요 0 | URL
신간도서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중고서적을 많이 찾게 됩니다. 사실 어려운 출판시장을 생각하면 좋은 현상은 아니죠. ^^;;